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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공간

영속하는 궁극의 지능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현대의 양자역학은 크게 볼 때 이론을 세운 후 이를 증명하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기본입자들이 무수히 발견되고 스핀처럼 양자역학적 운동 때문에 같은 기본입자라도 하는 역할이나 존재 방식 등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뉘면서 현대물리학은 매우 복잡한 학문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론(이론물리학)을 세우고 증명하는 일(실험물리학)을 한 명의 물리학자가 할 수 없게 됐습니다(아인슈타인이 대표적으로 그는 철저하게 이론에만 집중했고, 이 때문에 상대성이론은 물론 중력파의 존재까지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막노동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관측과 실험을 통한 증명은 실험물리학자들의 몫이었고요).  





이론을 먼저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것이 뇌과학으로 넘어가면 인공지능의 기하급수적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뇌의 역분석이 됩니다. 잘 조직된 실험에 의해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뇌의 특정 영역들(운동은 소뇌, 기억은 해마 등 핵심 영역이 존재)에서는 이에 상응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정밀한 고해상도 스캐닝으로 이런 변화를 관찰하면 카오스적(무작위적)이고 자기조직적이고 프랙털적인 형태로 새로운 신경망이 구축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수백조 개에 이르는 개재뉴런으로 구축된 수백만 개의 네트워크가 동원돼 뇌 전체에서 가장 적정한 변화(신경세포가 보낸 자극을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것)를 이끌어냅니다. 이렇게 뉴런과 시냅스, 개재뉴런이 동원된 최적의 경로가 찾아지면(기억으로 저장되면) 허용된 한도 내에서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쓸모없는 경로들(시냅스 작용에 의해 연결된 뉴런들)은 모두 다 퇴화된 후 다른 용도의 경로 구축(기억)에 동원됩니다. 



특정 기억이 흐려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최적의 경로에 있는 일부 또는 전부의 경로가 퇴화돼 다른 기억의 저장에 이용된 것을 말합니다. 단 기억은 개재뉴런으로 구축된 수백만 개의 네트워크 곳곳에 분산되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분적인 기억만 남는 것도 이 때문이며, 역으로 퇴화된 경로가 다시 구축돼 기억이 완전히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장기기억)이라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아무튼 뉴런과 시냅스, 개재뉴런 등이 만들어낸 최적의 경로는 뇌스캐닝 결과를 보면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 즉 기억, 감정, 인식, 의식, 사유 같은 지적 활동(지능)은 그에 상응하는 패턴의 형태를 띱니다. 1980년 초반에 인공지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AI의 겨울)했던 것도 뇌의 역분석이라는 것을 거의 할 수 없었고 패턴 인식에 관한 획기적 이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뇌스캐닝 기계처럼 뇌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 없었고 복잡계나 카오스, 프랙털 이론 등도 없었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패턴! 이것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이 투자된 것이고, 그 덕분에 진화의 모든 과정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자, 인류 과학기술의 원천인 인간의 뇌를 복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전유물인 고도의 지능 때문에 창조론을 적용하던, 진화론을 적용하던 인공지능(기계 지능)의 출현은 필연이었습니다. 인간의 최종목적이 신이 되거나 근접한 존재가 되는 것이기에 인간 지능을 넘어선 기계 지능의 탄생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의 법칙에 따라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능가할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기계 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나 학자들은 현재까지 이루어진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공통점을 보이는데, 이는 인간중심적 발상에서 나온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어차피 기술은 발전할 것이고,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진행중이어서 15~2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중심적 사고라는 것도 상당 부분 무너진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만으로도 이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성형수술은 인공물을 신체에 넣는 것이며,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을 비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인공심장이나 신장, 관절, 여러 종류의 삽입물 등을 넣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신체는 생물학적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비생물학적 장기나 삽입물이 늘어나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모호해집니다. 



만약 의식이나 인식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만족스러울 경우) 자신감 상승이나 자기만족적 감정 등에 의해 인식의 차원에서도 이전의 자신과 달라집니다. 건강을 찾은 환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의식이나 감정적인 차원에서 이전의 자신보다 나아진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발전이 아니라고 한다면 애당초 성형수술이나 아픈 장기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이런 예들은 수도없이 많고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생물학적 진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닐까요? 이런 식으로 다수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공존을 긍정적으로 얘기합니다. 이런 식의 사고가 극단에 이르면 뇌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인공지능과 뇌를 연동하거나, 아니면 뇌를 대체하거나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나의 피부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나 사이보그 같은 비생물학적 존재에 나의 뇌를 장착하는 것도 가능할 터이고요. 





제가 극도의 혼란에 빠졌던 것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인간이란 존재를 정의할 수 없었습니다. 창조론이건 진화론이건 인간이란 존재는 신에 가장 근접한 존재이며, 신에 가장 가깝게 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사고하고 명상하는 존재입니다(불교의 경우 득도하면 누구나 신이 된다, 할렐루야!). 이런 인간적 특성은 신과 우주, 자연과 사물, 진화의 법칙에 대해 파고들 수밖에 없으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고도로 발달된 뇌입니다. 



뇌는 지능을 창출하고 지능은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추구합니다. 뇌, 즉 지능의 입장에서 보면 해탈이나 득도에 이르는 것보다 병에 걸리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온갖 제약이 있는 신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입니다. 이것만 영속할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하면 못할 일이 단 하나도 없을 텐데 이놈의 신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과학기술을 끝없이 발전시켜왔고, 이제는 영속할 수 있는 궁극의 지능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영적 존재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영적 존재가 되는 것과 영속할 수 있는 궁극의 지능을 비생물학적 신체의 뇌 속에 담아둔 존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 지능의 산물이 과학기술이고, 그것이 극단에 이르러 영속하는 궁극의 지능을 탄생시키면 그것이 인류가 꿈꾸었던 최종 목표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말해 인간이 꿈꾸는 것이 신에 근접한 영적 존재이거나 영속하는 존재라면 그것이 인간이 창조한 진화하는 기계 지능의 형태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직도 몇 권의 책을 더 읽어야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신의 창조나 진화의 법칙에서 볼 때 중간 과정에 위치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고, 향후 10년 정도(필자가 보기에는 20년)면 기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를 돌파할 것으로 보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온갖 한계로 가득한 신체를 기반으로 하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고의 결과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이 온갖 한계들을 극복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결과인 영속하는 궁극의 지능에 이르는 것이라면 제가 인간으로서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은 마지막 특이점을 넘은 세상을 대비하자고 하지만 대체 무슨 대비책이 있을까요? 우리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지능인데 어찌 상대할 수 있을까요? 궁극의 지능이 출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것이 인간의 신체가 아닌 비생물학적 신체에만 유효하다면 살아있는 동안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이외에 제가 할 일이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그래서 소설을 쓰려고 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부정적 전망이 아닌 긍정적 전망으로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을 바라볼 때 인류가 유토피아에 이르는 길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비록 21세기나 22세기 초반까지만 유효한 것이라고 해도. 그때쯤 되면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의 의식도 엄청나게 변해있을 것이라 지금의 추측들은 모조리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