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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의 시청자 의식 왜곡의 한 가지 사례

 

작년부터 올해까지 수없이 많은 사고를 일으켰던 KTX 산천의 감사원 감사결과 보도를 보면서 정부와 광고주에 장악된 방송의 현실을 봅니다. 민영방송인 SBS야 기업의 광고가 절대적 수입원인 상황에서 KTX 산천에 대한 보도에서 제작사의 이름을 빼는 거야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자 어제 9시 뉴스에서 시청료 현실화에 대한 보도를 특집으로 다루었던 KBS조차 KTX 산천의 제작사에 대한 이름을 뺀 것을 보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방송이 정부와 광고주에 목메는 현실을 지켜보며 언론 자유의 소중함과, 뉴스와 각종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의 의식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동안 글로 써야지 하면서도 미루었던 일을 이제 하려고 합니다.

 

매스 미디어에 대한 학문적 영역을 개척한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방송이 어떻게 시청자의 의식을 왜곡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술의 영향력은 의견이나 개념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향력은 인식의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 없이 바꾸어놓는 것이다.”

 

즉, 방송은 뉴스와 시사토론 등 각종 메시지를 통해 시청자의 인식에 특정 집단에게 유리하게 조작 편집 가공된 정보를 계속해서 보여줌으로써 특정 사건이나 견해에 대해 조금씩 빠져들게 만듭니다.

 

위에서 SBS와 KBS의 뉴스에서 KTX 산천의 계속된 사고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 보도를 하면서 책임 소재를 인재라 하면서 코레일의 책임을 집중 부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KTX 산천의 제작사 이름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 말아야 할 운행을 강행한 KTX 산천의 제작사는 빈번한 사고와 관련해서 그리 중요하지도, 책임이 그리 크지도 않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강조합니다.

 

또한 독일 회사가 납품한 선로 교환 장비의 결함과 코레일의 정비 불량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사고 원인의 핵심을 비껴갑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시청자의 뇌리에는 KTX 산천의 제작사의 책임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사고의 책임을 부차적인 것들에 분산시켜버림으로써 제작사에게 면죄부를 주게 됩니다.

 

물론 뉴스에서 KTX 산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끝끝내 제작사 이름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시청자의 인식에 심어놓습니다. 제작사의 광고 공세와 로비가 있지 않았다면 반드시 언급해야 할 제작사 이름이 빠질 이유가 없겠지요.

 

방송의 소유권이 집중되거나 경영진이 특정 세력에게 장악되면 방송의 자유와 조직의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사례들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이 영국 왕실과 전·현직 총리, 장관과 국회의인, 경찰서장, 유명 배우와 축구 선수, 심지어는 성폭행 피해자 부모의 전화까지 도청한 사건이 이에 해당합니다.

 

“언론 자유는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것”이라는 에드윈 베이커의 말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아, 우리나라에서는 KBS기자에 의해 민주당 당직자 회의 도청사건이 있었지요?

 

담당 기자가 도청에 사용한 핸드폰과 노트북을 도청 의혹이 터지자마자 동시에 잊어버렸다고 해서 무혐의 처리된 사건 말입니다.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이 오버랩 되지 않습니까? KBS 기자의 변명,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상은 거대 미디어들이 초국적 기업과 자본에 장악되는 현실의 다름 아닌데, 『여론조작 -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

학』을 위시해서 『미디어 집중과 민주주의』, 『부자 미디어와 가난한 민주주의』, 『방송, 권력과 대중의 커뮤니케이션』 『대중매체의 이론과 사상』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책들이 이에 대해 다루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고사 직전에 이른 것이지요. 어떻든 SBS와 KBS가 한 시간을 텀으로 KTX 산천에 대한 감사원 감사보고 결과를 보도하면서 KTX 산천의 제작사 이름을 의도적으로 빠뜨림으로써 시청자의 의식에는 사고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게다가 KBS의 경우 이 보다 다음에 K-pop에 의한 관광객 증가 같은 한류 관련 소식을 배치함으로써 앞서 방송된 KTX 산천 보도의 기억을 뇌리 속에서 밀어내 버립니다(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심지어 자료화면과 내용에 자사의 음악 프로그램을 내세우기까지 하니 그 행태가 가히 막장 수준입니다. 방송이 이렇게 정부나 광고주에 예속되고, 조직이 특정 세력에게 장악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송3사와 연합통신, 국민일보가 동시 파업하는 초유의 사태가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닌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미디어의 이해』에 나오는 말, 방송이 권력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면 방송에서 내보내는 뉴스와 컨텐츠들이 어떤 것으로 변하는지 그 본질을 짚은 말로 끝맺을까 합니다.

 

“미디어의 내용이란 실제로는 정신의 입구를 지키는 개의 주의를 끌기 위해 강도가 손에 들고 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