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슈퍼 301조를 발동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미국이 상대국에게 강요해온 자유무역과 다자간 무역에 반하는 슈퍼 301조는, 미국 연방정부가 우주적 규모로 늘어난 무역적자를 줄이고자 할 때 발동하는 것으로, 대상국의 제품에 제멋대로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악법 중 악법입니다. 대미수출 흑자액이 큰 나라일수록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슈퍼 301조인데, 이것이 발동되면 정상적인 거래로 거둔 흑자액의 대부분을 토해내야 합니다. 한국기업에게도 수시로 때리는 덤핑관세의 끝판왕이라고 보면 됩니다.
전형적인 깡패법인 슈퍼 301조 발동의 으름장에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의 대미흑자액은 그들의 달러보유액(1.2조 달러 정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트럼프가 이것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것입니다. 트럼프가 정계에 뛰어들기 위해 집필한 《강한 미국을 꿈꾸다》를 보면 미국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가는 국가들을 상대로 한 슈퍼 301조의 발동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문제의식은 신용불량국가로 전락한 미국의 표상만 본 것일 뿐, 표상 밑에 자리한 본질적인 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에서 세계경제가 겨우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현재, 정신나간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슈퍼 301조를 발동하면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된 세계경제는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1929년보다 더 심각한 경제대침체를 겪었던 세계경제가 미미한 회복세에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경착륙 조짐이 보였던 중국경제가 예상외로 잘 버텨주었기 때문인데, 슈퍼 301조가 발동되면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이것을 막아야 하는 중국으로써는 더 이상의 차이메리카(미국과 중국의 이익이 일치하는 것)를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의 몰락을 막기 위해 엄청난 손해를 각오하며 보유하고 있는 달러와 채권을 풀 것이며, 미국에 재투자한 자본도 빼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위안화의 환율이 요동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와 독일 같은 나라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또한 수출 감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입을 줄일 것이며, 이에 따라 중국에 원료나 중간재를 파는 나라들의 피해도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들도 타격을 입기 때문에 피해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늘어납니다. 중국마저 보호무역으로 돌아서면 세계경제는 버틸 수 없습니다.
중국의 맞대응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늘어납니다. 상위 1%가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월가의 금융산업, 아이디어 위주의 정보통신산업, 테러와의 전쟁으로 먹고사는 군산복합체와 감시·영상산업, 소프트 파워의 대명사인 헐리우드 영화와 미드 같은 문화산업, 지적재산권으로 먹고사는 제약업 등에 집중하느라 하위 99%의 소득원인 전통의 제조업을 일본과 한국, 대만, 중국 등으로 옮긴 까닭에 중국의 값싼 수입품을 대체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중국 무역적자도 상당히 부풀려진 것이어서 미국의 타격이 더욱 클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가 슈퍼 301조를 발동하면, 중국의 경제가 경착륙하기 전에 미국의 빈민층과 중하위층을 상대로 먹고사는 초대형 유통산업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수출입업체들이 폭망을 피할 수 없어 미국경제가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미국인들이 쓰는 생필품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수입한 것들이어서 트럼프의 지지층인 저임금·저학력 백인들이 직격탄을 피할 수 없습니다.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불만도 극에 달할 것이어서 미국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주이자 멕시코와 아시아계가 장악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주 같은 곳들은 독립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비리그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의 지배층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살고있는 미국까지 신용불량국가로 전락시킨 주범이자, 세계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내몬 악마 중의 악마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이 트럼프와 샌더스에 열광했던 것도 상위 1%의 탐욕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샌더스를 떨어뜨리기 위해 힐러리와 동맹을 맺은 대형언론들의 책임도 크며,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도 공화당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임기 내내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전력을 다한 오바마의 책임도 대단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미국 지배층의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오바마 임기 동안 모조리 되살아났고, 단 한 명도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신용불량국가로 만든 탐욕의 체제는 트럼프 정부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이지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런 면에서 보면 일정 수준의 정당성이 있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 극단적이라는 면에서 모두가 죽는 최악의 선택입니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기업들의 U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법인세를 대폭 내렸다고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을 견딜 수 있는 기업들을 제외하면 미국의 기업들 일부가 미국으로 U턴한 경우는 있지만 이들 기업들의 특징은 생산의 대부분을 자동화한 제조업이거나, 중국이란 시장에서 더 이상의 메리트를 찾을 수 없는 기업들이라 트럼프 정부가 슈퍼 301조를 발동한다 해도 특별히 이익이 될 것은 없습니다.
현대기아차, LG화학, 삼성SDI 등을 제외하면 한국기업들의 상당수도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공장을 이전했지만, 단기간 내에 중국이란 시장을 대체할 방법이 없는 대한민국의 피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될 수 있습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인 우리의 피해를 줄이려면 수출다변화와 내수경제의 확대가 필수적인데, 이것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어서 문통의 걱정이 태산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도발이라도 없다면 미중의 무역전쟁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텐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드의 임시 배치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한과의 대화가 하루라도 빨리 진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북한 변수를 최소화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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