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김용판의 대선개입에 관해 무죄를 선고했을 때 총선 출마는 예상된 것이었습니다. 박근혜의 인사를 돌아보면 이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범위의 일입니다. 제가 어느 글에선가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김용판의 대선개입 혐의가 유죄로 판결나면,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법적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문재인의 집권을 막아야 하는 것이 모든 보수세력의 공통된 이해라면, 원세훈에 이어 김용판도 대선개입에 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아야 했고, 총선 출마와 당선으로 박근혜의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정통성이 더욱 강화됩니다.





만일 김용판 전 경찰청장이 대선개입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면, 지난 대선의 정당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불법댓글들이 정치개입이 아닌 대선개입이었기 때문에 경찰청이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김용판의 유죄를 선고하면, 이는 곧 지난 대선의 법적 정당성이 상실됐다는 뜻이기에 지난 대선결과는 무효가 되고 재선거가 치러져야 합니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공적인 것들이 모두 다 무효가 됩니다. 어마어마한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고, 파장은 그렇게 끝없이 커져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법원이 원세훈에 이어 김용판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판사도 김용판의 유죄가 불러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억울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대선패배를 받아들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물론 김한길 등의 비주류가 압박을 가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박근혜가 당선된 초기에 이 문제를 들고나왔다면 파국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힘의 차이가 너무 크고, 안에 자리한 비주류들이 문재인을 퇴출시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실과 정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자리합니다.





크렌슨과 긴스버그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보면, 부시와 고어가 겨룬 미국 대선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와 재검표에 들어가야 했지만, 플로리다 대법원(당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부시의 동생이었다)이 재검표 불가를 판결해 부시가 대통령에 취임한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고어도 끝까지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고, 부시는 득표수에 뒤진 최초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지금까지도 엘 고어가 법적 대응을 계속해 플로리다 대법원의 판결을 연방대법원이 뒤집었다면, 부시가 아닌 고어가 대통령에 올랐을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대의 민주주의가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유리됐고, 얼마나 많이 축소됐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이 예가 ‘플로리다 대법원의 재검표 불가 판결’입니다. 켈리와 민주당이 이에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미국보다 더욱 미국적인 나라 대한민국에서 비슷한 판결이 나온 것은 별로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언급하지 않아도,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민주주의가 유린된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불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갑질’이 횡행하고 있습니까? 박근혜 정권의 일등공신이 김용판이 새누리당의 텃밭에 출마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정의의 역설’과 비슷해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있고, 힘이 곧 정의가 되기 일쑤입니다. 1994년 대한민국 검찰(당시 검사는 한나라당 의원이 됐다)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를 불기소 처분한 적이 있습니다. 법원의 판단도 구하지 않고 정치검찰 선에서 면죄부를 받는 것입니다.



대선개입 혐의에 대한 원세훈과 김용판의 무죄 선고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 것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했고, 국민과 유리됐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내부고발자가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한 상태라고 해도 유죄 선고를 기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위키리스크가 폭로한 외교문서가 그렇게 많았지만 그것 때문에 권력이 변한 예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6.10항쟁 이상의 대규모 시위나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면, 집회와 시위를 꾸준히 열고, 다양한 방식의 저항을 실천하고, 온라인입당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마지막으로는 총선에서 반드시 선거를 하는 것만이 정의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민주주의가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물며 야당이 무력하고 방송이 장악된 상태라면 더욱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국가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수구세력의 집단인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해야 하고, 방송이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이어야 합니다. 방송의 독립성을 실현할 재원이요? 그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야당이 강하고 방송이 독립적이면 재원은 저절로 확보됩니다.  



이번 당대표 선거를 기점으로 야당이 야성을 회복하고, 시대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를 바랍니다. 새누리당2중대라는 치욕적인 얘기를 다시는 듣지 않도록 뿌리부터 열매까지 모든 것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방송의 독립성 확보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면, 국민이 그것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정의로울 때만이 제 역할을 하는 체제이며, 그럴 때만이 국민이 주인이 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민족의 십일조 2015.02.01 23:53 신고

    성공한 쿠테타... 장윤석이죠?

  2. 공수래공수거 2015.02.02 09:39 신고

    밤 늦게 TV를 보고 있었는데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속보로 나온걸..ㅡ.ㅡ;;

    • 늙은도령 2015.02.02 18:42 신고

      사법부가 정치를 처단하려면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합니다.
      우리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3. 하늘이 2015.02.02 11:16

    부패한 정권 오래 못갈거라 믿습니다 ᆞ진실을 덮고또덮어서 우선 모면하기 바쁘다 ᆞ

    • 늙은도령 2015.02.02 18:43 신고

      언제나 그러합니다.
      이명박근혜의 특징이 그러한데, 대한민국이 기회주의자의 천국이 된 것도 그 떼문입니다.

  4. 무쏘 2015.02.08 13:33

    장윤석이 지역구는?



경찰이 6월12일에 발견한 부패한 시신이 유병언이라면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추측을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18일 만에 신원을 알 수 없고 지문이 발견될 수 없을 만큼 부패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주 중에 자살을 했을 가능성은 없으니 사고사나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신의 상태를 알 수 없으니 이 또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유병언의 죽음이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밝히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타살이라면 유병언이 갖고 있었다는 수십억의 돈 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이고, 사고사라면 고령에 병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으로 돌리면 그만이고, 자살이라면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것으로 유병언의 장남인 유대균도 변사체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이들 부자의 죽음이 도피조력자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세월호 정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조금 길어지게 되지만, 세월호 유족과 구원파와 국민의 분노가 살인자에게 퍼부어질 가능성만 높아질 뿐입니다. 그의 죽음이 미스테리 할수록 유병언의 죽음은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다음 정권에서 특별조사위원회 꾸려져 재조사를 한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런 추론은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지금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것에서 얼마든지 유추가 가능합니다. 온갖 음모론과 추측들이 난무하고, 검찰의 후속 수사에 의해 유병언 죽음에 관한 비밀이 밝혀진다고 해도 세월호 침몰 원인이 밝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혐의자들과 심지어는 그의 자식들도 유병언(과 그의 장남)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간에 떠돌던 유병언 리스트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고, 그 리스트에 올라 있던 여야의 국회의원들은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습니다. 구원파들은 검찰이 가압류를 해두었던 재산들을 지킬 수 있게 됐고, 정부는 유병언 체포와 수색에 들어간 돈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법적인 수단이 없습니다. 검찰은 유병언(과 장남)의 죽음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끝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장준하 선생 유골

 


오히려 구석으로 몰릴 대로 몰린 검찰도 위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단 한 명의 승객도 구조하지 못한 해경을 해체하듯이 검찰을 해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검찰총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검찰 조직도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패한 관피아들 몇 명만 처벌하면 국민의 비판도 비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초등수사 미숙과 체포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무능력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는데 모든 책임을 지고 검찰총장이 물러나면 그만입니다. 아직도 정확한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냈을 때도 검찰이 입은 타격은 거의 없었습니다. 검찰총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검찰로 향하던 국민의 질타는 방향을 잃게 됩니다. 

 

 

당분간은 유병언의 죽음과 관련된 소식이 언론과 방송을 도배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향후 정국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7월 재보선이 권은희 후보를 크게 흠집낸 상태에서 도래합니다. 그렇다면 투표율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당연히 30~40%대에서 머물 것이고, 투표율이 낮을수록 새누리당에게 유리합니다.

 

 

7월 재보선의 승패와 상관없이 유병언의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알려졌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됐습니다. 유병언 리스트가 언론의 표적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7월 재보선도 그렇게 끝날 것이고, 4월16일부터 지속되온 세월호 정국도 끝에 이르게 됩니다.    




 


검찰이 6개월짜리 구속영장을 신청한 날,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가 세월호 유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안 여야의 TF가 새로 구성된 날, 세월호 유족의 단식농성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날, 검찰이 무려 6개월에 이르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한 날, 뜬금없이 유병언의 메모가 언론에 알려진 날에 유병언의 죽음이 확정됐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여야가 더 이상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유병언의 죽음이 공식화됐습니다.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1박2일에 걸친 도보행진의 여파가 점차 커져가고 있었고, 350만 명이 서명한 특별법 제정 청원서에 이어 2차 청원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었으며, 미국산 소고기수입 전면개방에 버금가는 대규모 집회의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는 것까지 더해지면 유병언 죽음이 공식화된 것은 세월호 정국을 이것으로 끝내자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유병언 부자는 살아 있어도 죽어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던ㅡ추측되도록 유도되었다 해도ㅡ세월호 침몰에 관련된 진실이 허공 중으로 사라져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세월호 수색에 동원된 헬기가 추락해 탑승한 공무원 5명이 순직했고, 곳곳에서 공공연히 세월호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유병언까지 죽었으니 세월호 유족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가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획기적인 증거가 발견되거나,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만만회를 만나고 있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동력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습니다. 유병언의 죽음이 확정됐고(최종 확인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의 장남도 죽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미제 사건으로 남은 채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 생존학생들에게만 피해가 돌아갈 뿐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다 이익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는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성역 없는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국가 개조는 박근혜 정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7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하게 되면 무엇으로 특별법 제정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유병언의 죽음의 방식과 그의 죽음이 확정된 날과 시간, 시신의 상태가 절묘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치 제갈공명처럼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가 추호의 빈틈도 없이 짜놓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유병언의 죽음을 삼국지에 나온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칠까 합니다. 

 

 

죽은 유병언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모든 국민을 엿 먹였다.   

 

 


  1. 여강여호 2014.07.22 09:17 신고

    지금 기자회견을 보고 있는데
    당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지문이 유병언 게 맞다는데
    오늘 새벽에 대조했다네요.
    그동안 뭐했을까요?....
    처음 발견 당시 유류품도 유병언 것인줄 몰랐다니..
    도피한 장소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이면 가장 먼저
    유병언일 가능성을 의심하는 게 인지상정일텐데....
    암튼 오히려 시신이 발견됐다니까 떠도는 음모론에 관심을 갖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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