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메르스 긴급 상황점검(?)회의’에서 환자가 발생한 병원의 명단 공개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통령과 관계부처 공무원 및 관련 전문가들이 모인 회의에서 나온 결정이라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장과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등 회의에 참석한 민간전문가들의 발언에서 이런 결정이 나온 근거를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국민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명단이 공개되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것이고, 병원들은 메르스 환자를 받지 않겠다는 등의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했답니다.
WHO(세계보건기구)도 명단 공개를 권고하는 상황에서 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메르스의 급속 확산에 따른 국민의 불안과 공포의 총합보다 병원들이 받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명단에서 빠진 병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메르스 의심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반인륜적이고 파렴치한 행태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일까요?
대체 메르스 확산에 어떤 병원(프레시안이 공개했다)이 포함돼 있기에 '메르스 긴급 상황점검회의'까지 열어 명단을 공개하라는 국내외의 요구와 권리행사를 무시하는 것일까요? 명단 공개 불허로 국제적인 불신을 자초할 만큼 해당 병원들이 절대적 위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이 받을 불이익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병원들이 뒤집어쓸 불이익보다 크다는 것일까요?
해당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이 입을 수도 있는 불이익과 정보 부재로 국민이 겪어야 할 불안과 공포의 총합보다 더 크다는 것일까요? 정말 그것이 문제라면 정부는 무슨 수로 전국에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거점병원은 지정하겠다는 것일까요? 최악의 경우 경남의료원을 강제 폐원할 때 홍준표가 보여준 놀라운 입원환자 (강제)이송기술을 벤치마켕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대신 홍준표의 주민소환은 반드시 성공시키고요)?
그것도 아니라면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전국의 중대형병원을 거의 다 찾아갔기 때문에 명단을 공개하면 남는 병원이 없다는 뜻일까요? 반대로 그들이 찾아간 병원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명단 작성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닐까요? 2003년에는 제대로 작동했던 방역체계가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청와대는 재난구조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첫 번째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 13일이 지나서야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무능함을 감추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정부의 초기대응부터 확산 방지까지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일까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특정 병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아닌 이상, 명단 공개가 ‘득보다 실이 크다’라는 결정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의 발표처럼 메르스 감염이 병원 내에서만 일어난다면 입원환자와 가족들,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명단을 공개해야 합니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얄팍한 계산이 이번 결정에 작용하지는 않았겠지만, 정부가 국민의 불신과 혼란을 잠재우려면 어떤 근거로 명단 공개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결론이 이르렀는지 국민에게 소상히 밝혀야 합니다.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처방과 대책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통치란 민주주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을 지배나 통치의 대상으로 보거나, 작금의 상황이 국법이 정지되는 ‘예외상태’에 준하지 않는 이상, 대통령과 청와대는 WHO를 비롯해 국내외의 요구를 거부한 채 명단 공개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 명확한 근거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P.S. 오늘 박근혜가 '메르스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주재했는데, 이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가 없어 메르스 화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하기 위한 사전포석일 수도 있습니다. 청와대가 온갖 부적격 요소가 넘쳐나는 황교안을 인사청문회에서 떨어뜨리지 말고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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