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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라진 5만원권 미스터리, 지하경제 활성화시켰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와의 TV토론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하경제 활성화’로 말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실수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박근혜 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지하경제가 활성화된 조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연말까지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이 10억4000만장(52조34억원, 국민 1인당 20.6장) 중에서 환수율이 29.7%에 그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은행 발행액 대비 70%에 이르는 7억여 장의 5만원권이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결국 30조원에 이르는 금액이 어디론가 흘러들어가 꽁꽁 숨었거나, 은행으로 돌아오지 않은 채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낮은 환수율을 정확히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실수처럼 지하경제가 활성화된 것은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5만원권의 낮은 환수율에 대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 신용을 차례로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저금리가 구조화되고, 경기침체로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되자 현금 보유 현상이 강화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은의 입장에서 5만원권 보유 현상을 이끌고 있는 주체가 개인과 가계보다는 지하경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국세청이라고 해도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금거래 비중이 높은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적 특수성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LG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 요인이 지하경제의 44.3%로, OECD 평균(22.2%)의 2배에 이른다니 사라진 5만원권의 일정 부분은 자영업자의 금고에 있을 것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탈세 방지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위해 차명계좌를 금지하고 처벌을 강화한 금융실명제법이 작년 11월에 시행된 이후로 시중에서 5만원권이 종적을 감추었다고 말합니다. 차명계좌에 뭉칫돈을 넣어둔 고액 자산가와 지하경제 큰손들이 계좌를 해지하고 5만원권으로 현금화했다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전두환의 비자금이 개인 대여금고에서 발견된 것처럼, 이용자수가 30%나 늘어난 시중은행의 대여금고에 5만원권이 잠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벌과 대기업들이 정관계 로비에 쓰기 위해 대량으로 현금화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고, 지하경제의 왕좌인 사설 카지노에서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2011년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발견된 5만원권 다발이나, 폭발적으로 팔린 다양한 종류의 개인금고도 5만원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설 대행사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와 교포들이 해외로 송금했거나, 추적이 가능해 불편하기만 했던 10만원권 수표를 대신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들은 전국의 지점에 설치돼 있는 자동화기에 5만원권을 충분하게 보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일어났습니다. 잠자는 5만원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만큼 지하경제는 활성화됐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탈세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가재정은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5만원권으로 현금화해 잠자고 있는 돈들이 30조원에 이른다는 뜻은 화폐 한 단위가 거래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화폐유통속도’가 급격히 떨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5만원권을 다발로 잠재울 수 있는 상류층의 금고는 탈세로 인해 더욱 두둑해졌지만, 지속적인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불법적인 증여가 남발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화폐발행잔액으로 나눈 화폐유통속도는 지난해 22.4배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는 1980년의 22.8배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부가가치를 창출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화폐의 회전율(화폐경제, 또는 신용창출의 본질)은 2008년 35배까지 올랐다가 2009년부터 5년 연속 하락했는데, 이는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지난 6년 동안 지속적으로 한국경제의 활력이 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에 더해 거의 100조원에 육박하는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와 투자회수율이 10%에 미치지 못해 수십조를 날려버린 자원외교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경제와 부동산활성화를 위해 각종 세금을 면죄하거나 줄여주었기 때문에, 복지와 사회안전망에 투자될 정부재정은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이는 내수경제의 위축을 불러왔고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담뱃값 인상과 개별소비세 인상 같은 서민증세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유리지갑을 야금야금 털어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13월의 월급이라고 불리는 연말정산을 통해 추가로 세금을 거둬가는 꼼수를 부린 것도 지하경제가 활성화된 여파이기도 합니다.



한국은행은 미국 월가 발 금융 대붕괴가 얼어나기 전인, 2007년 5월 2일 고액권 발행계획을 발표한 이후 2년여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 6월 23일에 5만원권을 발행하였습니다. 경제규모가 커졌다는 이유로 5만원권 발행이 추진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한민국 특유의 부패고리로 인해 치명적인 패착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의 모든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그랬듯이 노무현 정부의 한국은행도 유일제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을 지탱하는 월가의 붕괴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면, 금융 대붕괴를 지켜본 이명박 정부의 한국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장이 얼마나 지속될지 예상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시도한 것으로 볼 때 거꾸로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 10권에 진입한 경제규모에 걸맞게 5만원권 발행 추진이 원죄가 될 수 없다면, 그 독립성이 상당히 훼손된 이명박 정부의 한국은행은 5만원권 발행과 확대에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2009년은 금융 대붕괴의 여파가 최고조에 이른 시점이라 5만원권 발행을 늦추거나 발행량을 대폭 축소했어야 했습니다.   





지구 4~5개 있어도 모자랄 만큼 파티를 벌인 미국과 파국을 알면서도 탐욕의 행진을 멈추지 않은 월가에 책임의 근원이 있다고 해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면서도 적정한 대처를 못한 이명박 정부의 한국은행은 지하경제 활성화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또한 박근혜 정부도 지하경제 양성화를 어설프게 진행해 역효과를 불러온 것과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한 채 경제활성화에 올인하면서 각종 감세조치를 단행한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키웠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5만원권의 70%가 시중에서 증발할 정도로 지하경제는 활성화됐고, 국가재정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그 결과는 서민증세와 유리지갑 털기, 복지와 사회안전망의 후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수경제의 침체도 사라진 5만원권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지난 6년 동안 지속적으로 확대돼온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방법이 부자감세 철회와 누진적 부자증세 밖에 없는 데도, 박근혜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통한 투자확대만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실패로 드러나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한국판 버전인 초이노믹스와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정판인 박근혜 정부의 혁신경제 3개년 계획으로는 잠자고 있는 5만원권을 지상경제로 불러올 가능성이 낮습니다. 18일 정부가 내놓은 관광인프라 및 기업혁신투자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은 삼성과 현대 같은 재벌에게 카지노를 허용하겠다는 것이어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침체된 경제를 살려내려는 노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전 국토를 공사장화한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의 비이성적 폭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이 되면 무엇도 할 수 있다는 이 정부의 좌충우돌은 70%에 이르는 5만원권이 지하로 흘러들어간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관련 전문가들도 제대로 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자처럼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해온 사이비 전문가가 봐도 한국경제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합니다. 이러다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라도 올리는 날이면 잠자던 5만원권들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한국경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닌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재벌에게 도박산업까지 활성화하라는 정부 ㅡ 이어서 읽으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