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하자는 것일까요? 국가재정과 국민의 혈세를 말아먹는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주고 있는 최경환 부총리가 이번에는 민자사업활성화를 들과 나왔습니다.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포장된 이번 경제활성화 대책은 이명박식 토건사업을 더욱 기업친화적으로 바꾼 것이어서 하위 90%의 부를 상위 10%에 이전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울 것으로 보입니다. 





민자사업은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민간자본과 토건기업에게 세금과 이용료, 손실보존을 통해 마르지 않는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변질된지 오래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민자사업은 국민의 혈세와 이용자의 지갑을 털어 투기자본과 토건기업의 금고를 채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민자사업이 투기자본의 보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담보로 높은 이익률을 보장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 원칙인 민자사업이 정부의 보장으로 실패의 위험부담이 사라짐에 따라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돌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맥쿼리그룹처럼 대규모 투기자본을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민자사업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고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최경환 경제팀은 이것도 모자라 초기투자의 30%를 정부가 책임지는 것으로 만들었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까지 인하해 자금조달의 애로를 완전히 풀어주었습니다. 정부가 이 정도까지 해줬으니 닥치고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민자사업자와 투자자들이 부담해야 할 위험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최소한의 위험마저 사라지고 이익만 더욱 늘어났으니 황금알을 판 단위로 낳는 거위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이들의 위험이 줄고 이익이 늘어날수록 국민이 짊어져야 할 채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부의 이전이 확실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미국의 금리인상이 빨라져 자본 유출이 앞당겨지고 규모가 커지면 정부가 책임져야 할 금액(국민의 혈세와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충당된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부동산3법처럼 각종 규제완화로 줄어들 세수와 이명박 정부의 각종 부실사업의 손실과 이자까지 더하면 다음 정부가 짊어져야 할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중국의 성장률 하향조정과 유럽 및 일본과의 환율전쟁에서 발생하는 수출부진과 이익감소를 넘어 물건을 팔수록 역마진이 발생하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넘어 국가부채와 가계부채가 동시에 폭발하는 사상 초유의 경제 붕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최경환의 한국판 뉴딜정책은 핵폭탄을 안고 원전에 뛰어드는 자살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최경환 경제팀은 금리인하와 확장재정이 연동되면 경제성장률이 오른다는 과거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으나, 낙수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현재의 경제구조에서 최경환표 민자사업활성화는 내수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한국경제는 부정적 세계화에 지나칠 정도로 개방돼 있어, 고율의 관세와 환율조정을 통해 정부 차원의 유치산업 보호가 가능했던 과거와 동일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환율의 영향으로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부진한 것에 비해 수입차의 판매가 급증한 것과 해외직구가 늘어나는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의 금리인하는 소득이 불안한 가구들의 가계부채를 늘리는 역할을 할 뿐이고, 확장재정정책은 경기를 살리기보다는 국가부채만 늘릴 뿐입니다. 미국과 유럽, 영국과 일본 등이 우리보다 더 큰 단위로 금리인하와 재정확장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최경환의 뉴딜정책이 성공할 확률은 너무 낮습니다. 





미국의 뉴딜정책이 성공한 것은 최고 91%에 이르는 세금과 좋은 일자리 창출, 부의 재분배, 노조의 강화, 경쟁의 최소화, 복지와 사회안전망 확충, 의료보험의 공공성 강화, 공정거래, 전쟁특수 등에 있었는데 최경환의 뉴딜정책에는 토건사업만 남고 이런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토건사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급전직하했기 때문에, 최경화표 뉴딜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내수경제활성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수치로만 나타나는 경제성장률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다음 정부와 국민과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액수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이 정도면 최경환이 강만수를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박근혜의 줄푸세를 악용하고 있는 최경환의 경제정책들은 F학점을 넘어 반국민적이고 반국가적일 만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최경환표 뉴딜정책이 강행되면 고위험과 저수익은 국민에게 분배되고 저위험과 고수익은 민자사업자와 투기자본에게 돌아갑니다.





최경환 경제팀이 정말로 내수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민자사업활성화가 아니라 상박하후라 할 수 있을 만큼의 파격적인 직원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부의 불평등을 줄여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조세정의의 실현, 갑과 을의 공존과 공생이 가능한 공정거래 등에 집중해야 합니다. 

  


최경환표 뉴딜정책과 한은의 금리인하는 득보다 실이 큰 쌍둥이입니다. 국민은 이제 미국의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가 커질수록 북한의 급변사태가 아닌 한국의 급변사태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이런 와중에 재가동되는 원전에서 사고라도 터지면 대한민국은 회생불능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최경환을 탄핵할 수 없다면, 야당이 짧게는 4월의 보궐선거, 길게는 내년의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최경환 경제팀을 필두로 한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최소화하려면 이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민주주의를 최소화하고 권위주의를 강화하면 경제가 파탄나고 국민이 죽어나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대 금리에 숨어 있는 악마의 실체 이번 글의 후편격으로 최경환이 기업의 임금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을 들먹였던 이유를 파헤쳤습니다.   



                                   


  1. 耽讀 2015.03.12 18:15 신고

    민자사업은 결국 시민혈세 퍼붓습니다. 아이들 밥그릇은 옹졸하지만 자본 배채우는 일에는 앞장서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3.12 19:04 신고

      미쳤습니다, 현 집권세력이.
      저들은 최악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다음 정권을 진보진영이 잡을 가능성이 높다면 최악을 물려주겠다는 것입니다.

  2. 참교육 2015.03.13 07:24 신고

    이런 짓하는 새누리당이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니 기가 막힙니다.
    끈없는 친부자정책... 서민들이 숨쉬기 어려운 막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3.13 08:55 신고

    참 가관입니다
    최경환 나가도 너무 막 나가는거 아닙니까?

  4. 이성기 2015.03.13 16:50

    그래도 뭐 사누리당 만세인데....반대하는 사람들 전부 빨갱이???ㅎㅎㅎ자업자득!!!나랑 아내와 아들하나 그랑저낭 살다 그냥 가리다!!신경쓴들 내 맘만 아프오!!그래도 투표는 하겠습니다 ㅎㅎㅎ 새누리만세

    • 늙은도령 2015.03.13 17:01 신고

      뭐, 어차피 한 번은 망해야 하니 어떤 선택인들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소득이 적을수록 피해가 크다는 것만 알면 감내할 수도 있겠지요.
      삶은 개인의 선택이니 저도 뭐라고 말하기 힘드네요.

  5. 행복만 2015.03.14 00:27

    아 어쩌나요T T 정말 암담하네요흑흑흑..거기다 노후원전까지 재가동한다니 경제적으로는물론 생명의 위협도 느끼네요..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않고 무슨짓인가요T T

    • 늙은도령 2015.03.14 00:35 신고

      성장만 신경쓰지 분배는 생각도 안 해요.
      국민의 삶의 질을 올리는데 신경써야 하는데 그저 성장만 외쳐대니...

  6. vitaminnami 2015.03.15 09:34

    이 나라가 참을 걱정되네요 국민이 이모양이니 저런것들에게 나라를 맡기지요 에효효

    • 늙은도령 2015.03.16 03:18 신고

      올바른 방법으로 하지 않고 70년대에나 통했던 방법으로 하니 서민만 죽어나갑니다.
      지금까지 기업들 위주로 움직여 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면 그래도 되는데 대체 그런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식물류와 마찬가지로) 동물류 그 자체에서도 다른 동물을 희생시킴으로써 살아가는 동물이 많이 생겼다. 실제 동물적인 유기체는 움직일 수 있으므로 그 운동성을 이용하여 무방비적인 동물을 찾으러 가서, 식물을 먹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동물을 먹고 산 것이다. 이렇게 종이 더 많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탐식하게 되고 서로에게 위협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불변의 진리로 신격화한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만연할 때는 「창조적 진화」에 나오는 위의 인용문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적자생존’이 정치에서도 불변의 진리처럼 떠받들어졌습니다. 16대 대선에서 뛰어난 돌파력과 창조력을 발휘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넓히며 서민을 옥죌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시민들은 변화를 바랐고, 그것이 노풍으로 자라났습니다. 



그가 외친 것은 반칙과 특권이 없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세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던 신자유주의의 확대에 경계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주변에 몰려든 것도 그가 꿈꾸었던 세상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느라 제대로 이루지 못한 과거사 청산과 기득권 위주의 세상을 바로 잡기를 바랐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그를 통해 다시 구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노무현의 승리 요인은 김대중 정부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낸 도움도 컸지만, 좌파몰이와 ‘빨갱이 논란’을 일으켜 노무현에게 융단폭격을 가하던 조중동(집권 후에는 진보매체들도 노무현을 비난했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모두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향이 제일 문제지만)에 정면으로 맞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은 뚝심과 탁월한 공격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정치가 말’이라면 노무현은 어떤 장애도 돌파할 수 있는 설득력과 공감능력을 지닌 유일무이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공격은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적인 방어수단이다...대체로 생명 전체의 진화에 있어서도 인간 사회의 발전이나 개인적인 운명의 전개와 마찬가지로,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노무현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만연하는 사회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조중동의 영향력이 빠르게 회복되는 중에 노무현은 혈혈단신으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도전을 훌륭하게 치렀고, 이에 감동한 국민들이 ’돼지저금통‘으로 노무현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극적인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서민적 언어와 감성의 소유자인 노무현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문재인이 있었고요.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가장 피상적인 원인을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생명을 세계 안에 발사한 추진력이다. 그 추진력은 식물과 동물을 분열시켰고 동물성을 유연한 형태 쪽으로 향하게 하였으며, 동물계가 잠들어 버릴 위험성이 있던 어느 시점에 이르자 적어도 약간의 부분에서는 그들로 하여금 깨어나 전진하도록 하였다.”



「창조적 진화」에 나오는 또 다른 인용문처럼, 노무현의 탁월한 돌파력이 생성한 노풍이라는 신드롬은 ‘특권과 반칙’이 넘치는 세상에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투사해 6.10항쟁 이후 잠들어 버린 시민정신을 깨워 전진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만든 대체제인 안철수에게는 너무나 거대해서 소화할 수 없었던 안철수 현상이 노풍에 미치지 못했음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안철수 현상은 새정치에 대한 열망을 품었던 시민들이 만들어 안철수에게 전해준 것이지만, 노풍은 지역구도를 깨기 위한 일관된 도전과 바보 같은 노무현의 우직함과 진정성에 시민들이 호응해 일어난 것이라 그 위력과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노무현은 잠들어 있던 시민정신을 깨웠고, 동시에 거기서 기득권의 벽을 넘어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노무현은 시민과 소통했고 함께 전진했습니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듯이, 지역주의의 벽에 끝없이 도전했던 노무현의 진정성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는 시민의 꿈에 스며들었고,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그것으로부터 촉발돼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승리는 시민정신의 승리였고, 깨어난 서민의 연대가 만들어낸 승리였습니다. 성장지상주의와 빈곤에서의 탈출만 울부짖던 한국정치사에 깨어있고 탈물질적이고 인권을 중시하는 시민들이 참여정치와 삶의 질을 새로운 화두로 던진 것이었습니다.    





헌데 확실한 지지층이 정치권에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노풍이라는 신드롬은 양면의 칼날 같아서, 목표한 지점에 이르러 바람의 원천이 사라지면 곧바로 시들어버립니다. 더 큰 문제는 바람이 사라진 공간에 남아 있는 열기(노무현 정부에 대한 수동적인 기대로 변하다가 실망을 거쳐 공격으로 바뀐다)가 다른 바람에 자리를 내준다는 것입니다. 정치에서 다른 바람이란 이념적 지향이 다른 세력의 득세를 말하며, 지지층의 이탈을 동반합니다.



이런 결과는 조중동의 악의적이고 끊임없이 퍼부어진 저주와 그들의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한 진보매체의 어리석음과 왜곡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노무현 정부가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했다’며 좌우, 보수와 진보를 가라지 않고 집중포화에 시달린 것도 노풍의 수동적 해체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여러 발 물러선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거쳐 4대개혁입법마저 실패할 정도로 국정동력을 상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노무현과 참여정부는 최소 통치로 돌아선 느낌입니다. 기득권의 거대한 벽을 무섭게 돌파해가던 추진력이 급격히 위축되며, 몇 번이나 주저앉게 됐습니다. 곳곳에서 타협하자는 유혹들이 돌출했고(노무현을 끝없이 흔드는 원천으로 작용했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대연정 제의)은 작은 실족들을 누적하며 한껏 부풀려졌습니다. 그렇게 비난이 폭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거의 모두가 노무현을 비난했고 씹었으며 짓밟았습니다. 확실한 지지층이 없는 노무현은 하는 일마다 저항에 부딪쳤고, 쉽게 실패했습니다. 노무현이 퇴임한 이후에도 제도권 언론과 이명박 정부의 공격과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최정점에 이르렀을 때 비극적인 최후의 순간이 도래했고, 이 모든 흥망성쇄를 문재인은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참담함과 두려움 속에서.



따라서 문재인이 현실정치로 뛰어들 것을 결심했던 것과 노무현 리더십의 한계(그것이 노무현의 잘못이던,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실망이던)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확실한 지지층이 없는 바람은 세상을 뒤엎는 태풍도 될 수 있지만, 찻잔에 머물러 있기에 적합한 미풍으로도 변할 수 있음을 절절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의 운명을 슬퍼하고 비통해 한 국민이 6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지만, 문재인이 해야 할 일이란 노무현의 빈자리를 매우고, 허허벌판에 버려진 유족을 살피며, 바보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회한과 애도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터질 듯한 분노와 지켜주지 못한 그만의 회한은 가슴 깊숙이 담아둔 채 어떻게든 풀어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노무현의 운명’이 ‘문재인의 운명’으로 이어졌지만, 문재인은 깊은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노무현 추모인파에 화들짝 놀란 야당(당시 민주당)이 그에게 현실정치에 참여하라는 추파를 지속적으로 던졌지만, 그는 유족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 먼저였으며, 그 다음에는 폐족이 된 친노인사들이 눈에 밟혔을 것입니다. 정치를 너무 싫어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고, 노무현 만큼 잘할 자신도 없었겠지요. 



그의 고민은 깊어졌고, 정치가 삶과 죽음에 미치는 것들에 대해 반성적 성찰과 냉정한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정신’은 자신의 삶과 같아서 그것을 이어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노무현 리더십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 같아서 불편했을 터이고, 당시에는 노무현의 폭발력을 소화해낼 능력도 턱없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는 듣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말하는 것은 노무현을 따라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성적 성찰에만 잠겨 있을 수 없는 법, 행동하지 않으면 무엇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노무현이 왜 돌아가지 않았는지, 그것은 사유와 성찰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창조적인 무엇이었고, 최소한 약동하는 생명의 힘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에 문재인은 결심해야 했습니다. 조중동의 프레임에 갇힌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꼬장닷컴 2015.01.29 07:27 신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는 행복할 준비가 되었는데
    하늘은 그걸 쉬 허락하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꼭 행복하고 말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1.29 14:50 신고

      네, 그래야 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행복합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살게 하고, 그것이 제 출생증명서입니다.
      님도 반드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2. 공수래공수거 2015.01.29 08:54 신고

    노무현 대통령의 그 큰 뜻은 길이 남을것입니다
    생각이 많이 나는군요

    • 늙은도령 2015.01.29 14:52 신고

      네, 그분의 방식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그분처럼 민주주의가 체험적으로 몸에 밴 분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논리에 관해서는 치열했고, 누구와도 대화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크게 만들고 위대하게 만듭니다.

  3. 하늘이 2015.02.02 00:33

    오늘 이글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속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ᆞ우린 언제나 다시 노무현과 같은 지도자를 만날수 있을까요 ᆞ그리고 문재인의 운명도~ 너무 가슴 아프고 ~암튼 문재인님의 숙제가 너무 큰거 같습니다 ᆞ늘 멀리서 그분을 노통 다음으로 믿고 신뢰하고 지지합니다 ᆞ잘 해 내시리라 믿으며 ~♡

    • 늙은도령 2015.02.02 01:32 신고

      네, 노무현 대통령이 인류 역사상 정말로 보기 드문 민주적 지도자였듯이 문재인 의원도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옆에서 지켜본 문재인 의원 만큼 보수세력들이 무서워하는 정치인도 없습니다.
      반드시 승리해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데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하늘이 2015.02.02 00:35

    장상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ᆞ건강 잘 챙기셔서 좋은글을 통해 많이 뵐수 있기를 바랍니다 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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