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정확히 40년 전 오늘, 동아일보에 폭력배와 용역을 앞세운 경찰들을 투입했습니다. 그들은 박정희 정부와 야합한 동아일보 경영진이 부당인사(200여명에 이르는 직원이 포함됐음)를 통해 언론자유를 말살하자, 이에 항의해 편집국을 점거한 채 항의농성 중인 180여명의 기자와 직원들을 폭력적으로 해산시키고 강제 연행했습니다.
이들은 1975년 10월 24일 편집국에 모여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다, 기관원 출입을 거부한다, 언론인 불법연행을 거부한다”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며, 박정희 독재정권과 친일부역의 전력을 지닌 경영진에 맞서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압력으로 동아일보(당시 국내 최대신문이었다)에서 광고가 사라졌고 이에 경영진이 굴복했지만,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성금으로 광고란이 백지 상태로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국민의 성원에 당황한 박정희 정부는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폭력을 자행해 언론의 자유를 말살시켰습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날의 무력진압으로 동아일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협조하는 치욕적인 역사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때 쫓겨난 113명의 동아일보 기자와 직원들이 결성한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40년을 이어오고 있지만, 정보기관(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은 위원들 중 20명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민기·이의직·안종필·홍종민·김인한·홍선주·심재택·안병섭·우승룡·배동순·김성균·김덕렴·강정문·안성열·김두식·김진홍·이병주·이인철(돌아가신 필자의 고모부)·성유보 위원이 동아일보에 복직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고, 지난 3일에는 송재원 위원이 눈을 감았습니다.
아직도 생존하고 계신 필자의 고모는 그 당시의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올해 안에 제가 받아올 생각입니다. 고모부가 생존하고 계셨을 때 동아일보에 복직해서 명예회복을 하셨으면 좋았겠지만, 촛불집회 탄압에 앞장섰던 신영철 전 대법관이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조중동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언론생태계를 파괴하고, 독재정부에 기생해 부와 권력을 축재한 동아일보가 유일하게 정도 언론의 길을 걸었던 때가 이분들이 기자와 직원으로 있었을 때입니다. 40년 전 동아투위가 결성된 오늘, 돌아가신 고모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입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 언론의 자유도가 가장 높았던 대한민국이 언론 탄압국으로 전락한 지금, ‘시민들의 조직된 힘’마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도 권력과 자본을 감시해야 할 언론생태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야금야금 되살아난 박정희의 망령과 독재의 폭거가 자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이 바로 서려면 파괴된 언론생태계부터 복원돼야 합니다. 조중동의 폐악을 정확히 파악하고 단죄해야 하며, JTBC를 제외한 종편들도 법에 따라 방송권을 회수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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