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울프는 《미국의 종말》에서 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에서 진행된 10가지 조치가 미국의 건국이념이자 가치인 민주공화국과 자유 및 헌법을 무력화시키며 독재로 향하는 내용을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애국법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무차별적으로 도감청하는 것이었습니다.
GPS가 내장된 스마트폰과 사이버 상에서 행해진 모든 전자기록을 축적하고, 데이터 마이닝를 통해 분류화‧개별화‧파일화하는 인공지능형 빅데이터의 사업화는 더 이상의 프라이버시는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여기에 통신사가 감청장비를 의무적 갖추도록 하면 최후의 사적 공간마저 사라집니다. 하고자 하면 국정원과 권력기관들이 간첩조작사건도, 빨갱이와 종북타령도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 반동을 이끈 ‘티파티’의 지도자, 글렌 벡(최초의 종편인 미국 폭스TV 정치토크쇼 진행자)의 《상식》을 보면ㅡ논리적 모순과 오류, 사실 왜곡과 조작, 정체불명의 상식과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동정치의 교본ㅡ다른 무엇보다도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울부짖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빨간 자유는 디지털 전체주의를 진보주의와 연결(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다)하며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를 겨냥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교묘하게 인용하면서 글을 풀어가는 글렌 벡은 개인(미국의 주류 백인을 뜻함)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정부를 맹폭하는데, 그 대상에는 조지 W. 부시도 포함됩니다. 진보적 가치가 들어가는 모든 것을 비판하는 그는 부시의 ‘애국법’이 개인의 자유와 건국의 아버지들의 (수정)헌법을 침해했다고 맹폭을 가했습니다.
새로운 보수의 지배를 꿈꾸며 글렌 벡 같은 자를 추종하는 미국인들(몰론 더 높은 수준에서 미국 보수주의 힘을 다룬 책은 존 마클레스웨이트와 아드리안 울드리지의 《더 라이트 네이션》이다)에게도 무차별적인 도감청을 자행하는 애국법은 소수 지배엘리트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기 위해 미국을 전체주의로 만드는 최악의 법률이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손잡고 미국의 보수화에 성공한 이들도 이러할진데, 정통 진보좌파인 나오미 울프의 ‘애국법’ 비판이 얼마나 강력하고 신날하며 두려움으로 가득했겠습니까? 모든 국민이 유무선 전화로 통화하는 현실에서 통신사에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한다면 개인의 자유는 완벽하게 무력화되고 비민주적 권력과 맞설 최후의 수단마저 무력화됩니다.
새누리당 박민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법안에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음은 지금까지의 경험이 100%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적 공간이 사라진 디지털시대의 절대감시자인 바놉티콘(죄수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교도소의 중앙에서 전체 죄인을 감시하는 벤담의 파놉티콘이 디지털 버전으로 변한 것, 감시자가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자리하며, 개인 스스로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고 자발적으로 감시체제에 순종하는 것이 특징)은 이렇게 완성됩니다.
인공지능형 빅데이터(필자가 통신사업을 할 때 꿈꿨던 것이라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무의식까지 들여다 볼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의 욕망을 찍어낼 수 있으며, 정치적 기호는 완벽하게 분류해내고 등급까지 매길 수 있습니다.
만일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미드 <24>의 무대인 국토안전국과 전 세계에 퍼져있는 미국대사관, 미군기지, CIA와 FBI 등이 구글과 애플, AT&T, 머독코퍼레이션, 아마존, 월마트, 거대금융‧보험사, 거대방송사, 케이블방송, 라디오 등등의 도움을 받아 각국 정상의 핸드폰에서 깊은 산골의 개인까지 도감청했던 것이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예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그들의 보유한 도감청 장비와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주는 ‘통신사 감청장비 의무화’ 법안의 통과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의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헌법과 프라이버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디지털 유신독재로의 회귀가 이것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들이 요주의 인물로 분류‧파일화해 도감청을 자행하면, 권력과 자본에 해가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상시적 도감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법안에 담겨있다고 주장하는 안전장치를 믿을 수 없음은 권력이 작동하는 속성에서 이미 증명된 바입니다.
박민석 새누리당 의원이 재발의한 이 법안은 경제정책의 실패,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과다한 채무로 인한 금융위기의 재발가능성, 세월호 참사와 탄저균 국내반입, 메르스 확산의 초등대체 실패,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정치검찰의 엉망진창인 수사와 초딩보다 못한 자원외교 조사까지, 국정실패의 증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자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더 멀리 보면 현 집권세력이 내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후의 조각을 퍼즐의 빈 공간에 채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하나의 퍼즐 안에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마스터 키가 내장돼 있으며, 국민은 그것을 들여다 볼 수도 없고,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민석 의원이 야당의 반대로 사실상 사장된 '통신사 도감청장비 의무화 법안'을 재발의한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북한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하고 형편없는 수준까지 후퇴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자 오만방자한 권력의 역겨운 추문입니다.
국민을 잠재적 빨갱이로 보는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을 차기 총리로 지명한 것과 '통신사 도감청장비 의무화 법안' 사이에 '국정원을 위한, 국정원에 의한, 국정원의 대한민국'이 숨어있지는 않겠지요? 제가 전화하는 내용과 포털을 이용하는 것까지 정부가 마음대로 들여다 본다면 저는 전화 통화와 포털 사용을 최소화할 것입니다, 디지털 망명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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