보궐선거의 전망이 나빠서일까, 아니면 문재인의 보수의제 정면돌파를 진보의제 맞받아치기로 되돌려준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너무나 이른 대선 출사표인가? 새벽의 끝자락에 잠에 들어 황혼의 첫머리에 일어나는 필자지만, 오늘은 밤을 꼬박 새는 한이 있어도 태양이 동쪽에서 뜨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은 그 자리에 김대중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다면 너무나 자연스러웠을 정도로 진보적 의제로 가득했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표를 구걸하기 위해 거짓 공약을 남발했던 박근혜 후보가 오버랩될 정도로 유승민의 연설은 파격 그 자체였다.
필자는 일단 유승민의 연설을 (세월호 인양을 언급한 박근혜처럼) 임박한 보궐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대국민 립서비스나 사드미사일 도입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원내대표연설을 할 새정치민주연합의 우윤근은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이완구를 위해 흘린 눈물을 유승민을 위한 연설로 대체하면 충분하다.
이번 연설이 김무성과의 사전조율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박근혜의 오늘 밤은 스산하다 못해 싸늘할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은 똥 밟은 날의 누구처럼 자다가 몇 번이나 일어나 ‘다음 대선은 양보 못해!’를 외쳤을 것이다. 안철수는 유승민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도 남았으리라.
문재인은 유시민에게 전화를 걸어 네가 연설문을 써줬냐고 물어볼 것 같다. 유승민은 김종인이나 장하준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또는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했는데, 대체 유승민의 대표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표연설 전에 약물검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새누리당에 진보적 경제관을 지닌 원내대표의 등장이 때 이른 대선 출사표에 해당하는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4월16일과 4월29일을 보내봐야 알 것 같다. ‘폭탄’ 홍준표를 염두에 뒀을 리는 만무할 테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듯싶다.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으로부터 난타를 당할지, 조중동과 종편, 보수단체로부터 난타를 당할지, 재계와 경제지, 부자들로부터 난타를 당할지 그것은 유승민이 소화해낼 몫이다. 정치인의 말은 실천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권력의 크기에 따라 책임의 크기도 늘어난다.
물론 어떤 정치인은 이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지만, 유승민이 김대중을 욕보이는 동교동계의 나눠먹기 요구에 브레이크가 걸린 문재인의 광폭행보에 멋진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문재인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유승민은 결정적 한 방을 날렸고, 충격은 오래 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유승민 기습공격 때문에 연설문 내용을 수정하고 있을 우윤근의 잠 못 드는 밤도 길어질 것 같다. 우윤근이 강조해야 할 것은 사드미사일 도입 반대와 정부의 세월호 특위 시행령을 철회하라는 것,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라는 것 정도밖에 남은 것이 없다.
유승민의 연설에 얼마의 진정성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부디 세월호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말한 것의 반만이라도 지켜주기 바란다. 이번에도 그들을 울리면 국민이 참지 않을 것이며, 필자도 병약한 몸을 이끌고 거리에 나설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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