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에는 휴식처란 있을 수 없고 환희의 배당도 지불되지 않는다.


                                                              ㅡ 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 중에서




어쩌면 나는 깨어나지 않는 잠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작용이 죽음과 같아서, 영원히 빛과 어둠 사이 갇힌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설명하고 그것과 투쟁하는, 숱한 몽상가들이 꿈꿨던 그 지겨운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이성의 힘을 믿었기에 물질의 과잉 속에서도 투명한 질서와 자율이 있으리라 믿었다. 탐욕의 자본주의 하에서 이성의 가치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는 고투를 마다할 수 없었지만, 그 끝에는 관대한 희망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로렌스가 그러했듯 밤에 꿔야 했던 꿈을 낮에 꿨는지도 모른다. 밤에 꾸는 꿈은 아침에 일어나면 초라해지지만 낮에 꾸는 꿈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 마련이며, 언제든 폭력적으로 돌변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휴식처란 있을 수 없고, 어떤 환희의 배당도 지불되지 않는다. 정신은 감각의 부속물이며 감각이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어내고 정신이 일보 전진할 때마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보다 먼 모험, 보다 깊은 고난, 보다 심한 고통으로 빠져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로렌스만큼 치열하게 투쟁하지 못한 나는, 이성이 행동을 지배하고 영혼이 육신을 고양하는 어설픈 지성의 테두리에서 서성거렸다. 세상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용기가 부족했기에 나는 움직이기 전에 결정하지 못했다. 문제는 늘 거기서 발생했다.



로렌스의 경험처럼, 나의 시작도 어느 수정처럼 맑은 오월의 아침(아니 오후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에 일어났다. 지난밤의 폭우가 만들어낸 세상 첫날 같은 햇빛에 눈을 떴지만, 밤새 퍼 마신 술 때문에 이성은 숙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불 속을 뒹굴고 있었다. 육체는 아직 정신에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질서정연한 사고가 배제된 그 순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딪쳐왔다. 



만개한 오감은 만물의 속삭임, 색체와 향기, 숨결과 미세한 떨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알코올의 찌꺼기와 잠의 잔재, 정신의 부재가 만들어낸 현실과 비현실이 어디쯤. 그것은 인위적 해석과 성향이 배제된 본질의 세계였다. 거기에는 너무나 허술한 창조의 말도, 숱한 우연으로 가득 찬 거대한 섭리와 일관된 진화의 논리가 수십 억 년에 이르는 거대한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작용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세조정에 슬쩍 끼어든 ‘눈먼 시계공’의 간섭도 필요하지 않았다. 



만물은 아름답거나 초라하고 복잡하거나 단순했다. 날것 그대로의 세상에선 모든 것이 투명해 어떤 꾸밈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관성의 법칙도, 거대한 거리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힘도, 나노 같은 극소의 공간에서 작동하는 양자역학의 에너지도, 질량불변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물리학 법칙마저도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시공을 뛰어넘어 내가 로렌스의 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아니면 로렌스가 내 몽상적 경험에 빙의됐거나, 그 꿀맛 같은 몇 분(아니 몇 십 분, 몇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듭 말하지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이나 본질의 차원을 얘기할 때는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 거짓말처럼 흘러갔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투명한 질서만이 혼돈처럼 자유로운 곳.



재영은 로렌스적 경험이 현실의 옷자락에 닿는 순간, 칼끝이 살을 파고드는 벼락같은 통증을 느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위장이 쥐어짜듯 비틀어졌다. 역한 취기가 통증을 앞세워 맹렬하게 신경을 파고들었다. 그 위세에 눌려 만개한 오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였지만 고통마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으윽.”



지독한 갈증과 함께 위액이 역류할 듯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재영은 손을 뻗어 머리맡을 마구 뒤졌다. 가까스로 주전자가 손에 잡히자마자 재영은 입으로 가져와 있는 대로 쏟아 부었다. 미지근한 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위장에 닿는 순간 묵직한 통증이 엄습했지만, 재영은 미간과 이마를 찌푸린 채 꾸역꾸역 물을 밀어 넣었다.



“꺼억.”



고개만 쳐든 채 급하게 마신 물 때문에 트림이 터져 나왔다. 어지간한 통증은 수장시켰지만 그 바람에 토할 것처럼 위장이 출렁거렸다. 재영은 힘겹게 몸을 뒤집어 물의 역류를 막았다. 도대체가 인간이란 과거의 고된 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족속이다!



“끅.”



재영은 다시 한 번 트림을 한 후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봤다.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억 속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두 눈에 어지러웠다. 다시 위장이 울렁거렸다.



‘제기랄!’



재영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간 위장의 상태를 다스렸다. 몇 가지 생각들이 뒤죽박죽 머리를 스쳤지만, 아직도 뚜렷한 잠의 잔재가 의식을 끌어내렸다. 재영은 물을 빨아들이는 마분지처럼 온몸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의식을 차단하는 스위치가 꺼지고, 잠을 불러오는 스위치가 켜졌다. 태고 이래로 반복돼온 빛과 어둠의 공전처럼, 두 개의 상태가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재영은 혼신을 다해 잠의 입구에 감각과 정신을 풀어놓았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생각을 버리면 오감이 깨어나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열리리라. 생명으로 충만한 그곳에서는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내가 벌이는 이 지루한 고투는 냇물을 거쳐 작은 강에라도 이를 수 있을까? 바다는 거대한 수면에 때 없는 파문을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자신의 품을 내어주려 할 것인가?



재영은 꿈꿨다, 손을 뻗으면 잡히는 주전자처럼 질서가 감각처럼 살아 있는 세상을. 생명의 회로에는 어떤 결함도 없기에 들여다보지 못할 실체도 파헤쳐야 할 이면의 진실도 없는 세상을. 만물의 소리와 숨결, 색체와 향기가 내는 것들이 일체의 사고가 배제된 오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한 세상을 꿈꿨다. 질서가 혼돈처럼 떠다니는, 어떤 여과장치도 정형화된 논리와 이념의 창도 필요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그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세상을 향해 고뇌하고 투쟁하며 연대를 꿈꿨다.



하지만 진실은 항상 의식이 튀어나와 불굴의 노력으로 물질과 직관의 결과를 뒤집는 데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실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끊임없는 노력이, 끝없이 필요했다. 재영은 늘 거기서 멈칫거렸다. 이면에 자리한 채, 배후에서 작용하는 거대한 힘은 늘 그쯤에서 멈추라 경고했고 회유했으며 때로는 자신을 무자비하게 찍어 눌렀다. 재영은 그 압도적이며 일방적인 힘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 증명하듯, 모든 권력은 시스템에서 나온다. 그것은 지적생명체인 인류 탄생의 순간부터 구축되어 온 것이다. 그 압도적이며 가공할 실체 앞에서 한 명에 불과한 개인이 머뭇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순수한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매개체도 필요 없는, 어느 수정처럼 맑은 오월의 아침에 경험했던 그 몇 분의 무작위적인 빙의처럼.



재영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경험의 순수함 때문에 탄식했지만, 시대의 예언자와 몽상가들은 언제나 실제적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막에 들어가 육체를 핍박하고 물질을 멀리한 채 명상에 잠길 수 있었으나, 세상에 나와 온몸으로 부딪치는 행위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다. 이성을 차갑게 유지했음에도, 명상과 고뇌의 양이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다 해도, 예언자가 본 것은 극도로 고양된 감정과 각성된 정신이 만들어낸 자기 체험적 영혼의 울림이었을 뿐이다. 그것은 신비한 천상의 경험으로 채색됐지만 시대를 바꿀 전능한 말도 거룩한 질서가 구축되는 그 어떤 역사의 현장도 증거하거나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성찰의 순간에 들었던 천상의 말에 압도돼 삶과 죽음과, 관계와 사랑의 본질에서도 벗어나 그들만의 언어와 성역에 머물렀다. 예언자는 지상의 가난과 천국의 보상만을 떠들고, 몽상가는 반복되는 이상의 혼란과 찬란한 패배의 기억만을 부추길 뿐이었다. 그들은 모호하게 말할 뿐, 실제적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오직 스스로 구축한 그들의 성서와 성전에서만 머물러 절대 다수의 희생과 복종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뿐, 의도된 분노와 탐욕에 의거한 ‘사탄의 맷돌’식 일탈을 조장했다.



신이 인간의 삶에서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이제 예언자와 몽상가는 지상에서의 완전한 퇴장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들을 모조리 경계의 변방으로 영구 추방시키거나, 아무튼 그들의 기억을 역사에서 삭제해서라도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완벽히 처단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화신인 ‘자기조정 시장’과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독재를 꿈꿨던 마르크스의 몰락처럼, 그들의 퇴장은 ‘속도의 파시즘’적인 진보의 역사에서 절대 다수의 희생과 죽음을 선동했던 얼치기 합리주의와 어설픈 휴머니즘의 패배로 기록돼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와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거대 언론, 지배를 꿈꾸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재영은 거대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분명 꿈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생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재영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둠은 다가갈수록 멀어졌고, 물러설수록 다가왔다. 감각과 이성은 초라한 방에 갇혀버린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희망이란 구석진 천장에 늘어져 있는 거미줄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세월의 무게 같아서 몇 점의 먼지에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일체의 사고가 배제된 오감은 물먹은 마분지처럼 아예 작동하지도 돌아오지도 않았다. 감각이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란 이성의 체계에 갇혀 이미 죽어버린 경험으로 물컹물컹 흐느적거리거나 널브러져 있었다. 인류 대부분의 삶이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향한 무차별의 고투는 이렇게 이름 모를 공동묘지에 수장되거나 아무렇게나 매장돼 버렸다. 투명한 진실과 그 끝에 서 있는 초라한 희망, 재영이 붙들 수 있는 것은 그런 주변적 요소의 허탈함이 거의 전부였다.



그래, 언제나 희망이 문제였다. 희망은 늘 존재했고 단 1퍼센트만으로도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1%의 가능성에라도 움직여야 한다면, 우리가 실패할 압도적인 확률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99%라는 일방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우리는 누가 지켜줄 것인가? 1%의 독점은 99%의 희망에서 작동할 뿐, 희생의 대가가 무엇인지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지금부터 또 얼마나 많은 고투를 벌여야 우리는 99%의 희망이란 자인한 고통과 좌절, 일방적인 희생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재영은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너무나 힘들고 두려웠다.



신이란 또 무엇인가? 격랑 치는 파도 속에서 신에게 기도한 소수만이 빠져 죽지 않았다면 기도하고도 물에 빠져 죽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왜 성공한 종교들이란 이 세계에서 번창하는 세력들에게만 그렇게도 관대한 것일까? 가난과 핍박, 차별에 대한 보상을 다음 세상에서 받으라 하면서 기득권 세력에 유리한 말만 되풀이 하는 저의란 무엇인가? 끝 날에 믿는 모든 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천국에 이끌려 올려 진다면, 신의 법정에 어떤 세속의 부자를 세울 것이며 어떤 세속의 가난한 자에게 보상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정의란 어디에 있으며 언제까지 원죄 없는 구원을 좇아야 이 질곡의 땅에서 평화로이 잠들 수 있단 말인가? 재영은 지독히 상업화하고 근본주의자들이 판치는 종교와 아직 제대로 된 공통의 준칙도 없는 사회와의 접촉이 두려웠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이, 종교와 사회의 만남은 그 무엇으로도 말릴 수 없는 지극히 휘발성 높고 마녀사냥적인 비방과 폭력이 난무하는 반인륜적이며 비이성적인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대 언론, 지배를 꿈꾸다>



점차 생각의 양이 늘어나자 재영은 슬슬 잠에서 빠져 나왔다. 대부분의 숙취는 가셨지만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12평 원룸에는 지독한 정적과 어둠만이 무성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재영은 더듬더듬 기어가 책상 위에 놓아둔 노트북 전원을 눌렀다. 독점적 권리를 나타내는 특유의 멜로디가 흐른 후, 태초 이래로 그 견고함을 유지해온 어둠이 디지털 전사의 빛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어둠이 사력을 다해 반격했지만, 얼마 안 가서 둘은 알맞은 선에서 싱겁게 타협해버렸다. 잠시 동안 빛과 어둠이 치열하게 다투는 잔재로 흔들리는 회색지대의 경계선을 말없이 응시하던 재영은 손깍지를 한 상태에서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으며 무슨 오래된 응어리를 토하듯 하품을 내뱉었다. 아직도 숙취의 나른함이 남아 있던 세포 하나하나에 서서히 산소가 공급되더니 잃었던 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천추 2015.06.03 08:31 신고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시작하세요 ^^

  2. 참교육 2015.06.03 09:13 신고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데...
    잘 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6.03 13:28 신고

      그냥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직 완성되지도 탈고도 안한 소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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