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로 알려진 오늘의 여진은 일주일 전의 본진(5.8)보다 강도는 작지만 전국에서 지진을 감지했다는 것은 향후에 벌어질 일들의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조심스럽다. 그 이유는 기상청과 지질연구소 등이 진원지를 파악하기 힘들 만큼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단층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진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일어나는 것도 진원지의 활성단층들이 응력을 풀어낼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다. 





5.8의 본진이 발생하면서 경주지역의 활성단층들이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국가 차원에서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가 부실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니 대비 자체가 불가능하다. 4대강공사나 자원외교, 방산비리, 해외순방 패션쇼로 날아간 돈의 만 분의 1만 지질연구에 투자했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지질연구가 엄청난 일본의 경우 강도 9의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자민당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핵마피아가 무시했다). 



경주 지역의 활성단층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오늘의 여진이 또다른 지진의 전조인지, 지난 주에 발생한 본진의 여진인지, 향후에도 여진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인지, 심지어는 어떤 활성단층(길이가 길수록 지진의 규모도 커진다)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때 실시했던 조사들이 대규모 공사을 남발해야 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보통 5.8 정도의 강진이 발생하면 땅이 갈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지난 주의 본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주의 본진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적은 것이 이 때문이었는데, 만에 하나 땅이 갈라지지 않는 대신 지진의 응력이 단층의 내부에서 움직이느라 지표면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 아니라면 짧은 시일 내에 6.5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내진설계가 형편없거나 아예 없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붕괴를 피할 수 없고, 대한민국을 존망의 위기로 몰고갈 수 있는 경주방폐장(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 보관)이 붕괴되고 노후원전들이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유독가스를 대량으로 방출할 수 있는 석유화학 공장들이 폭발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지진만으로도 많은 건물과 시설, 공장들에 스트레스가 쌓여있을 것이기 때문에 6.5 규모의 강진이 발생하면 최악의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지진을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오로지 잘먹고 잘사는 것에만 매진해온 결과, 대한민국은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형편없이 부실한 국가라는 것이 이번 지진으로 또다시 확인됐다. 국민 304명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봤으면서도 아무런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이니 더 말해야 무엇하랴. 대한민국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미래세대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무책임에서 나왔이니 피해를 감내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동물과 곤충도 먹고 사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존의 차원에서만 삶을 이어가겠다면 우리 모두는 짐승에 불과하다. 인간은 과거의 역경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족속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의 힘으로 지진을 막을 수 없다면 지진이 일어난 이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은가.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는 바로 오늘처럼 뜻밖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기상청 사무관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 제대로 대처하라고 내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도 '아~몰랑'하지 말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국민에게 의무만 강요한 채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그 자체로 지옥이다. 세금을 내는 만큼, 법을 지키는 만큼, 지시에 따르는 만큼, 우리가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또다른 이름이 헬조선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P.S. 같은 지역임에도 움직이는 활성단층과 움직임을 멈춘 비활성단층이 있는 이유는 지질학적 시간단위가 100만 년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활성단층이 서기 1년에 생겼다면, 활성화단층은 서기 100만년에 생겼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두 단층 간에는 9,999,999년의 차이가 난다. 경주의 활성단층도 비활성화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 말고도 몇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100년을 사는 인간을 기준으로 보면 지질학적 시간단위나 사건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물며 닭의 머리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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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류겐 2016.09.20 07:25 신고

    정치&시사 이야기도 좋지만, 저금리나 불황, 금리인상, 가계부채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부탁드립니다. 어찌보면 진보진영에게 있어서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노무현 다음에 이명박을 불러온 도 "노무현이 경제를 망쳤다"는 서민들의 생각 때문이었으니까요.

    전 지금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 한 떡볶이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분식집 주인 아줌마가 TV 경제면 뉴스가 나오자 넋두리로 '노무현 때문에 경제를 망쳤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시기 전 퇴임하고 얼마 안 됬을 때인데요.

    • 늙은도령 2016.09.20 15:05 신고

      경제 관련된 글도 자주 써볼 게요.
      진보가 경제를 잘하고 보수가 망치는 방법에 관해서는 수백 편도 쓸 수 있으니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면 자주 쓸게요.

  2. 공수래공수거 2016.09.20 08:07 신고

    지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어제 이곳도 많은 분들이 공포를 느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이럴진대 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게 분명합니다. CB

    • 늙은도령 2016.09.20 15:08 신고

      박은 생각이 너무 단순합니다.
      재벌만 잘 돌아가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 이것 밖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권력유지만 생각합니다.
      너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밑에서 올린 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언행이 달라집니다.

  3. 맹그로브 2016.09.20 09:24 신고

    단층에 대한 지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블랙박스 입니다. 그 어떤 단정도 긍정적 해석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복구보다는 향후 닥쳐 올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하고 단층지역의 주민들의 피난 및 구난책도 세워야 합니다. 재난이 발생한 후에 재난지역선포 보다는 재난 발생이전에 확실한 대피 시나리오 및 구난 시나리오가 백번 낫습니다.

    닭이 이걸 알까나요?

    • 늙은도령 2016.09.20 15:10 신고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운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대피책을 세워 조금씩 실현해야 합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에 사는 분들의 이주에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나머지도 내진설계를 추가해 대비해야 합니다.

  4. 참교육 2016.09.20 17:49 신고

    북핵이 아니라 핵발전소입니다.
    박그네는 무엇이 중요한지 구별이 안됩니다.
    먹을 식량도 없는데 무슨 도발입니까? 미사일이 아니라 지진에 대비한 핵발전소 문제부터 대책 세워야합니다.

  5. 2016.09.21 05:2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9.21 06:15 신고

      건강은 좋습니다.
      갈수록 더워질 여름이 걱정이지만 올해는 무사히 넘겼습니다, 어마어마한 전기료를 지불하는 대가로ㅠㅠ.

      님도 잘 지내시지요?
      지난 4~5개월 동안 인공지능과 로봇공학,나노공학 등에 대해 공부하느라 님의 블로그에도 들리지 못했네요.
      공부는 끝이 없겠지만 시간적 여유를 가질 만큼은 됐기 때문에 자주 들릴게요.



자신의 시대에 당해서 쓰러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시대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ㅡ 장 폴 사르트르, 타니아 모들스키의 《여성 없는 페미니즘》에서 인용




학생 300명을 진압하기 위해 무려 1600명의 경찰을 투입한 것에서 근혜의 복사판을 보는 듯한 최경희 이대총장이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을 철회하기로 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폭력적인 진압이 2016년의 이대에서 일어난 것에 분노한 동문과 학부모들이 총창 퇴진까지 거론하자 꼬리를 내린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꼰대행정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통쾌하기도 했지만, 이대 사태의 주범인 교육부는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 학위장사를 계속하겠다니 제2, 제3의 이대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대 사태의 본질은 정치검찰과 족벌언론과 함께 최악의 기득권집단으로 유명한 교육부의 권위주의적 꼰대질이다. 공교육 파괴의 주범으로써 교육부가 하는 일이란 막강한 예산력을 동원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대 사태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럴싸한 명칭만 들춰내고 안을 들여다보면 돈(국민의 혈세)으로 대학들을 줄세우겠다는 꼰대의 갑질에 다름아니다.



대한민국이 OECD 가입국 중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이 심해지는 과정에서 중산층이 붕괴한 것은 '공교육 부실화'에 따라는 사교육비의 무한증가가 핵심에 자리한다. 국내외의 수많은 석학들이 미국에 필적하는 '극단적 학벌주의'가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몰고간 핵심 요인으로 지적한다. 독일과 스웨덴 등으로 수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보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곳에 정착시키려는 것도 무한의 돈지랄이 필수인 '극단적 학벌주의' 때문이다. 



'민중을 개·돼지로 보기 때문에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나향욱이 교육부에서 승승장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진행 중인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은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역주행의 전형이다. 교육부가 뭐라고 주절대던 이번 사업의핵심은 고졸취업자에게 임금격차와 승진의 불이익에서 벗어나려면 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이 사회이동성의 수단에서 차별과 불평등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도 공교육 붕괴를 이끌어온 교육부의 책임이 절대적임에도, 누적적립금이 수백~수천억이 넘는 사립대학에 국민의 혈세를 퍼부어서 학벌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나향욱 같은 자들이 교육부에 즐비함을 간접 증명한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이 명분을 지니려면 정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립대학이 아닌 국공립대학 위주로 진행돼야 하고, 무엇보다도 반값등록금이 실현된 다음에 진행돼야 한다. 





이대의 역사에 치욕적인 기록을 떠넘긴 교육부의 '팽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은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예산 지원사업으로 사립대학까지 교육부의 개·돼지 양산소로 만들겠다는 꼰대들의 갑질이다.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정원 외로 하겠다는 것은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대학으로 하여금 학위장사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어서 사업 자체를 취소하고, 해당 예산을 공교육 강화에 투입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적 절차란 '노무현스러운 것'이어서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며, 박정희식 독재의 효율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공적 영역을 지배해버렸다.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한 대학생과 청춘에게는 민주적 절차라는 것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대생들의 저항, 아니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민주적이고 수평적이었다)임에도 이를 무시하기 일쑤인 꼰대들의 갑질이란 대한민국을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추락시키는 것을 넘어 탈조선의 행렬에 기름을 붓고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중에서 부도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거론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이 바로 그러하다. 이대생들이 자신의 시대에 당해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본관 농성에 들어갔고, 승리를 쟁취하는 역사를 창조했지만, 주범인 교육부는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 제2, 제3의 이대 사태도 불사하겠다니 '시대에 등돌리는' 학생들이 늘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기득권의 온상인 교육부를 파하라! 

대선공약인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오승환 끝내기홈런 허용, 매시니 감독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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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누리안티 2016.08.04 02:49 신고

    교육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만악의 근원인 왜육부를 없애지 않는 한 희망이 없습니다. 나중에 왜육부가 앞장서서 국민 없는 나라+제2의 일제강점기+한국판 나치 독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늙은도령 2016.08.04 02:57 신고

      네, 교육부는 뿌리부터 바꿔야 합니다.
      친일파의 온상인 교육부를 바로잡지 못하면 미래세대들의 고충은 계속될 것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8.04 08:30 신고

    타락한 교육부입니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빨리 중단해야 합니다
    예산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3. 쌈둥아빠 2016.08.04 09:45 신고

    식견을 넓혀주는 글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무더위 건강 조심하세요~~

  4. 맹그로브 2016.08.04 09:47 신고

    추경 예산 편성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예산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고 있는데 추경 편성이 가당키하 한 일일까요?
    어제 뉴스에서 우리나라 게임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 원인은 역시 돈이었습니다.

    가장 편하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은 딱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착취고 또다른 하나는 사기 입니다.

    현재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는 이 두가지 신공을 열시미 발휘한 덕에 서서히 밀려나고 있더군요.

    학위를 붕어빵 찍듯이 찍어내면 취업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 정말 사행적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대로 하기 싫으면 내려오면 됩니다. 구지 교육부라고 앉아서 냄새 풍기면서 뭉개고 앉아들 있는 꼴을 두고 보기가 정말 힘들군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면 구지 국민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 늙은도령 2016.08.04 13:49 신고

      네, 맞습니다.
      학위를 따는 것을 도박화합니다.
      학위가 필요한 사람만 대학을 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차별없이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요.

  5. 참교육 2016.08.04 09:53 신고

    교육부가 해체될 이유입니다.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이대생들의 승리 높이 평가합니다.

    • 늙은도령 2016.08.04 13:51 신고

      네, 교육부는 해체돼야 합니다.
      이대생들의 승리는 참으로 값진 것이고요.



무려 21개 중대 1,600여 명의 경찰을 투입해 농성 중인 이대생을 끌어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황교안 총리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성주를 방문해 성난 군민들로부터 셀프감금을 유도했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언론에는 이대생이 교수들을 감금한 것으로 나오지만, 경찰력이 투입된 이후에 SNS 등에 공개된 학생들의 증언과 녹취록(학생을 자극하는 교수의 폭언 등)을 보면 교수들이 감금을 자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대생들이 본관에서 집단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국민을 ·돼지로 보는 교육부의 꼼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교육부는 고졸 출신 직장인들에게 학위를 제공한다며 정원 내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을 추진했는데, 그럴 경우 교육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액(35억, 세금으로 마련) 외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자 대학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했다. 이에 교육부는 정원 외로 규정을 바꿨고, 대놓고 학위를 팔 수 있게 된 이대가 참여를 결정했다. 



얼핏 보면 이대생들이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교육부의 지원사업에 반대하는 것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의 반대 이유만 살펴봐도 교육부의 지원사업이 대학으로 하여금 대놓고 학위장사를 할 수 있는 또하나의 통로를 열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대에는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를 목적으로 1984년에 개원한 평생교육원이 있기 때문에, 재학생(이대에 진학하기 위해 투자한 것들을 논외로 한다 해도)에게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단과대학을 신설할 이유가 없다. 



단과대학을 설립해 '정원 외'로 학생을 뽑는 것은 비정상적인 정원 확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2018년부터 본격화될 인구절벽으로 정원 축소가 불가피한 마당에, 기득권 집단인 교육부가 특정 대학들을 선정해 국민의 세금으로 손실분을 만회해주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장기 중 하나가 부자감세를 숨기기 위해 서민증세를 늘리는 역주행이라면,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도 대학의 배만 불려주는 역주행이다. 



특히 신설되는 단과대학의 전공들(미디어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 전공,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 전공 등)이 기존학부와의 겹침을 넘어, 철저하게 기업의 필요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대학을 단순 취업훈련소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란 점에서 역주행이다. 대학이 산업의 변화에 대처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기업의 필요에 따라 학과와 정원이 결정되면 대학이 존재할 이유와 목적이 사라진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기존의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할 20~30년 후에는 이런 대립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교육부와 대학이 앞장서서 인간의 가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려 한다면 헬조선만으로도 부족하지 않겠는가? 이대의 단과대학 신설은 졸업생들도 정규직 취업이 힘겨운 마당에 이미 취업된 고졸 직장인에게 '학벌의식만 조장하는 학위'를 팔겠다는 것이어서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억울한 세대로 기록될 1020세대들을 조금이라도 위한다면,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신분제를 옹호하는 교육부(와 이대)의 역주행은 박근혜 정부의 대한민국이 헬조선의 마지노선마저 넘고 있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총체적인 타락'을 빼면 2016년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참담한 마음 뿐이다. 



역사에 '만약에(if)'를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도 마다하지 않은 기득권의 융단폭격을 뚫고 사립학교법을 개혁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국민까지 이에 놀아났으니 방법이 없었겠지만, 최소한 이해당사자의 한 축인 학생들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일방통행과 야만공권력을 동원한 무력진압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백남기씨에게 가해진 직사 물대포와 우장장창에 대한 리쌍의 강제집행(용산참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에서 보듯, 상대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우월적 강자의 반민주적인 일방통행과 정부의 폭력이 대한민국을 짐승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은 이대에서 합법을 가장한 폭력이 자행됐다면, 내일은 연대와 고대, 한양대와 중앙대 등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화와 소통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종말을 고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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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누리안티 2016.07.31 01:24 신고

    이러다 한국판 나치 독일이 도래하는 건 아닐런지...

    • 늙은도령 2016.07.31 02:20 신고

      박근혜 임기 동안은 이러 방식의 폭력적인 이익챙기기가 자행될 것입니다.
      다음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갈수록 쌓여갑니다.

  2. *저녁노을* 2016.07.31 05:15 신고

    씁쓸하군요. ㅠ.ㅠ

  3. 참교육 2016.07.31 10:53 신고

    대한민국 어느 분야에도 정상적으로 국러 가는 곳이 없습니다. 멘붕이니 헬조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완전히 미쳐 돌아갑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15:16 신고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는 임기 동안 저지를 수 있는 것은 다 저지를 모양입니다.

  4. 꼬마분석가 2016.07.31 11:52 신고

    정부에서 먼저 대학에 개입하고 말안들으면 돈안주겠다 협박하고.. 비단 이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구조조정으로 많은 대학들이 교육부의 말도 안되는 강압행정을 받아들여야 해요.

    • 늙은도령 2016.08.01 15:18 신고

      네, 심각한 지경이지요.
      모든 국립대를 무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립대도 이런 짓거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만이 대학진학률도 줄어듭니다.
      물론 취업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뒤따라야 하지만 그것은 기술발전과 자동화에 따라 수시로 정해져야 합니다.

  5. 생명마루한의원 2016.07.31 17:11 신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ㅎㅎ

  6. 맹그로브 2016.08.01 10:08 신고

    김활란의 학교 답군요.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보다 상아탑이 되어야 할 학교가 취업교육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수십년간 대학생들을 산업전선으로 내몰아서 이 사회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당연히 있어야할 학문적 깊이와 다양성이 경제논리로 매몰되고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역대 교육부 장관이나, 공무원들은 그들의 업적(?)을 위해서 한 일이겠지만, 결국 국민들이게는 익명 싸논 똥으로 다가 오는 군요. 학문적 철학적 깊이를 가진 자만이 이 사회를 올바르게 볼수 있고 비판할 수 있으며 이끌어 나갈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취업전선에 내몰려 재벌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온 결과가 참담할 따름입니다. 결국 지금은 철지난 생산기지로 대한민국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와서 아무리 인공지능을 부르짖어 봐야.... 다양성과 깊이를 추구해온 미국등 선진국을 따라 잡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경제논리가 아닌 학문적 다양성의 논리와 철학에서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요즘 대학에서 안드로이드 가르치고 있다는데.... 정말 한심한 짓거리 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해서 받아들였던 경제가... 지금은 우리의 목을 누르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15:20 신고

      모두가 기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니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친짓이지요.
      모두가 기업의 필요에 따라, 정부의 지원금을 따기 위해 미친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합니다.
      세상의 변화가 어떠한지도 모릅니다.

  7. 하하하 2016.08.01 20:53 신고

    불통이다 뭐다해도 결국 이 사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망국적 학벌주의죠.
    학위장사라는 님의 주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대학생들이 자신들의 학벌에 대한 기득권의식이 전혀 없이 저렇게 반대하는 걸까요?
    우리나라도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모든 대학을 국공립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21:29 신고

      그러면 좋지요.
      대학은 정말로 공부할 사람만 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충분한 소득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학벌주의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8. 공수래공수거 2016.08.02 06:46 신고

    좋은 취지로 잘 운영될수 있는것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었군요
    매관매직하는 탐관오리나 다를바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2 16:14 신고

      단과대학을 설립하려면 정원 내에서 해야 합니다.
      학생수의 절대수가 줄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말도 안됩니다.
      이대는 오로지 돈 때문에 이런 미친짓을 하는 것이지요.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습니다.

  9. 하하 2016.08.02 20:58 신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잘사버리고 불통하는 늙은도령의 작태가 마치 박근혜 같구료 ㅋㅋ

    • 늙은도령 2016.08.02 22:02 신고

      내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이면 안 그러지요.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형편없어 길게 끌고갈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합니다.
      댓글에서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은 본문에 즉시 반영합니다.
      당신처럼 삐딱하게 보니 그렇게만 보이는 것이지요.



독자의 부탁으로 쓰게 된 이번 글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양성평등만이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권리신장에도 관심이 있는 필자(백일 때부터 소아마비로 살아왔다)이기에 스치듯 보았던 사안이었지만, 독자의 부탁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잘못 발을 디뎠다간 몰매를 맞을지도 모르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들이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나 부수적인 부분을 가지고 상대를 죽일 듯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으니 겁대가리는 없는 필자라 해도 댓글 공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프레시안>에 나온 "사건의 얼개는 이렇다. 지난 19일, 유명 게임 업체 '넥슨'은 자신들이 발매한 게임에서 한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성우 김모 씨가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이 티셔츠가 여성혐오 반대 그룹을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정확히는 메갈리아4)'를 후원하는 취지로 제작·판매된 것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그렇다면 왜 메갈리아4가 문제가 됐을까? 나무위키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을 통해 '김자연 성우 교체 논란'을 살펴보면, 메갈리아4가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조직인양 과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살펴본 메갈리아4 페이스북은 1960년대 유럽과 미국을 강타했던 페미니즘 열풍을 보는 듯했다. 문제의 티셔츠에 인쇄된 '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유명한 문구다. 



시저를 암살한 부르투스가 "남자는 세상을 정복한다면 여자는 그 남자를 정복한다"고 자신의 부인을 달랬지만, 인류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간 이후 여성의 권리는 늘 남성에 의해 정해졌다. 토크빌은 'Ladys and Gentle Man'이 적용되는 대상이 넓어진 것이 참정권 투쟁의 역사이자 평등한 자유와 사회적 권리를 표방한 민주주의의 발전사였다고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재산이 있는 백인)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역사였다. 스위스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91년일 정도로 여성은 남성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로 수천 년을 살아왔다. 



특히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로는 여성의 권리가 남성(노동자)에 부속된 것으로 조직되고 세뇌되고 구조화됐다(푸코 참조).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집권한 이후, 전 세계를 정복한 신자유주의는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통치술이어서 여성의 권리는 더욱 악화됐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었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수준이며,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가 탈정치화됨에 따라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상품화됐다(나오미 클라인 참조). 





심지어 여성지도자들은 남성보다 더욱 남성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신자유주의화가 심한 나라일수록 여성의 권리는 후퇴했고, 혐오의 대상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마이크로 크래디트도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빈곤의 거버넌스'로 포장되며 빈곤여성을 빚의 굴레로 떨어뜨리는 것으로 변질됐다. 최근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매매춘 여성이 급증한 것도 여성을 사지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여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 영미식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인터넷과 SNS 사용자의 폭발(특히 댓글과 답글을 통해)은 페미니즘 운동을 벌이는 여성들을 혐오대상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 동생마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일베와 그들에게 끊임없이 먹이감을 던져주는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들이다. 이들에 의해 페미니즘 운동은 혐오의 대상으로 변질됐다. 



메갈리아4가 연관됐다는 이유로 본질에서 벗어난 '김자연 성우 교체 논란'도 마찬가지다. 메갈리아4 회원들이 장애인을 폄하하는 것(남성 성기와 동성애, 특히 게이를 비하하는 단어들의 사용과 무관치 않다)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고, 일부 짐승에 준하는 자들의 행태를 전체 남성으로 넓혀가는 논리의 비약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메갈리아4 회원들이 (인터넷의 특성상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많지만)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토론하고 투쟁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가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보는 헬조선의 조건들'에서 밝힌 것처럼,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한 가운데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로 타락한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의 삶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정직원으로 남으려면 결혼과 출산을 최대한 미루거나 포기해야 하며, 남성의 눈으로 모든 잣대가 형성되고,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 가능성이 갈수고 높아지니 페미니즘 운동이 가열차게 일어나는 것은 생존본능에 다름아니며,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김자연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를 말한 것은 그녀의 성정체성을 밝힌 것일 수도 있고,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나 신데렐라 컴플렉스처럼 여성의 삶과 성공, 행복이 남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잘못된 통념이 끝없이 재생산되는 것에 대한 저항의 표현일 수도 있다. 모든 여성이 'Girls Do Not Need A PRINCE'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문구가 남성과 여성의 극한 대립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존중돼야 한다. 



분명히 하자,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세상에서 여성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지 남성을 혐오하고자 함은 아니다. 어떤 것이든 극단적으로 흐르면 문제가 있지만, 메갈리아4가 연관됐다는 이유로 '김자연 성우 교체 논란'에 극단성을 덧씌우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폭력이다. 더구나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으로 이용한다면 나치와 다를 것이 없는 대단히 반인류적 행태다. 김자연이 해명글을 올렸다고 해도 넥슨을 비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필자의 바람이 있다면, 메갈리아4 회원들이 극단적인 단어 사용에 신중했으면 좋겠고, 부분적 사례로 일반화를 시도하는 논리의 도약을 이용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떤 종류의 차별도 없었으면 한다. 여기에 한가지 바람을 더하자면, 세계적인 페미니스트였던 나오미 클라인이 신자유주의 저격수로 변신한 이유를 알 수 있는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서는 《No Logo》-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그럴 때만이 페미니즘 운동이 주류남성의 거대한 벽을 넘어설 수 있으며, 보다 많은 동반자들을 확보할 수 있다. 일베로 대표되는 벌레보다 못한 놈들이나 짐승 같은 자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웹툰작가들을 보호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공통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면 잘못된 것에도 신성을 덧씌우는 경향이 생긴다. 세상이 온통 남성중심적이니 미칠 만큼 힘든 것은 알지만, 그 때문에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없음도 고민했으면 한다.     




P.S. 메갈리아4가 과격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살라 로보섬의 《아름다운 외출》이나 타니아 모들스키의 《여성없는 페미니즘》이라도 읽어 보라. 메갈리아4가 결코 급진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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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ㅎ 2016.07.27 00:05 신고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1285275&page=1

    이제 메갈과 엮였던 정의당은 개박살난 것 같네요.

    • 늙은도령 2016.07.27 00:23 신고

      엄청나게 실망했습니다.
      정의당이란 이름을 내려놓아야 할 판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7.27 08:01 신고

    이런게 잇었군요'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는데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27 15:51 신고

      대단히 복잡합니다.
      많은 시간을 내야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필요한데, 그것을 불편해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3. ㄴㄴ 2016.07.27 12:45 신고

    다른 곳에 퍼가도 되겠죠?

  4. 맹그로브 2016.07.27 13:11 신고

    사실 저도 오늘 아침에야 메갈리아 라는 것에 대해서 나무 위키를 통해 어슴프레하게 알게되었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남성 혐오가 아닌 여권의 신장이란 측면이 확실히 더 긍정적으로 와 닿네요. 트위터에서 강냠역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그것이 여혐으로 비추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표현 하니 여기저기서 흥분한 여성들이 욕을 해대더군요. 그냥 함량미달의 욕도 있었고, 나름 논리적인 분도 결국은 감정으로 치닫아 결국은 한 몇 일동안 계속 block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ㅋㅋ 토론이라는 것이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잣대를 지켜가면서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요즘은 거의 그런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더군요. 나중에는 우기고, 결국 감정적으로 치달아서 ... ㅋㅋㅋ 이야기하기 싫어지네요.. ^^;;

    여성도 남성도 자신이 존중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말에 진정한 힘이 실리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자신들의 입지를 스스로 낮추면서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 존중이라는 것이 단순한 자존심과 이기심의 발로가 되서는 안되겠지만요.

    • 늙은도령 2016.07.27 15:54 신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강경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메갈리아4가 그러합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아주 조금만 정제된 단어를 쓰면 더욱 효과적일 텐데, 그것이 아쉽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승화시킬 수 있다면 더 큰 위력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페미니즘 운동이 정말로 필요한 나라입니다.

  5. 참교육 2016.07.27 13:43 신고

    정의당이 왜 이런 민감한 문제에 좀 더 신중하지 못했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27 16:03 신고

      정의당 전체 의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하지만, 제가 경험한 것 중에 정의당의 직원들이나 당직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권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고답적인 행태가 많습니다.
      진보가 망할 때는 엘리트화 될 때입니다.
      당원과 지지자에서 멀어지는 것이지요.
      진보당이 그렇지 않은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6. 휴우 2016.07.27 16:51 신고

    근대 이후로 반복되는 패턴.
    자유주의자들이 독재를 몰아내고 인권을 향상시키면 자유 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결코 전체를 위하지 않고 특정한 집단만을 선동 하고 사회 내에 내전을 조장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챙긴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후 . 혁명을 주도하면서 거액을 모은 이들이 돌아온 왕에게도 복고를 주도한 공으로 엄청난 토지와 연금을 받아챙기는 것을 본 후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 자체가 저들의 사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음

    심지어 혁명의 성과라는 것들도 이미 루이 16세가 시작하거나 정착시킨 것을 밝혀내고는 혁명이 선동가들의 손에 놀아난 것을 깨닫게 됨

    지금 대한민국 페미니즘도 선동가와 조직들이 급진회중. 이 열풍이 지나간 후에 피를 토할 여성들이 많을 것.

    • 휴우 2016.07.27 16:57 신고

      메갈 내부에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공주라는 비아냥을 듣는 위선적인 이들이 있으며 이들은 여성 인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않은 인물들

      이들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여성 인권과 그에 대한 인식이 저하된다고......

    • 늙은도령 2016.07.27 17:04 신고

      혁명이 문제가 아니라 혁명을 일으킨 자들이 제3자적 위치에서 우리가 너희의 뜻을 대신하겠다고 나선 것이 문제였지요.
      혁명이 추구한 것은 인간의 권리와 평등한 자유, 공존과 상생의 삶을 추구하는 박애 등이었기 때문에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이고, 그들의 숭고한 목적과는 달리 기득권의 힘이 너무 강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프랑스혁명이 없었다면 현재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도 정립되지 못했겠지요.

      페미니즘도 선동가와 조직들이 급진화 중이라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네요.
      페미니즘 자체가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남성중심적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혁명이기에 당연히 급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남성중심적인데 어떻게 말랑말랑한 저항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겠습니까?

      여성들이 피를 토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도 난자와 정자은행을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왜 전통의 섹스에 구속돼야 하지요?
      미래는 여성적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사회입니다.
      피를 토할 것은 남성입니다.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 휴우 2016.07.27 17:24 신고

      닭고기든 소고기든 불에 넣으면 같은 잿더미일문

      목적이 무엇이든 극렬한 방법은 똑같은 결과만 냄

      남성 살해 사회적 추방 번식 탈락을 여성 인권을 위한 수단으로 하면서 설마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은 필요한 것이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음 투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용당한 사람들의 후회만 남을 뿐

    • 늙은도령 2016.07.27 17:32 신고

      왜 이용당했다고 생각하지요?
      제가 만나본 수많은 10대 소녀들도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데.
      닭고기와 소고기를 불에 넣으면 다 잿더미일 뿐이라면 인간도 똑같지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용한 자도, 이용당한 자도 똑같지요.
      논리적으로 님의 주장은 허점투성이입니다.
      실질적으로도 제3의 관점에서 남성우월적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누가 이용당하는지, 이용당했다면 어떤 것인지,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그런 것들을 분명히 얘기할 수 있어야 님의 논리가 그나마 설득력을 가집니다.
      비판과 비난, 약간 비튼 양비론은 다릅니다.
      여성들이 이용당할 만큼 어리석다고 보는 것도 문제고요.

    • 휴우 2016.07.27 17:36 신고

      살해 추방 노예화가 선택가능한 말랑하지 않은 수단이라고 여긴다면 집권 전의 나치들과 달르게 없음 사람들도 나치들이 말로만 그러거나 조금 탄압하는 정도로만 알았음

    • 휴우 2016.07.27 17:56 신고

      우크라이나와 방데에서 죽어간 백성들이 고귀한 목적을 위해 타의에 의해 죽었으니 괜찮다고 여긴다면 뭐 할말은 없음 삭제하라면 그냥 삭제함

    • 휴우 2016.07.27 18:04 신고

      갑갑해서 하나 더 적자면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던 오웬은 자기 구상을 하나씩 실험해본 후에 적용 가능한 것을 남겨서 현실 사회주의와 노동당을 기능케 했음

      폭력없는 사회주의를 비난하고 오히려 폭력이 과학적이라고 떠들던 막스는 자기 이론을 단 한번도 성공시킨 적이 없음 막그야말로 공상가였음

    • 늙은도령 2016.07.27 18:18 신고

      마르크스가 공상가였음에는 동의하지만 추상화라는 과학적 방식이 가지는 한계도 고려해야지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특이점에 이르면 마르크스의 공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사회주의자인 오웬도 초기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좀더 큰 조직에서는 실패했습니다.
      마르크스보다는 폴라니에 찬성하는 필자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공부가 깊어질수록 두 사람을 통합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펼친 적은 없었고요.
      레닌부터 현실에서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적용될 수 없다며 수정주의로 나갔고, 그밖의 모든 혁명가들도 마르크스 이론을 곧이곧대로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추상화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공학적 사고가 필요하고 그래서 수정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모두 다 살펴봐야 마르크스를 비판할 수 있지요.
      또한 그 당시에는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이 절대적 진리였기 때문에 마르크스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했지요.
      헤겔의 변증법도 마찬가지고요.
      이 모든 것을 고려한 다음에 마르크스 비판이 나온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님처럼 말하면 아예 토론 자체가 불가능해지지요.

      현대물리학이 밝혀낸 수많은 것들도 현실에 옮기려면 어마어마한 공학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추상화한 이론이란 그런 것입니다.

  7. 휴우 2016.07.27 18:37 신고

    기술적 특이점이란 말은 근래 조어지만 이런 개념은 서구 문명에서 여러번 반복된 것임

    처음에는 발달하던 연금술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골렘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다음에는 감는 태엽으로 계산기와 온갖 것을 만들다가 인간과 똑같은 태엽 기계를 만들어서 모든 노동을 대신할 수 있다고 했고

    18세기 이후로는 영구 동력 기관을 만들어서 인간이 손대지 않고도 저절로 일하는 기계들을 만든다고 주장하였음

    실제로 대단히 재미있고, 과거 기술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놀라우 것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투입 자원 보다 산출 자원이 적었음

    지금 돌아서 보면 모두 미친 소리지만 당대에는 최고의 지식인들조차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가능할 것으로 보았음

    커즈와일이나 엔지니어들은 또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음

    사실 저런 기술 혁명기마다 기술자들이 자신이 믿든 믿지 않든 엄청난 주장을 하면서 큰 자본을 끌어들여 일을 벌였음

    저런 기술 허풍과 그에 편승한 자본 시장의 버블로 인해 인생날리고 온갖 깡통차는 사람들이 가득했음


    특이점주의는 열역학 2법칙을 뛰어넘는 기술이 나와야지만 가능하다고 봄

    • 늙은도령 2016.07.27 19:41 신고

      기술적 특이점에도 몇 단계가 있지요.
      지금은 마지막 단계를 말합니다.

  8. 휴우 2016.07.27 18:54 신고

    어차피 정의당 비롯한 진보류들은 이번 기회에 정말 쓰레기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음

    정말로 유시민같은 한줌도 안되는 자유주의자들 외에는 믿을만한 정치세력이 전무함

    페미니즘 세력이라고 민주적이거나 인권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해줘서 사실 감사함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살해, 차별을 조장하는 것을 보고 왜 해외에서 페미나치라는 말을 만들었는지 알았음

    • 늙은도령 2016.07.27 19:43 신고

      페미니즘을 악용한 자들이 문제이지 여성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을 폄하해서는 안되지요.
      민주주의는 평등에 기초하지 자유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평등이 없는 자유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페미나치는 메갈리아4의 일부가 그렇지 전체는 아닙니다.

    • 휴우 2016.07.27 19:56 신고

      여성 권리 폄하같은 것 한 적도 없음

      늙은도령님이 뭔가 오해하는듯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한 수단이지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수단이 아님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민주주의는 북한에도 있음.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를 약간 양보하자는 것은 여우가 주는 지렁이에 깃털 뽑아주는 매와 같은 짓임

      자유에 근거하지 않은 평등이야말로 허상임. 평등하지만 자유롭지 않다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평등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투표를 강제할 권력도 구조적으로 발행함.

      페미나치가 메갈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수뇌부임. 사실 일부도 아니고 아닌 이들이 일부지만.

    • 늙은도령 2016.07.27 20:04 신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네요.
      자유에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있습니다.
      북한에도 있는 자유란 소극적 자유입니다.
      민주주의는 적극적 자유, 다시 말해 법과 제도, 여론 등에 의해 생기는 자유를 말합니다.
      자유주의라고 해도 어떤 자유주의에 따라 그것이 자유방임에서 소극적 자유까지 여러 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자유주의가 세상을 개판으로 만든 것도 상당하고요.
      신자유주의도 자유주의가 통치술로 변동되며 나온 것입니다.
      조금 더 학문적으로 말하면 로크가 주장한 자유방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신자유주의인데, 정부는 시장을 중심으로 경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입니다.

      저도 페미니즘과 페미나치와 분명히 구별했습니다.
      극단적인 것은 문제라고 했습니다.
      제가 님의 댓글에 반론을 제기한 것은 님은 일부의 진리를 보편적 진리인양 말하는 것에 관해서입니다.

    • 휴우 2016.07.27 20:24 신고

      일부러 곡해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라고 믿겠음. 법, 제도, 여론에 의해 생기는 것은 권력이지 자유가 아님.

      적극적 자유라고 써놓은 것은 권력임. 그것은 자유가 아님.

      국가가 나서서 자유를 증진시켜야한다는 식인데 권력으로는 자유를 증진시킬 수 없음. 이것은 마치 유교의 성인론처럼 성인이 성인에게 선양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환상적인 주장일뿐임

      이것은 권력으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임. 민주주의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여 자유를 제한하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파괴됨. 사실상 민주주의 파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음

      자유주의가 아니면 민주주의는 성립조차 하지 않음.

    • 늙은도령 2016.07.27 20:35 신고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에 대해 책을 사 보시던지, 검색을 해 보시던지 하십시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공교육과 적정한 보건의료를 받을 권리,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남녀평등, 차별금지 등이 적극적 자유의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자유주의는 소극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소극적 자유 뿐만 아니라 적극적 자유까지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유가 절대는 아닙니다.
      자유는 내 주먹을 휘두를 때 그 범위 안에 타인의 얼굴이 있으면 제한되는 것입니다.
      님이 말하는 자유는 자유방임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 휴우 2016.07.27 20:44 신고

      휴. 그걸 몰라서 그러는게 아님

      공산주의는 노동자들 보호를 위한다며 권력을 잡았지만 결과는 죽음이었음

      늙은도령님이 원하는 적극적 자유는 자본가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는 자유임. 자본가들이 원하지 않는데 그게 법, 제도, 여론에 의해서 형성되면 권력임.

      척 피니는 놀라운 자본가이지만 모든 자본가들에게 척피니가 되라고 강요하는 순간 독재를 보게될 것.

      대한민국에서 이런 자본가가 등장하여 사실상 대한민국의 부의 대부분을 가지고 자유로서 정책을 행사한다면 모르되 정부 권력으로 강제한다면 민주주의도 파괴됨.

    • 늙은도령 2016.07.27 22:06 신고

      참으로 답답하네.
      당신이 말한 자유가 강자를 위한 자유라고요.
      적극적 자유는 강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 인류가 투쟁을 거쳐 획득한 것입니다.
      자유가 소극적인 것에 한정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강자가 승리해요.
      그것이 다윈의 진화론을 곡해한 허버트 스펜스의 사회진화론이고요.

      또 공산주의(예수의 초기공동체가 공산주의의 전형)는 단 한 번도 이 세상에서 시행된 적이 없어요.
      공산주의를 내세운 모든 국가 중에서 공산주의를 실천한 국가는 없어요.
      당신이 말하는 것은 좌파 전체주의지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사회주의국가가 무너진 것은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한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국가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적극적 자유라는 것이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도 완전히 틀렸습니다.
      독재에 대해 정치신학적으로 정치공법적으로 완성한 사람이 칼 슈미트인데 그의 책들을 보면(아감벤의 책들을 봐도 되고, 신좌파의 책들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 독재라는 것은 소극적 자유만 허락하고 적극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국법이 정지한 예외상태라 하는데 당신이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당신은 개념의 수준에서 온통 오류로 가득합니다.
      개념부터 제대로 이해하세요.
      그런 다음에 댓글이나 답글을 달던지 하십시오.

  9. 휴우 2016.07.27 19:02 신고

    사람 모으는 블로그에서

    주인장과 반대되는 주장하는게 영업 방해같아서 잘 안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뒤통수쳐줘서 이성을 잃었음

    사실 사회에 저런 애들 나이 불문하고 많이 있는 것 알고는 있음

    페미니즘 뿐만 아니고 온갖 사회적 의제를 우상처럼 받들면서 그걸 대의명분으로 걸어놓고 장사함

    하지만 속내 찾아보면 결국 자리와 돈임

    물론 처음에는 그들도 꽤 순수한 구석이 있었음

    하지만 목적을 위해 자리와 돈이라는 수단을 선택하면 결국 목적은 잊혀지고 수단이 목적이 될뿐

    심지어 강용석 같은 인물도 10여년 전에는 경제민주화를 믿고 박원순과 함께할 정도였음

    하지만 박원순이 얼마나 음흉한 인간인지 모든 일이 끝난 후에야 알아차렸을 정도니 말 다한 것

  10. 휴우 2016.07.27 19:38 신고

    문맥을 보면 주인장은 진보를 위한 투자가 어마어마해도 감수해야한다는건데

    누구 목숨을 투자가능한 자원으로 삼는지 좀 궁금함.

    사람들한테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면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분배하면 기술 발전을 위해 쓸 자원은 없음

    기술 발전을 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면 그 자원만큼 후진국에서부터 사람들이 죽어나감

    물론 선진국이라고 안죽는 것은 아님

    프랑스 혁명가들은 왕당파의 재산과 목숨

    나치는 유대인의 재산과 목숨

    공산주의자는 자본가의 재산과 목숨

    자유무역주의자들은 아일랜드인의 재산과 목숨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족 혁명가들은 식민 부역 세력들의 재산과 목숨

    특이점주의는 사회공학이 아닌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을 주장하지만 자원을 동원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음

    자원을 동원하면 그만큼 어디선가 벌충해야와야함

    미국은 과거 보다 좀 세련된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덜 죽는다거나 덜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아셔야함. 오히려 지역적으로 제한되었던 과거 혁명의 폐해에 비해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특이점주의 혁명은 점진적이면서도 그 피해가 전 지구적일 것이므로 지구 상에서 피할 사람이 없을 것.

    늙은도령님이 공감한다는 그 사회적 약자들

    바로 그 분들부터 죽어나가는 것

    • 늙은도령 2016.07.27 19:46 신고

      기술 발전이 결과가 무엇인지 지금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특이점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시죠.
      철학, 윤리,도덕, 사회과학, 인문학, 심리학 등등 관계되지 않는 분야가 없으니까요.
      현재의 불평등은 기술 발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디 제대로 세상을 보시죠.

  11. 휴우 2016.07.27 19:59 신고

    기술 발전의 결과말고 과정 말하는 것.

    과정 중에 사람들이 죽음.

    그러니까 주인장은 이 사람들의 목숨은 기술 발전을 위해 죽어도 되는거라고 지금 주장하고 있는 것임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킬 방법이라도 있어서 결과를 자꾸 논하는 것인지?

    왜 외면하시는지?

    • 늙은도령 2016.07.27 20:05 신고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을 옹호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해 해로운 기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했지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나노공학, 생명공학 등이 마지막 특이점을 넘으면 인류는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주장인데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12. 휴우 2016.07.27 20:37 신고

    기술발전으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해방되어 남성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뭐인지? 옹호한 적 없다고 하시려면 바로 위에 단 댓글은 무엇이신지... 날은 덥고 짜증은 늘어남. 특이점주의를 비판하니 특이점주의를 더 공부하라니 이게 무슨 순환논리인지.

    • 늙은도령 2016.07.27 22:09 신고

      당신이 기술 발전의 중간에 사람들이 죽는다며 특이점을 언급했잖아요.
      자신이 쓴 댓글도 기억 못해요?
      잘 모르면 배워요.
      개념 차원에서 온통 오류로 가득한 댓글이나 답글에 답한 것은 그래도 당신을 존중해서인데, 더는 못하겠네요.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후에 다시 오십시오.

  13. ㅎㅎㅎ 2016.07.27 21:52 신고

    잠시 끼어들자면 기술 발전은 평등을 오히려 가속화시켰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자체를 날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27 22:13 신고

      기술 발전이 평등을 오히려 가속화시켰다고요?
      다른 것은 다 그냥 두러라도 <21세기 자본>이라도 읽어봐요.
      기술 발전은 불평등을 늘리는 방향으로만 작용했어요.
      기술 발전의 불평등을 정치의 힘으로 막는 것이 인류의 역사였고요.
      이건희나 이재용이 그렇게 큰 돈을 갖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도 기술 발전을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나 정보통신기술이 평등을 늘린 것 같나요?
      그것 때문에 극단의 불평등이 생겼습니다.
      양과 음을 같이 볼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을 국가가 국민을 위해 쓴 보건이나 의료보험 등 때문에 그나마 최소한의 평등이나마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 발전의 결과가 기업과 슈퍼리치로 넘어간 이래 불평등은 인류가 공존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습니다.

  14. 자유 2016.07.31 02:04 신고

    운동권에서 부르는 노래 가사중에~ 민주주의여 만세~하는 노래가 있던데 그걸 자유주의여 만세~라고 부르면 좀 웃긴듯...
    위에 휴우님의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대해 이야기하는거에대해 든 생각입니다만


    • 늙은도령 2016.07.31 02:23 신고

      자유에 대한 개념이 엉터리입니다.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고요.
      검색 수준의 지식으로 너무 큰 문제를 얘기하려 하니 온갖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저론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회자되는 자유는 강자의 자유며, 소극적인 자유로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에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불과합니다.
      정치적 개념이 너무 부족하니 민주주의가 돌아갈 수 없는 것이고요.

  15. BOW 2016.08.02 21:38 신고

    뒤늦게 보는데 느끼는 거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한반도에는 진짜패미니즘이 설수 없다는것입니다.그저 간판만 내세운 사이비만 있을 뿐...(클로저스 사태,강남역)

    • 늙은도령 2016.08.02 22:47 신고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습니다.
      민주화운동에 페미니즘이 묻혔죠.

      메갈리아4는 그런 배경 하에 생겼다고 봅니다.
      인터넷의 속성 상 거친 단어들이 동원되고 강렬한 적의가 표출됐지만 그것은 그 동안의 피해에 대한 당연한 반발입니다.
      그 정도도 인정하지 못한다면 남자들이 죽일 놈들이 됩니다.
      수천년을 남성 위주로 살았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이르러서는 여성이 노예로 전락했는데 이 정도의 반발이 꼴보기 싫다고 집단매도하는 것을 어이가 없습니다.
      이러니 한국남자들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존중이란 쥐꼬리만큼도 없이 비판만 하는 모습에서 어떤 여성이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16. BOW 2016.08.03 15:31 신고

    덤으로 보충하고자 이주소를 링크해봅니다.
    http://blog.naver.com/highkyo/220778494163
    https://namu.wiki/w/%EB%A9%94%EA%B0%88%EB%A6%AC%EC%95%844

    PS:게다가 김자연씨의 성우교체는 유저들이 요청으로 교체된것뿐입니다.
    그나저나 요즘 넥슨의 행태가 별로 맘에 않들긴합니다.(클로저스를 배제하더라도...)
    PS2:이번 메갈사건으로 인해 진보계쪽 완전 몰락해버렸습니다.
    /%ED%81%B4%EB%A1%9C%EC%A0%80%EC%8A%A4%20%ED%8B%B0%EB%82%98%20%EC%84%B1%EC%9A%B0%20%EA%B5%90%EC%B2%B4%20%EB%85%BC%EB%9E%80
    https://namu.wiki/w/%ED%81%B4%EB%A1%9C%EC%A0%80%EC%8A%A4%20%ED%8B%B0%EB%82%98%20%EC%84%B1%EC%9A%B0%20%EA%B5%90%EC%B2%B4%20%EB%85%BC%EB%9E%80/%EA%B0%81%EA%B3%84%20%EB%B0%98%EC%9D%91#toc

    • 늙은도령 2016.08.03 15:37 신고

      진보계가 완전 몰락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메갈리아4 사태는 제대로 가고 있습니다.
      찌질한 남성들의 정체가 폭로되는 과정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중입니다.
      여성이 조금만 목소리를 내면 금방 찍어누르는 아주 못된 버릇이 본격적인 토론의 대상이 된 것이 지금까지의 과정입니다.
      다음을 기대하십시오.

  17. BOW 2016.08.03 15:43 신고

    일단올립니다.

  18. 몽테를랑 2016.10.22 19:53 신고

    그래서 전태일과 안중근 얼굴을 사용해서 능욕을 벌이고
    이제 다시 순직한 경찰관 모욕하면서 낄낄 거리는 족속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거기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찌질한 짓거리인가요?

    한가지 더
    이 혐오스러운 발언중에 이백충이라는 이야기 들어보셨나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돈 못버는 남자들은 등X이라는 이야기 이고
    이를 페미니즘 투쟁에서 적극적인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 분노하는 것 역시 찌질한 짓인가요?

    물론
    지금껏 여성이 당해온 역사가 있으니 어느 정도의 반동은 필요하다라고 보시는 모양인 모양인데
    그 반동의 이면에는
    지극히 비열한 정서가 담겨저 있다는 것 쯤은 짚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덕분에 빻은 한남들은 더더욱 진보=메갈 이라는 생각이 더 깊어지게 되고
    성별간의 분열은 더욱 심화되겠지요..(뭐 태초 이래로 서로 분열하고 싸우게 숙명지어진 운명이긴 합니다만)

    다만
    이 더러운 메갈/워마드의 언어들이 보수의 손에서 더욱 악랄하게 다듬어져 내년에 그들의 주요무기가 된다고 할때
    그때도 안중근 전태일 얼굴에 낙서 한것이 무슨 잘 못이냐고 악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10.22 19:57 신고

      여성 중에도 또라이는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 대해 쓰지 않았어요.
      일베와 동일한 여성들도 있는데 그들 때문에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찌질한 짓 그만 합시다.
      그런 여성들 때려눕혀 뭘 그리 얻을 것이 많다고.....

  19. 몽테를랑 2016.10.25 20:29 신고

    굳이 메4와 워마드 이야기 하지않아도 이미 듣지않으실테니 더 이야기는 않하렵니다.
    하기야
    죽은 노무현이나 전태일이 살아있었다면 메갈이었을 것이라는
    '늙은 운동가'들이 수두룩하니..
    이야기 해봐야 뭐 하겠습니까.
    정의당이 어떤 꼴이 됐는지 다시 복기하고 싶지도 않으시겠지요.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 늙은도령 2016.10.25 21:01 신고

      여성들에게도 또라이는 있는 법입니다.
      욕할 것이면 그들을 하세요.
      전체를 매도하지 말고.



결국 법을 앞세운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다.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허울뿐인 개념과 함께, 우월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찍어누르는 전가의 보도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개념화한 '일반의지'는 법으로 구체화된다. 인민이 만들고 지켜야 하는 법에는 모두가 동의한 일반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최고 주권의 통치자라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법 앞의 평등'이다. 누구도 상대적 약자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불리하지 않으며 동등한 변호를 보장받는다. 지금처럼 우월적 강자는 거대 로펌의 변호를 받고, 상대적 약자는 국선변호사나 무료변호를 받는 실질적인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국가에서는 절대명제로 어떤 의문도 허용되지 않는 '법 앞의 평등'은 부와 지위, 인맥 같은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불평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루소의 일반의지를 반영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지고, 이익의 충돌이 첨예해졌으며, 통치자이자 피통치자인 인민이 국가주권(최고주권)에 복종해야 하는 의미의 국민으로 격하된 이래, 법의 제정을 소수의 국회의원과 전문가, 행정부에 넘어간 이후에는 법의 정립, 집행, 적용에서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법 앞의 평등'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렇게 생긴 야만의 빈공간에 우월적 강자들이 전유물로 변질된 '법대로'가 자리잡았다.



리쌍의 '법대로'도 이런 배경 하에 바라봐야 한다. 리쌍의 옹호자들은 강제집행이 '법대로'로 진행됐기 때문에 '합법적이기에 압도적인 폭력을 동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서윤수 씨가 우장창장을 개업하기 위해 들인 자금(현재 2억5,000만원)을 빌미로 리쌍의 '법대로'를 옹호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우월적 강자가 법(임차대보호법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을 앞세워 상대적 약자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내몰아도 괜찮은 기준이 2억5,000만원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일반의지가 담겨있는 법(사회계약)이 어떤 불평등도 인정하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서 우월적 강자의 무기이자 보호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허울뿐인 개념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드의 성주 배치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한미 간에 체결한 법률인 '소파 규정의 불평등'을 파고든 것인데, 리쌍의 '법대로'와 법논리 상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홍만표를 동원한 정운호 게이트와 진경준 검사장의 축재에서 보듯,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검사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법대로'에서 나온다. 검찰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한 기소권 독점도 법에 근거한다. 극소수의 슈퍼리치와 거대 투기자본이 주권국가와 싸울 수 있는 것도 '법대로'를 극대화한 것에서 나온다.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법은 99.99% 우월적 강자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싸이(강제집행을 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에 이어 리쌍까지 '법의 맹점'을 이용해 '법대로'만 외치며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우월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지옥으로 내모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아 먹먹하기만 하다. 물적 탐욕에는 만족이란 없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가지려 하는 것이 물적 탐욕이다. 리쌍은 시청자와 팬들의 사랑으로 벌어들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 땅의 약자들은 촛불만 들 수 있지만, 강자들은 '법대로'를 앞세워 경찰, 용역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다. 어디에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상생과 공존, 공감과 상식이란 없고, 그래서 사람사는 세상이란 아득한 꿈이 되버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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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7.19 08:27 신고

    가진자의 횡포입니다
    가진것들이 더 가지려 기를 씁니다...

    죽으면 빈손인것을..

    • 늙은도령 2016.07.19 15:18 신고

      특히 연예인은 인기로 큰 돈을 만지는 사람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능력 대비 엄청난 대가를 받는 것이니까요.
      리쌍이나 싸이, 둘 다 가진 능력에 비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2. 맹그로브 2016.07.19 10:08 신고

    매스 미디어가 발달하고 먹고 살만해 지면서 연예인들의 지위가 급속도로 격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질을 보면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 소위 "딴따라"로 불리며 손가락질 받던 직업군입니다. 직업의 귀천을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본질은 이 시대의 교육의 부재와 급속도의 미디어의 후광을 얻으며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된 딴따라 일 뿐입니다. 거기에 철학과 공익과 공인으로서의 터무니 없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일반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이름 모를 예인들과는 상당한 거리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박유천을 비롯하여 심심치 않게 그들의 사생활이 까발려 지고 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일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웃긴 것은 그런 것을 보고도 우리 아이들은 테레비 앞에서 그들의 흉내를 내고,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정신줄 놔버린 다는 것이죠. 저는 이것도 일종의 쇄뇌라고 봅니다. 궁민을 개, 돼지로 만드는 쇄뇌.

    • 늙은도령 2016.07.19 15:20 신고

      네, 우리나라는 너무 망가졌습니다.
      청소년들이 평등한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으로 승부할 수 있는 연예인에 많이 도전합니다.
      불평등이 만든 왜곡된 현상이지요.
      그것이 연예인들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올려놓았고 그 부작용들이 속출하는 것이지요.
      부와 기회의 불평등은 모든 분야에서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킵니다.
      근본적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3. 참교육 2016.07.19 11:55 신고

    마르크스가 그랬지요? 법이란 '계급 지배의 한 양식'이라고...
    헌법이니 민법 상법..어쩌고 하는 법이 버젓이 있지만 그 법이 진정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두환노태우의 재판에서 '성공한 크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문을 보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사법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꿈을 깨지 못하는한 민주주의란 민중과는 거리가 먼 법전일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6.07.19 15:23 신고

      법의 지배가 갖는 허상을 마르크스는 정확히 꿰둟었죠.
      우리가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만이 판단이 정확해지기 때문입니다.

    • 2016.08.08 04:09 신고

      잘 모르시나본데, 1996년 전두환 노태우에게 반란죄·내란죄 유죄 선고가 되면서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 가능하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8 06:11 신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현 새누리당 3선 의원이 검사 시절에 박정희의 쿠데타를 고발한 것을 기각하면서 한 말이지, 법정까지 가지도 못했습니다.

  4. ㅓㅓ 2016.11.06 09:36 신고

    리쌍이 우월적 강자라고 믿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오히려 피해자같던데요. 건물주는 무조건 악인가요?



메르켈 리더십의 본질을 가장 냉정하게 파고든 책 중에 하나가 올해 1월1일에 작고한 울리히 벡(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최진기 강사가 위대한 사회학자라고 언급했던 석학으로 《위험사회》의 저자)의 《경제위기의 정치학》이다. 이제는 정치를 전공한 사람들도 읽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면 메르켈의 리더십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추론할 수 있는데, 벡은 이것을 정확히 짚어냈다.





메르켈의 리더십을 ‘엄마 리더십’이라고 하지만,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다’는 것과 동일하다. 메르켈은 지독히 마키아벨리적이어서 그때그때의 여론의 흐름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 원전건설을 강행하던 중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났고, 여론이 나빠지자 원전제로로 돌아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메르켈이 시리아 난민 수용을 결정한 것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독일 우파의 주장에 따라 난민 수용 불가를 천명하다, 국가 전체의 여론이 나빠지자 이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메르켈은 TV로 생중계된 학생과의 토론에서 불법난민인 자신의 부모가 강제추방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여학생의 애원을 단호히 거절했었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여론이 악화되고, 불법난민과 이주자에 대한 극우주의자의 폭력이 확산되고, 그리스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비판에 처하고 국내여론도 나빠지자 전격적으로 난민 수용을 결정했다. 여론에 따라 정치적 결정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 메르켈 리더십의 실체다.





독일이란 나라가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유일한 국가여서 이런 결정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난민이 독일에 정착한 다음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보면(역사의 재구성이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방불케 한다), 이스라엘이 재난자본주의로 돌아선 것이 대규모 난민수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소련연방이 여러 가지 이유(너무 많은 책에서 너무나 많은 주장을 제시해 하나로 압축할 수 없지만, 정치 실패가 가장 큰 요인이다)로 붕괴된 지 얼마 안 된 1993년에, 러시아 정부는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쇼크요법(국영기업 민영화, 공무원의 대규모 구조조정, 가격통제 해제에 따른 생활필수품에 대한 정부보조금 폐지, 전면적 시장경제 도입, 외국자본의 러시아 기업의 인수‧합병 허용, 이익의 해외반출 허용 등)을 실시했다.



이때 거의 1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추방됐는데, 이들을 받아들일 나라는 전 세계에 이스라엘밖에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잦은 전쟁 때문에 장기적인 경제침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맺은 것도 국제적 압력보다는 경제적 탈출구를 찾기 위함이 더욱 강했다.





헌데 러시아에서 유입된 어마어마한 값싼 노동력(박사 학위 소지자와 첨단기술 전문가도 많았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이어갈 정치경제적 필요성을 없애버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생존을 위해 팔레스타인에 정착했고, 위험도 불사하지 않았기에 평화협정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 경제부흥을 일으켰고, 거기서 얻은 노하우와 기술을 살려 폭력시장과 안보‧재난시장, 디지털 감시사회, 경제적 차별을 축으로 하는 재난자본주의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유대계 난민들이 정착한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리틀 러시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르켈의 결정은 최대 30만 명에 이르는 값싼 노동력의 확보와 동일해서 오씨라고 놀림받고 있는 동독의 노동자나 실업자들과 격렬한 일자리 충돌을 불러올지 모른다.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독일행을 선택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이 겪었던 힘겨운 생존을 되풀이해야 한다.





통일독일이 대규모로 유입될 난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돌려버리면 독일사회의 잠재적 불안요소로 자리할 수도 있다. 이들이 만들어낼 시장은 기득권의 수중에 집중될 것이고, 메르켈이 동독노동자와 경쟁시키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난민들이 신빈곤층을 형성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며 그리스 부채탕감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 유로존의 돈을 싹쓸이하는 것에 대한 각국의 비난도 이번 결정 때문에 쏙 들어갈 수 있다. 프랑스 정부가 받을 압력도 클 것이며,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나머지 유럽국가에도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메르켈 입장에선 한 번만 더 총리를 연임하면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도 완성되기 때문에 묘수를 둔 것만은 확실하다. 독일이 저지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감안하면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유럽의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등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결정은 환영해마지 않을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모델처럼 한다면 메르켈의 결정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일 될 것이다. 부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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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9.04 08:44 신고

    함께 사는 세상..그것이 정답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29일)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2호선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29세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비정규직이었던 그는 2인 1조가 돼 진행해야 되는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는 작업을 혼자 했고, 그것도 열차가 다니는 시간대에 진행됐습니다.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려면 선로에 들어가야 하는데, 바로 그 스크린도어가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열차가 다가와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메트로 측은 스크린도어 정비를 맡은 외주업체가 안전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며 사고의 책임을 용역업체에게 돌렸습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매뉴얼이 존재해도 그렇게 일하면 도저히 수지를 마칠 수 없는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습니다. 이놈의 ‘슈퍼갑’은 일만 터지면 ‘스몰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스크린도어 점검업무를 맡은 용역업체라고 열차가 다니지 않은 시간에 매뉴얼대로 일하지 않고 싶었을까요? 서울메트로가 스크린도어 점검업무를 외주화시키면서 용역업체가 매뉴얼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합당한 비용을 지불했을까요? 선로에서 할 수밖에 없는 업무의 특성을 살펴 열차 운행을 조정하거나,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심야에 할 수 없었을까요?





필자가 분노하는 것은 그가 느꼈을 공포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생존자들이 느꼈을 출구 없는 공포와 같았을 것인데, 그의 죽음에 얽혀있는 제도적 문제에 관한 사회적 토론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성공의 다른 말인 로스쿨 논란은 언론을 연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이 만든 최고의 히트상품인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 도입된 로스쿨제도는 사법시험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법시험은 도박의 성격이 너무 강해 성공보다는 실패의 총량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사법시험은 합격하지 못하면 얼마의 노력을 했건 돌아오는 것은 전무합니다. 우리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얘기만 들었을 뿐, 그보다 수천수만 배나 많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고졸이나 지방대 출신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이 형편없는 것은 스치듯 지나칩니다.





사법시험의 신화는 철저하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 폐해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소수점 몇 자리까지 내려가야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지만, 그 작은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집니다. 사법시험이 통일은 대박처럼 한건을 부추기는 도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로스쿨은 이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했습니다.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가족의 차원에서도 사법시험은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입학전형을 두었습니다. 제도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헌데 로스쿨을 도입한지 7년 만에 이런 취지들이 무색해졌습니다. 부와 권력, 기회가 대물림되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로스쿨제도는 그대로인데 (아니 일부는 발전했는데) 그것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이 파고들어 상위 1%의 잔치로 변질된 것입니다.



사법고시 합격자 중에서도 실업자가 나올 만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강화됐고, 그것이 (조)부모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례가 늘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했던,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한방에 인생역전이 일어나던 시절이 가버렸습니다. 로스쿨 논란의 근저에는 이런 사정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로스쿨 논란에 관련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매뉴얼조차 지킬 수 없어 선로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정규직 문제에 비하면 0.0001%의 국민들에게만 관계되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29세 비정규직의 죽음에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물림되는 돈과 권력, 기회의 독점, 성공지상주의를 빼면 로스쿨 논란은 국민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그것,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상위 1%의 문제이기에 로스쿨 문제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습니다. 하위 99%에 해당하는 29세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처럼 묻혀버렸습니다.



미디어시대는 언론에서 무엇을 다루냐에 따라 국민의 관심이 결정됩니다. 자본주의의 정수인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기업과 개인의 이익이 모든 것에 앞섭니다. 가능하면 상위 1%에 속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마다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과 로스쿨 논란의 사이에 갇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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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9.01 08:56 신고

    신분의 대물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계층 사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양반,중인,평민,노예.....

    • 늙은도령 2015.09.01 17:45 신고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잘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못사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사회이동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2. 『방쌤』 2015.09.01 10:30 신고

    읽는 동안에도 몇번이나 맘이 아파오네요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하는 바로 우리들의 일인데 말이죠,,
    대한민국이라는 계층사회에 살고있는 현실이 살짝 서글퍼집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47 신고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최악으로 가고 있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버렸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언론은 상류지향적 내용만 내보네고....

  3. 참교육 2015.09.01 11:48 신고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잔인하 얼굴입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사악한 제도 자본이 인간을 살해했습니다.
    가슴먹먹해지는 얘깁니다. 언제까지 이런 세상을 구경하고 살아야 하는지...
    남의 얘기가 아닌데... 사람들은 모두가 구경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51 신고

      종편이 생긴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됐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들어야 힘을 가질 수 있는데 저들의 얘기만 듣습니다.
      정말로 민중을 위한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서민의 얘기로 모든 것이 다루어지는 그런 방송......

  4. 耽讀 2015.09.01 12:20 신고

    1%는 99%를 지배합니다. 99%는 1%에 저항하지 못하고, 않습니다. 1%가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99%를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월세방에 사는 어르신들이 종부세에 분노하는 세상이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54 신고

      네, 그렇게 세뇌하는 것이지요.
      어르신들은 투표율이 높은데 그분들을 계속해서 세뇌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를 넓혀가고 기본적인 표를 안고 갑니다.
      언론이 이를 도와주고요.

  5. 바람 언덕 2015.09.01 15:32 신고

    귤이 강남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했습니다.
    이 놈의 나라는 늘 이런 식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모두 뜯어 고쳐야 합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다 바꾸어야 합니다. 피를 본다하더라도....

    • 늙은도령 2015.09.01 18:00 신고

      정말 혁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답이 없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힘드네요.
      일단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다루는 방송이 필요한데 그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6. 백순주 2015.09.01 16:45 신고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진정 물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세상, 암흑에 갖히지 말아야 하는 세상, 미지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순 없을까요?

    • 늙은도령 2015.09.01 18:07 신고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서민의 입장에서 역사가 얘기되고, 서민의 입장에서 정치와 경제 등이 얘기되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세상은 승자들이 만들었습니다.
      서민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지요.
      민주주의는 서민이 주인인 세상인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탈출구는 교육과 철학, 방송인데 이 모든 것도 승자가 운영하니....

  7. 소피스트 지니 2015.09.01 21:16 신고

    좋은 말씀입니다. 이 나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절대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 많은 이들이 가장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21:49 신고

      방송에서 다루어져야 힘을 받는데 방송사 자체가 현 구조의 기득권이라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전국을 커버할 수 있는 국민방송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원래는 KBS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정권의 눈치만 보니....

      모든 국민이 책을 읽거나 인터넷의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기는 힘듭니다.
      그런 규모의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외부에 나가 파괴행위를 하는 데 아주 익숙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면 전투보다는 건설에 더 시간을 쏟을 겁니다.


                                          ㅡ 피터 시아렐리 전 미 육군 기갑부대 사령관, 《쇼크 독트린》에서 재인용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돌풍을 일이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두 편의 영화에서 무너진 유일제국의 뒤틀려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을 주변부로 밀린 백인남성의 입장에서 다루었는데, 트럼프의 돌풍이 이것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는 <그랜 토리노>에서 소위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국 정계와 재계, 군부, 종교, 허리우드, 언론 등을 독식하고 있는 슈퍼엘리트(라이트 밀스가 정의한 ‘파워엘리트’의 21세기 버전)의 정반대에 서있는 저학력‧중하위층 산업노동자이며, 계속해서 시대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백인남성의 피해의식을 다루었다. 



교묘하게 포장했지만 이들은 청교도적 가치에 따라 가족과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남은 것이란 미국식 산업자본주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차 한 대(그랜 토리노)와 집 한 채 뿐이다. 제국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모든 것과 단절한 채 지내면서도, 미국적 정신과 가치의 부활을 종말론적으로 염원한다.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은 새로운 이웃으로 자리한 베트남 이주자에 대한 구원의식으로 대체된다. 주인공의 비극적 죽음(종말론적 영웅의 죽음은 희생과 구원이란 명분으로 포장될 때 가장 울림이 크다)은 극도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제국의 은퇴한 백인노동자가 가족도 아닌 인종적 타자에게 희망을 두는 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순간, 주인공은 가장 폭력적인 방식을 유도하는 비폭력의 희생자로 대치된다. 그를 죽인 폭력배들(이들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이라크 스나이퍼로 대체된다)은 가해자이기 전에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피해자임에도 그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백인남성 산업노동자의 피해의식을 극대화한다.





이런 극단적인 폭력의 대물림과 비극의 패러독스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을 통해 일그러진 애국심으로 표출된다. 한층 젊어진 주인공은 (제국의 허상과 치부를 폭로한 카트니라 피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국의 종말을 표상했던 9.11사태와 이라크 전쟁으로 ‘back to the future'를 감행한다. 



젊은 어머니와 어린 아이의 저격도 서슴지 않는 주인공은 뒤틀려진 피해의식이 애국적 저격이라는 절대교리에 의해 추호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9.11테러의 근원에 자리한 ‘정치적 자본주의’와 제국적 탐욕을 위한 대량학살과 일방적인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하지 않는다.



존 웨인(미국 건국의 주역을 대표한다)의 변종이자 대변인인 이스트우드는 미국이란 나라가 이주와 정착, 건국과 제국에 이르는 전 과정이 약자(원주민, 흑인노예, 백인 하인, 여성, 이주민 등)에 대한 일방적 폭력이었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는 단 한 컷도 할애하지 않는다. 



<황야의 무법자>이자 <더티 해리>였던 배우 이스트우드와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감독으로서의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역사 전체에서 줄기차게 이어져온 폭력의 악순환에 갇혀 있을 뿐이다. 폭력에 대한 그의 강박적인 영상적 수사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된다.     





이스트우드는 두 편의 영화에서 저학력‧중하위층 산업노동자이자 제국의 숨은 주역이었던 두 명의 백인을 통해 뒤틀어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을 종말론적으로 연결시킨다. 두 명의 주인공이 미국적 정신과 가치를 위해 싸우다 죽었기에, 종말론적 폭력에 근거한 부활과 구원의 과정은 여전히 진행형이 된다. 



사회적 불의에 대한 분노는 정의를 갈구하고 실현하는 출발선이지만, 그것이 분명한 적이 있는 피해의식을 매개로 하면 극단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미국의 대표적인 히어로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 극단을 왔다갔다 하는 ‘배트맨’과 ‘람보’가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것이 정치적 영상으로 표출될 때 극우적 민족주의(히틀러가 대표적)가 힘을 얻기 마련이다.



뒤틀려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이 교차하는 곳에 폭발 직전의 분노가 자리하는데, 이것을 노골적으로 파고든 극우 정치인이 부동산재벌 트럼프다. 그는 배트맨의 부와 람보의 폭력성을 소유하고 있어 제국의 주역이자 시대의 피해자인 저학력‧중하위층 백인남성과 노동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존의 후보에게 직설적으로 공격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열광한다. 현실정치에서 총으로 대표되는 미국 백인남성의 전통을 사용할 수 없지만, 트럼프가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기존 정치인의 신물나는 거짓말을 박살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의 전통을 중시하는 백인남성의 총과 같다. 





이들에게 거침없고 폭력적이며 정제되지 않은 트럼프의 발언들은 상위 1%의 슈퍼엘리트와 제국의 적들을 향하기에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극도의 불평등과 구조적 차별이 난무하는 현실의 부정의를 통쾌하게 까발리는 그의 언행은 위선과 거짓으로 점철된 슈퍼엘리트의 정치경제적 담합에 치명적인 카운터펀치처럼 다가온다.



트럼프의 돌풍은 허리우드와 거대언론들이 포장해온 미국의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병들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레이건을 지도자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티파티(미국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보스턴 차사건에서 따온 이름)가 이들의 카타르시스에 동참하면 트럼프 돌풍은 오바마 다음의 백악관 주인이 극우‧인종차별의자의 몫이 될 수도 있다.  



극우 언론제국을 건설한 루퍼트 머독이 트럼프 돌풍을 폭스TV를 통해 확대재상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극우세력의 입장을 주도하고 있는 3개의 종편이 한국판 트럼프를 만들어 박근혜 다음의 청와대 주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남북한의 극한 대립을 부추긴 것이 3개의 종편이었다는 점에서도 드럼프 돌풍의 한국판이 다음 대선에서 재현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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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24 08:39 신고

    트럼프의 돌풍이 어디까지,언제까지 이어 질런지
    두고 봐야겠네요
    JTBC 사주의 움직임 주시 해 봐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24 16:03 신고

      트럼프와 홍석현이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손석희를 자를 것이라는 것인가요?

      트럼프의 돌풍은 미국이란 나라의 특수성을 넘어 전 세계로 극우세력에게 퍼져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2. 불루이글 2015.08.24 20:45 신고

    정말 예리 하신 분석 감탄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자살만 생각하던 필자가 ‘세상을 알고나 죽자’라는 심정으로 출발한 지난 10년 동안의 공부는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로 압축된다. 정말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신자유주의 통치술로 귀결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피하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산업화된 대학에 자리를 틀고 앉은 강단의 지식인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치열하게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확인하고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을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의학이 도와줘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면 몇 개의 지적공동체라도 이루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작은 예들을 만들고 싶었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무엇인가 미진했던 부분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비롯한 푸코의 강연 저작들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술이며,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가 강한 국가와 기업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한국과 일본, 독일의 기업들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읽은 조하나 보크만의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 국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박정희의 통치술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는 것에서 기인함을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조금은 지루했지만,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를 열렬히 지지한다고 나온다. 필자도 이것에 동의한다. 여기에 무제한의 사유재산과 독재자, 기업의 사적독점을 중심으로 한 정경유착이 더해지면 신자유주의는 완성된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최단기간 내에 강제적으로 이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필자가 공부한 바로는 박정희가 한국적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했고, 줄푸세의 박근혜에 이르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도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근혜가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일 수 있는데 일정 수준의 도움을 준 결과를 초래했다(이는 당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통점인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경제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화시키거나 말살시킨 형태다. 따라서 노조가 살길이 없고, 민주주의가 극도로 위축되기 때문에, 공교육이 재생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고, 최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민주주의는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정치검찰과 국정원, 국토부와 함께 최고의 기득권 이익집단인 교육부가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따라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장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 갔고, 이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형편없이 낮아졌지만, 그들로부터 간선제를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비리사학을 복귀시켰고, 국공립대에 예산 지원 중단이라는 압력으로 간선제를 밀어붙일 수 있었고, 교수들이 간선제로 뽑은 총장 후보도 청와대의 낙점을 받지 못하면 임명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국공립대들이 하나씩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87민주화항쟁의 최대 성과 증 하나인 총장직선제가 부산대만 남겨놓은 상황에 이르렀다.



부산대마저 총장간선제가 확정되면 권력의 뜻에서 벗어나는 대학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니, 그 다음에는 교과서의 국정화와 대학의 신자유주의 우경화와 산업 및 상업화(민간대학은 다 이 길로 들어섰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교육을 유치원에서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되고, 교육부의 목표는 완전히 이루어진다.





이럴 경우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화석처럼 흔적만 남는 최악의 교육환경이 조성된다. 이 땅의 보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미래세대까지 신자유주의 우파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수우파의 영구집권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미레새대가 지옥으로 가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이런 최악의 과정을 지켜본 부산대 교수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교육부의 일방통행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는 학생의 자살만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도 되지 못해 교수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하고 절망적이었으면,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교수마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정말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미친 증상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고 있다. 푸코가 말한 ‘광기의 시대’가 대한민국에서 통째로 재현되고 있다. 정의는 고사하고 윤리와 도덕을 넘어 상식과 지식, 종교와 예술마저도 돈이 되지 않으면 천대받는 세상이 됐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되는 이기주의가 극에 달했고, (조)부모의 재산과 사는 지역, 학벌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여긴다.





일베나 서북청년단, 어버이연합처럼, 자유청년연합 등이 초법적인 폭력을 일삼아도 처벌도 되지 않고 수구세력과 극우집단이 비호하고 있어 그들의 초법적 폭력은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국민은 온갖 방식의 조작과 이간질로 반목하고 작은 이익을 두고 극단으로 갈라짐에 따라 사회적 합의로 가는 길이 아예 차단돼 버렸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정부 부처들과 기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혈안이 됐고, 대통령이 지시한 것만 행함으로써 국민의 요구는 무시하기 일쑤다. 국방부와 국정원은 청와대의 관리를 벗어난 느낌이 들 정도다. 정부는 무능을 넘어 무책임까지 일상화돼 최악의 행정부로 전락했지만, 그마저도 쓸데없는 일만 벌이고 있다.



한국이 미쳤다. 어디를 둘러봐도 뭐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대통령부터 선행학습에 내몰린 유아까지 권력과 성공에 대한 욕망만이 역겨운 냄새를 내며 대한민국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 혼란과 역주행을 견딜 수 없었던 교수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 미친 대한민국에 묵직하고 참담한 경고를 던졌다.





필자는 교수의 유서를 읽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숨이 막혀 읽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라와 세상, 집단들은 미쳤지만, 그 와중에도 바르게 살려는 분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필자 주변에는 교수들이 널려 있지만 거의 대부분 적당한 타협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 언론에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는 것에 극도의 절망을 느꼈다.



허구한 날 정부에 유리한 쓰레기 보도들만 양산하고, 선정적인 사건만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종편과 존재이유를 포기한 보도채널이 친정부적 행보만 이어간 이래 지상파3사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제 역할을 포기했고 교육은 공공성을 포기했다. 필자는 부산대 사태를 어디에서 접해보지 못했다. 매일같이 여러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도.



아래의 유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묵직하고 먹먹한 돌 하나가 가슴에 자리하고 있는데, 유명을 달리한 교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미친 일들이 더해지는 바람에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미쳤다, 망하는 길을 향해. 기득권은 특권화를 울부짖는다, 미래세대의 고혈을 짜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디어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학교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교육부의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서 올려도 시국선언 전력 등을 문제 삼아 여러 국·공립대에서 올린 총장 후보를 총장으로 임용하지 않아 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란 점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사건부터 무뎌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총장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된다.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이며 국·공립대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닌 부산대학교가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이라도 이런 참당한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봐도 부산대학교는 그런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장직선제 수호를 위해서 여러 교수들이 농성 등 많은 수고로움을 감당하고 교수총투표를 통해 총장직선제에 대한 뜻이 여러 차례, 갈수록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무뎌있다는 방증이다. 대학 내 절대권력을 가진 총장은 일종의 독재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교수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이 들어갔고, 오늘 12일째이다. 그런데도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총장은 아무 반응이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메일을 통해 전체 교수들에게 그 뜻을 전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교수끼리 보는 방법으로 이미 전체교수 투표를 통해 확인한 바 있는 상황에서 별 소용이 없다. 늘 그랬다. 사회 민주화를 위해 시국선언 등을 해도 별 소용이 없다. 나도 그동안 이를 위해 시국선언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지만, 개선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8·90년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방식으로 유인물을 뿌리는 게 보다 오히려 새롭게 관심을 끌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지난 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근래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자신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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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쏘 2015.08.18 19:52 신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뭐라 말을 덧붙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미쳐간다는 말 밖에는...

    • 늙은도령 2015.08.18 19:59 신고

      정말 광기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 수구세력들의 준동이 도를 넘었습니다.

      그나저나 건강하신 것이지요?

  2. 방문객 2015.08.18 20:12 신고

    충격적입니다. 교수 직위와 삶을 포기해서라도 불의에 맞서셨군요.

    • 늙은도령 2015.08.18 21:16 신고

      실제 교육부가 마음에 안 들면 총장 임명 품위를 청와대에 올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피해본 대학교가 여러 군데입니다.

  3. 참교육 2015.08.18 22:13 신고

    선생님의 글을 통해 학문의 깊이와 인간애 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가지신 분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막가파들이 판을 치는 세상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인간 망난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생님의 뜻 하신바를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0:07 신고

      요즘은 정말 어디서부터 움직여야 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극단에 이르렀습니다.
      지구온난화까지 겹치면 정말로 극단의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중요한데, 우리는 잘할 수 있을까요?

  4. HowlS 2015.08.19 00:38 신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2:05 신고

      묻혀 버리면 안 되고, 국공립대 교수들로 고인의 뜻이 전파돼야 합니다.
      교수사회가 그럴 수 있을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묻히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5. 진검승부 2015.08.19 11:13 신고

    30년이 필요할 지, 100년이 더 필요할 지....우리세대까지 다 저승에 가면 바뀔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6:56 신고

      정부가 법인세 인상과 부자증세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절대 답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전체 인류가 지금보다 몇 배는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풀려있습니다.
      조세정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제대로 되면 당장 내년부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6. 백순주 2015.08.19 13:01 신고

    아직 제 깜냥이 선생님 글을 소화할 수 없을 듯 하여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살며시 들춰낸 글에 역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충격'이란 단어는 이제 목숨을 내놓아야만 가능한가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의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면...
    요즘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보도 듣도 못한 일들을 눈으로는 보는데 머리로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진정 이 사회를 위해 제가 할 일은 있는 걸까요?

    • 늙은도령 2015.08.19 16:58 신고

      그럼요, 많지요.
      지금 쓰시는 글들도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한국은 제조업을 포기하는 순간 망합니다.
      화학은 한국 최고의 젖줄이고요.
      님은 지금처럼 살아도 충분합니다.

  7. 공수래공수거 2015.08.19 13:51 신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북대학교도 수개월째 총장을 교육부가 승인을
    하지 얺고 있습니다
    대학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려는 청와대의
    술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두렵습니다
    유신시대로의 회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7:05 신고

      이런 대학이 많습니다.
      방통대도 총장 임명이 1년 이상 미뤄졌다 정권이 원하는 자가 올랐지요.
      경북대는 아직도 싸우고 있고, 몇몇 대학도 지금 전쟁 중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류층은 유신으로 복귀했습니다.

  8. 행인 2015.08.19 19:57 신고

    자신의 목을 걸고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조선시대 선비 같은 분이 아직도 있다는 게 상당히 놀랍습이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20:16 신고

      이것이 그냥 묻히면 안 되는데 벌써 언론에서 사라진 느낌입니다.
      이런 분들의 희생은 반드시 기억되고 세상을 바른 방향으로 가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9. Chris 2015.08.20 01:26 신고

    정말 미쳤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저렇게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이 그냥 소비되는 현실이 아프네요.

    • 늙은도령 2015.08.20 01:50 신고

      정치라는 것이 정말 추악해졌습니다.
      기득권을 형성해 지들 이익만 챙기는 최악의 사기로 변질됐으니까요.

  10. 2015.11.18 09:53 신고

    어리버리한 동네 아줌마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생양아치 깡패집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어떤 것도 통하지않는...

    모든 것이 저들의 권력에 장악되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가슴은 뜨거워 분노가 들끓는데..



우리는 주류엘리트의 80% 이상이 미국에서 공부한 시장자유주의 우파(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오너와 경영진이 지배하는 위계적 대기업, 자기조정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등)여서 미국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대선 초반부에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민주당에서는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트럼프는 매카시를 연상시키는 극우적 성향이고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니 보수적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양당의 대선후보로는 소화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극우에서 극좌, 전체주의에서 아나키즘까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까지 다양했다)가 무너진 1989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독주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이런 이념적 다양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시장근본주의적 전체주의 성향이 만개한 미국(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 1, 2》에서 명료하게 밝혔다)에서도 사회주의의 전통은 끈끈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19세기에는 유럽의 생시몽, 푸리에, 블랑키, 오언과 비견될 수 있는 헨리 조지, 유진 뎁스, 헬렌 켈러 등이 인민당 전성시대(9개주를 석권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참조할 것)를 열기도 했습니다.





미국 건국을 주도했고 지금까지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 엘리트의 양당과 연방정부가 인민당의 확장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 열풍을 말살시켰고, 루즈벨트가 사망한 이후 매카시 광풍으로 미국의 사회주의가 극도로 위축됐지만, 전 세계 사회주의자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진보와 빈곤》의 성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 등으로 이어진 미국의 사회주의는 기본소득(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과는 다르다)을 핵심적 가치로 내세우는데, 샌더스도 일정 부분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샌더스는 금융자본주의를 해체하고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건강보험체제에 집중하지만,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인정한 케인즈주의보다는 훨씬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제가 연구할 가치가 없는 자라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국가민족주의(수구적 제국주의의 냄새가 난다)와 자유방임 시장경제, 아나키즘적 극우주의(정부를 없애고 자유방임을 극대화하는)를 연상시킵니다. 미국 우파의 한 축으로 연방정부를 없애는 것이 목표인 사회적 복음주의자들(미국 우파를 다룬 《러 라이트 네이션》을 참조하라)이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데 이런 미국의 역사와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모두 다 무시한다 해도, 트럼프와 샌더스가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대선은 2008년 금융붕괴의 주범들이 연방정부와 양당의 지원 하에 최대수혜자로 바뀐 것에 대한 반발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융붕괴의 주범들은 미국 연방정부와 양당의 지원 하에 더욱 부유해졌고, 중하위층은 더욱 빈곤해졌기 때문입니다. 



2008년 월가 발 금융붕괴를 다룬 책들은 거의 대부분 주류의 입장에서 서술했고, 그 때문에 일종의 면죄부를 발행한 역할에 불과해서, 상위 1%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경유착(거대 양당, 연방정부, 월가, 군산복합체, 언론, 아이비리그, 허리우드, IT재벌 등의 주류엘리트가 미국의 이익을 독식하는 회전문식 정경유착)의 전모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유일제국 미국을 풍비박산낸 금융붕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마저 주류의 이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돌아가자, 좌우를 막론하고 미국 비주류들 사이에서는 극도의 불만과 분노가 쌓여만 갔습니다.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은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고 있는 상위 1%의 주류엘리트에 대한 반발과 분노를 빼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미국 역사를 철저하게 정치‧경제‧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쓴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1, 2》를 보면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며, 충분히 가능한 것에 속합니다. 그들의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월가를 점령하라’는 분노한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가 트럼프와 샌더스에게로 갈라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트럼프의 돌풍은 현 주류엘리트에 대한 반발의 일환이면서도, ‘월가를 점령하라’로 분출된 중하위 99%의 사회민주주의적 요구에 대한 수구 백인들의 반작용이지만, 샌더스의 초반 돌풍은 클린턴, 오마바, 힐러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수적인 진보엘리트에 대한 반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트럼프의 돌풍이 오래 가면 샌더스의 돌풍도 오래 갈 것은 분명합니다.



1929년의 대공황이 우파 전체주의(이탈리아의 파스시트, 독일의 나치, 일본의 군국주의)와 좌파 전체주의(소련의 스탈린)를 탄생시켰듯이, 2008년 금융붕괴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 총선과 대선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까요? 미국보다 신자유주의적 정경유착이 더욱 강한 나라가 한국이다 보니···   



P.S.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들이 있습니다. 글에서 인용한 책들 이외에도 토마스 페인의 《상식》, 미국 국부들의 《연방주의자 논설》, 찰스 비어드의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 존 듀이의 《공공성과 그 문제들》, 아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노엄 촘스키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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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17 08:49 신고

    민주당에서 샌더스의 돌풍이 어디갈찌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클린턴의 대세론을 꺾을지..

    • 늙은도령 2015.08.17 15:08 신고

      보수화된 클린턴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기를 바라야지요.
      그래야 우리도 바람이 붑니다.

  2. 참교육 2015.08.17 12:29 신고

    시장자유주의 우파를 이렇게 정의해 두셨네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오너와 경영진이 지배하는 위계적 대기업, 자기조정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너무 멋진 정리네요.
    페북으로 퍼갑니다.

    • 늙은도령 2015.08.17 15:11 신고

      한국이나 외국이나 재벌들이 성공하고, 정경유착이 넘쳐나는 이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 이래서 당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요.

  3. 耽讀 2015.08.17 13:27 신고

    2017년 우리나라 대선때도 비슷한 사람들이 일전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세력들도 당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란 변수가 있지만 색깔론을 들고나오면 오히려 받아쳐야 합니다.
    색깔론은 방어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공격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7 15:14 신고

      북한은 좌파 전체주의이고, 사회주의와는 다릅니다.
      사회주의에는 시장사회주의가 있어서 경쟁적 시장과 기업의 노동자 관리, 민주주의적 이익 배분 등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것이 민주적 사회주의입니다.
      자유주의적 사회주위라고도 합니다.

  4. 표르바 2015.08.17 19:17 신고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5. 신은죽었다 2016.01.30 12:35 신고

    저는 EBS 사진에 이렇게 답하고 싶군요.
    "땅을 소유하고 이익을 얻는건 눈에 쉽게 보이고 알아차릴 수 있지만 공동체에 이루어지는 이익 봉사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때문이다. 땅을 소유하건, 땅을 임대하건. 그 땅의 가치를 필요로하는 사람이 결정하고 그 땅에의해 생산된 것은 최종소비재의 것으로 직접 충족되거나 변형되어 시장에 거래로 봉사를한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시장거래 조차도 등가교환,잉여착취의 개념으로 악 이기에 EBS 내용이 전혀 문제 없다고 보실수는 있겠군요. 왜냐면 토지소유를 통한 어떠한 생산물이라도 근본적으로 착취라고 볼테니까요.
    시장경제, 보이지 않는손 이런것들은 칸트같은 이성비판,경험주의,전통 철학에서 나오는겁니다.
    무슨 수구 전체주의 이런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소유를 통해 공동체에 이익 봉사를 합니다.
    그게 얼마나 잘보이냐 안보이냐의 차이입니다.
    토지를 예로든건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경험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입니다.
    상상이 안가고 토지를 어떻게 이용하고 이용되는지 과정을 모르며 눈에 확 보이는것도 아니고
    그 중간과정은 뇌의 한계로 정리하지 못하고 시작점과 끝만 기억하는겁니다
    토지를 소유했다 내 머리로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돈벌어먹고 잘산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명 놀고먹고 착취하는 계급이다. 끝.

    그런데 정말 궁금한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트나 전통시장가서 물건살때 투쟁하나요?
    등가교환이라는 생각을하면 엄청나게 허무하고 나중엔 무의미한 거래에 화가날텐데.
    왜냐면 등가교환을 했는데 만족과 쾌락을 얻는건 있을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일하러 갈때도 착취당한다고 엄청 스트레스 받을텐데.

    • 늙은도령 2016.01.30 15:02 신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보시지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좋고.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착취의 체제인지 아실 테니까요.

      땅값은 주인이 올리지 않습니다.
      그 땅을 개척하고, 그 주변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고, 과학기술이 발전으로 생산량이 늘거나 하면 저절로 올라갑니다.
      무노동무임금이 자본주의의 원칙이라면 땅값 상승은 100% 불로소득이지요.
      이것이 EBS가 인용한 <진보와 빈곤>의 핵심 주제입니다.
      기본소득제의 개념도 여기에 연원하고요.

      이런 식으로 님의 댓글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1권에서 다루었던 등가교환이라는 것도 2권으로 넘어오면 시장교환과 노동착취로 넓어집니다.
      아무튼 마르크스적 한계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까지 더해야 조금이나마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고요.

      자본주의는 생긴 지 20~3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비판의 대상이었고, 각종 규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존속도 될 수 없었던 체제입니다.
      노동착취의 종류는 <자본론> 2~3권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마르크스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등가교환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비판은 제2권에 나오는데 당신은 그 사실도 모르고 댓글을 달았으니 책도 읽지 않은 것이지요.

      칸트에서 나온 것이 마르크스라 하는데, 칸트는 그런 것에 관심없었습니다.
      그의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숭고에 대하여> <영구평화론> 등등의 책들에 자본주의와 엮일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치를 사유한 사람이고, 만인의 행복을 찾았던 철학자이자, 예술의 힘을 믿었던 미학자였습니다.
      그는 관념론자이지 경험론자가 아닙니다.

      마르크스에 영향을 준 사람은 뉴턴과 다윈, 헤겔 등이었지 칸트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두세 번 언급한 것이 전부입니다.
      칸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청년 마르크스의 <철학의 빈곤>도 읽지 않았겠지만 제발 뭘 아는 척 하려면 기본적인 지식부터 갖추셔야죠.
      검색하면 나오는 쪼가리, 사이비 지식 말고요.

      댓글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는 법입니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욕보일 정도의 학자도 아니고요.
      인류 역사상 전체 지식인과 홀로 맞서 승리한 유일한 학자가 마르크스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이비 학자들을 동원한다 해도 이윤 추구 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통치술로서의 자유주의(경쟁을 최대화하고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경제 중심으로 국가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승자 중심의 통치술)가 손을 잡으면 부와 기회를 독점하는 극소수의 수중에 권력이 넘어가고, 절대다수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전체주의적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살아있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이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병자에게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희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가장 끔찍하게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희망고문과 열정패이가 일상일 때는 힐링마저 또 다른 절망의 연장에 불과할 뿐입니다.  





운이 좋아 양질의 일자리와 부의 재분배를 조금이라도 챙길 수 있었던 기득권 세대들은 어떻게든 나머지 삶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출생 때부터 이것에서 배제된 중하위층의 1030세대들은 기득권의 식탁에서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두고 무한경쟁을 펼쳐야 생명이라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흙수저라도 올릴 밥상이라는 것이 아예 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커지고,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극단으로 내몰리게 되는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런 퇴행적 현상은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확장됐으며, 공고화됐습니다. 특히 가장 신자유주의적 나라인 '헬조선'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 공업 국가들이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이 세 가지 주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여러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에서 인용).






이런 정치와 경제의 실패 때문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이 풍요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결핍인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빈약한 복지와 공정한 재분배를 감추기 위해 방임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졌으나,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를 주지 않아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세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평등조차 박탈된 이들은 주로 1030세대에 집중돼 있습니다. 2015년 현재 30세 이하인 사람들은 지금처럼 엿 같은 현실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그 해결책마저 그들이 늙은 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평생을 지옥에서 살게 되는 최초의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까지 더하면 청춘들이 감수해야 할 빈곤과 위험의 정도는 무한대로 늘어납니다.



이들은 ‘자신이 원인 발생에 가담하지도 않았지만, 그 피해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고, 문제의 해결에도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최악의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로서는 전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체념이 보편화되고 내면의 분노로 시달리는 ‘저주받은 세대’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을 따먹기는커녕 그들이 남긴 쓰레기를 뒤집어써야 하는 최초의 세대인 이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죽장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절규하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기득권 세대들이 나누려 하지 않고, 정부가 부의 재분배를 강제하지 않고, 재계가 따르지 않는다면, 1030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지옥과 다름없습니다.



이들이 해체된 가족과 무력해진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채 디지털 세상을 배회하는 것도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묶어 ‘지배의 변증법’을 만들어낸 기득권의 무제한적인 탐욕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부와 기회와 권력은 상층부에 쌓이고, 빈곤과 차별과 위험은 중하위층과 청년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탈피할 때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걸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쟁취할 때 '헬조선'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충분한 돈과 자원이 있으며, 소수의 기득권이 모든 부와 기회를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자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인류는 미래세대의 것들마저 가져다 썼기 때문에 넘칠 만큼의 부와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1030세대의 미래를 포기한 나라에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5060세대와 정치권, 정부와 재계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이 남긴 것으로 해서 1030세대가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의 세습과 생명연장의 꿈이 미래세대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살아있는 자체가 치욕이며 부끄러움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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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12 08:41 신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들의 고통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정말 눈에 보이는것만 믿어서는 안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36 신고

      네, 그래야 하는데 이 놈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 참교육 2015.08.12 09:17 신고

    막장 자본주의에 태어난 세대들.... 삶 자체가 비극입니다.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야합니다. 체제를 바꿔야합니다. 유럽식 사민주의로라도...

    • 늙은도령 2015.08.12 16:38 신고

      네, 자본주의 다음이 사회주의인데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를 고민할 때입니다.
      인류는 더 이상 자본주의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사회주의로 가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혼합하면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칼 폴라니가 가장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3. 일본의 케이 2015.08.12 09:29 신고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받아들리기 힘든 현실...

    • 늙은도령 2015.08.12 16:43 신고

      청년들의 분노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어차피 제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것에 있으니까요.

  4. 耽讀 2015.08.12 13:36 신고

    개혁은 힘듭니다.
    민주혁명이 필요할 때입니다.
    민주혁명을 일으킨 후, 경제민주화와 정치민주주의 그리고 친일부역자들과 독재부역자, 자본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미래는 암울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44 신고

      네, 민주주의의 혁명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말로 혁명이 필요합니다.

  5. 다노시무 2015.08.13 12:52 신고

    오랜만이죠.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일이 생겨도 생길것 같네요.
    그러탐 같이 죽창을 들어야 하겠죠

    신기하게도
    제 카톡배경도 죽창사진
    입니다..ㅎㅎ

    그럼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옹~~~^^

    • 늙은도령 2015.08.13 20:36 신고

      대단히 위험한 시기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최악이 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나라를 말아먹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살인과 함께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인 성폭력은 인류의 역사만큼 길고 육체보다 영혼에 가해지는 상처가 더욱 크다는 점에서 피해자 받은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들이 중요합니다. 특히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해자의 처벌만큼 영혼의 치유에도 최고의 노력이 기울어져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독일에서 귀국한 조카가 졸업에 맞춰 받았던 성교육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이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조카는 여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성교육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성폭력 피해여성(백인과 흑인, 황인으로 구성된 3명의 여성)들로부터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은 몸에 남아있는 성폭력 증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곧바로 경찰서에 출두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가해자를 신속히 체포할 수 있었고, 추가범죄의 가능성을 원천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폭력 피해자가 취해야 할 행동의 모범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입장에서 성폭력을 당한 것이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것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가해자의 책임이며, 자신이 당한 성폭행이 결코 창피하거나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과 정확한 상황판단이 있었기에 그녀는 성폭력에 대처하는 최상의 행동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조카에게 들려준 얘기는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 편견과 고정된 인식을 타파하는 것들로 이루어졌고, 여성의 몸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서 어떤 종류의 강제적인 폭력으로부터 예속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겪은 일을 담담히 들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극복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가족과 사회, 정부의 도움을 받아 끔찍한 폭력에서 자유로워질 때 진정한 극복이 가능하다는 그들의 얘기는 성폭력 신고율이 1.1%(성범죄 전체로는 10%)에 불과하고, 신고된 성범죄가 법정까지 가는 비율이 20%대에 머무르며, 사법부의 형량마저 형편없이 낮고, 집권여당의 또 다른 이름이 성누리당과 색누리당인 한국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보호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하루빨리 돌아가도록 도와주지 못할망정, 그들에게서 책임의 일단이라도 찾으려는 한국사회의 야만성은 성폭력 가해자들의 단죄는커녕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는 일이어서 어떤 것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라 할 수 있습니다. 처벌은 당연하며, 엄격해야 합니다. 



최악의 슈퍼갑질인 성폭력은 철저하게 가해자의 책임이며, 그것 때문에 피해자가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성관계를 자행했다면, 그 사실을 인지한 모두가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협조해야 하고, 피해자가 최대한 빨리 훌훌 털고 평상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성폭력의 반 이상을 아는 사람이 일으킨다는 것을 감안할 때, 피해를 숨기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조카가 독일에서 들은 성교육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자신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줌으로써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고 미래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성범죄 1위라는 최악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범죄를 영원히 없앨 수 없다면 최대한 줄이는데 노력해야 하며, 그 출발은 피해자 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한 것을 고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보편화돼야 합니다. 특히 성폭력일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그럴 때만이 성범죄는 줄어들고,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조카와 졸업생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공유한 세 명의 여성들에게 경의와 존경, 고마움을 표합니다. 진정한 용기와 극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당신들로 해서 남성의 일원이자 개인으로서도, 종으로서의 인류에게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P.S. 서울시 공립학교에서 벌어진 성범죄가 독일이나 유럽의 선진국가에서 일어났다면 그 학교는 무조건 폐교됩니다. 가해자와 책임자의 처벌 정도가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들이 취해집니다. 여성 대통령이 10명 정도 연속으로 나와도 지금의 박근혜처럼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성범죄의 정당이 집권여당인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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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12 08:34 신고

    잘은 모르고 확실하지 않지만 어제 탈주성폭행범을
    자수시킨 여성분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18 신고

      성폭행범을 처벌하려면 여성이 신고를 꺼리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래야 성폭행이 줄어듭니다.

  2. 참교육 2015.08.12 09:19 신고

    무터킨더 박성숙님의 독이교육이야기를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성교육한다면서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우리나라 성교육지침서를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20 신고

      네, 우리나라 성교육은 성교육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성폭력의 개념부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인식의 결여가 곳곳에서 보여집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각종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고 대물림됨에 따라 수없이 많은 '사회경제적 잉여'와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인 2030세대의 경우 부채의 늪과 저임금 단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을 사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런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회적 자본마저 무너져 내려 빈곤의 고착화와 대물림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자료와 통계를 사용해 여러 가지 분석과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경제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특별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연구들이 2030세대의 미래를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을 다룬 저자 중에 에릭 우슬러너는 《신뢰의 힘》에서 문명의 진보가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인류를 정반대의 결과를 양산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의 붕괴를 자세히 다루었다. 그는 수많은 자료와 통계, 인터뷰를 통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모두에서 신뢰의 관계가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2030세대에게 지옥 같은 삶을 강요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가 이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절망적인 현실에 갇혀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를 이해하는데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해준다. 활기와 도전으로 넘쳐야 할 청춘이 행복한 삶과 발전 가능성으로 연결되지 않고 절망적인 고립와 배제로 연결되는 세상이란, 모든 관계에서 상호 호혜성과 공존의 기반인 신뢰가 깨져버린 현대의 척박함을 보여준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개인들 사이의 연계,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신뢰성)’인데, 우슬러너는 ‘신뢰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경제규모는 갈수록 늘어나지만 삶의 질은 갈수록 줄어들고, 인생주기에 따른 기본적인 삶의 경험과 과정을 포기하는 세대로 전락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의 신뢰 증가현상은 미국의 신뢰 감소현상이 세대교체가 아닌 모종의 요인에 의해 초래됐음을 의미한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의 신뢰 증가현상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되살아났다는 것이 반영됐다. 다른 집단, 예를 들어 베이비붐 세대보다 젊은 세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타인을 덜 믿고 미래를 덜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낙관론에는 그들의 소득향상과 함께 공평한 소득분배가 반영되어 있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과 이후 세대보다 소득을 더 공평하게 분배받았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낙관적이고 신뢰 지향적인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불평등과 차별이 심한 나라가 된 미국이지만, 한 때는 최고 세율이 91%에 달하는 등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성장과 분배가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거의 유토피아에 근접했던 1940~45년 사이에 출생한 전기 베이비붐 세대는 안정적인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그 이후의 세대에 비해 정치와 공동체 참여, 종교와 봉사활동 등에 적극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때가 미국에서 사회적 자본이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전후 체계가 무너지고, 공정한 분배를 담당했던 조세정의가 무력화됨에 따라 상위 1%에 천문학적인 부와 권력이 집중됐고, 그에 따라 중하층의 경쟁이 심화됐고, 적자생존의 시장근본주의가 정치의 영역까지 지배하기에 이르면서(특히 리처드 피트 등의 《불경한 삼위일체》를 보라)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가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인들이 서로를 덜 믿게 되면서 점점 더 작고 동질적인 공동체 안에서 보호막을 두른 채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이(소수집단, 동성애자, 이민자) 다수에 비해 특혜를 받을까봐 우려하는 것 같다. 호황기에는 점점 커지는 파이가 빈곤과 차별 같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자ㅡ예로부터 경제적 불안을 느끼면 늘 그랬듯이ㅡ내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립주의와 근본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외국인‧소수집단‧이민자 등이 다수의 복리를 해치는 위험한 이방인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 신뢰가 개별적 신뢰에 무릎을 꿇어 이제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믿는다.



이런 결과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있고, 각종 총기사고, 증오범죄, 10대 출산율, 이혼율, 자살률, 정신질환자, 아동사망률, 빈부격차, 부정부패, 탈세 등이 높아진 것도 미국사회를 지탱해주던 사회적 자본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정치의 극한대립은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고, 이제는 공공연히 두 개의 미국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적 자본을 이렇게까지 망쳐놓은 것은 정경유착과 상위 1%가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는 신자유주의가 미국의 정치와 재계를 장악한 다음에 일어났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고, 압축성장의 폐해가 폭발하고 있는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갈수록 청년실업자가 늘어나고, 저임금 비정규직만 늘어나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2030세대의 절망과 분노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지만, 지역 단위의 복지와 사회적 안전망은 일정 수준 이상은 작동하고 있어 저복지 국가인 한국에 비교하면 2030세대의 절망과 분노는 약한 편이다.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를 보면,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사회적 자본이 높은 주일수록, 즉 소득불평등이 적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게 나온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론을 내놓았고, 이는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진실이다. 



서울의 강남에서 강북, 분당과 죽전, 평촌과 일산 등의 신도시 순으로 대학진학과 직업의 종류 등이 결정나는 한국의 상황은 미국은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지역과 부에 의한 차별이 너무나 심한 편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아니고 욕이 나온다. 최근에는 개천마저도 썩은 물과 녹조로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일 만큼 열악해졌다. 



따라서 소득향상이 좋았고 소득분배가 공평했던 시절에 열심히 살아온 5060세대들이 모든 것이 나빠진 2030세대들을 비판하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들이 받고 있는 압력이 얼마나 큰지, 그런 것들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난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국가와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근본적이고 깊이,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기제까지 자세히 봐야 한다.



특히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한 칼 폴라니의 성찰처럼, 사회의 일부분이었고 정치의 하위개념이었던 경제ㅡ특히 초국적기업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장경제가 자원의 희소성을 내세워 상위 1%의 리그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과 사회적 자본의 붕괴가 각각의 세대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피해자이지만 극단적 폭력을 선택한 일베가 자유(책임이 따른다)와 자유방임(책임을 거부한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극우적 버전의 2030세대라면,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는 정치적 자유의 출발점인 사회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 버전의 잉여들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복지국가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반영된 복지와 사회안전망,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이다.

  


사회적 자본과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각종 수치가 OECD 가입국 중에서 최악으로 나오는 한국에서 이제야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가 나온 것은 오히려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아직은 소수이고, 지향점이 확실하지 않고, 어디로 흘러갈지, 어떻게 살아갈지 예상할 수 없지만 신자유주의와 이명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인 것만은 확실하다.



벗어날 수 없는 먹이사슬과 한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탈출하고 싶은 이들의 절망과 분노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이 보장돼야 해소될 수 있기 때문에, 극도로 우경화된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편에서 서서 상대적 약자들에게 폭력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가하는 일베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들의 절망과 분노, 외침을 한국사회가 제대로 반응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파국적 결말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P.S. 정부가 독점하는 공권력이 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이용된다면 국민은 이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력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혁명의 본질이지만, 최고의 저항권은 분노와 권리를 결합해서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정치세력화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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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se 2015.08.07 19:26 신고

    역사적으로 국민의 생활이 극도로 피폐해짐으로 일부 세력 또는 민중에 의해 개혁이나 혁명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이 그러한 징후를 보이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단지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병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있은 아픔이 진정 안타깝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9:57 신고

      네, 병리현상이 자꾸 커지네요.
      하지만 헬조선은 일베와는 달리 기득권에 반하는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베는 권력에 손잡고 폭력과 차별, 혐오를 조장하지만 헬조선은 더 이상 피해를 입지 말자는 것이기에 젊은이들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여론을 움직이는 여론환경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2. 아이스킹 2015.08.08 02:08 신고

    제가 느끼는 대한민국은 차이를 만드는 집단과 차이를 극복하려는 두 그룹의 충돌이라고 봅니다. 다수가 극복 할 수 없는 격차로 고통 받지만, 다수가 차이를 만드는 정당에 투표를 합니다. 이 괴리를 선명하게 알리고 누가 격차를 계속해서 만드는지 명확하게 각인 시켜야만 젊은 이들이 희망을 이야기 하고, 정의를 말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할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02:41 신고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언론은 광고로 돌아가기 때문에 차별을 만드는 자들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 방법은 하나입니다.
      혁명에 준하는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은 정치세력화밖에 없습니다.
      정치철학이 확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런 정치세력이 나와야 합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는 한 이 세상을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참여하고 연대하지 않은 한 답이 없는 것이지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8.08 08:26 신고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분노의 정치 세력을
    언제쯤이면 볼수 있을까요?
    젊은 혁명가가 나와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17:12 신고

      네, 그래야 합니다.
      정말로 젊은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4. 참교육 2015.08.08 12:42 신고

    자본이 만드는 세상은 막가파 세상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청년들이 깨어날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5. 호빵멘 2015.08.11 23:45 신고

    요즘 헬조선이란 말이 나와서 뭔가 했는데 작성자님 글을 읽고 모두 해소했네요.
    정말 핵심을 잘 집어 주신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트윗으로 퍼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00:06 신고

      답답한 내용이지요.
      어떻게 인류가 여기까지 왔는지, 대한민국이 이렇게도 형편없는 국가가 됐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최근에 들어 40대 후반에서 50~60대들이 1030세대들을 비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들의 비판은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확대해석했거나, 누구나 겪는 인생주기에 따른 앞선 세대의 희망사항으로 흐르기 일쑤여서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조악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





세대를 비판하는 일은 방대한 자료와 분석을 필요로 하는 대단히 힘든 작업이다.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은 것도 많지 않으며, 숱한 검증을 통과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거의 없다. 필자가 읽은 책 중에서는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과 에릭 우슬러너의 《신뢰의 힘》이 고전에 반열에 오른 것들로, 수많은 학자들이 인용하고 있다(당연히 비판도 있다).



최근에 들어 1030세대의 절망과 자조, 분노로 뒤범벅된 ‘헬조선’이란 외침을 이해하려면 《88만원 세대》나 《1000유로 세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등으로는 피상적인 도움밖에 받을 수 없다. 정치와 경제, 사회, 종교, 교육 등의 결과가 반영된 사회적 자본의 변천사를 함께 고찰할 때만 1030세대의 절망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아래의 인용문들은 미국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정치와 경제, 사회의 번영과 안정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자본을 다룬 《나 홀로 볼링》과 《신뢰의 힘》에 나온 내용으로 한국 탈출을 외치는 1030세대의 참혹함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리라 믿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미국적인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처럼 협소한 자신의 경험과 특정 집단에만 의존해 통치를 할 때 온갖 부작용과 문제들이 양산되는 것에서 보듯, 다른 세대를 비판할 때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에 함몰돼 일방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세대 간 갈등과 반목만 커질뿐 상호 간의 이해와 신뢰 구축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퍼트남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에 관한 거의 모든 통계가 몇 가지 요인들로 해서 20세기 말까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미국사회의 파괴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 차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적 활동과 참여의 내용이 달라지는 인생주기(나이를 먹을수록 보수화된다는 통념이 대표적)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보통 자식이 학교에 들어갔을 때나 은퇴를 했을 때 학부모 활동이나 지역사회 활동, 종교나 봉사활동 등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6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런 인생주기에 따른 공통적 경향마저 갈수록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자본을 이루는 활동들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인데, 퍼트남은 그런 차이를 불러온 원인을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했고, 이는 한국에서도 한 세대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났다.



첫째, 맞벌이 가족이 받는 압박을 포함해서 시간과 돈의 압박이 사회적 참여와 지역사회 참여율 전체 감소분의 10% 정도를 차지했다. 

둘째, 교외 지역의 도시화, 장거리 출퇴근, 도시의 팽창이 전체 감소분의 10% 정도를 차지했다. 

셋째, 여가 시간을 혼자서 소비하게 만드는 전자화된 오락 수단,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이 전체 감소분의 25% 정도를 차지했다(퍼트남이 이 책을 쓸 때는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직전이었고,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어서 전자화된 오락 수단의 영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넷째, 오랫동안 시민 활동에 헌신적이었던 세대가 자녀손자 세대로 느리지만 불가항력적으로 꾸준히 해체되고 있는 현상, 즉 세대교체가 가장 강력한 요소로 밝혀졌고, 전체 감소분의 50% 정도를 차지했다.



퍼트남이 찾아낸 위의 4가지 원인들은 미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뉴딜정책과 전후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60년대(신자유주의가 세력을 넓히던 기간)를 거치면서 미국의 사회적 자본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는 철저한 신자유주의 대통령인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가속화됐고, 연방정부와 양당의 탐욕에 맞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사회적 자본을 파괴했다. 



한국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이런 경향이 시작됐고, 기득권에 속하지 않았던 노무현을 대통령에 올릴 때를 제외하면 가파르게 사회적 자본(특히 중하위층의 정치참여와 시민단체 활동)이 줄어들었다. 지금의 1030세대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것이 일베와 '헬조선'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란 나라가 유일제국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천혜의 땅과 지역적 유리함에만 있지 않았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지역 공동체와 정치결사체, 종교와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기업과 자본 위주의 일방독주에 완충장치로 작용했다. 이것이 무너지면 미국은 불평등과 차별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일반적 인식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재산과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미국에서 상위 1%의 독점에 저항해 ‘월가를 점령하라’는 99%의 저항이 분출했던 것도 정치적 참여와 경제적 평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자본이 작동불능의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유일제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마저 천혜의 땅에서 지옥과 비슷하게 바꿔놓았다.  





다만 퍼트남은 21세기를 전후로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우리나라의 경우 ‘촛불소녀’와 '4.16세대'가 대표적이나 정치세력화하지 못하는 한 희망은 없다)가 기존의 변화와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나타나는 점에 희망을 걸었다. 이들은 각종 불평등을 양산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처음부터 겪었고, 전자화된 오락의 한계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다는 점에서 앞선 세대와 다르며, 퍼트남이 제시한 네 가지 요인들이 이미 반영된 세대라는 점에서 앞선 세대와 질적으로 다르다. 인터넷과 SNS의 영향력을 극대화한 스마트폰의 등장이 사회적 자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 들어 양극화하는 사이버 세상은 비관적인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은 앞선 세대들이 보여준 인생주기를 따르지 않고,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의 세대가 될 수도 있다.





20세기 말에서 분석이 끝난 퍼트남의 예상과는 달리, 현재의 1030세대들은 벡의 ‘위험사회’와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의 세대로 내몰리고 있다. ‘88만원 세대’와 ‘천유로 세대’는 '성장을 멈춰라'와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고, ‘불평등 민주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제 시차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1030세대들이 ‘fucking아메리카’나 ‘헬조선’을 외치는 데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어쩌면 현재의 1030세대에게는 미국 역사를 철저하게 사회경제적 약자와 정치적 피해자 입장에서 기술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1, 2》가 그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줄지도 모르겠다.



조부모와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1030세대들은 거의 대부분 무너져 내린 사회적 자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고용안정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선행학습부터 시작해 스펙 전쟁까지 평생을 무한경쟁에 놓여진 1030세대들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분노,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헬조선'을 외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2부로 이어집니다).



P.S. ‘fucking아메리카’와 ‘헬조선’을 빼면 따옴표는 모두 다 책 제목으로 현대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명저들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소화할 수 있는 책도 있지만, 도전하지 못할 정도의 책들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종류의 책들이 살아남기 힘든 나라로 변했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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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8.07 08:07 신고

    나이가 들면 경륜이 쌓이고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수구세력들은 눈뜬 장님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5:42 신고

      일베도 '헬조선'도 그들에 대한 반작용이지요.
      일베는 최악이라면 헬조선은 그나마 평등을 추구하기에 조금은 낫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극좌로 가는 것인데 그러면 일베와 상부상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제대로 된 좌파의 젊은이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8.07 08:24 신고

    트위터의 내용이 최고입니다
    정말 적절한 표현입니다

    나빠요가 약 4,8% 수준이군요 ㅋㅋ

    • 늙은도령 2015.08.07 15:48 신고

      네, 널리 돌았던 내용입니다.
      참 대단하지요?
      요즘 젊은이들, 이런 표현에는 가히 천재적입니다.

  3. EMC 2015.08.07 08:26 신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몇년째 아마존 쇼핑카트에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넣어두고 구매하지 않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늦었지만 이제라도 구매해서 읽어볼까 합니다.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헬조선'이란 말 들을때마다 씁쓸합니다.
    비록 이민온 처지이나 그래도 10대때는 나름대로 약진하는 한국이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이곳에서도 이공계와 의대생은 대채적으로 취직이 잘된다 하여
    한떄는 그쪽으로 진로를 택했던 친구들이 부럽고 정치학을 택한 내 자신이 실수했나 자책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 분야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하는 친구들을 보왔기에
    어차피 재 적성에 맞는 이 분야에서 좀더 수행을 하고자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5:53 신고

      그럼요, 남들과 똑같이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지금의 추세로 볼 때 정치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화될 것입니다.
      인류는 지금 한계에 봉착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체제를 바꿀 여력이 없어 끝까지 간 다음의 파국을 경험한 뒤 해결책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10년 내외로 대대적인 변화가 올 것이며, 정치나 사회학의 중요성이 강조될 것입니다.
      인류가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면 그쪽의 학문이절실하니까요.
      힘내시고 준비를 착실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푸틴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도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동생이 러시아의 여러 업체와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와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나름의 정보가 있는데 상황이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푸틴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서양의 경제봉쇄가 먹혀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들어 오바마도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으니 각국 정부들도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는 모양입니다.

  4. 바람 언덕 2015.08.07 09:31 신고

    저들의 외침이 자신과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으로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한
    저같은 외침은 푸념이자 넋두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5:59 신고

      그래서 걱정인데, 좌파적 가치인 평등을 중시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도 하는지라 조금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관심갖고 좌파의 진정한 가치들을 알려드려야죠.
      또한 혁명의 필요성과 정의로운 무력에 대해서도 고민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부디 정치세력화해 분노를 조직적이고 정당하게 펼쳤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극좌적 혐오로 빠질 수 있습니다.

  5. marsmania 2015.08.07 17:50 신고

    참,,,, 할 말이 없는 사회입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은 몇 년째 들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인가요. 이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하면 표현하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 변화로 만들 수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5.08.07 17:55 신고

      조금 더 힘을 비축하십시오.
      연대를 늘리면서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하십시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분노를 예리하게 가다듬고 보다 풍부하게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력화를 해나가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세를 넓히고 상호소통과 신뢰를 구축하십시오.

  6. 불루이글 2015.08.08 13:04 신고

    정치는 힘없고 약한 집단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현재 박그네 정권을 보면
    정반대 입니다.

    힘있고 부유한자들은 스스로 얼마든지 자신을 케어 할수 있는데도
    박정권은 오히려 그들이 잘못될까 먼저 걱정하고 그들 위주의 정책만을 고집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일부 귀족노조들이 있을수 있겠지만
    그들 또한 무수한 투쟁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들과 대립각을 가지도록 만들어 노노 갈등으로 양분 시켜 자신들에게 향하는 화살을 피해 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도령님 말씀처럼 빨리 구조적인 정치 세력화를 이루었으면 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17:11 신고

      거꾸로 가는 것도 한계에 이를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박근혜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경제상황이 너무 나빠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증거이니까요.

  7. 푸디나 2015.08.10 08:20 신고

    고도성장으로 세대간 이해할 수 있는여지가 줄어들었고 핵가족, 세계화, 개인주의 등 여러가지 사회문화적 변화가 '헬조선'으로 표출되는것 같습니다.
    헬조선이란 문제를 오랜시간이 걸리더라도 세대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0 23:45 신고

      네, 그래야 합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청년은 최고의 약자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있지만 청년은 사회에 던져진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사회적 자본이 작용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기본적인 삶의 질이 중요한 이유는 누구나 존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색안경을 쓰고서 과거를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경향들을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더 쉽게 인식하게 되어 있다.


                                                         ㅡ 칼 폴라니의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에서 인용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표발의해 본회의 참석 의원 199명 만장일치로 가결된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21일부로 시행됐다. 인성법을 주도한 단체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말한 손병두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정부가 인성교육을 주도하는 나라도 없거니와, 교육부장관이 5년마다 인성교육종합계획을 정하는 나라도 없다. 인성이란 정부의 입맛대로 측정하고 계량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가 동일한 것도 아닌데, 정부 주도의 인성교육이란 기성세대의 가치를 주입하는 것으로 왜곡되기 일쑤였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문명과 문화도 구별하지 못하는 유신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올랐으니, 인성을 제단하고 강제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되살려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독재자의 딸이 <국제시장>을 보기도 전에 ‘칼로 물배기’ 하던 부부가 태극기 하강에 맞춰 경례를 하는 장면을 언급할 정도였으니, 일제의 교육칙어를 베낀 국민교육헌장을 유신독재의 묘지에서 파내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민주주의를 만끽했던 국민이, 특히 인성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시민정신을 되살려낸 촛불소녀를 필두로, 수많은 청소년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치자 이것이 못마땅했던 수구꼴통 어르신들이 인성교육을 통해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일베의 양성에 나선 모양새다. 철학과 도덕, 윤리와 양심, 정의와 공존의 영역인 개개인의 인성마저 관치를 통해 관리할 모양이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새정치민주연합(비례대표를 할당하는 청년의 기준이 45세다. 청년이 이러한데 장년은 70세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러니 기득권 수호 정당이란 말을 듣는 것이다)과 알아서 기는 언론은 안중에도 없으니, 여름방학이 끝난 2학기부터는 전국의 초중교에서 유신독재의 양대 축이었던 충과 효가 난무할 터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인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학생들 때문에, 더 이상 정체불명의 애국심과 가부장적 효를 팔아먹을 수 없어 쫄쫄 굶던 안보교육 강사들이 전국을 누비며 유신독재와 국정원 공화국의 부활을 노래하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정작 인성교육이 필요한 자들이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진의 차이를 설명할 방법이란 없다



유신독재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어르신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것들에 향수를 갖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구꼴통처럼 색안경을 쓰고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해도 국민교육헌장이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우파의 영구집권을 위해, 충과 효를 내세운 편향된 교육이 난무할 곳에 미래란 없다.



세대는 부모보다 시대를 닮기 마련이며, 이들을 오포세대와 이태백으로 만든 것은 수구꼴통 어르신의 유신독재 사랑 때문이다. 모든 언론에서 대통령 비판이 종적을 감춘 지금, 파시즘적 속도로 과거로 돌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퇴행이 무서울 만큼 비정상적이다.



1%의 지배엘리트를 배출하기 위해 99%를 자발적 복종의 노예로 만드는 교육이 본격화됐다. 한국교육이 그 의미를 상실한지 이미 오랜 전이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우파세력과 자본에 복종하는 노예들을 양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자신들은 죽어도 변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제멋대로 하려는 수구꼴통 어르신들이 주도한 인성교육진흥법의 본질이다.



P.S. 이 정도면 고의라고 봐야 합니다. SBS의 일베 이미지 사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본 궤도에 오르면 일베 이미지의 노출이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3년차에 접어들어 우파독재로 가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상파3사가 맨 앞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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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8.05 07:55 신고

    SBS가 또 일베 이미지를 사용하였군요
    참 문제입니다

    방송에 그런걸 버젓이 사용하다니..

    새눌당과 청와대부터 인성교육을 주구장창 시켜야 합니다

  2. 불루이글 2015.08.05 10:21 신고

    정권 창출 하지 못하면 방송법을 개편 하기 어렵고 방송법 개편 하기 전에는 정권 창출 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정개표가 공공연히 이루어져도
    언론이 이슈화 하지 않으니 국민들이 알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내년의 총선에서 어떻게 하든 여소야대를 만드는게 관건인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3. 참교육 2015.08.05 18:20 신고

    제목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승만이 서북청년회 만들었듯이 박근혜는 일베를 양산해 정권 유지를 호 싶은 겁니다.
    지금은 유신시대나 진배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05 22:39 신고

      네, 인성교육을 정부 주도로 하고, 5년마다 교육부장관이 정한다는 것에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박정희 일가가 대한민국을 말아먹네요.

  4. 소피스트 지니 2015.08.06 22:57 신고

    저도 요즘 나라가 파시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것에 동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04:09 신고

      파시즘이 부활한 것은 분명합니다.
      공권력이 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언론이 통제되면 그것이 파시즘입니다.
      권력과 자본 비판에 한계가 있는 언론의 자유란 대국민사기에 불과합니다.



책을 없애버리려는 자만이 비평할 수 있다.


                                                                  ㅡ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서 인용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질서를 세우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모든 이들을 굴복시키고 배제시키는 완벽한 독재란 그 자신마저도 독재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자신의 세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곳을 인간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만드는 것은, 사막에 들어온 사람이나 사막을 떠나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오아시스마저도 마르게 하기 때문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그렇게도 강조했던 어떤 시작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곳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뿐이다. 카네티도 자신을 노예로 만들었던 칼 크라우스의 실체가 모든 존재를 죽이는 완벽한 독재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의 유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성찰과 함께.





나는 이때부터 개개의 인간에게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켜주는 언어적 형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또 그들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충돌하여 튀어나가는 일종의 반동체라는 사실과 언어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견해보다 더 큰 환상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상대방은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는 더욱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외치면, 그들도 되받아 외친다. 이렇게 되면 문법 속에서 초라한 삶을 꾸려나가는 감탄사들이 언어를 지배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외침의 소리들이 마치 공처럼 이리저리 튀면서 지면에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란 거의 없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그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 아름답고, 추하고, 고상하고, 천박하고, 성스럽고, 속된 온갖 종류의 말들이 모두 이 떠들썩한 말들의 저수지로부터 끄집어내어 사용한다. 그리고는 그 말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리고 완전히 다른 어떤 것, 즉 그것이 전에 의미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 될 때까지, 그 말들을 되풀이해서 사용한다. 언어의 왜곡은 창세기적 혼돈에까지 이른다.



결국 칼 크라우스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들으려 했던 그의 자발성과는 달리, 그의 언어 사용은 그에게도, 그의 추종자에게도 어떤 자발성도 허용하지 않았다. 비트켄슈타인과 한나 아렌트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말과 언어는 경험의 산물이며 모든 사유의 출발점인데 칼 크라우스의 강연과 글들은 그 자체로는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어떤 추가적 경험도, 무궁무진한 사유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의 세계는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릴 운명이었다.





칼 크라우스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치명적 모순을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벽한 독재를 꿈꾸는 절대 권력은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고자 하는 의지의 일반적인 감퇴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면 어떤 권위도 누리지 못하고, 지속되는 어떤 질서도 세우지 못한다.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타인을 현혹하고 흥분상태로 만들어 자신의 추종자로 만드는 독재자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피지배자들은 자신만의 밀실에서도 독재자가 가하는 공포와 폭력에 압도당해 어떤 사유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노예나 가축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설사 독재자가 무엇을 이루었다 해도 남의 것을 차용해 끌어 모은 추종자의 에너지ㅡ자발적인 희생으로 포장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한 것ㅡ로 이룬 업적이기에, 그것은 단지 신기루일 뿐이다.



카네티의 고백성사는 이렇게 종결되는데, 그가 《말의 양심》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창조의 근원인 사유의 자유가 사라지면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영원한 휴면상태인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노예였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힘겹게 자유인으로 돌아온 카네티 같은 깨달음이 없으면 ‘모든 창작은 인식의 조급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필자를 현대의 쓰레기로 전락시킨 폭력적인 세계와 혼돈의 시대, 1%의 희망 때문에 99%의 절망을 감내해야하는(조셉 콘래드의 소설에서 인용) 운명을 이해하고자 시작한 모든 지적 여정이 칼 크라우스와 비슷한 필자도 이것이 두려웠다.





한 때 자살만 생각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처했던 필자는 모든 지적 여정을 홀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그 방향과 사유가 올바른지, 원하는 목표에 이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수많은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한 마디로 내 지적 여정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잡식성 특징을 띠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에 많이 나오는 책들을 구입해 읽었고, 신문에 나오는 신간들 중에서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을 구입해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에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카네티가 칼 크라우스에게 사로잡혔던 것처럼, 필자 역시 위대한 저자들에게 사로잡혀서 한 동안 그들의 세상에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수많은 석학들의 사유와 성찰은 나에게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도록 만들었고, 지적 여정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고, 서로 충돌하는 부분에서 극심한 혼란을 주었다. 필자가 몇 번 집필에 도전했다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인식의 조급함의 결과였고, 끝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체 하던 일을 접어야 했다. 나는 석학들의 사유와 성찰을 내것으로 녹여내,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을 내놓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P.S. 신경숙의 표절논란을 지켜보면서 더욱 참담했던 것은 그녀를 옹호하는 평론가들의 주장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들이 제대로 된 창작물을 내놓게 하려면 평론가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평론으로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론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 문학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작가와 평론가의 선순환적 구조가 구축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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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22 08:21 신고

    문제가 왜 생겼냐는 원인을 풀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읽은 기억은 없고 기억을 믿을수 없고..
    대단한 모순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5:59 신고

      표절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글의 끝에 이런 저런 책의 도움을 받았다거나, 인용을 밝히면 됩니다.
      소설과 시는 창조의 작품입니다.
      앞선 위대한 작가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신경숙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문제인 것입니다.

  2. 耽讀 2015.07.22 13:09 신고

    누구나 표절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생각하면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하는 삶입니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 끝없는 지적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표절할 수밖애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6:00 신고

      표절은 밝히면 됩니다.
      " "로 표시하면 그대로 옮겼음을 말하고 ' '로 표시하면 수정해서 인용했음을 말합니다.
      얼마든지 표절이 아닌 인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표절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다. 제대로 된 사과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숙의 표절논란이 영원히 끝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글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을 읽고 쓴 것이라, 신경숙의 표절논란과 직접적 연관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표절논란에 대한 그녀의 대응이 뻔뻔함을 넘어, 그녀를 옹호하는 평론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경숙이 진정한 작가라면, 그것도 대단히 성공한 작가라면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합당한 대가를 피해서는 안 된다.






창작은 언제나 인식의 조급함이다.


                                           ㅡ 헤르만 브로흐,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에서 재인용




198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한 엘리아스 카네티는 1960년경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발표한 에세이를 연대순으로 묶어 《말의 양심》을 발간했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서 근대이성의 수도라 할 만한 빈에서 공부를 했지만, 바로 그 위대한 근대이성이 만들어낸 모든 성취들을 총동원해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의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작가로서 평생을 권력과 죽음에 천착했다.



작가는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시대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일주일 전에 한 무명작가의 기록을 보게 됐다. 그 무명작가의 기록에는 “모든 것은 끝장이 났다. 내가 진정한 작가라면 전쟁을 저지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압도적인 권력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개 작가에게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운, 그래서 상당히 오만하게 비칠 수도 있는 이 기록에는 또다시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내모는 제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었던 무명작가의 무력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온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 기록하지도 못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니 발발하게 됐으니, 거대한 악의 번성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명작가의 고뇌란 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무명작가의 비통한 기록을 ‘흥분과 초조의 상태’에서 읽은 카네티는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졌고, 무명작가의 기록이 작가의 길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말로 포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옹호하려는 의지이자 또 어떠한 실패도 자기 스스로가 속죄하려는 의지”임을 깨닫게 됐다. 





작가는 보통사람보다 말과 언어의 연금술에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 화려한 연금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작가의 진정성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어느 무명작가의 기록은 “업적과 전문성의 세계, 줄곧 정상만을 향하여 온갖 힘을 경주하는 세계, 정상을 향한 목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부수적이지만 다양하고 본질적인 것을 경멸하고 말소시키는 세계, 자기 파괴의 수단을 증가시킬 뿐 초기의 인간이 획득한 특성을 강한 한 질식시키는, 생산이라는 일반적 목적에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에 점점 더 변신을 금지하는 세계(이는 견고한 근대, 무거운 경제 위주의 생산자 사회에 적용된 것이지만)”에서 삶과 죽음을 천착하는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네티는 ‘문학의 종언’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보다는 후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산재해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면서도, “자기 시대에 예속된 맨 밑바닥에 있는 종”이자 ‘끊임없이 짖어야 하는 개’이기도 한 작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그가 자기 시대에 저항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성찰한 카네티가 처음부터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바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다가와 그의 정신세계를 정복했지만, 결국에는 반기를 들고 자신을 방어하도록’ 만든 칼 크라우스의 말의 항연에 빠져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인하기도 했다.



죽음의 증인이자 시대의 고발자로서 10여 년에 걸친 사유를 묶어낸 《말의 양심》의 세 번째 에세이가 ‘칼 크라우스ㅡ저항의 학교’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에 갇혀 그 밖의 모든 세계를 부정하는 말과 언어의 독재자이자 정신의 파괴자였던 칼 크라우스(벤야민과 아도르노도 크라우스를 인용할 정도)의 포로였음을 고백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든 살아남은 대중에게 남긴 ‘후유증·악덕·살인·탐욕·기만·활자의 오식’까지도 찾아내, 대중의 도마 위로 올려서 현장에서 즉결처분하도록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 지닌 칼 크라우스에게 빠졌다가 힘겹게 빠져나온 자신의 경험을 통해 카네티는 다음과 같은 고백성사에 이른다.






맨 처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군중의 효과가 갖는 급진성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모든 사람이 사건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반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것이 고발되고 단죄되기를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있었을까? 모든 고발자들은 법조문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견고한 어투로 행해졌으며 또 그 고발들은 결코 중단된다거나 끝나는 일이 없이 마치 몇 년 전부터 시작되어 앞으로도 한결같이 동일한 어조로 계속될 것처럼 들렸다. 그 어투는 법의 영역에 근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또 모든 것은 이미 건드릴 수 없는 확실한 기존의 법률과 같은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따라서 거기에는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긁어 상처를 내거나 낙서를 할 수 없는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카네티는 그렇게 칼 크라우스의 ‘법률’ 속으로 빠져들었고, 스스로 예속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체의 이단을 인정하지 않는 칼 크라우스의 ‘법률’은 그의 것이 아닌 앞선 사람들ㅡ셰익스피어, 클라우디우스, 괴테, 네스트로이, 오펜바하 등ㅡ의 글이나 말에서 빌려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사용한 것들이었다. 그는 이것들을 연사로서의 특출한 능력으로 버무려 관중을 선동하고 그들의 정서를 파고들어 공공의 적을 만든 다음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즉결심판을 통해 그의 추종자들을 양산했다.



카네티가 칼 크라우스의 최대 장점으로 들었던 ‘청각적 인용’ㅡ연설 중에 특정 인물의 글이나 말에서 일정 부분만 때내 그들의 의도를 왜곡함으로써 관중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악의적인 인용ㅡ도 길거리나 광장, 술집과 같은 곳에서 들었던 대중의 말들과 모든 종류의 신문에서 읽었던 문장들을 그의 연설 중에 적재적소에 써먹는 차용능력을 말한다. 일반의 작가와 지식인들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얘기를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던 칼 크라우스는 이런 ‘청각적 인용’을 통해 ‘도덕의 영역과 문학의 영역을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그가 연설하는 중에 나왔던 “힘없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다정함, 힘 있는 자들을 추적하는 살인적인 대담성, 정신박약증의 가면을 벗김으로써 사물을 꿰뚫어보려는 욕망, 자신의 주위에 거리감을 만들어주는 오만함”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2부로 이어집니다). 




P.S. 칼 크라우스는 플라톤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철학자이자 선동가였고, 연설가였으며 정치인이었고, 탁월한 작가였고 시인이었습니다. 유럽 석학들의 저작들을 보면 칼 크라우스를 인용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마르크스보다 위대했던 블랑키처럼,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초의 유럽을 뒤흔들었던 인물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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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22 08:17 신고

    표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신경숙건은 표절 맞습니다

    왜 인정을 안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칼 크라우스..기억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2 15:54 신고

      원래 신경숙처럼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이 표절을 여러 번 한 것이 발견되면 어느 나라에서건 절필을 선언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탐욕의 국가가 됐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경숙이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하고 자신이 벌었던 돈을 가난한 문인을 위해서 쓰던지, 여러 가지 대가를 치를 방법이 있었는데 그녀는 최악의 사과와 휴식만 말했을 뿐입니다.

  2. 왜 그냥 2015.07.22 08:40 신고

    자기 이름만 내걸고 글 못 쓰나.
    신경숙 일 있고 여기저기 이름없던 사람들 이름만 떠올라.
    점잖은 양반들은 말을 아끼더라.

    • 늙은도령 2015.07.22 15:56 신고

      창피해서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나라 최고의 소설가 시인들을 여러 분 알고 있습니다.
      연륜이 높으신 그 분들은 너무나 참담해 얘기조차 안하는 것입니다.
      소설이 나오면 계속해서 표절논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대 미국 사회의 많은 부분은 예측 가능한 경력 향상, 임금의 꾸준한 증가로 그 특징이 규정되는 안정된 고용 관계 위에 토대를 두고 세워졌다. 내 집을 갖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며, 공동체와의 유대 관계를 통해서 안정감을 찾는 등, 직장 밖에서의 삶의 질은 고용에 대한 위협과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향상되어왔던 것이다.


                                                             ㅡ 카펠리,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에서 재인용




지난 일요일에 방송된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지인이의 부모와 방청객으로 참여한 한 어머님의 얘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안타까움과 절망, 희망과 힐링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지인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얘기들을 (상당히 재미없지만) 사회적 자본이란 관점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지인이의 현재를 응원하는 마음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회적 자본이 탄탄할수록 잘 돌아가는 민주주의가 탐욕의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제어할 수 있었을 때 평생고용(이 글에서 말하는 평생고용이란 한 직장에서의 근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과 국민복지, 사회안전망이라는 공생의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였지만, 직원들은 물론 가족과 사회 전체의 이익도 고려하며 공생의 삶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민이 존엄하고 탈락자를 방치하지 않고, 시민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합의하고 조정해 실제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평생고용(과 평생교육)에 기반했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다양한 공동체 활동 참여와 자원봉사나 헌혈처럼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개인은 안정된 직장과 수입으로 인해 평생에 걸친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그런 안정감에서 나오는 사회적 신뢰는 다양한 협력과 평화로운 공존을 이룰 수 있었다.



노동(감정노동과 가사노동 같은 비물질노동 포함)의 가치와 연륜이 인정되는 이런 사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분배가 이루어져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정치적 자유가 더욱 공고해졌고, 법 앞의 평등이나 정의실현이라는 열린사회의 실현이 가능했다. 국가 차원의 복지가 미흡해도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지역 공동체와 사회가 작동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을 전복해버린 것이 모든 영역에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작동하도록 체제를 완전히 바꿔버린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완전히 압도하던 시절인 19세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니 평생고용을 기반으로 구축된 세계를 파괴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단 40년 만에 평생고용에 기반한 안정적인 세상은, 생산 증대와 이익 독점만 신경 썼을 뿐, 평생고용이나 누진적 조세제도처럼 부의 재분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무한경쟁의 19세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심해졌고, 사회적 자본은 적은 위험도 막아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경제가 곧 대기업의 이익’을 말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민주주의는 독점 자본과 권력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위에서 찍어 누를 수 있는 국가공권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벤야민의 말처럼 ‘야만적이지 않은 문명은 없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억압과 착취의 시대가 고착화됐다. 지인이 같은 장애인들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형편없는 감호시설로 보내졌다(미셀 푸코의 《광기의 시대》에 자세히 나와있다).  





시장자유주의 우파라는 공통점으로 이어진 이명박근혜 정부가 평생고용에 기반한 사회체제를 집중공략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고용의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 위험의 사회화가 일상화됐고, 용산참사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자살, 세월호 참사, 경주리조트 붕괴, 메르스 대란처럼 막을 수 있었던 비극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이 클수록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승자독식을 이룩한 개별기업 차원에서만 진실인 신자유주의 신화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제2, 제3의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메르스 대란 등은 더욱 빈번하게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배제되고 격리되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지인이와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절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소비만 하고 살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고, 오늘만 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지며, 효율성과 생산성도 하락하고, 상호신뢰와 이타심, 호혜성 등의 사회적 자본도 구축될 수 없다.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아(지인)의 부모가 세상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이 됐다고 말한 것도 사회적 자본을 파괴시킨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축적된 결과다.



우리 모두가 지인이의 부모가 될 수 있고, 지인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힐 수 있고, 지인이와 함께 걸어갈 수 있으려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를 거둬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이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영원한 타인이자 물리쳐야 할 적으로 인식시킬 때 인간은 일베처럼 짐승 이하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부의 재분배가 뒤따르지 않는 경제성장이란 말에 속지 말라. 1%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나눠주는 것을 민생이라고 포장하는 말에 속지 말라. 경쟁과 불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공짜점심이 없다는 말에 속지 말라. 타인의 것을 빼앗는 성공을 미화하기 위해 실패는 개인 책임이라는 말에 속지 말라. 극소수의 무임승차를 부각시키는 복지담론에 속지 말라. 상위 1%에 부와 권력과 기회가 독점되고, 그 폐해는 하위 99%에게 전가되는 세상은 그런 새빨간 거짓말들이 보편적 진리인양 호도되면서 이루어진 결과다.



하물며 생존선 근처의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런 세상이 지인이의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신뢰와 협력, 호혜성의 문화를 높이는 평생고용이 인류의 자산 중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다시 깨닫게 됐을 때, 인류는 비로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누진적 증세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임금피크제와 일자리 나누기를 얘기하기 전에, 비정규직의 확대 적용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경영효율성을 주장하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신뢰, 이타적 협력과 평등한 자유를 구축할 수 있는 소득 보장과 복지 제공이 가능하도록 만들 때 우리 모두는 지인이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탄생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때, 불평등하게 주어진 조건과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현재를 넘어 미래의 삶까지 결정하지 않을 때, 개인으로서나 조직의 일원으로서나 노동의 대가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지인이의 동료나 친구로서 삶이라 길을 동행할 수 있다.   




P.S. 로버트 퍼트남과 수많은 석학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태어났을 때부터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체험한 밀레니엄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됐을 때 사회적 자본이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래로부터 더 많은 정의와 평등, 협력이 이루어질 때 생존선 이하의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존엄한 존재로서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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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5.07.21 08:27 신고

    불편한 시선을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얼굴에서 묻어 나올수 있는 따뜻한 배려가 진정으로
    필요할때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16 신고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끝물에 나오는 현상이라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백순주 2015.09.06 08:01 신고

    세종에 중증 장애학생들을 위한 '세종누리학교'가 조용히 첫 개교를 했습니다. 개발이 한참인 중심에서 벗어나 산 아래턱에 일찌감치 터를 잡았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장애아들이 예체능 과목만 통합운영 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요과목은 '개별학습실'에서 공부합니다.

    특수교육학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엔 두 부류의 엄마가 있다고 합니다. 장애아 엄마와 비 장애아 엄마.
    왜 이들이 무서워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우린 그 이면보다 보여지는 현상에 집중해서 얼굴을 찌푸립니다.
    무엇이 화나게 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존엄한 존재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날은 함께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6 09:12 신고

      네,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소비지상주의가 극에 이르면 외모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나 강해집니다.
      보기에 좋은 것만 쫓게 되고, 그것이 성형이나 지나치고 너무 어린나이부터의 화장 등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남성도 이제는 화장과 성형을 주저하지 않으니 외모에 대한 강박이 더욱 커졌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외국인들과 얘기하면 한국여성은 너무 날씬하다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얘기인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소비지상주의는 외모를 가꾸는 것을 부추기고 젊음에 집착하게 해서 멋있게 늙은 것을 회피합니다.
      이것이 쌓이면 세대간 갈등의 원인도 되고, 노인을 경시하는 것, 늙지 않기 위해 더욱 소비하고 성형하고 화장하게 만듭니다.
      결국 노후자금을 만들 수도 없고, 상위 1%만 좋은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까지 소비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아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통합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의 무서움이 이것입니다.
      예쁘고 아름답고 보기 좋으면 좋은 상품으로 인정되듯이....




올해 중부지방과 강원도가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슈퍼엘리뇨)의 영향 때문입니다. 4계절이 뚜렷했고, 강수량이 골고루 퍼져있었던 대한민국의 경우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아열대성 기후로 접어들었습니다. 최악의 가뭄과 지역적인 단발성 폭우도 이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한반도의 기후가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것을 넘어 불특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강원도와 중부지방의 황폐화(최악의 경우 사막화)도 각오해야 하고, 지역적인 집중폭우로 인해 수해지역이 속출할 수 있습니다. 



농업과 산업에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열대성 전염병이 지금보다 더욱 자주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후에 맞게 변화를 해야 하는 산업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됩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명박이 거대한 호수로 만들어버린 4대강의 수질오염과 급격한 물부족 국가로의 진입입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4대강 곳곳에 설치된 보 때문에 유속이 느려지고, 그에 따라 녹조의 범위가 넓어지고 정도가 심해지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질오염은 피할 수 없고, 어민들의 피해를 넘어 국민의 식수원이 치명적인 위협에 놓이게 됩니다.





기후가 아열대로 변화는 과정에서 건기가 길어지고 우기가 짧아지면 녹조의 폭발적 증가와 대지의 황폐화로 4대강의 수질오염은 국가적 재앙으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상수도처리장의 건설에 몇 십 조가 들지 예측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를 빌미로 수도사업의 민영화가 본격화될 것이며, 이미 그런 조짐이 부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토지의 사막화(화학비료의 축적도 고려해야 한다)를 막기 위한 비용도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4대강의 수질이라도 좋으면 사막화를 늦추거나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국가 예산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복지로 들어갈 비용까지 투입해 4대강의 수질오염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대한민국은 가장 빠른 속도로 물부족 국가로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 물부족 국가의 핵심은 온갖 오염물질의 배출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으로 정해지는 것이라, 4대강에 아무리 많은 물이 담겨있어도 수질이 나빠지면 물부족 국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학(생화학, 바이오)약품이 대량으로 투입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라고 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건기가 짧은 대신 우기가 길어지면 4대강공사 때문에 수위 조절 능력을 상실한 지류와 지천에서 각종 수해가 빈번할 것이고 피해도 커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류와 지천에서 수해를 예방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게 되면 그때는 국토의 반이 물에 잠길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4대강의 보들을 모두 다 철거해야 하지만, 그 비용도 만만치 않고,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몰라 쉽게 판단내리기도 힘듭니다. 아열대성 기후가 어떤 속도와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4대강에 설치된 보를 한꺼번에 철거하는 것은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국토의 경사면이 심한 한국의 경우 강우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4대강 본류에서도 초대형 홍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대한민국은 이명박의 비용을 넘어 최악의 함정에 빠져버렸습니다.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된 국토를 2년 만에 바꿔놓았으니, 어떤 전문가들도 '이것이 답이다' 하며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이명박을 사형시켜야 하는 이유도 차고 넘친다!).





이밖에도 토목건축과 환경공학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수두룩합니다. 4대강의 보들을 철거해서 자연적 복원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런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정부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인데, 최소 22조원의 예산이 들어간 4대강공사를 없던 일로 만들기가 그리 쉽겠습니까?



현실이 이러한 데도 박근혜 정부는 국민 몰래 5대강공사를 추진하려고 했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문 하에 각종 규제를 풀 뿐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박정희의 유일한 공적인 그린벨트마저 무차별적으로 풀어주고 있습니다. 세월호특위의 예산과 인양비용은 '세금 도둑' 운운하면서도, 담합의 명수인 토건족과 전현직 관료들을 위해서는 수십 조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시장자유주의 우파 정부의 본질).   



우리는 대통령을 잘못 뽑은 대가를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형식적이던, 실질적이던 간에 국민에게 모든 권력의 원천을 돌려놓았기에, 최종 책임 또한 국민이 져야 합니다. 당대의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정치적 선택도 하지 못한 미래세대는 독박 쓰게 된 것입니다. 이명박을 사형시킨다고 해서 피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환장할 노릇입니다.



지구온난화와 4대강공사의 만남.. 어쩌면 이 둘이 만들어낼 미래상은 한반도에서 살아갈 모든 사람들에게 한일강제합병 36년보다 더욱 치명적인 피해를 줄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관련 책들을 사서 공부한 결과가 참담하기만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 정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에서 벗어나려면 4월 총선에서 야권의 선거연합이 승리해야 합니다. 



특히 녹색당의 원내진출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원내에 진출하면 관련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그럴 때만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빠르게 망가지고 있는 4대강을 복원할 수 있는 정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정당투표에서 이런 점들을 고려할 수 있었으면 하고, 김종인 비대위가 보다 큰 차원의 선거연대에 나서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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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耽讀 2015.07.02 07:51 신고

    4대강만 아니라 논을 공장과 아파트단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래만에 가보면 논이었는데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여름철 논은 항상 물이 가득합니다. 엄청난 자연 에어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연에어컨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온이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앙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찾아옵니다. 한번 닥친 재앙은 현대과학으로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02 17:18 신고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면 막을 수 없습니다.
      일본은 물에 잠기고 미국의 반도 잠깁니다.
      시베리아는 최고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부터라도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7.02 08:13 신고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졸속 행정..무리한 공사로
    더 일을 크게 만든것도 있습니다

    자연이 벌을 내릴것입니다
    그 피해를 애꿎은 국민들이 감수해야만 합니다

  3. 바람 언덕 2015.07.02 09:21 신고

    4대강 보가 건재하는 한 이 문제는 두고두고 불거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새누리당의 책임론이 사라지지 않을 거란 뜻이지요.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저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2 17:19 신고

      문제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띨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대한 답을 찾아 대비해야 합니다.

  4. 참교육 2015.07.02 09:44 신고

    이면박이란놈은 절대로 살려둬서 안 될 놈입니다.
    북한이 왜 공개처형제를 동비했는지 알만합니다. 전두환 못지 않은 놈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2 17:20 신고

      네, 한국을 돈만 쫓는 나라로 확정지었습니다.
      이제는 부패와 비리를 저질러도 창피해하지 않습니다.

  5. 『방쌤』 2015.07.02 12:35 신고

    일은 저질러놓고,,,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으니,,,
    참 통탄할 노릇입니다

  6. 쩡은&참인간 2015.07.03 22:47 신고

    다른 사람이 잘못했는데도 김대중이나 노무현 핑계대는 사람들인데..쩝..

    • 늙은도령 2015.07.04 00:12 신고

      그렇지요, 늘 노무현과 김대중이 문제지요.
      그나마 김대중은 동교동계의 반이 박근혜 정부에 합류해 덜합니다.
      노무현이 그들의 목표지요.




중대한 판결이었음에도 1973년 낙태(를 개인의 권리로 인정한 것)에 대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의 연합’에게는 연달아 일어나는 터무니없는 일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ㅡ 미클레스웨이트와 울드리지의 《더 라이트 네이션, 미국 보수주의의 파워》에서 인용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원칙 때문에 인종주의자나 고집불통, 동성애 혐오자로 불리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공평하고 또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옳은 일과 그른 일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위의 인용문은 미국 우파의 풀뿌리 조직인 ‘티파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글렌 벡의 《글렌 벡의 상식》에 나오는 내용으로, 공화당의 주류로 떠오른 기독교-신보수주의의 배타적인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그들은 ‘인종차별과 원리주의, 동성애 불허’가 하나님의 뜻이자, 악에 대한 성전이라고 주장합니다.





궁극적으로 연방정부를 폐쇄시키는 것이 목표인 기독교-신보수주의 교합의 특징 중 하나가 좌파의 전략과 전술을 차용해 기독교의 복음주의 문화운동으로 대체한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낙태와 동성애 반대 운동’입니다. 그들은, 매케인의 러닝메이트였던 사라 페일린이 주장한 것처럼, 강간(근친상간과 집단성폭행까지 포함)으로 인한 낙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종파인 청교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은 동성애를 낙태와 함께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악한 일’이자 헌법에 반하는 ‘그른 일’이라고 주장하며, 폭력과 테러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은 미국에 상륙한 청교도들이 신의 이름으로 5,000만 명의 원주민(인디언)을 죽음으로 몰고 갔듯이, 낙태와 동성애도 멸종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이런 논리가 극단에 이르면 애를 낳지 않는 여성들도 멸종의 대상이 된다).



이들의 막가파식 성경 해석이 얼마나 궤변에 해당하는지는, 창조주가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에 반하는 고의적인 총기사고를 옹호하는 논리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들은 '살인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반하는 고의적인 총기사고를 옹호하기 위해ㅡ살인을 계속하기 위해 총을 쏜 자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에 있다는 궤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통진당 해산과 아청법 합헌 판정을 내린 (정신 나간) 한국의 헌법재판소처럼, 보수 편향적인 미 연방대법원이 식민지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뿌리 깊고 극단적인 낙태와 동성애 혐오와 반대를 무릅쓰고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내린 것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준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1》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헌법과 종교의 나라인 미국에서, 그것도 두 개의 가치를 지탱해온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 합헌 판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보수 성향의 이중개념자 엔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습니다(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에서 나왔다). 



올 4월에는 천년 이상 지속해온 이성 간의 결혼에 무게를 두는 듯했던 그는 ‘결혼이 사랑과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최고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동성커플이 이러한 결혼의 이상을 경시한다고 볼 수 없으며, 그들도 결혼의 최고 이상을 존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라며 동성결혼 합법화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예수의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의 과학적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며, 진화론마저 ‘타락한 진보주의 과학자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우파는 ‘다름을 틀림’으로 보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신의 섭리마저 거부하는 타락한 진보주의 대법관들이 저지른 ‘그른 일’로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진보의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판결의 인류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란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이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었던 이중개념자 케네디 대법관을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도록 설득한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은, 어떤 사안에는 보수적이고 다른 사안에는 진보적인 이중개념자를 향해 우측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가치의 정당성으로 그들을 설득해 좌측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진보가 정치적이고 법적인 승리를 위해 우측으로 옮기면, 바로 그만큼 진보적 가치는 보수화되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은 그렇게 기울어지고, 경사는 심해지는 법입니다. '종교가 정치와 만나면 사회에서 피바람이 분다'는 인류의 경험적 성찰도 운동장이 기울질수록, 그래서 사랑과 관용, 자비와 포용이 자리할 수 없는 극단의 세상만 번성하게 됩니다. 종교의 최전선에서 신의 창조는 진화의 법칙을 만든 것이며, 미세조정만 자리하는 진화의 법칙에 따라 지금도 창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모조리 무시합니다.     



종교의 보수화가 정치의 보수화보다 더욱 무서운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재단하는 아전인수격 마녀사냥에 있습니다. 이들의 외눈박이적 행태는 '사람의 아들'로 이땅에 와서, 차별받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공적생활 3년의 가르침마저 훼손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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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29 08:1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17 신고

      사실 동성애는 인류의 시작부터 있었습니다.
      신이 창조한 인간에게는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이 다 있어서 동성애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봐도, 분자생물학과 뇌과학을 보더라도, 기타 첨단 과학들에서 밝혀진 것은 동성애적 기질을 지닌 것이 천부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의 인권과 행복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누구에게 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선악이 구별될 수 있는 것에 한정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 진화의 과정은 자유의지에 맡겨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그런 신의 넓은 선택을 믿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6.29 08:55 신고

    인간은 만인이 평등하다는걸 확인시켜 주는 법안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19 신고

      종교는 개별적 신앙의 세계입니다.
      다양한 종교가 있듯이 결혼도 다양한 선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천부적으로 동성에 끌리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인권이고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평등한 것이지요.

  3. 김성순주임 2015.06.29 11:13 신고

    늙은도령님 화이팅!

  4. 2015.06.29 11:1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21 신고

      참고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점에서는 매우 게을러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도 벅차기 때문에 해야지 하면서 마냥 미룹니다.
      감사합니다.

  5. 참교육 2015.06.29 12:35 신고

    역사는 수구보수의 반동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살아 있다는 뜻은 역사가 반동이 아니라 진보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느리기는 하지만 천천히... 그게 역사 발전이지요. 동성애법도 만찬가지고요.

    • 늙은도령 2015.06.29 19:23 신고

      교육이 할 일이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평등하고, 자아를 속이지 않고 숨길 필요가 없는 인권과 자유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고, 다름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런 다름에서 창조적인 에너지가 나옴을 배울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사랑과 행복을 찾아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6. 개독인 2015.06.29 13:55 신고

    저는 합법화에 반대합니다. 기독교인이 철저하게 못되먹었고 이기적인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선한 일을 악한 행동으로 막으려니 욕을 먹고..어떤 일이든 정당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립니다.그러기에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권력에 편승하고 아부하고 돈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해도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나 또한 개독인으로서 깊이 반성하고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이 합법화를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아직 어느 곳도 알리려 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한 번쯤 다른 방향도 봐야하지 않을까요? 어린 자녀에게 동성끼리의 성교육도 시켜야하며 그에따른 각종 질병도 감내하고 종교에서 그들을 죄라고 명하기 힘듭니다.. 종교는 말 할 권리가 없습니다. 종교는 그렇다치더라도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아보셨는지요? 해외 사이트에 정당하게 알리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을 간섭하려는게 아닙니다.. 제발 다른 부분도 있는지 먼저 살펴 주십시오..

    • 늙은도령 2015.06.29 19:34 신고

      동성애를 권장하는 합법화가 아닙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골고루 나눠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태어났을 때부터 생리학적 성과 다른 기호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신의 선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결혼하고자 하는 것인 인간으로서의 욕구이며 그것이 비록 소수라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동성애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동성애는 그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것을 사회나 특정 종교적 계율만으로 이단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신이 창조한 인간이고 스스로의 삶과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소유자입니다.
      그들은 사랑과 결혼의 가치를 정직하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택을 법이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박해받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이성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동성애는 언제나 소수입니다.
      그런 소수도 동등한 권리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입니다.

  7. 앨리스 2015.06.29 20:58 신고

    도령님 멋지세요^^
    사랑과 평등의 품격있는 정신세계의 향이 퍼져나옵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22:06 신고

      감사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했을 뿐인데요...

  8. 사랑맘 2015.06.29 23:29 신고

    저는 늙은도령님의 글을통해 신지식(?)을 많이 접하며 존경하고 감사하고있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아래 댓글을 보고 짧은 제생각을 나누고 싶어서요.
    신의 넓은 선택이라고 하셨는데 그 보이지않는 신이 인간에게 지킬것을 명하신 율법에는 동성간의 사랑을 금하신 것을 아시지 않나요..?
    그 법에 따르지 않았을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유튜브에 소개되어 있는 동영상을 통해 본적이 있습니다..
    동성간 사랑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때 사회와 가정에 미치게될 수많은 파장과 소수인권보호를 이유로 또다른 이들이 받게되는 역차별..
    말로 다할수없는 이런 폐해를 신이 아시기에 미리 법으로 금하신것은 아닌가..이 또한 신의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5.06.30 02:09 신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수많은 성경의 내용들은 천주교가 유럽을 지배하는 천 년 가까운 동안 많이 변했고 수정됐습니다.
      성경에 나온 수많은 주장들이 과학적으로 틀린 것으로 밝혀졌을 때마다 성경도 그 해석이 변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과학을 연구하는 신학자의 연구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현대과학이 성경과 충돌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추세는 신의 창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과학적 성과들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최소 개입론이라고도 하는데 신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최전선에서는 이렇게 과학과 변하는 세계와의 접점을 찾아 종교의 존재와 가치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견해는 일반 신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열려 있으며 과학적 발견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식 싸구려 기독교 복음주의는 대한민국에서만 기승을 부릴 뿐이지 다른 나라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종교과학자들은 유튜브 영상에 나온 것 정도의 낮은 수준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기독교는 특정 국가의 특정 지역에서 번성하는 종교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예수의 가르침을 상당히 바꾼 바울의 진실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태인이었던 그가 예수가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부활하기까지 공적 생활 3년 동안 설파한 내용을 유태적 색채로 많이 바꿔놓았으니까요.
      종교사와 종교과학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한국의 기독교 우파는 기독교를 죽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역차별을 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네요.
      어떤 부분에서 역차별을 만드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이 이성결혼을 폄하합니까?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부추깁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적 정체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사안을 보고 받아들이는 자세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이 타인에게 억압적이고 무력적인 공격이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종교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있는 것이지 신을 찬양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그 자체로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경험한다고 해도 제대로 이해조차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갑자기 인간의 영혼이 신의 영역에 이른다면 인류의 역사가 이렇게까지 흘러오지는 않았겠지요.
      또한 지구라는 행성도 수명이 있습니다.
      수십억 년 이후에는 지구라는 행성이 사라집니다.
      모든 행성은 그렇게 수명이 있습니다.
      신의 창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그런 끝이 있는 세속적인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한 번 뿐인 삶에서 대체 어떤 것까지 간섭하고 제한해야 신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것일까요?
      어쩌면 인류는 21세기 내에 모든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 그리 대단한 것 아닙니다.
      서로 간에 평등한 존재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인간이 명백한 악이 아닌 이상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대체 무슨 권리로 지구 전체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간답니까?

      종교나 신앙을 가장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맹신입니다.
      맹신은 절대자 신을 따른다는 점에서 단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렇게 맹신으로 만들 것이라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유의지부터 수없이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집요하게 선택의 폭을 줄이는 것이라면 그런 신을 믿을 생각은 없습니다.
      최소한 제가 믿는 신은 그 이상입니다.
      제 생각이 잘못됐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그것 가지고 현실의 삶을 맹신의 자세로 살 생각은 없습니다.
      최소한 인간으로 사는 동안에는 절대적 존재에 대해 분명한 믿을 가지되, 그것 때문에 나와 다른 인간들의 선택과 행복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인간적이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봅니다.
      영생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순간을 사는 것인데 왜 이렇게 가르고 나누고 죄인을 만들어야 합니까?
      예수는 하늘에 부를 쌓으라 했는데 오로지 외형 경쟁만 하는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질릴 만큼 질렸습니다.
      정말로 인간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살펴보십시오.
      그들을 비판하고 살기에도 힘겹습니다.
      신은 개개인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믿음이 제 신앙의 핵심입니다.

  9. 가난한여행자 2015.06.30 02:16 신고

    한사회 소수자에 배려가 한사회 민주화 수준을 말하는것같네요
    한국사회 동성은 10%정도라고ㅍ합니다

    나도 한부문에 있어서 소수자 있을수있습니다

    이들을 비난하기전 기득권 ,,특히 새누리당이 우리사회를 망치는 집단이 아닐까?

    새누리당 성사건 ..권력이용한 70세 박희태가 손녀같은 캐디에 성희롱 사건 눈감아주는 것이 더문제입니다

    나는 새누리당을 거대악으로 보고있습니다 ,거기에 몸을담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주머니을 터는 도둑이지도 모르고 무조건 지지하는 국민들 ,,

    이집단은 모든 나쁜것에 관련안돼는게 없네요
    역사적으로볼때 이런 쓰레기 집단은 찿기 힘듭니다


    찰스다원을 이용한 사회진화론은 이제 폐기되어야합니다
    이것에 가장큰피해자는 우리입니다 ,,일본의 한국통치수단,,,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네요

    • 늙은도령 2015.06.30 02:15 신고

      베야민의 글을 읽어보면 사회진화론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명쾌하게 밝힌 내용이 나옵니다.
      적자가 생존한다는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원시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못한 지옥으로 몰고 가는 폭력의 정수입니다.
      적자가 생존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신은 언제나 강자와 함께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만들어내고, 어떤 침략행위도 정당화합니다.
      적자란 모든 상황에서 살아남을 힘과 지혜를 가진 자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해집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최악의 수준까지 떨어뜨렸습니다.
      다윈보다 한 달 먼저 진화론을 완성한 윌리스가 귀족계급이이서 각광받을 수 있다면 진화론의 핵심이 공존의 협력과 적응에 있다는 것이 됐을 것입니다.
      윌리스의 진화론은 자연과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맞춰 갈 때 생존하고 대를 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협력과 공존이 진화의 핵심이라는 것이고 이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세포와 각종 장기들의 작용과 동일합니다.

  10. 머무는바람 2015.06.30 14:36 신고

    간만에 들어 왔어요 ^^

  11. 마르투스 2015.07.02 19:50 신고

    동성애자 세계에서 나와 치료받은 사람이 들려주는 동성애의 실상을 제대로 아시면 생각이 많이 바뀌실텐데요.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것이 어떤것인지 한번 연구해보십시요 우리의 현실이 종말의 끝에 있다는걸 깨달으실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7.02 20:29 신고

      몇 명의 예로 수백 만 명의 사랑을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성애를 하다가 삶이 추잡해 동성애를 한 사람도 있으니 그런 식으로 일부의 사례를 전체에 대입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종말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이성애가 압도적으로 많고, 종말이 온다면 동성애자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배제, 독선과 아집 때문입니다.

  12. 멜카 2015.07.23 12:06 신고

    흠... 주인장님은 성당 다니시는 것으로 알았는데요. 가톨릭은 동성애를 금지하지 않나요?

    그리고... 진정한 문제는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현행 유지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상대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하든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죠. 한국은 동성애를 합법으로, 불법으로 규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행유지가 좋은 것이고요.

    지난번에 동성애자들이 서울시청을 점거하고 인권헌장 통과시켜달라고 했을 때 유시민씨가 한국은 동성애를 금지한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동성애 자체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이 반대한다고 언급하는것만으로도 차별이 될 수 있으니까요. 미국이나 구라파에는 그런 사례가 많다지 않습니까.

    일례로 크리스트교 계열의 종교에서는 많은 교파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주의적 해석이든 무엇이든 성서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을 수는 있어도 성서에 나온 문자가 후기에 맞게 수정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해놓고 신에 대한 죄라고 언급되는 부분을 뒤집기가 어려운 것이겠죠. 그렇다면 그들은 신앙과 양심에 따라 그것이 죄라고 믿는데 그런 자들이 자녀들이나 종교 내 지인들을 향해(혹은 그들을 위해) 그것이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불법이 된다면 그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끄럽더라도 이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이지 뭔가를 매듭지어서 해결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6.02.29 07:39 신고

      카톨릭도 낙태를 금지하지만, 제2차 바티간공의회를 통해 예외조항이 생겼고,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러서는 동성애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가 성전과 성서의 해석을 정치와 사회에까지 적용하면 피바람이 멈춘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2016년입니다.
      종교도 4000년 전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예수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왔지 서로를 갈라놓고 배척하고 차별하라고 오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신경숙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고, 표절의 대상이 된 소설도 읽지 않았다. 필자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경숙이 표절 논란에 대해 몇 번이나 글을 쓰다가 삭제해버린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경숙의 표절이 의도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한때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꿨던 필자로서는 표절의 문제가 남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필자가 처음 소설에 도전했을 때의 기억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체력적 한계 때문에 시를 쓰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던 때도 기억이 난다.



선친이 자식들을 위해 구입한 1,500여권의 책 중에는 수많은 소설들이 있었고, 필자는 젊은 날의 상당 부분을 그 소설들과 함께 보냈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것들 속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가와의 만남은 필자에게 삶을 관통하는 전율이었고, 시대를 초월한 만남이었고,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지금도 좋은 문구를 보면 문학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소설들을 읽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신의 기호와 맞는 작품을 접하기 마련이지만 필자는 잡식성이었던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 고리키, 푸쉬킨, 괴테, 톨스토이, 까뮈, 카프카, 프로스트, 발자크, 펄 벅, 서머셋 모음, 보카치오, 헤르만 헷세, 스탕달, 빅토르 위고, 루이제 린저, 모파상, 애드가 알렌 포,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D.H. 로렌스, 단테, 김동리와 황순원, 이청준과 최인훈, 죠셉 콘래드, 오웰, 헉슬리 등의 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은 것 같다.



지금은 작가는 물론 제목과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당시에는 일단 소설을 손에 들면 밥도 먹지 않고 하루를 꼬박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그중에 좋은 표현들은 몇 권의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이것 덕분에 대학생 때 참 많은 여학생을 꼬일 수 있었다. 단 말로만).





그러다가 소설 5~6백 권을 읽은 후에 처음으로 습작에 들어갔다. 계기가 된 소설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김동리의 『까치소리』.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였다. 습작을 쓰면서 이 네 소설들을 많이 뒤적였고, 다른 소설들에 나온 문장들도 응용했다.



어차피 출판할 것도 아니고, 최초의 습작이기에 분량이 늘어날수록 많은 소설들을 길라잡이로 삼았다. 특히 글을 쓰다 막히면, 그래서 며칠을 생각해도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으면 어김없이 대가의 소설들을 펼쳐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습작을 써나가다 도중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이런 시도는 여러 번 있었고, 조금씩 글을 쓰는 재주가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와 수면장애를 겪게 되면서 소설을 쓰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겨웠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이것저것 생각하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아졌고 편두통 증상도 생겼다.





건강은 더욱 악화됐고, 수면장애도 심해져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삶을 갉아먹고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필자는 압축적인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때는 선친께서 돌아가신 이후라 시집을 마음껏 살 여력이 안 돼 교보문고에서 수백 권의 시집을 사면서 몇 권을 훔쳤던 기억도 난다.



시에 대한 자질이 부족했던 필자가 고등학교 은사(고등학교 때 등단하신 분으로 서정주 시인의 수제자)와 신달자 시인의 도움을 잠시 받았지만, 수많은 습작들도 유명 시인들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고, 표현도 빌려오곤 했다. 천부적 재질이 없으면 그렇게 수많은 습작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평범한 사람(열망은 지독히 강한)의 시작이다.



시 때문에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쓰다가 막히면 시집을 뒤적였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진전이 없으면 잠을 청해도, 밥을 먹다가도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했다. 습작 소설을 쓸 때처럼 뇌리를 휘도는 단어와 문장 때문에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많은 경우 기존 작가의 표현을 조금 수정하는 것으로 타협할 때도 많았다.



필자가 시집이나 소설을 출판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일 출판을 할 생각이라면 표절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모조리 고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었다. 그것은 글 쓰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자 덕목이고, 양심이며 상식이고,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길이며, 돈과 시간을 투자한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언론에 보도된 표절 부분만 놓고 볼 때 신경숙 작가가 표절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더욱 놀란 것(정확히는 절망했던 것)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데 있다. 필자가 매일 쓰는 블로그 글에서도 인용한 글이면 출처를 밝히거나 인용한 문장이라는 표식을 남기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최고 잡지인 창비의 행태도 필자를 분노케 하고 절망케 했다. 문학계에도 문화 권력이 있음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표절 논란을 4~5차례라 겪었으면서도 작가와 출판사가 이에 무신경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학계에 표절이 난무하는 나라라 해도 연속된 표절은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더욱 참담한 것은 표절 논란을 법정으로 끌고 간 어떤 사회학자의 정신 나간 행동이다. 사회학에서는 인용을 밝히지 않는 것이 범죄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그것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법정의 판결에 따라 표절이 되거나, 표절이 아닌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발터 베야민의 《일방통행로》를 다시 꺼내들었다. 단 한 자라도 바꾸면 전체의 글이 모두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의 산문들에서, 심지어는 한 줄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출산의 고통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베르테르가 자살할 총에 묻어있을 로테의 손길을 찾아 천 번의 키스를 하는 모습이 떠올라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더욱 참담했다.





완벽한 창작이란 없을 것이다. 피를 토할 듯한 고통 속에서 한 편의 소설을 써나가는 동안에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뛰어난 문장에서 자유롭기도 힘들 것이다.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문단이, 또는 그 이상이 자신의 창작물인지, 타인의 글을 읽다가 무의식 속에 자리했던 것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자신의 생각인양 썼는지 헷갈릴 수도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표절 논란이 한 번도 아닌 4~5번이나 제기됐다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다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신경숙의 작품들을 파고들자 표절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표절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만연하다는 증언이 속출하는 것까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은 한국 문단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향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 있게 지켜보겠지만, 평생 글을 쓰고자 하는 필자로서는 참담한 심경을 달래기 힘들다.



이놈의 대한민국, 도대체 어디까지 썩었단 말인가? 성공지상주의가 문학세계까지 퍼져 이제는 가장 기초적인 것마저도 작동하지 않는 나라가 됐단 말인가? 이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신경숙 작가가 직접 말해야 한다, 문제의 소설들이 표절인지 아닌지를. 영광을 누린 만큼 고통도 그녀의 몫이기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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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난한여행자 2015.06.21 11:57 신고

    신경숙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절'''입니다 . 의식적으로 했던 안했던 출판되어 나온이상 신작가는 무조건 절필해야합니다
    이사건을 한국 특유의 모호한 인정주의로 넘어가면 , 표절작가 ,후배들이 계속 양산됩니다

    신작가 한권읽어 보았는데 일본 현대 문학의 모티브 ,감성 이 배어있어서''''일본번역하던사람이 문학했나?
    프로필을 보니 전혀 관계는 없어서 ,,그냥 덮은적이 있습니다
    (읽고나서 관심이없어 그후로는 잊음)

    신작가 습작 과정해서 일본 작품실수로 인용했다고 할수있는데 , 이것이야 말로 자신도 속이고 독자도 속이는것입니다

    사숙을 통해 문학을 한사람이 자기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사람이 최고 작가 반열에 올라 수십년을 부와명예를 얻었다는게
    한국의 얼마나 인문학적 빈곤하고 , 정신적기반이 없는나라인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네요


    요건사건 핵심은 '''' 인문학적 기반이 없는 나라에 ,약간 글재주이용.지적유희와 적절한 시대정신을 비벼 섞어서 명품백화점 상품진열대에 올려놓아 ,팔아먹은 짝뚱이네요

    가장 나쁜범죄는 한개인의 영혼을 속이고 자기이득을 취하는집단,개인입니다 ,,


    #
    그리고 늙은도령님 르네상스적 지식이 바탕을 알게 되었네요
    백과 사전 학파 회원을 보는듯하네요

    항상 좋은글 읽고있습니다
    멀리서나만 응원합니다

    두서없이 쓴글 이해 하시기를 ,,,,,,

    • 늙은도령 2015.06.21 16:54 신고

      상당히 참담한 심정입니다.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고 출판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표절 시비가 없도록 만든 다음에야 출판하던지, 아니면 어디서 모티브를 얻어 일부 수정한 정도라고 밝히던지 해야지 이건은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입니다.
      답답하네요.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에는 창의적인 것들이 넘쳐났습니다.
      자신만의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냈으니까요.
      정말 대량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지켜온 가치들이 모조리 붕괴된 모양입니다.

  2. 耽讀 2015.06.21 15:10 신고

    저도 신경숙씨 글을 읽지 않았네요. 소설을 읽은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표절'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심지어 기사도 표절합니다. 요즘 기자들 천편일률입니다. 드래그만 하면 할 수 있었으니까요?
    블로그 하는 사람으로 솔직히 뜨끔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1 16:56 신고

      인용을 밝히면 됩니다.
      그러면 표절의 문제에서 벗어납니다.
      소설에서도 이 부분은 누구의 작품, 어디서 인용했고, 일부만 수정했음을 밝히면 됩니다.
      소설의 과정 상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지 못해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도 소설 전체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3. EMC 2015.06.21 15:31 신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캐나다에서 문안 인사 드립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있는 정치학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소설책을 읽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르는 시사, 정치, 철학, 역사에 관한 책들은 다소 쉽게 읽히는 반면에
    소설책은 몇년전 갓 20대 초반에 들어설 즈음에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은 이후로는 단 한번도 읽지 못했습니다.

    "읽지 못했다" 라고 하는 이유는 제 개인 자신이 시간을 들여 소설을 읽을 심적 여유와, 예술에 지나치게 심취할까 두려워 반사적으로 경계하게 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음으로 얻을 수 있는, 예로 들자면 마음의 안식과 치유, 그리고 사람의 감성을 터치할 수 있는 글을 쓸 능력 등, 수많은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몰입을 할 수가 없더군요.
    이것이 과연 좋은 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에 관련된 것들을 읽다보면 시간이 부족하고, 하찮게 문학에 심취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다 이솝우화 "개미와 배짱이"에 나오는 배짱이 꼴이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책을 수백,수천권 읽으셨을 선생님께 이런 말씀 드리기 창피하지만, 지난 몇년간 저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들이 정치학과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받고, 그 책들에서 얻은 지식 덕분에 여기 캐나다인 토박이들과 같이 수강하는 강의시간과 토론시간에 꿀먹은 벙어리 꼴은 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허나 저는 가끔 그 노력이 저를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제 또래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홀로 생각하는 시간들이 길다보니 재 또래들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들이 눈에 아주 저질스럽게 보였고, 재 또래들이 듣는 음악도 유치하기 짝이없게 느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한국의 근대사와 정치를 저보다 더 많이 알고 행동해야 할 또래들이
    세상돌아가는 것에는 전혀 관심없고 오로지 외모관리, 여행, 놀기, 맛집기행 등등에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니 뭐라고 말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는 점 그대로 다른 한국학생이나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인 또래들에게 말하면 외계인 취급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기예 아예 그들과의 관계는 담을 쌓고 지낸지 오래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처럼 대기업 사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하시다 IMF 때문에 맨주먹으로 이 캐나다 중서부 허허벌판으로 오게 된 저희 가족보단 살만한지 이곳에까지 와서 오로지 종교에 매달리는 나약한 심성의 사람들과 "Carpe Diem" 만 추구하는 타 한국인들의 졸부근성 꼴보기 싫어 하는 제 셩격도 한몫했죠.

    그래서 근 일년 몇개월동안은 제가 학업을 하고있는 도시에서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깊게 슬퍼하는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 커뮤니티를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이라고 해야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고,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이나 우크라이나와 인접국들과의 이해관계가 낮설어 하는 5~6세대 우크라이나계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교 신문과 우크라이나계 캐내다인들이 운영하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에도 글을 몇번 기고했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상으로 장학금도 얼마 받고 NATO 산하에 있는 싱크탱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지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학적으로 얼마나 크나큰 사건이며, 한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7~8월 쯤 다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어떤 웹사이트에 기고하는 것이 좋을지 선생님께 조언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선생님.
    저희 아버지도 몇년전 크게 편찮으신 적이 있어서 그런지 선생님 건강도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다행히도 쾌차하셨고 지금은 건강하십니다).


    • 늙은도령 2015.06.21 17:21 신고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다른 시대와 그때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동시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전이라는 소설 중에는 정치학을 하는 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치가 세상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권력에 대한 것이듯, 인간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도 이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좋은 정치학이 됩니다.
      제가 마키아베리가 가장 현실정치를 잘 다루었지만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그의 정치란 학문적 가치도 없을 뿐더러 정치 자체를 최악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존 듀이 <공공성과 그 문제들>을 보면 정치학이 공민학에서 멀어지면안 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사람과 사회, 국가를 이해하는 것이 정치여야 합니다.
      모든 학문의 마지막이 정치학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능하면 소설도 읽고 사람과의 관계도 늘렸으면 하네요.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정부를 필요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사람의 가치와 선함을 믿기에 정부가 필요악이어도 정치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여러 가지 기사를 통해 접근하고 있지만, 저는 미국의 탐욕을 경계하는 편입니다.
      푸틴이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꾼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현재의 러시아는 미국의 상대가 안 됩니다.
      우크라이나 본국에서 벌어지는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지만, 약소국이 강국들의 싸움의 장이 된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각인데 그것이 알려지지 않네요.
      푸틴의 목표가 정말로 제정 러시아의 부활이라면 신냉전은 피할 수 없을 터이지만, 그것이 아닌 에너지와 지정학적 이익을 위한 추악한 강국들의 경쟁이라면 정말 걱정입니다.

      좋은 일을 하시는 것 같아 매우 좋습니다.
      님의 글이 어디에 기고하면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적정한 웹사이트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국제정치학을 전문으로 하는 웹사이트를 찾아야 할 텐데 저도 그 부분은 지식이 부족합니다.
      서프라이즈는 지나치게 좌파적이고 다른 웹사이트는 수준이 떨어집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정치학을 다루는 웹사이트가 별로 없어서 어디가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남의 글을 훔쳐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조심스럽구요.
      저도 사이트를 검색해 볼 테니 님도 많은 사이트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참, 자본주의와 미디어 산업은 한몸이기 때문에 인간을 물질의 포로로 만듭니다.
      인터넷이 이런 경향을 더욱 퍼뜨려 전 세계적으로 낮은 문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많이 어렵고, 형이상학적 표현이 많지만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 등을 보면 자본주의가 이런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음이 100년 전에 이미 파악된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자본주의와 기술발전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그래서 더욱 고전들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문명의 발전은 인간을 퇴행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인자동차, 무인비행기,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 생각도 대신해주는 로봇 등이 판을 치게 되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전 지금의 발전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네비게이션은 운전을 쉽게 해줬지만 공간 감각만이 자신이 다니는 곳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공간적 인지감각을 퇴화시킵니다.
      그것은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는데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고 인류 진화의 핵심적 축복인데 이것을 인간 스스로 파괴하는 꼴입니다.
      이런 물질적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을 생각하지도 않게, 그저 즐기는 존재로만 만듭니다.
      이것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합니다.
      인류 문명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인간과 자연, 환경에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4. singenv 2015.06.21 22:20 신고

    다른 할 말이 없네요..
    참담하고 참담할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1 22:39 신고

      가치의 기준이 사라졌습니다.
      돈과 성공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5. EMC 2015.06.22 06:35 신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우크라이나 사태는 물론 미국과 EU가 우크라이나를 서방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벌인 무리수도 원인이지만
    (예를 들자면 우크라이나 경제와 정치 시스템으로 이행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던 지난 2013년 가을에 EU가 채결하려 했던 자유무역협정과 협력조약 등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련시절의 노스탈지아에 취해있는 푸틴과 러시아 극우의 침략행위로 인해
    법과 질서과 바로서고 부정부패를 근절하여 인간적 존엄성을 되찾자는 시민들의 염원으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한국전쟁과 비슷한 성질의 국제적 분쟁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대로 러시아는 군사, 경제, 문화 어느 부분에서도 미국보다 우월한 점은 없습니다.
    허나 저는 러시아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 크나큰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크게 걱정됩니다.
    푸틴은 대통령 된 이후부터 온갖 뒷공작으로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인사들은 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실각시키거나
    심지어 암살까지 자행했습니다.

    오늘의 러시아는 푸틴과 푸틴이 만든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는 러시아 엘리트들이 장악한 나라입니다.
    옛 제정 러시아 처럼 절대 다수는 빈곤의 늪에 빠져 있지요.
    아직도 40%이상의 러시아 국민들이 전기 없이 생활한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재벌들에게서 강탈한 미디어를 국유화해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리고 있지요.
    이제는 러시아 국민들을 눈뜬 장님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다국적 뉴스 채널인 Russia Today를 통해 서구사회의 눈과 귀도 흐리고 있습니다.
    ( 이 Russia Today (RT) 가 재밌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쪽 진보인사들을 대거 출연시켜 진보적인 색을 띈 방송으로 위장하였지만 실상은 러시아에 대해 흥미로운 다큐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매복의 독' 입니다.)
    거기다 덤으로 유럽에 친러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프랑스의 국민 전선 같은 유럽의 수많은 극우주의 정당에도 뒷돈을 대고 있지요.

    그리하여 수많은 석학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프로파간다 행위가
    '대채 현실' (Alternate Reality)를 창조하고 있다며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계 우크라이나 인들을 수도 키예프를 점거한 나치들로 구한다며 한 행위가 바로
    크림반도 강탈과 현재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진행중인 전쟁입니다.
    러시아는 계속 직접적인 개입을 부정하고 있으나
    외신들의 보도에 의하면 이 자칭 '친러 분리주의자' 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다수가
    러시아 정규군만이 사용하는 장비라던가 러시아 정규군들이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들의 위치가 우크라이나로 나오는등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의용군들과 직접적인 전투까지 벌이는데도
    이 명백한 침략행위에 대해 뻔뻔히 전면 부정하고 있지요.

    러시아가 얼마나 억지를 부린다는 것은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수립한 친러 정권들의 성질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크림 반도의 경우, 푸틴이 직접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인들과 타타르 인들의 문화와 자치권을 존중한다고 하더니
    크림 반도 강탈 그 다음날 크림반도 지방 의회 건물에 우크라이나 어와 타타르 어로 쓰여진 현판을 모조리 떼어 버렸지요.
    게다가 타타르 인들의 운영하는 방송국도 강제로 문닫게 하고 적지 않은 수의 타타르인 인권 운동가들이 실종되서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건국한 자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은 더 가관입니다.
    마치 한국 전쟁 당시 점령된 서울을 보는 느낌입니다.
    구소련 깃발이 나부끼고 완장찬 의용군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인민 재판을 벌이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군 포로들에 대한 인권 무시는 전쟁 범죄 수준이죠.
    많은 수의 포로들은 잡히자 마자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을 당했고, 살아있는 포로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다름아닌, 평범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입니다.
    거의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인들의 일상용어로 러시아 어를 사용하며 언론, 문화도 러시아어가 절대적인 강세입니다.
    러시아인들과 원래 같은 동 슬라브 인들이라 서로 "형제"라 칭하던 사이였고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과 혈연관계에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많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수많은 가정들이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예로 들지만, 부모님이나 조부모는 러시아 계라 러시아를 지지하지만
    독립한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이라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가족 사이도 서먹하거나 적대적으로 변해버린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자주국으로서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가 EU 국가들처럼 법치가 올바로 서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변하기를 갈망하지요.
    허나 아직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고 오랫동안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제국 등 외세에 수많은 세월을 지배당했고
    그로 인해 지역마다 아이덴티티가 다르다 보니 한국처럼 동-서로 나뉜 내부갈등은 구소련 붕괴 이후 죽 존재해 왔습니다.
    (서부는 오스트리아, 폴란드의 영향이 강했고 동부는 근세에 들어 죽 러시아의 지배권에 있었습니다)
    허나 푸틴과 러시아 극우가 실상 위협에 처해있지도 않은 러시아 계가 나치들로 인해 멸졀될 위기라고 우기며
    결국 침략행위를 자행함으로서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이지요.

    저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근미래에 한반도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미리 대비하란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
    THADD 와 AIIB 등의 당근을 통해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드리려 하여
    한국이 균형적인 외교를 하는데 큰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자칭 혈맹이라며 편파적인 외교를 강요하는 미국이야 말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데
    큰 역활을 하고 있지요.

    Timothy Snyder란 동유럽 역사의 정통한 미국인 학자가 말하길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를 가장 주시하고 있는 나라는 다름아닌 중국이라고 합니다.
    남중국해에서 인공섬까지 건설하며 무리수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닌것 같습니다.
    나치의 주데튼란트 강탈에 맞먹는 크림반도 강탈로 국제법을 완전 무시한 위험한 전례를 남긴 러시아는 두말 할 것도 없고
    설상가상으로 푸틴처럼 아직도 태평양 전쟁 시절의 노스탈지아에 취해있는 아베를 필두로 한 극우가 정권을 잡고있는 일본과
    자기 목 날아갈줄도 모르고 도발을 자행하는 북한에 둘러쌓인 오늘의 한국은
    오히려 우크라이나보다 더 위태로워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죽 쓰다보니
    제가 쓰려고 한 글의 요약글이 되어 버렸네요.

    아무튼 제 소견은 한국은 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깊게 주시하고 반면교사로 삼어아 한다는 것입니다.
    2013년 우크라이나 처럼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층이 오로지 한 수퍼파워만 손을 잡고 다른 수퍼파워랑은 관계를 단절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
    경제보복처럼 사소한 게 아니라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게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회복되는 계기가 될지는 모르나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할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나누고 싶은 말이 아직도 많지만 이쯤에서 줄일까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2 15:33 신고

      잘 읽었습니다.
      많은 고민이 보이네요.
      우크라이나가 EU 가입을 두고 내분이 일어난 것은 정치적으로 보면 일정 부분 가능한 일입니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러시아의 영향력이 떨어지니 독재자 푸틴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지요.
      헌데 우크라이나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상류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푸틴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제정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푸틴의 야망이 정신 나간 짓이고 천벌을 받을 일이지만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세력 간의 싸움에 국민만 죽어나가는 것이지요.

      다만 아쉬움이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한다고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유럽국가들이 EU에 가입해 망가졌습니다.
      지금은 독일만 돈을 벌고 나머지 국가는 죽을 맛입니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기 전에 내부의 민주주의를 더욱 다지는 것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푸틴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이 미친 독재자가 얼마든지 그것을 막을 개입거리란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정치와 권력욕이 국민을 죽이는 것이니.
      민주주의는 출발이 좋아야 성공합니다.
      대한민국도 출발이 안 좋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에 이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패권놀음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내전상태에 빠져든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금만 더 내부를 다진 다음에 EU 가입을 추진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미국이 부추긴 면도 있습니다.
      푸틴의 힘이 커져서 중국과 아슬아슬한 연합을 이루면 신냉전이 다시 시작될 테니까요.
      그러면 미국은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중국을 깨놓고 압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 우크라이나의 EU가입을 선동할 수 있습니다.

      저는 푸틴의 야욕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한다고 갑자기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서둘러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답답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느냐 입니다.
      내부의 권력다툼 때문에 국민이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듭니다.
      제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처음에 들여다 봤을 때 국제정치학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으로 봤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러시아의 역사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든 상황에서 반푸틴 노선을 걷는 것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걱정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EU에 가입한 국가 중에서 후회하는 국가들도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약한 민주주의를 잡아먹고 독주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경제독점의 역사입니다.
      정치는 경제와 손잡아 자신의 역할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시대이고요.

      우크라이나 상황은 보다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세상에 알려진 것들도 상당 부분 가공된 것이기에 시민단체의 것들을 참조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많이 부족해 제대로 된 판단이 힘든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자료가 있으면 분명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어렵네요.
      푸틴의 야욕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그의 힘이 커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독재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요.

      한국은 우크라이나와는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약하지는 않습니다.
      보수우파 정부가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망할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기 때문에 그렇지 경제규모 10위권과 국방력은 어떤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려는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형편없는 나라로 만들어 님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구나 그밖의 것들을 다 고려할 때 경제가 나빠질 수 있는 위험성에 직면해 있지만 세금만 제대로 거두면 어느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수준에는 이르렀습니다.
      이놈의 보수정부들이 부자와 기업의 법인세를 안 올리고 억지로 경제를 이끌어나가니 위태로워졌지만 이것만 바로 잡아도 대한민국은 다시 비약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정당이 공공성을 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면 어떤 나라도 흔들립니다.
      우리는 그 상태에 이른 것은 확실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을 최악으로 몰고 가고 잇습니다.

      조국을 걱정하는 님의 마음이 우리나라 정치가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합니다.
      정치가 바로 서야 세상이 좋아집니다.
      님처럼 진실로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인이 많아지면 이런 어이없는 역주행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

  6. 공수래공수거 2015.06.22 08:40 신고

    신경숙 표절 문제는 본인의 양심이 좌우할것입니다
    한번 양심을 속이면 계속 속이게 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기도쉽고
    ( 인용하기 쉽고) 표절 여부도 쉽게 확인할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 일루와봐 2015.06.22 16:20 신고

    독자들이 모를 줄 알았을까요? 독자들을 뭘로 본 걸까요?
    양심은 없다쳐도 대놓고 뻔뻔한게 참...
    이 사건을 터뜨린 이응준 작가의 의도까지 꼬아 보게 만드는 한국 문학월드 ㅋㅋㅋ

    • 늙은도령 2015.06.22 17:13 신고

      저도 그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입니다.
      작가로서 이것은 용납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문학계의 파렴치한 쉴드도 그렇고...

    • 일루와봐 2015.06.22 17:17 신고

      그네들을 한 자루에 놓고 꾸-욱 밟는 방법 중 하나, 창비책 보이캇 시작! 원래 사지도 않았지만 ㅋ

    • 늙은도령 2015.06.22 17:38 신고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8. 쩡은&참인간 2015.06.22 20:09 신고

    저도 한권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표절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씁쓸하더라구요.

    • 늙은도령 2015.06.22 21:15 신고

      표절이라는 부분을 읽어보니 표절이 맞더라고요.
      헌데 재미있는 것은 하필 이때 이 문제가 부각됐느냐 입니다.
      정권이 위기에 처한 때인데, 그전에도 있었던 문제가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으니까요.

  9. 일본의 케이 2015.06.23 09:31 신고

    참 좋아했던 작가였습니다. 표절이 아니길 바랬는데,,,표절이라는게 참 씁쓸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3 14:49 신고

      그러게요.
      아쉽습니다.
      신경숙도 이번을 통해 거듭나야지요.
      부디 신경숙 사태로 한국이 표절이 없는 문단을 가졌으면 합니다.

  10. 이정윤 2015.06.23 09:55 신고

    풍그이 있던자리 엄마를 부탁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읽었는데 표절이라... 젠장

    • 늙은도령 2015.06.23 14:50 신고

      많은 부분은 아니라고 합니다.
      표현이 막힌 부분이 있어 표절을 했을 것입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많이 떨어졌지만 전체적인 것은 아니니 감동까지 버릴 필요는 없겠지요.

  11. 푸르메 2015.06.23 11:08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표절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다가 정치인들의 논문 표절이 이슈가 되니까 더 크게 불거져 나온 것 같군요
    영화 헐리우드키드의 생애도 떠오르고요 . 제가 딴지를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신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은적이 없다 그런데 표절이다' 이말은 존체가 아니라 부분 그것도 누군가 표절이라고 제시한 부분을 비교해서 그렇다는 얘기가 되는데 조금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을 것 같군요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3 14:53 신고

      그래서 언론에 제기된 부분들을 다 살펴봤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가지고 말했을 때 표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찌 소설 전체가 표절이 되겠습니까?
      특정 부분, 특정 포인트에서 신경숙도 한계에 부딪쳤을 것이고 그때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지요.
      하지만 전체 소설로 보면 양은 적을 것입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양이라 해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에 나온 내용들은 많이 지나쳤습니다.

  12. 불루이글 2015.06.23 13:47 신고

    지금 표절 문제가 크게 부각 되는것은
    바로 메르스 때문에 곤두박질 치고 있는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물타려는 의도가 다분 한것 같습니다.

    이제 북풍은 더이상 우려 먹을 건덕지가 남아 있지 않고
    참으로 골치아프게 되버린 박 카카 입니다.

    하긴 메르스 덕분에 쑥 들어간 성완종 사건
    성완종이 때문에 묻혀버린 사자방 비리

    무었이 무었을 묻고 있는지 모를 지경 이네요....

    정말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06.23 15:00 신고

      저도 그 부분에 대해 의심했습니다.
      예전부터 나왔던 얘기가 지금 폭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표절은 문제입니다.
      특히 신경숙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면 특히 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작은 욕망이 모든 것을 망쳤어요.

  13. 결국 2015.07.22 09:07 신고

    저자께서 전제한 '나는 신경숙 글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다'가 모든 논의의 발목을 잡습니다.
    시도 아닌 소설을 논란이 인 단 한 편도 읽지 않고 '표절' 운운하는 건 오만불손한 태도로 보입니다.

    학자들이 재인용을 할 때도 최소한의 원칙이 있습니다.
    원문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저자께서도 인용이나 언급을 위해 단 한 번은
    글을 읽으셨어야
    본 저작 전반에 전제하신 학문에 있어서 윤리학이나 경건주의에 맞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후로도 신경숙 관계 뉴스로 검색이 되도록 두 편의 글을 더 쓰셨던데요.
    그 독자들이 모르고 있는 건 저자께서 선학의 도리를 인용할 동안
    정작 읽어야 할 논란의 책은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게는 표절만큼이나 비도덕적 행태로 보이는군요.

    • 늙은도령 2015.07.22 16:10 신고

      원문을 다 읽어야 비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문비평가가 해야 할 일이지요.
      기본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을 땐 원문을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신경숙의 표절논란에 관한 기사들을 거의 다 검색해서 비교하고 표절했다는 책들은 저도 몇 권을 가지고 있어서, 알려진 것들을 가지고 비교해봤습니다.
      그 다음에 글을 쓴 것이니 그 수준에서 비평한 것입니다.
      제가 신경숙의 문제되는 소설들을 다 읽고, 표절했다는 책을 다 읽었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예 책을 없애버리려는 자세로 모조리 벗겼을 것입니다.
      당신의 주장대로 하면 모든 것을 아는 사람만이 비평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신이라면 그것이 가능하겠지요.
      그리고 이 글을 쓴 다음에 어제 쓴 글은 신경숙과 다르게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기 위한 글입니다.
      님이 저의 나머지 글을 읽지 않고 이런 댓글을 달 수 있는 것도, 제가 신경숙을 비판하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신경숙은 작가로서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거짓말을 하다 여론이 불리해지자 표절을 인정했습니다.
      그것부터 잘못됐고, 사과의 방식과 그 이후의 행태도 잘못됐습니다.



유시민의 트윗처럼, 없는 셈 쳐야 하는 박근혜를 국민의 분노로부터 구하기 위한 기레기들의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살아있는 권력의 노예를 자처하는 정치검찰이 성완종 리스트를 없던 일로 되돌렸고, 당청정의 비호 아래 황교안의 인사청문회가 끝났으며, 책무를 포기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으니, 이제는 여왕 구하기를 위해 기레기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때 완벽하게 가동됐던 ‘박근혜 여왕 구하기’의 노하우를 살려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메르스 대란을 만들었던 대통령과 청와대, 방역당국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삼성서울병원에게 돌리고, 국민의 불안과 공포는 박원순에게 돌리면 가장 완벽할 터였다.



새누리당2중대 소리를 듣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포문을 열었으나,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원장도 아닌 감염내과 과장이다!)가 국가의 책임이라고 맞받아쳤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위한 상징적인 존재라, 삼성서울병원을 비판하려는 야당의원의 책임 추궁에 ‘예, 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삼성서울병원의 경영진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땅에 처박힌 위상으로도 계산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는데, 메르스 대란의 희생양까지 하라는 야당의원의 다그침에 오만불손하고 제멋대로인 삼성서울병원 관계자가 곱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목가지가 잘릴 그로서는 이판사판의 심정이었으니, 정부를 향해 ‘빅엿’을 먹인 것이리라(그렇다고 소송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의 질타에 대국민사과를 하고, 억울한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메르스 대란의 시비는 가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삼성공화국이란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 수천억은 넘을 브랜드 가치의 폭락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리라. 병원관계자들이 반드시 감춰야 할 무엇이 있었던가, 아니면 정부로부터 어떤 압력을 받았던 것이 있었던가?



기레기들이야 광고와 협찬이면 오체복지할 놈들이니, 이미 레임덕에 빠진 식물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모든 죄를 뒤집어쓸 수 없다는 분명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오만의 극치일까, 정말로 억울한 것일까, 둘 다일까? 하여간에 뻔뻔하고 재수없다!!). 어쩌면 상당수 국민이 박원순 시장이 삼성서울병원을 폐쇄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는 상황까지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반발은 즉시 효과가 드러났다. 여왕 구하기에 돌입한 기레기들의 희생양 찾기가 삼성서울병원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박원순 시장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메르스 대란의 진원지도 평택 경찰의 감염(4차감염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미스터리한 음성판정)을 기점으로 평택성모병원으로 되돌아갔다(대체 이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삼성서울병원을 폐쇄하지 못하는 책임은 박원순 시장에게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을 폐쇄하면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확진환자가 나온 모든 대형병원들도 폐쇄해야 하는 것(이럴 경우 의료대란을 피할 수 없다. 공공의료가 형편없는 상황에서 이것은 최악의 선택이다)은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의식불명(유병언의 시신처럼 참으로 미스터리하다)은 박원순의 책임으로 돌리기에 최상의 자원이다. TV조선과 채널A, MBN에서는 ‘스트레스’ 운운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때리기에 앞장섰다 한발 물러섰던 YTN도 다시 박원순 때리기에 합류했다. 연합뉴스는 두 종편과 YTN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메르스 대란을 메르스 광풍(김무성은 지역경제 살리기, 문재인은 광폭행보)이라며 새롭게 설정된 프레임을 충실히 따랐다.



기레기들은 메르스 전염의 대체적인 경로를 파악한 이후에나 이루어진 박근혜의 사진 정치와 방미도 연기한 눈물겨운 국민 사랑(헐!), 김무성 대표와 장관들의 현장 방문을 보도하기 바쁘다. 한국인의 메르스 공포를 비아냥거리는 미국 보수매체의 저질 보도(결혼식 사진이 연출됐다는 설도 있다)를 퍼 나르고 서울시공무원시험 강행을 비판하며 박원순을 맹폭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메르스 공포가 과대포장된 것이며, 치사율도 감기보다 못한 1.1%(jtbc가 거짓임을 밝혔다)에 불과한데, 대권을 노린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시장 등)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경제가 마비될 정도로 불안과 공포가 확산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해경과 유병언 일족에서 막아낸 것처럼.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강력한 반발에 화들짝 놀란 기레기들은 창백한 얼굴로 돌아서며 박근혜 여왕 구하기의 진짜 작전명인 ‘박원순 희생양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을 MSG로 만들어 음식 곳곳에 뿌려가면서. 이럴 때면 어디선가 반드시 나타나는 어버이 연합의 박원순 규탄 데모를 후식으로 제공하며.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대란의 책임소재를 끝까지 밝힐 생각이 아니라면, 집단적 단기기억상실증에 의해 지배되는 여론은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해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재정의되고, 세월호특위가 세금도둑이 되고, 세월호 유족이 자식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 파렴치한 부모가 되고, 종국에는 종북세력의 조정을 받는 체제전복세력으로 빨간색이 칠해진 것처럼. 



기레기들의 박원순 죽이기가 도를 넘었다. TV조선과 채널A, YTN이 주도하는 박원순 죽이기는 '썰전'에서 강용석의 상식 이하의 발언들과 맥을 같이 한다. 정부방송 KBS는 시청료 인상을 위해 박근혜 띄위기에 여념이 없고, 황교안의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 채택이 이루어지자 야당의 분열상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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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耽讀 2015.06.12 07:40 신고

    종편을 볼 때마다 과연 저들 정신은 건강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대편에 대해 건강한 비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써는 단어들도 극단적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12 15:12 신고

      미국의 보수방송을 보면 이렇게 합니다.
      폭스 TV 등에서 배워오는 것으로, 보수주의자들은 당연시 여깁니다.
      보수의 의식구조는 진보와 다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6.12 08:28 신고

    그나마 요즘 그래도 JTBC가 나은것 같더군요
    5시 정치부 기자~~.가 그래도 핵심을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12 15:12 신고

      그나마 jtbc가 있어 다행입니다.
      하나의 방송만 제자리를 찾으면 힘이 배가되는데 그게 안 되네요.

  3. 로키. 2015.06.12 12:18 신고

    우리나라 언론은 어디까지 썩어있을까요..

  4. 『방쌤』 2015.06.12 13:06 신고

    정말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헛웃음도 안나오더라구요
    기사에 올라와있는걸 보고는 들어가서 보지도 않았습니다
    안봐도 이제 뻐~~~~~언 하거든요

  5. 프리뷰 2015.06.12 16:38 신고

    빨리 공개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안왔을것을....
    정말 실망입니다.

  6. 민주청년 2015.06.12 21:19 신고

    제목보고 팍 공감이 되네요.

  7. 평택사는 사람 2015.06.12 22:08 신고

    더 무서운 것은 이걸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정치와 사회현상에 관심없는 분들의 경우 대부분 동조하며 적어도 30퍼센트 내외로 투표에 반영되곤 하죠...

    • 늙은도령 2015.06.12 22:13 신고

      그래서 우리가 더 많이 투표장에 나가면 됩니다.
      지금은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큰데, 그것을 반드시 투표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논쟁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