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국민과 민주주의를 욕보인 헌재의 판결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정치적 판단이 선악을 가리는 것이 아닌, 선호의 문제와 인간 본성에 자리한 공통감각인 양심에 따른 실천에 있음을 밝혔습니다. 정치적 판단을 취미와 비슷한 것으로 파악한 칸트는 보편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실천적 판단이 보편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실천적 판단보다 힘을 얻을 때 세계는 영원한 평화(《영구평화론》)를 이룰 수 있다고 봤습니다. .





민주주의는 이런 면에서 칸트가 꿈꿨던 이상향에 가장 근접합니다. 인간이란 대체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하는 공통감각인 양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인 인간일수록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한다는 가정에 근거한 것이 현대의 민주주의입니다. 도덕과 숭고한 어떤 것인 양심에 따라 행위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 절대다수를 이룰 때 민주주의가 가장 잘 작동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완결된 결과에 대한 선악을 판단하는 법적 판단이 결과를 이루어가는 과정인 정치적 판단과 같을 수 없음도 여기에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의 이성적 판단을 믿지 않으면, 그래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본권에 제한을 가하면 독재를 거쳐 전체주의로 접어듭니다. 민주주의가 분출하는 목소리들로 시끄러울 때 가장 잘 돌아가는 것도 법적 선악의 판단이 아닌 시민의 정치적 판단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하는 현대 민주주의는 법적 판단을 통해 정치적 판단이 위축되거나 제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결사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와 동등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결사의 자유가 최종적으로 정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법적 판단을 통해 정당을 해산하지 않습니다.





독일과 터키에서 법적 판단으로 제도권 정당을 해산 이래,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를 채택한 어떤 나라도 정당해산을 법적 판단에 맡기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히틀러의 나치를 경험한 유럽에서도 극우정당이나 극좌정당을 법적 판단을 통해 해산하지 않은 것도 국민의 판단을 믿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권력의 힘이 작용하기 일쑤인 법적 판단을 통해 정당을 해산하기 시작하면 시민의 정치적 권리는 극도로 위협받게 되고,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민주주의를 법의 지배를 수단화하는 권력의 수중에 떨어뜨립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을 욕보이는 행태입니다.



독재의 부활이나 회귀를 막기 위해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이념적 편향성을 지닌 인물들로 채워졌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것은 그들의 판결문에 나온 통진당의 행태와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공안적 시각으로 보면 모두가 잠재적 빨갱이이고 어떤 정당이라도 해산이 가능합니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법치주의)는 자유와 평등과 등치관계입니다. 둘은 상호견제와 균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며, 이를 통해 상호보완과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법의 지배가 강화될 때 민주주의는 축소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법의 지배에 권력의 영향이 커지면 그것이 바로 독재며 전체주의입니다.



법적 장치를 이용해 정치적 판단을 내린 정부와 헌재는 국민을 욕보임으로써 민주주의를 파괴했습니다. 유신시대의 특기이자 전가의 보도였던 공안정국이 부활했습니다. 국가권력기관들이 떼를 지어 선거에 관여해 불법을 남발하더니, 이제는 부분적 사실로 전체를 재단해버리는 전형적인 사이비들의 방식으로 제2야당의 위치에 있는 원내정당을 해산시켜버렸습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통진당이 원내에 진출한 원죄가 제1야당에 있다고 하니, 똑같은 논리를 적용해 해산시켜버리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유신독재의 부활을 넘어 우파 전체주의를 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정부와 헌재가 손잡고 파시즘적 속도로 해내고야만 통진당 해산은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사례로 자리잡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산업화만 한 나라가 됐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