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16.4%가 오른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다룬 SBS의 보도가 정말로 엿 같네요. SBS의 보도에 따르면, 1천6백여 세대의 모 아파트 단지에서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34명의 경비원에게 올려줘야 하는 가구당 경비용역비가 무려 5천 원에 이르기 때문에 9명의 경비원을 해고하겠다고 합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한 달에 5천 원의 추가지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빈곤에 허덕이는 모양이어서 SBS가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나 봅니다.





SBS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송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졌는지 알 수 없지만, SBS의 보도는 "(관리비가) 1천 원만 올라도 (주민들이) 와서 따지고 항의해요. 그럼 만약에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게 되면… 감당 못 한다고" 말하는 입주자 대표회의 부회장의 인터뷰를 내보냄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부각시켰습니다. 기자가 5천 원 인상분도 감당하지 못하는 아파트를 찾아냈는지 알 수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비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보도가 일방적으로 흘러간 것은 아닙니다. 기계적 균형의 흉내라도 내려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부담이 조금 늘더라도 해고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라는 멘트를 추가했습니다.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입주민은 "우리가 사실 조금 벌어도 조금씩 나눠 먹고, 많이 벌면 많이 나눠 먹고. 그게 더불어 세상이잖아요."라고 말함으로써 입주자 대표회의 부회장과 다른 공존과 상생의 인식을 보여주었습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간 보도의 끝에는 SBS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나옵니다. 해당 아파트에서만 9명의 경비원이 해고될 위기에 처했으니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며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에게 마이크를 넘깁니다. 안진걸은 "영세사업장에 대해서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원하기로 검토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대책을 함께 세울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말로 문재인 정부에게 부담을 떠넘깁니다.   





'경비원 같은 노인층 일자리 감소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적용을 직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는 멘트로 끝나는 SBS의 보도에 필자가 거지 같다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용역비가 오르지만 '병원비 걱정없는 세상'이나 '통신비 인하' 같은 각종 소득 증가 및 재분배 정책으로 각각의 가구에 돌아가는 이익이 더욱 많아짐에도 쥐꼬리 만하게 늘어난 지출에만 초점을 맞춰 정부의 부담을 늘리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터무니없이 부풀려 강조함으로써 경비원처럼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부분적 사실로 보편적 진실을 이끌어낼 때 나타나는 논리의 오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다양한 정책들이 창출해내는 시너지효과를 시야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어떤 정책도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비판의 지점이 반드시 존재하는데 SBS의 보도가 그것을 노린 전형적인 마타도어입니다.



세 번째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만 부각시킴으로써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아야 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이간질시키는 것입니다.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이 차액을 무시해버린 이런 보도는 부유하지 않은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해줍니다. 공생을 얘기한 입주민에 비해 부작용을 얘기한 두 명의 무게감이 훨씬 더 크다는 점에서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똑같은 일을 벌여도 괜찮다는 암시를 강하게 전달해줍니다, 빛의 속도로. 



마지막으로 앞의 세 가지 것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여지가 더욱 커진다는 것입니다.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던 깨시민들은 공존과 상생의 정의로운 세상을 외쳤지만, 대단히 편파적인 이런 보도로 인해 촛불정신의 실현이 더욱 힘들어집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발표하고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지출보다 소득을 몇 배는 높여주는 것들로 구성됐음에도 지출에만 초점을 맞춘 이런 보도로 인해 다른 정책들을 펼칠 수 없게 만듭니다. 





자본주의가 약속한 최저임금이란 산업혁명 초기에나 있었던 생존임금이 결단코 아님에도, 거지 같은 SBS의 보도는 인간으로써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생활임금으로써의 최저임금을 생존임금에 묶어두는 것에 힘을 실어줍니다. 이런 보도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면 이기주의적 행태가 늘어나고, 서로 돕고 연대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을 분자 단위로 갈라놓아 서로 적대하게 만듭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그러했으며, 이명박근혜 9년의 대한민국이 가장 극심했습니다. 



모든 시청자들이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SBS의 보도에 숨어있는 자본주의적 메카니즘을 찾아낼 수 있다면 바람이 없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종류의 보도들을 접할 때마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노력하면 '국민이 주인인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도착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언론학자였던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를 보면 TV뉴스의 메커니즘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인지 알 수 있는데,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부각시킨 SBS의 거지 같은 보도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과유불급 2017.08.13 15:10

    꼴통 언론들에게 공정한 보도를 해달라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균형있는
    보도를 위해 다른 시각으로 보는 언론에 힘을
    실어주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죠.

    • 늙은도령 2017.08.13 18:23 신고

      서울대 기득권과 언론에 대한 공격을 자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이땅의 최고 기득권들이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2. 둘리토비 2017.08.13 23:50 신고

    모든 언론보도에 있는 행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론은 이상한데 팩트체크를 적용해서 자기들 입맛대로 방송하고 그 후유증을 키워 올립니다.

    SBS가 이렇게 비상식적인 보도를 하다니, 이건 정말 탄핵받아야 할 보도이군요~

    • 늙은도령 2017.08.14 00:30 신고

      이런 식의 보도는 수두룩합니다.
      방송언론학만이 아니라 그와 인접한 학문들과 현장의 경험까지 두루 갖추고 있으면 이런 것들이 보입니다.
      통섭적 지식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8.14 08:16 신고

    단순 계산으로 해도 9명을 해고하면 임금 올리는것보다
    훨씬 적은 돈이 경비원들 임금으로 나가게 되는군요

    140만원이 조금 넘는 경비원 월급이 좀 오른다고 계산상으로만
    보도하는건 정말 방송이 아닙니다
    SBS 관련자가 그 아파트 사는 모양이로군요..



일정 기간이 쌓이면 조금씩 발전하던 기술이 폭발적(기하급수적)으로 한계점을 돌파한다는 기술 낙관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리처드 스몰리의 발언을 인용하곤 한다. "무엇인가가 가능하다고 어떤 과학자들이 말한다면, 그들은 아마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들은 아마 틀렸을 것이다." 어떤 기술이던 시간이 문제이지 이르지 못할 단계는 없다는 뜻이다. 





이런 기술적 낙관론은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그는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비생물학적 지능)이 플라톤의 '이데아'를 넘어 영생을 이루고, 우주적 차원의 지능까지도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처드 도킨스를 떠올리는 기술적 낙관주의자(특이점주의자)들은, 완전시장이 이루어지면 모든 인류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시장근본주의자들처럼, 현실을 너무 만만하게 보거나 인간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인공지능의 겨울'에 갇혀 생명을 다할 뻔했던 기계 학습(머신 러닝, 신경망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이 스스로 지능의 패턴을 찾아내는 '딥러닝'으로 넘어간 지금에는 인간보다 뛰어난 초지능의 출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지능은 인간의 뇌인데, 광속에 이른 컴퓨터의 연산능력(하드웨어, 연산용량이 10의 19승이면 충분)과 인터넷이란 무한대의 정보(빅데이터를 말하며 포탈, 웹, 블로그, 커뮤너티, SNS 포함), 무작위한 정보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는 인지능력(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아키텍처) 등이 발전하면서 초지능의 출현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기술 발전에 따라 현대의 세 가지 고민ㅡ지속적인 임금 하락, 일자리 감소, 불평등 증가ㅡ이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등)에 따라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져 임금이 상승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그 결과 불평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 수백 년의 역사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기술 발전은 인간을 해방시키지 않고 퇴출시키는 것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현실을 호도하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경제학자에 속았고, 민주주의와 법을 이용해 특권층을 형성한 정치가에게 속았고, 연구비가 필요한 과학·기술자들의 낙관적인 전망에 속았고, 이들이 추동하는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린 언론과 방송 종사자에게 속았고, 이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극소수의 부자들에게 속았고, 그들에 기생해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각자의 이기주의와 자기기만적 탐욕에 속았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기술 발전의 여정이 마지막 특이점에 접어든 지금, 가까운 장래에 인류의 멸종을 걱정할 정도에 이르렀다. 특이점을 넘은 초지능과 자기복제적이고 학습하는 로봇의 등장은 지구온난화와 핵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론적 문제다. 지구온난화와 핵전쟁이 겹치는 '퍼펙트 스톰'까지 발생해 인류가 일거에 멸종하는 것이라면 억울한 것도 없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은 서서히, 하지만 인간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점점 빨라지고 대규모로 이루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부와 권력, 기회 등은 상위 1%를 넘어 초지능과 로봇을 독점하는 0.0…01%에 집중될 것이며(승자독식의 초집중화), 공존과 상생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초지능과 로봇만 있으면 무한대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가능한데, 기업(자본)가가 결점투성이의 인간에게 생산과 서비스를 맡길 이유가 없다. 결코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같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인간은 초지능과 로봇에 밀려 초라하게 퇴장을 할 뿐이며, 창조론이건 진화론이건 결론은 동일하다.  



일부에서는 기술 발전에 따라 인류의 의식, 지능, 능력 등도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특이점주의자와 낙관론자들의 주장처럼 언젠가는 신에 근접한 초지능이 출현하면 그들이 인간과 공생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나노공학, 뇌과학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발전들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면ㅡ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수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ㅡ인류는 멸종하던지, 그들의 노예로 살던지 둘 중 하나만이 가능하다.



특히 세월호참사가 지겹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진상규명이 무한정 늘어지고, 새롭게 밝혀진 사실(강정해군기지용 400톤의 철근)에도 불구하고 특위는 활동시한이 종료될 위기에 처했으며, 정부와 기업, 자본이 모조리 얽혀있는 옥시참극 수사는 축소되는 것도 모자라 주변부만 맴돌고, 모든 세대를 위협하는 초미세먼지는 국민의 먹거리(고등어와 삼겹살) 탓이 되고,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와 폭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에는 침묵하면서 전쟁위협만 고조시키는 쓰레기들이 판을 치고… 이 모든 것들의 정점에는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원, 정치검찰이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면 더더욱 암울하다. 



여기에 경제란 대기업과 자본, 특권층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으로 변질됐고,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변형시킨 박근혜의 무지함과 비정상적 인식까지 더해지면, 대한민국은 디스토피아의 전형(헬조선)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린 후 꼭 살려야 할 것만 꺼내고, 김밥 한 줄에만원을 받는 것만 비판할 뿐, 왜 만원을 받아야 했는지 알려하지 않는 박근혜의 천박한 인식은 자본을 위한 모든 국민을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동일하다.                    





초지능과 로봇의 세상이란 노동자에게 주어질 일자리가 없는 자본의 천국이다. 이것 때문에 인공지능 전문가인 마틴 포드는 《로봇의 부상》에서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위대한 사회는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특정 집단에 대해 개인이 스스로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요구할 필요가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 선 이하로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모든 사람에게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하이에크(프리드먼의 경우 '음의 소득' 개념)의 말을 인용한 뒤,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우리 경제의 노동집약도가 떨어지리라는 주장에 찬성한다면 조세제도도 노동 중심에서 자본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따라서) 조세부담이 노동집약적 산업과 업체에 불균형할 정도로 많이 부과되면 이는 인간의 노동을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로 대체하려는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경제 전체가 지속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 그러므로 이렇게 할게 아니라 기술에 크게 의존하면서 인력은 적게 고용하는 업체들이 더 많은 짐을 지도록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근로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고 복지사업비를 부담한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 경제 전체가 이를 떠맡아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초지능과 로봇의 시대에도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공존과 상생, 정의와 양심, 원칙과 상식이다. 낙관론자건 비관론자건 간에 인공지능과 로봇 전문가들은 이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여준다. 일부의 전문가는 기본소득(사회보장소득)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세계적 차원의 부유세 도입(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에도 찬성한다, 피케티가 불평등을 초래한 요인 중에 기술 발전을 철저하게 외면했음에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6.27 08:39 신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배려
    이게 밀씀하신대로 현대에서 살아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 늙은도령 2016.06.27 14:25 신고

      이제는 공존과 상생이 필수입니다.
      기술 발전에 대응하려면 방법이 없습니다.

  2. 쇠북울음 2016.06.27 19:51

    오늘 처음 '늙은 도령'님의 빼어난 견해를 접하고 퇴근을 미루면서 4건의 포스트를 꼼꼼히 새김질 하듯이 읽었습니다.
    좋은 글에 공감하면서 감사를 표합니다. 부디 오래 오래 건필하소서!!!

    • 늙은도령 2016.06.27 23:50 신고

      감사합니다.
      저도 인공지능과 특이점에 관한 것들을 공부하면서 한 동안 혼돈에 빠졌습니다.
      처음에 읽은 책이 지독할 정도로 기술적 낙관론을 펼치는 바람에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수십 권의 책을 추가로 구입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3. 시골잔차 2016.06.27 22:46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을 보면서
    놀라움을 넘어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하루하루 발전해가는 기술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생각하니
    오싹합니다.
    훌륭한 통찰에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6.06.27 23:53 신고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가 집단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멸종을 피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나노공학, 생명공학, 뇌과학 등에 대한 공부가 늘어나면 새로운 길이 보일지... 고민이 많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로 그냥 넘기기에는 지금의 10대부터 그 이후의 세대가 너무 불쌍합니다.
      지금까지는 암울합니다.

  4. 현주씨 2016.06.29 08:45 신고

    잘읽었습니다.

  5. 쌈둥아빠 2016.06.29 10:37

    오늘도 감사히 글을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술에 크게 의존하면서 인력은 적게 고용하는 업체들이 더 많은 짐을 지도록 제도를 전환... 궁극적으로 우리는 근로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고 복지사업비를 부담한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 경제 전체가 이를 떠맡아야 한다"
    미래는 이런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6.29 17:03 신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KBS에서 러던의 슈퍼리치를 다룬 다큐를 방영했는데 오늘 후편이 방송됩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변화가 생기면 그 다음은 쉬워집니다.
      기술 발전 때문에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데, 그 이전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지요.
      브렉시트로 부자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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