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재명의 공약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경기도민이라면 이재명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손가혁이나 민주노총, 통진당 부류처럼 지도자가 누구이던 간에 나에게 이익만 되면 제2의 이명박이라도 상관없다는 유권자라면 모를까, 투표소에 들어서면 고소고발 대마왕 이재명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믿음이 무참히 깨진 지금, 이재명이 어떤 공약들을 내놓아나 처음으로 살펴봤습니다. 그가 내놓은 공약들이란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얘기여서 헛웃음만 흘리다 13번째 공약에서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경기도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제멋대로 전제한 뒤, 안전한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내놓은 13번째 약속은 각종 사법경찰과 친위대를 통해 공포정치를 자행했던 히틀러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재명은 환경, 식품 등 위해환경과 재난재해, 범죄로부터 도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ㅡ아이고 무서워라, 거의 20년 동안 경기도에서 죽지 않고 살았으니 천만다행이었네?ㅡ며 일반 공무원에게 경찰 행정권을 부여한 '특별사법경찰관'을 대폭 증원해 미세먼지까지 잡을 정도로 그들의 전문성을 높이겠답니다(민주적 선거로 권력을 잡은 히틀러도 이런 식으로 청년친위대 등을 만들어 국민을 감시하고 협박하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를 위해 이재명은 성남에서 성공(?)한 시민순찰대를 경기도로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이들이 낮에는 홍반장 밤에는 경찰역할을 하도록 경기도민의 낮과 밤을 물샐틈없이 책임지겠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 경험했던 중앙정보부 휘하의 사법경찰이나 히틀러의 독재를 떠 바쳐준 청년친위대의 부활을 보는 듯합니다. 이들에게 택배 보관, 공구 대여, 집수리까지 맡기겠다니 맥가이버 사법경찰이라고 해야 할까요?

 

 

『감시사회로의 유혹』의 저자 데이비드 라이언과 『투명사회』의 한병철은 물론, 몇 년 전에 작고한 『친애하는 빅브라더』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무덤에서 뛰쳐나올 법한 일들도 벌이겠답니다. 감시사회의 최대 무기인 CCTV를 확대하고, 범죄예방환경설계기법인 셉테드(CEPTED)까지 도입해 범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답니다. 해당 기술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만 떼돈을 벌게 된 이 공약이 실현되면 경기도민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재명 수중으로 떨어집니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겠는지,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도지사 직속으로 치안보좌관을 두어 특별사법경찰이 제대로 역할 수 있도록 만들겠답니다(법적 근거가 없다면 용산참사에서 악행을 자행한 경찰의 용역과 무엇이 다른가?). 이를 통해 자치경찰제를 충실히 준비하겠다고 하는데 경기도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이런 경찰국가 공약들은 경기 경찰의 증원보강으로 치닫습니다

 

 

이재명은 1,000만 서울의 치안인력이 27천 명인데 비해 1,300만 명의 경기도는 21천 명이라는 단순비교를 통해 경찰 증원보강의 명문으로 내세웠습니다. 도지사의 권력을 총통(히틀러의 직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이런 공약들을 실현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한데 이재명에게는 경기도 전역을 성남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라도 가지고 있나 봅니다.



빅브라더를 꿈꾸는 이재명의 공약은 CCTV와 함께 감시사회의 또 다른 축인 경기도민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자살율까지 낮추겠다고 합니다스마트 기술이 인권의 적이자 독재의 수단으로 쓰이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재명은 아예 그것의 전도사를 자처했네요. 끝없는 감시의 연속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을 공약한 이재명의 머리 속에는 감시사회가 자리하고 있나 봅니다. '위험사회'에 대한 불안을 이용해 독재로 가려면 감시사회(기술전체주의)는 필수입니다.  





이재명이 말한 새로운 경기가 이런 것들이라면 경기도의 탈출만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필자가 이재명에게서 총통이 되려는 히틀러가 보인다는 글을 썼던 것이 틀리지 않았나 봅니다. 이재명의 13번째 공약을 보며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석학들이 스마트 감시로 대표되는 감시사회의 출현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며 수많은 경고를 보내고 있음에도 정반대로 가겠다는 이재명에게서 히틀러와 박정희를 뛰어넘는 독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이로써 이재명의 당선무효를 끌어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이재명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불안과 공포가 밀려듭니다. 민주주의의 허점을 이용해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이재명·김어준 카르텔의 본질이라면 그 출발점이 성남이었고, 중간단계가 경기도였던 모양입니다. 문재인이 아닌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다면∙∙∙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고 모공이 송연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히틀러의 나치와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고 싶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을 보십시오. 국가의 총력동원체제로써의 전체주의 독재를 이해하는데 최상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은빛 2018.06.20 11:08

    이러다 경기도 독립선언 보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1200만 경기도민을 인질삼아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드는 내란 벌이고도 남을 인간이에요. 찢은.

  2. 김정현 2018.09.17 18:05

    특사경 열일합니다.
    니가 사채업자에게 열라게 고생하고 있다해서 경찰서에 신고해도 안도와줘
    헌데 경기도에 이야기하면 해결이 돼!!

    왜냐구? 형사들은 한달에 두건만 해결하면 더이상 일할 필요가 없어!!

    헌데 특사경은 아냐!! 도지가사 하라면 하는거다.
    그리고 특사경들로 인해서 불량식품이나 사채업자
    거짓 앰뷸런스 짱퉁상품. 다단계 . 등등 하여간 불법적인건 다잡아내고 있어
    욕하기 전에...
    좀 알아봐라;;;



가진 자(백인남성)들에게만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는 제한적 시도였던 민주주의가 수없이 많은 배제된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으로 모든 국민에게 1인1표가 적용되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근대국가는 배타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영토) 내의 모든 시민(인구)에게 침해와 양도가 불가능한 인권과 다양한 형태의 사유재산과 사적 계약의 이행 

등을 보호(안전)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미셀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 참조). 





따라서 서로 다른 기원과 목적을 가진 민주주의와 근대국가가 만나는 지점에서 '개인의 안전과 그들이 소유한 재산의 안전은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합의(법과 제도 등으로 보장된 정치적 권리)가 이루어진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라도 무너지면 정치적 권리는 제대로 행사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없는데 구태여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수고를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결국 민주주의와 근대국가의 조합이 최상의 이상향(유토피아)을 이룩하려면 모든 시민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해 지켜야 할 것들(재산, 기회, 행복 등)이 있어야 하며, 상당히 부족하다면 반드시 제공해야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모두가 평등하듯이, 법과 제도에 의해 국가와 사회의 일원이 된 모든 시민이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권리(복지국가 구축)가 제공돼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유럽의 선진복지국가는 이런 성찰과 실천의 결과물입니다(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 참조).



정치·경제·사회적 평등이 강조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지배엘리트와 상위 1%의 세계화가, 이런 민주주의와 근대국가의 조합을 파괴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학자마다 출발점에 대한 인식은 다르지만, 영국과 미국의 슈퍼리치들이 헤리티지대단, 아담 스미스 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 같은 보수연구소에 대규모 자금을 기부해 변방의 통치술이었던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사회민주주의)를 대체하도록 만든 것에는 일치합니다(다니엘 롤링의 《불의는 무엇인가》 참조).  



박근혜의 '줄푸세'에 모조리 담겨있는 이들의 공격은, 모든 시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를 고비용·저효율의 상징인양 호도하고 왜곡해서 사회적 연대를 개인 간의 무한경쟁으로 대체하는 것에 집중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대가 경쟁으로 대체되면, 혼자의 힘으로도 권력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극소수의 거인들이 비슷한 처지의 시민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사회적 권리를 지킬 수 없는 절대다수의 난쟁이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이런 면에서 볼 때 기본소득은 사회적 권리로 봐야 한다).





여기에 과학기술의 혜택과 디지털 파놉티콘의 구축(테러방지법이 대표적)을 독점하는 것까지 더해지면,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넘어 '고용없는 성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체제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한 '잉여'라는 시민들이 경제예비군으로서의 사회적 권리마저 박탈된 난민이나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가족과 사회와 국가가 제공하던 존엄한 삶과 안전보장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승자독식의 지옥이 도래한 것입니다(지그문트 바우만의 《모두스 비벤디》와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 데이비드 라이언의 《감시사회로의 유혹》 등 참조).   



현대국가의 특징이 '유동하는 공포'가 만연된 '위험사회'로 접어든 것을 넘어, 민주주의와 근대국가의 조합이 작동하는 예전(짧게는 40년! 길게는 250년 전이다!)에는 잉여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공간마저 사라진 지옥이 된 것도 사회적 권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란 무한경쟁이 초래한 정신질환자의 폭증이고, 곳곳에 자리한 정체불명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전에 대한 공황적인 집착입니다(바우만의 《액체근대》와 《유동하는 공포》 등 참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CCTV와 인공위성이 동원된 블랙박스와 위치정보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극히 미세한 사각지대의 존재에 불안해하는 것도, 이웃과 낯선 이들의 선의와 호의마저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이 일상화된 것도, 그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폭발하기 일쑤인 분노의 과잉도,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가 뿌리까지 뽑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모두에 대해 타인이며 경계하고 의심하는 자들이며, 정치와 국가를 불신하는 난민입니다(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 한병철의 《투명사회》 참조)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유족의 현실입니다. 필자가 세월호유족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세월호를 하루라도 빨리 인양하고, 본격적인 진상규명에 들어가려면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는 현실의식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정 정당을 지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했습니다. 광복 이후 이 땅을 지배해온 거대양당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두고 정치적 이득이나 챙기려는 행태에 극도의 불신을 가지게 됐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그들은 단식을 함께 해준 문재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새누리당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던 새정치민주연합(박영선 원내대표가 협상을 이끌었었다)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긴 싸움이 되더라도, 그래서 나머지 생을 분향소의 컨테이너와 거리에서 보내야 한다고 해도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정 정당의 힘에 의존하는 어리석음은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세월호유족에게는 (또한 세월호참사를 그들의 비극으로만 떠넘길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와 근대국가의 조합이 약속한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정확히는 우토피아)의 약속과 같습니다. '마국텔'이 종영되고, '야당 통합'이 상영되는 와중에 세월호유족과 특위가 간절하게 호소한 세월호특검법은 공론의 장에 올라가지도 못한 채 세월호처럼 수장됐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시민이기에 앞서, 잠재적인 헬조선의 세월호유족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가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하위 99%에 속한다면, 이미 안전한' 상위 1%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부터 퇴출시켜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근대국가의 조합이 모든 시민에게 약속했던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연대를 복원하는 것만이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6.03.07 08:56 신고

    박근혜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고 당선됐습니다.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지칭하는 표인데 공무원 수가 적은 정부라며 국민들을 속였지요. 그의 말대로 해석한다고 해도 국정원직원이 37만명이라는데...그게 작은 정부인지...ㅋ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07 09:32 신고

      작고 권위적인 정부를 말하지요.
      통치에 필요한 인원은 늘리고 나머지는 없애 민영화하는 것, 그리고 제왕적 권력의 행사를 위한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정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헌데 박근헤는 정부 자체를 죽여버렸습니다.

    • 소피스트 지니 2016.03.07 14:59 신고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작은 정부에 대한 개념을 잘 못 알고 계신분들이 많더라구요.

    • 늙은도령 2016.03.07 17:51 신고

      네, 많은 분들이 정치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지배엘리트가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2. 미시유에스 2016.03.07 10:51

    매일 늙은도령님 글을 읽고 또 많이 퍼가기도 하고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제는 박그네독재정권의 하수단체인 걱정원도 무소불위의 검은 힘이 더욱 날 뛸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이엠피터의 티스토리 떠난 이유도 계속된 정치 글 삭제였다고 하군요
    늙은도령님의 모든 콘텐츠도 앞으로는 사이트로 독립해서 옮겨갈 시기가 앞당겨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 늙은도령 2016.03.07 17:54 신고

      너머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크게 문제되지 않은 선을 지키며 씁니다.
      만일 저의 글을 건들면 제 인맥을 총동원해 싸울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인 면에서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당장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지배엘리트가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게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 그때는 제가 좀 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국가의 통계가 말해주듯, 가진 것이 많거나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투표율과 정치적 활동이 앞도적으로 높다. 전체 자산의 80~90%를 독점한 상위 1%(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50만 명)가 전체 자산의 10~20%밖에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는 하위 99%(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4950만 명)를 지배하려면 그들을 위해 일하는 정당과 후보가 정권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상위 50만 명의 자산이 전체 자산의 90%를 넘어섰다고 하니, 하위 4950만명에게 돌아갈 자산은 무려 50%나 줄어들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천만원이라 하면 국민총소득은 1500조원이 된다. 이중 1350조원을 50만명이 나눠가지고, 150조를 4950만명이 나눠가진다. 다시 말해 상위 1%에 속하는 50만명은 27억원씩 가질 수 있고 하위 99%에 속하는 4950만 명은 약 300만원씩 가질 수 있다.



27억원 대 300만원, 평균적으로 따질 때 이 정도 차이(26억9700만원)라면, 그리고 그 차이가 더 벌어지면 벌어졌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면, 상위 1%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잡고 언론을 장악하고 특권의 카르텔을 형성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혈안이 되지 않겠는가? 4950만 명이 300만원보다 더 가지기 위해 150조를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듯이, 50만명도 27억보다 더 가지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상위 50만명은 하위 4950만명이 150조원을 나눠갖는 것을 넘어 그들의 몫인 1350조원을 넘본다면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그들은 싸움을 멈춘 채 그들이 확보한 모든 것들을 총동원해 4950만명의 약탈을 막는다. 그것만이 아니다, 4950만명이 또다시 그런 약탈을 시도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온갖 보호장치를 구축한다, 공인된 폭력인 공권력을 수중에 넣는 것(정부)부터 사설경호원까지.





최상의 방법은 4950만명 모두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 약탈 시도를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모조리 잘라버렸고, 4950만명을 최대한 파편화해 각자도생을 위한 자발적인 노예상태로 만드는데 얼추 성공했다. 이제는 부와 권력, 기회까지 세습할 수 있는 단계만 남았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50만명의 상위 1%가 4950만명의 하위 99%를 지배할 수 있는 최후의 지점에 이른 것이다. 



감시사회의 탄생은 이런 과정으로 이루어졌고, 정보통신과 영상산업 등의 발전으로 4950만명의 일거수일투적(성생활까지)을 감시하고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위험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디지털 파놉티콘의 구축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어제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새누리당이 '음지에서 양지를 지배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국정원으로 하여금 디지털 파놉티콘을 합법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특징은 잊혀질 권리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4950만명이 자발적으로 감시에 협조하는데 있다. 필자를 비롯한 하위 99%는 매일같이 모든 시공간에서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다만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어제 이후로 달라진 것은 권력의 필요에 의해서든, 자본의 청탁에 의해서든, 국정원에 의해 우리가 남긴 모든 디지털 흔적에 '테러'라는 혐의가 부여됐을 때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테러를 벌일 수 있는 위험한 인물'로 분류되고 감시받지 않도록 디지털 흔적을 남길 때마다 '테러 혐의'로 해석될 될 여지가 있는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뿐이다. 그런 자기검열의 한계란 권력(과 자본)의 변덕스러움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인데, 뭐 그쯤이야 총선에서 승리해 테러방지법을 폐지하거나 수정하면 그만이라고 안심하지는 마시라



그 이유는 권력(과 자본)의 변덕스러움 때문만이 아니라, 권력을 잡으면 누구나 통치의 수월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의 변더스러움도 다 그것에서 연원해 나오는 것이니.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6.03.04 08:15 신고

    늙은도령님도 '테러위험인물'일지도 모릅니다.
    '팬옵티곤'시대가 본격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감시사회는 언제가 무너진다는 것을.
    역대 독재정권 중 무너지지 않는 정권은 없었습니다. 17년가 내달린 설국열차(2013년) 꼬리칸 사람들도 일어났습니다.
    독재정권은 시민혁명에 반드시 무너집니다. 시민혁명만이 희망입니다.

    • 김경아 2016.03.04 12:11

      늙은도령님 비롯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평범한 시민을 건드린다면...정말 가만있으면 안될것 같은데요? 시민혁명이 희망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04 18:04 신고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할려고 합니다.
      거대양당이 독점하는 구조로의 회귀는 지금까지 싸운 이유를 없애버립니다.
      총선 승리가 절대과제라면 '절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저는 수단에 문제가 있으면 목적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작금의 과정이 너무 답답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3.04 08:32 신고

    코에 걸면 코걸이,귀에 걸면 귀걸이..
    35%를 제외한 전 국민을 테러 분자로 만들수 있습니다

    유신시대로 회귀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3.04 15:16 신고

      그래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소리없는 감사의 위험성을 전혀 모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국회선진화법이 있어서 새누리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통과될 수 없음에도.
      전, 통합과정이 보도되지 않아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릅니다.
      노동당과 녹색당이 포함돼 있지 않은 모양이던데.....

  3. 바람 언덕 2016.03.04 11:42 신고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멀리서 보고 있자면 더 잘 보입니다.
    가라앉은 것은 세월호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ㅠㅠ

    • 늙은도령 2016.03.04 15:17 신고

      네, 집단적 광기에 빠졌습니다.
      김종인 지지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 전통의 지지자는 아닌 듯합니다.
      문재인도 이렇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 BOW 2016.03.04 16:09

      늙은도령/어찌 김종인 보면 하는 짓이 원세개를 보는 것 같아보입니다.

  4. BOW 2016.03.04 14:57

    설령 멸망하지 않더라도
    운좋아봐야 과거 중화민국시절 중국꼴이겠지요.

    • 늙은도령 2016.03.04 15:18 신고

      네, 야당이 지지자들과 민주적 절차를 따르지 않고 독선적 결정을 했습니다.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통합된 인물이 자리하고 있으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5. 개국물 2016.03.05 09:08

    어떻게 할까요 어떤방식이던 문제가 생기는 법입니다 제발 이번에 앞도적으로 이겨야 합이다 국회 선진화법은 무시할정도의 의석수가 필요 합니다.

    • 늙은도령 2016.03.05 19:03 신고

      자꾸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더 큰 화를 자처하게 됩니다.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만 확보해도 모든 것이 바뀝니다.
      국정원 할아버지가 와도 바뀝니다.
      조급해 하면 안 됩니다.
      테러방지법을 수정하거나 폐지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그 다음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올바른 방법으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김종인이 너무 서둘렀어요.
      그러면 길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질서를 바라는 것은 풀 수 없는 그리고 충족될 수 없는 목마름입니다. 이 욕망은 각자의 현실이 무질서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서 무질서 상태를 고치도록 요구합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감시가 결코 활력을 다하거나 일감이 없어질까 두려월 필요가 없는 얼마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 데이비드 라이언 대담 《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인용 




9.11테러가 불러온 변화와 비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세월호참사는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감시와 안전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며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상태까지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왜 위험사회가 됐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라졌고, 그 때문에 세월호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대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감시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은 자신의 프라이버시(구글의 회장인 슈미트는 프라이버시 자체가 없는 세상이 됐다고 했지만)와 기본권조차 포기한 채 새롭게 등장한 감시사회의 안전담론에 자발적 복종을 보여주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 시민의 안전을 높이기보다는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는데 유용한 감시 장비들의 확대 설치를 반대하는 여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체제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에 적응해서 남들보다 조금 낫게 살아남으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안전을 중시하는 안전담론의 강화는 사회의 보수화와 인식의 보수화를 동시에 강화합니다. 안전을 높이기 위해 질서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자유와 충돌하기 일쑤여서 가진 것을 지키고 늘려야 하는 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를 추동합니다. 



이런 경향이 강화되면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참극인 세월호참사가 지겨운 것으로 변질되고, 가끔씩 일어나는 해상교통사고로 치부되기에 이르며, 자식의 목숨을 팔아 한몫 챙긴 유가족들의 생떼가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색깔론까지 발전합니다. 2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내 자식과 부모형제들이 아니어서 더 이상 엮이는 것조차 불편하게 됩니다.  



 


OECD 가입국 중 부의 불평등과 사회복지지출이 가장 나쁜 대한민국은 사회갈등지수도 최상위에 위치합니다. 여기에 분단 현실을 악용하는 현 집권세력과 보수언론들의 안보상업주의가 더해지면 안전에 대한 욕구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울리히 벡이 말했던 《위험사회》의 출현이 인류가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획득한 적극적 자유(제도와 법으로 보장되는 자유, 내 마음대로 살게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소극적 자유인 자유방임과 구별된다)와 민주주의마저 제한하기에 이릅니다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를 강화하는 이런 추세가 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도 돌이길 수 없는 지경까지 후퇴할 것은, 집회마저도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폭력집회로 규정해 무차별적인 진압과 체포를 자행하는 것도 질서 유지와 공공의 안녕을 내세운 안전담론의 득세가 어디까지 왔는지 말해줍니다.



특히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일원인 언론(특히 쓰레기 방송들)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반인륜적인 사건·사고 뉴스를 집중보도함으로써 위험과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범죄율의 증가나 하락 같은 것은 보도하지 않고, 왜 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는지도 보도하지 않고, 오직 위험과 공포만 부추깁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빌붙어 최대 이익을 거두면 그만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온갖 오보를 쏟아내며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생중계한 언론들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보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도 모자라, 유족을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으로 몰고가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보도를 통해 자사의 매출을 극대화하면 만사 OK라는 것입니다. 모든 뉴스에 오늘의 사건·사고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보도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9.11테러 이후의 미국이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마저 제한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것처럼, 세월호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이 비슷한 방식으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렇게 됐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안전담론에 매몰돼 민주주의와 기본권 등이 축소되고 침해받는 것까지 감수하게 됐을 때, 감시체제의 강화는 지배엘리트의 이익만 무한대로 늘려줍니다.



최소 250명에 이르는 어린 학생들이 체제와 어른들의 잘못으로 죽어갔음에도 세월호참사가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일베 같은 극우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설칠 수 있는 것도, 이들을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세월호집회의 폭력성만 부각하는 쓰레기 방송들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테러와의 전쟁이나 안전담론에 매몰된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가 자발적 복종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입니다.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1세기가 위험사회와 감시사회, 정신이상사회가 된 것은 상위 1%에 속하는 지배엘리트와 슈퍼리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참사도 이런 극단의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 위험들이 하위 99%에게 전가된 참극의 전형입니다. 이익은 상위 1%에 집중되지만, 위험은 하위 99%에 전가되는 ‘리스크 대이동’이 세월호참사의 숨어있는 본질이며, 이 땅의 기득권들이 깨놓고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이유입니다.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논리는 허구로 가득한 퇴행적 현상의 전 지구적 차원의 지적 사기입니다. 디지털 빅브라더의 등장은 위험사회의 폐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어떤 경험적 증거가 제시된 적도 없으며,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수없이 많은 안전시스템들이 무용지물이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저 편하게 살다 편하게 죽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발적 복종은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욱 가난해지고 위험해진다고 해도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세월호참사에는 이 모든 것들이 집약돼 있지만, 진실규명의 노력을 외면하면서 자발적 복종에 길들여져 갑니다. 어쨌든 자신은 세월호에 타지 않았고, 수장되지 않았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제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 같은 내일이라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15년 전에 노회찬이 '그래서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이, 지금에는 자발적 복종을 거부하는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질문의 변화와 차이 만큼 하위 99%의 삶은 퇴행했고, 우리를 먹여살리는 유일한 체제인 민주주의는 고사 직전에 이른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과정에 흘린 것들로 즐비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술맛을 알아? 2016.01.17 01:57

    김무성이 인재영입에 대해서 소홀하다는 뉴스(김무성은 사람가지고 쇼하고 싶지가 않답니다)가 뜨더군요. 2007년인가요 열우당 깨질때가. . .작금의 탈당러시를 보여주고 있는 핵심삐끼들이 그때와 다르지 않고. . .김무성은 뜬금없이 180석도 가능하다 떠들고. . .친박과 친이계는 공천권의 헤게모니를 두고 싸우고 있고. . .쥐새끼는 윤여준과 비서관들을 지원하고. . .더민주 작살내면서 뛰쳐나오는 개새들과 새눌당 공천 학살자(친이계)들이 국민당에 합류한다면. . .또다시 이런 참극이 벌어지면 안되겠지만 저들의 민낯을 이미 겪은지라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 .저의 기우이길 바랄 뿐입니다.
    건강 챙겨야 하시는분이 일찍 주무시지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야 미래를 볼수 있지 얗겠읍니까 ㅎ~

    • 늙은도령 2016.01.17 02:54 신고

      안철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있으니 이 상태로 가도 된다는 것이지요.
      안철수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표를 얻을 텐데, 그런 다음에 새누리당과 연정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새누리당은 표정관리 중입니다.

  2. 2016.01.17 09:2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17 16:26 신고

      저도 인터넷으로 구입합니다.
      판매수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일년에 몇 백 권만 팔리는 책들도 있어서...
      절판된 것도 많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중고책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구입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1.18 09:04 신고

    해상교통사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한 이 나라는 더 이상
    발전할수 없는 나라입니다

  4. 편부가정 2016.01.28 17:22 신고

    늙도님. 반갑습니다. 자주 늙도님 티스토리 와서 보고 가곤 합니다.
    혹시 페이스북은 안 하시는지요? 페이스북에서도 소식 좀 듣고 싶습니다. ^^
    아래는 혹시나 해서 올린 제 URL입니다.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8200866904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만 더민주가 집권하는 목표가 성립 안된다면
    저는 그냥 두 아이 데리고 핀란드 시민권 어떻게든 얻어보려 합니다. 그래도 헬조선에 비하면
    탄압도 없고 청년 등지지도 않는 나라임은 확실하니까요...

  5. 늙은도령 2016.01.28 18:13 신고

    개표조작만 없으면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얼마 못 갑니다.
    핀란드가 최상의 국가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쪽도 청년실업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총선보다는 대선이 더 중요합니다.
    문재인이 노무현 못지않은 거인으로 올라섰기에 조금만 더 지켜보시죠.



기술 혁신은 개인 및 집단의 복지증대를 낳는다. (탈숙련화, 실업이나 이직의 위험, 건강 위험과 자연파괴 등의) 그 부정적 효과들은 이러한 생활수준의 향상 속에서 언제나 정당화되었다.


                                                                      ㅡ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에서 인용




걷잡을 수 없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간성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까지 파괴시킬지도 모른다. 기술은 도덕적 기반을 상실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신적 과정들과 사회적 관계들을 뿌리 채 흔들어놓는다.


                                                                  ㅡ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에서 인용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보면 그가 지적재산권의 대부분을 독점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아리스토텔레스가 나머지 소유권을 가졌다. 이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다)을 빌려, 발명의 신인 테우스가 이집트를 통치하던 타무스 왕에게 자신의 발명품을 널리 보급해 번영을 누리라고 말하는 얘기가 나온다. 각종 발명품에 대해 타무스 왕이 테우스에게 묻고 답하는 가운데 문자에 이르렀고 둘의 견해는 완전히 갈린다. 테우스는 문자가 이집트인들의 지혜와 기억력을 눌려줄 것이라고 했지만, 타무스 왕은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발명가의 모범이 되는 테우스여, 기술의 발명자는 그 기술이 장차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를 판정할 수 있는 최선의 재판관이 될 수 없습니다. 문자의 아버지인 당신은 자손들을 사랑하여 발명해 낸 그 문자에 본래의 기능에 정반대되는 성질을 부여한 셈입니다. 문자를 습득한 사람들은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많이 잊게 될 것입니다. 기억을 위해 내적 차원에 의존하기보다 외적 기호에 의존하게 되는 탓이지요. 당신이 발견한 것은 회상의 보증수표이지, 기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그리고 지혜에 대해서라면, 당신과 제자들은 사실과는 상관없이 지혜에 대한 명성을 계속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적절한 가르침 없이도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실제로는 거의 무지하다 할지라도 지식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지혜 대신 지혜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장차 사회에 짐만 될 것입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검색을 통해 어느 곳에서나 광속으로 접속할 수 있는 정보사회(감시사회)에서 타무스 왕의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기술의 본질에 관해 분명한 성찰을 전해준다. 닐 포스트만의 성찰처럼 ‘기술은 한 번 도입되기만 하면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자체의 예정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때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해준다. 특히 기술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타무스 왕의 성찰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기술의 영향력은 의견이나 개념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술의 영향력은 인식의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 없이 바꾸어놓는데 있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이 만든 도구인 기술에 어떻게 지배되는지 말해주었다. 



한나 아렌트 또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조건이 인간이 만든 기술의 산물인 인공세계에 의해 반대로 조건 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TV와 스마트폰의 보편화로 혁명적으로 달라졌지만, 동시에 진화의 과정을 역행하고 있는 우리의 삶의 행태를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특히 상당한 돈이 있어야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고급기술은 모든 인류의 갈등들 사이에서 극소수의 승자와 강자에게 소화해내기 힘들 정도의 전리품을 안겨주지만 절대다수의 패자와 희생자에게는 절망과 죽음을 안겨주기 때문에 그 도입의 단계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서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Ⅱ》에서 말한 대로 과학과 기술을 독점한 ‘정치권력의 역사는 국제적 범죄와 집단학살의 역사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만악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기술은 사용 방식에 따라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되며, 인간을 보다 높은 차원의 삶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도 동의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의 등장을 역사의 필연으로 봤고, 그 끝에 이르면 노동자의 생산성이 최고조에 이르러 투입 대비 이익이 제로에 이르러 더 이상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노동착취가 사라지는 ‘자유의 왕국’이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무한 변신을 예상할 수 없었던 시대의 한계였으며, 생의 마지막까지 착취되고 사물처럼 거래되는 제품으로 전락해 극단적 소외에 빠져드는 노동자의 삶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유토피아적 발상으로 결론을 내리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르크스의 문제점을 가장 잘 지적한 칼 폴라니의 설명처럼, 그는 여러 곳에서 자신이 세운 ‘준거틀’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보여줬지만, 소수의 자본가의 수중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노동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휴머니즘의 산물이었다. 아무튼 기술의 발전이 ‘탐욕의 삼위일체’에 의해서 극소수의 승자에 봉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해서, 기술에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며,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에서 결론으로 내놓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사용의 결정과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적일 될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는 우리의 친구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애초에 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철도가 없었다면 내 아이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사용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대양을 횡단하는 선박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친구는 항해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연히 마음 졸이며 그의 소식을 전보로 전해들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아 사망률의 감소가 그 비율만큼 출산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결국 어떤 면에서 보든 우리가 위생학이 발전하기 이전보다 아기를 더 잘 기른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생활 여건 역시 악화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기쁨이 없으며 비참하기 그지없어 오직 죽음만을 바라고 산다면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런 프로이트의 절망은 지구온난화가 일상화되고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수록 더욱 현실적인 울림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출산율의 저하는 산업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처음부터 내재된 것이었기 때문에 결코 노인들의 수명 연장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임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세대 간의 전쟁은 갈수록 첨예해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손자와 손녀일수도 있는 젊은이들을 비난하고, 젊은이들은 그들의 조부모일수도 있는 어른들을 비난하며 심지어는 폭력적 언사도 퍼붓고 있다. 



기술-경제적 발전이 진행될수록 인류는 인식과 삶의 태도 차원에서도 급격히 퇴보하면서 배타적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가장 많은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 기술 발전에 따른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총기 사고 등으로 연간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이승을 등지거나 장애인이 되고 있다는 통계가 쏟아져 나온다. 민간 보험을 통해 그 피해를 일부라도 만회한다고 해도 이 또한 기술 발전의 피해자인 개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하물며 민간보험마저 들 수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하소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시계의 발명으로 인간을 시간의 노예와 결과로 평가하는 과정으로 정착한 방식이라도 해도, 기술 발전의 성과를 1년 단위로 나눠서 평가해보면, 한마디로 1년 단위의 고과를 따지면 기술 발전의 결과가 매일같이 크고 작은 사고들을 축적해 거대한 홀로코스트를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까지 감안한다면 인류 해방을 약속한 기술 발전 덕분에 인류는 상시적 전쟁상태라는 무차별적인 폭력의 심연 속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기술 발전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라 어제까지의 기술적 경험과 지식들이 오늘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내일에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퇴물로 취급되는 내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어제까지 확실하고 견고해 보였던 모든 것들이 사회와 삶의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며 오늘의 공포로 엄습해 온다. 내일에는 모든 것들이 불확실할 것이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한 지속적인 것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리처드 세넷이 《개성의 부식》에서 말했던 것처럼, 불확실성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순간적인 충동과 단기적 행위로만 가득한, 지속적 일상과 습관을 결여한 삶을” 유지해야만 한다. 





언제든지 어제까지 유효했던 것들과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며, 오늘의 결정이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 그 결과 넘칠 만큼 주어진 자유를 소유한 개인은 “이정표 하나 없고 온통 자신이 헤쳐가야만 하되, 그 결과가 어찌 될지 전혀 확신이 없는 상태로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이 잔뜩 도사린 길을 가며 이런저런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공포에 질린 채 무기력한 존재로 한없이 위축된다. 끝없이 땅을 파면서 안전한 곳을 찾아가는 두더지가 그 과정 속에서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존재가 오늘날의 파편화되고 소비에 집착하는 너와 나, 철저히 개인 단위로 분리된 우리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대해 질 딜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그들의 공저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참담한 고백을 해야만 했다.



파편화된 존재의 신화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 파편들은 마치 원래의 온전한 상태와 똑같은 하나의 일체로 모아 붙이기 위해 마지막 한 조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고대 조각상의 파편들과 마찬가지이다. 한때 존재했다는 근원적 총체성 혹은 미래의 어느 날 우리를 맞이할 최종적 총체성 따위에 대한 믿음이 이제는 없다.



이런 참담한 고백을 한 사람들이 이제는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지만, TV라는 ‘바보상자(또는 ‘탐욕의 삼위일체’의 판도라 상자)’에 길들여진 아날로그 세대는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TV가 보여주는 오늘의 뉴스와 각종 콘텐츠의 오락성과 상업성, 해피엔딩과 즉물적 쾌락에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그들은 작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날로그 세대의 막내인 필자도 한 동안 이런 혼란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와 사회, 부모가 요구하고 가르쳐주는 대로 살아온 그들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의 유동성이 너무나 생경해 존재의 근원까지 뿌리 뽑히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제 노년의 초입에 들어선 그들은 누가 기술을 독점하고 있으며 세상을 이렇게 만든 TV 화면 뒤의 지배자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생각하려 않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들은 닐 포스트만이 《죽도록 즐기기》에서 말한 것처럼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압축성장이 가져다 준 확고부동한 믿음, 그 기간 동안 가족의 해체가 시작됐으며 부모 공양과 자식의 교육과 결혼에 들어간 돈 때문에 땅을 팔고 집을 옮겨 다녔고, 이제는 노후도 대비하기 힘든 정도로 통장의 잔고가 마이너스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굶주림에 대한 위협에서 해방됐다는 진보의 허상이 불러온 마법에 갇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청자란 있을 수 없고,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정도로 열악한 빈곤도 존재하지 않으며,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변질되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당연한 것이며, 박정희의 독재 시절에 이루어진 압축성장과 이를 주도한 대기업 덕분에 지금의 호사(?)를 누리게 됐다는 믿음에 추호의 의심도 두지 않는다. 자신이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은 것이 무엇인지, 국가의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자신의 재산도 비례해서 늘어났는지, 왜 자식들과 손자와 손녀들과 떨어져 살며 명절 때에나 간신히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지, 그들은 명문대를 나오고 미국에 유학까지 다녀왔는데도 취직하지 못하는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에 걸쳐 죽어라고 따라가려고 했던 미국이 외국의 돈으로 흥청망청 살다가 전 세계를 경제대공황으로 내몰면서 자신은 부도국가의 처지로 전락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무려 36년간의 일제 강제합병의 침탈과 착취에서 벗어나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왜 한반도가 민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쪽으로 잘리게 됐는지, 스탈린식 사이비 공산주의의 확장을 6.25전쟁 때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있는지(이것을 다루려면 한 권의 책도 모자라다. 미국의 도움을 받는 것은 곧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첩경임을 고백한 《경제저격수의 고백1, 2》가 가장 무난하다) 따져보지 않는다. 북한의 공산주의라는 것이 국가파시즘의 형태를 띤 전체주의 국가이며, 이익 추구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 인정하는 미국의 전체주의적 자본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고 노무현 대통령 때 실시한 기초노령연금이 박근혜 정부가 개정한 기초연금보다 수령액이 5~6년만 지나면 역전된다는 것도, 자신의 자식과 손자/손녀들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손해를 본다는 것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여성 대통령의 리더십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은 여성들을 차별하는 정책과 친기업적이고 친부자적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이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오히려 그 당시에 이루어진 각종 불평등들의 원천들이 미래세대의 불행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6.21 10:34 신고

    인간적이지 못한 모든 문명은 인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불행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지혜가 인류를 불행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21 17:32 신고

      네, 기술-경제적 접근이 인류를 더욱 망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요즘입니다.
      인류는 발전할수록 종말에 근접하니 이런 경향을 어떻게든 늦추거나 막아야 합니다.
      헌데 이런 대세를 뒤집을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2. 뉴론♥ 2015.06.22 07:00 신고

    한주의 새로운 시작이네여 즐거운 한주 되세여

  3. 耽讀 2015.06.22 07:59 신고

    1994년부터 1997년까지 경남진주에서 경기수원까지 매주 기차를 탔습니다. 월요일은 진주에서 수원, 금요일은 수원에서 진주.
    그 때 통일호가 있었습니다. 무궁화호는 한 번씩 탔지만 거의 통일호였습니다. 시간은 7시간쯤 걸렸습니다.
    기차를 타면 계절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주씩 변해가는 바깥 풍경은 경이로움입니다. 무엇보다 팔도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사투리를 다 들 수 있었죠. KTX는 계절변화도, 구수한 사투리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기술문명 편리함이지만, 사람냄새와 자연냄새를 빼앗았습니다. 더 빠른 기차가 또 나오겠지요.

    • 늙은도령 2015.06.22 15:05 신고

      인간에게 더욱 많은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을 빼면 기업만 떼 돈을 버는 것이지요.
      철도 같은 인프라는 결국 산업체를 위한 사업으로 변했습니다.

  4. 『방쌤』 2015.06.22 12:32 신고

    무조건 빠르게 가고, 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전부는 아닌데 말이죠
    우리가 간과하거나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조금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궁금증을 가져봐도 답은 너무 뻔하게 보이는 것들인데 말이죠
    기술-경제적 성장과 접근을 막을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조화는 필요하다 생각되네요

    • 늙은도령 2015.06.22 15:08 신고

      우리는 물질적 편리함만 중시하는데 이는 산업체의 시각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 것입니다.
      공공성이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비지상주의와 물질만능은 신제품들의 홍수 속에 빠지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5. 프리뷰 2015.06.22 17:05 신고

    요즘 메르스 때문에 걱정이네요.
    빨리좀 진정되었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2 17:15 신고

      잠복기에 있는 슈퍼전파자가 문제이고, 최초의 감염자가 낙타가 아닌 인간으로부터 옮겨진 것이라면 변이가 일어났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럴 경우 풍토병이 되거든요.

  6. 공유의 플랫폼 2015.06.22 20:05 신고

    적당히 선을 지키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한국은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전에 너무 경제가 빨리 커져서 문제가 많은것같아요.

    • 늙은도령 2015.06.22 21:12 신고

      네, 그것이 문제입니다.
      압축성장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진보좌파라고 믿었던 나는 합리적(이 단어는 대단히 모호하고 형이상학적이지만 이를 대체할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자유주의자인 칼 포퍼와는 몇 가지 면(특히 과학철학을 바탕으로 해석해낸 경제와 역사의 재구성)에서 일치하지 않지만, 정치권력의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과 그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역사는 단순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 자신과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자유는 불멸의 가치다. 이것이 없으면 인류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이 평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이던 정신적이던 사회적이던 간에 평등이라는 것이 탄생과 함께 불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우리는 그 불평등을 구조화한 정치사회적 부조리와 부정의에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지 않는 한, 나라는 존재는 타인에게 비쳐진 다양하거나 엇비슷한 나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로든 경쟁이 존재하는 한, 타인이 지옥으로 다가올 수는 있어도 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와, 그런 다양한 나와 관계를 갖는 타인과의 접촉을 거절할 수 없다. 자살마저도 세상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하나의 선택이라고 주장한, 그래서 말 잘 듣는 노동자가 필요했던 초기 자본주의체제가 철저하게 배격했던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잠시 빌려보자.

 

 

“타방이 있어야만 일방이 있으며, 타방이 없으면 다른 일방도 소멸되어 버린다. 양자는 서로 직접 접경하여 객관이 시작되는 데서 주관은 끝난다. 양자의 경계가 공통된 것은 모든 객관의 일반 형식, 즉 시간·공간·인과율이 객관의 인식이 없이도 주관에 의해 안전히 인식”될 수 있다.

 

 

결국 사실이라는 객관적 팩트(시간과 공간, 인과율에 의해서 시계의 흐름에 따라 진열되는 역사의 단편들로 특정 가치체제를 거치지 않는 날것에 가까운 사실)는 의미라는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만, 내가 소중한 것만큼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과 믿음이 역사에 적시될 팩트(사건, 사실, 사람)를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인류의 위대한 현인이며 공화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정치학자의 입을 빌려보자. 그녀는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히이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전체주의의 기원》, 《혁명론》 등을 쓴 한나 아렌트다. 좌파와 우파를 떠나 오직 인간에만 집중했던 그녀의 사상(전체주의에 지나칠 정도로 속박된 정치철학 혹은 비판정신)은, 그것에 대한 네그리의 비판이 아무리 신랄해도(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의 자산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다음과 같은 통찰은 어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례에서 전례 없는 일을 추론하거나 현실의 영향과 경험의 충격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유추와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는 오히려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현실을 아무런 편견 없이 감연히 맞서 이겨내는 것이다.

 

 

내가 나의 능력에도 너무나 부치는 일인 인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유치하고 깊이가 턱없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는 가능한 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최대한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동시에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통해 바라보고 분석하고 비판할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지만, 그보다 크거나 다를 것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체가 부분보다 커야 할 이유는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부분이 전체에 예속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만이 강자와 승자 위주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편견 없이 맞설 수 있을 것이며,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 연대를 이룰 때 그들에 맞서 싸워 이길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의적 권력의 결정체인 새로운 제국과의 싸움이 어찌 간단할 수 있겠는가? 제국의 체제 논리 때문에 전 세계가 상시적 전쟁 상태와 유동적인 감시체제에 빠져든 상황까지 고려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어찌 그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노력하고 연대한다 해도 무적의 제국과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을 무너뜨리는 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나는 제국과 신자유주의 통치술과의 일전에 임해, 그 투쟁의 지평선을 넓히고자 한다. 더하여 이런 투쟁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그 투쟁들이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삶의 현장에서 행동과 실천으로 구현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며, 나는 그 거대한 전환의 현장에서 가능한 많은 변화들을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고 전하고 싶다. 그것만이 디지털 파놉티콘이라는 감시사회(각자도생사회 또는 삶정치로 포장되기 일쑤인 민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마도 거대한 전환의 실체를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바로 그것들, 그 무한한 가능성을 내가 다시 쓰고자 하는 역사이며, 세계사의 진정한 모습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할 권리란 없다. 부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강자와 승자의 역사에서 사라진 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재발견이며, 지상에서 보고 싶은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성지이기를 바란다.





P.S. 필자는 이 글을 쓴 이후 푸코와 벤야민, 벡과 바우만 등의 책들을 추가로 읽었다. 포퍼의 책도 더 읽었고, 그의 숙적이었던 토마스 쿤의 책들도 더 접했다. 최근에는 장하석의 책들을 읽었다. 그래서 생각이 조금은 변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을 통해 조금씩 풀어가고 있고, 지적공동체를 이루는데 성공하면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풀어낼 생각이다.



지식은 이성을 지혜의 영역으로 이끄는 거름이다. 철학은 지혜를 모아 실천적 삶을 형성한다. 출발점은 지식의 축적이다. 현대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섞여있어 제대로 된 지혜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는 철학의 부재를 불러온다. 필자는 운이 좋게 지식 축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고삐 풀린 이성을 통해 무수한 사유를 할 수 있어서 나름의 지혜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철학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음은 동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플라톤의 방식을 따라갈 생각은 없다. 나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나눌 생각이다. 최대한 쉽게 풀어내 나눌 생각이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방식은 푸코를 지향하되 촘스키에 가까울 것이며, 최근에 내가 주시하고 있는 장하석의 방식에 근접할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부디 건강이 허락돼 작은 지적공동체라도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삶의 스승들이 필요하고, 공동체의 성원들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줄 것이 많지만, 동시에 받아야 할 것도 많다. 내 안의 공간은 일종의 혼돈이다. 충만하면서도 배고프고, 만족하면서도 욕망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가진 것을 다 줄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5.09 20:47 신고

    1966년, 경남에서 태어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웠습니다. 박정희를 거의 신처럼 숭배했습니다. 그가 김재규에서 피살 당하자 통곡했습니다. 5.18광주를 '빨갱이' 천국으로 생각했습니다. 전라도와 김대중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의심하고, 생각하고, 비판하는 힘을 배우지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상하게도 군대가서 전라도 목포 선배를 만나 생각하는 힘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더는 것을 22년만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셋인데. 딱 하나 물려줄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라고. 그래야 너 자신이 주인이고, 주체의식을 가져야 다른 이들도 존중할 줄 안다고.

    • 일루와봐 2015.05.09 21:29 신고

      도령님 포스팅을 둘러보다, 아이 셋에게 물려줄 유산이 생각하는 힘이라는데 격렬히 동의하며, 님의 답글에 감동 받아 글 남깁니다.
      (한자를 잘 몰라 님이라 칭한 점 이해바랍니다 ;))

    • 늙은도령 2015.05.09 22:39 신고

      그렇게 사실을 넘어 진실을 접했을 때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철학자들도 진실, 혹인 진리를 접하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사람만이 진실과 접했을 때 변합니다.
      다만 그 변화가 오래가도록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생각하는 힘을 전해주는 것이 곧 지혜의 방식입니다.
      좋은 조건을 물려주면 편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지혜를 발휘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는 절대 경험하지 못한 채 삶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결혼하지 않아 아이가 없지만, 좋은 환경보다는 좋은 정신을 물려줄 것입니다, 님처럼요.

  2. base 2015.05.09 23:35

    고집도 대단하십니다. 건강생각해서 몇일 쉬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 늙은도령 2015.05.10 00:37 신고

      오늘 올린 글은 예전에 써둔 것을 조금 수정한 것이니 별로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글은 별 어려움없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자판을 두들기기까지 단순 작업의 에너지면 충분하니까요.
      오늘 하루 푹 쉬고 있습니다.
      다만 저번에 넘어져 다친 어깨와 며칠 전에 미끄러져 다친 무릎 주변의 근육을 원상회복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힘들지만 어쨌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니까...

  3. 이후 2015.05.10 00:22

    전 물리학과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잡지식과 사회경험을 비교분석하길 좋아했었습니다. 비록 전공자에겐 명함도 못내밀겠지만 나름 교양수준에서는 어느정도 자리잡았다라고 생각하는데 물리학과 사회 돌아가는걸 비교하면서 잼있는게 둘이 분명히 다른것이라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것과는 달리 전 둘이 매우 유사함을 발견합니다.
    양자역학의 신비로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 인간의 이중성과 닮아 있음을 느끼고, 사회현상 또한 엔트로피와 닮았다고 느끼기까요. 이런얘기를 타 사이트에서 하니. 그 사이트에서 꽤 유명하고 학식있는 분이 이러더군요. "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다르다. 그걸 연결시켜서 안좋은 결과가 나온것을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냐. 나치가 우생학을 받아들여 유대인학살을 저질렀다. 위험한 생각이다 " 이런식이었는데.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확고히 굳어지고 있죠.

    일종의 믿음이라고 보여질수도 있는데. 자연은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인간도 그것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고로 인간의 활동역시 마찬가지 둘이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행태를 보일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중력과 권력같은이죠.
    인간. 아니 생명은 자체로 권력을 지향합니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은 생존확률의 증가와 자손의 번영을 의미하죠. 그러기위해서 덩치를 키우죠. 그렇게 씨족사회.부족사회. 더나아가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안에서 다시 권력층이 생겨나고, 이게 우주에서 별들이 태어나고, 은하가 생기고, 태양계가 생기고 이런거랑 유사하다고 보거든요.

    물리학과 사회학의 연관성. 혹은 물리학적 미래의 예측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점쳐볼수는 없을까. 생각하는데 이건 좀 위험하기도 해요. 왜냐면 미래가 정해지면 그것이 좋던 나쁘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테니까요. 그래서 사회물리학에서 사회학으로 명칭이 변경된건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된걸까요?

    • 늙은도령 2015.05.10 01:08 신고

      물리학은 크게 고전물리학, 아인슈타인을 기점으로 상대성이론의 시대,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처음 밝혔지만 그가 부인한 양자역학의 시대로 나뉩니다.
      이 세계의 물리학은 근원에 관한 학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론물리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고, 특히 철학과 비슷합니다.
      이론물리학은 형이상학적 추론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고대의 물리학은 그리스신화에 접목됐고, 소크라테스학파에게 전수돼 근대까지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특히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물리학은 근대철학을 낳았고, 그것이 근대이성이 됐으며, 현대성으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근대이성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깨졌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이 부정된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식 3차원(절대적 시공간)을 넘어 4차원(시간이라는 개념의 등장, 시간도 광속 이하에서 변할 수 있다)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때부터 미래란 예측할 수 있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양자론이 양자역학의 문을 열면서 미래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그리고 와인버그를 거쳐 최근의 초끈이론까지 질서정연한 통일이론을 꿈꾸는 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심지어 미래는 무한대의 모습을 지닌다는 역사총합이론도 양자역학의 발전 덕분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파인만의 <물리학강의>를 보면 미래는 예측할 수 없음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했는데, 이것이 역사총합이론으로 가는 길을 열었지요.

      최근에는 양자역학은 원자단위의 공간에 적용되고, 이것에 상대성이론이 적용돼 우주 차원의 공간에 적용되고, 태양계 차원에서는 뉴턴 역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GPS인데 이 기술에는 세 가지 물리학법칙이 모두 적용됩니다.

      아무튼 물리학이 사회학의 기원이 된 것은 뉴턴 역학의 영향을 받은, 그러나 분자생물학은 꿈도 꾸지 못했던 다윈의 진화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을 잘못 이해한 스펜서가 사회진화론을 들고 나온 것이지요.
      이때부터 물리학과 철학, 사회학이 혼재하게 됐고, 역사라는 것이 등장했지만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정치경제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또한 패러다임의 개념을 과학혁명에 적용한 토마스 쿤의 과학철학이 사회학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논해야 하지만, 물리학이 사회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문학자나 진보좌파가 현대의 과학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저도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핵심은 아주 짧은 미래는 예측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유토피아도 없고.. 뭐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 완벽한 이론은 없습니다.
      저는 인간이 절대 거기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뉴턴역학부터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까지 모든 것이 공존할 것입니다.
      초끈이론이 이 모든 것을 연결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이론물리학(과학철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래서 정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치는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고, 그것이 최대한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니까요.
      학문은 분열하고 전문화됐지만 최근에 들어 융합이나 통섭이 유행하는 것도 일종의 패러다임인데, 다원주의적 접근을 하는 장하석까지 아직은 열린 상태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라 짧게 설명하기는 힘이 듭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포퍼와 쿤의 책을 보십시오.
      노이랏과 장하석까지 넓히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베르그송도 읽어보면 좋고, 특히 푸코도 보십시오.
      인문학의 한계를 깨달을 때, 칸트에서 헤겔을 거쳐 마르크스를 논할 수 있을 때, 보다 넓고 깊은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공부할 것은 널려 있습니다.
      저도 통합적 접근의 초기 단계입니다.
      많이 헷갈리고 어려운 작업이라 많은 전문가와 소통할 필요를 느낍니다.
      현재진행형인 것이지요.
      두서없이 막 썼습니다.

  4. 이후 2015.05.10 00:39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친족의 끈끈한 유대감이 가장 강하듯. 원자속의 핵력이 가장 강하고 범위는 작죠. 가족에서 회사가 되면 구성원에 충성을 요구하죠. 반대급부를 주고 충성을 받는데 이건 원자들이 상호 공유결합을 통해 하나의분자나 보다 큰 분자집단을 형성하는것과 유사하고요. 유대감은 가족보단 작지만 힘의 범위는 넓어지죠. 일정한 에너지로 이 결합을 끊는게 가능하고요. 마치 더 높은 연봉으로 회사에서 회사로 이직하는것과 같이. 이런식으로 하나하나 자연의 기본단위부터 들어가면 끼워맞추기로 보여질지 몰라도 매우 유사하더라고요. 한 개인을 사회적 원자로 보기도 하잖아요. 그냥 비유일수도 있지만 사실 관계를 따지다 보면 역할이 비슷하더군요.ㅎㅎ

    • 늙은도령 2015.05.10 01:16 신고

      비유와 은유는 이론물리학에서 필수입니다.
      님처럼 생각하는 방식은 입자물리학에 근거할 때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불확정성의 원리와 베타원리를 적용하면 조금 달라집니다.
      장이론과 제3의 과학도 있고요.
      파동이론을 적용하면 조금 더 달라집니다.
      강한 핵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중력까지 힘의 종류도 4가지나 되고요.

      절대 물리학만 보면 안 됩니다.
      그건 기초이지 전체가 아닙니다.

      철학에도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근원을 성찰하는 철학과 문제를 성찰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전자가 사회철학적인 것이고, 후자가 과학절학적인 것입니다.

  5. 트라이어 2015.05.11 08:36 신고

    뭔가 엄청 심오하네요.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저에게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ㅠㅠ

  6. 공수래공수거 2015.05.11 08:55 신고

    무엇보다도 이양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군요 ㅠㅠ

    • 늙은도령 2015.05.11 17:24 신고

      정말 답답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답답함을 참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7. 참교육 2015.05.11 11:40

    관념이 아니라 깨어 있는 지성인의 실천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남보다 먹물 좀 더 들어가면 권력에 빌붙어 이익이나 쫓는 사이비 지식인들로 인해 수탈의 역사를 계속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11 17:27 신고

      저는 국민들을 비판할 생각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이렇게까지 개판이 되는 세상을 받아들인단 말입니까?
      전 요즘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정말 어디까지 타락할지 모르겠네요.

  8. 공유의 플랫폼 2015.05.11 21:51 신고

    지식인을 비롯한 지성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때인것 같습니다. 모든사람이 평생직장..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다보면 더욱더 왜곡되겠지요.

    • 늙은도령 2015.05.12 00:43 신고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구별되기 힘든 지점까지 이르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구별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를 각오해야 합니다.

  9. 나비오 2015.05.11 22:05 신고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



한국에서는 사회생활이 이미 전자적 삶이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삶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한국은 대부분의 ‘사회생활’이 컴퓨터, 아이팟(갤럭시), 모바일 회사 안에서 수행되고 있습니다. 피와 살을 가진 존재들과의 사회생활은 부차적일 뿐입니다.


                                                     ㅡ 바우만과 라이언의 《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인용




최근에 들어 수많은 정치학자들은 불평등과 차별이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도한 보수정당이 계속해서 승리하는 이유를 각종 사례연구들을 통해 파헤치고 있습니다. 자유의 양이 늘어났음에도, 반민주적 행태와 반칙을 일삼는 보수정당이 계속해서 집권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민주주의와 자유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에서는 상당수의 나라가 민주주의가 아닌 사실상의 과두정치(경제적으로는 세습자본주의)로 접어들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추세가 한 세대만 지속되면 인류는 극소수의 거인과 절대다수의 난장이로 나뉜 채 우파 전체주의(보수적 시장자유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례연구들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과학철학자, 행동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등과의 공동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73년 이후 막대한 연구비 지원으로 보수우파가 세상을 정복한 것에 맞서려면, 가난하고 뿔뿔이 흩어진 진보좌파도 공동연구의 필요성에 눈을 뜬 것입니다.



공약만 놓고 보면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가 특별하게 구별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경험적 직관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마르크스가 될 수 없다면, 또한 성역화된 마르크스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저 혼자 잘난 진보좌파의 교만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이 공동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통치술로 통합된 부정적 세계화와 위험사회,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유동하는 공포로서의 현대성, 미디어를 통한 여론조작과 프레임 전쟁, 문명 충돌과 테러와의 전쟁이 이끌고 있는 예외상태의 확대, 강박적인 안전담론을 이용한 디지털 감시산업과 복합체의 번성, 이 모든 것들이 종합돼 만들어낸 소비사회의 자발적 복종과 낮은 투표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공동연구의 목표는 대단히 역설적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진보좌파의 근원에는 마르크스의 성찰이 자리하고 있지만, 바로 그 마르크스의 성찰 때문에 정치가 해체됐고, 이를 철저하게 파고든 부유한 보수우파가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특히 전향한 좌파들로 이루어진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이 신보수주의자로 변모해 권력의 핵심을 찾지한 것은 진보좌파에는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공동연구를 통해 21세기적 노동의 정의도 다시 내려야 하고, 책임을 약화시키는 네트워크가 아닌 책임을 강화하는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기술공학의 폐해를 드러내야 하고, 자유의 과잉이 사실은 자유의 결핍임을 설명해줄 철학적 기반도 다시 구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바우만이 얘기한 것처럼 ‘무언가가 이루어지도록 선택하는 능력’인 정치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인 권력도 구분해야 합니다. 가치의 연대는 디지털 네트워크만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현실의 행위로 이행될 때만이 가치의 연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되돌릴 수 있고, 혁명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현 집권세력은 권력과 자본, 언론의 삼각편대를 동원해 보수 성향의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낸 것이 적나라한 욕망이던, 당장의 이익이던, 지역감정을 건드리던, 감정선을 건드리던, 정치권 전체를 부패한 집단으로 만들던 그들은 현실에서의 승리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에 따라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세대에서 이기려 하지 않았고, 모든 세대에 분포돼 있는 보수 성향의 새대가리 유권자들(폴 크루그먼이 말한)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데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투표율이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데 성공했고, 또다시 승리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소리들로 시끄러울 때 가장 잘 작동하지만, 그것이 참여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불평불만에 머물 뿐입니다. 소수의 특권층이 사이버 공간에서 마음 놓고 떠들어댈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이유도 불평불만을 토로(감정의 배설)하는 중에 실천적 행위에 대한 욕구가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한 표의 위력이 커집니다. 100명이 투표하면 51표가 있어야 하지만, 30명이 투표하면 16표만 있어도 됩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는 새대가리가 될지언정 투표장으로 갔습니다. 생각이 많은 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썩을 대로 썩은 정치권의 새대가리가 되기 싫어 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승패가 갈렸습니다. 투표 당일에는 무조건 새대가리가 돼야 이런저런 생각없이 투표장으로 향합니다. 다리를 건너야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듯이, 집에서 투표소까지의 거리가 너무나 멀었나 봅니다. 단독입적으로 말하면 투표하지 않는데 이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2부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4.30 08:30 신고

    결국은 제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네요...
    선거는 전략입니다

    선략 수립에 실패했습니다
    다음 선거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말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안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30 12:15 신고

      투표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이 허상입니다.
      입만 아플 뿐이지요.
      투표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진정한 무임승차자입니다.

  2. wlsl 2015.04.30 09:21

    새대가리 유권자라구요?

    내가 보기엔 새대가리보다 못한 무뇌한 유권자이며 후손 앞길을 막고 있는 줄도 모르는 재한외국인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30 12:17 신고

      그렇게 생각하면 영원히 집니다.
      그들은 새대가리여서 투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투표에 관해서는 새대가리가 돼야 합니다.
      투표는 행위입니다.
      행위하지 않으면 무조건 집니다.

  3. Cong Cherry 2015.04.30 09:36 신고

    분명 투표율보면 고령이 많겠지요??
    젊은이들 인터넷에서 욕만 할게 아니라 투표를 했어야 할텐데요!!

    • 늙은도령 2015.04.30 12:18 신고

      고령이 투표를 많이 하는 이유는 별도의 글로 정리하겠습니다.
      아직 세대별 투표율이 나오지 않아서 뭐라 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권 성향의 유권자가 적게 투표한 것은 분명합니다.
      졌으니까요.

  4. 뉴론♥ 2015.04.30 09:53 신고

    5월1일이 근로자의 날이라 3일간의 황금같은 연휴네요 5월도 새롭게 열어가세요

  5. base 2015.04.30 10:31

    보궐선거에서 투표율이 40%가 넘지 않으면 무조건 야당은 패배합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찍은 저의 아버님도 이제 분별력을 상실하여 부정부패가 난무하여 나라가 썩어 문드러져도 박근혜와 그 일당을 두둔하는 현실을 보며 이명박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 놓았는지 한편으로 이해가 갑니다. 정치적 무관심, 무조건적 현실 수용, 나와 내 가족외는 관심이 없는 국민 의식, 선거 전략의 실패, 야권의 분열등등 패배의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새누리당을 찍지않은 많은 유권자들이 있다는것이 어두운 대한민국을 헤처나갈 희망이겠죠..

    • 늙은도령 2015.04.30 12:22 신고

      왜 민주주의가 퇴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가 가장 신자유주의적 나라인 점도 그런 현상을 강화시켰습니다.
      자발적 복종까지 가는 과정을 설명해 볼게요.

  6. 요원009 2015.04.30 10:34 신고

    원하는 결과가 안나왔다고 투표자들을 새대가리라 비하하는거 보니 님도 참.....

    • 늙은도령 2015.04.30 12:25 신고

      현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나온 말입니다.
      왜 새대가리 유권자가 승리를 가져오는지 밝힌 것입니다.

      가능하면 본문을 읽었으면 합니다.

  7. 바람 언덕 2015.04.30 10:44 신고

    지는 것을 통해 배우기라도 하면 될텐데요.
    문재인과 새정치에게는 남은 1년이 마지막 기회가 될 듯 싶네요.
    그 1년 안에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듯 합니다.
    통진당 사건 이후로 대안세력은 안 보이고, 진보진영은 분열로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나저나 젊은 층의 투표율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수고를 해도
    안된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나네요. 마음에 새겨야 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30 12:29 신고

      저는 승리하면 투표에 관해서는 새대가리 유권자가 돼야 합니다.
      뭐라 하던 내가 지지하는 쪽을 찍고 그 다음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선거유세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길 수 없습니다.
      청춘에 대한 글은 구상 중입니다.
      대단히 많은 것들을 고려해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많이 어렵습니다.
      보궐선거에서는 보수 성향의 젊은이들도 많이 투표하기 때문에 청년들의 투표율로는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의외로 일베가 많습니다.

  8. 참교육 2015.04.30 11:37 신고

    신자유주의 사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는 서님들에게 자유도 평등도 복지도 없습니다.
    거북이와 토끼의 경쟁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30 12:33 신고

      저는 낮은 수준의 경쟁에서 새정치가 졌다고 봅니다.
      새대가리 유권자가 돼야 투표장에 나오는데 철학자를 만들어 투표장에 나오게 하면 답이 없지요.

  9. 머무는바람 2015.04.30 12:25 신고

    새정치 연압 에휴
    새누리당 하고 차이가 뭔지 알려주세요 ㅜ.ㅜ
    다 같아보이는데 얼마나 경쟁력이 없은 새누리당을 에휴

    • 늙은도령 2015.04.30 12:36 신고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에 옮기기 힘듭니다.
      투표는 행위입니다.
      생각을 줄여줘야 했는데 생각을 늘렸습니다.
      그래서 졌어요.
      큰 담론이건 작은 담론이건 단순화시켜야 하는데 너무 큰 것을 말했어요.

  10. 이야기좋아 2015.04.30 12:51 신고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투표는 꼭 해야할것같아요
    이번에도 느꼈답니다!

    • 늙은도령 2015.04.30 13:13 신고

      투표해야 합니다.
      서민이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투표해야 합니다.

  11. 아쉬운사람 2015.04.30 15:35

    많이 화가나긴했지만 문재인 탓만하진 않으려합니다. 새정치입장에선 너무나 불리한싸움이었으
    니깐요~ 그냥 너무 고맙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좋아한다고 격려해드리고 싶습니다.안철수,김한길도 마찬가지고요~

    • 늙은도령 2015.04.30 18:08 신고

      저는 아직 패인에 대해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패인들이 떠오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조금 더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대선은 문재인이라는 개인의 힘이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기 때문에 보궐선거와는 다른데, 전 그것보다 총선의 승리를 위한 패인 분석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2. 2015.04.30 20:3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30 23:22 신고

      그렇습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킵니다.
      민주주의는 침묵하는 다수가 많도록 만드는 것이 특권층의 목표에요.
      그래야 자신들이 마음대로 해먹을 수 있으니까요.
      공적 업무의 민간 이양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키웁니다.
      매일매일의 삶에 허덕이게 만들거나, 막장드라마나 기타의 연예산업 등은 즐거운 것에 빠져들게 합니다.
      소비지상주의는 지독한 이기주의를 만들고 개인들을 파편화시켜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현대에는 그처럼 무수히 많은 수단을 동원해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합니다.
      공적공간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 사적인 것들로 가득차게 됨에 따라 정치는 사라지고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뚫어야 합니다.
      경쟁이 심해지고 연대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정치 무관심이 커지면 투표율이 떨어집니다.
      이때 유권자 동원력이 강한 조직을 가진 정당이 승리합니다.
      새누리당이 승리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노인분들이 투표에는 적극적이기도 하고요.

      총선까지 몇 사람만 투표하게 만드는 일이 생활정치고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정치의 부재로 잃고 있어요.
      투표율이 높고, 그래서 국민이 목소리를 모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최소 2배 이상은 잘 살 수 있습니다.
      일반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현대의 체제는 차별적이고 역진적입니다.
      그것을 깨려면 결국 정치밖에 없습니다.
      여성들이 그것에 눈 뜰 때 세상은 100% 달라집니다.

      님의 멋지고 의미있는 도전에 희망을 봅니다.
      조금씩 우리의 삶과 연결된 주제들을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것들을 얘기하면 좋을 것입니다.

  13. 이해인 2015.05.03 08:46

    정치는 비방이 아니라

    정책의
    설득이고 실천입니다.

    당신들이 정치하면
    요순시대가 온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의 思考는
    살인적입니다.(권투선수 타이슨의 귀물어 뜯기같아보임!)

    집권당은 가면을 쓴
    살인자들이기도 하구요 (명의의 허가받은 살인?)


    일반백성은
    적당히
    속기를 바라지요
    (1.체면상하지않음. 2.우리나라 못사는나라가 아님. 3.야성의 발언을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최고의 인권국가임....)

    그대들의 설득을 들어보면
    듣는사람을 무식쟁이 바보로 만듭니다.

    정치는 소수가 발악하는 분위기로 만들지 마세요.
    격이있어야 다수가 됨을 아셔야

    그대들이 추구하는 "나라에 도움"이 됩니다.




    영원한 야당에 올인하지않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희망을 기지듯
    적이없는 정책으로 고민하신다면
    다수가
    마음을 드리리라 봅니다.












    • 늙은도령 2015.05.03 09:39 신고

      정치는 비방이 아니지요.
      하지만 선거는 비방으로 난무합니다.
      현실 너머에 있겠다면 깨끗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문명도 야만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연이던, 타 민족이던, 계급이던, 계층이던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다수가 항상 올바르다면 세상은 이렇게 흘러오지 않았겠지요.
      설사 다수가 올바르더라도 행동하지 않고 침묵하는 다수로 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지요?

      다수가 되는 것은 별로입니다.
      세상이 정말로 다원적 가치를 가지려면 다수가 아닌 소수의 소리에 귀기울여야지 다수의 기득권에 안주하면 안 되지요.
      비판과 비방의 경계는 다수라는 이름 하에 그것이 대의인양 말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편하게 살고 싶다면, 다수에 있으면 최소한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뭐 그런 기타등등을 중시하면 늘 다수의 편에 서고 싶어합니다.

      다수가 옳다면 다수가 증명해야지요.
      아무런 증명도 안 하면서,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고 주류에 안주하면서 다수를 들고 나오는지요?
      현재에 만족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요순시대를 얘기한다면 님이 말하는 것에 담겨 있는 지독한 모순까지 껴안고 가시리라 보지만...

      요순시대를 바랐으면 마르크스의 오류를 비판도 하지 않지요.
      유토피아요, 그런 것 없습니다.
      승자가 신과 함께 하리라는 그런 덧없은 것들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제발 다수가 옳다면 입증 좀 해주세요.
      살인은 늘 승자들이 해온 것입니다, 대량으로.
      우파 전체주의도, 좌파 전체주위도.

  14. 하시루켄 2015.05.04 14:36 신고

    그러게요. 매번 이슈가 터지면 비판은 하면서 정작 투표소에는 가지를 않죠...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래서는 나라가 절대 바뀌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건 젊은층이 투표를 하지 않는 현실이 계속될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04 14:45 신고

      참 힘드네요.
      지금보다 잘 살려면,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투표하고 정치를 압박해야 한다고 아무리 글로 알려드려도, 자발적 복종이나 체념의 일상화가 정치불신으로 이어지니 답이 없네요.
      저도 할 만큼 하겠지만 노예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



사이버세상에서의 모든 활동은 그 배후에 어마어마한 양의 디지털(전자)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 데이터 정장장치(서버)에는 우리의 활동이 전자화된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디를 주로 방문하고, 어떤 것을 보고 사는지 모든 것이 기록됩니다.





이런 기록들을 축적해 데이터마이닝(분류화, 차별화, 파일화 등)을 거치면 개인의 이념적 성향과 기호, 취향만이 아니라 소득 수준, 소비 여력, 소비 패턴 및 주기까지 개별화된 상세자료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무심코 머물렀다 간 것들까지 낱낱이 분석되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까지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면 파리저가 말한 ‘필터 버블(인터넷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분석하여 필터링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인용)’에 이릅니다. 



우리가 똑같은 단어를 가지고 구글 검색을 해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집에서 PC와 노트북으로 검색해도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이는 같은 사람이 PC를 썼을 때와 노트북을 썼을 때 각기 다른 디지털 흔적, 즉 다른 정보를 찾고 다른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검색어가 똑같더라도 PC의 디지털 흔적과 노트북의 디지털 흔적에 따라 차별화되고 범주화된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아마존이나 예스24에서 책을 구입할 때 추천목록과 선호목록이 제시되는 것도 ‘필터 버블’의 한 형태입니다. 이런 방식의 마케팅은 거의 전 분야에 퍼져서 이제는 일상처럼 받아들입니다. 나와 누군가의 개인정보가 축적된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파리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개인화된 필터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에 의해 스스로 선전이 주입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보이지 않는 자동 프로파간다를 제공한다. 그것은 우리를 미지의 어두운 영역에 도사린 위험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놔둔 채 익숙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증폭시킨다.



이런 추천목록과 선호목록을 바우만은 ‘범주화된 욕구’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것 때문에 충동구매나 처음의 욕구보다 더 많은 것들을 구매하게 됩니다. 소비자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을 넘어 새로운 소비를 창출(필터 버블)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하는 최적의 주기까지 분석해 추천과 선호목록을 제시합니다.





이런 범주화는 소비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결제금액에 따라 소비자의 등급을 매겨 불량소비자들을 걸러내는 데도(역마케팅) 사용됩니다. 아이쇼핑을 많이 하는 사람, 소득 대비 실제 쇼핑을 많이 하는 사람, 소비 여력이 바닥난 사람, 승진했거나 보너스를 받은 사람 등등, 온갖 정보를 가공해 소비자를 나눕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이 모든 것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담당자(직원)의 수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막대한 포인트 적립기금이 조성됩니다. 기술 발전으로 직원수가 줄어들지만 소비자의 혜택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자리 감소는 이슈화되지 않습니다. 신문이나 TV광고처럼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은 손실비용이 막대하지만, 매일같이 갱신돼 갈수록 고도화되는 타겟마케팅은 손실비용이 거의 없습니다. 축적된 정보가 많을수록, 그래서 구매확률을 높일수록 마케팅비용은 줄어듭니다.



즉, 거대통신사나 카드회사 등에서 제공하는 막대한 포인트 적립금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긴 전자기록(빅데이터)을 활용하는 대가로 나온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자신의 마케팅 비용으로 차용해서 이윤을 극대화합니다. 부의 축적이 이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직원수의 감소에 따른 인건비와 복지비용 등이 줄어들고, 마케팅 비용 감소로 이익이 늘어납니다. 



기업이 제공하는 막대한 포인트 적립금은 무한대로 쌓이는 우리의 전자기록을 인공지능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거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는 소비를 하면서도 사업자에게 마케팅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필터 버블’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포인트를 사용했기에 개인적으로 볼 때 이익이 늘어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비가 늘어난 것(반대로 얘기하면 적금이 줄어든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초기 프로그램 구축비용만 있으면, 포인트 적립금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 서버비용은 컴퓨터 클라우딩 기법(소비자 PC의 저장장치를 활용할 경우에는 서버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에 일종의 지적사기라 할 수 있다)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자의 이익은 끝없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노동부터 소비까지 생존의 사이클이 한 바퀴 돌 때마다 부의 양극화는 커져가고 불평등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악화됩니다. 



막대한 포인트 적립금 배후에 숨어있는 것이 감시사회의 본질입니다. ‘필터 버블’을 수용한다는 것은 차별되고 범주화되는 우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하고, 타겟마케팅에 걸려들어 필요 없는 소비나 과소비를 하게 되면 기술을 독점하는 자나 집단에 대한 자발적 복종(디지털 노예)의 단계까지 이른 것을 말합니다. 매년 임금이 인상돼도 소비의 양이 늘어나면 늘 부족함에 시달리게 됩니다(만족의 결핍)



특히 추천목록과 선호목록은 자신의 과거와 타인의 선택에서 배제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더욱 무섭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도 타인과의 거리를 고려하기 마련입니다. 내 취향을 분석한 추천목록과 비슷한 타자의 취향을 분석한 선호목록은 선택의 자유를 축소시켜버립니다(인간의 변덕 때문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추세에서 뒤쳐지는 느낌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인류의 문명이 디지털기술과 첨단기기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에 따라 위험을 등지고 사는 위험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됐기 때문에 감시사회를 피할 순 없습니다. 이 때문에 위험사회의 동반자처럼 등장하기 마련인 감시사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르모트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기술의 편리함에 빠져버리면 극소수에게 이익이 독점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시대의 본질).



우리가 어느 선까지 감시사회(소비의 극대화가 목표)를 허락할지는 집단적 의사가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특히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조세정의에 이르면 정치적 선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촛불혁명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많은 토론이 필요하며, 기술 발전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에 천착해야 합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프의 철학이 정치적 구호로 그치지 않게 하려면 기술 발전이 초래하는 미래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을 초라하게 만드는 기술에 열광할수록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절대로 도래하지 않습니다. 기술전체주의의 전 단계인 감시사회는 수명 증가에 따른 1인가구의 증가와 타자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수록 더욱 극성합니다. 



개인정보 제공과 포인트 적립금, 그리고 감시사회… 행복하신지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뉴론♥ 2015.04.22 06:48 신고

    잘 모르던 부분인데 새롭게 알아가네요 애드센스가 업데이트 되서 요즘 머리가 아프네요

    • 늙은도령 2015.04.22 17:36 신고

      저든 아예 그대로 사용합니다.
      뭐, 돈이 덜 되더라도 더 이상 신경쓰기가 싫어서요.

  2. 耽讀 2015.04.22 08:20 신고

    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이제는 사생활도 없고, 비밀도 없습니다.
    권력은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22 17:37 신고

      정말 디지털 감시사회는 위험수위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전자적 기록이 쌓이면 기존의 업체들만 득이 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4.22 08:42 신고

    저도 어떨때는 깜짝 깜짝 놀랍니다

    발가벗겨진 기분을 가끔 느끼기도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2 17:38 신고

      네, 이제는 되돌리기에는 힘들 정도로 감시체제가 확립됐습니다.
      향후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4. 머무는바람 2015.04.22 12:24 신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인데 정보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04.22 17:43 신고

      디지털 사회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제가 통신사업을 할 때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것들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빅브라더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5. 루비™ 2015.04.22 12:51 신고

    오오...제가 전혀 모르고 있던 부분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네요.
    너무 감사드리며.....오후도 즐거운 시간 되세요~~

  6. 나비오 2015.04.22 17:24 신고

    지금 자판을 치면서도 사실 많이 불안해요
    어디까지 들여다 보는 것인지.... 말이죠 ㅠ

    • 늙은도령 2015.04.22 17:46 신고

      전자기록은 파기하지 않은 한 영원히 남습니다.
      우리의 변덕까지 분석해낼 수 있다면 그때는 절대 감시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7. 에쏘 2015.04.22 18:07

    좋은글 감사드려요- 저도 그랬지만 감시사회라는 인식 자체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듯 해요.. 맞춤형 광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 늙은도령 2015.04.22 21:28 신고

      네, 제가 사업할 때 매일같이 생각하던 것이었지요.
      지금 구글이 하고 있는 일을 구글보다 1~2년 정도 먼저 생각하고 사업화를 진행했는데 최근에 들어 현실이 됐습니다.
      감시사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8. 참교육 2015.04.22 20:32 신고

    무서운 세상입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삽니다.
    무식하면 용감한 것인가요?...ㅋ

    • 늙은도령 2015.04.22 21:28 신고

      그래서 제 같은 사람들이 글을 씁니다.
      님이 교육에 대해 글을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9. 하시루켄 2015.04.22 23:10 신고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사람의 생활이 모조리 컴퓨터에 의해 지배당하는 내용의 영화가 있었는데 그영화가 떠오르네요.
    요즘에는 어디에 접속만 하면 개인정보가 줄줄 새나간다고 하니 겁도 나지만 그렇다고 인터넷 없이 살기는 또 힘들어 졌으니... 참 난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2 23:14 신고

      그렇기 때문에 기록을 지울 수 있거나, 수집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제정돼야 합니다.
      또한 불법적인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사용하면 징벌적 과징금을 물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감시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디까지 감시를 허용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질서를 바라는 것은 풀 수 없는 그리고 충족될 수 없는 목마름입니다. 이 욕망은 각자의 현실이 무질서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서 무질서 상태를 고치도록 요구합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감시가 결코 활력을 다하거나 일감이 없어질까 두려월 필요가 없는 얼마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 데이비드 라이언 대담 《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인용 



9.11테러와 비교하기 힘든 참사지만 세월호의 침몰이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미국에서처럼 감시와 안전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며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상태까지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왔음에도 왜 세월호참사나 대형화재, 성폭력 등처럼 터무니없는 참극과 사건들이 쉴새없이 일어나는 위험사회가 됐는지,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은 사라졌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감시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은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기본권조차 포기한 채 새롭게 등장한 감시사회의 안전 담론에 자발적 복종을 보여주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 시민의 안전을 높이기보다는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는데 유용한 감시장비들의 확대 설치(범죄율이 떨어졌다는 유의미한 증거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를 반대하는 여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사회의 보수주의화). 



그들은 개인의 힘으로 체제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체념 또는 자기 변호)하기에 그것에 적응해서 남들보다 조금 낫게 살아남으려는 것입니다(개인의 보수주의화). 이런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감시권력과 안전 산업의 먹거리로 전락한 삶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자유의 확대를 위한 투쟁이었다는 사실이 전설의 영역으로 증발해버린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안전을 중시하는 안전담론의 강화는 사회의 보수화와 인식의 보수화를 동시에 강화합니다. 안전을 높이기 위해 질서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자유와 충돌하기 일쑤여서 가진 것을 지키고 늘려야 하는 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사회와 인식(개인)의 보수화를 추동합니다. 안전담론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 민주주의는 약화되기 마련입니다. 





OECD 가입국 중 부의 불평등과 사회복지지출이 가장 나쁜 대한민국이 사회갈등지수도 최상위에 위치하는 것도 안전이란 명목 하에 너무나 많은 자유와 권리가 억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분단 현실을 악용하는 수구언론들의 안보상업주의까지 더해지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 헌법상의 기본권(지난 수백 년 간 숱한 피와 희생으로 쟁취한 것들)을 제한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를 강화하는 이런 추세가 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도 돌이길 수 없는 지경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폭력집회로 몰고 가는 것을 넘어 무차별적인 체포를 자행하는 것도 안전담론의 득세를 반영합니다. 사회의 인식의 보수화가 무한대로 강회될 순 없지만 임계점을 돌파하기 전까지는 이런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일원인 언론(특히 방송)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반인륜적인 사건사고 뉴스를 집중보도함으로써 위험과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범죄율의 증가나 하락 같은 것은 보도하지 않고, 왜 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는지도 보도하지 않고 오직 위험과 공포만 부추깁니다. 기존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런 상황에서 최대 이익을 거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온갖 오보를 쏟아내며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생중계한 언론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보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도, 자사의 매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 관련 보도도 선정성을 부각하는 방식을 유지한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9.11테러 이후의 미국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안전담론에 매몰돼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 등이 축소되고 침해받는 감시체제의 강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발생합니다. 최소 250명에 이르는 어린 학생들이 체제와 어른들의 잘못으로 죽었음에도 세월호가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일베 같은 극우주의자들이 설칠 수 있는 것도, 이들을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세월호 집회의 폭력성만 부각하는 언론들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테러와의 전쟁이나 안전담론에 매몰된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와 그 결과인 자발적 복종 때문입니다.





21세기가 위험사회와 감시사회, 정신이상사회가 된 것은 상위 1%에 속하는 지배엘리트와 슈퍼리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한 세대 만에 상위 1%에 오른 자들은, 중산층이 그들처럼 치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장벽을 세웠고, 전문직종에 속한 자들도 상위 1%처럼 장벽을 구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졌고, 피케티 교수가 입증한 것처럼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세습자본주의의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이런 극단의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 참극입니다. 불평등사회에서는 이익이 상위 1%에 집중되지만, 위험은 하위 99%에 전가되는 ‘리스크 대이동’을 구조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월호 참사는, 세습자본주의 때문에 경제규모 12위인 대한민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후진국형 장사를 할 수 있는 빈곤시장(마이크로 크래디트, 즉 미소금융도 이에 속합니다)이 형성됐음을 뜻합니다. 폐선이 돼야 했을 유람선을 헐값에 들여와 위험천만한 항해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리스크 대이동'이 초래한 위험을 관리하려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디지털 감시체계가 필요하고, 프라이버시 침해와 자유의 축소를 숨기기 위한 안전담론이 분출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방송을 통해 매일같이 보도되는 오늘의 사건사고(최근에는 테러)가 이를 주도하고, 드라마와 영화, 리얼리티쇼가 이를 확대재생산합니다.



거칠게 살펴봤지만,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논리는 허구로 가득합니다. 디지털 빅브라더의 등장은 위험사회의 폐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어떤 경험적 증거가 없습니다. 소비할 것이 널려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그저 편하게 살다 편하게 죽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함에도.



자발적 복종은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욱 가난해지고 위험해지고 자유마저 축소되는데도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포인트 적립과 조세제도, 원전의 확대와 무기의 현대화, 노동유연화와 민영화 및 낙수효과 등인데 다음 글(감시사회, 개인정보 제공과 포인트 적립금)에서는 감시사회의 자발적 복종이 시작되는 지점인 포인트 적립부터 다루어보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4.21 07:54 신고

    기득권은 끊임없이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게 나라와 민족, 사회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애국심, 애사심, 지역사랑 등등. 하지만 자신들을 철저히 자신들 뱃속을 채웁니다. 그들에게 진정항 애국심과 민족애는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이지요.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06 신고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을 자발적 복종으로 이끕니다.
      정치적 복종이 실제는 기술이나 경제적 이권에서 나옴입니다.
      이것을 보수정당이 너무나 잘 알아서 진보정당이 자주 지곤합니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박근혜 임기 마지막에 경제가 좋아지면 또 새누리당이 승리합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4.21 08:34 신고

    사회 갈등지수가 1을 넘어서지 않은것이 이상할정도입니다
    터키나 우리나...

  3. 참교육 2015.04.21 09:54 신고

    자본과 권력 앞에 자발적 복종...!
    무섭습니다. 말로는 민주주의이 주권이니 하면서 그 실은 자본의 노예, 권력의 아바타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11 신고

      요즘은 소비주의에 의해 자발적 복종이 일어납니다.
      그 역할을 기술이 합니다.
      최근 권력이 개판이어도 정권을 유지하는 이유가 정보통신기술과 자동화의 발달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4. 바람 언덕 2015.04.21 10:55 신고

    기득권이 쳐놓은 거대한 그물 속에서
    다수 대중들이 허우적 대고 있습니다.
    대중이 시민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이 나라에 희망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요즘만큼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토크빌의 전언이 뼈에 사무치는 적이 없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14 신고

      국민의 수준을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유럽에도 시작됐고, 미국은 상당 부분 진행됐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5. 구름바다 2015.04.21 11:32

    날카로운 지적, 정말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갖는 것이 중요한 요즘이군요.
    이미 공영 TV 에서 하는 뉴스와 거리를 두고 살기에
    괴로운 뉴스를 볼 일이 거의 없지만
    하루가 멀다 않고 쏟아지는 정치권의 비리에
    다시 한 번 우리 모두가 좋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더 고생하게 된다는 것을 한 사람이라도 더 깨달았으면 합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16 신고

      네, 노력하겠습니다.
      매일매일의 이슈만 따라가다 보면 현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집니다.
      조금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룰 생각입니다.

  6. 공유의 플랫폼 2015.04.21 15:14 신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정치인과 정부의 문제도 있지만 국민이 바뀌지 않는다면 힘들듯 하네요.

    • 늙은도령 2015.04.21 15:19 신고

      국민이 조금만이라도 공부하면 좋을 텐데.....
      원체 삶에 치여살도록 체제가 구축돼 있어서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나 봅니다.

  7. *저녁노을* 2015.04.21 16:31 신고

    정치인이 바뀌질 않으니..
    국민이 깨어나야할 듯...합니다. 쩝~!~

    • 늙은도령 2015.04.21 19:15 신고

      국민을 위한 정치와 정부가 됐으면 좋겠어요.
      과학기술을 제대로 활용해 좋은 결과를 내려면...

  8. 트라이어 2015.04.21 18:47 신고

    앞으로 많이 개선될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9. 나비오 2015.04.22 17:25 신고

    복종으로는 선진국의 척도를 뽐낼 수가 없으니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들어 두마리 토끼를 다 얻으려는 정치적 수작이죠

    • 늙은도령 2015.04.22 17:30 신고

      세월호 유족들의 소원을 들어주기가 점점 어려워지네요.
      무서운 대한민국입니다.



위키백과는 거의 모든 미래의 먹거리와 연결되는 빅데이터와 그것이 사용된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필자가 정보통신사업을 할 때 꿈꿨던 것이 빅데이터를 이용한 맞춤형 서비스와 행동예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그것을 각각의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메일과 문자서비스(MMS와 영상을 보내는 것도 동일한 방식이다)일 것이기 때문에 이런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빅데이터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데이터 수집 및 관리, 처리 소프트웨어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는 크기의 데이터를 말한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캠프는 '다양한 형태의 유권자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이를 분석함으로써 '유권자 맞춤형 선거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미국은 부시 행정부의 막가파식 국제 경영에 반발해 폭발 직전에 이른 반미감정을 누그려뜨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 업무의 무차별적인 민영화와 외주화 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연방정부를 물려받았고,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양대 전쟁비용 때문에 연방정부 재정이 고갈된 상태라 오바마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부시 행정부의 노선을 일부 수정함에 따라 노벨 평화상은 탈 수 있었습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저자 프랑츠 파농 식으로 말하면 '오바마는 백인이 지배하는 워싱턴 정가에서 그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성공한 검은 피부의 백인 대통령'에 불과합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오른 이후 한 일이라곤 누더기 전락한 '오바마케어'를 통과시킨 것과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양적완화로서 주식시장을 원상태로 회복시킨 것이었습니다(나오미 클라인이 《No Logo》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참조할 것).

 

 

아무튼 오바마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방법에는 탁월했지만 그 다음의 통치에서는 평균 정도에 그친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는 오바마 캠프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오바마 캠프는 유권자를 '인종, 종교, 나이, 가구형태, 소비수준과 같은 기본 인적 사항으로 유권자를 분류하는 것을 넘어서서 과거 투표 여부, 구독하는 잡지와 신문, 마시는 음료 등 유권자 성향까지 전화나 개별 방문을 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권자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통합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인 바터필드 시스템에 저장했습니다. 이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유권자 성향 분석, 미결정 유권자 선별, 유권자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권자 지도'를 작성한 뒤 '유권자 맞춤형 선거 전략'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위키백과에서 인용) 

                                                              

 


사실 빅데이터는 모든 분야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가장 원했던 것입니다. 보험회사가 각종 통계자료를 축적해서 보험상품에 대한 가격과 수익율을 계산했듯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는 기업들은 타겟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소비자들에 대한 정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TV광고는 단가도 높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관계로 광고 대비 매출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의 성능을 결정하는 반도체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기업이 원하는 빅데이터 구축이 가능해지자, 기업가들은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다가갈 수 있었고, 마침내 구글이라는 기업도 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필자가 이통사들과 함께 수많은 프랜차이즈 고객들을 상대로 빅데이터를 구축해 각각의 업체마다 최적의 맞춤형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은 교회와 학원, 병원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고, 스타들의 팬관리에도 적용이 가능했습니다. 보험사와 카드사 은행과 증권사 등도 확대적용이 가능할 것이었습니다. 운송업체와 대리운전 전문업체, 유통업체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최종적으로는 여론회사와 리서치 회사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필자가 망한 후에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생각하는 컴퓨터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획기적인 이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데이터의 양이 쌓이고 축적될수록 인간의 뇌에 근접한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보의 축적이 무한대로 늘어나면, 그러면서도 경제성이 있다면 인간의 뇌에 근접한 인공지능의 출현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참조할 것). 

 

 

예를 들면 제가 정보통신사업을 할 때 유행했던 음성인식기술을 들 수 있습니다. 말로써 모든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꿈의 시대로 접어들려면 음성인식기술이 상용화돼야 하는데 이것에도 빅데이터는 필수적입니다. 보통 음성인식율을 높이려면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을 선정(많을수록 좋다)해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읽도록 만듭니다. 발음이 좋은 사람부터 알아듣기 힘들 만큼 발음이 나쁜 사람까지 똑 같은 단어를 읽게 만들어 그것들을 서버에 축적한 다음에 수없이 되풀이해서 똑 같은 단어를 발성한 다종다양한 음성과 해당 단어의 매치율을 최대화합니다. 



이런 과정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데이터 마이닝된 단어들이 늘어나 음성인식율이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아직도 노이즈 제거라는 핵심사항이 남아 있지만 음성인식율이 높아지면 노이즈 문제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빅데이트를 활용하는 방식 중 하나에 속합니다. 구글이 이용자의 수많은 검색기록과 서핑기록, 사용기록 등을 축적해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이유도 사용자의 행태를 확률적 계산에 따라 유추해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음성인식에 있어 가장 힘든 일이 사용자의 음성과 섞이기 마련인 노이즈 제거이기 때문에, 잡음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사용하면 인식율은 높아집니다. 문제는 이 정도 수준의 인식율이면 개발비와 투자비를 회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 때 음성으로 전화를 거는 휴대폰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인식율이 떨어져 곧바로 사라졌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가 곧바로 시들어버린 것과 동일한 과정을 밟은 것이지요. 

 

 

특히 한글의 경우에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영어에 비해 인식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보통 음성인식이 제품으로서의 경쟁력을 지니려면 인식율이 98~99%에 이르러야 합니다. 고도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원자력 같은 경우에는 99.99%의 인식율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필자가 사업하던 당시에는 한글의 인식율이 50% 수준에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음성인식의 최하의 단계인 TTS(텍스트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것)도 상용화되기에는 인식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대부분의 빅 데이터 분석 기술과 방법들은 기존 통계학과 전산학에서 사용되던 데이터 마이닝기계 학습자연 언어 처리패턴 인식 등이 해당된다. 특히 최근 소셜 미디어등 비정형 데이터의 증가로 인해 분석기법들 중에서 텍스트 마이닝, 오피니언 마이닝, 소셜네트워크 분석, 군집분석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텍스트 마이닝: 비/반정형 텍스트 데이터에서 자연 언어 처리 기술에 기반하여 유용한 정보를 추출, 가공

오피니언 마이닝: 소셜미디어 등의 정형/비정형 텍스트의 긍정, 부정, 중립의 선호도를 판별

소셜 네트워크 분석: 소셜 네트워크의 연결 구조 및 강도 등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명성 및 영향력을 측정

군집 분석: 비슷한 특성을 가진 개체를 합쳐가면서 최종적으로 유사 특성의 군집을 발굴

                                                    


오랜 기간 동안 쌓인 데이터를 마이닝하고 분석한 결과, A라는 사람이 매월 3주차의 비 오는 수요일 오후 8시 경에 홈쇼핑에 접속해 특정 제품군을 많이 사는 경향이 있다면, 같은 조건이 날이 돌아오면 오후 8시 직전에 A의 휴대폰에 특별할인쿠폰을 발행해서 구입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소비자가 구입 확률이 가장 높은 때가 언제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빅데이터가 맞춤형 광고나 서비스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지만, 인간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어 점에서 무서운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성능은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요? 특히 인간처럼 생각하고 추론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어떻게 구성하면 이것이 가능해질까요? 구글도 자신의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는 까닭에 최상의 알고리즘을 추측할 수 없지만 빅데이터의 양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의 출현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인공지능에 관한 이론은 이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인공지능이 인류를 공멸로 이끌 최악의 위험이라고 했지만, 구글 등이 이를 인정할 리 없습니다. 현재의 포털이라는 것도 인공지능형 검색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주어진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것부터 최대한도로 순식간에 끌어오는 검색엔진이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빅데이터에 대한 아주 조그만 인식이 생겼으니 다음 글에서는 구글이 가장 앞선 상태인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빅데이터가 왜 감시사회라는 빅브라더의 출현으로 이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세계 최정상의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인 알파고와의 1국에서 졌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라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1. 2014.07.11 08:27

    비밀댓글입니다

  2. 솔숲향기 2014.07.19 07:49

    인공지능 컴퓨터가 나오면 지배 하는자 지배 당하는자,
    이런 사회가 더 뚜렷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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