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밝혔듯이, 그리스 채권단(의 목표는 지리자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채권단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거대금융 산업의 이익과 부의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통 좌파인 지리자 정부를 전 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급진좌파 정권인 시리자 정부는 이른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와 IMF, ECB(유럽중앙은행)로 구성된 ‘트로이카’의 압박을 거부한 채 60%에 이르는 청년실업자를 비롯해 중하위층을 위한 복지와 연금을 줄이는 긴축재정에 반대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좌파 특유의 정책을 펼쳤다.
노별경제학상 수상자이며, IMF 수석부총재였던 스티글리츠뿐만 아니라, 우파 성향의 IMF 수석경제위원이었던 라구암 라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르구먼 교수 등을 비롯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런 IMF의 폭거를 비판했고, IMF 또한 한국 등에서의 잘못을 인정하며 조직을 개편하는 등 변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미국과 유럽의 진보 성향의 언론들이 폭로한 것처럼 지금껏 그리스에 지불된 구제금융이 그리스의 부활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단 10%만 사용됐다), 그리스 채권을 다량 소유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채권자(민간은행)들의 부실을 털어주기 위해서 사용됐다(무려 90%가 사용됐다. IMF의 수석부총재였던 스티글리츠에 의하면 IMF는 늘 그랬다).
0.1% 슈퍼클래스의 용병인 IMF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이번에도 IMF는 현 유로존 체제를 유지하고 싶은 지도자들의 지원 하에 그리스를 독일과 프랑스 등의 금융산업과 유로존 강국들의 경제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최대 걸림돌인 시리자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맹공을 펼치고 있다. IMF 뒤에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월가와 런던의 각종 헤지펀드가 자리하고 있음은 불변의 사실이다.
아르헨티나가 IMF의 가혹한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국가부도를 선언한 뒤 (대규모 부채탕감을 받아냈고) 경제위기에서 벗어났고, IMF의 구제금융을 거부한 인도네시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섰듯이, 그리스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투표를 통해 ‘트로이카’의 요구를 거부하고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스가 현 상태의 유로존에 머문 채 IMF가 주도하는 ‘트로이카’의 가혹한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면 영원히 경제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를 선언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경유착의 극심한 부패(골드만삭스와 우파 정부가 분식회계를 자행해 국민에게 피해를 떠넘겼고, 상위 5%는 국부의 50% 정도를 외국으로 빼돌렸다)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서는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를 위한 유로존의 불완전성은 제2, 제3의 그리스를 양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리자 정부의 모험이 성공을 거두면, 유로존을 탈퇴하는 국가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독일(과 프랑스)의 이익독점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메르켈 총리가 강경한 입장을 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울리히 벡의 《경제위기의 정치학》을 참조하라).
그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불완전한 유로존에 가입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는 회원국들이 도미노 탈퇴가 이어져 유로존의 축소나 해체되는 것이다. 미국의 독주체제가 무너진 현재, 유로존 유지가 유럽의 부흥을 이끌 필수적 요인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성이 무시 못 할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독일과 프랑스가 그 동안 독점해온 이익의 일부를 무상으로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스의 탈퇴는 유로존을 주도해온 0.1%의 금권정치에 종말을 고하는 계기가 될 터, 대규모 탕감이나 해외로 유출된 국부의 동결 등 일정한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리스를 포기하더라도 다음 번 탈퇴국을 막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등을 만족시킬 방법은 극히 희박하다.
세 번째는 독일과 프랑스, 극소수의 유럽통합론 리더들에게만 유리한 불완전하고 불평등한 유로존의 통합을 끝내고, 보다 평등하고 공존이 가능한 통합으로 두세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폭적인 양보와 미국 정부를 압박해 골드만삭스에게 분식회계에 따른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전제돼야 함은 당연한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에 유리한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무조건 세 번째다. 그리스가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금권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선택한다면 유로존 전체가 미국식 신자유주의 불평등체제에서 탈피하는 인류사적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최악의 제조업 위기(환율이 결정적)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리스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스가 지금과 같은 최악의 질곡에서 벗어나고, 상위 0,1%를 위한 전 세계적인 불평등체제를 구축해온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폭주를 막으려면 전통 좌파적 가치와 그의 실현이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미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받고도 여전히 탐욕의 폭주를 멈추지 않는 월가와 런던의 금융업계를 길들이는 방법도 그것밖에 없다.
그리스의 선택은 IMF 외환위기를 빌미로 한국에 강제이식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끝낼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미 그리스 디폴트를 대비한 리스크관리를 마친 상태라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도 금융권에서만 돌고 도는 거대한 유동성이 소비의 주체인 서민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리스가 독자 갱생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잠시 동안의 침체를 극복한 후 경제위기를 돌파해낸다면, 극도의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퇴행을 양산하고 있는 위험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적 퇴행에 종지부를 찍고,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또한 70년에 걸친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평화통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P.S.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지난 40년 동안 극도의 불평등과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힌 신자유주의 체제를 그대로 따라야 할 이유란 없다. 유일 제국이었던 미국과 선진국의 집단인 유럽마저도 지독한 경제위기에 빠졌다면, 더 이상 어떤 증거를 제시해야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인정할 것인가? 우리는 벌써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잊어버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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