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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워드

우영워드 ㅡ 소셜테이너와 슈퍼스타 3







‘동철이 나서겠지? 유리에게 뭔가 물어볼 거야.’



아니나 다를까, 동철이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야, 요즘 공개 오디션 프로가 대세를 이루는 건 어떻게 생각해?”

“재미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다고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까지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을 필요까지 있을까? 각종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개별 방송국 직원을 뽑는데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이용하는 게 정당한 것일까?”

“맞아! 그건 좀 너무 해. 나처럼 MC 자질이 뛰어난 사람도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니까! 오빠 말처럼 그런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진행하면 믿음이 가지 않더라.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몰라? 단지 싸다는 이유로 그들을 오락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건 자충수 아니야? 방송국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그렇게까지 근시안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니까.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어. 대체 아나운서까지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 이유가 뭐에요, 기자님?”



유리가 처음으로 진정성 있는 질문을 재영에게 던졌다. 그것은 미리 연출되지 않은, 그래서 각본에 나오지 않는 질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방향도 적절했다. 리얼한 상황이 던져주는 묘한 긴장감, 재영은 유리의 질문이 조성한 상황이 왠지 모르게 즐거웠다. 지금부터가 『죽도록 즐기기』의 주제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동철이 나설 것이기에 그냥 웃으며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날의 미디어가 삶의 엔터테인먼트 화를 지향하기 때문이야. 쾌락에 종속되면 반응이 단순화 되고, 그럴수록 쾌락과 반응이 표준화 돼. 보통 표준화가 되면 쾌락을 만들어내는 생산 원가가 줄고 그만큼 실패의 위험성도 줄어들어. 이를 테면 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야. 방송사가 무대만 제공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가 진행되니 방송사만 노 나는 거지. 시청률이 낮더라도 방송사는 큰 돈 들이지 않아도 되고, 만에 하나 시청자를 사로잡는 도전자라도 나오면 그것이 곧 시청률에 반영돼 광고단가가 올라갈 테고, 결국 투자 대비 수입이 짭짤하지 않겠어? 시청률이 낮아도 어차피 뽑아야 할 아나운서일 테니, 능력도 검증하고 시청자 눈에 익숙하게 만들 수도 있어 현장 투입이 단축될 것이고, 그만큼 아나운서 신입생들에 대한 교육비용이 절약되니 방송사 입장에선 손해날 이유가 없지 않겠어? 우리는 그렇게 값싸고 질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에 길들여져 가는 거야. 더 큰 문제는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연할수록 자신이 외모가 되고, 노래방을 뻔질 나게 드나들다보니 노래도 제법 부르는 것 같고, 클럽에 가면 죽돌이·죽순이들의 눈길도 사로잡을 정도로 춤도 되고, 학벌은 떨어지고, 집에 돈은 좀 있고, 인생이란 즐기는 것이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재주를 과대평가하는 젊은이들이 전통적인 생산 현장이나 꾸준한 노력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는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점점 강화된다는 거야. 국가의 미래는 고사하고 개인의 미래마저 종적을 감추게 되지. 즐길 수 있는 돈이나 젊음이 소진되면, 결국 그들은 도시의 밤거리를 떠도는 루저들로 전락하게 돼. 텔레비전이, 삶의 엔터테인먼트화가 만들어내는 세상이란 모두 허상일 뿐이야,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동철은 현재의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완벽한 통찰을 갖고 있었다. 일반 연예인들과는 달리 생각의 깊이가 만만치 않았고 현상의 가려진 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도 출중했다. 다만 한 가지 방송국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목매는 이유의 본질, 즉 이익 창출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수익은 광고와 협찬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디션에 참가하려는 수백 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의 ARS신청과 시청자들의 문자메시지에서 나온다. 이는 통신사들이 돈을 버는 구조의 핵심인데, ARS와 문자메시지는 그 원가 면에서 들여다보면 초기 투자를 빼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즉, 일정 횟수의 사용이 넘어간 순간부터 거기에 매겨지는 통신요금이 전부 이익이 되는 것이다. ARS와 문자메시지 한 건 당 평균적으로 100원씩만 남겨도 신청자와 투표자가 수백 만 명, 연간으로 치면 수천 만 명에 이르니 총이익은 거의 수십 억 원에서 수백 억 원에 이른다. 2억에서 최대 11억 원에 이르는 우승상금이야 이에 비하면 껌 값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방송국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그렇게 목매는 이유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질수록 뛰어난 가수들이 배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노래와 춤에 매달리니 뛰어난 가수들이 나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문제는 이런 쏠림현상 때문에 그만큼 타 분야에는 좋은 인재나 적당한 수준의 노동력은 물론,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경쟁력 높은 경험과 기술의 전수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이는 산업구조의 왜곡을 초래하고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최후에는 개인과 기업 및 국가 전체의 생산성마저 떨어뜨려 저임금 외국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같은 최악의 결과로 귀결된다. 이것이 바로 TV와 정보통신이 가져다 준 마법이며 마이다스의 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또는 미디어의 강력한 유혹에 넘어가 가난과 차별의 질곡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물론 미디어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꿰뚫어 보면서도 정상의 자리에 있는 동철과 미디어의 최대 수혜자인 유리는 수천 만분의 일에 속하는 예외 중의 예외이지만.



“아, 그렇구나. 그래서 방송국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그렇게 매달리는 거구나! 오빠, 제법인데? 역시 얼굴이 못 생기면 머리는 좋은 가봐? 안 그래요, 기자님?”



유리가 잘나가다 또 다시 옆으로 세며 재영에게 동철을 흉보기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허허.. 그런 가요?”

“그렇기는 뭐가 그래요! 아무튼 잘생긴 것들이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특히 조각미남이니 초콜릿복근이니 간지 난다는 놈들은 모든 평범한 남자들의 적이라니까!”



재영이 본의 아니게 유리의 요청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자, 동철이 즉각적으로 발끈했다. 그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의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하긴, 원래 잘생겼거나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갈수록 잘생겨지는 것들이 즐비한 연예계에서 살아야 하니 그 정도의 외모 콤플렉스가 없다면 그는 외모에 해탈한 성인이 분명하리라. 재영은 그런 동철이 안쓰러웠지만 유리는 동철의 항변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오, 그래그래? 우리 동철이, 화났쪄?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자, 술이나 한 잔 받아. 대신 영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나로서는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거니까.”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거라니? 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은 내가 다해줬는데, 그런 계산법이 어딨어? 말로 준 건 나지!”

“말은 무슨 말? 당나귀나 노쇠면 모를까?”

“뭐, 당나귀? 노쇠?”

“알았어, 알았어. 말 해, 말! 해서 이건 술이 아니라 액체 당근이야. 어여, 받기나 해.”

“아이고, 이 징글징글한 것아! 옛날 같으면 소나 키울 것이! 하여튼 우리는 TV가 전달하는 정보와 내용이 왜곡된 게 아닌지, 혹시 숨겨진 게 있는지, 이면의 진실이란 없는지 항상 의심하고 질문해 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으니까. 알았어, 이 화상아?”

“흥! 헌데, 오빠 혹시 지금 한 말, 내가 그룹시절 주로 립싱크 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아니야? 왜곡이니, 이면의 진실이니 하는 걸 보면? 조금 놀렸다고, 치사하게시리. 하여간에 속 좁은 인간들은 다 저렇다니까, 호호호호!”



유리의 맑고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습하고 탁한 술집의 공기를 요란스럽게 흔들었다. 그 바람에 끈적끈적한 습기와 열기로 가득한 공간이 한 가닥 청명한 바람에 정화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호기심이 충족되자 유리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동철의 말 속에 유리를 의심한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이고,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됐네, 이 사람아! 넌 서있는 그 자체가 노래야. ‘비디오 킬 라디오스타’라고 넌 노래까지 잘할 필요 없어.”

“웬 칭찬이래? 이거 혹시 내일의 태양이..”

“서쪽에서 뜰 수도 있어! 지구가 자전의 방향을 바꾸기만 하면. 하지만 유리야, 너무 선정적인 노래와 춤으로 흘러가지는 마라. 그건 시간이 흐르고 대중의 기억에 각인될수록 너의 가치를 갉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동철이 유리를 보며 속 깊은 얘기를 건넸다. 그의 말 속에는 유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살가운 정이 가득했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죄다 벗고 나오잖아? 여길 봐도 하의실종, 저길 봐도 하의실종. 요즘 어린 것들, 좀 날씬하고 섹시해? 나도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는데. 게다가 시청자들이 얼마나 냉정한지 오빠는 모를 거야? 조금만 그들의 기대에서 벗어나면, 몸으로 때우기엔 이젠 늙었다느니, 얼마나 말이 많은데? 시청자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통과 노력이 얼마나 큰지 절대로 알 수 없어.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아. 그저 비판하고 씹어댈 뿐이지.”



유리가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녀의 표정에서도 피 말리는 경쟁에 따른 피로감이 분명하게 묻어 나왔다. 아무리 TV가 배출한 슈퍼스타라 해도 그녀만의 고충이 왜 없겠는가? 그녀를 밀어내는 아이돌 그룹과 선후배 가수들의 압력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수시로 변하는 시청자의 기대에 맞추려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가능할까? 실패의 위험에 대한 압박감은 또 어떻게 소화해내고 있을까? 재영은 잠시였지만,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유리 역시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당연한 거야. 시청자가 거기까지 생각해줄 이유는 없어. 변화는 니가 찾아야 하는 거지, 시청자의 몫이 아니야. 연예인의 삶도 인생의 일부야. 유리야, 네가 이 길을 계속 갈 거면 길게, 그리고 멀리 봐.”



동철은 유리의 호소에 냉정할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재영은 그런 동철이 이상했다. 유리와 이렇게도 가까운 사이라면 최소한 그는 유리의 고충에 귀 기울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동철도 연예인이기에 승자독식의 장에서 벌어지는 혈투가 얼마나 격렬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건 도리에도 맞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재영은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거의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최선도 차선도 차악도 최악의 일도 그대로 두면 시간이 다 해결해주기 마련이다. 유리의 아픔을 보듬어 주지 않는 동철의 태도에 숨어 있는 진실도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유리로써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리 없다.



“아이고, 지금까지 수백억은 벌어놓은 니가 여유롭지 못하면, 난 아예 거지게?”



동철이 정말로 힘들어하는 유리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런가? 헌데, 세금은 왜 그렇게 많이 나온 데? 사실 나 엄청 세금 내거든. 아무리 내가 슈퍼스타라 해도 음원 판매가 늘고, CD도 많이 나가야 세금도 계속해서 많이 낼 수 있는데 말이야? 아예 방송국 화면마다 내 뮤직 비디오로 도배해 버리면 좋을 텐데, 히히. 아, CF도 있구나! 뭐니 뭐니 해도 자동차와 전자회사 CF가 최고인데?”



유리의 얘기가 게의 걸음처럼 다시 옆으로 샜다. 재영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벗어났던 둘의 얘기가 다시 연출한 곳으로 돌아왔으니, 그저 웃으며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아이고, 저놈의 욕심하고는? 너 때문에 죽어나가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고마운 줄 알아야지.”

“타고난 능력과 매력에서 차이 나는 걸 어떻게? 솔직히 나를 본 후에 다른 얘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 얼굴하고 가슴하고, 이 명품 복근과 바디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호호호호!”



유리는 말의 순서에 따라 두 손으로 가슴을 받치는 동작에서 복부를 쓸어내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어깨까지 으쓱하는 그 뇌쇄적인 모습이란! 재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유리의 매력에 탄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유리의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자신의 다져진 몸을 부각시키는 유리의 행동이 타고난 것이 아닐 터, 그녀는 어떤 순간에도 섹시하게 반응하도록 수없이 많은 반복학습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여성의 매력이나 가치를 36-24-36, 44사이즈에 48kg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고정시킨 매스 미디어의 작품이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미디어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몸마저 획일적이고 지속적인 투자의 대상으로, 그래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자신의 몸을 고치고 다듬어야 할 형편없는 제품으로 격하시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최대 희생물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는 다이어트와 진한 화장도 모자라 성형수술까지 받아야 미인의 기준에 들 수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상품의 제작과정과 다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