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망한 후 온갖 병에 시달린 지난 10년 동안 제게는 2년마다 돌아오는 공포의 기간이 있습니다. 전세계약을 연장하거나 거처를 옮겨야 할 때입니다. 지난 6년 전부터 2년마다 수천만 원씩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용인에서 가장 싸고 오래된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5,000만 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와의 계약이 1년 연장된 동생의 결단으로 8년간 살았던 전셋집에서 떠나 동생의 아파트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만일 동생이 회사에서 잘렸다면, 저와 어머님은 지금보다 매우 작은 아파트나 빌라 등으로 이사 가야 했을 것입니다. 고령인 어머님과 저의 건강 때문에 무섭게 치솟는 전세가 상승을 형과 동생이 책임져 왔는데 동생이 잘렸다면 아파트의 크기도 뭉툭 잘라내야 했습니다.
저는 자수성가한 형과 동생 덕분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 수없이 많은 분들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2년마다 잔인한 금융권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판단됩니다. 지옥 같은 2년의 삶이 연장되고, 렌프푸어로서의 고통은 깊어만 갑니다. 이미 사회가 소화해낼 수 있는 위험수위를 넘겨버린 가계부채의 지속적인 증가는 그 참담한 결과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세계 경제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미국의 나 홀로 호황도 구조적으로 오래갈 수 없는 것이어서, 세일가스의 효과와 강 달러 전략이 한계에 부딪칠 2년 후에는 급격한 경기 후퇴가 일어날 것입니다. 국제유가가 20대 달러로 추락하면서 거대한 세일가스 업체들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금리인상으로 파국의 위험은 피해가겠지만, 그것은 곧 국내에서 가계부채의 폭발을 의미합니다.
중국경제의 경착륙에 대비해야 할 미국의 금리인상은 추가적인 인상의 시기만 남아있는 상황이어서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폭발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옥행열차(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에 올라타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언제든지 변명을 위한 근거로 국회(특히 더불어민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경제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세계 경제를 고려할 때 그런 언어적 유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모든 재벌들이 임원을 포함해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단행하고 있습니다. 성장을 멈춘 세계경제와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 힘겹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들 역시 인건비를 줄이는 것 말고 뚜렷한 탈출구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조정이 일어난 다음에야, 즉 수억에서 수십억 명의 중하위층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후에야 세계경제가 살아날 수 있음(자본주의의 본질)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허면 파국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부채(300조 달러를 훨씬 넘었다)의 상당 부분을 동시에 탕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확실한 효과가 나올 만큼의 대규모로. 무력화된 정치와 전 세계 부의 70~80%를 독식하고 있는 슈퍼클래스의 저항으로 누진적 증세와 보편적 복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직 이것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따라서 파국 직전에 있는 한국경제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됩니다. 첫 번째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 즉 파국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내일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오늘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추가로 대출도 받고, 소비도 줄이지 않고, 카드도 긁어대고, 자동차도 바꾸고, 섹스의 양도 줄이지 말고, 그러다 임신하면 씀풍씀풍 낳고··· 그렇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차피 최종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하므로, 동시에 수천만 명이 파산에 처하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대규모의 부채탕감을 단행하는 것 이외에 답이 없습니다. 단 이런 방법에는 자신과 가족과 알 수 없는 이웃의 고통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발할 것입니다. 차이란 그나마 즐기기나 했다는 것이지, 고통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현실경제에서 '어떻게 되겠지'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방법은 모든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먹고 살 만큼 일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돈이 들어가는 일체의 여가생활을 하지 않고, 안면몰수하고 일체의 관혼상제는 잊어버리고, 이미 7포세대란 얘기도 회자되는 마당에 사랑과 연애도 멀리하며, 그것도 안 되면 돈이 되는 것을 하나씩 내다팔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입니다. 개인 대 개인 간의 물물교환도 고려해야 하고요.
상황이 이쯤되면 최종대부자인 정부가 또 나섭니다. 거대 금융기관과 대기업에만 적용되던 부채탕감을 넘어 개인에게 제공된 공적자금인 공적부조를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진증세와 기본소득제도 도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제위기에서 탈출할 재원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몇 십 배의 신용을 또다시 창출하고, 그럼으로써 결정투성이의 자유시장이 다시 작동하도록 만들면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하니까요. 물론 모든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의 근원인 거품이 형성되는 악순환의 고리도 되살아나지만.
이처럼 우리에게는 양 극단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차별은 존재하며 불평등도 여전하겠지만, 파국 다음의, 또는 그 직전의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저와 동생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선택하실 것인지요? 그나마 필자는 동생의 능력이 되니까 이런 선택이 가능한데 많은 분들은 그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천국, 양 극단에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만 선택이 가능합니다, 상위 1%와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동원된 5% 내외의 체제의 간수들을 제외하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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