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언론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은 손혜원의 무차별 난사가 분기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종편과 보도전문방송까지 이땅의 모든 방송사들이 김태우와 신재민의 폭로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가라앉은 후 문재인 대통령에 관한 보도량을 대폭 줄였습니다. 손혜원에게 가장 많은 총알세례를 받은 SBS와 TV조선이 문프를 저격하는데 올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KBS와 YTN까지 이에 가세한 것은 모든 방송사들이 문프를 격침시켔다고 일치단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KBS <9시뉴스>와 YTN의 저녁뉴스 등에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 판사의 이력을 물타기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KBS <9시뉴스>와 YTN의 저녁뉴스는 성창호 판사가 박근혜와 김기춘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등 보수세력에게 유리한 판결만 내린 것이 아니라면서 그에 대한 대중의 비판을 음모론이나 마녀사냥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박근혜의 형량과 추징금이 터무니없이 낮았던 것은 성창호 판사가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기 때문임에도 그를 비호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존재론적 위기에 몰린 JTBC 뉴스룸의 손석희만이 기계적 중립이라도 지켰지만, 나머지 방송사들은 김경수 지사의 법정구속을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정당성 여부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떤 방송사도 성창호 판사의 판결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않았으며, 사법농단 잔당의 보복판결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을 이용해 행정부 대 사법부의 싸움으로 몰고가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방송사들이 이런 편향적이고 일치된 보도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들과의 거리를 갈수록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을 이명박 정부의 4대강공사와 동일한 사업으로 위치시킴으로써 문프를 이명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습니다. 이런 보도는 문프의 J노믹스와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랜들리와 동일시할 때와 2019년의 경제상황을 2009년의 경제상황과 동일시할 때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프의 J노믹스는 수요(소비와 저축을 늘리는 노동자와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와 공급(토건재벌의 배만 불리는 인위적 경기부양)을 모두 고려한 신케인주의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는 오로지 공급만 고려한 한국판 신자유주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두 개의 정책방향은 정반대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책방향의 차이를 고려하면 예타 면제 사업과 4대강공사는 완전히 다른 사업입니다(이에 대해서는 문프의 결단, 예타 면제사업으로 국토균형발전 이룬다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도 이런 차이를 다를 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방송사들은 이런 차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문프의 민주적 정당성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문프와 시민을 갈라놓는 방송사들의 담합행위(현상을 보고 추정한 것이다)는 모든 뉴스와 시사프로에서 문프 관련 보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화룡점정에 이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집니다. 문프의 모습을 방송화면에서 접하지 못하면 마음이 거리는 더욱 멀어집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문프를 제외하면 어떤 방송사의 뉴스와 시사프로에서도 문프 관련 보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 방송사들이 담합하지 않았다면 이런 급격한 변화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문프 관련 보도의 빈자리를 자한당의 황당무계한 문프 저격으로 채우는 편향적 행태입니다. 최근에 들어 방송사 뉴스를 보면 나경원이 박근혜를 대체한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경원 원내대표를 대통령 시절의 박근혜처럼 내보냅니다.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가 문프가 아니라 나경원이라도 되는양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곽상도의 폭로에 자리한 불법성은 외면한 채 문프에게 불리한 내용만 편집해서 내보냅니다.

 

 

이런 일련이 과정을 통해 문프는 시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불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문프의 일정을 빅데이터로 분석(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빅데이터 분석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한 결과가 '방콕 대통령'이었다는 자한당의 황당무계한 주장에도 힘이 실립니다. 기승전-최저임금 프레임을 통해 문프를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조중동의 '노무현 죽이기'의 핵심 프레임)로 만들었으니 이제는 시민과의 거리를 떼어놓는 것이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방송사와 자한당의 연합작전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런 몰아가기는 언론권력과 정치권력이 경제적 이익을 고리로 기존의 기득권을 공유하고 강화하는 반민주적 방식입니다. 미국 최고의 정치학자인 셸던 월린이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서 개념화한 '시민 없는 민주주의'의 한국판 버전이라면 제일 정확할 듯싶습니다. 상류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방송사와 재벌 및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한당의 보수기득권 연합은 민주진보정부를 모든 권력의 원천이자 최종 결정자인 시민과 갈라놓는데 도를 튼 놈들입니다. 이런 연합은 한국 현대사의 60년을 지배한 압도적인 카르텔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제외하면, 이런 종합적인 접근과 분석을 내놓지도 못하는 김어준과 그 똘마니들은 중량감 없거나 구좌파적 인사들만 초대해 음모론적 잡담만 늘어놓을 뿐이어서 문프의 성공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김경수 지사 법정구속은 항고심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1심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방송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문프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떠들어대는 것도 기승전-최저임금과 똑같은 프레임 설정으로 문프의 조기레임덕 조짐을 기정사실로 확정지어 버립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만 중요할뿐, 다른 무엇도 고려하지 않는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보이콧을 과대포장해 보도하는 것도 문프의 조기레임덕 조짐을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몰고가려는 기만적 술수입니다. 제 접근과 분석이 맞다면 며칠 또는 한두 주 내로 문재인 대통령 특검 요구를 거쳐 탄핵 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조중동의 실질적 직원이나 다름없는 칼럼니스트나 오피니언을 통해 탄핵론에 불을 지필 것입니다. 방송사가 문프 탄핵을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조중동의 지면을 이용할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물론 수구 꼴통의 놀이터로 변질된 유튜브방송에서 탄핵 얘기가 나올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요. 그것이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 포탈 등을 통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면, 조중동의 지면을 통해 '국민의 이름'으로 문프의 탄핵이 공식적으로 거론되겠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종편 등에서 네티즌의 목소리라며 가볍게 다루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로를 거치던 문프 탄핵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다음,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것으로 제 1라운드가 막을 내릴 것입니다.

 

 

문프 탄핵론을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이 목표인 방송사와 자한당의 연합공격의 제 1라운드가 막을 내리는 날이 100주년을 맞는 3.1절 직전이거나,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답방일 직전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그럴 때만이 인류사적 사건으로써의 거대한 전환이 최악의 환경에서 치러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문프의 지지율 상승도 최소화할 수 있으며, 태극기부대를 앞세운 대대적인 김정은 방한 반대집회도 가능해집니다.  

 

 

전도된 전체주의로써의 '시민 없는 민주주의'가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문재인 정부가 하나씩 실현해가고 있는 와중에 나온 것은 '급진적 민주주의'로 미끌어진 프랑스혁명 이후의 구체제 복원과 비슷한 것입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문프의 재조산하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이기에 구체제의 기득권이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수많은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한당과 조중동, 종편, 보수경제지, 보수논객, 수구꼴통 유튜버들이 좌파독재를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것도 이런 공간들을 파고들기 위함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깨어난 시민들의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만들거나 분리되도록 만드는 수많은 공간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구체제의 복원이라는 반동적 분위기를 확장해갑니다. 기승전-최저임금에 이은 김경수 지사의 법정구속은 반동적적 분위기가 실존적 대중 동원으로 비약하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합니다.   

 

 

앙시앵 레짐, 즉 구체제의 복원은 시민불복종과 초일상의 정치, 시민행동주의, 예비적 권력의 집단적 발현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촛불혁명에 종언을 고하는 반동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이럴 경우 마거릿 캐노번이 《인민》에서 풀어낸 다음과 같은 인민 주권의 본질과 신화가 일상의 삶으로 밀려난 각각의 개인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언론권력으로서의 방송사들과 정치권력으로써의 자한당의 연합공격이 진정으로 노린 것도 인민 주권의 본질과 신화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또한 (근대성의 특징이기도 한) 정치를 통한 구원을 약속하는, 구원적 전망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 약속된 구원자가 바로 '인민'이다. 하나의 신비로운 결속체로서 인민은 비록 우리, 보통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극적이고 구원적인 정치적 출현을 가능하게 만드는 권위 있는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인민의 주권을 일상의 정치적 실천 속으로 옮겨 놓을 수 있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초월적인 주권 인민이 어떻게든 정치적 쇄신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떨쳐 버릴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마고성 2019.01.31 06:53

    지금 이 시점 다시 정신차리고 뭉쳐야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ㆍ대통령한명만 바뀌었다는말 너무 실감합니다 ㆍ저저들의 저항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ㆍ

    • 늙은도령 2019.01.31 07:32 신고

      행동할 때입니다.
      촛불이 지켜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2. 기레기처단 2019.01.31 10:02

    단순히 재벌들의 압박 차원을 넘어서서 기레기들 대부분이 자한당 광신도들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할거 같군요

    진짜 문 대통령에게 상상을 초월한 적대감을 갖고 잇는게 분명하네요 진짜 이것들과는 상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겟네요

    • 늙은도령 2019.01.31 13:03 신고

      손헤원의 잘못이 제일 컸고, 이재명과 안희정, 손석희 등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면서 민주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을 강화한 것입니다.
      자한당 정부에서는 광고수익도 좋으니까 더욱 기레기 짓거리에 올인한 것이지요.

  3. Laughhaha 2019.01.31 12:41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거스르다니.. 어마어마한 역풍이 되길 바랍니다.
    어둠이 깊어야 새벽이 오듯, 멋지게 전화위복이 되길. 저들은 국민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믿습니다.

    • 늙은도령 2019.01.31 13:03 신고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주권재민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4. 스마일 2019.01.31 15:13

    과거를 잊어버린 민족에겐 내일이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반복되는 시행착오도 되풀이되면 만성이 되고 그러한 쳇바퀴속에서 자존감을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밝힌 촛불이 바람에 스러지지 않도록 가림막이 되어야 합니다.
    노짱이 하셨던
    저를 지켜주셔야 한다는 말씀과 저를 놓아주셔야 한다는 말씀에도 그 뜻을 간과했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민주주의의 걸음마가 다시금 좌절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적폐청산..
    무엇보다도 친일매국행위에 대한 진정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들의 만행이 그치질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들어야 할 촛불은 그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9.01.31 21:33 신고

      네, 최종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적폐청산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끝납니다.
      언론과 자한당을 손볼 수 없다면 어떤 개혁도 실패합니다.

  5. 나무들 2019.02.01 00:17

    눈을 뜨고 있습니다.
    한번 실수했으면 되었지 두번은 할수 없습니다. 저너머 광장에 불빛이 보이면 서랍속 묻어둔 그 초하나 들고 그 거리로 나가겠습니다. 내가족과 내아이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9.02.01 03:55 신고

      문재인 정부 동안 어디가 썩었는지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누가 대한민국을 부패와 비리의 천국으로 만들려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구기득권 중에서 체제의 간수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독재도 누군가는 동의하고 조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9.02.01 08:29 신고

    나라를 망하게 할려는 언론들의 정치 기획입니다..

    건강한 설 연휴 보내세요..



우리는 외부에 나가 파괴행위를 하는 데 아주 익숙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면 전투보다는 건설에 더 시간을 쏟을 겁니다.


                                                    ㅡ 피터 시아렐리 전 미 육군 기갑부대 사령관, 《쇼크 독트린》에서 재인용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돌풍을 일이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두 편의 영화에서 무너진 유일제국의 뒤틀려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을,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에 의해 세상의 주변부로 밀린 백인남성의 입장에서 다루었는데, 트럼프 돌풍의 상당부가 이런 백인들의 정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는 <그랜 토리노>에서 소위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국 정계와 재계, 군부, 종교, 허리우드, 언론 등을 독식하고 있는 슈퍼엘리트(라이트 밀스가 정의한 ‘파워엘리트’의 21세기 버전)의 정반대에 서있는 저학력‧중하위층 산업노동자이며, 계속해서 시대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백인남성의 피해의식을 다루었다. 



교묘하게 포장했지만 이들은 청교도적 가치에 따라 가족과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자식들은 모두 떠났고,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재산만 노리는 등 남은 것이란 미국식 산업자본주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차 한 대(그랜 토리노)와 집 한 채 뿐이다. 제국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모든 것과 단절한 채 지내면서도, 미국적 정신과 가치의 부활에 한 줌의 희망을 남겨둔다.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은 새로운 이웃으로 자리한 베트남 이주자 가족에 대한 구원의식으로 대체된다. 주인공의 비극적 죽음(종말론적 영웅의 죽음은 희생과 구원이란 명분으로 포장될 때 가장 울림이 크다)은 극도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은퇴한 백인노동자가 가족도 아닌 인종적 타자에게 희망을 두는 것으로 그려진다. 퇴락한 아메리칸 드림의 21세기 버전이 존재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되살아나기를 희망한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순간, 주인공은 가장 폭력적인 방식을 유도하는 비폭력적 저항의 희생자로 대치된다. 그를 죽인 폭력배들(이들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이라크 스나이퍼로 대체된다)은 가해자이기 전에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피해자임에도 그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백인남성 산업노동자의 피해의식을 극대화한다.





이런 극단적인 폭력의 대물림과 비극의 패러독스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을 통해 일그러진 애국심으로 한 단계 올라선다. 한층 젊어진 주인공은 (제국의 허상과 치부를 폭로한 카트니라 피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국의 종말을 표상했던 9.11사태와 이라크 전쟁으로 ‘back to the future'를 감행한다. 제국의 범죄는 완전히 배제한 채 일방적인 시각으로만 영화를 이끌어가면서도 전통적인 가족애를 강조하는 이율배반적 관점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이라크의 젊은 어머니와 어린 아이의 저격도 서슴지 않는 주인공은 뒤틀려진 피해의식이 애국적 저격으로 포장된다. 주인공의 가족애와 대비되는 저격수로써의 잔인함은 애국이라는 절대교리에 의해 추호의 죄의식도 부가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9.11테러의 근원에 자리한 ‘정치적 자본주의’와 제국적 탐욕을 위한 대량학살과 일방적인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미국의 피해와 분열만 부각시킨다.



존 웨인(미국 건국의 주역을 대표한다)의 변종이자 뒤틀린 대변인을 자처하는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이란 나라가 백인의 이주와 정착, 건국과 제국에 이르는 전 과정이 절대적 약자(원주민, 흑인노예, 백인 하인, 여성, 이주민 등)에 대한 일방적 폭력이었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는 단 한 컷도 할애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에게는 제국의 몰락과 부활만 중요할 뿐,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배제된다. 



<황야의 무법자>와 <더티 해리>의 주인공이었던 이스트우드와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감독으로서의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역사 전체에서 줄기차게 이어져온 폭력과 정복의 악순환에 갇혀 있을 뿐, 어떤 반성적 고찰도 보여주지 않는다. 폭력에 대한 그의 강박적인 영상의 수사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돼 있어서 제국의 범죄와 몰락의 본질에는 천착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두 편의 영화에서 저학력‧중하위층 산업노동자이자 제국의 숨은 주역이었던 두 명의 백인을 통해 뒤틀어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을 종말론적으로 연결시킨다. 두 명의 주인공이 미국적 정신과 가치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는 점에서 제국의 범죄는 면죄부를 받는다. 



사회적 불의에 대한 분노는 정의를 갈구하고 실현하는 출발선이지만, 그것이 분명한 적이 있는 피해의식을 매개로 하면 극단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미국의 대표적인 히어로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 극단을 왔다갔다 하는 ‘배트맨’과 ‘람보’가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것이 정치적 영상으로 표출될 때 극우적 민족주의(히틀러가 대표적)가 힘을 얻기 마련이다.



뒤틀려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이 교차하는 곳에 폭발 직전의 분노가 자리하는데, 이것을 노골적으로 파고든 극우 정치인이 부동산재벌 트럼프다. 그는 배트맨의 부와 람보의 폭력성을 소유하고 있어 제국의 주역이자 시대의 피해자인 저학력‧중하위층 백인남성과 노동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존의 후보에게 직설적으로 공격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열광한다. 현실정치에서 총으로 대표되는 미국 백인남성의 전통을 사용할 수 없지만, 트럼프가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기존 정치인의 신물나는 거짓말을 박살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의 전통을 중시하는 백인남성의 총과 같다. 





이들에게 거침없고 폭력적이며 정제되지 않은 트럼프의 발언들은 상위 1%의 슈퍼엘리트와 제국의 적들을 향하기에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극도의 불평등과 구조적 차별이 난무하는 현실의 부정의를 통쾌하게 까발리는 그의 언행은 위선과 거짓으로 점철된 슈퍼엘리트의 정치경제적 담합에 치명적인 카운터펀치처럼 다가온다.



트럼프의 돌풍은 허리우드와 거대언론들이 포장해온 미국의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병들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레이건을 지도자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티파티(미국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보스턴 차사건에서 따온 이름)가 이들의 카타르시스에 동참하면 트럼프 돌풍은 오바마 다음의 백악관 주인이 극우‧인종차별의자의 몫이 될 수도 있다.  



극우 언론제국을 건설한 루퍼트 머독이 트럼프 돌풍을 폭스TV를 통해 확대재상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극우세력의 입장을 주도하고 있는 3개의 종편이 한국판 트럼프를 만들어 박근혜 다음의 청와대 주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남북한의 극한 대립을 부추긴 것이 3개의 종편이었다는 점에서도 드럼프 돌풍의 한국판이 다음 대선에서 재현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24 08:39 신고

    트럼프의 돌풍이 어디까지,언제까지 이어 질런지
    두고 봐야겠네요
    JTBC 사주의 움직임 주시 해 봐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24 16:03 신고

      트럼프와 홍석현이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손석희를 자를 것이라는 것인가요?

      트럼프의 돌풍은 미국이란 나라의 특수성을 넘어 전 세계로 극우세력에게 퍼져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2. 불루이글 2015.08.24 20:45 신고

    정말 예리 하신 분석 감탄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늘 경계에 있었어. 이제는 선을 넘을 수 있을까? 간절하게 바라면 변화는 가능한 것일까?’



잠시 상념에 빠졌던 재영은 형의 방으로 건너가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형을 살펴봤다. 그는 뼈만 앙상한 채 온몸에 온갖 의료장비를 달고 있는 형을 보는 일이란 언제나 가슴 먹먹한 아픔이었고, 한 인간에 대한 존재의 가치와 실존의 처절함에 대한 끝없는 논쟁이자 그 자체로 너무나 힘겨운 삶에의 투쟁이었다.



‘형은 어때? 간절히 원하면 형이 꿈꾸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이루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순간순간이 생존에의 투쟁인 형의 고통이 최소한의 결실이라도 맺을까?’



재영은 천형의 불치병이 가져다 준 그 끝 모를 고통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형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없이 안타까웠다.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은 형제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렇게도 튼튼한 육체를 갖고 태어났거늘, 형은 어찌 저렇게도 철저하게 무력한 육체를 갖고 태어났단 말인가? 재영은 도무지 실현 불가능할 법한 잔인한 확률이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요즘 들어 너무 많은 시간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건강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형이 걱정됐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재영은 말없이 지켜볼 뿐 특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잠든 형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내려다 본 재영은 의료장비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다음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형은 내일 아침까지 깨어나지 않을 테니 재영은 그 사이에 밀린 일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 필생의 숙원사업을 진행시켜야 했다. 그는 노트북을 부팅해 회사 내부 망에 접속해 새로운 기사가 올라와 있는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 중 참고해야 할 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기사는 없었다. 따라서 당장 해야 할 밀린 일들도 없었다. 재영은 노트북 옆에 놓여 있는 갤럭시S의 전원을 눌러 모든 사회와 통하는 디지털 광장인 액정화면을 띄웠다. 부재중 통화가 무려 17통이었다. 누군가 문명의 힘을 빌려 자신을 불렀을 연속적인 소리나 아우성들. 디지털 정보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나와 다른 이들의 소통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이루어졌다.



‘미친 듯이 진동했겠구나.’



재영은 코끝을 찡그리며 부재중 통화 내역을 들여다보았다. 팀장에게서 온 것이 세 통이나 되었다. 세 번째 것이 한 시간 전인, 저녁 10시에 온 것이었다.



‘엄청 잔소리 듣겠군. 그나저나, 그제 보고한 취재기획안 때문일 텐데?’



재영은 커서를 팀장의 부재중 통화에 맞춘 후 통화버튼을 누르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보수적 관점의 박 팀장은 취재기획안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그와 통화하기 전에 취재의 논리와 타당성을 강화할 무엇이 필요했다. 재영은 진보적 성향이 강한 정현 선배를 떠올렸다. 이번 기획취재안도 사실상 그녀가 축적해온 자료와, 함께 한 취재 경험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선배와 통화해보자. 박 팀장이라면 선배에게 전화했을 거야. 뭐라 했는지 그것부터 들어보자.’



재영은 부재중 통화 중에서 정현 선배의 번호를 선택했다. 그녀 역시 3번이나 자신과의 통화를 시도했었다. 사실 재영이 세 번씩이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영원히 그와 통화하지 않겠다는 뜻이거나, 자신이 죽었다는 의미였다. 팀장이나 그녀가 3번 이상 재영과의 통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재영은 정현 선배가 전화를 받기 전에 노트북 화면에 취재기획안을 띄웠다.



<거대 언론, 지배를 꿈꾸다>



정현은 모니터에 띄어놓은 취재기획안을 읽고 또 읽었다. 재영이 담당 팀장에게 제출하기 전에 자신에게 보내준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M방송국에 입사한 이래, 이처럼 공격적이고 방대하며 무모한 취재기획안을 본 적이 없었다. 한 마디로 미친 취재기획안이었다. 비록 재영이 기자로써의 본능이 출중하고 팩트 이면에 놓인 진실을 파헤치는데 탁월한 능력과 끈기, 취재의 집요함과 남다른 용기를 지녔다 해도 이것은 기름을 이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웃사이더적인 성향이 강해 깨어서 혼돈은 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안에 내재한 자유와 질서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자폭하겠다는 거야, 뭐야?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역시 이놈에겐 한 번의 일탈이, 일탈 중 최고의 효과를 갖는 섹스가 필요해. 상대가 나면 좋고.’



정현은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해 여기까지 오게 된 재영이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방송국에 입사한 지난 13년 동안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것도 봤고, 권좌에 오른 모든 것을 다 아는 대통령이 낙하산 사장(푸른색 기와를 두른 구중궁궐에 끌려가 조인트도 당했다는 황당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에 대해 악의적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를 고발하지 않는 것으로, 그래서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의 자금을 허투루 쓰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조직을 폄하한 상대를 용서함으로써 타의 모범이 된 천하의 대인배)을 내려, 관철시키는 것도 지켜보았다. 게다가 (온갖 욕을 먹는 자리에 자신을 임명해 수명을 늘려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대통령이나 4년 차에 이르면 당연히 빠져드는 레임덕을 막겠다고 결연한 의지로 내부 조직과 인사를 권력의 취향대로 만들어놓는 것도 지켜보았다. 최근에 들어선 언론이기를 포기한 듯한 행태도 남발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권력을 향한, 그 권력이 바뀌면 다시 차를 갈아탈 기회주의적 일렬종대! 이 상태라면 낙하산 사장의 연임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할렐루야!’



물론 이념을 달리 하는 대통령이 바뀌면 국가의 중심이 그들에게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국영 방송이 아니라도, 국민 모두의 공적 재산인 주파수를 할당받은 방송국이라면 일정 이념에 경도되거나 자사이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거대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막기 위해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을 반대 논리로 도배하는 행태도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태란 해도 너무해!’



정현은 한 국가의 언론과 방송의 80% 이상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현대국가에서 더 위험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도 모자라 보도전문 방송사 사장까지 낙하산으로 채워진 현재의 상황은 80년대 초의 5공 시절을 방불케 했다. 인류는 다양함을 존중하고 자유의 확장과 함께, 복지증대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평등의 확대를 위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분투해 왔다. 인류의 지향점이 거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을 내재하고 있다. 게다가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민주주의란 견제와 균형 속에서 꽃을 피우며, 소수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며, 참여와 여론 형성(이미 형성된 여론이란 없다. 실제로 여론 조사에 사용되는 질문에 따라 여론의 향방과 내용이 변하기 때문이다. 즉, 여론이란 한 개인이 오랜 기간 동안 습득한 지식이나 토론, 논쟁, 사고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의견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간 동안의 사회 현상에 대해 그저 “예”나 “아니오”로 묻는 전화조사 방식이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응답자의 내적 의견에 대해 알아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여론 조사에 사용된 질문을 통해 여론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숱하게 조작된다. 숫자가 객관적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에 기반해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한 통계학은 과학이나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의학, 법률, 언론, 종교 심지어는 방송 언어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을 통해 투표에 선행하고 (칼 포퍼의 주장처럼) 국민에 의해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보다 국민에 의해 잘못된 지도자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것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현은 그런 신념으로 13년을 취재하고 방송했다. 언론에 몸담은 이상 자신이 바라봐야 할 대상이란 오직 진실과 정의, 그래서 시청자인 국민밖에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아니 그 이상으로 실천했다. 하지만 낙하산 사장이 조직을 장악한 이후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언론으로써의 몰상식하고 비이성적인 일들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내세우는 논리라는 것이 시청률 부진이고 언론이 지켜야 할 균형 감각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이익이 최우선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광고주와 후원사가 원하는 것이라면 시청률도 필요 없다며 프로그램 편성도 손바닥 뒤집듯 제멋대로 칼질하니, 이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정권에 불리한 기사는 아예 내보내지도 않고,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들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니.. 열심히 취재하면 뭐해, 방송될 가능성도 없는데?’

“염병할 새끼들! 최소한의 기회라도, 언론이면 언론다운 취재기준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 아니야? 그저 선정성 높고 날로 먹는 것만 낚아오라니! 개만도 못한 새끼들!”



정현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힘들었다. 그렇다, 진실과 정의라 해도 기회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지 않은가? 신은 주사위 노름을 하지 않는다며 섭리의 절대성을 주장한다고 해도 진실과 정의에게 어떤 무대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자신을 비롯한 기자와 PD들에게 더 이상 무대란 주어지지 않았고, 급기야 보복성 인사 조치로 연예본부로 발령 나지 않았는가? 현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사실을 밝힌다 한들 그것이 시대정신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정권이 바뀐다 해도 달라질 보장도 없었다. 다음 정권이라고 자살한 전임 대통령과 비슷하거나 현 대통령과 다를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권력이란 무엇이라도 변형시켜 타락 시킨다. 지금까지 이런 권력의 속성에서 벗어나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현대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수많은 이익들의 경연장이자 집합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더 희망이 없어 보였다. 정현은 그렇게 지쳐 갔고 피로가 쌓였으며 다시 충전해 투쟁할 여력조차 없을 만큼 방전되기에 이르렀다.



‘이건 유서야. 기자가 언론을 향해 비수를 꽂겠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해. 절대 불가능해.’



정현은 초조한 마음에 한 발 떨어져서 취재기획안을 들여다보았다. 재영을 아끼는 편향성 때문에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려면 냉정한 눈으로 취재기획안을 볼 필요가 있었다. 누구나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고조되면 이성이 자리를 내주고 꼬리를 감추기 마련인데, 하물며 아웃사이더적 경향이 강한 재영이라면 말해 무엇 하랴?



‘이런다고 달라질까?’



정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객관적이 아니라 아예 주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이번 시도는 일방적인 싸움도 되지 않을 터였다. 국지전도 치르지 못할 전력으로 전면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철저히 분리된 채 오직 죽창만 들고 있는 난쟁이와 첨단무기로 무장한 거인이 싸움을 벌인다면, 결과야 뻔하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은 낙하산 사장이 조직을 완전히 장악해 관료주의화 됐고 극도로 상업화된 시스템 속에서 전통의 노조마저 무력해진 상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재영의 취재기획안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폐기 통보를 받은 꼴이었다. 지난 4년에 걸친 방송국의 이익집단화와 그것에 무력했던 직원들의 열패감이 그것을 증명했다. 차라리 박 팀장의 선에서 깨지면, 그것이 베스트라는 판단이 들 정도로 정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정권이 바뀌는 게 확실하다 해도, 이건 너무나 큰 싸움이야. 이것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



정현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생각은 재영의 의도에서 점점 뒤로 물러났다. 그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뒷걸음질이란 자신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였고 그래서 어색했지만 빌어먹을 것이 빨라지는 속도에 맞춰 생각의 균형마저 제대로 유지됐다. 정현은 자신을 향한 자책과 변명을 거기서 끝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은 기자로써의 신념보다 취재의 결과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키워온 신념에 반하는, 주와 부가 뒤바뀐 행태이자 타협이었고 이제는 화석화된 무기력한 생각이었다. 



특히 연예본부로 발령이 나기 전의 몇 개월 동안에는 재영과 한 팀이 되어 취재를 나갈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모습에 깜작 놀라곤 했다. 정현이 느끼는 자책과 혼란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갔다. 그 과정에서 의식 저 밑에 꾹꾹 눌러두었던 현실의 높은 벽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는 신념이 자신에 대한 것인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것인지 헷갈렸지만 재영의 취재기획안에서 점점 물러날수록, 그 속도와 균형이 완전한 협력을 이룰수록 차마 자신에게 하지 못했던 마지막 질문에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나는 그만큼 깨끗했을까?’



그녀가 기자로써 겪었던 지금까지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익을 넘어서는 이념은 없다고. 역사와 이데올로기는 벌써 종언을 고했고, 권력은 거대 금융자본과 초국적기업 및 거대 언론을 거쳐야 실현될 수 있다고. 서로 견제해야 할 네 개의 거대 세력이 이룩한 단단한 카르텔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를 다 까발리겠다는 이런 황당무계한 취재기획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이 이에 이르자, 정현이 이번에는 분명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진실과 정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재영의 취재기획안이 실현불가능하다는 판결을 확정하는 중에 낮 익은 음악이 청각을 간질였다. 충전 중인 아이폰이 마치 생명체처럼 스스로 빛을 발했다. 언제부터인가 타인과 자신의 연결은 그렇게 작동했다. 



정현은 선명한 액정화면에 떠오른 전화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친 기획자, 매력이 넘치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부정하는 후배, 어떤 특별한 일탈이 없으면 스스로 정한 울퉁불퉁한 운명의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려갈 남자, 그래서 한 번은 꼭 진탕하게 뒹굴고 싶은 남자, 천형의 병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죽었다고 하지만 형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자학적인 아웃사이더, 재영을 나타내는 11자리의 숫자가 두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정현은 잠시 망설이다 갤럭시S를 집어 들어 천천히 귀로 가져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