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현대사

왜 노무현이고, 4대개혁입법이었을까?




아래의 인용문은 플라톤보다 반세기 전의 철학자(소피스트)였던 페리클래스의 추도문이다. 그는 이 추도문에서 초기 민주주의의 원형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아테네 정치철학의 핵심을 제시했다. 실제 아고라로 대표되는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일종이 지배계급인 남성 시민에게만 허용(20세기 초까지 이어졌는데 남녀불평등의 기원이었다)됐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완전한 평등이 보장됐기에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상대에 대한 설득 및 공익에 합당한 합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공자가 말을 빌리자면, 수신제가(자신을 다스리고 가족을 부양하는데 성공한, 경제적 관념이다)에 성공해서 치국평천하(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평안하게 만드는, 정치적 관념이다)에 나선 남성 시민들의 공론장이 아테네의 아고라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상대를 설득하거나, 설득당해서 공적 이익에 합당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형이자 민의의 전당을 의미한다. 페리클래스의 추도문은 이를 가장 잘 담아냈다.    



우리의 정치체계는 다른 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와 경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모방하지 않고, 하나의 표본이 되고자 한다. 우리의 행정은 소수 대신에 다수를 옹호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라 불리는 이유이다법률은 개인들의 사적인 분쟁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정의를 행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탁월한 자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떤 시민이 뛰어나면, 그는 다른 사람에 앞서서 국가에 봉사하도록 요청된다. 그러나 그것은 특권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장점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가난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는 일상적인 생활에까지 확장된다.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지 않으며, 우리의 이웃이 그들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그러나 이러한 자유가 무법적인 상태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행정장관들과 법률을 존중하도록 배우며, 피해 입은 자에 대한 보호를 잊지 않도록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그 강제력이 옳다고 느끼는 보편적 감정에서만 존재하는, 불문율을 준수할 것도 배운다. 우리 국가는 세계에 개방되어 있다. 우리는 결코 외국인을 추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렇지만 언제나 위험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되 환상에 빠지지 않으며, 우리의 지성을 향상시키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지 않는다......자신의 가난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불명예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을 면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은 불명예로 여긴다. 아테네 시민은 개인적인 사업에 몰두할 때에도 공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에 관심이 없는 자들을 무해한 인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인물로 생각한다.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 우리는 논의를 정치적 행위에 대한 장애물로 보지 않고, 현명한 행위를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예방행위로 본다. 우리는 행복은 자유의 열매이고, 자유는 용기의 열매라 믿으며, 전쟁의 위험에 위축되지 않는다.


종합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의 학교이며, 모든 아테네의 개개인은 적절한 재능을 기르고 위기에 대처하며 자립적일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헌데 페리클래스가 플라톤보다 반세기나 앞서 정립했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치철학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부정되고, 그리스에 패한 트로이의 후예들이 세운 로마제국의 정치철학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아테네의 아고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정치철학이 로마에 들어서는 법률(공법학자의 몫이었다)로 대체되고, 제국의 등장으로 이어진 것도 민주적인 정치철학을 죽여버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지대하게 작용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 《정치의 약속》을 보면 이런 아테네의 정치철학이, 플라톤이 제시한 '억제된 국가'의 정치철학에 의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종말을 고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지상의 천국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플라톤(철인왕에 의한 통치)과 아리스토텔레스(비례적 평등 개념이란 차별주의)에서 정치철학과 윤리학, 형이상학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처럼 어떤 유토피아도 전체주의적 성향을 띤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늘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위대한 철학자들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인 프랑스대혁명이 자신들이 일소한 구체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로 끝을 맺은 것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모든 근대 민주주의의 울림을 제공했음에도 유토피아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전체주의의 일종인 공포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혁명가와 공화주의자들이 새 체제의 엘리트가 된 이후에는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는데 반대했고, 좌파를 배제했으며, 구체제의 귀족들을 끌어들여 과두정치로 접어들었다.  





프랑스대혁명을 다룬 저서 중 최고로 평가되는 알렉시스 토크빌의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을 보면 이런 대혁명의 변화를 지켜본 미라보가 구체제의 왕에게 보낸 비밀 편지가 실려 있다. 혁명가와 공화주의자들의 변화는 절대군주의 회귀를 불러왔고, 이런 구체제의 귀환은 1차세계대전에 이어 2차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까지 지속됐다. 미라보의 비밀 편지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세상사란 처음에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기득권의 힘이란 권력의 본질을 이루는 핵심임을 보여준다. 



현재의 상태를 구질서와 비교한다면 안심하고 희망을 찾을 만한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회가 발표한 칙령 대부분은 왕정에 분명히 긍정적입니다. 의히와 시 정부와 강력한 사제단과 특권과 귀족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잘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하나의 시민집단이라고 하는 근대적 발상은 분명 리슐리외를 기쁘게 했을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표면적 평등은 권력의 행사를 용이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왕의 권위를 위해 수 세대 동안 이어져온 절대주의 체제도 하지 못했던 것을 혁명 1년 동안 성취해놓았습니다.       



바로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최근에 들어 진보좌파들이 가장 많이 성찰하는 것이다. 통치라는 것, 이른바 기득권의 힘으로 대체되기 일쑤인 권력의 작용에 대해 21세기의 진보민주진영은 다시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마키아벨리의 추문과는 달리 현대적 의미의 통치술에 천착한 미셀 푸코가 공론의 영역 위로 꺼내올린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딜뢰즈와 가타리, 네그리와 하트가 생명정치/삶권력(민생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생활정치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이런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모든 권위를 해체하는 놀이(자크 데리다의 《문학의 행위》에 자세히 나와 있다)에 열중하는 동안, 공적독점을 밀어낸 사적독점의 새로운 권력들이 일체의 권위가 사라진 진공상태로 변해버린 모든 공간들을 파고들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시장논리가 적용되서는 안 될 교육의 현장에도 기업의 광고와 제품들이 넘쳐나게 됐다. 나이키로 대표되는 이런 방식의 마케팅을 통해 초국적기업들과 거대 금융자본들은 교육과 문화, 전통과 관습까지 파고들 수 있었고,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른바 초국적기업과 거대 자본이 지역 정부와 국제 기구, 급진적 신자유주의자들과 공모해서 진행한 부정적 세계화란 후기구조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이루어진 신좌파가 일체의 권위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니, 그들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할 수 없으리라. 이들은 국가와 권력의 독점과 억압과 착취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사적독점의 세력들로 등장한 세계화 특권그룹의 무한 질주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지배세력들은 일제 강제합병 36년 동안 부를 축적하고 제도권 언론을 수중에 넣은 자들의 후손들이다. 부와 언론이 곧 권력이 세상에서 이들이 만들어낸 담론들이 미국의 제국적 이익과 보수적 시장근본주의(신자유주의)와 어루어지며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도 되는 천민·세습자본주의로 이어졌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으로 있는 한 부정적 세계화의 온갖 폐해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필자가 참여정부의 각종 개혁입법들과 정책 및 미래비전이 새누리당과 족벌언론,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식민지근대화론자와 급진적 신자유주의자 및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의해 좌절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들의 집중포화 앞에서 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그런 상태에서 개혁을 이끌어나갈 국정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의 결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일제 강제합병 36년의 결과가 미국의 오판(특히 미 국무부와 맥아더로 대표되는 국방부)으로 이승만의 집권으로 이어진 이래,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쳐 김영삼으로 이어진 권위주의적이고 수구적인 보수 기득권세력의 집권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정부 10년(특히 참여정부 전반기)밖에 없다. 



산업화의 주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압축성장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같은 기간 동안 유럽의 선진국들도 압축성장과 함께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라는 삼중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압축성장은 대한민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산업화 주역들의 자랑거리도 아니다. 이에 대한 연구들은 '신 비교사 정치경제학'을 통해 유럽의 발전모델로 알려진 자생적 발전과 제3세계의 빈곤을 초래한 종속적 발전이 2차세계대전 전까지는 동일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분명하게 입증됐다.  



따라서 민주정부 10년 동안, 특히 참여정부 5년 동안 진보적 성향의 정부들이 하자고 했지만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고, 이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세상이 변했다 하지만 막상 권력과 자본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실제로 변한 것은 신좌파와 진보적 자유주의의 가치가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것으로 호도된 것 뿐이다.   




실제로 권위적이고 수구적인 보수정권들이 남겨놓은 IMF 환란(6.25전쟁에 버금가는 혼란을 야기했다)을 극복하느라 김대중 정부는 과거청산을 할 수 없었고, 개혁의 역할이 보다 급진적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로 넘어가자 이 땅의 보수 기득권세력들이 총궐기해서 무차별 융단폭격을 가했다. 그 압도적인 화력에 무력화된 것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본질이자 실체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저질러 놓은 수없이 많은 병폐들 중 일부를 국민적 인기가 높은 김대중을 통해 해결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적 차원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정권 탈환을 위해 정면대결을 펼쳤음에도, 바보 노무현이 일으킨 거대한 바람에 패하자 그를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총체적인 반격에 나섰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신문들과 대형교회가 선두에서 보수세력들을 이끌었다. 그들의 융단폭격에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 동력을 상실해 탄핵까지 당했지만, 각종 수치와 통계를 놓고 보면 민주정부 10년, 즉 보수세력들이 그렇게도 국민에게 주입시키고, 세뇌하고, 다시 환기시키곤 했던 '잃어버린 10년'이 대한민국을 제도약시킨 시기였다. 





필자는 페리클래스의 글을 볼 때마다, 이석기를 통해 통진당을 해체하기 위해 현 집권세력이 문제 삼은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한 터무니없는 논쟁의 본질을 떠올리게 된다. 진보적 자유주의란 용어는 유럽의 정치학 서적들을 보면 수시로 등장함에도 이것이 마치 북한의 노선인양 포장하는 종북몰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주의란 사이비 민주주의이자 권위주의의 부활을 뜻할 뿐이다. 



게다가 이석기도 통진당도 현 집권세력이 낙인을 찍은 진보적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진보의 가치(사회경제적 평등에 기반한 자유)가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신념을 지닌 정치인을 말한다. 인권변호사로서,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은 강남좌파와 겹쳐지기 일쑤인, 그래서 온갖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보여줄 수 있는 국정 운영에 담겨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그것 이상의 것이 하나 이상 남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연재를 시작한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의 후반부에서 다루겠지만, 모든 민주주의의 원형을 제공한 페리클래스의 추도문을 떠올릴 때마다 바보 노무현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궁극적으로 꿈꾸었던 세상이 노동생산성이 최고조로 올라 완벽한 평등이 이루어진 '자유의 왕국'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음을 바보 노무현에서 볼 수 있다. 



그가 꿈꿨던 세상은 하부구조(정치와 문화 같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사회적 생산방식을 말한다. 즉, 마르크스는 경제의 형태가 정치와 문화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에 집착했던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그것이 옳고 그름, 한계를 논외로 치더라도), 반칙과 특권으로 돌아가는 권위적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만이 진보적 가치가 밑바탕이 되는 온전한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가치를 폄하하는 자들이 매일같이 얘기하는 민생도 해결될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