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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제가 말했죠, 정동영의 변화를 믿을 수 없다고!



최근의 뇌과학은 기억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무의식에 비견될 수 있는 장기기억이고, 나머지는 의식에 비견될 수 있는 단기기억입니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모든 것들은 뉴런과 시냅스의 작용을 통해 단기기억으로 두뇌에 저장됩니다. 단기기억을 형성한 것들이 반복되는 과정(암기와 경험의 축적 등)을 통해 쉽게 잊혀지지 않을 정도에 이르면 장기기억으로 넘어갑니다. 





장기기억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단기기억처럼 잊혀지기 일쑤이지만, 실제로는 단기와 장기기억 모두가 기억회로(뉴런이 시냅스의 도움을 받아 두뇌피질에 정착한)에 저장돼 있습니다.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모든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퇴화 직전에 이른 신경회로라 해도 동일하게 되살아납니다. '기억이 떠오르다'라거나 '아, 생각났어'하는 것들이 이에 속합니다.



이렇게 무의식 속에나 있을 법한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뇌가 가소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일정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뉴런이 (다른 기억에 사용되거나 퇴화되지 않았다면) 특별한 계기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는 것이 기억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이런 두 가지 기억이 유기적으로 체제를 이루면 보다 높은 차원의 직관력이나 판단력 같은 인식 체제(스키마라고 하는데, 인공지능의 알고리즘과 비슷하다)를 형성합니다.



정치철학으로 말하면 이데올로기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스키마는 지식과 대비했을 때 지혜나 노하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과 지식의 상호작용이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체제(뇌의 메트릭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속담에 '늙은 생강이 무섭다'라는 것도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스키마가 발달한 사람들은 특정 인물의 행동과 말에서 표출되는 어떤 변화와 그 진정성에 대해 남들보다 한 차원 높은(항상 그런 것도 아니고 언제나 정확한 것도 아니지만)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알 수 없다'라는 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을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것이라고 할까요. 마루마야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에 나오는 '변화하는 중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특정 인물의 변화에 적용해볼 수도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과는 배치되지만. 





필자가 '나는 정동영의 변화를 믿을 수 없다'라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스키마가 어느 날부터인가 급진적 진보주의자 행세를 했던 정동영의 변화에서 진정성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계산된 대로 얼마든지 위장과 포장이 가능한 행동은 둘째치고, 미시간주립대(필자의 형이 이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에서 돌아온 그가 여기저기서 쏟아낸 발언들을 모아놓으면 그의 변화가 진실되지 않다는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변화하는 중이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요. 백번 양보해 변화하는 중이라고도 해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라도 쌓으려면 변화에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필자의 스키마는 정동영의 느닷없는 변화에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어떤 일관성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급진적 진보에서 합리적 보수와 중도의 가운데에 설 수 있다는 정치철학은 안드로메다 너머의 어디에선가 온 것인가 봅니다, 트랜스포머처럼. 



아무튼 사람에 대한 판단을 최대한 늦추는 경향이 있는(신뢰의 리더십이 갖는 특성 중 하나) 문재인 전 대표가 트위터를 통해 "정동영 국민의당 합류. 잘됐습니다. 구도가 간명해졌습니다. 자욱했던 먼지가 걷히고나니 누가 적통이고 중심인지 분명해졌고요"라고 말한 것에서 필자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을 흉내낸 것인지, 아니면 이순신 장군을 차용한 것인지, 그가 선언한 백의종군이 전주 덕진에 출마하는 것이라면 한 단어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ullshit!!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뇌의 가소성을 가장 쉽게 설명한 책은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것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면 세계적인 뇌과학자들인 장디에 뱅상의 《뇌 한복판으로 떠나는 여행》과 라마찬드란의 《두뇌 실험실》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글 비판을 하기 위해 뇌의 가소성을 다루었고, 뱅상과 라마찬드란은 뇌에 관한 것의 모든 것을 다루었습니다. 《뇌 한복판으로 떠나는 여행》과 《두뇌 실험실》은 페이지수가 장난이 아니어서, 가볍게 도전할 수 있는 책들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