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쓸 수 없었고, 쓰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산업혁명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미래를 악착같이 추측하면서 어떤 탈출구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커즈와일의 주장처럼 향후 10년 안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20년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쓰기와 공부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는 세상이 몇십 년도 남지 않았는데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성찰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더더욱 환장할 노릇은 4차산업혁명이 불러올 미래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형편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르크스적 오류ㅡ인간에 대한 이해가 형편없는 것ㅡ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4차산업혁명의 기술적 담론에 매몰돼 미래를 그려보려고 했기 때문에 기능주의적 관점에서의 진화의 법칙만 주구장창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시 말해 그것의 진화에 따라 인간보다 뛰어난 초인공지능의 필연적 등장과 분자조립자 같은 만능의 창조도구가 등장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모든 논리를 펼쳐나갔습니다. 4차산업혁명에 대한 그들의 찬양(또는 본질은 외면한 경계)에는 진화의 법칙을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미래는 있을지언정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에 관한 성찰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진화의 법칙에 따라, 인간이 지구와 우주를 지배할 최종적 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 이를테면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그래서 조물주와 동급의 창조도구(분자조립자, 나노공학의 아버지라 회자되는 드렉슬러의 아이디어로 《창조의 엔진》에 자세히 나와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특정한 성질을 지니는 분자(원소, 탄소 중심의 진화)를 자유자재로 조립해 어떤 물질과 생명체도 만들 수 있다. 커즈와일은 이를 이용해 2040년대에는 허공에서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를 가진 초인공지능(또는 기계지능, 비생물학적 지능)이 진화법칙의 완성물일 수 있다는 주장ㅡ리처드 도킨스가 《눈먼 시계공》에서 주장한 내용ㅡ에 '그렇게 나둘 수 없다'는 인간의 저항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종으로써의 인간이 우월해야 한다는 것에 냉소하는 자들의 주장만 범람할 뿐이었습니다. 



수억에서 수십억 명의 인간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얘기가 너무 쉽게 얘기되고, 0.0…01%에게 부가 독점될 터 나머지 인간에게는 기본소득이 주어질 것이란 희망사항으로 귀결되기 일쑤였습니다.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이상향은 흔적도 찾을 수 없고, 일체의 혁명도 사라진 채 로봇의 생산성과 (초고율의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정부가 작동하고 있다면 가능해질) 기본소득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할 인간만 짧게, 지독하게 짧고 간단하게 언급됐습니다.



레비의 《로봇과의 연예와 섹스》에 이르면 후대의 역사에서 인간이란 종의 희노애락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존재하는 모든 섹스판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인간 중심적 결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상의 세상이나 현실의 세계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이 배척당할 확률이 제로인 '로봇과의 연예와 섹스'는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한 정재승이 '내 딸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로봇과의 결혼을 승낙할 것'이라는 생각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전체 인류의 집단지성보다 수천 수억 배는 뛰어날 초인공지능의 자비로움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분자조립자의 하해와 같은 성은에 이르면 인간 중심의 역사는 종말을 고합니다. 4차산업혁명은 인간이 해왔고 하기를 바라는 모든 일들을 대신하거나 빼앗아갈 터 기본소득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상이 아니면 무엇일 수 있겠습니까? 4차산업혁명이 말하는 단 하나의 목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이란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니 당연한 결론입니다.  



2014년까지 인간의 뇌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기반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본 후 인류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 《슈퍼인텔리젼스》의 닉 보스트럼마저 '인간은 어떻게든 초인공지능을 관리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낙관론에 희망을 두려했지만, 그 자신조차 터무니없는 논리적 모순에 빠졌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전작 《사피엔스》에서는 대단히 추상적이었던 유발 하라리의 인공지능에 대한 성찰은 《호모데우스ㅡ미래의 역사》에서는 한층 본질에 가까워졌습니다, 신작 《마음의 탄생》을 통해 《특이점이 온다》에서의 낙관적 미래상을 조금이나마 보충했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본질에서는 더욱더 멀어진 레이 커즈와일과는 달리.



하하리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리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라며 초인공지능(4차산업혁명의 거의 모든 것)의 미래를 압축해낸 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질문, 또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정직하지는 못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질문들은 첫 번째로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노동생산성이 최고조에 이르면 자본 축적이 멈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능력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기 때문에 결과의 평등이 이루어지고, 경쟁이 아닌 공생만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의 발전이 모두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유토피아(자유의 왕국)에 이를 것이라는 마르크스적 오류에서 벗어나는 단초를 제공할 것입니다.     



노동생산성은 4차산업혁명으로 이루어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날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결과의 평등은 기본소득으로 대체되고, 경쟁이 아닌 공생은 '노동 없이 소비하는 삶'으로 바뀌고, 개인의 발전이 모두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개개인의 지식과 경험 등이 크라우드에 축적되고 초인공지능에 의해 분류, 가공, 보완, 축약된 후 각자의 뇌와 무선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실현되겠지만, 초인공지능 로봇이 창출하는 최고의 노동생산성만 빼면 마르크스가 예측한 자유의 왕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마르크스적 오류는 이렇게 극복될 수 있지만, 그가 발견한 '노동(노동의 가치)'마저 종말을 고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만 볼 때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이 창의적인 삶을 향유할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요. 



그리고 유발 하라리도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어리석은, 그래서 디지털적이지 않고 아날로그적인 인류가 양심과 상식, 이타심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구축해온 이 빌어먹을) 사회, 정치, 일상에서의 변화'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알고리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그것보다 한참은 하등한 인간이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데이비드 색스는 '10대들이 LP판을 사고, 턴테이블과 책, 폴로라이드를 구입한다'고 호들갑을 떨며 《아날로그의 반격》을 얘기하고, 세리 터클은 한 발 더 나아가 《테크놀로지가 인간관계를 조정한다ㅡ외로워지는 사람들》를 통해 디지털 세상의 다양한 혼란을 다룬 뒤 "우리는 더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테크놀로지의 운영 방식을 정하는 게 바로 우리 자신임을 상기할 때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내놓기는 했습니다(세리 터클의 책은 필자가 강추하는 책이다)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였다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경험한 후 자신의 무지함에 대해 고해성사를 한 뒤, 신자유주의와 결별한, 결별한 것으로 보였던 토마스 프리드먼은 《늦어서 고마워》를 통해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의 가치'를 역설하며 세리 터클의 낙관론보다 한 발 더 나가기까지 했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초입에서 이런 낙관론이라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를 쓴 서스킨드 부자처럼,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미래상이란 인간의 한계 내에서만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났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이 주도권을 쥐는 순간, 그것이 원하는 형태의 세상만 존재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유발 하라리가 던진 질문이 인도하는 두 번째 생각을 다루겠지만, 하라리는 초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논란들이 근본적으로 지적사기에 해당할 수 있음에 눈을 뜬 것 같습니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닌 알고리즘이 의식을 가지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런 가치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 분명함에도 초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의식을 가지던 말던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인간이 자신의 삶과 미래에 관해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세상이 4차산업혁명 시대입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극소수의 과학자나 전문가들은 '인간이 만든 최후의 발명품'인 비생물학적 지능의 아버지로 초인공지능에 의해 영원히 칭송받겠지만, 동시에 인류를 멸종시킨 인간들로도 기록되거나 (인간이 하등한 존재로든 생존할 수 있다면) 인류를 시궁창에 처박은 악마로 영원히 저주받을 것입니다. '로봇과의 연예와 섹스'도 한두 세대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일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에 관한 모든 판타지를 구현해낼 VR에 주도권을 넘겨준 채 변두리에서 이루어지는 일로 격하될 수도 있습니다. 



저출산이 뭔 문제란 말입니까? 로봇으로 대체하면 노동자와 군인은 무한대로 나올 수 있고, 소비하는 인간이 줄어들더라도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부를 독점하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경제라고 한들 끊임없이 돌아갈 것인데. 우주를 개척하면 경제의 규모는 무한대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원료만 제대로 공급된다면 3D프린터로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쓸 수도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 전문가들도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는데, 그리고 인류가 종말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데 핵무기 확산을 저지하고 핵발전을 폐기하고 지구온난화를 줄이는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나 레이 커즈와일, 정재승처럼 진화의 법칙을 신과 동급으로 놓고, 그것의 산물인 초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날 경우 인류의 종말이나 인간의 노예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요. 현재의 인류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금 상태에서 완전히 멈춰버리게 만드는 절대 불가능한 것 이상은 없습니다. 과학기술 발전의 최종 단계가 인류의 노예화나 멸종이라면 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7.10.07 09:20 신고

    늙은도령님 오래만입니다.
    건강하시죠.
    인공지능은 정말 어렵네요.
    자주 뵐게요.

  2. mynameislee 2017.10.07 14:08 신고

    오랜만입니다. 항상 공부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3. heju1125 2017.10.07 20:33

    많이 궁금 했습니다.너무 오래도록 오시지 않아서 건강 때문일까? 걱정 했답니다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 덕산 2017.10.08 12:24

    늙은 도령님 추석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 어린아기가 20년 후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네요..
    지금의 교육은 무용지물이 될 것 같아서 아기가 창의력,설득력, 협상력을 가질 수 있게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교육 시킬지 고민입니다.~

  5. 진인사대천명 2017.10.08 20:42

    오랫만에 뵙네요...
    헌데 이번 글은 평소와는 다르게 차분함과 절제는 사라지고 횡설수설과 불안함만이 남은 듯 합니다. (주장하신 근거가 말도 안된다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무 비관적으로 접근하신 것 같아서...) 결론도 없구요. 인공지능이 급한 건 맞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남았다고 봅니다.
    해답은 결국 교육에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과학기술 연구를 중단하는게 방법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무엇보다 과학철학을 이해해 왜 연구를 중단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민들의 합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했으니 다음 글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7.10.09 09:47 신고

    공부를 아직도 하고 있는 아들이 이번 추석에 와서
    하는말 우짜든동 100살까지 살수 있으니 열심히 운동하랍디다 ㅎ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7. 이카루스 2017.10.09 14:58

    ‘인간’은..’사회적 동물’입니다..
    그 ‘사회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세상’의 모습과 변화가 보이겠지요..

    대부분의 ‘인간’은..’말’하는 ‘동물’일뿐..

    세상의 ‘변화’의 주도자는..오직 소수의 ‘엘리트’일뿐..
    개,돼지 ‘민중’은..먹이와 쾌락을 위해 살뿐..

    질문은 오직 하나..

    ‘의미’를 두느냐..?
    없음이냐..?

    ‘생각’이..’의미’를 만들뿐..




  8. 토마토 2017.10.09 19:58

    반갑습니다. 업데이트가 없어서, 무슨일이 일어난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9. 2017.10.09 22:19

    비밀댓글입니다

  10. 참교육 2017.10.10 09:50 신고

    무섭네요
    상상이 잘 안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약자가 아닌 강자가 만들어 가는세상입니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만드는 세상은 약자의 수탈이 있을 뿐이지요.

  11. 둘리토비 2017.10.13 22:12 신고

    저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참고로 핀란드에 7박8일로 다녀왔는데요, 그곳에서는 인공지능, 4차산업 이런것 안들렸습니다.
    오로지 현재의 삶의 가치에 집중하지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대비하진 않더라구요~

  12. 태봉 2017.10.15 02:45

    오랜만에 글이 올라오니 반갑네요 건강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함 전화를 해볼까 했어요 ㅋ 한가지 여담이지만 분자조립자를 통해 신처럼 물질을 창조한다는 내용에서 순간 20년 전에 서점에서 흥미로 읽었던 중국과 히말리아의 도사들에 관한 내용이 얼핏 떠올랐습니다 마치 무협소설 읽는 것처럼 느꼈었는데요 뭐냐면 도사가 순간 집을 만든다거나 순간 사라지게 만들고 축지법은 예사로 쓰고 하는 내용이었어요 순간 창조를 하는 것이었요 그때는 이게 가능할까 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과학적 원리가 있을거다 라고 믿는쪽으로 가지더라고요 ㅋ
    아무튼 그러면 이 도사들은 우주의 창조법칙까지 이해하고 터득한 도사들 즉 분자조립자란 얘기가 되잖아요? ㅎㅎ 아무튼 이 책을 의하면 인간도 도를 터득하면 분자조립도 할수 있어서 순간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지않을까 하고 재미있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재미있는 상상입니다^^

  13. 허니빳다 2017.10.15 20:43

    정말 많은 글을 읽으셨군요.

    제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인공지능 부분은 기술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대단한 것 같겠지만 아직 단순계산을 수백만번씩 반복해서 정해진 공식이 아닌 상황에 따른 적절한 값을 찾아내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바람에 AI가 만능일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읽으신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허무맹랑한 공상과학 소설같은 일은 20년 후에는 안 올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 문제냐 하면, 서서히 잠식이 일어날거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한 방에 다 터지면 혁명이든 뭐든 일어나서 새로 인간 사회를 재편이라도 할텐데, 천천히 서서히 쉬운 부분부터 지속적으로 계속 인간 업무를 잠식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차근 차근 도태될 거라는 겁니다. 그것도 힘있는 상류층이 아니고 하루 하루 살아가느라 목소리 내는 것에 관심도 없는 하류층부터 말이지요.

    지금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가 그 양극화를 가속화 시킬겁니다.

    옛날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킨 영국발 산업혁명은 인간과 기계가 함께 생산성 향상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과거 러다이트 운동 따위로는 막을 수가 없고 서서히 진행될 거라 봅니다. 한 회사에서 만명이 내던 수익을 100명이서 낼 겁니다. 9천 900명은 필요가 없어지겠습니다. 양극화가 상상을 초월하게 진행될겁니다.

    그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속 아담 스미스 같은 헛소리 하는 인간들은 꾸준히 있을 것이지만 9천 900명이 굶어죽을 때까지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국가가 붕괴되는 것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답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거라 봅니다.

    저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9천 900명을 국가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저는 이 해결법에서 미래 국가의 향방이 갈리게 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저 9천 900명을 연명할 정도로만 새누리당같은 복지 정책을 펴느냐, 아니면 좀 더 많은 계층이 나은 삶을 사는 방향의 정책으로 가느냐 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부자증세는 기본이고 교육의 완전한 국가적 지원과, 사회적 기업의 확대가 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근접해야 합니다.

    기계와 100명만 잘 사는 사회는 그 때 뿐입니다. 기계도 계속 발전 시켜야 하고 저 100명도 나은 삶을 누리려면 사회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돈 많아봤자 누릴 수 있는 인프라가 없고 길에 빈민들만 그득하면 저 100명도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베트맨의 고담 시티가 되는 거지요. 그리고 저 100명의 자녀들이 다 부모 일을 물려 받아서 발전 또는 유지시키지도 못합니다.

    서서히 잠식되가는 국가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 어떤 정책을 수행할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진행되는 만큼 깨어있는 사람들이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시민정치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4. 추노 2017.10.16 19:34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않으셔서 무슨일인가 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소식을 접하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4차산업혁명이 달갑지 않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도래할 새로운 시대의 조류라고 하기에 심히 우려가 됩니다.
    모름지기 변화는 누군가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된다고 봅니다만 지금의 추세는 인간의 존재성을 배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합니다.
    인간성을 배제한 물질문명의 변혁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극단적인 결과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현세대가 추구하는 안락과 풍요로움이 미래세대의 족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모쪼록 늙은 도령님의 오늘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15. 청공(靑空) 2017.10.22 22:39 신고

    지금의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다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지능과 의식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전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능없는.. 혹은 지능이 부족한 의식은 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치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재 과학이 인정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는 이해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의식이 동일하다고 여기지만,
    실상 그 질적인 측면에서 일반인이 갖고 있는 의식과 깨달음에 다다른 선승이 갖고 있는 의식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통은 그저 메타포가 아니라 실재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신통변화를 부리고,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고, 중생들이 어떠한 곳으로 가고 태어날지 아는 신통 말입니다.
    이러한 신통이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겁니다.

    이러한 육신통 중에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신통은 선정을 수행하는 요가수행자들도 얻을 수 있는 경지임을..
    석가모니는 아함경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굳이 요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신기를 갖고 있는 무당,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자들...

    저는 사이비를 믿는 사람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사회과학도입니다.
    그저 제 내면에 관심을 갖고 어릴적부터 천착하다보니 다다른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

    나고 죽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인간이 멸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당장 차사고가 나든지, 심장발작이 일어나서 죽으면 끝나면... 세상이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모든 것을 깨달은 부처님의 말씀대로라면.. 세상을 생겨났다 발전하고 쇠퇴하고 무너지는 성주괴공을 반복합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중생들이 있습니다. 인간 뿐만이 아니라 축생과 신과 악마들도 그 안에 있습니다.
    로봇이 태어나고 인간이 멸종한다 한들...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오신통을 갖은 사람이나,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인공지능이나... 어찌됐건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기껏 허무주의를 말하고자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망할 세상이면 왜 부처는 설법을 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쳤을까요?
    위없는 자비심을 가진 부처가요.

    그건 바로 여기가 그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자,
    인간이 성주괴공에서 벗어나는 무한한 의식을 가진 존재로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그런 존재가 된다면... 저는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라면 인류를 제대로 된 길로 이끌겠지요.)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깨달음을 얻은 선승 정도만 되더라도 ..
    다음 세상에 어디서 태어날 지 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부처님은 인도에서 태어났을까요? 그 가르침을 펼 수 있는 곳이 그 당시에는 인도가 적합했기 때문이겠지요.

    이제는 그 세계가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상당히 넓은 곳으로 확대되었고..
    인류의 의식 또한 그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의미없이 일어나는 현상들은 아닐껍니다.

    저는 인간의 의식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세상으로, 그리고 그런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세상으로...
    세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합의와 이해가 존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걸 선도할 수 있는 사람과, 집단과,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지금의 고삐풀린 흐름을 제대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둑이 터지기 바로 직전입니다.

    교역이 확대되고, 사람들의 생각이 마구 섞이고, 새로운 사상들이 창발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중언부언했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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