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이 조중동문과 지상파3사, 종편의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흥행대박을 거두고 있을 때, 박근혜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박정희의 위대한 업적으로 떠벌리며 다 차려진 밥상에 숫가락을 올렸다. <국제시장>의 실제 주인공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박근혜의 시대에 뒤떨어진 애국심 마케팅에 열을 올리며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박정희의 명예회복에 이용했다. 박근혜의 말처럼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박정희의 위대한 업적일까?  

 

 


 

 

 

답부터 말하면 선후가 바뀐 궤변에 불과하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의 작품이었지, 박정희의 업적이 아니다(위의 사진은 암살위협에도 불구하고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가해진 나치의 만행과 대학살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역사적 장면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히틀러의 나치는 유럽과 러시아, 아프리카에 계랑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힌 것만큼 독일의 인구 구성과 노동연령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종전 이후의 독일(서독)은 탄광에서 일할 젊은 노동자와 패잔병 및 중증환자들을 치료할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1950년대)에 독일의 탄광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은 노동자 중에서 대표를 뽑아 독일인과 소통창구를 마련했다. 노동자 대표는 탄광에서 채굴을 하는 대신 독일어를 배웠고, 그를 중심으로 한국의 광부들은 놀라울 정도의 협동심과 노동생산성을 보여줬다.

 

 

탄광을 운영하던 독일의 중장년층들은 이런 한국노동자에게 크게 감명을 받았고, 이 사실이 탄광에 투입할 노동자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브란트 총리에게까지 들어갔다.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여타 유럽의 노동자나 아프리카계 노동자에게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한국노동자의 협동정신과 지혜로운 대응에 감탄한 브란트 총리는 전후의 한국에 경제원조와 미국과 일본은 따라올 수 없는 최저이율의 차관을 제공하며 한국 정부에 광부 파견을 요청했다.

 

 

 

 

 

이것이 파독 광부의 대규모 파견으로 이어졌다. 한국 광부와 간호사 덕분에 대규모 원조를 받은 박정희 정부가 한 일이란 파독 광부를 모집해 정치 이벤트로 포장하는 것뿐이었다. 독일의 탄광노동자에 준하는 월급을 받은 파독 광부가 가족들에게 송금을 할 수 있기까지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파독 간호사도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파독 광부의 대규모 모집과 마찬가지로 전후 독일을 한국보다 더 빠르게 부흥시킨 빌리 브란트 총리가 재등장한다.

 

 

전쟁에서 패전한 국가가 늘 그렇듯, 독일은 부상 당한 패잔병과 중증의 노인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간호사가 태부족했다. 이들을 보살피는 일은 탄광노동자에 뒤지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이어서 독일 간호사들을 구할 수 없었다. 오직 50년대에 들어온 한국 간호사들만이 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봤고, 이에 감동한 환자와 의사들이 한국간호사들을 칭송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환자에게 헌신적이고 성실하며, 선하고 검소한데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월급의 대부분을 송금(한국 수출의 1~2% 정도)하기까지 했다. 

 

 

이런 칭찬들이 브란트 총리에게도 전해졌고, 그는 파독광부와 마찬가지로 한국간호사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 정부에 대규모 간호사 파견을 요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의 반대로 한국에 무상의 경제원조와 최저이율의 차관을 제공하는 것이 어려웠지만(장면 총리가 세웠고, 박정희가 조금 수정했을 뿐인 경제개발계획도 미국의 반대로 무산될 뻔했다. 《박정희 정부의 선택》을 참조), 좋은 조건으로 한국의 간호사들을 대규모로 모집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정부가 한 일이란 파독광부를 모집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모조리 빠진 자리에 감독이 일초의 시간도 배정하지 않은 박정희가 들어와 한강의 기적 운운하는 정치쇼를 벌인 것이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의 또다른 <국제시장>이다. 남로당 경력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난 박정희(좌익 경력이 있는 인사 300명을 고발하는 조건으로 사형을 면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가 항일독립군의 악랄한 사냥군이었던 백선엽의 호출은 받아 군대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박정희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신화다. 국민을 수없이 죽음으로 내몰면서 본인이 직접 만든 뻔뻔하기 그지없는 조작이다. <국제시장>이 정치와 상관없는 파독간호사와 광부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라면 100% 동의한다. 그분들은 그 이상의 헌사를 받아도 된다. 그분들은 외화가 부족했던 한국 정부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에 정착해서도 한국에서 온 주재원이나 이민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분들에게 바치는 아들세대의 헌사인 <국제시장>이 박정희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이용된다면, 가족과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친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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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耽讀 2015.12.21 07:34 신고

    전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영화평은 못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박그네가 이 영화를 박정희 찬양을 위해 이용했다는 점이죠.
    아버지 찬양을 위해 영화까지 이용했습니다. 문화를 통해 지배죠.
    국제시장이 1천만명 넘게 본 동력 중 하나가 권력을 통한 동원은 아니었지만 '단체'관람이 많았다는 것은 영화 순수성 마저 왜곡했을 수도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21 15:57 신고

      산업화 초창기의 세대들에게는 위대한 헌사이겠지만 호남과 충청, 경기, 강원, 제주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오직 영남만 나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12.21 09:16 신고

    영화가 나오고 나서 이거다 싶었겠죠..
    감독의 의사에 반하는 제멋대로의 해석을 수구 언론들이
    쏟아 내고 정치권이 이용한 영화였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21 16:01 신고

      영화는 잘 만들었고, 앞선 세대들의 피와 땀에 합당한 헌사로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이 너무 일방적입니다.
      자식 세대의 고통을 덜어줬지만 정신은 물려주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황정민의 마지막 독백은 이 세대들이 성공했다는 것인지 실패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3. 참교육 2015.12.21 10:28 신고

    아버자의 폭정만으로도 잔절머라가 나는데... 그 딸까지.... 하루가 지겹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21 16:01 신고

      제발 국민들이 박정희 일가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으면 합니다.

  4. 2015.12.22 12:10

    비밀댓글입니다

  5. 구름바다 2015.12.24 02:08 신고

    이 영화를 보고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으로서 느낀 점은
    어느 정도 잘 표현했지만 지나친 장면도 많았다는 것이었죠.

    즉 극적 효과를 위해 주인공의 활약상이 너무 과장된 것과
    주인공의 너무 거친 막말 (입만 열면 욕이 나오는 것) 에서
    부산이 고향이고 지금껏 살아 온 사람으로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에
    옥의 티를 느꼈지만 (실제 부산사람들 영화 속처럼 입에 욕을 달고 살지는 않기에)
    우리 고장에서 그 시대를 살아 온 사람으로서 향수 같은 것을 느껴
    그런데로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현 정부의 집권층에서 아전인수 격으로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데 활용하는 것에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더군요.

    심지어 국기 하강식 장면을 보고
    박근혜 주변의 어떤 덜 떨어진 인간이
    새삼스레 국기 하강식 때 유신정권 시절처럼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법령을 만들자는 말을 했다는 것에서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지를
    오늘에사 이 글로 잘 알게 되었습니다.

    늙은도령님의 칼럼 잘 보았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 늙은도령 2015.12.24 02:13 신고

      영화에 독재자의 미화와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하니 그 세대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헌사가 빛을 바랬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보다 10~20년 정도 앞선 세대를 그린 것인데, 그들보다 앞선 세대인 자발적인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그들에 대한 조명이 없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저도 고향은 부산이지만 1살 때까지만 살아서 아무런 기억이 없지요.
      동생이 다니는 회사가 삼성에서 롯데로 팔려 이제부터는 롯데를 응원해야 합니다.
      비록 임원이어서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지만....
      반갑습니다.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ㅡ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 인용




어제 JTBC의 오락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서는 스티븐 호킹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테슬라‧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넘는 정보기술 기업가와 로봇공학 연구가들이 ‘국제 인공지능 컨퍼런스(IJCAI)’에서 공개한 서신의 경고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습니다.





‘삶의 미래 연구소’ 명의로 공개된 이 서한에는 인공지능이 ‘킬러 로봇’처럼 군사기술에 적용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인류의 멸종도 가능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삐 풀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종말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경고는 비정상회담 출연진들도 숙고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에 관한 한 최고의 선두에 있는 구글의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이전에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특이점(singularity)'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우주와 지구, 인류가 특이점의 빅뱅에서 나왔다면, 커즈와일의 주장은 급진적인 것을 넘어 섬뜩하기 그지없습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프로그래머는 아직까지 인공지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이론이 발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인간보다 우수한 능력을 지닌 전반인공지능(GAI)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리처드 도킨스가 《눈먼 시계공》에서 인류를 대체할 지구의 지배자가 인공지능 컴퓨터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은 이전의 경고들과 판이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류에게 풍요를 안겨준 DDT(유대인을 학살한 화학가스와 미군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대량으로 살포한 고엽제와 네이팜탄도 DDT의 일종)가 실제로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그 이후에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5번째 종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등은 총체적 종말을 경고합니다.



이에 비해 인공지능의 위험성은 총체적 종말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 즉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의 주인공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으로 대체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표였던 진화의 과정이었던, 지구의 지배자가 인간에서 인공지능 로봇으로 바뀌는 것이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란 뜻입니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기술의 총아인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창조자인 인류를 친구이자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이 도래합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 류의 세계관이라면 지구의 다음번 주인이 인공지능 로봇이 된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인간이란 종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의 종말론도 신을 닮은 유일한 창조물인 인간이란 존재가 유한하다는 것에서만 유효한데, 스스로 업그레이드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공지능의 세상에선 부활이란 의미도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국익을 보호하고 유명인사의 죽음을 막기 위해 딜리트한 자료를 복구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거장 그리스토퍼 놀란이 메가폰을 잡은 <인터스텔라>의 낙관적 전망보다 스탠리 큐브릭이 메가폰을 잡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비관적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인공지능의 특이점입니다. 인류와 환경을 종말로 몰아붙이는 시장경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비정상회담의 토론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라는 진보의 낙관론에 기반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법’이라는 머피의 법칙을 이론물리학적(만유인력,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초끈이론, 인류원리, 초대칭성, 블랙홀, 웜홀, 시공간 왜곡 등이 총망라된)으로 풀어간 <인터스텔라>보다는 ‘삶의 미래 연구소’ 명의로 공개된 경고가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하랄트 발처가 《기후전쟁》에서 말한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식수 고갈, 대홍수에 의한 파괴, 정화되지 않은 오폐수에 의한 오염, 거대한 쓰레기더미, 팽창하는 유전개발에 의한 환경파괴 등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분쟁상황 자체가 가히 파국적이다. 여기에는 기후변화와 전쟁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현재의 수단을 보면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P.S. 필자가 연재 중이지만 출판하려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퇴고해야 하는 '근현대사 비판'의 핵심주제가 과학기술과 시장경제 비판입니다. 인공지능은 핵폭탄을 넘어 이 두 가지가 완벽히 결합한 정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컴퓨터가 보편화되면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인데, 이런 속도라면 지구온난화의 급진화보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류를 대체하는 것이 더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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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11 08:39 신고

    인공지능이 군사기술에 실제로 적용되면 안된다는 협약이
    잇어야됩니다. 핵처럼..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날이
    '멀지 않을겁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6 신고

      인공지능 로봇은 전쟁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자리를 말살시킬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인공지능 로봇은 더욱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2. 참교육 2015.08.11 10:49 신고

    저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과학이 인류의 미래를 결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감출 수 없습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8 신고

      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일부만이 큰 돈을 벌겠지요.

  3. 耽讀 2015.08.11 13:26 신고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비행기를 만들면서 추락도 함께 생겼다"고 했습니다. 최첨단 과학이 발전하면 할 수록 인류문명은 패망은 빨리질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1 19:09 신고

      아마 프로이트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로이트가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탐욕이 곁들면 무조건 적이 됩니다.



진실을 왜곡하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조선일보가 그리스 국가부도사태를 다룬 이번 주 비정상회담을 봤다면 어땠을까? 그리스신화의 조각미남을 연상시키는 안드레아스가 부모님 얘기를 하면서 흘린 눈물을 기레기의 제왕 조선일보가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리스가 어떻게 해서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했는지 설명하려면 책 한 권도 부족할 만큼 많은 것들을 다뤄야 하지만, 최소한 조선일보의 보도와 논평들이 진실을 호도하고 있음은 단언할 수 있다. 그리스와 유로존에 관해 조금만 공부해도 조선일보의 보도와 논평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 수 있다.



경제학 석사인 알베르토도 그리스가 국가부도사태에 이르면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까지 그 영향이 번져 유로존이 붕괴될 수 있다며 부채탕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좋을 땐 같이 가고, 나쁠 땐 같이 가지 않으면 잘못된 것 아니냐’는 타일러의 주장과 어우러져 그리스 사태의 해법에 근접했다.



독일인의 생각을 보여준 다니엘은 타 멤버들의 주장과 최진기 강사의 말에 당황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부에 있으면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있지만, 그 역시 부채탕감에 대한 국내 여론이 반반이라고 말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진기 강사가 말했듯이,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고도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을 탕감 받았기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에서도 패전국이었던 독일에게 가혹할 정도의 전쟁배상금을 부과한 것 때문에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고, 그런 실수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대규모 부채탕감을 해주었던 것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그리스 구제금융을 받아 낭비한 것도 거짓말이며(대부분의 돈이 독일과 프랑스 채권자에게 이자로 지불됐다), 그리스 국민이 게으르다는 것도 거짓말이며, 유로존 기준으로 복지가 과다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안드레아스가 말했던 것처럼 터키의 식민지였을 때, 그리스 사람들의 탈세와 독립국가가 된 이후의 탈세는 성격이 다르다.



그리스 중하위층 국민을 사지로 내몬 대규모 탈세와 부패, 비리는 유로존 가입을 전후로 해서 상위 1%가 미국과 독일의 금융기관과 담합해 주도한 것이다. 경제사와 금융위기를 다룬 책들을 보면 월가와 런던의 금융가가 얼마나 많은 비리들을 양산했는지 알 수 있는데, 그리스의 상위 1%도 어김없이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알베르토가 환자(그리스)에게 잘못된 처방을 한 의사(유로존의 이익을 독식한 독일과 유로존 집행부)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한 것은 정확했다. 이미 그리스는 지독할 만큼의 긴축을 진행해왔고, 잘못된 유로존 통합 때문에 경제기반이 붕괴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긴축은 독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조건 대규모 부채탕감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주 비정상회담은ㅡ국정원 사찰의혹 보도처럼ㅡ전후사정을 모조리 뺀 채 그리스 좌파정부와 국민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 조선일보보다 수백 수천 배 그리스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얘기해주었다.



비정상회담의 방송분에서 편집된 것이 있을 터, 그것까지 공개됐다면 조선일보의 진실 왜곡이 얼마나 심각하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수도 있다. 히틀러처럼 독일 중심의 유럽을 최대한 끌고가고 싶은 메르켈 독일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독선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JTBC 오락프로그램 출연진보다 형편없는 것이 조선일보의 기사와 논평, 사설의 본질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충성하고, 북한군에 서울이 함락됐을 때 김일성 만세를 외친 신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스에 대한 그들의 왜곡과 호도가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리라.



조선일보란 단어만 들어도 이가 갈리는 필자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는 조상의 말로 끝을 맺을까 한다. 비정상회담의 시청률이 더욱 올라가기를 바라면서. 




P.S. 올해 독일과 한국에서 두 명의 위대한 석학이 생을 달리했습니다. 1월1일,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힉 벡이 유명을 달리했으며, 8월3일에는 한국 최고의 마르크스 전문가 김수행 교수가 별세했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았던 두 명의 위대한 석학을 잃은 것은 인류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한 기사는 김수행 교수에 관한 오마이뉴스의 기사입니다. 



유신독재  한가운데서  마르크스를  공부한  까닭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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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04 08:10 신고

    비정상회담을 전 재방송으로 가끔 보고 있는데
    이번주 재방송은 꼭 챙겨 봐야겠군요

    김수행교수가 별세하겼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참교육 2015.08.04 08:52 신고

    이런게 신문이라는 게 언론인들 자존심 안 상할까요?
    국민들도 그만큼 속았으면 알아야 할텐데....

  3. singenv 2015.08.04 21:11 신고

    편집된 부분을 보고 싶군요. 거기에 진짜가 있을 것 같아요.

  4. 1465895586 2016.06.14 18:13 신고

    알찬 정보 좋네요~


JTBC에서 방영 중인 ‘김제동의 톡투유’는 보도부문에서 제작한 최초의 예능이라 할 수 있다. 손석희가 사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김제동의 톡투유’는 한층 깊어진 김제동의 장점들로 해서 다시 나오기 힘든 시사교양오락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김제동 같은 MC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독특함이 있다. 사유의 깊이와 독서의 양으로 치면 어지간한 철학자나 교수보다 한 수 위면서도, 이를 유머나 위트, 해학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그보다 한 수 위다. 최근에 들어서는 김제동만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르를 구축한 느낌이다.



김제동은 연예대상을 수상한 후에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프로를 만나지 못했고, 치졸하기로 치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이명박과 그의 졸개들 때문에 급전직하의 길을 걸었다. 최소한 방송에서의 김제동은 권위주의적 보수정부가 계속되는 한 재기의 길은 없어 보였다.



교수는 가능하지만, 공무원과 교사에게는 정치적 발언조차 못하게 하는 나라에서 일개 연예인이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니 권력에 바싹 엎드린 지상파의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유신독재시절에나 가능할 법한 (그러나 지금도 하고 있을지도 모를) 국정원 사찰 논란까지 있었으니 방송 출현조차 부담이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토크콘서트를 이어가며, 힐링캠프의 보조 MC로 활동하며, 무한도전과 ‘나는 남자다’, 런링맨 같은 오락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참여하면서 '사람 냄새 진득한' 김제동은 더욱 단단해지고 유연해지고 풍부해졌다. 그 결과가 일요일 밤의 해우소인 ‘김제동의 톡투유’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조심스런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한 김제동이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힐링캠프’의 단독 MC가 됐다고 한다. 알려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 ‘힐링캠프’ 제작진들이 어떤 포맷을 들고 나올지 모르겠지만, 김제동의 장점이 확실해진 지금 오락성만 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독 MC일 때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는 김제동의 장점과 ‘힐링캠프’만의 노하우가 접목되면 보다 다양한 얘깃거리를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미친 인맥과 굴곡진 연예생활의 경험도 '힐링캠프'를 전성기처럼 다양한 형태의 먹먹한 슬픔과 아련한 아픔의 기억들을 보석처럼 빚어내지는 않을까?





월요일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JTBC의 ‘비정상회담’이 출연진의 반을 교체하는 것과 맞물려 김제동을 단독 MC로 선택한 ‘힐링캠프’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가슴에 담아뒀지만 너무나 무거워 이제는 내려놓고도 싶은 사연을 들어주는 것, 그래서 자신을 둘러싼 높은 벽을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다시 살아갈 이유와 에너지를 얻는 힐링 본연의 과정도 보고 싶다.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정글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힐링.. 그 자리에 멈춰서 앞만 도고 떠밀리듯 달려온 삶의 흔적들을 뒤돌아 보는 힐링.. 너무 빨리 달려와 내가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나의 정체성을 되찾는 힐링.. 그리하여 더 이상 홀로 가지 않아도 되는 힐링..  



이런 힐링들을 통해 김제동의 토크콘서트와 ‘김제동의 톡투유’와 다른 깊은 울림과 소통을 경험할 수 있는 월요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김제동의 소매에 걸려있는 세월호 팔지처럼 우리네 힘겨운 

삶 속의 청아한 바람과 잔잔한 물결이 돼 시청자의 피곤한 마음을 풀어주기를 바란다.   



권력의 감시자이자 진실의 전달자로서의 평일뉴스는 JTBC 뉴스룸이 최고라면 주말뉴스는 SBS가 앞서는 상황에서 김제동의 장점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 있다면, ‘비정상회담’에도 충분한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우리 살아가는 세상의 소소하고 굴곡진 얘기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풀어지기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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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03 08:33 신고

    힐링캠프의 단독 MC입니까?
    아직 미정이라 들었는데..

    톡톡유 방송은 한번 봤는데 ( 저랑 시간이 맞지 않아요 ㅡ.ㅡ;;)
    김제동 특유의 진행이 돋보이더군요
    저도 좋아하는 개념있는 연예인입니다

    그가 왜 노무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ㅎ

    • 늙은도령 2015.07.03 17:12 신고

      김제동이 TV에서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머님과 노통의 만남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 다시 나오기 힘든 연예인입니다.

  2. 耽讀 2015.07.03 08:59 신고

    jtbc 손석희 때문에 다른 종편이 '하루종일편파방송'으로 갈 때 공중파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손석희 무서운 힘이죠.
    예능을 시사교양처럼 만들 정도로 방송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03 17:15 신고

      손석희를 끌어온 홍석현 회장의 야망이 더 무섭습니다.
      그것이 걱정입니다.

  3. 성현成賢 2015.07.03 13:05 신고

    톡투유 정말 재밌게 보고 있는데, 힐링캠프도 다시 보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암턴, 김제동 씨가 앞으로도 계속 빛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쩡은&참인간 2015.07.03 22:49 신고

    지상파를 안보고..케이블도 거의 안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손석희가 이슈가 되는것은 분위기상으로 느껴지더군요.

    • 늙은도령 2015.07.03 23:14 신고

      손석희와 김제동 같은 사람 냄새나는 인물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좋아집니다.



<삼국지>에 대한 진보진영 인사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삼국지>가 위대한 이유는 주류의 욕망을 다루었음에도 상대적 패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삼국지>는 잘난 사람들과 더 잘난 사람들, 더 이상 잘날 수 없는 사람들만 나오는 주류의 성찬일 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가 접하는 역사란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말한 대로 ‘정치권력의 역사’여서 ‘국제적 범죄와 집단학살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기록해 후대에 전한 자들은 소수의 승자였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희생을 부수적 피해 정도로 묘사할 뿐입니다



필자가 민주주의라는 것에 눈 뜬 이후 ‘대하사극’을 싫어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KBS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가 이제는 MBC도 공유하게 된 ‘대하사극’이란 소수의 승자들을 다룬 역사드라마입니다. 당대의 권력과 정치의 역학관계가 만들어낸 음모술수와 크고 작은 전쟁을 다룰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하사극’의 단골 주제가 올바른 국가관과 지극한 애국심인 이유도 승자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 사극에 나오는 패자의 위대함도 승자의 위대함을 말해주기 위한 조연에 불과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순신은 세종대왕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일본의 침략을 막아냈고, 민초들은 그를 따라 왜구들에 저항했습니다.





오늘 캐치원을 통해 다시 본 <명량>에는 이런 공식이 가장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이는 영화관에서 봤을 때도 마찬가지로 느낀 점이지만, 그것이 ‘대하사극’의 절대공식이라는 점에서 ‘이름 모를 약자들의 희생’마저 승자를 위한 복종(대의나 애국심으로 포장된)과 찬양으로 포장되기 일쑤입니다.



<명량>은 이런 면에서 <삼국지>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둘 다 주류의 가치를 전파하고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이순신은 나라를 구하고도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유비는 선한 의도와 최고의 인재들을 독식하고도 정사(正史)에는 단 한 줄로 기록될 뿐이었습니다.



주류에서도 승자가 되지 못하면 푸대접을 받기 일쑤인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언제 가야 우리의 이야기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까요? 극소수 승자의 역사를 민주주의의 폐품보관소로 보내버릴 수 있을까요? <명량>을 다시 한 번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역사가 이러할 진데, 승자들이 구축해온 체제는 얼마나 강고하겠습니까? 마르크스는 ‘모든 견고한 것들이 무너져 내려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예언했지만, 바우만은 《액체근대》에서 ‘무너져 내린 것이 액체상태가 돼 더욱 막강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액체는 너무나 유동적이고 유연해서 어떤 형태로 변형될 수 있으며, 작은 틈새도 파고들어 세상 모든 곳으로 스며들 수 있으며, 그렇게 견고하게 자리 잡은 단단한 고체마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절대적 화력으로 중무장한 강자들이 이제는 유연해지기까지 했으니 그들의 폭주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명량>의 흥행기록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벤저스2>의 흥행신기록도 스크린을 독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전통의 ‘대하사극’과 현대판 ‘대하사극’이 안방과 스크린을 점령한 대한민국에서 절대다수의 패자들의 이야기는 어디 가야 볼 수 있을까요? 승자에게도 인간적 고뇌와 약점들이 많았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요? 



참고로 선조가 이순신을 그렇게도 경계했던 이유는 그가 민중의 왕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이순신의 위대함은 일본과 중국에서 더욱 쳐줍니다. 특히 일본에선 이순신은 신의 영역에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이순신 연구가 활발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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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5.05.03 08:33 신고

    국내영화는 명량이나 또 국제시장이나 보긴 했는데 별로 기억이 남지 않드라고요 그래도 어벤져스 2가 좋긴 하죠

  2. 험한강다리 2015.05.03 08:44 신고

    좋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 늙은도령 2015.05.03 09:40 신고

      사이먼 앤 가펑클을 좋아하시나 봐요?
      저도 너무 좋아하는 듀오였습니다.

  3. 참교육 2015.05.03 11:37 신고

    역사 책에는 민중의 역사란 없었지요.
    그러다 89년 민주화 투쟁을 전후로 거꾸로 읽는 역사니 민중의 역사라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과서에는 왕조중심의 역사 지배사관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워야할 필요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교육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03 11:57 신고

      맞습니다.
      지금의 역사교육은 잘못돼도 너무나 잘못됐습니다.
      제가 그래서 교육부를 싸그리 뜯어고쳐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4. 트라이어 2015.05.03 11:45 신고

    명량 재밌게본 영화였죠... ^^

  5. 바람 언덕 2015.05.03 12:09 신고

    만약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더 일그러져 있었을 것입니다.
    전두환과 박정희의 다름 점이 있다면 그 치세의 기간일 텐데요.
    전두환에게 박정희 만큼의 집권기간이 주어졌더라면 그도 박정희 이상가는 대접을 받고 있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도 일베등에서 전두환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정말...
    구역질이 납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해방이후 친일파들을 단죄하지 못한 댓가입니다.
    그 댓가가 지금 이 지경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03 12:16 신고

      최근에 들어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전체주의가 정부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도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좌우의 전체주의를 막기 위해 공적 독점을 파괴했는데 그것 때문에 사적 독점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사적 독점이 문제인 시대라 전체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살려야 합니다.
      일베는 극우 전체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집단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히틀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권위주의 독재보다 무서운 것입니다.

  6. 머무는바람 2015.05.03 12:10 신고

    어제 호핀무료라서 다시 한번 봤는데
    다시봐도 잼나더군요

  7. 로키. 2015.05.03 16:37 신고

    정말 대작이었죠. 스토리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 늙은도령 2015.05.04 02:30 신고

      그러게 말입니다.
      이순신 이외에도 다른 조연들이 지금보다 더 부각됐으면 좋았을 텐데...

  8. singenv 2015.05.03 22:17 신고

    화력을 갖춘 강자들이 유연성도 갖추게 되었다는 말에 심히 동조되네요!

  9. 나비오 2015.05.03 22:45 신고

    늙은도령님 덕분에 다시한번 명량의 감동을 재 음미해 봅니다.
    좋은 한 주 보내세요 ~~

  10. 공수래공수거 2015.05.04 09:13 신고

    이순신 장군이 위대했던 여러가지 이유중에
    하나는 아군의 피해를 극소화했다는 사실입니다

    한번도 지지 않았을뿐 아니라
    하물며 배 한척도 손실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참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04 13:41 신고

      그래서 일본의 해군에선 신처럼 봅니다.
      정말 대단한 장수였습니다.

  11. 에쏘 2015.05.05 18:50 신고

    저는 <명량>도 재밌게 봤지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더 재밌었어요- 각기 다른 해석과 호흡으로 이순신 장군을 보여줬는데 후자는 영웅으로만이 아닌 백성을 아끼고 자신 또한 그 중 한 사람임을 느린 템포로 보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그 업적이 더 작아 보인 건 아니지만요~ ^^

    • 에쏘 2015.05.05 22:16 신고

      저 역시도 <명량>을 재밌게 봤음에도 그런 면(하나의 인간이라기보다 영웅화하는?) 때문에 조금 불편했어요. 늙은도령님 답글처럼 말로 잘 풀어내진 못 했지만 ^^;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글이에요- 권위주의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특히 인간으로서 고뇌가 아닌 영웅으로서의 고뇌.. 부분. 저는 영웅 이야기보다 사람 사는 얘기가 좋거든요ㅎㅎ 뭐 나름대로 다양한 시각에서 그려진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요^^ 그래도 어떤 인물을 우상화, 영웅화하면 경계하게 돼요. 결국은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인데.. 싶어서. 최근엔 손석희 일이 그랬어요. 손석희를 좋아하지만 잘못된 건 잘못된 건데 그걸 넘어 우상화하게 되면 나중엔 어쩌면 우상화, 영웅시한 사람들 손에 추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뭐 그건 그렇고^^ 이순신이 당시 주류가 아니었기에 그에 대한 기록도 부족한 것이겠지요. 역사는 항상 승자 입장에서 쓰여지니까요. 그래서 난중일기가 더 의미를 가질 거구요^^ 그래도 현재까지도 연구가 부족한 건 저도 많이 아쉬워요. 일제 때 이순신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런 인물이 나올 수 없게 우리 민족한테 더 가혹하게 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있던데, 일본인들이 이순신을 바라보는 걸 보면 영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 늙은도령 2015.05.05 23:54 신고

      저는 이순신을 성웅이라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깊은 연구가 없는데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나라를 구하고도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주류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순신을 사람이 아닌 신화의 영역으로 올려버렸습니다.
      신화의 영역으로 올려버리면 우리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순신의 고뇌마저도,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부정의는 별로 얘기되지 않습니다.
      누구를 우상화하거나 성역화하면 그의 인간적인 면이 멀어지고, 대신에 그는 권위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이순신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권위주의를 퍼뜨립니다.
      우리는 이순신이 나와 같은 인간이었는데 그 당시의 상황에서 최선을 찾아나갔던 인간으로 다가가지 못합니다.
      누구를 우상화하거나 신성화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보수적인 기득권들이 많이 악용합니다.
      전 <명량>을 보면서 이순신을 신화화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그 역시 당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인간이었는데, 성웅이 된 이순신은 그 정도의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해내야 하는 인간 이상으로 그려졌습니다.
      좀 어려운 문제인데, 그래서 철학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은 여기에선 맞지 않을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런 방식이 권위주의를 일반화하는 정치적 상징 조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말한 ‘사탄의 맷돌’은, 존재하는 모든 가치들을 맷돌에 집어넣어 경제적 이익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탐욕)만을 내보내는 자기조정시장의 본질을 압축한 말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가 존재함에도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이 유일한 가치가 된 것도 ‘사탄의 맷돌’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어제 K팝스타4에서 최종 3인에 든 이진아를 보며 ‘사탄의 맷돌’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통념처럼 굳어진 과정(낙수효과도 마찬가지)이 떠올랐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아이돌그룹의 난립으로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통념, 즉 청중을 압도하는 가창력이 가수의 첫 번째 덕목으로 굳어진 것이?



아마도 ‘나는 가수다’를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세대가 음악시장을 장악하면서, 미디어적으로 잘 훈련된 아이돌그룹 전성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들은 대중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군무에 집중했고, 그러다보니 생방송 중에도 MR을 틀거나, 립싱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대중가요가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바뀌면서 이런 경향이 강화를 거듭했고, TV에서 가창력을 지닌 가수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에 따라 가창력을 지닌 가수에 대한 갈증이 커져갔고, 이런 대중의 욕구를 풀어준 것이 ‘나는 가수다’였습니다.



뒤를 이어 ‘불후의 명곡’이 나왔고, 이런 추세는 방송사의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인기프로그램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가수는 가창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강해지면서 비디오적인 아이돌그룹의 안방 점령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대중가요의 다양성을 되살려낼 것 같았던 이런 추세는 경연프로와 오디션프로의 흥행돌풍을 통해 청중을 압도하는 가창력의 전성시대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가수가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면, 가창력이 기본적 덕목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탄의 맷돌’과 동일한 효과를 고착화시킵니다.





특히 오디션프로에서 이런 효과는 정점을 이룹니다. 오디션프로에서 가창력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가수의 다른 덕목들이 묻혀버립니다. 청중을 압도하는 가창력은 가수가 아닌 청중의 기호와 선택ㅡ대중가요는 이것 때문에 존재한다ㅡ을 극도로 축소시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진아의 성공은 ‘악동뮤지션’과는 조금은 다른 성격의 혁명이라 할 만합니다. 그녀에 대한 유희열과 박진영의 극찬이 그들의 선택을 역으로 옥죄었을 수도 있지만, 이진아의 3강 진출은 노래(특히 대중가요)란 기본적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으로 하여금 듣게 만드는 것이 먼저임을 깨우쳐줍니다.





K팝스타4가 가수의 상품성만 중시한다면 ‘사탄의 맷돌’과 작동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음을 말해주지만, K팝스타4가 청중의 다양한 선택을 중시한다면 한류의 다양성에 혁명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시즌2에서 악동뮤지션이 우승한 것과 시즌4에서 이진아가 최종 3인에 든 것이 K-pop의 진화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가치가 살아있는 사회, 다름이 틀림이나 열등이 아닌 창의성이 되는 사회,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헌데 통념의 함정을 돌파하고 있는 이진아 양은 어느 별에서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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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3.30 19:01 신고

    저는 어쩌더 한번씩 보는데... 가수들의 실력이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경쟁이란 이런 경우는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무한경쟁 특히 승패가 결정난 경쟁은 경쟁은 역자를 들러리로 세워 승자를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지요.

    • 늙은도령 2015.03.30 20:53 신고

      네, 선의의 경쟁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쟁은 최악입니다.
      지독한 경쟁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는 심리학, 행동학, 경영학, 경제학 등등에서 상당히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이진아는 통념을 깬다는 면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중요시 여깁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3.31 08:43 신고

    저도 가끔 보는데 이진아의 목소리가 저한테는 좋게 들립니다
    분명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뛰어난 아티스트라는데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천재들입니다

  3. 이씨 2015.03.31 19:22 신고

    자료조사 덜 하고 글을 쓰셨나 보네요.
    어딘지는 직접 찾아보시라고 하려다가,
    악뮤는 시즌2우승자에요

  4. 상생으로 2015.04.01 01:28 신고

    항상 느끼는거지만, 늙은도령님은 정말 글을 잘 쓰세요.
    항상 한수 배워갑니다.
    저는 릴리가 사실 더 좋더라구요
    하지만 신선한 이진아 양도 항상 응원합니다.
    인터넷 없던 시절에 꽉 막힌?? 한정된 언론에서
    인터넷되고 쇼셜로 소통되는 시대에 따른 변화가 이처럼 즐겁다니 오홍홍~~!
    암튼 4월이 시작 되었네요
    더더욱 행복 하세요~^^항상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01 01:56 신고

      릴리는 모든 기획사가 하루라도 빨리 데려가려 하기 때문에 힘에 부친 경연보다 대형기획사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크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릴리가 4강에서 떨어질 것이라 예측했었습니다.
      양현석과 박진영 등이 앞의 두 주 동안 그런 암시를 심사평을 통해 했었습니다.

  5. 상생으로 2015.04.01 01:58 신고

    아하 그렇군요 두주 놓쳐서 동영상노래만 들었어요^^
    얼렁 주무세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영화를 고르라 하면 ‘불의 전차’와 ‘성난 황소’ ‘록키’ ‘밀리언 달러 베이비’ ‘파이터’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밖에도 떠오르는 영화는 많지만 이 다섯 개의 영화는 시나리오부터 음악, 연기와 연출 등까지 영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고루 갖추었습니다.





이중에서 ‘성난 황소’와 ‘록키’는 권투를 다룬 영화로 허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영화에 속할 수 있는 명작입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성난 황소’는 ‘택시 드라이버’ ‘대부2’ ‘좋은 친구들’ ‘미션’ '디어 헌터' ‘더 팬’ '캐이프 피어' 등과 함께 그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메소드 연기(배우들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배역에 완전히 몰입시켜 실물과 같이 연기하는 기법)의 전설처럼 회자되는 ‘성난 황소’에서의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그가 왜 20세기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인지를 말해줍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성난 황소’에서의 그는 권투선수와 한물간 코미디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을 보여준 ‘록키’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등을 수상했고, 스텔론은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시나리오를 직접 썼다)에 노미네이트 된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콧대 높은 아카데미가 포르노 배우를 했던 스텔론에게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의 영광까지는 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 해도 의료사고 때문에 안면신경마비와 언어장애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스텔론이 포르노 배우를 하면서까지 허리우드를 떠나지 않았던 집념이 아메리칸 드림으로 이어진 것은 영화만큼 극적이었습니다. 영화 ‘록키’와 배우 스텔론의 가치는 여기까지가 최상이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는 속담의 주인공이 된 스텔론은 신자유주의적 근육질 외교를 밀어붙인 레이건 정부의 유혹과 압력에 넘어가 ‘람보’와 ‘록키’ 시리즈로 부와 인기를 얻었지만, 반미정서의 핵심에 자리하는 액션스타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릅니다.





70~90년대 허리우드를 지배했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노장이 ‘그루지 매치’에서 만났습니다. 영화적으로 볼 때 ‘그루지 매치’는 최악의 권투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적 가치(가족을 앞세운 전체주의적 자본주의)를 전파하는 역할에 충실한 ‘그루지 매치’는 허리우드의 소재가 얼마나 빈약해졌는지 보여줍니다.





늙은 ‘록키’에 ‘성난 황소’의 라모타(복싱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슈가레이 로빈슨의 라이벌)를 접목했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 이후 추락을 거듭한 로버트 드 니로를 보는 것은 총천연색 슬픔이자, 흐르는 세월의 안타까움이었고, 과거의 명성을 갉아먹는 연민이었습니다.





다만 부러운 것은 퇴물이 되가는 노장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어떻게든 만들어지고, 흥행과 상관없이 전 세계로 보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허리우드는 탐욕의 유일제국으로 복귀 중인 미국의 핵심 자원이었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이런 허술한 영화도 전 세계에 팔아먹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복서였던 로이 존스 주니어가 해설자로 등장하는 ‘그루지 매치’를 끝까지 보는 동안 저는 ‘그로기 상태’가 됐습니다. 사상 초유의 고령사회의 도래에 맞춰 한물 간 노장의 팔아먹는 것도 좋지만, 이런 영화를 통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허리우드의 몸부림도 보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 정말 믿고 보는 몇 안 되는 배우였는데 세월 앞에는 장사가 따로 없습니다. 어쩌다 보게 된 ‘그루지 매치’.. 위대한 배우의 몰락을 보여준 씁쓸하고 가슴 아픈 영화였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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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5.02.27 06:53 신고

    이 영화 오래된 영화니까 다시보기가 좋군염 지금은 할아버지들이네욤

  2. 공수래공수거 2015.02.27 08:47 신고

    이런 영화도 있었군요 ㅎ
    국내 개봉이 안되었던 모양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01 03:06 신고

      네, 캐치온에서 우연히 봤습니다.
      드 니로를 너무 좋아해서 그가 나온 영화는 무조건 보는데 최악이었습니다.

  3. 耽讀 2015.02.27 09:37 신고

    성난황소는 보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왜 저런 영화를 잘 만들지 못할까요?

    • 늙은도령 2015.03.01 03:06 신고

      그런 영화가 먹히지 않는 세상이 됐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4. 바람 언덕 2015.02.27 09:49 신고

    성난황소는 정말 최고였죠.
    드니로는 젊었을 때 정점을 찍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빛이 바래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면에서 연출가로 변신한 클린스 이스트우드가 더 매력적이라는 느낌이네요.
    어쨌든 말씀하신 것처럼 헐리우드 영화시스템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나이많은 배우들이 여전히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다는 건데요.
    우리 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요.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건 정말 볻받을 만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3.01 03:09 신고

      은퇴 이후에도 여유가 있어서 그들이 형성하는 시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슈퍼맨에 말론 브란도가 잠시 나오는 것 때문에 출연료로 600만달러를 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고정팬이 만드는 시장이 수천만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노후에 여유가 생기면 그럴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보수정부 때는 없을 것이라서....

  5. 여행쟁이 김군 2015.02.27 11:14 신고

    최고의 스타! 오래된 영화인데 명작이죠~ㅋ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래요~

    • 늙은도령 2015.03.01 03:10 신고

      드 니로가 나온 영화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명작이 많습니다.
      더 팬과 히트 때까지만 해도 드 니로의 진가가 스크린을 압도했는데....

  6. 꼬장닷컴 2015.02.27 11:41 신고

    본문에 거론하신 영화 중 저는 록키만 봤습니다.
    저는 영화를 많이 안 보는 편인데 록키는 그 당시 워낙 유명했으니까요.
    오늘도 유익한 정보 감사드리고 기온이 좀 떨어진 것 같은데 감기 조심하십시요..^^

    • 늙은도령 2015.03.01 03:11 신고

      영화가 전성시대였던 것은 80년대 말까지입니다.
      그 이후로는 TV에 밀려 상업적인 면에 치중하느라 좋은 영화가 거의 없습니다.

  7. 랩소디블루 2015.02.28 17:17 신고

    실베스터 스탤론 형님은 잘 지내고 계신가염 ㅎㅎ.

    • 늙은도령 2015.03.01 03:12 신고

      요즘 여러 영화에 나옵니다.
      노장들의 귀환에 한몫 보고 있습니다.

  8. 쩡은&참인간 2015.02.28 18:04 신고

    지나가는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는것 같아요.

    • 늙은도령 2015.03.01 03:12 신고

      그런 것 같습니다.
      드 니로는 그 능력에 비해 너무 형편없어졌습니다.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

  9. 참교육 2015.02.28 18:25 신고

    소개하신 명와 중 안본 것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이쪽 부분 너무 문외한이라서요...ㅎㅎㅎ

    • 늙은도령 2015.03.01 03:13 신고

      80년대 말까지는 허리우드 영화 중에서도 참 좋은 영화가 많았는데, 신자유주의의 이후로는 별로 없습니다.
      그저 블록버스터나 먹힐 정도입니다.



필자는 세월이 가도 무너질 미모가 없는 김제동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필자의 꿈이 모든 이들과 소통하면서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를 좋아합니다(전 여성을 무척 밝힘을 분명히 해둡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을 읽었고, 유머와 재미있는 얘기들을 찾아다녔으며, 그래서 많은 미모의 여성들을 꼬셨... 아, 그게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일상화하려고 노력했으며, 많은 모임의 사회를 자처하기도 했습니다(온갖 병들과 짱돌들이 필자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제가 대학을 다닐 때 몇 만 명의 학생들 중에서 저 같은 소아마비를 한 명도 보지 못했듯이, 나머지 학생들도 저처럼 기상천외하고 뻔뻔하며 바람둥이(어, 이것도 아닌데.. 이게 다 박근혜 기자회견을 봤기 때문이야!!) 장애인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또라이짓 때문에 제법 유명했던 필자는 체력이 허락하는 최대치까지 다양한 종류의 강의를 청강하면서 다양한 학과의 여학생들을 감상하는 것을 덤으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 ㅡ 특히 내 눈에 아름다운 여학생들이면 누구나 ㅡ 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내 입장에서는) 즐겁게 얘기했으며, 단칼에 거절을 당하거나 여학생의 남자친구로부터 소소한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이들과 얘기하기 위해 TV, 영화, 연극, 스포츠, 팝송, 가요, 야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소설, 시, 철학 등등을 두루 섭렵했습니다(지금도 이러고 있으니 운명인 것 같습니다. 에고, 힘들어!).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얘기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체력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가끔은 딴 것 때문에 껌은 필수!). 연고전이 열리면 단과별 응원도 주도했고, 단과대 사회도 봤습니다(그래서 여성 파트너가 없었습니다). 그런 필자였기 때문에 김제동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충격적이었고, 몹시도 꿈꾸었던 모습이라 그의 어록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김제동은 손석희의 탁월한 술수(?)에 넘어가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연예인이 되었고, 그 덕분에 여러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한 더욱 매력적인 연예인이 됐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냄새(특히 노총각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여러 명이 진행하는 틀에 박힌 프로그램은 어색했습니다. 동료들을 딛고 올라가야 살아남는 경쟁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혹시 초강력 무좀에 걸렸나?).



삶과 성공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기에 굳이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지만, 폭발적인 인기 때문에 올라선 정상의 자리가 불편했을 것입니다(그래서 산에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왔습니다). 영혼이 자유롭고, 악할 수 없으며,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특유의 표상을 보여주는데, 김제동은 그런 표상 속에 있는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재주를 지녔고,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이 때문에 외모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사람과 있어도 다른 사람이 그립고, 그래서 관계와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 늘 외롭지만 고독 속에서도 삶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성공했지만 그 성공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 상식이 곧 공감이고, 공감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정치임을 아는 사람. 그래서 술을 입에 달고 살되, 지나치지 않는 사람(주사가 있다고 하는데.. 술 먹으면 다 그렇지 뭐!!).



그래서 아프고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멀리할 수 없는 사람이 김제동입니다(유독 팔다리가 짧아서 그렇다는 '김제동을 둘러싼 풍문'도 있습니다. 김제동은 그래서 '7시간의 미스터리'에 답해야 합니다). 자아의 거울이란 타인이며, 그들의 거울 속에 자신이 있음을 아는 사람, 그가 JTBC 톡투유로 돌아왔습니다. 김제동과 손석희 덕분에 우리들의 평범한 삶이 화려하고 선명한 화면 속으로 소풍(방청권은 예매는 필수)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방송이 대중문화라 하면서도 화면 속에서 대중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전문적인 방청객 알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중은 언제나 조연(사건·사고를 일으켜야 주연이 된다ㅠㅠ)이었고, 리액션을 잘해야 하는 청중이었으며, 방송될 수 있는 사연만 제공했을 뿐입니다. 중간에 대본이 있고, 작가가 있고, PD가 있고, 편집(통편집, 자막처리로 처참하게 사망하곤 한다)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녹화시간의 1/4 정도만 방송을 타는 김제동의 톡투유에도 이런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의 고성능 레이저가 무서운 방송사 입장에서 무작정 모든 얘기들을 내보낼 수 없겠지요. 하지만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삶들이 오고가는 동안에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제동의 톡투유에는 우리들의 얘기들이 있습니다. 구태여 포장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내보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정제되지 않고, 투박하지만 조미료가 더해지지 않은 얘기들이.





화면 속에는 내가 있었고 당신이 있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당신과 비슷한, 우리와 비슷한 또 다른 너와 나, 우리들의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임에도 시청률이 좋게 나왔기에 정규프로로 확정됐다고 하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들(나의 사연도 될까?)이 방송을 타고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TV만 틀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누구의 얼굴에 질린 분들은 눈을 맑게 하는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사찰과 엄마부대의 데모를 뚫고 김제동이 돌아왔습니다. 그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그래서 우리들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처음 전파를 탔습니다. 그 옛날의 사랑방처럼, 우리네 삶의 다양하고 잔잔하고 애잔하며 공감가는 얘기들이 딸기나 포도처럼,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처럼, 식혜나 수정과처럼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사는 산본에서도 녹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Welcome to 김제동! 

Don't worry, you and me.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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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2.23 11:19 신고

    그의 자유로운 사고와 깨어 있는 생각을
    존중합니다

    다시 공중파에서도 빛을 발하길 응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2.23 19:21 신고

      저는 김제동이 많은 프로를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런 식의 토크쇼를 통해 국민과 소통했으면 합니다.
      오락 프로그램으로 그의 진가가 소비되는 것은 안타까우니까요.

  2. 방갈로 2015.02.25 23:16 신고

    톡투유 저도 봤는데 짧아서 아쉽더군요..
    티비라는 매체의 한계가 느껴지는듯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26 02:15 신고

      정규프로가 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입니다.
      이런 프로가 하나쯤 있어야 합니다.
      서민들의 얘기가 주가 되는 그런 프로....

  3. 소스킹 2015.05.19 16:21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첫 번째 별명이 '테돌이(텔레비젼을 끼고 산다 해서)'였던 필자가 ‘K팝 스타’를 보게 된 것은 두 명의 조카 때문이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런 조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돌그룹을 섭렵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K팝 스타’까지 보게 됐다.





조카들의 시선으로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K팝 스타’가 시즌4에 이를 동안 필자의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K팝 스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갈수록 늘어났다. 싱어송 라이터를 비롯해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이 늘어났지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비약적 발전을 할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학에 매달렸다. 박정희의 공으로 돌려지기 일쑤인 압축성장은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노력한 수많은 노동자들과 나와 누군가의 부모님들과 함께.



지금까지 수천만 명이 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비약적 발전ㅡ단 부의 재분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ㅡ을 할 수 있었듯이,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K팝 스타’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하니 질적 상승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확률적으로 뛰어난 영재들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들이 성공하기 위해 투자한 것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바람에 공학이나 기초과학 같은 분야에 도전하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대중문화에 집중되기 마련이라, 미디어적인 것에 열광하는 이런 현상은 상당 부분 필연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K팝 스타’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출연자들의 기술적 발전(대중적 상품성)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앞선 시즌에서 탈락한 도전자들도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K팝 스타’는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대중적 상품성에 집중하다 보니 신선함과 창의성이 줄어들었다.



단 하나의 예외란 악동뮤지션이었지만, 그들의 천재성은 그 나이 또래의 미디어적 감수성과 사춘기 특유의 상상력을 풀어내는데 성공한 트위터(재잘거림)적 가사가 더해져 가능했다. 악동뮤지션의 등장은 신선했지만,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을지는 미지수로 보였다.





헌데 말이다, 정말로 대단한 물건이 나왔다. 주인공은 당연히 이진아를 말한다. 천재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아티스트의 발견이랄까. 음악에 대한 지식은 턱없이 부족한 필자지만, 위대한 <미학이론>의 저자들(칸트,벤야민, 아도르노, 브르디외 등)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천재의 요소들을 이진아는 가지고 있다.



인류 최고의 석학들이 말하는 천재의 조건은 타고난 재능의 독특함과 무궁무지한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그런 유일무이한 영감의 산물을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표현으로 담아내는데 있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이라 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것은 천재의 산물이 아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에디슨의 말도 이것을 담고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함과 창의성에 있어서 이진아는 천재의 전형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진아는 천재적 영감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보편성, 즉 대중성)이 놀라울 정도다. 그녀의 노래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그렇다고 그녀의 천재성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독창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정말로 특이한 아티스트가 이진아다. 그녀는 대단히 뛰어나지만, 뛰어나게 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 아니면서도, 목소리 때문이다. 음악적 재능(작곡, 작사, 연주)을 가수로서는 치명적인 목소리에 담아냈다는 것이 그녀의 천재성을 말해준다.



‘K팝 스타’가 추구하는 대중적 상품성만 놓고 볼 때, 이진아의 시장성은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늘렸다는 점에서 이진아는 ‘K팝 스타’가 낳은 최고의 천재ㅡ최소한 시즌4까지는ㅡ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진아는 절대 기획할 수 없는 상품이다. 



그래서 이진아의 천재성에 집중한 박진영, 천재성 속의 노력을 강조한 유희열, 둘을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것을 얘기한 양현석, 이들 3인의 도움이 더해지면 조금 색깔이 다르더라도, 원석 같은 보석ㅡ이미 상당 부분 완성된ㅡ이진아는 돈 맥그린 같은 대형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냠냠냠’과 ‘빈센트’를 번갈아 들어보라, 필자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테니.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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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2.17 08:21 신고

    아이들 때문에 젊어지십니다.
    저는 이 친구들 세계는 잘 모른답니다. 손주들이 더 커면 저도 배워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1 신고

      조카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제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조카가 내년에 들어오는데 그때 맞춰서 얘기거리 많이 만들어둬야 합니다.ㅋㅋㅋ
      헌데 이진아는 조금 다릅니다.
      가수로서는 불가능할 목소리로 특이한 영역을 열었어요.
      이한구의 이중성이 천재성을 지녀 비교하라고 썼습니다.

  2. 耽讀 2015.02.17 09:02 신고

    텔레비전을 거의 안 봅니다. 일주일 한 시간 정도. 이진아 씨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문화도 진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2 신고

      네, 다양함이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살찌우느데 우리는 그런 것을 실제로는 싫어해요.
      대부분 주류의 문화에 젖어들지요.
      그래서 통치가 쉬워지고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2.17 10:07 신고

    저도 가끔 보는 방송입니다
    이진아는 일단 상품으로 나오게 되면 호불호가 갈릴겁니다

    매니아들이 생길수 있겠지만
    상업화되서 일류 스타화 되기는 힘들듯 합니다

    저도 괜찮게 보는 뮤지션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3 신고

      다양성이라는 것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다양성을 싫어하죠.
      폐쇄적인 민족구조가 민주주의를 힘겹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요즘 젊은이들은 민주주의에 익숙해요.
      그들이 주역이 될 10년쯤 후에는 많이 좋아지겠죠.

  4. Hansik's Drink 2015.02.17 10:29 신고

    정말 너무너무 대단한것 같아요~^^

  5. 꼬장닷컴 2015.02.17 10:35 신고

    아.........
    도령님께서도 k팝스타를 시청하시나 봅니다.
    저도 일요일 집에 있을 땐 k팝스타와 런닝맨을 보는데
    특히 k팝스타는 시간이 안 맞아 못 봤을 때 다시보기로 꼭 챙겨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꼴찌들이 뭉친 스파클링걸스를 응원하지만 이번
    이진아의 '냠냠냠'을 듣고 이진아에 확 빠져 버렸습니다.
    솔찍히 그 전에는 그다지 매력을 못 느꼈었거든요.
    이는 취향의 문제겠지만 좀 독특하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지난주에 이진아에게 완전 매료되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6 신고

      그런 목소리로 그런 노래를 만들어 전문가들까지 녹다운시킨 것은 대다한 일입니다.
      천재란 자신의 창작물이 대중이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창작물에는 천재성이 엿보이는...
      이진아는 이런 미학이론을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나오는 천재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6. 생각하는 꼴찌 2015.02.17 20:30 신고

    이진아씨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오랜 시간 유지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21:47 신고

      다양성이 살아있는 대중문화가 되려면 이진아 같은 친구들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토양이 조성돼야 합니다.
      그래야 한류도 이어질 수 있고 문화적으로도 성숙한 나라가 됩니다.

  7. base 2015.02.17 22:19 신고

    올 한해 건강하시고 잠시라도(안타깝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 늙은도령 2015.02.17 23:06 신고

      네,님도 그러하십시오.
      건장한 설 연휴 보내시고, 충전된 새해 되십시오.

  8. 덕산 2015.02.17 23:54 신고

    이전에는 정말 호불호가 갈리는 음악이였는데..
    냠냠냠은 남들몰래 혼자 흥얼흥얼 거릴만큼 대중성도 있는것 같던군요^^
    늙은 도령님덕분에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행복한 설날 되세요.

    • 늙은도령 2015.02.17 15:47 신고

      네, 님도 행복한 나날되세요.
      경기가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항상 돈의 흐름 주목하셔야 합니다.
      잘 안 돌아갈 때는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좋아지면 그 때 다시 채용하더라도 돈의 흐름을 관리 못하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9. 바람 언덕 2015.02.18 10:57 신고

    경쟁프로그램을 지독하게 혐오하는 저이지만,
    오직 K팝스타 만은 빼놓지 않고 즐겨보고 있습니다.
    지난주도 역시 놓치지 않고 보았는데, 이진아의 음악은 정말 독특하더군요.
    유희열의 지적처럼 어떠면 컴플렉스일지도 모르는 목소리를 자신만의 장점으로 극대화시킨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귀로 듣는 음악의 위대함을 그녀를 통해 본다고 할까요?
    .
    .
    .
    그런데, 저는 박윤하를 응원합니다. 커험...
    ^^;

    • 늙은도령 2015.02.18 16:41 신고

      크크크....
      즐겁게 보낼 때는 즐겁게 보내야 투쟁할 에너지가 생겨서.
      이제는 새누리당을 집중 공략해야지요.
      박근혜는 이미 끝났으니 새누리당이 정권을 이어받는 것을 막아야죠.



개그맨 김준호가 코코엔터를 폐업하고, 소속 개그맨들이 김대희가 세운 JD부로스로 이적한 것을 보며 필자의 경험상 김준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힘듭니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김준호가 후배개그맨을 위해 폐업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나의 사업이야기’에서 밝힌 것처럼 필자가 모 이통사와 전자와 공동사업을 할 때, 상당한 액수의 적자에 시달리다 쓰러져 며칠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적자 때문에 서둘러 퇴원한 필자가 회사에 출근했을 때 직원들의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당시 저는 수억 원에 이르는 대출받은 돈과 주주의 투자금을 모두 날린 상태여서 직원월급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 이통사가 선지급한 모뎀비용도 지불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입원한 동안 이통사 직원이 새회사를 차려 그쪽에 모든 것을 옮겨놓으면 그쪽으로 대량주문을 주겠다고 직원들과 협상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저는 기존 주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이에 반대했지만, 탈출구가 없었던 직원들은 이통사의 주문의 액수만큼 저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새회사를 차리고 그쪽으로 모든 것을 옮겼습니다. 직원들은 저도 새회사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것은 고의부도나 마찬가지여서 저는 빚을 뺀 모든 것을 넘겨줘야 했습니다. 간경화로 쓰러질 때까지 이것저것들을 팔아 빚의 일부나마 갚았습니다.





실제 고의부도나 폐업은 현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김준호는 억울하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돈을 들여 직원들 월급을 주고 있었기에 탈출구를 찾았을 것입니다. 담당 회계사가 탈출구를 말해주지 않았을 리 없고, 김준호는 최대한 회사를 살리려고 했겠지만 한계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폐업을 위한 명분쌓기의 수순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김준호는 자신이 바지사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사라진 사장과 회사 설립과 운영에 관해 의논했을 것이고, 지분 15%를 받는 조건으로 개그맨들을 영입했을 것이기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JD부로스를 설립한 김대희도 후배 개그맨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도 지분 일부를 받았기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김준호가 공개하겠다는 각종 서류는 물리적인 과거의 흔적일 뿐, 서류가 쌓이는 동안 실제 인간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김준호가 위기탈출을 위해 회계사의 자문을 구했고, 김대희와 의논했으며, 후배 개그맨들과 탈출구를 찾기 위한 대화를 나누는 등의 과정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간경화로 아무것도 못하게 되자 제가 설립한 회사는 몇 년 후에 강제로 폐업됐지만, 빚은 신용불량자가 된 제가 개인파산을 할 때까지 여전히 저의 책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김준호(와 김대희)가 겪었을 고생이 눈에 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폐업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며,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김준호가 바지사장이었고 김대희가 비등기이사였다 해도 무상으로 지분을 받았기에 주주의 투자금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회사 운영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지 않은 것도 김준호와 김대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대주주인 두 사람이 회사 사정을 몰랐고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후배 개그맨들이 월급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추가로 투자를 받았다면 실제 사장의 사기에 미필적인 동조를 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투자자들이 김준호와 김대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은 없지만, 새회사의 지분을 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에도 김대희가 세운 회사에 다른 투자자가 있다면 그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유상증자를 해야 합니다. 필자가 김준호의 억울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며, 밀린 세금이 있다면 개인파산을 하지 않는 한 지분을 소유한 만큼 그것도 해결해야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볼 때 김준호가 코코엔터를 폐업하고 김대희가 JD부로스를 설립하는 과정에 회계사의 자문을 받았을 것이고, 이에 대해 후배 개그맨과 의논했을 것입니다. 김준호가 정말로 책임을 지려했다면 개그맨과 계약을 해지하되, 회사 폐업은 투자자들의 손해보존을 세워놓고 의논을 거쳐 결정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김준호의 해명을 100% 믿을 수 없는 것이며, 김준호와 김대희는 주주들의 피해보존부터 제시해야 합니다. 후배 개그맨들에게는 추호의 잘못도 없음은 부언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최근에 들어 개그콘서트의 질이 많이 하락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사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투자자 문제만 해결하면 법적 책임은 없으므로 원만한 해결을 기대해 봅니다. 후배 개그맨들 잘 보살피고 챙기기를 바랍니다. 두 번 실패하지 않으려면 회사의 자금 흐름은 직접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투자자와 후배 개그맨들에게 회사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십시오. 지분도 나눌 수 있으면 막강한 후배 개그맨들과 나누십시오.  





모든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없으며, 회사가 안정된 다음에 사업 아이템도 늘려가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경영노하우를 배워야 하고, 자금과 인사관리에서는 철저하게 경영자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회사를 차리면 아마츄어적 발상은 버려야 합니다. 모든 아이디어는 회의적으로 접근한 다음에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한 시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자금과 인사를 함께 살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가장 잘하는 것이 회사의 꾸준한 수익원이 됩니다. 그것을 최대화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파생되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릅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늘려가는 방법은 그렇게 했을 실패확률이 가장 적습니다. 앞선 선배들이 회사를 차려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들을 모두 다 살펴보십시오. 거기에 보통 해답이 있기 마련이며, 고정비를 수익과 대비해 항시 조절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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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NIs 2015.01.30 18:11 신고

    앞으로 더 힘내셨으면 좋겠네요..

    • 늙은도령 2015.01.30 19:21 신고

      개그맨들이 훌륭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습니다.
      회사 운영의 기본들을 지킨다면...

  2. 참교육 2015.01.30 18:22 신고

    연예인들을 비롯해 전문분야가 아닌 쪽에 손을 대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김준호는 그런경우가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5.01.30 19:23 신고

      그렇다고 봅니다.
      후배 개그맨들이 빵빵하니 이런저런 사업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것은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화 된 이후에 해야 합니다.
      그것에서 실패한 것이고, 기본적으로 회사운영을 너무 쉽게 본 것입니다.
      사기꾼 같은 사장과 임원들의 설탕발림에 넘어간 것이기도 하고요.
      그것에 동의한 김준호와 김대희도 문제입니다.

  3. 덕산 2015.01.30 20:12 신고

    이번 글을 통해 앞으로 항상 명심해야할 일들을 배워갑니다.
    자리에 맞는 책임감과 신중함을 더해가면 좋겠네요.


    • 늙은도령 2015.01.30 20:25 신고

      네, 김준호는 여러 개를 동시에 얻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 때 과한 욕심이 생깁니다.
      횡령사장과도 이런저런 의견도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런 부분을 되돌아보면서 두 번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4. 공수래공수거 2015.01.31 08:22 신고

    남의 이야기가 아닌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습니다 ㅡ,ㅡ;;

    • 늙은도령 2015.01.31 09:39 신고

      네, 사업이란 저런 것입니다.
      꿈이 많았을 때는 수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이란 기대보다 수백 배 수익이 적게 나옵니다.
      헌데 이미 수익 맞춰 회사를 조종해놨으니 적자가 나는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파고들어가는 영화의 짜임새를 별도로 한다면, 저출산‧고령화의 필수적인 결과인 이민과 다문화 문제를 다룬 세 개의 영화가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와 웨인 크래머의 <크로싱 오버>,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의 <로나의 침묵>이 그것입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인 <크로싱 오버>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 풀어내는 관계로, 영화의 짜임새가 허술하고 어지러운 블랙버스터에 가깝습니다. 한 편의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했던 것이 패인이지만, 이민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불법이민과 다문화가 그리 녹녹치 않은 문제로 부각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시대 이후로 사라졌던 노예제도를 부활시킨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며, 경제가 나빠지자 노예해방의 이름으로 그들을 더 싸게 부려먹었던(노동유연화의 기원) 나라가 미국임을 고려하면, 불법이민과 다문화가 ‘아메리칸 드림’에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자 또다시 그들을 내치고 있는 미국 특유의 DNA가 <크로싱 오버>에는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으로만 평가하는 미국 백인의 시각에서 제작된 <크로싱 오버>를 압축하면, “중산층 이상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저임금 노동자로 써먹던 노동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고,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도 그만큼 커졌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로싱 오버>가 미국 특유의 위선이 스크린 뒤에서 작동하고 있다면, <그랜토리노>는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백인 노동자가 이민과 다문화의 피해자가 됐다고 선언합니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돈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가벼워진 미국의 변화가 마뜩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미국적 가치의 핵심인 가족도 불편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수와 수구 사이에 위치한 미국 백인의 시각으로 이민과 다문화 문제를 풀어갑니다. 곳곳에 폭력을 배치해놓고, 그 폭력에 맞서야 함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랜토리노>를 통해 자신의 본질이 <용서받지 못한 자>보다는 <더티 해리>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 영화에는 이민과 다문화가 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는지 전혀 다루지 않은 채, 은퇴한 미국 백인 노동자의 시각에서만 영화를 이끌어갑니다. 어린 베트남 이민자 남매와 나이와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은 이민과 다문화 문제를 극대화하기 위한 드라마적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파시즘적 속도로 달려가는 미국의 변화는 은퇴한 백인 노동자에게 야만적 폭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파시즘적 속도에 맞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정의와 노동의 가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희생적이어서 영웅적으로 그려지는 자신만의 구원의식이자 현실도피적 결단입니다.   



하지만 한 쪽의 시각만 반영된 정의와 가치는 부분적인 정의에 불과할 뿐임에도, 반폭력적 메시지를 언제나 극단적인 폭력을 통해서만 그려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강박관념은 은퇴한 백인 노동자가 미래의 화해와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비극적 희생밖에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제조업을 포기하고 아이디어와 금융산업 위주로 돌아선 시대의 피해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이민자 폭력조직을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 결말이 전달할 수 있는 미학적 위대함에 크게 감명받을 터이지만,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이 그 이상의 폭력을 담아낼 수 없다는 반동적인 메시지 때문에 가장 폭력적입니다. 



죽음을 미화하는 것이 폭력을 유발하는 극단적 선택이라면 거기에는 진실된 의미의 정의도, 진정한 화해도, 반성적 구원도 없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려낸 반폭력적 저항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적 저항은 일체의 폭력을 부정하는 것에서 양화가 악화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그랜토리노’는 미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1972년형 포드사 중형차로, 미국 백인 노동자의 자존심이자, 갈수록 퇴색하고 있는 미국 특유의 ‘빌어먹을’ 애국심을 상징합니다. 은퇴한 미국 백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랜토리노>는 잘 만든 영화이며, 이민과 다문화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고든 수작입니다.



하지만 은퇴한 백인 노동자를 들어내면 <그랜토리노>는 반유대주의를 조장하는데 앞장 선 나치의 선동적인 영화를 떠올립니다. 세계를 지배하거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최상위 0.1%를 다룬 《슈퍼클래스》에서도 미국의 슈퍼엘리트(특히 부시 부자의 행정부에서 일했던 고위관료들)와 어울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는 보수적인 미국 백인의 이데올로기를 가감없이 드러낸 폭력적 영화입니다. 동시에 미국적 보수화가 일반화된 이명박근혜 정부의 7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민과 다문화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시각이 얼마나 보수화됐는지 간접적으로 말해줍니다. 백인과의 결혼은 국제결혼이고 중국 동포나 동남아인과 결혼하면 다문화 결혼이 되는 것부터 보수적입니다.





‘모든 것이 좋을 때는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나쁠 때는 어떤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크로싱 오버>와 <그랜토리노>에 비하면, <로나의 침묵>은 유럽에서도 심각한 국가적 사안으로 떠오른 이민(불법이민)과 다문화 문제를 절대적 약자인 이민자의 입장에서 그려낸 명작입니다.



‘모든 것에 값이 매겨져 있는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과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로나의 침묵>은 불법이민과 다문화 문제가 부정적 세계화의 결과이자, 일단 거기에 발을 들여놓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는 한 탈출할 방법이 없음을 영상미학으로 보여줍니다. 소비사회는 돈이 없고, 소속이 없지만 삶의 매 순간이 폭력에 노출되는 것과 같습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멸시킬 때까지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을 ‘자기조정 시장’의 폭력적 허구성을 해부했다면, 다르덴 형제는 <로나의 침묵>을 통해 ‘자기조정 시장’의 필연적 결과인 소비사회의 파국적 종말을 그려냈습니다.





허리우드 키드였던 필자는 허리우드 영화의 포로였고, 지금도 비슷한 상태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민과 다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한 <그랜토리노>와 <크로싱 오버>를 <로나의 침묵>과 비교해보면 문화적으로도 미국에 종속된 대한민국의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샤를리 에브도가 당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갈수록 늘어나는) 테러도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가다 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이슬람 원리주의가 아닌, 프랑스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불법이민과 다문화 문제가 탐욕의 소비사회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혼란과 인간성 파괴의 냉혹한 현실, 표현의 자유를 악용한 자본주의적 탐욕입니다.



앞의 두 영화를 본 분이라면 다르덴 형제의 철학이 녹아있는 <로나의 침묵>도 보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 시간적 여유가 되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현대인에게 말을 건네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의 ‘39번째 편지 : 로나, 침묵의 소리’를 꼭 읽어보면 현대의 소비사회와 부정적 세계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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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5.01.27 06:48 신고

    하나도 보질않은 영화네요.
    함께 살아가는 우리이길 바라는 맘입니다.

    잘 보고가요

    • 늙은도령 2015.01.27 17:10 신고

      저도 우연히 보게 된 영화들입니다.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를 원래부터 좋아해서...

      물론 다른 영화들도 좋아합니다.
      시간이 없을 뿐이지요.

  2. 공수래공수거 2015.01.27 08:31 신고

    저도 영화에 관심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아
    생소한 영화들입니다

    다운 로드가 가능한지 한번 찾아 보겟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27 17:10 신고

      로드가 다 가능한 영화입니다.
      저는 영화팬으로서의 세월이 40년이라....

  3. 꼬장닷컴 2015.01.27 08:40 신고

    본문과 관계없는 댓글 죄송합니다만..
    크린트 이스트우드 정말 오랜만인데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아무튼 오늘 권하신 영화/책 기억해 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봐야 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27 17:12 신고

      네, 합리적 보수로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정말 멋있었는데, 최근에 들어와서 합리적을 떼려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너무 보수적 관점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4. 耽讀 2015.01.27 10:02 신고

    다문화 시대에 들어선 우리들이 새겨야 할 영화 같습니다. 우리 역시 백인만 외국인으로 생각하고 동남아와 흑인은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 판단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27 17:13 신고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종적 차별은 같은 피부일 때 더 강한데, 세계화시대에서 가난한 나라의 이민자면 그것이 더욱 심해집니다.

  5. 달빛천사7 2015.01.27 10:39 신고

    아직 보지는 않았는데 이번주에 보죵 좋은하루되세염.

  6. 덕산 2015.01.27 12:31 신고

    그랜토리노라는 영화를 봤던 기억으로는 감동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뭔지모를 불편함이 있었던것이 기억이 나네요.
    우선 내 주위에 있는 외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위치를 한번 둘러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1.27 17:14 신고

      네, 인간을 인간으로 볼 때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집니다.
      자본주의는 계급을 없앴지만 너무나 많은 계층을 만들어 차별을 세분화했습니다.



언론 인터뷰를 피해왔던 윤제균 감독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국제시장>에 얽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손석희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국제시장>을 만든 의도와 그에 상반되는 평가들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 나름의 변론을 내놓았습니다.





윤 감독은 <국제시장>의 제작의도가 ‘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헌사이자, 세대와 지역과 계층 간의 소통과 화합을 위한 가족영화’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독으로써 “극장 안에 가장이 자기 아들과 자기 자식과 또 부모세대 또 할아버지, 할머니 3대가 와서” 관람할 수 있는 영화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윤 감독은 또한 <국제시장>이 “거시적인 현대사에 대한 어떤 정치적, 사회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출발했던 역사가 아니라 진짜 소박하게 일찍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려고 만든 영화”라고 함으로써 정치적 의도가 없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윤제균 감독의 발언이 왜 문제인지, 허지웅의 트위터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음인지, <국제시장>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을 선택했는지 밝히고자 합니다. 특히 덕수의 삶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난의 여정으로 그리기 위해 영화의 배경으로 흥남 철수와 파독 광부, 베트남전쟁 등을 선택한 것이 결국은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됐다는 것을 설명해보겠습니다.






1950년 12월 15일에서 24일까지 진행된 흥남 철수는 10만 명에 이르는 북한의 피난민이 12만 명에 이르는 중공군을 피해 남하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맥아더의 오판 때문에 중공군에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 흥남 철수의 원인으로 덕수 가족의 시선에서 보면 선악의 구분이 너무 명백하다는 점에서 지독히 이데올로기적입니다.



영화의 시작을 흥남 철수로 잡은 이상 <국제시장>은 소련과 미국에 책임이 있는 한반도 분단의 결과로 일어난 한국전쟁을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 가해자 대 피해자, 선과 악이라는 미국에 철저히 경도된 이분법적 사고를 전제로 하게 됩니다. 윤 감독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흥남 철수는 현대 한국사의 비극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남 철수에서 미군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 때문에 국제시장까지 흘러들어온 덕수는 미군에서 흘러나온 제품을 팔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맥아더의 오판과 많은 피난민들에게 폭격을 가한 미군은 미화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이데올로기적 면죄부를 받게 됩니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라는 에피소드도 분단된 국가였던 독일을 떠올리게 만들고, 동독에 대해 우위에 있었던 서독의 압도적인 경제력이 통일로 이어진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남 철수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한 덕수의 희생은 최고조로 오르지만, 또 다른 덕수인 파독 광부들의 비참했던 삶은 거의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파독 광부는 ‘우리의 소원’에서 ‘대박’으로 변질된 박근혜 정부의 통일 아젠다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윤제균 감독의 아버지가 덕수처럼 파독 광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덕수 세대에 파독 광부가 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윤 감독에게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은영중에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전쟁은 이라크전쟁과 함께 미국이 일으킨 최악의 전쟁임에도, 흥남 철수에서 국제시장으로 흘러들어와 파독 광부를 거친 덕수의 관점에서 그려졌다는 점이 가장 이데올로기적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전쟁보다 더 부도덕한 전쟁인 베트남전쟁이 덕수의 희생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는 점은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다 해도 이데올로기적입니다.





베트남전쟁은 원래 프랑스에 대한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국민의 독립전쟁이었는데, 냉전논리를 내세운 미군의 참전, 이를 위해 미국의 꼭두각시를 남베트남(월남)의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것, 나쁜 국내여론을 뒤집기 위해 CIA를 동원한 돈킹만 사건 조작에 의한 확전, 미국의 패배가 확실한 시점부터 베트남을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기 위한 초토화 작전까지 미국 연방정부와 미군의 저지른 전쟁범죄로 가득한 최악의 전쟁이었습니다.



수천 페이지에 걸친 ‘펜타곤 페이퍼’를 보면 미국 연방정부와 미국 국방부,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이 저지른 온갖 거짓말과 전쟁범죄(민간인 학살, 한국군이 연루도 나온다)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데, 덕수의 관점에서 보면 베트남전쟁은 가족의 부양과 한국의 부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전쟁ㅡ한국 군대와 장사치들이 저지른 범죄는 빠진ㅡ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전쟁 때문에 전후의 일본이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면, 베트남전쟁 때문에 한국이 개발도상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갖춘 것은 미국의 전쟁범죄에 동참한 한국의 변명으로써는 최상의 것입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을 내세우는 것이 덕수의 본질이라면 베트남 파병을 비판할 여지는 최소한으로 줄어듭니다.



또한 호치민(김구+안창호+여운형)과 그의 군대에 호의적이었던 베트남 국민(심지어 남베트남 국민까지)을 ‘종북’과 동일한 공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로 묘사하는 미국식 냉전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덕수를 통해 감독이 그려낼 수 있는 최대치도 전쟁의 위험을 무릅쓴 가장의 희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록키와 람보시리즈는 미국 백인들로 이루어진 전통 보수의 시각(레이건과 부시 정부가 대표적)을 대변하는 근육질 가족영화입니다. 허리우드 영화에는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데 <국제시장>은 동원된 한국 현대사의 에피소드로 인해 가장 허리우드적인 가족영화가 됐습니다.



윤제균 감독이 뭐라고 변명을 하던 <국제시장>은 역사적 사건의 이데올로기적 선택 때문에 보수적인 의미에서 잘 만들어진 가족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허지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이것이며, 조중동과 보수세력이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 가장 좋은 영화로써 주저함이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윤제균 감독은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국제시장>이 삼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삼포세대와 비정규직 및 실업자가 넘쳐나고 노인빈곤율에 비해 노인복지가 형편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삼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서의 <국제시장>은 중·상류층에서나 가능할 듯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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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5.01.07 06:46 신고

    국제시장을 한번보긴 해야겠어요 좋은하루되세요

    • 늙은도령 2015.01.07 11:06 신고

      한 번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잘 만든 영화입니다.
      윗 세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2. 참교육 2015.01.07 07:14 신고

    보수층이 좋아할.. .어떤 영화인지 더 궁금해 집니다.

    • 늙은도령 2015.01.07 11:07 신고

      네,그렇기는 합니다.
      허나 영화만 놓고 보면 잘 만든 영임입에는 틀림없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1.07 09:53 신고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시면 그럴수 있습니다
    윤감독의 말처럼 70년~80년대 암울한 시대를 덕수를 통해
    일부라도 구현했다면 이상한 영화가 되었을겁니다

    감독이 의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흑백의 논리에서 해석할수 밖에 없는 현실이 비참하군요

    그러면 앞으로 모든 시대극 영화도 그런 관점에서 볼수밖에
    없습니다 ㅡ.ㅡ;

    • 늙은도령 2015.01.07 11:10 신고

      보수적 영화도 좋은 영화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크린스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그렇구요.

      부정적인 시각이 아니라 윤제균 감독의 변명과 영화에 채택된 사건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보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중동이 이용하기 쉽고요.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가족영화를 높은 가치를 지니고 덕수 세대에 대한 헌사로도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다만 영화가 선택한 에피소드와 주제가 보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보수의 가치 중 최고가 가족입니다.
      대처가 노조를 탄압하고 민영화하고 대규모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밀어붙인 것도 가족의 이름으로 입니다.

  4. singenv 2015.01.07 19:08 신고

    <국제시장>은 그자체로 현실도피입니다. 암울한 현재와 보이지 않는 미래 대신 힘들었지만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는 거라 생각됩니다.

    • 늙은도령 2015.01.07 19:48 신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덕수 세대들에게 대한 헌사는 과거에 방점이 찍혀 있으니까요.

  5. 란쿨 2015.01.16 17:22 신고

    흠... 국제시장 보면서 이런생각은 못했는데요

    • 늙은도령 2015.01.16 18:15 신고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 영화에 도입된 역사의 사건들이 산업화 세대를 위한 것이라 이런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0만을 넘기는 영화라면 그 영향력이 엄청납니다.
      윤 감독은 아버지 세대를 위한 헌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아버지 세대들 때문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지요.



조중동이 개입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념적 양극성을 띠게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국제시장>의 흥행 성적이 보수 정부와 정당 및 집단에 의해 갈수록 왜곡되고 있습니다. <국제시장>은 한국의 산업화가 일부 지도자의 독점물이 아닌 덕수처럼 평범하고 힘없는 앞선 시대의 아버지들이 이룩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60~70년대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덕수처럼 살았고, 그들의 피와 땀과 희생들이 쌓이고 축적돼 한국은 6.25전쟁의 폐허에서 산업화의 토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경제를 전혀 몰랐던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죽지 않았다면 산업화의 영광은 그가 아니라 <국제시장>의 주인공들인 덕수 세대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1978년부터 하향세를 보인 한국 경제는 1979년을 거쳐 1980년에 이르러 극한에 달해, 정치적 정당성이 없었던 독재자 박정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을 것이고, 그의 신화도 거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아니 구국의 결단인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가 압축성장이란 신화가 됐다는 제멋대로의 포장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것입니다. 





헌데 김재규의 저격이 박정희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회를 박탈했고, 분출하는 민주화 요구에 대한 반작용으로 박정희의 독재가 보수세력의 논리인 민주화의 기초를 다진 산업화로 재포장되기에 이르렀습니다(산업화가 민주화를 견인한다는 것은 일부의 진실일뿐, 유럽과 아시아, 남미 등의 예를 보면 민주화가 산업화를 견인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전국에서 열화처럼 타오른 민주화 요구가 ‘서울의 봄’으로 폭발했지만, 박정희의 양아들로 알려진 전두환이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잡으면서 당시의 덕수들에게 주어져야 했던 산업화의 영광이 박정희에게 돌려졌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이 땅의 덕수들은 산업화의 주역으로도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기에는 박정희의 실적이 너무나 초라했고, 군부독재의 정당성을 쥐어짜내기 위해서는 산업화의 영광을 철저히 박정희와 그를 따르던 소수 엘리트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약자들인 덕수 세대들은 산업화의 정당한 대가도 챙길 수 없었습니다. 현재의 노인빈곤율 세계 최고가 바로 이것에서 기원했습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말처럼, 독일과 베트남을 거쳐 국제시장까지 이어진 수많은 덕수들이 흘린 피와 땀, 희생이 승자의 기록에 오르지 못했기에 두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역사의 전면에서 멀어졌습니다. 황정민과 오달수의 <국제시장>이 이런 덕수들에 대한 후세대의 세련된 헌사이며 조금은 일방적인 변론일 수밖에 없음이 이 때문입니다.   



영화에 담을 수 없었던 또 다른 덕수들이 노인에 접어든 지금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시장>은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헌사이자 존경의 표시인 다니엘 데이 루이시 주연의 <아버지의 이름으로>이 관객에게 주는 감동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영화를 보고 자신들이 저지른 비뚤어진 권력암투의 역사를 반성해야 할 조중동과 보수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국제시장>에 이념적 색칠을 덧칠하는 것은 빈곤에 처해 있는 오늘의 수많은 덕수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이나 욕보이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독재자를 포장하는데 동원됐던 방식으로, 두 번째는 독재자의 딸을 재포장하는데 동원되는 방식으로. 



단지 시대적 환경이 다를 뿐입니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너무 부족했고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어서, 두 번째는 민주주의를 너무나 당연시 여긴 데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어서, 조중동과 그들의 똘마니들이 덕수 세대와 IMF 이후 세대들도 얼마든지 욕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처하는 덕수 세대들과 일베충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바라지만 기대난망인 것인 현재까지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제시장>이 덕수 세대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불러올수록, 6070세대들은 그들이 <국제시장>의 주인공이었을 때의 나이와 엇비슷한 현재의 2030세대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그런 간극을 파악하고 있는 조중동과 그들의 똘마니들에게 <국제시장>은 보수층의 결집과 일베의 숫자를 늘릴 비옥한 텃밭이나 다름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잘 차려진 밥상에 숫가락만 얹으면 되고, 청와대는 국정난맥상의 진원지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젓가락만 얹으면 되고, 조중동은 몇 편의 관련 기사로 농약을 뿌려주면 그만이므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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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5 06:40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05 16:56 신고

      네, 가서 자세히 봤습니다.
      저도 한 번 시도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1.05 09:55 신고

    본래의 취지,뜻을 제 맘대로 호도하고 있군요
    정말 어처구니 없습니다
    조중동..그리고 이 정권..

    • 늙은도령 2015.01.05 16:57 신고

      네, 원래 정치란 것이 그런데 조중동은 더욱 악용하지요.
      정말 무서운 놈들입니다.

  3. 뭐눈에는뭐만 2015.01.11 23:51 신고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개봉후 악평 퍼부은게 한걸레 오마이같은 좀비찌라시더만...ㅉㅉㅉ 오죽하면 문재인의원이 애국에 좌파우파가 어디겠냐라고 했겠나.



제가 본 유럽 영화 중 ‘멋대로 하라’와 ‘시네마 천국’ ‘인생은 아름다워’ ‘레옹’ 등등보다 더 좋은 영화로 평가하는 것이 ‘베를린 천사의 시’입니다. 이 영화는 영원히 사는 천사가 서커스에서 공중곡예(천사 역할)를 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후 반드시 죽는 인간으로 환생해,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제3자였던 천사가 인간으로 환생한 첫 경험에서부터 여인이 공연 중이던 장소에 도착했더니 서커스단이 이미 떠난 부분까지입니다. 상당히 긴 시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적인 영상은 그 다음의 10분이 없었다면 거의 완벽한 영화였는데, 그 10분의 사족이 영화적 가치를 대폭 삭감시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천사에서 인간이 돼 처음 느낀 감각은 통증이었습니다. 그가 인간세계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신이 마련해준 황금갑옷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느낀 첫 번째 감각은 지독한 아픔이었고, 그가 처음 만진 물질은 피였으며, 그가 처음 본 색은 붉은색이었습니다.





그가 인간으로 깨어난 곳은 냉전시대의 상징이자 분단의 경계선인 베를린 장벽이었습니다. 그는 또 신이 준 황금갑옷을 사기꾼에 속아 헐값에 팔았고, 그 돈으로 제일 먼저 사먹은 것이 쓰디쓴 블랙커피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삶이 화려해보이지만 실제는 고통과 불행의 연속임을 보여줍니다.



항상 흑백(선과 악, 삶과 죽음)으로 보이던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보였다는 것도 삶에서의 관점이란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춥고 음산한 베를린의 날씨도 천사였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고, 짝사랑한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셀레임으로 가득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여인이 서커스를 하던 곳에 도착해보니 그녀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그곳에 모여 있던 아이들을 통해 서커스단이 어디로 갔는지 알게 됐고, 그는 아이들이 준 단서를 기초로 여인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서커스단이 어디로 갔는지 알게 된 것에서 끝냈다면 완벽한 영화의 반열에 올랐을 것입니다. 인생은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살만 한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이 여인을 찾는 것까지 영화를 끌고 간 것은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남겨준 그 지점에서 끝났어야 영화적 완성도는 물론 관객에게 여분의 재미를 주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무튼 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영화가 미국으로 건너가 리메이크 된 결과가 ‘시티 오브 엔젤’입니다. 당시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두 배우(니콜라스 케이지와 맥 라이언)가 주연을 맡았지만, 어떤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영화도 미국으로 넘어가면 극도로 단순화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시티 오브 엔젤’입니다.



영화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두 영화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마지막 10분만 없다면 롤랑 조페 감독의 인간 구원 시리즈 ‘킬링필드’ ‘미션’ ‘시티 오브 조이’보다 한 수 위거나,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인 ‘미션’과 비교할 수 있는 불후의 명작에 올랐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윤제균 감독과 투자사가 처음부터 ‘포레스트 검프’의 한국판을 만들겠다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고, 최고의 배우들을 캐스팅한 ‘국제시장’은 ‘포레스트 검프’의 오마쥬이자 한국판 리메이크의 관점에서 보면 100점 만점에 90점은 줄 수 있는 잘 만들어진(웰 메이드한) 블록버스터입니다.



사회와 계속해서 불화하는 덕수(황정민 분)는 지적 장애가 있었던 검프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덕수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하는 직선적이고 우직한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관통했다면, 검프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직선적이고 낙관적인 삶을 통해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했습니다.





검프가 평생을 사랑한 여인이 있어 계속해서 달릴 수 있었다면, 덕수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어 평생을 헌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검프가 미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제국의 역사를 관통했다면, 덕수는 한국 현대사의 주변부에서 질곡의 역사를 관통했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는 검프가 미국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면, 외골수 덕수는 한국의 산업화를 대변해주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유일 제국이자 예외국가로서의 미국을 그렸다면ㅡ정신지체 장애인이라 해도 미국인이면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ㅡ‘국제시장’은 동족상잔의 비극적 피난민에서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 베트남에서의 장사를 거쳐 국제시장에 이르는 과정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렸습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형편없이 리메이크한 ‘시티오브엔젤’에 비하면 ‘포레스트 검프’의 구조를 모방한 ‘국제시장’은 원작에 뒤지지 않는 짜임새를 보여줌으로서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마땅히 칭송받아야 했지만, 모든 공을 독차지한 독재자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와 대가도 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헌사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아쉬운 것은 원작을 리메이크하거나 모방한 작품들이 모태가 된 작품에 비하면 전작이 가지는 철학적이고 미적인 덕목을 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국제시장’을 관람할 때는 철저히 그 시대의 주역들에 몰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최대화하면 산업화 주역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어우러져 영화적 감동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국제시장’이 지금 같은 열기를 이어간다면 애국심 마케팅, 방송과 언론의 집중조명, 압도적인 좌석점유율, 단체 관람 등으로 최고 흥행기록을 가라치운 ‘명량’을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국제시장'을 이념적으로 접근할 생각은 없지만, 한국 사회의 보수화가 얼마나 많이 진행됐는지는 앞으로의 흥행기록에서 알 수 있을 듯싶습니다.



다만 그렇게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다음에는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갈수록 커지는 부의 불평등과 새로운 엘리트주의의 등장 및 신분이동이 차단된 차별의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 주변에서 또는 우리의 시선 밖에서 지독한 빈곤과 고독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국제시장’의 낙오자들을 살펴주십시오.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가장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시장’에 내재해 있는, 또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암묵적 합의와 의도적으로 배제된 역사의 실체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뒤섞여 버렸고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에 점령된 대중문화 시대에, 우리 시대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려면 ‘국제시장’은 영화관 안에서의 감동으로도 충분할 듯합니다.



‘국제시장’에서 다룬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을 가지고 정반대의 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투자비가 부족할 터이고, 상영관 확보가 힘들 것이며, 언론과 방송의 조명도 받지 힘들 것입니다. ‘국제시장’에 들어간 투자비의 반만 있어도, 상영관수(좌석점유율)의 반만 배정돼도 ‘국제시장’ 이상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음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입니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을 IMF세대와 삼포세대가 리메이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년쯤 후에 두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이 21세기의 ‘국제시장’을 만든다면 어떤 사건들이 선택되고, 어떤 스토리로 녹여서, 어떤 해석을 영상에 담을지 궁금합니다. 성장과 개발이 아닌 분배와 공정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올 것은 분명합니다.



후세대가 앞선 세대의 피와 땀과 희생의 열매들을 따먹으며 발전했던 인류의 역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퇴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불행한 세대들이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처럼 앞선 세대에 대한 헌사를 영상을 통해 재현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뻔뻔한 것은 아닐까요?





그들은 '베를린 천사의 시'의 주인공이나 '포레스트 검프'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자신의 인생 모두를 포기할 여력도 없고, 결혼과 출산까지 포기한 세대라 인류의 진화를 따라가기도 힘들고 미래의 희망을 꿈꾸기도 힘듭니다. 덕수는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들의 후세대는 육체노동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숨막히는 스펙을 갖추고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합니다. 



덕수는 자신의 미래를 선택을 할 수 있었고, 돈을 벌어서 저축도 할 수 있었지만 그의 후세대는 선택 가능한 직종이란 비정규직이나 알바, 실업자 뿐이어서 저축은 꿈도 못꿉니다. 등록금 대출금과 이자를 갚느라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가족을 이루는 첫 단계인 연애조차 할 수 없습니다. 



IMF세대와 삼포세대가 리메이크하는 '국제시장'이 과연 윤제균 감독처럼 일방적 관점으로만 풀어갈 수 있을까요? 이들이 영화를 통해 앞선 세대에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헌사를 바칠 수 있을까요? 그들도 효도를 하고 싶어하고, 가족을 이루어 미래를 꿈꾸고 결실을 맺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자신의 인생역정을 녹여낸 '국제시장'도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의 척박함 속에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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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4.12.31 08:30 신고

    국제시장도 일단 자연스레 노이즈 마케팅이 되 버렸네요
    천만 영화가 될지 두고 볼일입니다
    명량까지는 힘이 없어 보입니다

    전 에전의 영화는 잘 모릅니다
    이제 서서히 알아가는중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31 12:24 신고

      국제시장은 잘 만든 영화인데 정치적 마케팅이 가미되니 노이즈로 변했습니다.
      아무튼 새해에는 좋은 시간 되십시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 할 수 있는 ‘국제시장’을 두고 벌어지는 각종 논란을 보고 있자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중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포레스토 검프’는 빈곤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인 미국에서만 가능한 영화라면 ‘국제시장’은 일제가 남겨놓은 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는 한국에서만 가능한 영화입니다.





전체화하는 성향이 있는 국가와 경제성장이 유일한 가치인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대단히 성공한 나라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건너 띈 채 흥남철수에서 시작되는 ‘국제시장’은 지나치게 과장된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규모 14위에 오른 경제성장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언제나 뛰어나 연기를 보여주는 황정민과 오달수가 이끌어가는 ‘국제시장’이 산업화의 숨겨진ㅡ또는 정치적으로 동원되거나 그 이유 때문에 지나치게 축소된 이름 없는 주역들에게 바치는 헌사임은 그래서 당연합니다. 오로지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그분들에게 저 또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의 삶을 수십 년 간 지켜본 필자이기에,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한국을 경제규모 14위의 선진국으로 만든 진정한 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극소수의 승자나 강자의 기록이 아닌 절대다수의 패자와 약자의 기록이어야 한다면, 한국 산업화는 그들의 피와 땀, 희생의 기록입니다.





헌데 말입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그들의 대부분이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빈곤이 그들이 그렇게 지키려 했던 자식과 손주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인빈곤과 복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못하다는 통계가 나왔고, 자식들은 낀 세대로 외면받고 있으며, 손주들은 88만원 세대나 삼포세대라고 불립니다.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라는 ‘국제시장’의 주역들 중 과연 몇 %가 그들의 피와 땀, 희생에 걸 맞는 대가를 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을 누리고 있을까요? 국가는 세계 최고의 빈곤국ㅡ전쟁이 끝난 해의 통계니 그럴 수밖에 없다ㅡ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음했지만,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후손은 그에 합당한 삶의 질을 누리고 있을까요?





‘국제시장’이 산업화 주역들에 대한 헌사로서 충분한 영상미를 담아냈지만, 여전히 고달프고 힘겨운 그들의 현실은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윤제균 감독이 오로지 그들에 대한 헌사만 얘기하고 싶었다면, 그는 대단히 성공한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한국을 분배가 아닌 성장의 관점에서만 보면 대단히 성공한 나라인 것처럼.



'포레스토 검프'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람보'와 '록키' 등을 영화적 재미로만 볼 수 없었던 것은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을 영화적 재미로만 볼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흥남철수부터 낙동강 넘어까지 이어진 피난행렬 때 미국 B-29의 무차별 폭격에 저희 어머님 친척분들이 돌아가신 것처럼, 현대사의 질곡을 넘기지 못한 분들도 많고 노력의 대가를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분들은 더더욱 많기 때문입니다. 

      



P.S. 영화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과포장된 ‘해운대’와 비교하면 ‘국제시장’이 낫지만, 윤제균 감독이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평가는 동의하기 힘드네요. 윤 감독이 보수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지만, 아직까지는 영화로 보여주는 철학적 깊이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비해 너무 떨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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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4.12.30 05:08 신고

    성장과 분배... OECD 몇법째니 국민소득 얼마니 한느 수치 노름... 민초들에게는 그림 속에나 있습니다.
    분배없는 성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림의 떡입니다.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작품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30 05:50 신고

      네, 그런 영화가 잘 만들어진 형태로 나왔으면 합니다.
      문제는 제작비와 상영관 확보인데 박근혜 정부 4년차를 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제시장과 정반대의 시각에서 현대사를 다루고 싶은 영화사가 있다면 제가 시나리오도 써줄 생각이 있습니다.
      영화광이었고 지금도 영화광인 저로서는 정말 녹여내고 싶은 한국 현대사의 내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30 08:27 신고

    국제 시장 영화를 가지고 보수층에서 이용하는듯 합니다
    제가 보는 메시지는 "아버지"였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보면 당연히 원래의 색깔을 차단합니다
    만일 윤제균 감독이 그러한 의도였다면 영화의 많은 부분을
    다르게 표현할수도 있엇을겁니다

    보수들이 변호인에 대항하고픈 마음으로 이 영화를 이용한다는
    느낌입니다
    거기에 진보들도 덩달아 춤추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30 11:32 신고

      영화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는 잘 만들었고 산업화 주역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그분들이 가난하고 자식과 손주들이 빈곤의 대물림에 처한 상황을 말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런 부분을 강조해 노인빈곤과 청년실업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찬사가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수천 배 더 해야지요.
      헌데 이 영화는 그분들에 대한 헌사로서는 최고이지만, 그것으로 또 다른 현실에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그분들을.
      전 그것이 답답할 것입니다.

  3. 바람 언덕 2014.12.30 12:09 신고

    요즘 논란이 많네요, 이 영화.
    보질 않아서 글로 옮기진 않았습니다만, 대충 보니.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히더군요.
    .
    .
    .
    올해도 하루 밖에는 안 남았네요.
    마무리 잘 하시고, 멋진 새해 맞이하시길...

    • 늙은도령 2014.12.30 12:11 신고

      영화는 좋은 영화입니다.
      헌데 영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면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헌사가 갈등을 더 부추기는 원인이 됩니다.



심연 같은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장그래는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했습니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회한의 눈물을 삼키면서 장그래는 ‘죄송합니다’만을 되풀이했습니다. 장그래에게는 너무나 잔인했던 오 차장의 퇴사는 그렇게 미생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의 잔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tvN 방송화면 캡처



오 차장이 겪어야 했을 마음고생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컸을 텐데,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가 감당해야 했을 심적 부담은 또 얼마나 컸을까요? 가슴 한 쪽에 언제나 사표를 담고 사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해도 장그래의 오열은 오 차장을 떠올리는 매 장면마다 ‘죄송합니다’를 되풀이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누구의 말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미생도 완생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오 차장은 사직서를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장그래는 그렇게까지 오열하며 ‘죄송합니다’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쿨’할 수 없는 것이 직장인들의 현실이며, 장그래의 하루하루입니다.



                                                           tvN 방송화면 캡처



그럼에도 장그래는 오 차장 같은 상사를 만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실의 기업에는 이런 상사가 없다고 해도 수없이 많은 미생들이 그런 꿈마저 꿀 수 없다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틸까요? 일에 미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해도, 취업도 포기한 수많은 장그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 차장의 말처럼 때로는 끝을 알아도 시작해야 하는 것들이 많듯이, 우리네 삶은 끝을 알아도 또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던 시절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은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tvN 방송화면 캡처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는 경구가 치료 불가능한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지옥 같을 수 있겠지만, 오 차장을 떠나보낸 장그래의 서러운 오열과 가슴 저미는 ‘죄송합니다’가 내일 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음이 우리네 삶이겠지요. 



오 차장에 대한 죄송함을 억겁의 무게처럼 짊어지고 초라한 방으로 돌아온 장그래의 오열이 어제 떠나간 사람들이 그렇게 열망하던 오늘이라도, 살아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다시 시작해야 할 냉혹한 현실의 또 다른 장그래에게 작은 격려와 보잘 것 없는 응원이라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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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4.12.20 09:25 신고

    사람들이 tv를 보면 전 tb를 안봐서요 좋은하루되세요

  2. 공수래공수거 2014.12.20 13:37 신고

    어제 잠깐 18화,19화를 보았는데
    제가 겪었던 상황들과 비슷한 내용들이 있더군요
    몰아서 한번 봐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20 14:55 신고

      드라마적이기는 하지만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람들에게는 참 고마운 드라마입니다.
      직원의 시선에세 기업을 다룬 드라마는 미생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불륜과 막장, 연애질과 재벌의 악행만 가득한 비현실적 드라마들이 직장인들의 힘겨운 하루하루를 매도했으니까요.

  3. 걱정마시오 2014.12.20 15:49 신고

    예전에도 직원의시선에서 기업을 다룬 드라마가 있었죠
    tv손자병법이라고...유비 관우 장비...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구조조정이 없었던 때라서 스토리가 코믹했었죠
    미생은 살벌한가 보네요
    하긴 강산이 두세번이나 변했으니 드라마가 안 변하면 이상한거죠
    좌우지간 살벌한 세상입니다
    정신차리고 삽시다

    • 늙은도령 2014.12.20 17:07 신고

      기업이란 곳이 원래 그래요.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그것이 더욱 심해졌고요.
      비정규직과 실업자만 늘어나는 경제성장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영화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결과란 없다고 해도 대종상처럼 선택이 제한돼 닫힌 느낌의 영화상과, 청룡상처럼 선택이 다양해 열린 느낌의 영화상이 있습니다. 대중문화가 내적 검열의 한계를 넘나들며 예술적 다양성과 대중의 욕망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이라면 다양한 선택이 돋보이는 청룡상이 대종상보다는 보다 축제다워 보입니다.



                                                 


올해의 대종상과 청룡상을 비교해보면 레드카펫을 빛냈던 여배우의 의상에서,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최우수작품상까지 어떤 영화제가 예술성과 상업성이 교차하는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상자와 수상자 위주의 대종상에 비해 후보를 비롯해 다양한 연기자들이 참석한 것만으로도 청룡상은 대중문화의 꽃인 영화제의 의미를 잘 담아냈습니다.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명량>이 거의 모든 상을 휩쓸어 버린 대종상에 비해, 방송과 언론의 조명 없이도 천만 관객을 넘어선 <변호인>이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송강호) 등 4관왕을 차지한 것은 다양성과 열린 소통을 중시하는 청룡영화상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결과였습니다. 





특히 35회 청룡영화상의 히로인인 여우주연상은 파격적 선택이 돋보이는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전도연, 김희애, 손예진, 심은경이라는 쟁쟁한 후보들이 즐비한 가운데, 밀양성폭행 사건을 다룬 독립영화인 <한공주>에서 열연한 천우희가 수상자로 발표되는 순간의 짜릿함과 하염없는 눈물 속의 수상소감은 청룡영화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었던 천우희의 눈물은 희생당한 여고생의 영혼이 그녀의 몸을 빌려 흘리는 눈물 같았고,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라며 입을 연 후 “앞으로도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관심과 가능성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수상소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 공룡이 독점하고 있는 영화생태계에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작은 위로와 열악한 환경에 굴복하지 말라는 작은 격려가 됐습니다. 





35회 청룡영화상은 대중과 다양한 영화와 배우로 소통하려는 열린 선택의 미덕을 보여주었습니다. 거대한 기획의 허리우드도 독립영화와 예술영화가 없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갈수록 자본의 논리만 강화되고 있는 한국 영화생태계에서 천우희 여우주연상 수상은 상상력의 다양성이 한국영화의 경쟁력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공주>를 가슴 아프게 관람한 영화광으로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천우희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꽃다운 희생자를 열연한 천우희씨, 유명한 배우만 큰상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영화가 대중이 꿈꾸는 어떤 것이라면, 꿈을 연기하는 배우는 꼭 유명할 필요는 없답니다. 님의 연기는 충분희 훌륭했고, 상은 그에 합당한 관객의 선물이며,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는 대중의 약속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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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4.12.18 08:52 신고

    어제 인터넷검색하다 보긴했는데 여우주연상 한공주 ㅋㅋ 좋은하루되세요

  2. 공수래공수거 2014.12.18 09:07 신고

    한공주 좋은 영화입니다
    밀양여중생 사건을 영화화 한...
    다만 후보작의 손예진의 작품이 그대로 해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저는 신인 여우상 받은 김새론이 좋았습니다
    도희야..영화도 참 좋은 영화입니다

    • 늙은도령 2014.12.18 09:10 신고

      손예진은 대종상에서 받았으니 만족하겠지요.
      김새론 영화는 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다양성은 영화의 생명입니다.

  3. 어린나그네 2014.12.18 22:09 신고

    오늘도 머물렀다 많은 영감받고 갑니다~



오늘 방송된 ‘미생’ 18화는 드라마적으로 볼 때 가장 극적이라 할 만큼 흡입력 있는 내용이 전개되었습니다.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를 정규직으로 올리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꺾고 최 전무의 라인으로 다시 들어가는 오성식 차장의 결단은 이제는 거의 볼 수 없게 된 직장상사의 아름다운 덕목을 보여줬습니다.





대기업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세 가지 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하나는 직속 선배인 사수를 잘 만나야 합니다. 두 번째는 팀의 운명을 결정하는 부서장을 잘 만나야 합니다. 세 번째는 부서들을 총괄하는 부문장(보통 전무나 부사장이 맞는다)에 이르는 라인을 잘 타야 합니다.



‘미생’에서는 대리로 대표되는 사수들이, 직급에 비해 너무나 많이 알고 팀에서의 비중이 상당히 크지만, 현실에서도 직속 사수(이런 면에서 볼 때 김동식 대리는 좋은 사수다)를 잘 만나는 것은 신입사원에게 성공으로 가는 첫 번째 토대입니다. 사수를 잘 만나면 정글이기 일쑤인 회사에 빨리 적응할 수 있고, 사수의 도움 하에 어떻게 해야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사수의 능력이 좋으면 승진으로 가는 길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됩니다. 신입사원에게 방향을 잡아주고 맥을 짚어주는 사수는 등불 같은 존재입니다. 그 사수도 직속 사수의 도움 하에 그 자리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상호작용 속에서 낮은 단계의 라인이 형성됩니다.



신입사원이 성공할 수 있는 두 번째 운은 팀장(보통 차장과 부장)을 잘 만나야 합니다. 팀장은 '미생‘에서처럼 업무를 따오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 현실화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팀장일수록 이익이 많이 남고,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업무량은 적은 프로제트를 고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대기업의 경우 한 부문은 여러 개의 팀이 있어서 업무의 비중과 팀장의 능력에 따라 부문에 배당된 사업비 확보가 달라집니다. 흔히 말하는 업무추진비를 놓고 다른 팀장과의 경쟁에서 최대한 확보하고, 업무의 크기에 따라 능력 있는 팀원을 늘릴 수 있으며, 승진을 좌우하는 팀별 업무고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여러 팀으로 이루어진 부문, 즉 라인을 잘 타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팀장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팀장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실에서 팀장에 이르면 좋던 싫던 일정한 라인에 들어서 있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라인이 고정불변인 것도 아니고, 오 차장처럼 게릴라식 생존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미생’의 신입사원들처럼 부문에 대한 선택권은 팀장에게도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속한 부문이 회사의 주력이면 최상이고, 부문장이 본부장을 넘어 CEO까지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면 회사에서의 성공은 어느 정도(부장) 이상은 보장이 됩니다. 중간에 회사의 실적 악화나 사업조정에 따른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미생’ 18화에서 그려진 오 차장의 선택은 일종의 라인을 타는ㅡ라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보통 회사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종합상사라면 드물게라도 일어나는 일이기는 합니다. 오 차장의 선택은 최 전무가 승진하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에 올라탄 것이지만, 그 칼날이 너무나 예리해 희생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생’ 18화에서 보여준 오 차장의 선택은 직장상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덕목이지만, 그 위험성 때문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특히 프로젝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보일 경우에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선택입니다(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라인을 강화하기 위한 최 전무의 선택이다). 계약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올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팀의 운명을 거는 상사를 만나는 것은 꿈같은 얘기입니다.





하지만 승부수를 던진 전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존재하는 라인에서 자유로운 회사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아닌, 상시 구조조정이 난무하는 대기업에서 오 차장 같은 상사를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이고, 장그래 같은 뛰어난 계약직 사원을 팀원으로 두기도 힘든 일입니다.



참고로 정말 현명하고 유능한 직장상사라면 승진을 앞둔 부하직원이 있으면, 실적을 낼 확률이 매우 높은 일을 준비해두었다가 성사시켜 그 공을 해당직원에게 돌려서 승진을 관철시킵니다. 이미 진행 중인 업무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담당직원으로 배정해 승진을 이끌어냅니다. 



라인은 그렇게 일정 부분 강화되고, 당사자의 인사고과도 회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현명한 사수가 똑똑한 후배를 키우고, 그 후배가 영글어갈수록 사수의 승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렇게 끌어주고 밀어주는 상호 공존이 가장 현명한 회사 생활입니다.   





아무튼 ‘미생’ 18화는 오 차장과 장그래의 케미가 최고조에 이른 명국이었습니다. 권부의 핵심에서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2014년의 마지막에, 그나마 ‘미생’ 보는 맛에 한 주를 버팁니다. '미생'이 시즌제로 간다면 한 번은 꼭 한영이의 입장에서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물론 재벌의 수준에 이르면 전문경영인조차 일년에 오너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고, 오 차장과 장그래처럼 일하면 제 형제처럼 40대에 골병 들기 일쑤고, 제 친구처럼 돌연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마십시오. 기업은 이익이 되는 한에서만 임직원을 데리고 갑니다.



오너의 가족이 아닌 이상 모든 임직원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오직 실적으로만 말하는 기업의 속성상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대기업의 매력도 예전과 같지 않고, 무엇보다도 상시적 구조조정 때문에 안정된 직장이란 신화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창조경제니 유망산업이니, 아무리 떠들어도 기업의 현실이란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오 차장이나 장그래처럼 일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승진은 고사하고 40대에 중병에 걸려 구조조정될 확률만 높아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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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4.12.15 09:27 신고

    정말 대기업에서는 소속 1차 부서장을 잘 만나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첫 상사가 20년을 좌우합니다^^



칸트(특히 《판단력비판》과  《숭고에 대하여》) 이래로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예술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이후로 벤야민과 아도르노, 푸코와 부르디외 등을 거치면서 미학이란 이름으로 보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고민들이 예술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으려 했습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이 그림에서 봤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참혹한 인류의 미래를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언어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대중매체와 분업의 논리를 극대화한 기업을 앞세워, 냉혹한 자본주의가 돈과 조직의 논리에 따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늦춰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파괴해야만 진행이 가능한 자본주의의 본질과 이를 포장해야만 하는 대중매체의 본질을 꿰뚫어봤던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대의 문화는 매스미디어로 대표되는 대중매체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칸트에 의해 철학이 하나의 학부로 내려앉은 것처럼, 예술이 문화의 한 부류에 속한다면 이들의 희망은 이제 종지부를 찍은 것 같습니다. 대중매체가 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미학은 고사하고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나는 일조차 힘겨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압축성장을 신의 축복처럼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자본의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첨병 역할에 충실한 대중매체에게서 일말의 희망이라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을 넘어 어리석음의 극치이겠지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미생’은 미운오리 새끼 같은 존재입니다.



자본의 논리가 집적된 대기업을 비정규직과 상시 구조조정의 대상인 직원들의 눈높이에서 다루고 있는 ‘미생’은, 미학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좋은 드라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연출력의 디테일과 캐릭터의 힘이 돋보이는 '미생'은 가장 자본주의적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종합상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을 보여줍니다.





대기업을 소재로 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가 막장을 넘어 비현실과 왜곡과 저급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미생’이란 드라마는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하기까지 합니다. 원작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미생’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과거보다 더욱 열악해진 근무환경이 성장할수록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16국에 나온,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인물이 ‘안은 전쟁터이지만 밖은 지옥’이라는 대사는 가히 일절이라 할 만합니다.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지배당한 현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할 정도입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값싸게 팔아야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이 그 밖의 모든 곳보다 안전한 곳이 된 현실을 압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사는 21세기의 인간이란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개인의 노동력(과 가족)을 쥐어짜 오너 일족과 대주주의 배를 불려주는 대기업이 아니면 제대로 돈을 벌수도 없고, 안정적 삶도 불가능한 것을 말해줍니다. 은퇴하거나 정리해고 당한 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산업혁명 이후 250년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인간은 돈이 없으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됐습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약속한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였음이 너무나 분명해졌음을 오늘의 명대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족은 스위티홈이 아니라 지옥의 필수요소가 됐구요.



장그래를 비롯해 ‘미생’에 나오는 신입사원들의 능력이란 놀라울 정도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업이 진정한 지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그래 정도의 능력(나머지 세 명도 마찬가지이지만)을 지닌 신입사원이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지옥이지 다른 무엇이겠습니까? 



장그래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미생’을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지만, 글을 마치며 제가 ‘미생’을 미운오리 새끼라고 한 것에 대해 짧게 부언할까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과 결말이 어떠하던 간에 ‘미생’은 은연중에 기업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중 드라마로 담아내려니 그럴 수밖에 없음은 압니다. 검열에서 벗어난 드라마는 방송을 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대중매체는 내재화된 자체 검열의 수준에서 현실을 담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대중매체가 그려내는 현실이란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미생’이 미운오리 새끼임은 이 때문인데, 드라마가 끝나면 ‘미생’이 속박된 백조의 꿈을 접은 자유로운 오리인지 알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어리석을지 모르겠지만 기업이 지옥일지언정 기업의 밖은 지옥이 아니길 기원해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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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ns 2014.12.07 07:24 신고

    자본주의가 사람이 가난에 허덕이거나 배고파서 죽는 현상을 없앴습니다.

    인류의 경험과 지식이 묻어나는 제도죠.

    이기심을 긍정적으로 본 자본주의는 경쟁을 바탕으로 꽃을 피웁니다.

    소수가 능동적이고 나머지가 수동적인 시대에 살았다면 자본주의로 인해서 모두가 능동적으로 살아야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죽게됩니다.

    이러한 경쟁에 대중은 공정한 경쟁을 원하게 되고 사람이 시장의 한복판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시장에서 상품이되고 스펙이되며 성형이 됩니다.

    이기심이 허락되는 집단은 생태계와 같습니다.

    장그레를 조직에서 허락할 수 없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정한 기회에 대한 대중들의 눈 때문입니다.


    원래 세상은 지옥과 같습니다.

    예전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으며 미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인류는 가둬져서 안락하고 편하게 길러지기를 포기하고 세상속의 자유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있기에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07 08:28 신고

      그래서 자본주의의 결과가 전 세계 인구 중 40%에 이르는 30억 명이 1~2달러 이하로 살아게 된 것인지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수없이 소모하고도 이런 결과가 잘 된 것인지요?
      아담 스미스가 아주 작은 지역의 시장을 보고서 터무니없는 확대를 감행한 국부론의 내용이 단 한 번도 성립된 적이 없었습니다.
      자본주의는 그 시작부터 파괴를 전제로 한 성장을 택했고, 그 바람에 인류 역상 유래없는 불평등을 만들어냈습니다.
      자본주의의 초창기부터 그 냉혹한 본질을 파악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고발과 저항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 만큼 온 것에 불과합니다.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넘어 이제는 인간조차도 자본의 노예가 됐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조화를 이룬다는 아담 스미스의 형편없는 착각은 이미 논의 대상에서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자본주의는 죽음의 논리이지, 창조의 논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자본주의를 미화하려고 해도 상위 1%가 전 세계 자산의 45%를 차지하는 불평등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경제규모 세계 14위인 한국에서도 점심을 굶는 사람이 수십만 명인데 무슨 자본주의가 자유의 선택이라 말할 수 있는지요?
      자본주의란 자본의 논리에 인간을 수동적으로 길들이는 체제지 개개인이 선택해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선택이 제한된 곳에서 정말로 행복하고 인생이 아름다우려면 악마의 탐욕을 자유시장의 어둠에 숨겨둔 자본주의부터 거둬내야 합니다.
      공생과 공존이 가능하고, 진정한 자유를 선택하려면 다양한 삶의 형태가 가능해야 하는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마저 작동 불능으로 만든 이후로는 인간의 삶이란 노예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 체제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선택은 없습니다.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후에나 개인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님이 말하는 선택이란 체념이고 길들여지는 것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이 자유로운 선택이라면 그것은 무력함의 표현일 뿐입니다.
      원래 세상이 지옥과 같다면 세상을 없애야지요.
      그래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죠, 거기에 길들여지지 말고.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08 08:45 신고

    요즘 이 드라마가가 화제이더군요
    이야기만 들었는데 한번 몰아서 봐야겠습니다

  3. guqrnp 2014.12.08 09:22 신고

    요즘 윤태호처럼 웹툰으로 현실을 더 잘 보여주고 있네요.
    드라마는 막장...그러나 오만과 편견은
    우리나라 현실을 잘 보여 주고 있던데요?

    • 늙은도령 2014.12.08 18:31 신고

      아... 제가 보는 드라마가 미생 뿐이라서요.
      지상파 드라마는 잘 모릅니다.

  4. 덕산 2014.12.08 12:27 신고

    미생이후 사석이라는 제목으로 특별 5부작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미생보다 더 많은 여운을 남겨 주는 것 같았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08 18:34 신고

      나중에 한 번 봐야겠네요.
      제 조카가 5년쯤 후에는 웹툰 작가가 될 것 같은데 그때 '미생'보다 더 생생한 대기업 얘기를 해줄 생각입니다.
      건강만 허락해주면 우영워드를 끝낸 후에 시작하려고요.



지난 20일 SBS '한밤의 TV연예'와 TV조선 등를 통해 송혜교가 최근 3년간 25억 원에 해당하는 세금을 탈루한 것이 보도됐다. 탈세의 방법이 너무 허무맹랑해 모범납세자로 3년간 세무조사를 유예받았다고 해도, 아무런 증빙서류도 없이 서류 한 장으로 탈세를 하고자 했다면, 이는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과 연루시킨 의혹 제기도 그가 송혜교의 스폰서라면 모를까 지나친 비약이자 방탄국회를 물타기 하기 위한 음모론적 냄새가 진동한다. 아직까지 그 진실 여부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송혜교 측은 ‘이미 2년 전에 끝난 일로, 담당 세무사의 잘못이 원인이며, 관련 사실을 국세청으로부터 통고받은 후 세금은 모두 완납했고, 탈세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마이데일리에서 인용



물론 송혜교는 전후 사정이 어떠하던 간에 "과거 과오는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다. 공인으로서 당연히 부주위한 일처리로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도 죄송하고, 세금 조사 요청을 받고 당황스러웠다"며 "문제를 파악하고 즉시 남은 세금을 납부하고 어떠한 의혹도 남기지 않고자 했다. 모든 건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함으로써 공인으로서의 팬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송혜교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송혜교 소속사는 담당 세무법인에게 소송을 걸기 위해 내용증명도 보낸 상태라고 한다. 배우가 복잡한 세무업무를 대행할 세무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에 고액의 대행비를 마다하지 않는다. 필자도 사업을 하면서 세무사의 도움을 받았었다.



                                                                    여전히 매력적인 송혜교



한때는 송혜교의 팬이었던 필자는 누구의 말이 옳은 지 알 수 없다. 솔직히 누가 옳은 지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필자가 궁금한 것은 왜 하필이면 이제야 이런 사실이 언론을 탔느냐는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박봄에 이어 이번에는 송혜교가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구글이미지에서 인용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사안들이 있을 때마다 연예인 관련 의혹들이 터져 나오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집권세력의 레퍼토리일까? 아니면, 휘발성이 엄청난 정치적 사안 때문에 연예 관련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며칠만 지나면 송혜교가 제2의 박봄 같은 희생양인지 아닌지는 분명하게 판명될 것이다. 





하지만 송혜교의 세무사에게 잘못이 있고, 송혜교는 관련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녀가 입은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SBS의 ‘한밤의 TV연예’나 TV조선이? 천만에 말씀. 송혜교가 공인이라는 것을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 연예인에게도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송혜교가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세금을 완납한 것과 고위공직자들이 인사청문회에 나오기 직전이나, 진행 중, 또는 장관 등에 임명된 이후에나 탈루한 세금을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에 대한 최초의 정보 제공처가 방탄국회를 열어 지탄의 대상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이거나, 그의 뒤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누구던 간에, 송혜교는 여야를 막론하고 저급하고 치사한 이 땅의 위정자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희생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연동해서 송혜교의 탈세를 얘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선정적인 접근방식이다. 그녀는 세무조사를 3년간 유예받은 것이지 아예 면제받은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본질적으로는 교통사고와 같다고 말하는 자들이 집권여당에는 여러명이나 있으니, 정치적 이해에 따라 송혜교처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인권이란 개념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표면적인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곳에서 인권침해가 밥먹듯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며,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보는 것도 저급한 인권의식에서 나오며, 유족들을 폄훼하는 댓글이나 SNS의 글들도 모두 다 파렴치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이런 반인륜적 범죄는 친고죄의 범위를 넘어서며, 이런 일들이 만연할 때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인권은 아예 말살될 위기에 처한다. 송혜교에 대한 의혹제기의 본질이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르며,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이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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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그를, 자신들의 진정한 캡틴이자 친구이며 스승인 그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한 자신들의 젊은 날에 무엇이 진정한 교육이고, 누구도 아닌 나만의 걸음으로 가야 하며, 카르페 디엠 즉 현재를 즐겨야 하며, 언제나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하며, 평생을 추구해야 할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그의 수업방식은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임을 자각시켜 주었고, 서툴고 억압받고 있지만 여전히 푸르른 청춘에게 가슴 뛰는 하루하루를 선사해줬다. 





아버지의 압박을 견딜 수 없었던 친구의 자살도 그의 잘못이 아니다. 이 숨막히는 권위와 억압의 체제에 길들여진 채 그를 실패한 선생이자 스승으로 보낼 수 없다.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한 명의 학생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교장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책상 위로 올라선다. 그것은 억압의 체제에 대한 작은 항거이자, 처음 맛본 자유의 소중함을 이어가기 위함이며, 영혼없는 육체를 지닌 공부하는 기계로 체제의 엘리트가 되는 순탄한 길을 거부하는, 진정한 스승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있고, 마지막 인사이자, 학생들이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우뚝서는 순간이었다. 



                                                                       


다른 학생이 뒤를 이어 책상 위로 올라섰고, 그렇게 여러 명의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와 떠나는 스승에게 자유를 향한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아니 이제부터 시작됐음을 젊음의 패기로 보여줬다. 수업 중에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가서 짐을 들고나온 선생은 학생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고마움을 표하며, 안타까움이 담긴 밝은 웃음 속에 교실을 나올 수 있었다. 영화는 그렇게 끝났고 그 다음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관객들 모두가 책상 위로 올라선 학생들의 미래가 어떠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교육이란 그런 것이고, 뒤를 계산하지 않는 청춘의 순정한 용기와, 체제에의 순응을 요구하는 일방적 권위에 저항하는 정의와, 자유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그러한 것이었다. 고등학생에 불과한 어린 나이이지만 분명한 자아를 지닌 삶의 주체로서,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해 책상 위로 올라선 학생들은 떠나는 스승이 가르쳐준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지켜나갈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제 시작하는 그들은 앞으로의 삶도 능동적으로 살아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기득권과 체제가 요구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볼 것이며, 자살한 친구를 위해 세상을 좀 더 자유로운 곳으로, 충분히 살만한 곳으로, 언제나 사람이 먼저인 곳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캡틴, 오 마이 캡틴..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빈 윌리엄스가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우리 시대의 명배우가 지난 11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굿모닝 베트남' '굿윌헌팅' '사랑의 기적' '피셔 킹' '버드 케이지' '미세스 다웃파이어' '에이 아이' '후크' '더 앵그리스트 맨 인 브루클린' '바이센테니얼 맨' '어거스트 러쉬' '쥬만지' '박물관은 살아 있다' '등에 출현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로빈 윌리엄스의 갑작스런 사망(63세)은 그만이 가진 우수 어린 특유의 눈빛과 너무나 선하고 환한 웃음을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다는 뜻이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의 사망과 함께 알려진 그의 인생 역정은 화려하게만 보였던 할리우드 스타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그가 평생을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과 싸우면서, 최근에는 심장수술을 받고 건강 상의 위기를 극복했음에도 최후에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스타의 삶에 깊게 드리워진 그늘의 깊이를 추측하기도 만만치 않다. 유독 투명한 웃음을 많이 선사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의사 역할을 많이 맡었던 그였는데.. 그는 자신의 상처는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양한 종류의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활들이란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보여준 '피셔 킹'을 제외하면, 활달하고 밝은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에이 아이'와 '훗크'에서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작업했던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도 "로빈 윌림암스는 번개 같은 코미디의 천재로 우리의 웃음은 그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천둥 같은 존재였다"고 고인을 평가한 뒤, "나의 친구인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재능 있는 명배우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의 연기란 늘 그런 영혼의 울림을 지닌, 막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자유를 향해 파닥파닥 몸부림치는 그런 것이었다.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트위터에 올린 글처럼, 로린 윌리엄스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였다. 그가 영화와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연기는 현존하는 배우 중에 대체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통해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한 다재다능한 배우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와 '피셔 킹' '굿윌헌팅'과 '사랑의 기적'에서 보여준 연기들을 번갈아 보면 그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알 수 있다. '굿모닝 베트남'에서 보여준 다양한 목소리 연기란, 어느 배우도 흉내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남아 있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필자처럼 죽음에서 시작해 탄생으로 가는 삶을 살고자 해도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영원히 떨칠 수 없는 한계이자 투쟁의 대상이다. 평소 사랑하고 좋아했던 지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마다 가슴 한 곳이 뻥하니 뚫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곤 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매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죽음을 알고 나서 며칠 간 홀로 가슴앓이를 했는데,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도 비슷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원한 피터팬 같던 윌리엄스의 쓸쓸한 퇴장은 삶과 죽음이 만들어내는 영원한 딜레마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음을 말해준다.  





아케데미 시상식 재단은 공식 SNS계정을 통해 "Genie, you're free(지니 당신은 자유입니다)"라고 애도를 표했고, 윌리엄스의 딸인 젤다 윌리엄스는 아버지의 영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바쳤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내용을 차용했다. "사랑해요, 그리울 거에요. 하늘을 계속 볼게요...당신은 그들과는 다른 별을 갖게 될 거에요. 당신이 밤에 하늘을 바라보게 되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한 별에서 살고 있고, 그 별들 중의 한 별에서 내가 웃고 있을 거에요. 그러면 당신은 마치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에요. 당신은 웃을 줄 아는 별을 가지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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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산 2014.08.13 09:05 신고

    "죽은시인의 사회"에서 던져준 메세지 이 글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08.13 19:48 신고

      우리나라 교육자들이 실펀했으면 하는 영화였죠.
      공부는 평생할 수 있는데 자아의 정립은 어려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강요된 관점을 주고, 질서에 복종하는 것만 가르치면 미래의 삶은 자기 것이 되지 못합니다.


뉴라이트 출신으로, 친일 식민지사관을 옹호하는 서울대 윤리교육학교수인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끝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방송들을 검열하는 것이 목적인 듯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다이빙벨 논란을 일으켰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손석희의 진행방식을 문제 삼아 JTBC에 중징계를 내렸다. 이번 징계는 재승인 심사 때 벌점 4점이 부과되는 중징계(법정 제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위원장 박효종)은 7일 전체회의를 열어 세월호 참사 3일째인 4월18일 스튜디오 인터뷰 형식으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주장을 보도한 JTBC에 대해 ‘관계자 징계’ 조처를 결정했다. 이 대표는 당시 “구조 작업에 다이빙벨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전투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투입 후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자 곧바로 철수했다. 



방심위의 재적 위원 9명 중 5명의 청와대·여당 추천 위원들은 “대안 제시가 방송사의 의도이긴 했으나, 이 보도가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에 미친 사회적 혼란과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게 입힌 상처, 국민적 허탈감이 크다. 이후에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서 제24조2(재난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 제14조(객관성) 항목을 위반했다며 법정 제재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위결했다.



특히 청와대 추천 몫의 함귀용 위원은 불공정한 징계 논란을 무시한 채 지난달 방심위 산하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에 이어 이날(7일)도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보다 진행자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함귀용 위원이 손석희 앵커를 직접 겨냥한 것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가 분명하게 엿보였다. 그는 제재 수위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관계자 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음로써 불공정 징계 논란을 더욱 키웠다.






야당 추천 의원들은 물론, 청와대 추천 의원인 윤석민 위원도 함귀용 위원의 중징계 요구가 지나치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내보내는 JTBC 뉴스9과 손석희 앵커(보도부문 총괄사장)에게 보복성 중징계를 밀어붙였고, 박효종 위원장이 투표에 붙여 중징계가 결정됐다. 이로써 대한민국 방송 뉴스는 정부에 반하는 대안 제시는 물론, 정권에 불편한 보도를 내보내면 재승인 허가시 방송권을 잃어버릴 수 있는 독재국가 하의 열악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서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던 정부의 무능은 안중에도 없는, 그래서 감히 박근혜 대통령 각하를 비판하는 것들 중에 방송이 들어 있다면 모조리 제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함귀용 위원과 박효종 위원장은 타 방송사에도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출현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박효종은 교학사 교과서를 탄생시킨 교과서 포럼 출신이며, 함귀용은 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 위법이며, KBS와 MBC가 2003~2004년 제작한 송두율 교수 관련 보도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들이 배후에서 사주해 방송된 것이 아니기만 바랄뿐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던 자였다.





이로서 뉴라이트 계열에 의한 방송 기들이기와 비판언론 죽이기라는 반민주적 위협의 잔혹사는 또 하나의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방송통신심의회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들의 반민주적이고 편향적인 행태는 2014년의 대한민국이 권위주의 독재시대로 회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무한 퇴행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방송을 정권의 나팔수 정도로 인식하는 자들의 야만적인 행태로 언론의 자유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언론의 존재 이유가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사실도 이들에게는 성가시고 귀찮은 것일 뿐이다. 



정녕 중징계를 받고 방송계에서 퇴출시켜야 할 자들이 박효종과 함귀용 같은 언론 탄압자들이다. 친일 식민지사관을 주총하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를 좀먹고 있는 이들 같은 자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추악한 나라로 만들고 있다. 304명이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도, 짐승보다 못한 군대의 참혹한 폭력과 살인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산업재해도 이들 같은 자들이 방송에 재갈을 묻혀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에 의해 박효종과 함귀용에게 역사와 시대의 중징계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양심과 상식이라는 것이 티끌 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에 남은 얼마 안 되는 민주적 방송이라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국민이 느끼는 수치와 치욕을 해결해줄 단 하나의 기쁨이니, 저들이 방심위를 장악하고 있는 하루하루가 아까워 미칠 지경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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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편의 영화가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모든 기록이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한국의 블랙버스터 < 명량 >을 필두로, 손익분기점을 일찌감치 넘은 < 군도: 민란의 시대 >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일 상영 스크린 수가 1,000개를 넘어선다는 점에서도 압도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개봉했던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의 흥행과 비교해도 이 두 편의 한국 영화의 선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최고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 명량 >은 개봉일 당시의 스크린 수가 1,159개였지만 지난 일요일부터는 무려 1,586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대 상영 횟수가 무려 7,960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올해에 개봉된 한국영화로는 최대의 스크린 점유인데, 멀티플랙스들이 <명량>의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를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입니다. 





< 군도: 민란의 시대 > (이하 '군도')도 비슷합니다. 개봉 첫날의 스크린 수가 1,250개였지만, 26일에는 1,394개까지 늘어났고, 상영 회수는 <명량>에 버금가는 7,119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위대한 영웅인, 그래서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상업적인 영상과 뛰어난 시나리오로 멋지게 풀어낸 < 명량 >에 밀리기 전까지는, <군도>의 1주일간 독점했던 스크린 수는 1,000개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헌데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8월 현재 국내 스크린 수는 모두 2584개입니다. 결국 <명량>과 <군도>가 전체 스크린의 6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명량>과 <군도>가 잘 만들어진 영화여서 이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두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이 최고의 흥행신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판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가 '어떤 인사가 유명한 이유는 그가 유명한 인사였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떠오릅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이 두 영화의 스크린과 상영 횟수의 독과점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말해줍니다. 실제로 한국 영화의 점유율을 계속해서 올려주고 있는 두 영화와 전체 유료관객수가 10~20만을 넘은 두 편의 영화를 빼면 나머지 영화들의 스크린 확보수와 상영 횟수는 7%에 대에 불과합니다. 3일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상영 영화가 62편이니까 58개의 영화는 철저한 찬밥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니 다른 영화들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30~50만 명에 이르는 관객수도 기록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습니다. 같은 블록버스터인 <해무>와 <해적>마저도 희생양이 될 듯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곧바로 케이블채널과 영화전문채널로 넘어가거나 동시 상영을 하는 것으로 겨우겨우 투자금을 환수하는 실정이지만, 이런 스크린 수과 상영 횟수의 독과점은 한국영화계를 구조적으로 질식시키는 요인을 작용하고, 아무리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다 해도 상업적인 요소가 부족한 영화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이런 기형적인 독과점 현상은 CJ, 롯데, CGV, 메가박스 등처럼 대기업들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 유통까지 장악하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이런 독과점 현상 때문에 제작비 10억 미만의 영화들(총 183편 중 133편으로 73%에 이른다)의 매출액은 2.1%, 전체 관개 수는 2.2%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막상 그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 영역 독과점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미국조차 블록버스터라 해도 전체 스크린의 20% 정도를 차지할 뿐입니다. 




오로지 수익성만 따지는 이런 약육강식의 왜곡된 구조는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다양한 기호와 욕구마저 획일화시킵니다. 현대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화산업이 탐욕스런 수익의 논리만 추종하면, 문화의 다양성은 고사하고, 영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문학의 세계마저 천민자본주의에 종속되게 됩니다.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 유통까지 수직계열화를 하면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수익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띠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무서움은 이렇게 정신과 문화의 영역마저 돈의 논리에 지배받도록 만듭니다. 연일 한국영화계의 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12척의 배로 수백척에 이르는 일본의 함대를 무찌른데 있음에도, <명량>이란 영화로 되살아난 2014년의 이순신 장군은 대기업의 독과점 덕분에 일본의 해군이 아닌 한국의 다양한 영화들을 지키려는 12척의 배를 수장시키고 있습니다. 



경제의 생산방식과 사회적 교환방식에 집중하느라 마르크스가 등한시했던 것 중에 하나인, 문화의 다양성이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그래서 영상산업의 독과점을 염려했던 벤야민, 아도르노, 부르디외 등의 《미학이론》들도 12척의 배에 실린 소규모 한국영화들과 함께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투자자이자 배급자이며, 유통자인 거대 기업에 찍히면 제작자와 감독은 물론, 평론가와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까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세삼 부각시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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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빛천사7 2014.08.06 05:53 신고

    명랑이 드디어 대박이군염 잘보고 감니다. ㅎㅎ.

  2. 새 날 2014.08.06 11:13 신고

    스크린 점유율 때문에 히트친 부분도 분명 맞지만, 명량의 히트는 현실의 갑갑함을 달래려는 서민들의 간절함이 묻어있는 듯해요

    • 늙은도령 2014.08.06 15:00 신고

      그것이 상업적인 요소를 잘 녹여넨 것입니다.
      이순신과 아들 간의..
      12척으로 일본 배 200여 척을 무너뜨리는 것 등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영화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영화를 제작, 배급, 유통까지 대기업이 주무르니 다른 좋은 영화들의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문화는 한두 편이 대박을 치는 것보다 여러 개가 소박을 칠 때 문화적 다양성도 커지고, 서로 함께 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3. 참교육 2014.08.06 19:26 신고

    명랑... 저도 내일 아침 부러기기로 했습니다.
    많이 기대됩니다.

  4. 양성호 2014.08.06 21:25 신고

    임진왜란 초등학교 단체관람때부터 봐왔는데 뭔갑자기 이순신열풍이야 휴가피크때 태풍오고 날씨더워 에어컨바람에 데이트족들 몰려 한마디로 소가 뒤로가다 쥐잡은꼴이네 이순신을 알고싶으면 솔직히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나온 테레비드라마를 보던지 칼의노래를 읽는게 낫다고 본다

    • 늙은도령 2014.08.06 22:18 신고

      이순신에 대한 연구조차 잘 안 된 곳이 한국입니다.
      외국에서 더욱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 공부하고 제대로 알려면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5. 2014.08.06 22:2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06 23:01 신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 동안 별로 신경쓰지 않고 글만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용방법은 살펴보지 않았는데, 독자를 위해서라면 제가 바꾸어야죠, 즉각즉각.
      ㅋㅋㅋ
      감사합니다.

  6. 쿠쿠쿠(윤약사) 2014.08.06 22:37 신고

    아이들 만화영화마저 배급사에 따른 스크린 할당의 차이가 확연하더라고요.
    <드래곤 길들이기2> 이외에는 애들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없을 지경이에요.ㅠㅠ
    좀 더 선택의 여지가 많았으면 좋겠는데, 이미 <명량>,<군도>가 성인 스크린 점령...

    이 부분이 많이 아쉽더라고요.

    • 늙은도령 2014.08.06 23:03 신고

      다양성을 죽이면 그 피해는 아이에게도 미칩니다.
      문화가 대기업의 먹거리로 전락하면 언제나 국가주의, 애국심, 지독한 상업성, 선정주의 등등으로 얼룩지게 됩니다.
      그래야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며, 소규모자본으로 진행되는 영화계의 아웃사이더와 비주류들도 자신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캐치온에서 '더 프라미스드 랜드(The Promised Land)'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본 시리즈로 유명한 맷 데이먼이 주연한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부터 유병언의 죽음과 그의 아들의 체포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온갖 음모론이 대한민국을 종횡무진으로 휘젖고 있는 상황에서 재미있는 시각을 던져줍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제가 몇 편의 글에서 밝혀듯이 음모론에는 사실과 진실을 물타기 하기 위한 역음모론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A라는 언론사 오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죽었다고 합시다. 그러자 그의 갑작스런 사망을 두고 온갖 음모론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그런 음모론 중에 A가 B라는 신인여배우나 C라는 톱스타의 스폰서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여러 가지 근거들이 동원되면서 A의 사망에 포함된 추문들이 극에 달해 언론사는 빼도박도 못하게 됐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자 A가 오너로 있던 언론사에서 역음모론을 흘립니다. B와 C가 문란한 사생활 때문에 A가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고 말입니다. 헌데 B와 C는 그 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밝혀집니다. 이로써 사망한 A가 B와 C와 수시로 성관계를 갖는 대가로 스폰서를 했다는 음모론이 허무맹랑한 것으로 결론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다른 음모론들도 허구로 취급되며 얼마 가지 않아 시중에서 사라집니다.

 

 

여기서 A와 B와 C의 실제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음모론 때문에 사실에 근접해 있는 나머지 음모론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A의 죽음도 불행한 교통사고로 확정됩니다. A를 둘러싸고 있던 지난 날의 풍문들도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A가 오너로 있던 언론사는 명예를 회복하고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영화  '더 프라미스드 랜드(The Primesed Land)'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요즘 미국의 새로운 먹거리 등장한 세일가스 개발을 소재로 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확인된 지역을 '글로벌'이라는 석유회사가 매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거대한 석유시추기업인 글로벌사가 성실한 주인공을 통해 지역 주민을 설득하게 하면서도, 환경단체회원을 가장한 또 다른 직원을 파견해 지역주민들의 반대를 이끌어냅니다.

 

 

그런 다음에 환경단체회원이 지역주민들을 반대로 이끄는 과정에서 했던 말들이 거짓임이 드러나고, 이런 사실에 분노한 지역주민들은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섭니다. 하지만 맷 데이먼이 거짓말을 한 환경주의자가 글로벌사에서 파견한 직원임을 알게 됩니다. 지역 주민들의 최종 투표가 있기 전날에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주인공은 고민하게 되고.. 그 다음은 너무 뻔하게 진행됩니다, 지극히 미국적인 방식으로.   

 


다음이미지에허 인용

 

 

영화적인 요소로 평가한다면 석유시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과 졸부(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비참한 최후를 그린 'There will be blood'보다 많이 떨어집니다.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바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허풍과 자랑질을 떨었던 '포레스트 검프'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헐리우드가 맡은 역할이 미국의 악행에 대한 세탁이 전문인 까닭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지만, 음모론과 역음몰론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더 프라미즈드 랜드'가 던져주는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입니다. 

 

 

뭐만 하면 빨갱이 타령을 해대던 자들이 세월호 참사가 100일을 넘어서고, 7월 재보선이 코앞에 다가오자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며, 보상과 배상 및 특혜의 차원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무려 250명이 넘는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무조건 그 이상이다)에 이르는 국민의 죽음 앞에서 전통의 빨갱이 타령을 써먹을 수 없자, 돈과 특혜의 문제로 변질시킨 것입니다. 

 

 

내수경제 침체가 세월호 참사 때문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에서부터 자식 팔아 목돈 챙겼으면 입 닥치고 살라는 보수단체 회원까지 단 3일 만에 프레임 전환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코앞에 닥친 재보선에서 국회 과반수를 유지하는 것이니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할 것이며, 폭력과 폭언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현 집권세력의 역음모론이 세월호 유족을 돈에 환장한 사람들로 만들다가 국민적 반발이 심하자, 이제는 배상과 보상 및 특례의 문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박근혜와 새누리당이라면 무조건 편을 드는 유권자가 최소 40%에 이르는 나라가 우리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집권세력의 역음모론은 계속해서 분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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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4.07.27 11:06 신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것이 유가족이나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요 속죄의 길이기도 합니다.

길환영 사장이 해임되며 KBS가 파업을 접고 현장에 복귀했고 신임 사장이 대통령이 재가를 받았습니다. 이번 사장은 정치색이 없다고 알려졌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KBS 노조들이 파업에 들어갈 때 길환영 사장의 퇴진만이 아니라 KBS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국민의 방송으로서 거듭나겠다고 하는데, 그들의 복귀는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이루어진 감이 있습니다.

 

                               

                                 이 목표는 이루었지만 그것은 최소한도 안 된다ㅡ티브이데일리에서 인용

 

 

사실 그들은 KBS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동조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만 공정성 회복을 맡길 수 없습니다. 김인규 사장 때부터 길 사장 때까지 살아남아 보직간부나 국장에 오른 자들이 KBS의 임직원들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KBS의 이사회가 공정성 확보를 위한 인사들로 채워져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려면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노조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사장 선임을 국민에게 맡기는 안도 국회의 상임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KBS의 공정성 확보를 지금까지 KBS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에게 맡길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이 갑자기 각성해서 성자가 되지 않은 이상, 그들만의 노력에 KBS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작업을 맡길 수 없습니다. 모두가 조금씩은, 일부는 엄청나게 죄인이었던 상황을 파업 한 번 하고 사장이 바뀌었다고 모두 없던 일로 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ㅡ다음이미지에서 인용

 

                                                 

게다가 새누리당이 어떤 정당입니까? 헌재의 불합치 판정을 받았으면서도, 이명박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폭력적인 날치기로 방송법을 개정해 다수의 종편을 허가해 방송생태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당사자들이  아닙니까?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합의하지 않고 오로지 특검만 외쳐대는 무논리의 무대포 주장만 되풀이하는 정당이 새누리당입니다.   

 

 

그들이 KBS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하리라 생각한다면, 태양이 다시 지구를 돌고 돌고 돌고.. 그러다가 정말로 돌아버린다는 과학적 발견이 발표될 것입니다. 게다가 KBS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준조세인 시청료를 바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공무원 근성이 강합니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신분에 대한 우월감도 높아 보수 성향을 띠는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많은 권력 중 하나일 뿐인 정치 권력이 국가의 3부가 해야 할 역할을 다하고 있는 현대의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때 민주주의가 성숙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 때문에, KBS의 역사에서 참여정부 5년만이 예외적인 독립성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많이 비판한 방송사가 KBS였다는 사실은 참여정부 시절의 방송3사의 뉴스들을 검색해보면 금방 나옵니다.

 

 

 

참여정부 시절의 KBS는 최고 지도자의 굳건한 의지 덕분에 한국 언론 역사상 가장 높은 자유도를 기록했습니다. KBS가 신뢰도와 공정성 등의 부분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릴 수 있었던 것도 그때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땡전뉴스의 대명사가 KBS였음은 상식의 수준을 넘어 한국 방송사의 지울 수 없는 흑역사가 됐습니다. 한국의 언론자유도도 참여정부 때가 가장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언론자유도가 아프리카의 후진국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들은 방송을 장악해 노인들의 투표 참여를 최대화시키면 권력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이는 투표율이 올라가도, 세월호 참사가 나도, 막상 선거에 임하면 새누리당을 찍는 상당수 노인들을 전국의 투표소로 향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거의 모든 악덕의 역사ㅡ다음 이미지 캡처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KBS의 공영성 확보를 위해 각종 토론과 공청회에 국민이 패널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전국적이고 보편적인 토론과 공청회를 통해 국민의 시청료도 운영되는 KBS가 다시는 정치 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작금의 뉴스가 지난 시절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에 만족할 수 없음은 인간이란 존재의 불확실성과 나약함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영성 확보를 위한 모든 단계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여야를 넘는 범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만 합니다.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개념부터 시작해, 인사와 조직 문제, 재무와 회계 문제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국민이 참여하는 테스크포스팀을 통해 새롭게 구축돼야 합니다. 끊임없고 지속적인 피드백이 이어져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지적검증부대가 없다고 사실검증부대까지 없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국민들이 방송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해 토론이 늘어질지라도, 그런 과정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런 길고 고단한 과정을 통해 국민들은 보다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국가의 입장에서도 미래의 동량들을 키우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론과 현실을 접목하고, 국민의 뜻을 시대 정신에 녹여내다 보면 잃어버렸던 저널리즘과 언론의 공정성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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