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돌풍의 최대지지층이 청춘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그래서 투표하지 않았던 청춘들을 열광시킬 공약들을 제시했고, 44년을 한결같았던 그의 진정성에 청춘들이 민주당 예비경선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은퇴자들을 위한 복지는 대단히 발달한 미국에서 (인종을 통틀어) 청춘을 위한 복지는 매우 빈약합니다. 미국에서 진정한 경제적 약자들은 청춘(+여성+인종)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이 나옵니다. 샌더스 돌풍은, 앞세대가 남긴 욕망과 탐욕의 폐해 때문에 가난과 위험, 차별 등에 시달리는 청춘들에게 '정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 현실정치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건국 때의 미국 민주주의에 비하면 현재의 미국 민주주의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지배엘리트가 독식하는 사실상의 금권·과두정치로 전락했습니다. 



최근에는 세습자본주의까지 뚜렷하게 드러나는 등 미국은 적극적 자유가 작동하지 않는 허울 뿐인 민주주의국가로 전락했습니다. 미국의 이상을 모조리 부정하는 트럼프(제2의 맥카시)가 예비경선에서 독주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말해줍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자들은 맥카시처럼 파시즘을 휘둘러서라도 이민자를 몰아내고, 인종차별이 강화되더라도 지금보다 잘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흐름에 샌더스는 정면으로 맞섰고, 지나칠 정도로 과대포장된 주류경제학자들이 샌더스의 공약들을 그들의 오류로 가득한 모델을 처넣어 실현불가능성 없다고 비난하지만, 청춘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주겠다는 공약과 비전을 내세워 청춘(과 고학력자, 이주민들)의 정치혁명을 이루고 있습니다. 친새누리 매체들이 자막으로 처리했지만, 슈퍼화요일에서 선전했던 샌더스가 오늘의 경선(메인주)에서 힐러리를 누를 수 있었던 것도 청춘의 힘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보다 더 미국스러운 한국에서 진보적 정치혁명에 성공하려면 청춘들에게 신명나는 약속들과 비전들이 제시돼야 합니다. 국정원의 집요한 압박 속에서도 이재명 시장이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는 것들, 박원순 시장이 뒤를 이어 실현하고 있는 청년배당을 비롯해 각종 복지확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반값등록금이 아닌 무상교육을, 서민증세가 아닌 부자증세를,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을, 의무급식과 의무보육을 약속하면 청춘들이 돌아옵니다.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한 진지한 토론과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거쳐, 그 결과에 따른 정치사회적 의제로의 승격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복지 혜택을 주면 곧바로 표로 연결되는 노인복지만 늘리지 말고, 진정한 사회경제적 약자인 청춘을 위한 복지를 늘리고, 장기적인 비전도 제시해야 합니다. 인류의 문명발전사는 후세대가 앞세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살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산산조각난 지금, 청춘에게 모든 짊을 지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준하는 최악의 반인륜적 범죄입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정확히는 2008년 이후의 10년)'을 똑같이 따라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최악의 경제대불황에서 벗어나 다시 웃음과 소통, 배려와 공존이 넘치는 나라가 되려면 청춘이 미래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세대가 자신의 앞세대가 남겨준 것들로 더 많은 문명의 혜택를 누렸다면,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 최초의 세대인 청춘이 포기할 것들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청춘이 'N'이라는 절망의 카트에 담아야 할 것들로 '포기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N'이라는 희망의 카트에 담아야 할 것들로 '성취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도록 신명나는 정치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최소한이 의미있는 수준의 청년배당입니다. 부와 권력의 불평등과 차별을 극한까지 끌고가는 '승자독식의 고용없는 성장'의 반대편에는 '착한 성장과 공존의 풍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청년배당, 즉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운 진보정당에 한 표를 행사할 생각입니다. 그럴 때만이 대한민국은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청춘이 미래를 꿈꾸고 얘기할 수 있는 신명나는 정치혁명이 가능합니다. 샌더스처럼, 이재명처럼, 박원순처럼, 청춘이 능력과 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만 마련해주면 그 다음의 정치혁명은 그들이 알아서 합니다.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엄동설한 속에서도 소녀상을 지켰던 청춘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길거리에 나섰던 청춘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엇보다도 250명의 단원고 학생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아직도 9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옷과 가방, 팔목과 스마트폰에 노란 리본을 달고다니며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촉구해왔던 청춘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경청 2016.03.08 07:51

    오늘도 좋은식견 배우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03.08 08:30 신고

    가진자들을 위한 정책,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국민을 기만하는 당에게 절대로 표를 줘서는 안되겠습니다

  3. 耽讀 2016.03.08 08:38 신고

    성남이 돈이 남아서 복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쓸데 없는 곳에 들어간 돈을 제대로 쓰는 것입니다.
    박근혜는 못하는 일을 이재명은 합니다.
    이재명 보면 볼수록 지도자깜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08 20:56 신고

      네, 그는 실천합니다.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 최상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 민주적 지도자의 의무입니다.

  4. 참교육 2016.03.08 10:45 신고

    어디를 둘러봐도 숨쉴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습니다.
    센더스와 같이 돌풍을 일으키는 정당이 아쉽습니다.

    • 늙은도령 2016.03.08 20:57 신고

      국민들이 표현하지 않지만 총선을 벼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노무현처럼 그냥 나두지 않을 것입니다.

  5. 민주청년 2016.03.08 13:59 신고

    총선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약을 걸었는데 역풍이 불면 안되지 않을까요? 그런 점들을 잘 고려하여 공약으로 내세우면 좋겠습니다

  6. 할머니 2016.04.14 10:16

    글퍼갑니다//--우수귀농사모한국인협회 로 펌했시유 ㅋ ㅋ ㅋ --꾸벅 --
    예전엔 야당이 인터넷으로 승부했지만 여당이 고쪽을 꼰대들에게 알바로 대거 집중훈련을 지속해온바 직업적알바로 인터넷혼란은 갈수록 알바천국의 악랄한 전쟁터가 갈수록 심화될것입니다.



올해의 최저임금은 6030원이다. 인상률이 정해졌을 때, 노사 양측에서 그런 데로 적정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쓰레기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인상률이 너무 높아서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을 한단다. 그렇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저임금의 적정선은 없는 것일까? 있다고 해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래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모든 근로자의 연봉도 올라가는 것일까?

 

 



우리는 최저임금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기업(특히 중소기업) 측에서는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직원 전체의 월급이 올라가 인건비 부담이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고 울상이다. 노동자 측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을 최저임금이 보장하지 못한다고 울상이다. 정작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및 저임금, 임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배제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최저임금에 적정선은 없는 것일까? 최저임금의 적정선을 판정하는 기준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인가? 따라서 이번 인상률이 적정한 것일까,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 것일까?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제대로 적용될까? 인건비에 부담을 느낀 중소기업은 외국인노동자를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은 나라이다. 헌데 우리가 매일같이 떠들어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부정적 세계화의 주범인 신자유주의가 79년과 80년에 걸쳐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와 레이건이 당선되면서 급속도로 퍼진 경제 사조인가?

 

 

단언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실체, 변화와 파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무한경쟁을 일상화하는 신자유주의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태어나 보니까 전통이나 관습, 일상의 환경처럼 신자유주의는 이미 주어져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적응하면 그만일 뿐 알고자 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위 88%로 대표되는 우리는 매일같이 당하고 휘둘리며, 저들이 촘촘하게 쳐놓은 여러 개의 그물망(통치 메커니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최저임금도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 중에 하나이며, 각자도생이라는 자발적 노예를 대량으로 만드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최저임금이 생각보다 많이 올라도 그것 또한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의 하나일 뿐이다. 



이 3권의 책만 읽어도 신자유주의의 학문적 이해가 정립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자유주의 경제학(자유방임을 모토로 하는 중농주의 경제학으로 고전파 경제학이라고 한다)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된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에 그 원형이 있다. ‘가능한 한 최대의 경쟁을 그러나 최소한의 계획’을 모토로 하는 질서자유주의는 적극적 자유주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 권위적인 정부가 방해되는 것들을 가지 쳐주는 선별적 개입의 자유주의라고도 한다.

 

 

최근의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무정부적 자본주의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학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에서 분리된 자유주의 경제학이 정치의 내부에 자리하면서 탄생한 통치술의 총합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쟁(가격이 핵심)으로서의 자유시장 메커니즘을 국가의 모든 부분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교육과 결혼, 가족 같은 지극히 사적인 것들마저 시장경제의 종속변수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시장경제화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절대 시장경제라는 존재의 기초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시장경제의 주체인 기업이 시장경제를 통해 영원히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은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교환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장 메커니즘을 가격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경쟁을 극대화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국가의 권력과 법률, 선별적 규제를 동원해 시장경제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에 개입해서 시장경제가 가장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자유방임이 아닌 적극적 자유주의나 개입적 자유주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세상을 시장경제화해서 상위 1%에게 하위 99%의 부를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권위적인 통치권력이다.   

 

 

신자유주의는 미래의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시장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을 재교육해서 경쟁을 확장하고, 법률과 규율 및 규범을 통해 모든 인간을 시장경제에 종속된 존재로 만든다. 시장경제에서 탈락한 자들은 경쟁의 법칙에 따라 굶어죽을 수도 있다. 경쟁력이란 자신의 책임하에 갖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일 뿐이며 공짜 점심은 없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주축인 기업(그중에서도 오너와 최겨영영진, 대주주들로 구성된 사측)을 위해 정부의 개입을 최대화하고 최적화하는 궁극의 권력이다. 가격과 경쟁이라는 두 개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 중심의 시장경제를 최대한 활성화하고, 경쟁 메커니즘을 교란하는 독점기업의 출현을 제한하고 해체(IMF 때 한국의 재벌을 해체하려고 했던 이유)하며, 필요하다면 최저임금을 올려서라도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이 모든 돈들이 상위 1%에게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개인을 천부인권을 지닌 시민이 아니라, 기업적 입장에서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쟁력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본다.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 경쟁력을 지닌 채 시장경제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든다. 개인은 채용되기 위해 인적자본(능력자본)으로서의 경쟁력 제고에 전념해야 하며, 이것 때문에 선행교육과 스펙의 중무장이란 무한경쟁의 포로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가 부모나 가족, 사회나 정부가 개인에 투자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장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업도 시장경제의 주체이지만,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에서 도태하지 않도록 더 높은 경쟁력을 창출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거나 고용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기업과 개인에게 끊임없는 혁신이 주문되며,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만큼 그에 따라 예비 노동자와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도 계속해서 올라간다. 

 

 

가격 대비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기업은 도태되고, 그 자리에는 다른 기업이 들어서며, 한 기업 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서는 구조조정의 칼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시적 구조조정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당화된다. 신자유주의가 위험을 등지고 사는 삶, 위험과 함께 하는 삶을 장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에 투자해야 하고 창업도 마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린 노동자와 노동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관리도 국민의 세금을 독점하는 정부가 맡아야 한다. 그들이 시장경제에 해가 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무한경쟁의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포획될 수 있도록 각종 부조와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시장경제에 해가 된다면 부조와 복지비용의 관리를 통해 도태시켜도 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활성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생필품을 구입하던, 대박이나 창업 및 안정적인 정규직을 꿈꾸며 공부를 하던, 다시 시장경제에 뛰어들기 위해 병을 고치던,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본소득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그들에게 최상의 결과를 창출한다. 좌파의 논리라도 시장경제에 도움이 되면 얼마든지 수용한다(좌파 신자유주의의 기원). 

 

 

                                                     

 

세계화를 추진하는 이유도 시장경제의 활성화 때문이다. 가격과 경쟁의 메커니즘에서 도태되는 분야에는 적정한 수준의 보조금도 묵인한다. 그것이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의 틀을 해치지 않는다면 품목별, 국가별 예외조항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공황이 도래하던, 경기침체가 길어지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라는 기본 틀만 유지하면 된다.

 

 

이렇게 지구를 상위 1%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목표다.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는 부정적 세계화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다. 인구 조절을 위해 공중위생의 확대도 필요하고, 각종 자선사업도 장려된다.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이익의 일시적인 감소도 감내할 수 있다. 판돈을 키우는 일은 너무나 쉬워서 그것 때문에 고민할 이유란 없다(영원히 지속되는 경제위기란 없다).

 

 

임금의 평균값으로 계산하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하던 최저임금 또한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노동자들을 시장경제 하에 두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다윈의 진화론과 뉴턴의 역학, 정부의 개입과 언론의 동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시장경제는 자기조정 능력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영원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일정 시대를 풍미한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공동체나 조직, 사회나 국가에 의해 자유라는 것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진화해온 시장경제의 총화이자 통치의 기술이다. 그래서 좌파 신자유주의도 가능하며, 우파 신자유주의도 가능하다. 인류의 삶 속에서 시장경제가 절대적 요소라면 우리는 신자유주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신용시스템이 2008년 금융위기의 수준을 넘어 완전히 무너지면 모를까?

 

 

하지만 최종대부자로서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벗어나려면 기차에서 뛰어내리던지, 기차에 탑승하고 있던지, 아니면 기차를 멈추던지 세 개의 선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파헤친 푸코가 말년에 그리스철학의 핵심주제인 자기배려라는 가장 근원적인 성찰로 돌아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뛰어내리려 했던 것이다.  

 

 

내가 시장경제의 부속품이라면, 그런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자기배려에 최대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소중하다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연결만 유지해야 한다. 시장경제에 속하지 않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이란 시장경제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최하의 마지노선으로 주어지는 생존임금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신자유주의는 지구라는 차원에서 자원의 한계와 자연의 반격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한 무한한 성장이란 끝없는 퇴행이었으며, 시장경제마저 위협하는 최악의 메커니즘이었다. 생산과 소비의 확대라는 면에서 전체 인구로서의 인류를 관리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정보통신기술과 자동화 등의 확장으로 소비를 위축시키는 고용없는 성장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구온난화까지 급진성을 띠려고 한다. 이런 총체적 위험 때문에 최저임금으로 대표되는 생존임금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수준에서 한참 부족하게 됐다. 신자유주의는 실패했지만 시장경제는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생존선 근처에서 각자도생을 위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최저임금 속에 숨어 있는 첫 번째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최저임금에 숨어 있는 두 번째 진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생명마루한의원 2016.01.23 18:38 신고

    잘읽고갑니다..^^

  2. 수호자 2016.01.24 15:58

    에듀윌 이곳저곳에 과잉광고 정말 지긋지긋하다... 대한민국을 온통 시험공화국으로 만들려하나... 광고를 하든 안하든 하고 싶은 사람은 찾아서 하고 하기싫은 찾아줘도 사람은 안한다... 제발 좀 적당히 해라...

    • 늙은도령 2016.01.24 16:51 신고

      에고... 학생들이 불쌍해요.
      한국은 학생들과 청춘들에게 지옥이 됐습니다.
      광고는 제가 책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쓰는 지라...
      지금까지 책 구입비만 2000만원을 돌파해서 더 이상 제 재정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양해바랍니다.

  3. 돌고래 2016.01.25 20:44

    광고 있어도 좋아요..이렇게 좋은 글만 볼 수 있다연요^^

    • 늙은도령 2016.01.25 21:24 신고

      감사합니다.
      오늘 새로 구입한 책 12권이 도착했습니다.
      광고 덕분에 원하는 책들을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4. 새노래 2016.02.05 00:19

    괜한 트집잡는놈들 하는 말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런놈은 정의도 없고, 소신도 없는 놈입니다, 오로지 주인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만 바라보고 사는 놈이라 신경 접어도 됩니다, 그 많은 책을 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많은 책을 읽고 소화 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가 되는지 썩은 놈들은 모릅니다, 선생님은 신경 접어시고 좋은 글에만 집중 하십시요, 항상 읽어 보고 저의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건필 하시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포맷이 필요한 대한민국에 꼭 필요 하신분이십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을 당하고 반역자를 처단 할때 지식인과 언론인들을 먼저 했다지요.. 그들은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느냐고 불평 불만이 많을때.... " 지식인과 언론인은 국가에서 가장 투자가 많이 되는 인재들이다, 그렇게 국가 혜택을 많이 본자들이 국가 위기 상태때 "침묵" 한 그것이 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다, 그리스도 국영언론이 해체되고 전 직원이 해고되는 사태가 있었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침묵은 나의 목을 죄어 올 뿐입니다, 이럴때 가만히 있다고 침묵이 금이 되는건 아니죠....

    • 늙은도령 2016.02.05 02:36 신고

      그럼요, 지식인들은 모름지기 비판을 멈추면 안 됩니다.
      비판을 멈춘 지식은 죽은 자나 다를 것 없습니다.
      건강에 신경쓸 게요.



신격호 가문의 경영권 다툼은 박근혜가 강행하려는 노동시장 개악에 강력한 변수로 떠올랐다. 비상장회사를 이용해 최소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승계하는 한국재벌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롯데의 막장드라마는 노동시장을 개악하려는 현 집권세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롯데그룹이 최소의 세금만 내면서도,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불리고,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축적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아도 됐던 것은 신자유주의적 정경유착이 만들어낸 각종 특혜 때문이다. 롯데만이 아니라 모든 재벌들이 받은 이런 특혜는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이었다.



현 집권세력이 정말로 청년들을 위해 노동시장을 개혁하려 한다면, 재벌총수를 사면하는 대가로 일자리 창출을 만드는 일회적 정치쇼가 아닌 법적 구속력이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했다. 일자리도 창출하지 않는 재벌들의 실제세율이 일자리 창출을 떠맡은 중견‧중소기업보다 낮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한국이 세계 3위의 조세도피처(세계교역규모를 늘리기 위해 도세회피처를 공식지정했던 OECD가 공식지정한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한 것을 뺀다고 해도)를 애용하는 국가라는 사실까지 더하면 노동시장 개혁보다 시급한 것이 재벌특혜 개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경제가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린 것은 재벌에게 집중된 온갖 특혜와 부정부패의 온상인 신자유주의적 정경유착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재산의 대부분을 잃어버렸지만 재벌들의 부는 급상승했다.



기술발전에 힘입어 ‘고용없는 성장’이 보편화된 시점에서 재벌들의 핵심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자리를 (아웃소싱과 파견직 확대도 모자라) 해고가 쉬운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려는 현 집권세력의 노동시장 개혁은 신자유주의 정경유착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양산과 신자유주의 정경유착의 주범인 롯데그룹이 콩가루 막장드라마를 상영하기 시작한 것은 국정원 사찰 논란이 묻히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노동시장 개악을 막아야 한다는 하늘의 뜻일 수도 있다. 푸른 기와집의 세입자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뒤통수를 치는 것이리라.



JTBC 뉴스룸을 제외한 모든 기레기들이 신격호 집안의 막장드라마를 선정적으로 다룰 뿐이지만ㅡ박근혜가 탄핵의 위협에 처하지 않은 한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로 이명박을 치는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ㅡ노동시장 개악을 막는데 도움이 되려면 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노동자와 분리된 막장 재벌은 한국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롯데그룹이 콩가루 분해된들 한국경제가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 야당이 롯데의 막장드라마를 계기로 재벌특혜 개혁(법인세 인상과 각종 면세혜택폐지)과 노동시장 개악 저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표가 직접 나서라. 전선의 선두에 서서 현 집권세력의 서민과 노동자 죽이기를 결단코 막아내라. 한국경제가 이 상태로 몰락한다면 국민은 혁명을 선택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대안이 없다. 정치란 국민이 폭력을 선택하지 않도록 부를 재분배하고 존엄한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P.S. 아래에 롯데의 막장드라마 관련 오마이뉴스 기사를 링크했습니다. 관점이 독특해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누가  하든  '시게미쓰'인  롯데, 소프트뱅크  손정의에게  배워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05 07:59 신고

    지금 우리나라의 시스템로는 재벌이란 구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가져갈수밖에 없습니다

    재벌을 해체시키는것만이 답입니다

  2. 참교육 2015.08.05 11:21

    재벌해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지요.
    국민의 피땀흫려 만든 결과를 형제난이라니 추태가 정말 꼴볼견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야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5 18:10 신고

      재벌은 해체하는 것보다 세금을 왕창 겆는 것이 최고입니다.
      전 세계에 재벌이 없는 데는 없습니다.
      국가가 조율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세금을 왕창 때리고 협력업체와 공정거래를 하도록 법제화해야 합니다.

  3. 耽讀 2015.08.05 12:40 신고

    재벌을 해체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떠벌립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아임에프 때 얼마나 많은 재벌이 망했습니까? 하지만 나라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몇몇 재벌은 더 견고해졌습니다. 족벌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럴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는 몇몇 기업만 배불리고, 나머지 기업들은 들러리가 될 것입니다. 시민들은 결국 노동 기계로 전락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5 18:12 신고

      재벌을 해체하는 것보다 세금을 왕창 때리는 것이 최고의 방식입니다.
      법으로 그들이 협력업체와 공생하고 일자리를 늘리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경영권의 투명성을 높여도 됩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자 삶이 걸려있는 문제여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양당이 '노동시장 개혁'이나 '노동시장 개악'이냐를 가지고 정치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난 주에 진행된 밤샘토론을 통해 그 이유를 풀어볼까 한다.  



‘노동시장 개편, 경제 살릴까?’라는 시의적절한 주제로 진행된 JTBC 밤샘토론은 유시민의 젊은 시절과 비교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논리를 보여준 조성주라는 보석의 발견을 논외로 치면, 사회적 합의에 논제를 제시하는 TV토론으로서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한계를 보여줬다. 첫 번째 한계는 토론 주제에서 나왔고, 나머지 한계는 토론자의 구성에서 나왔다.





먼저 '개혁'이나 '개악' 대신 중립적인 '개편'을 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JTBC에서 정한 토론 주제의 한계를 보면 ‘경제’라는 단어가 갖는 일방성이다. 모든 것을 시장원리에 종속시켰던 19세기의 정치‧경제‧사회 체제로 돌아가자는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정치와 사회’에서 분리된 ‘경제’라는 단어는 진보와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자본에 독점되는 것을 말했다.



정치는 세금 인하와 규제 철폐, 노조 파괴와 노동유연성,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각종 무역협상을 통해 상위 1%의 지갑을 채워주는데 혈안이 됐고,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파괴하고 소득의 예측가능성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 자본은 노동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노동은 두꺼운 철장 속에 갇혀버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빈곤층이 늘어나며, 저임금 비정규직의 비중이 확대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지난 40년 동안의 ‘경제’는 철저하게 상위 1%를 위한 것이었다. 경제를 살아나도 위에서부터 가져갔고, 하위 90%에게 돌아가는 몫은 정체되거나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의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죽어라고 경제를 살려봐야 하위 90%의 소득이 늘어날 보장이란 없다. 법인세와 부자 증세 같은 부의 재분배를 강화하는 것을 뺀 채 경제를 살리자는 어떤 토론도 말장난에 불과하다. 시장이 경제정의의 실현을 버리고 오로지 교환과 축적의 메커니즘만으로 돌아간다면 노동이란 대체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부 주도로 살리고자 하는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경제며, 세금을 퍼붇고 슈퍼추경까지 수혈하면서까지 '경제를 살린다'면 그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것부터 정하고 가야 한다. 투자되는 돈은 한계가 있기에 도움을 받은 분야의 이익을 어떻게 환수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분야에 나누어줄지 그것부터 정해야 한다.  



두 번째 토론자의 한계를 보면, ‘노동시장 개편’을 통해 청년일자리를 늘리고자 한다면 이를 주도할 정부와 기업의 대표들이 나왔어야 했는데 이들이 빠졌다는 것이다. 국회가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고, 비정규직과 청년이 목숨을 걸고 농성을 해도 제왕적 대통령이 귓가시라도 듣지 않는데 토론의 양과 질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통령이 패대기친 경제민주화 공약만 이행해도 청년실업 문제를 넘어 고용 없는 성장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부모세대의 정규직과 자식세대의 비정규직을 갈등과 적의로 갈라놓은 비열하고 패륜적인 여론몰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것이지 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공약을 파기하고 말을 뒤집기 일쑤였던 지난 2년7개월 동안의 대통령으로 볼 때, 청년실업 해결을 핑계로 노동시장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기업의 족쇄만 풀어주거나,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경제실패를 노동자나 노조에게 떠넘기기 위해 유권자를 속이는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이유란 없다. 속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또다시 속을 생각은 없다. 



게다가 재벌과 거대자본의 행태는 또 어떤가? 이들은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한 채 탐욕의 질주만 가속하는 집단인데, 제왕적 대통령이 아무리 레이저를 발사하고 사면카드를 남발해도 기껏해야 정부의 고용지원금(이것도 국민의 세금이다)이 나오는 1년만 유효할 뿐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청년의 일자리를 위해 이익을 희생할 기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정권이 바뀌어도 약속한 일자리 창출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도 경제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데, 토론자로서 나오지도 않았으니 토론자들이 합의에 이른다 한들 어떤 구속력도 가질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늘의 밤샘토론은 노동시장 개편과 재벌오너 사면을 위한 명분쌓기 용 대국민 공청회를 치른 것과 같다.





오늘의 밤샘토론은 (단 한 번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새누리당 의원과 법학교수를 빼면 논의 질이 높은 편이었고, 통계적 의미가 없다고 해도 청년의 간절함이 배어있는 패널들의 판정도 현실을 반영하지만, 딱 거기까지 만이다. 두 개의 한계로 인해 재미있었고 유익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토론을 감성한 정도다.



이런 이유들로 오늘의 JTBC 밤샘토론은 한 줄로 표현하면 ‘허공에 대고 외치다’로 충분할 것 같다. 지상파3사의 토론이 정부의 홍보물로 전락한 현실에서 JTBC 밤샘토론에서도 주제의 핵심 당사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박근혜 정부의 독선적 행정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야당이 노동시장 개악을 막는데 목숨을 걸어야 함이 이 때문이다. JTBC 밤샘토론 관계자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하지만, 새누리당은 청년표의 일부라도 끌어들이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서를 뽑아놓은 채, ‘노동시장 개혁’을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야당이 청년일자리 창출의 발목을 잡는다는 모양새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총선 투표일까지. 



이런 가운데 국정원의 사찰 논란은 잦아들 것이며, 경찰의 마티즈 폐차도 묻혀버릴 것이다. 메르스 대란의 책임을 가리는 특검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세월호 유족을 대표하는 박래군 위원장의 구속기소에서 보듯이 역행을 거듭할 것이다.   



P.S. 제가 알고 있는 재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시적 구조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익이 나오지 않는 부문을 해체하거나 팔아버리고, 합병을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먹을거리가 나오지 않고, 몇 년 안으로 터질 가능성이 높은 대공황과 갈수록 급진화되는 지구온난화 등 최악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내부유금만 늘리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요? 윗돌(임원을 제외한 부장 수준) 빼서 아랫돌(청년 비정규직) 채워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업이 추가적인 비용 지출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직원의 임금인하와 자유로운 해고가 목표입니다. 고용안정성(존엄한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의 실업급여, 재교육과 재취업, 복지 확대 등)이 담보되지 않은 노동시장 개악은 하위 90%의 삶을 영원한 종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최후의 작업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8.01 13:18 신고

    공허한 외침같이 들리네요.
    새누리나 박근혜정부는 반노동정책으 한계를 달리고 있습니다. 가증스러운 것 그러면서도 중산층이니 청년실엄을 입에 달고 삽니다.

    • 늙은도령 2015.08.01 17:30 신고

      이번에 노동시장이 정부의 뜻대로 개편되면 노동자는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습니다.
      마지막 남은 규제를 임기 내애 박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도 막아야 합니다.
      노동안정성을 높이는 조치(복지 확대, 재교육, 재취업 등의 사회안전망)가 없이 노동시장을 개악하면 그때는 끝입니다.

  2. 2015.08.02 15:4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02 18:31 신고

      적절한 범위의 무력도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에서도 정의의 무력은 필요하니까요.



박근혜 정부의 정규직 과보호론은 한마디로 말해 자본과 재계(오너와 경영진 및 대주주)의 입장만 반영한 편향된 주장입니다. 석유를 대체할 만한 먹거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기업)이 이익을 높일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정규직의 인건비(정확히는 정규직의 권리고 최후에는 노동의 권리가 될 것이다)를 최소화하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기업)의 역사는 최대 이익을 거두기 위해 투자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역사였습니다. 특히 지난 4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자본(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밖의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고, 최후의 장벽으로 남은 것이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입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바늘공장’의 예를 들며 분업이 불러오는 생산의 확대가 자본(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것이 밝혀진 이래, 포드 자동차의 자동화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자본(기업)의 이익은 비례해서 늘었지만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들었습니다.



기술 발달에 따른 자동화는 노동의 질을 숙련노동에서 비숙련노동으로 만들었습니다. 노동의 질은 갈수록 떨어졌고, 이는 임금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남성노동자가 줄어들었고, 저임금 여성‧청소년노동자가 노동현장에 투입됐습니다.





고든 레어드가 《가격파괴의 저주》에서 자세히 다루었듯, 중국처럼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는 저소득 국가들의 등장은 자본(기업)에게 저임금노동자를 무한대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외국노동자의 수입도 동일한 효과를 발휘함에 따라 임금하락과 높은 실업률은 일상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의 폭주를 견제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지켰던 노조의 힘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네그리가 《혁명의 만회》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신자유주의 세력들에 의해 노조는 더 이상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을 만큼 무력화됐고, 대형사업장 노조들은 기득권의 일부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이 지닌 지적‧경험적 오류를 줄여주거나 대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이를 장착한 디지털컴퓨터가 일반화되면서 화이트칼라(전문직 포함)의 지식노동까지 위협받고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고착화됐습니다.





데이터의 저장용량을 무한대로 늘리고 있는 반도체의 발달로 빅데이터 구축이 가능해졌고, 이를 활용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발달로 수십 년의 경험으로 구축된 노하우까지 대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최고급 지식노동자까지 컴퓨터의 조작자나 보조자의 역할로 격하됐습니다.



이렇게 기업 활동의 대부분이 자동화됨에 따라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 현실화되기에 이르렀고, 비정규직이 느는 만큼 정규직의 임금도 줄어들었습니다. 컴퓨터 클라우딩 시스템과 사물인터넷의 현실화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노동의 종말’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입니다.



니콜라스 카가 《유리감옥》에서 “GE와 애플 같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일부 제조업을 다시 옮기고 있다는 소식조차 무작정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제조업이 되돌아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 없이도 대부분의 제조업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고용없는 성장’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말해줍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자본(기업)은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노트북과 스마트폰, 테블릿PC, 자가용비행기, 핵심인력 등만 있으면 노동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화의 과실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필요했던 시절의 자본(기업)은 전설의 영역으로 사라졌습니다.



무한경쟁에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의 폭주는 비정규‧파견‧임시직에 아웃소싱까지 활성화시키는데 정치권력을 포획하는데 성공했고, 이제 자본(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은 것은 정년과 그에 따른 임금상승이 보장되는 정규직의 자유로운 해고와 임금뿐입니다(2편에서는 반론, 3편에서는 대안을 다루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4.04 08:26 신고

    정책입안자나 결정권자가 한번이라도 을의 입장,비정규직 입장에서
    생각하고 정책을 세운다면 분명 달라질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2. 뉴론♥ 2015.04.04 08:36 신고

    전 비정규직도 좋아요 취직만 할수 있다면요

  3. 참교육 2015.04.04 12:42 신고

    자본주의는 영원한까?
    이 담론은 끝이 없습니다.
    결국 자본의 영원한 승자일 수밖에 없다는 채념이 약자를 더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4. 최홍대 2015.04.05 00:01 신고

    무엇이 정답일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가라는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야 된다는 담론에는 동의해야 될것 같아요.

  5. Aa 2017.11.09 10:40

    일반적인 헬조센의 기업의 인력중 90%가 해고도 못하는 잉여인력인걸 모르나? 미국기업들은 정규직 해고시 해고사유도 대야하는 의무가 없는 반면, 헬조센에선 고용한 후면 게으르고 무능한게 입증이 되도 해고를 못하는게 현실. 쓸모없는 인력을 해고하지 못하는 헬조센 기업들은 그만큼 경쟁성이나 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회사 전체의 임금도 하향 평준화되지.


미국의 구인·구직 정보업체 ’커리어캐스트’가 선정한 ’10대 몰락 직종’ 발표했습니다. 커리어캐스트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고용전망 자료를 토대로 2012∼2022년 사이 우체부의 고용하락률이 모든 직종 가운데 가장 높은 28%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메일, 소셜네트워크 등의 발달 때문에 미래의 고용상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를 피해갈 수 없는 직종을 선정한 것입니다.


                                                                     닐 포스트만의 저서


우체부에 이어 농부(19%), 검침원(19%), 신문기자(13%), 여행사 직원(12%)이 선정됐습니다. 그 다음으로 고용전망이 나쁜 직업으로는 벌목공(9%), 항공기 승무원(7%), 천공기술자(6%), 인쇄공(5%), 세무업무원(4%)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항공기 승무원은 항공사별 저가 경쟁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승무원 고용이 줄어드는 것이 요인으로 분석됐습니다. 세무업무원은 각 기업이 자동 세무프로그램을 통해 세무 업무를 처리하려는 추세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리어캐스트에 따르면 급격히 발달하는 과학기술 때문에 많은 직종의 고용전망이 바뀔 것이며, 선정된 10대 업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커리어캐스트는 수학·통계 관련 부문과 통신·항공기정비·전자 관련 기술자, 웹개발자 등이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고 했지만 사라지는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최근의 고용없는 성장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여겼던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다.



미국의 사회·언론·교육학자인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과학기술이 인류와 사회에서 빼앗아간 것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프로이트의 언급을 인용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언급이 항상 진실은 아니지만 고삐 풀린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세상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애초에 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철도가 없었다면 내 아이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사용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대양을 횡단하는 선박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친구는 항해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연히 마음 졸이며 그의 소식을 전보로 전해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유아 사망률의 감소가 그 비율만큼 출산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더구나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기쁨이 없으며 비참하기 그지없어 오직 죽음만을 바라고 산다면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런 현상이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라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지배계층의 이익이 지배적인 체제를 구축한다고 했지만, 폴라니는 인간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지배적인 체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극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보다 내 자신의 편리함을 중시한다면 타인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과학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유토피아ㅡ경향신문에서 인용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이런 선택이 가능해지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자신이 연구하는 것의 결과에 대해 가치 판단을 거부한 채 기업과 자본의 탐욕에 종속되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변질됐는지 말해줍니다.   



걷잡을 수 없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간성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까지 파괴시킬지도 모른다. 기술은 도덕적 기반을 상실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신적 과정들과 사회적 관계들을 뿌리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1940~1950년대부터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를 고수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인터넷으로 발급할 수 있는 각종 서류들과 카드 발급 같은 것들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용자의 편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해당 일자리의 유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독일 국민들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삶의 편리함보다 근로자의 일자리, 즉 소득 보존을 더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바다 속에 방치할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가장 발달했고, 정보통신 인프라가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른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용자와 소비자의 편리함만 최고의 가치인양 포장하지만, 그것은 내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직업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 놈의 빨리빨리와 단기적인 이익 극대화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고용없는 성장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또한 보수 세력들이 절대적 체제인양 떠들어대는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도) 기술주의문화아 테크노폴리에서는 각기 큰 차이가 있다. 사실 테크노폴리에서의 자유민주주의란 발터 벤야민이 '상품자본주의'라고 불렀던 것과 유사하다...현재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사상체계에 충분한 도덕적 실체를 제공하여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제가 평등이 답이다ㅡ경제성장과 행복지수에서 자세히 다루었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1인당 GDP가 늘어나 부유한 나라에 진입하더라도 소득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행복지수는 결코 높아지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하는 변화를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대규모 토지 오염, 전방위적 생태계 파괴, 수질 오염에 따른 물부족 사태, 90% 이상의 종이 멸종된 생물다양성의 파괴, 만성질환과 정신질환의 폭발적 증가, 전체 인류의 반이 하루 2달러 이하의 절대빈곤층인 이유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사회적 합의 없이 모든 분야에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지구의 탄생 이래 6번째 종말을 걱정해야 할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지배적 체제를 결정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가치편향적인 주장입니다.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인류의 공존과 상생을 위해, 정의와 평화, 박애와 관용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용없는 성장, 1%에게 부와 권력, 기회가 독점되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이 보장하는 테크노폴리(과학기술지상주의)라면 우리는 과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을 도구화하고 서열화하며 노동은 물론 일상의 삶까지 착취하는 과학기술의 유토피아라면 우리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문제가 가장 적게 발생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매우 느리고 조금은 더 힘들지라도.     


  1. 여강여호 2014.07.16 16:38 신고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성장이 마치 복지의 선결조건인 것처럼 떠들지만
    이미 현실에서는 실패한 정책임이 판명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짧은 기간의 고성장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와 언론을 이용한 전방위적인 왜곡에 판단이 흐려진 젊은 세대에게 성장이 복지라는 거짓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종국에는 그들의 통치 편리성만 추구하고 있는 형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사회적 문제가 적은 길로 가는 정책이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결국 현명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2. 참교육 2014.07.16 22:08

    근대화, 성장제일주의... 효율과 경쟁, 신자유주의... 소비가 미덕이라는 성장 이데올로기시대는 이제 마감해야 합니다.
    성장 뒤에는 양극화문제와 부존자원의 한계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시장지향적인 정부는 성장이 미덕이라는 논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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