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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종인에게, 모로 가면 서울에 갈 수 없다



늙은도령이란 필명으로 다음의 블로그와 티스토리의 블로그에 3,000 여 편에 이르는 글을 올리면서 단 한 번도 정권 탈환에서 벗어나는 글을 쓴 적이 없으며, 거의 모든 분석과 예측이 맞았음에도 졸지에 새누리당의 세작이 된 것은 김종인 비대위의 출구전략이 최악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몇 편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5~6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지만, 제 글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나온 결과라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무엇인들 상관없다는 분들의 열망과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분노가 차가운 이성의 소리가 분탕질처럼 들리고, 그 결과 늙은도령이 새누리당의 세작으로 확정되더라도,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극도의 불평등과 차별, 부정의와 불의의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세작 소리를 들어도 저의 기쁨일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비판의 핵심에는 간절함과 분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독무대였던 필리버스터를 3월10일까지 밀고나가면 '총선 연기와 계엄령 선포'라는 역풍(한국처럼 개방된 경제선진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아니 그렇게 하면 총선에서 필패할 것이 분명하기에 또 한 편의 글을 올립니다. 많은 분들의 주장과는 달리 야당 통합이라는 김종인의 출구전략은 가만히 나눠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국민의당과 안철수를 살려주는 역효과만 불러올 것입니다. 



이미 30년 넘게 현재의 야당에만 표를 주었던 필자 또래의 많은 분들이 더불어민주당 지지를 거둬들인 것이야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지만, 아무런 탈출구도 없어 자멸 직전에 이른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출구전략으로 제시한 '야당 통합'은 강자가 약자를 짓밟아버리는 가장 새누리당스러운 방법이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안철수와 국민의당에게 결집의 명분(수도권 선거연대시 지분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국민의당에 합류한 자들의 생각이 하나로 뭉쳐질 수 없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던 수많은 야당의원들의 기회상실에 버금갈 정도의 (일시적인) 단합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국민의당의 대표성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했던 안철수는 김종인의 압박이라는 정치공작(호남과 수도권 유권자에게 그렇게 비칠 수 있다)에 맞서 기사회생의 동력을 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가해자-피해자'라는 직접적인 인과관계 외에도 그것에서 파생되는 간접적인 상관관계도 작동합니다. 그것은 '야당 통합'을 통해 총선의제를 안보프레임에서 경제프레임으로 바꾸려는 김종인의 바람과 달리, 친새누리 매체들의 일방적인 지원사격에서 나옵니다. 이들의 변함없는 쓰레기질에 '마국텔'의 흥행돌풍에 힘입어 총선 승리로 가는 첫 번째 스텝인 '야당 통합'이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안철수 죽이기'로 변질돼버렸습니다.



'안철수 빼고 모두 다'로 변질된 '야당 통합'은 이명박 정부 5년의 일관된 프로파간다였던 '노무현 빼고 모두 다'와 너무나 흡사해 호남과 수도권의 정서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동안 국민의당이 '야당 통합'을 거부하기로 했다는 속보가 나왔고, 연합뉴스를 비롯해 친새누리 매체들은 서울에서 열린 호남향후회에서 김종인은 의례적인 수준의 박수(또는 야유)를, 안철수는 환호성과 박수를 동시에 받았다는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 시절에 이루어진 시스템공천의 결과물인 컷오프에 반발해, 공천위원장을 넘어 비상대책위원장의 권한까지 받아낸 김종인으로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민의당 의원들이 이어갈 필리버스터가 계속될 경우 자신이 계획했던 공천과 승리방정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공천권을 활용한 대대적인 물갈이와 총선의제의 변경에 성공하려면 야당의원과 국민의 소통창구로 격상된 '마국텔의 종영'을 서두를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김종인과 비대위원들의 바람일 뿐, 상대적 약자에게 마음을 여는 경향이 강한 이 땅의 유권자에게는 정반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적 증거들도 이것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마국텔 종영'에 따른 제 나름의 형편없는 출구전략들에도 '야당 통합'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마국텔 흥행'과 테러방지법 통과와 맞물려 '귀향 돌풍'이 이어지고, '복면집필을 마친 국정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는 요인들은 모조리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굳이 '야당 통합'을 들고나오지 않았어도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이란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선거연합에 참여하는 것뿐이었고, 그 과정에서 안철수, 박지원, 김한길, 정동영, 김영환, 주승용, 노욕의 동교동계 등등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탄생시킨 안철수와 국민의당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일조하는 것(새누리당2중대의 역할)으로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친새누리 매체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고, 총선 때까지 안보의제가 지속되도록 모든 일정(사상 최대의 한미일합동군사훈련까지)이 맞춰져 있는 현실에서 야당이 총선의제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꾼다는 것은 100% 불가능합니다. 제가 '필리버스터 중단으로 총선의제를 바꿀 수 없는 두 가지 이유' 등의 글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한국현대사의 60년이 민주정부였고, 나머지 '잃어버린 10년'이 보수정부였을 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총선 승리를 위해 남아있는 출구전략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떠올릴 필요도 없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김종인 비대위가 '야당 통합'을 거둬들이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현 집권세력이 자행한 온갖 실정과 폭정들을 부각하는 본연의 전략으로 돌아가면 총선의제를 경제민주화로 돌리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총선 승리를 위해 새누리당스러워지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친일수구세력과 분단고착세력과의 전면전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친노패권주의(조중동이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철저하게 왜곡시킨 프레임)라도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