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영워드

우영워드 ㅡ 성수와 재영의 대화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자네도 그런 처지인가? 이거 동병상련의 동지네? 그렇다면 조금이 아니라 자세히 말해줘야겠네? 앞서 자네가 말했듯이, 세계적 차원의 금융위기를 넘기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돈을 뿌려댔지만 그건 실물위기로의 전위를 조금 늦췄을 뿐이야. 금융위기로 증발한 수십 조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인류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하위층의 지갑을 털어서 만회하는 자본주의 특유의 방식과 어차피 강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철석같이 달라붙어 저항하고 있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후유증이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이라는 걸 입증해주고 있어. 게다가 WTO와 IMF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3대 첨병 중 하나인 세계은행 총재의 고백처럼 이 위기가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어.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해 기축통화의 자리에 오른다는 건 아직 시기상조고 유럽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에 너무 집착해 특유의 탄력성을 잃은 상태라 유로가 기축통화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는 상황이니 어쩌면 이건 대공황보다 더한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어. 물론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디폴트 위기까지 몰렸던 미국,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유로존의 재정위기, 원전사고와 엔고 현상도 부족해 ‘리틀 재팬’이라 불릴 정도로 수십 년 간 대규모 투자를 한 태국이 침수되는 바람에 주력 생산기지가 파괴된 것까지 도무지 끝을 모르는 일본의 추락, 예상보다 더딘 브릭스 국가(브라질, 인도, 러시아, 중국)의 성장, 경제가 경착륙 할 가능성이 높아진 중국, 중국을 대신할 베트남의 한계, 대체 시장으로써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더딘 성장세, 아랍의 정치 불안 등이 거기에 한 몫 했겠군요?”



재영이 성수의 의견에 처음으로 동의를 표했다. 이제 더 이상 성수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런 재영을 보면 성수가 좀 더 강한 톤으로 말을 이었다.



“암,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지. 그중에서도 중동의 민주화 투쟁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봐.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인류사적으로 보면 프랑스 대혁명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세대 간 전쟁도 격화될 것이고 고령사회라는 인류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시기에도 곧 도달해. 그래서 앞으로의 10~20년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자 대전환의 시기라는 게 나와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야.”



“저도 아랍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재스민 혁명은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도 남을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겁니다. 그렇게 돼야만 하구요. 작게는 메이저 석유회사와 그들과 결탁한 내부의 독재세력, 반묘와 반서구를 외치며 온갖 테러를 일삼는 근본주의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성전이 시작된 것이고 크게는 아랍식 민주주의의 확대와 ‘피의 석유’에서 인류가 해방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재영은 열띤 음성으로 화답했다. 사실 T.E.로렌스를 가장 흠모하고 인생의 롤 모델로 삼은 재영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랍의 독립을 이끌었던(영국의 정보국 소속이었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다는 상반된 평가도 있음) 로렌스처럼 치열하게 사는 것이 삶의 일차적 목표였으니, 재스민 혁명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던 성수가 미소를 띠며 재영의 화답에 다시 화답했다.



“내 생각도 자네와 같아. 아랍의 민주화 운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유발한 변화 중 몇 안 되는 바람직한 결과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네. 그런 면에서 보면 금융위기의 주범인 미국의 몰락은 당연하면서도, 대규모 생산과 가격파괴의 소비경제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기도 해. 세계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간 미국의 경제 회복이 대공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상수이기 때문이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남용해 흥청망청 빚잔치를 벌였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당연한 데도 말입니다? 한 번 구축된 기득권이 얼마나 강고한 것인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 미국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란.. 아, 내가 말을 말아야지.”



“현존하는 유일한 제국으로써의 프리미엄이지.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 제국의 위치에선 내려서지 않겠지만 ‘유일한’ 과 ‘기축통화국’이라는 절대적 기득권은 반납할 수밖에 없을 거야. 디즈니랜드(미국은 미국 자체가 디즈니랜드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디즈니랜드가 있다고 한다)와 허리우드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세계적 영향력의 젖줄이자 돈줄인 대학의 교육 제도, 악의 근원인 군산복합체마저 무너지면 그땐 껍데기만 남겠지. 물론 토크빌의 지적처럼,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천혜의 땅은 영원한 자산으로 남아 변함없는 미국적 가치의 대명사로 남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절망적인 미국의 상황에 유럽의 재정파탄, 일본의 원전사고의 후유증까지 더하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을 넘어 자본주의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가지고 있어. 물론 그 효율성에 있어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경제구조가 없기 때문에 몰락까지야 가지 않겠지만, 소수에 독점될 수밖에 없는 자유방임적 시장과 초국적 자본 위주의 정치경제적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처방과 수술이 없다면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미증유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 있어.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변종들인 레닌과 스탈린이나, 노르웨이 테러범인 브레이비크처럼 히틀러의 추종자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다시 활개 치도록 방관할 수야 없지 않겠나? 어떻게든 막아내야지.”



성수가 분명한 이념적 지향점과 미래의 목표를 드러내는 의견을 표출했다. 재영은 ‘마르크스의 변종들과 히틀러의 추종자들’이란 그의 말에 크게 동감하면서도 그것이 정치경제적 전체주의(착취의 파시즘)에 대한 반대를 의미한다고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다면 성수는 다시 형의 힌트에 적합한 인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재영은 문득 형의 계획에 대해 성수에게 말하는 것을 조금 연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이 처한 국가 재정 파탄과 여전히 탐욕적인 금융시스템, 탐욕적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 신설과 부유세 강화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 전 지구적 차원의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 변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으로 풀린 돈이 초래하고 있는 만성적 물가상승,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겠네요.”



재영은 일단 성수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이는 성수의 생각을 좀 더 깊은 곳에서 끌어내기 위해서였는데 성수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에 응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재영은 무의식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의심의 싹을 찍어 누르지 못했다.



“그것만이 아닐세. 국경을 넘는 자본 이동에 세금을 물리자는 토빈의 주장처럼, 초국적 자본의 무차별적인 이동을 제어하지 않으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네.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녔던 19세기가 인간의 이성을 풍요롭게 한 세기였다면, 20세기는 그 위대한 사유의 산물로써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류의 물질적 풍요를 이룩한 세기라고 할 수 있어. 국가와 거대 자본의 지원이 그들에게 유리한 연구물을 내놓기에 급급했던 얼치기 경제학이라고 해도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특히 구소련이 몰락한 이후, 고삐 풀린 자본이 과학과 기술과 정치와 뒤엉켜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에 내재된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무시해도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나? 물론 그 중심에는 자연의 선물이자 물보다 싼 석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재영은 위기상황에 대해 말하던 중, 뜬금없게도 20세기가 석유를 중심으로 한 성장의 시기였다고 단정한 성수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의 방향을 틀어버린 이외의 가설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야 상당히 증폭됐지만, 도무지 맥락이 이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 바람에 무의식에서 빠져 나오던 의심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짧은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재영은 20세기를 ‘혁명으로 시작해 사건으로 끝난 세기이며 쓰레기의 세기로 불릴 것’이라고 말한 로제 마르땡 뒤 가르의 정치적 정의와 너무나 다른 성수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동방국의 일개 소장파 경제학자가 내린 의견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의 논리가 지나칠 정도로 비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되는 것이 있기는 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가 자연이 준 자원인 석유에서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 진정한 창조이자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한 것처럼 말입니까?”



“빙고! 단언하지만, 석유가 없었다면 20세기의 성장은 불가능했네. 물론 다른 것들도 있지만 석유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없어. 지금은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지만, 인류를 가난이란 족쇄로부터 해방시켜 풍요를 가져다 준 화학의 공헌까지 부정할 순 없지. 물론 풍요를 이루기 위해 아랍과 아프리카 등의 산유국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해온 물보다 값싼 석유라는 저가의 가격정책이 전제됐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네. 하지만 신이나 자연이 아닌 인간이 발전시킨 화학의 힘이 없었다면 석유에서 추출한 마법 같은 소재, 플라스틱도 없었을 테고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네. 또한 앞으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플라스틱을 태우는 것 이외에는 경제성이 있는 게 당분간 나오기는 힘들 것이네. 물론 그것이 인류에게는 일종의 딜레마나 아이러니일 수밖에는 없겠지만 말일세.”



성수의 말은 거의 플라스틱을 창조해낸 화학 찬양론자 수준의 주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건 일개 경제학자가 무 자르듯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그런 단순한 화학방정식도 획기적인 에너지 해결책도 아니었다. 재영은 뜬금없을 정도로 일방적인 성수의 주장에 뭔가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고 긍정하기에는 자신의 지식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풍요의 대가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 풍요라는 것도 골고루 나눠진 것도 아니고. 계산도 불가능한 환경오염의 폐해는 석유에서 대부분의 이익을 독점한 거대 자본이 아닌, 모든 인류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재영은 처음으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성수의 주장에 강하게 부정했다.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석유가 제공한 값 싸고 마법 같은 제품들이 없다면 단 하루의 생활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그것이 초래한 폐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풍요의 과실이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인류 전체의 발전까지 부정할 수야 없지 않겠어? 난 부의 재분배와 복지의 확장은 정치와 경제가 풀어낼 과제이지 석유의 용도를 발전시킨 화학의 잘못은 아니라고 봐. 사용 후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술(케미컬 리커버리라고 함)도 이미 왜국이 개발해 놓은 상태고 유럽에선 비중 1.0(플라스틱의 분자결합력을 약화시켜 분해할 수 있는 기준 밀도. 플라스틱을 사용 금지와 사용 자제, 사용 가능으로 나눠 리사이클링이 가능하도록 유도하거나 강제하고 있음) 이상의 플라스틱 소재에 대한 사용 금지(에너지 리커버리라고 함)를 ISO 규정으로 추진 중이야. 석유가 리터 당 100달러가 넘으면 경제성도 갖게 돼. 물론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기존의 환경오염을 줄이거나 더 이상의 오염을 막을 수도 있는 기술들은 이미 개발돼 있어. 이런 것들로 해서 나는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기업, 특히 제조업의 잘못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봐. 물론 제조업체의 책임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과학과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야. 거대한 힘일수록 책임도 커지는 법이지만 과거로 돌아가거나 현상 유지에 매달려서는 인간의 능력과 풍요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계하는 거라면, 지나친 것일까? 어쩌면 자네가 기득권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기성 종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도 같은 논리가 아니겠나?”



“교수님, 논리적 비약이 심한 것 아닙니까? 저도 플라스틱이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것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술적 발전과 재활용이라는 대체 에너지적 가능성에도 긍정적인 편이구요. 하지만 교수님 논리대로라면 핵무기와 핵 발전도, 수많은 인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모든 전쟁도 인류 발전에 공헌했으니 그 모두에게 면죄부를 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 과학과 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파괴적 속성과 자가증식적 경향을 띤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류를 빈곤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대부분의 테크놀로지가 인류를 보다 수월하게 통제하고 이제는 인류 전체를 멸종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걸 지구 자체가 입증하고 있는데 그런 결과를 초래한 과학과 기술을 상업적 목적과 통제의 도구로 가장 많이 차용한 대기업의 책임이 그리 크지 않다니요? 특히 금융과 에너지, 유통 및 매스 미디어 관련 초국적기업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육식을 즐기고 온갖 기술적 편리에 매몰돼 매일같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자신이 소비와 향락의 노예로 전락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개개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이익만 챙겼을 뿐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초국적기업까지 무죄방면해줄 수야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교수님?”



재영이 다방면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성수의 말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성수의 시각이 자신이 뒤엎고 싶은 제도권 시각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형의 힌트에 정말로 적임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격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과 에너지 분야 초국적기업의 잘못에 대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네. 자네의 말처럼 모든 테크놀로지 또한 자신의 적용 분야를 최대한 확장하려는 내재적 성향을 갖고 있기도 해. 그래서 내적 동력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지. 좀처럼 사라지지도 않고. 핵에 관련된 기술처럼, 일부는 확장의 결과가 지나치게 파괴적인 경우도 있지. 하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가치가 이미 성과를 이룬 과거의 결과물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 가우스의 종형곡선에 수렴하는 결과를 만들지도 않지만 누구도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잠재적 성향까지 매도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리고 자네가 지적한 논리적 비약은 시공간을 한꺼번에 뛰어넘고자 할 때 주로 발생하는 것이지 내 말처럼 현재에 두 다리를 굳건히 하는 경우에는 비약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어? 양자역학이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우리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성과를 부정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일 테고. 고전물리학과 양자역학이 서로 협력해 이룬 성과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수명 연장을 이룬 의학기술과 인간의 활동반경을 넓혀준 자동차와 철도, 비행기는 물론 인류의 지식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컴퓨터를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화학과 물리학의 총화인 플라스틱까지 비판한다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네. 피해가 예상된다고 발전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류 진보의 역사이자 이치라면, 누군가 도전해야만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지 않겠나?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인류에게 남겼지만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세기를 그 정도의 허물만 탓하며 시간의 저편으로 놓아준다고 해서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안 그런가?”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 성수가 재영의 반박에 물러서지 않았다. 뭔가 작심한 것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그가 아니다. 게다가 금융위기를 얘기하다 갑자기 석유로 주제를 바꾼 것은 분명 어떤 의미도 없으면 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었다. 질서정연한 사고를 중요시하는 성수가 결코 이런 럭비공 식의 논리를 전개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재영은 성수가 한 말들을 빠르게 되돌려봤다. 어렵지 않게 하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재영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성수에게 물었다.



“그럼, 압축성장을 이룬다는 명목 하에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대규모 댐과 원전 건설 같은 SOC 사업을 통해 배를 불린 권위주의적 토건세력(왜국의 자민당과 관료 같은 사이비 케인지언 - 토건업자와 직업관료 - 들이 주를 이룬다)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합니까?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했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또 다시 희생을 강요했던 우리네 역사의 20세기를 마냥 놓아주자는 말은 아니겠지요?”



“당연히 그건 아니네. 이익을 독점하고 자원을 소비하기만 한 토건세력과 관련 이익집단까지 면죄부를 줄 수야 없지. 일부에게만 이익이 집중되는 발전은 너무 많은 희생과 끝없는 혼란을 야기하니까. 토건세력이 주도하는 경제가 위기의 또 다른 진원지라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아니, 그건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잔인한 범죄야!”



성수가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단어로 끝을 맺었다. 재영은 그 제서야 성수가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성수가 한 말을 피드백 해보면 한 개의 단어가 일관되게 자리했다. ‘20세기’가 바로 그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성장과 풍요의 과정으로 작용했던 20세기는 놓아주자는 뜻이었다. 그래야 미래의 혼란과 차별을 진정으로 바로잡을 수 있기에. 그렇다면 21세기의 그 무엇, 플라스틱이라는 만능의 제품을 창조해낸 물보다 싼 석유와 비견될 만큼 경제적으로 중요성을 갖는 것, 21세기를 인류 공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시기로 재구성해나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그것들 중에 성수가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터였다. 물론 그와 정반대일 수도 있다. 21세기를 인류가 진정으로 발전한 세기로 만들어줄 그 무엇을 가로막고 있는 어떤 다른 것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수가 직업이 기자인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탐욕의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이익을 창출해줄 먹이로 결정한 디지털 세계의 패권주의나, 신방 겸용과 소유권 집중을 통해 몸집을 불리며 철저히 상업화의 길을 가고 있는 매스 미디어에 관한 것이리라. 만약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성수가 형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제3의 동반자에 적합한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영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성수에게 물었다.



“20세기에 대한 얘기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대체 제게 말하고 싶은 게 뭡니까?”



재영이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성수에게 물었다. 둘이 대화할 때 어떤 의문이라도 생기면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라면 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은 자신과 성수 같은 부류에겐 최악의 행위였다. 재영은 성수의 입술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까, 뚫어져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