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을 기준으로 하면 문재인의 김종인 영입은 우중에게 정권탈환을 넘겨준 패착이 됐다. 어리석은 대중을 뜻하는 우중은 '철인정치'에 무한대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존재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되기 일쑤다. 국민의 수준이 곧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이라며 온갖 비난을 받는다. 가진 자들을 위한 제한적 기획이었던 민주주의를 최상의 체제로 만든 주체가 그들인데,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는 수천 년에 걸친 그들의 투쟁과 희생이 강끄리 무시된다. 





플라톤과 후계자들의 주장처럼 대중이 어리석다면 그들을 어리석게 만든 정치인과 체제, 언론과 지식인 등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정반대의 현상이 수시로 발생한다. 그들이 혁명을 일으키면 플라톤의 후계자들이 승리를 취한다. 구체제의 복귀 및 강화는 늘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플라톤의 정치학이 전체주의의 기원(철인정치의 이면)임을 안다면, 모든 엘리트주의의 출발점임을 안다면, '피를 빨아 먹고 자라는 나무'로서의 민주주의가 대중의 공동묘지가 된다



상대적으로 소수라 해도, 우중으로 치부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깨어있는 시민들은 김종인의 오만방자함과 자아도취적 폭정을 그대로 둘 수 없다. 이들의 분노와 저항은, 필자도 당연히, 김대중과 노무현을 제1야당의 역사에서 지우려는 작태를 향하기도 하지만, 제1야당의 주인으로서 이명박근혜(와 안철수)처럼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인을 제어하지 못하는 문재인에게 분노와 실망을 표출하는 것도 당연하며, 그것에 어떤 문제도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이 될 수 없음은, 그가 선반공이나 프로그래머가 될 수 없음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들이 쓰레기들과 사이비들이 쏟아내는 정보와 보도, 여론과 상징조작에 종종 휘둘리기도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정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체제와 언론, 지식인도 필요한 것이다(정치의 민주주의적 분업).  



철학적 차원의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 해도, 민주주의는 모든 견해와 선택에 어떤 차별과 가중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피를 빨아먹고 자라는 나무'임에도 다른 어떤 체제보다 강력하며 창조적인 결과를 산출해왔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민주주의는 정말로 힘들다'고 말했으면서도 정치를 계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바보 노무현이 최고의 직위(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으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최후(피를 빨아먹고 자라는 나무)를 피할 수 없는 것도 민주주의의 본질 중 하나다.





잠시만 방심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체제가 민주주의라면,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민주적 지도자였던 노무현이 조종동과 박정희 숭배자들(친일부역을 멸공과 좌파 척결로 대체한)의 여론재판에 비극적인 최후를 피할 수 없었던 것도 민주주의다. 플라톤이 말했던 우중정치로서의 민주주의는 이런 경우에만 유효하다. 로베스피에르와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철인정치와 동면의 양전을 이루는 우중정치로 민주주의를 대체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박정희에게 관제언론을 동원해 끊임없는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우중을 동원하는 방법만 배웠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필자가 노무현과 문재인의 리더십을 분석·비교한 10여 편의 글들에서 밝혔듯이, 불 같은 노무현과 물 같은 문재인의 리더십이 교차하는 곳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에도 두 부녀의 우중정치를 한국현대사에서 퇴출시킬 순 없었다. 국정원 댓글사건과 세월호참사를 거쳐 개성공단의 영구폐쇄와 테러방지법 통과로 이어진 박근혜 3년이란 이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종인 영입이라는 대악수가 등장했다. 당대표 선거 내내 분당을 떠들어댄 박지원의 행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단 한 순간도 자신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은 비주류들의 탈당쇼와 그것을 최대로 확대재상산한 쓰레기들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시스템 공천으로 대표되는 당의 혁신을 밀어붙였고, 파격적인 인재 영입에 성공함으로써 10만 온라인입당이라는 신화를 너무 믿었던 모양이다.       



문재인이 김종인의 영입(박영선의 탈당을 막기 위함도 있었는데 이것이 대악수를 초래했다)을 서둘렀던 것도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당, 다양한 헝태의 지지자들을 열광시킨 영입인사들, 10만 명에 이르는 온라인당원들을 믿지 못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처럼 더민주의 골수의 지지자들은 김종인 영입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노풍의 핵심이었던 그들은 노무현을 믿었던 바로 그 이유로 문재인을 믿는다. 





공수부대 출신의 문재인이 참여정부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이들을 임플란트로 바꿀 만큼의 고통에 시달릴 이유도 없었기에, 하루가 다르게 병색이 깊어지는 문재인이 대표직를 사퇴하며 김종인에게 전권(당헌·당규와 시스템 공천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은 포함되지 않았다)을 넘겨줄 때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필리버스터의 조지종영에 반대했던 필자가 '총선 승리'가 먼저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문재인이 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대체 문재인이 아니면 누가 노무현의 운명을 감당할 수 있으며, 이명박근혜 8년의 민주주의 퇴행을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문재인 리더십은 노무현 리더십의 확장판이기에 당의 혁신과 정의당과의 연대를 통해 총선 승리란 기적을 꿈꿀 수 있게 만들었고,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인 김종인을 영입해 전권을 넘겨주면서도 정권 탈환의 초석을 다지는 양수겹장의 결단이라고 믿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그것이 최후의 패착이 됐다. 그 이상일 수 없을 정도로 새누리당이 자멸하는 중에도, 문재인은 김종인의 마이너스 행보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계 은퇴로 이어질 패착은 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지자들조차 티끌 만큼의 투명성도 보여주지 않는 김종인의 정무적 판단에 열광하는데, 평당원으로 돌아온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구속력이 없는 견해(정의당과의 연대 파기, 정청래와 이해찬의 컷오프가 당의 승리에 해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는 것만 가능했다.  



더민주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공포에 질렸건, 자신의 공천권이 민주주의보다 앞섰기 때문이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김종인에게 무소불위의 비상대권을 넘겨준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퇴짜 맞을 견해를 감수한 채 더민주 후보들의 지원유세에 나서는 것뿐이다. 지역구를 물려받았다는 이유(공관위와 김종인의 정무적 판단의 결과였음에도)로 자신에게 가해질 비판이 배재정에 몰리자 그녀의 선대위원장을 맡을 수밖에 없었고, 타 후보들의 지원유세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정계에서의 마지막 일이 될 것이었다.  





유시민과 정의당 관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필자도 박근혜와 안철수가 보여주고 있는 권력의지가 김종인에게도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문재인에게 원죄(더 이상의 변호가 쓸데 없어진)가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의 최대 피해자인 정의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그의 퇴장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처럼 정의당이 문재인 퇴장의 대안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대선후보 지지율 1위라는 것이 현재의 문재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지만, 정의당의 분전만이 0.01%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최후의 믿음으로 남은 날들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종인의 3인방인 박영선과 이철희, 김헌태를 정계에서 영원히 퇴출시키는 것을 덤으로, 정의당의 원내교섭단체 확보에 모든 화력을 집중할 것이다. 영입된 초빙군주가 절대군주가 되겠다면 목숨을 걸고 막을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3.19 08:09 신고

    오늘 아침 김광진 의원이 공천 탈락했다는 뉴스를 접했네요
    이젠 공천,경선 기준도 의심이 듭니다
    응원하던 국회의원이었는데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19 08:31 신고

      장한나에 이어 김광진까지 더민주의 미래가 암담하네요.
      이러다간 새누리당의 개헌선 확보의 일등공신이 김종인이 될 것 같네요.

  2. Only1004 2016.03.19 08:18 신고

    참 아쉽네요
    왜 한면만 보고 의견을 사사로이 주장하시나요
    본인만 옳다고 생각하는 그자체가 위험합니다
    좀 멀리 넓게 바라봅시다
    바뀌고 나서도 그런 주장을 하시길....
    지금은 무엇보다도 격려와 위로 그리고 승리를 위한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6.03.19 08:30 신고

      왜 더민주를 지지하는 것이 이 난국을 벗어나는 길인가요?
      김종인 체체의 더민주를 지지하는 것은 35년의 골수지지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민주가 지리멸렬해도 독재적 행태를 보인 적이 없습니다.
      새누리당과 다를 것이 없는 정당을 지지한다면 다른 대안을 통해 김종인을 민주주의 한에서 투명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가 죽는 것에는 관심도 없지만 문재인이 정계 은퇴하는 것은 엄청난 관심이 있습니다.
      승리를 위해서 독재적 방식의 김종인 체제를 밀어줘야 한다면 차라리 새누리당을 밀어주겠습니다.
      김종인은 더민주의 역사와 정체성 모두를 하나하나씩 파괴하고 있습니다.
      향후 4년을 새누리당 집권에 시달려야 한다고 해도 감수할 생각입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고, 최소한 가해자 편에 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당은 대단히 훌륭한 대안입니다.
      그들이 제1야당이 됐을 때 대한민국은 선진유럽의 복지국가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사로이라고요?
      저처럼 35년을 더민주만 찍은 제 주변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의당으로 갈아타고 있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김대중과 노무현을 보내면서요.
      거기에 문재인까지 더해지기 직전인데....

    • 가나다 2016.03.23 00:35

      의견이란 건 원래 사사로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거죠. 정부인사가 국가정책을 개진하는 것도 아닌데.

  3. 참교육 2016.03.19 09:43 신고

    저는 김종인을 영입하는 순간 더민주당의 운명은 끝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당도 정의도 없는 사람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까요?

    • 늙은도령 2016.03.19 09:57 신고

      저는 확실한 정의당을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더민주는 승리하나 패배하나 민주정당이 아닙니다.
      문재인은 현실정치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딱 하나 정의당의 지지율이 김종인에게 통 큰 양보가 포함되 야권연대를 끌어낼 정도로 높아야 합니다.
      그러면 문재인도 살아납니다.

  4. 耽讀 2016.03.19 09:46 신고

    늙은도령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문재인의 마지막 패착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정의당이 분명 희망있는 대안정당이지만, 새누리리를 꺾을 현실은 아닙니다.
    더민주를 통한 정권교체밖에 없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대중도 자신에게 총을 겨눈 김종필과 손을 잡았습니다.
    노무현도 자본상징은 정몽준과 손을 잡았습니다.
    문재인이 김종인을 너무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 때는 대안이 김종인 밖에 없었습니다.
    김종인 체제 박영선이 힘을 발휘하지만 4월13일 그는 더민주에서 권력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는 어리석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지혜롭습니다.
    더민주 유권자들은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생각하는 지지자들입니다.
    아직은 정의당이 문재인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번 선거 비례는 정의당입니다. 그 동안 민노당-통진당-정의당을 지지했으니까요?

    • 늙은도령 2016.03.19 10:03 신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그 당시의 노무현은 정몽준과의 연대와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지자들이나 의원들도 없었습니다.
      그는 홀로 광야에 있었지만, 지금은 김종인이란 절대군주가 있기 때문에 문재인은 그것도 불가능하며, 더민주의 성격이 중도보수화에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 색채도 사라졌다는 것이 다릅니다.
      저는 김종인이 있는 이상 더민주를 밀어주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라 봅니다.
      야권은 언제나 대안이 없다며 새누리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야당을 찍었습니다.
      그 때문에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없었고 신자유주의만 번성하게 됐으며 재벌개혁과 조세정의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런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한 진보정당만 지지할 것입니다.

  5. 은의단검 2016.03.19 11:08

    대한민국이 기울어진 경기장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중도층을 흡수하려면 우클릭은 필수이죠, 총선의 x맨이 되어가는 안철수의 의도대로 끝난다면 결과적으로 김종인의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요. 야권 지금처럼해서는 절대 정권 못잡습니다, 필리버스터때 여론 보셨죠 냉정합니다. 좌클릭을 할수록 고립되고 결국 울분에찬 정의를 외치다가 삭발하고,분신하고 하지 않습니까? 정의를 외치면 선거에서 이길수가 없습니다, 국민들 수준을 직시해야죠, 실용을 외치고 중도를 잡아야 할까말까합니다.

    • 늙은도령 2016.03.19 11:48 신고

      님은 최근의 통계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최근 10년 동안의 선거는 보수 대 진보 정확히 50 대 50이 나왔습니다.
      구태여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님의 논리는 대선에서는 약간의 정합성이 있지만 50대%의 총선에서도 통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나오는 수많은 연구들도 똑같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정확히 유권자의 반이 진보정당의 출현을 목말라 합니다.
      미국식 양당제가 만든 폐해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많이 승리해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할 것은, 부의 불평등은 민주정부 10년에도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의당처럼 확실한 진보정당을 양성하지 못하면 영원히 보수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6. 2016.03.19 14:5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19 15:29 신고

      문재인과 심상정이 진행했던 야권 연대를 파기하기 위해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들고나온 것이 필리버스터 중단 사유였습니다.
      이때부터 김종인은 모든 야당들이 자신의 밑으로 기어들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오만방자한 놈입니다.
      그가 연대를 깬 이유는 정의당의 지지도가 형편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의당의 지지율이 오르면 그도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는데 시간이 없는 관계로 정의당 지지율을 최대한 높여야 연대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국민의당은 1~2% 지지율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해체됩니다.

      김종인은 야권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더민주만 107석을 넘겨 대선후보로 달려가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말 천벌을 받을 놈인데, 하루라도 빨리 정의당과의 연대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필패를 넘어 문재인도 죽습니다.

  7. 2016.03.19 17:5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19 18:47 신고

      몇몇 논객이 김종인을 옹호하면 우중 타령을 해서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썼습니다.
      우중이란 없습니다.
      우중이라고 떠드는 사이비들만 있을 뿐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자신의 지적 수준도 형편없는 놈들이 꼭 그러더라고요.

  8. 2016.03.19 18:0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19 18:50 신고

      그래서 바꾸자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요.
      우리나라 진보들은 현장을 너무 등한시해요.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모조리 공상입니다.
      주류경제학이 오류투성이고 현장에서 천대받는 이유지요.
      확실하게, 분명하게, 핵심만 건드리면 되는데 왜 이렇게 주절주절 되는지....

      암튼 형편없는 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답이 없지요.
      그것을 깨부수는 작업을 하기 위해 글도 쓰고 공부도 하고 일인방송국도 준비 중입니다.
      일종의 지적검증부대를 만들어 사이비들이 더 이상 설칠 수 없도록 만들 것입니다.

      재벌이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런 것에 대해 제대로 다른 연구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초국적기업에서 중역 이상으로 있는 사람들의 얘기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것을 모두 다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혁신과 개혁을 하려면.

  9. 잘 보았습니다 2016.03.19 19:53

    안녕하세요. 완전히 정의당으로 바꾸신건가요.

    썰전에서 유시민씨가 민주당이 독재식 정치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인가요


    고령층 유권자 인식이 후진적이고 언론의 논조에 쉽게 동조되므로

    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전성기를 지났다고 하는데 정치도 후진한지 꽤 되었으니

    아마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쌀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6.03.19 22:59 신고

      저는 청춘들을 믿습니다.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민주주의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가난하고 고달프지만 그들은 그것에 맞는 해답을 찾아내면서도 즐거운 투쟁을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세력을 이길 방법이란 없습니다.
      다만 최악의 총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대선에서 문재인이 부활할 수 있도록 멀리 보고 있습니다.
      정의롭지 못하면 가지 않으면 되고,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습니다.
      아주 깊은 얘기를 쓰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최대한 쉽게 풀어내는데 저의 능력이 부족해 여러 번의 글을 통해 하나하나 풀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당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을 통해 정치혁명을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함이며, 최종 목적은ㅡ그런 것이 있다면ㅡ사회적 약자들이 최대한 피해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저의 노력을 바치기로 한 것이고요.

  10. 가나다 2016.03.23 00:31

    왜 더민주 열성 지지자들은
    김종인에 전권을 주는 것이 차해행위란 걸 몰랐을까요?
    문재인에게 너무 경도된 나머지 인식 능력이 마비된 것일까요? 근데 노회찬까지 신의 한 수 운운한 것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고.
    나갈이 평범한 시민의 눈에도 굉장히 위험한 선택으로 보였는데.
    더민주의 반복되는 실패는 결정적인 고비마다 움츠러들고 고개숙이는 데 있는 듯.
    문재인의 사퇴나 정청래의 불출마나 나에게는 다 나약함으로 보인다. 이해찬같은 탈당의 결기가 아쉽다.
    여하튼 난 다시는 더민주 안 찍고 정의당만 찍기로 마음 먹었다. 지역도 비례도 다 정의당.

    • 늙은도령 2016.03.23 02:32 신고

      새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함이라고 해도 이건 아닙니다.
      저는 더민주의 의원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상태로는 영원히 답이 없습니다.
      정의당 찍으십시오.
      저도 그럴 것입니다.



질서를 바라는 것은 풀 수 없는 그리고 충족될 수 없는 목마름입니다. 이 욕망은 각자의 현실이 무질서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서 무질서 상태를 고치도록 요구합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감시가 결코 활력을 다하거나 일감이 없어질까 두려월 필요가 없는 얼마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 데이비드 라이언 대담 《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인용 




9.11테러가 불러온 변화와 비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세월호참사는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감시와 안전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며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상태까지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왜 위험사회가 됐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라졌고, 그 때문에 세월호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대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감시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은 자신의 프라이버시(구글의 회장인 슈미트는 프라이버시 자체가 없는 세상이 됐다고 했지만)와 기본권조차 포기한 채 새롭게 등장한 감시사회의 안전담론에 자발적 복종을 보여주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 시민의 안전을 높이기보다는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는데 유용한 감시 장비들의 확대 설치를 반대하는 여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체제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에 적응해서 남들보다 조금 낫게 살아남으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안전을 중시하는 안전담론의 강화는 사회의 보수화와 인식의 보수화를 동시에 강화합니다. 안전을 높이기 위해 질서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자유와 충돌하기 일쑤여서 가진 것을 지키고 늘려야 하는 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를 추동합니다. 



이런 경향이 강화되면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참극인 세월호참사가 지겨운 것으로 변질되고, 가끔씩 일어나는 해상교통사고로 치부되기에 이르며, 자식의 목숨을 팔아 한몫 챙긴 유가족들의 생떼가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색깔론까지 발전합니다. 2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내 자식과 부모형제들이 아니어서 더 이상 엮이는 것조차 불편하게 됩니다.  



 


OECD 가입국 중 부의 불평등과 사회복지지출이 가장 나쁜 대한민국은 사회갈등지수도 최상위에 위치합니다. 여기에 분단 현실을 악용하는 현 집권세력과 보수언론들의 안보상업주의가 더해지면 안전에 대한 욕구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울리히 벡이 말했던 《위험사회》의 출현이 인류가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획득한 적극적 자유(제도와 법으로 보장되는 자유, 내 마음대로 살게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소극적 자유인 자유방임과 구별된다)와 민주주의마저 제한하기에 이릅니다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를 강화하는 이런 추세가 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도 돌이길 수 없는 지경까지 후퇴할 것은, 집회마저도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폭력집회로 규정해 무차별적인 진압과 체포를 자행하는 것도 질서 유지와 공공의 안녕을 내세운 안전담론의 득세가 어디까지 왔는지 말해줍니다.



특히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일원인 언론(특히 쓰레기 방송들)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반인륜적인 사건·사고 뉴스를 집중보도함으로써 위험과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범죄율의 증가나 하락 같은 것은 보도하지 않고, 왜 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는지도 보도하지 않고, 오직 위험과 공포만 부추깁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빌붙어 최대 이익을 거두면 그만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온갖 오보를 쏟아내며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생중계한 언론들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보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도 모자라, 유족을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으로 몰고가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보도를 통해 자사의 매출을 극대화하면 만사 OK라는 것입니다. 모든 뉴스에 오늘의 사건·사고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보도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9.11테러 이후의 미국이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마저 제한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것처럼, 세월호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이 비슷한 방식으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렇게 됐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안전담론에 매몰돼 민주주의와 기본권 등이 축소되고 침해받는 것까지 감수하게 됐을 때, 감시체제의 강화는 지배엘리트의 이익만 무한대로 늘려줍니다.



최소 250명에 이르는 어린 학생들이 체제와 어른들의 잘못으로 죽어갔음에도 세월호참사가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일베 같은 극우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설칠 수 있는 것도, 이들을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세월호집회의 폭력성만 부각하는 쓰레기 방송들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테러와의 전쟁이나 안전담론에 매몰된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가 자발적 복종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입니다.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1세기가 위험사회와 감시사회, 정신이상사회가 된 것은 상위 1%에 속하는 지배엘리트와 슈퍼리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참사도 이런 극단의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 위험들이 하위 99%에게 전가된 참극의 전형입니다. 이익은 상위 1%에 집중되지만, 위험은 하위 99%에 전가되는 ‘리스크 대이동’이 세월호참사의 숨어있는 본질이며, 이 땅의 기득권들이 깨놓고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이유입니다.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논리는 허구로 가득한 퇴행적 현상의 전 지구적 차원의 지적 사기입니다. 디지털 빅브라더의 등장은 위험사회의 폐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어떤 경험적 증거가 제시된 적도 없으며,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수없이 많은 안전시스템들이 무용지물이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저 편하게 살다 편하게 죽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발적 복종은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욱 가난해지고 위험해진다고 해도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세월호참사에는 이 모든 것들이 집약돼 있지만, 진실규명의 노력을 외면하면서 자발적 복종에 길들여져 갑니다. 어쨌든 자신은 세월호에 타지 않았고, 수장되지 않았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제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 같은 내일이라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15년 전에 노회찬이 '그래서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이, 지금에는 자발적 복종을 거부하는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질문의 변화와 차이 만큼 하위 99%의 삶은 퇴행했고, 우리를 먹여살리는 유일한 체제인 민주주의는 고사 직전에 이른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과정에 흘린 것들로 즐비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술맛을 알아? 2016.01.17 01:57

    김무성이 인재영입에 대해서 소홀하다는 뉴스(김무성은 사람가지고 쇼하고 싶지가 않답니다)가 뜨더군요. 2007년인가요 열우당 깨질때가. . .작금의 탈당러시를 보여주고 있는 핵심삐끼들이 그때와 다르지 않고. . .김무성은 뜬금없이 180석도 가능하다 떠들고. . .친박과 친이계는 공천권의 헤게모니를 두고 싸우고 있고. . .쥐새끼는 윤여준과 비서관들을 지원하고. . .더민주 작살내면서 뛰쳐나오는 개새들과 새눌당 공천 학살자(친이계)들이 국민당에 합류한다면. . .또다시 이런 참극이 벌어지면 안되겠지만 저들의 민낯을 이미 겪은지라 참으로 걱정이 됩니다. . .저의 기우이길 바랄 뿐입니다.
    건강 챙겨야 하시는분이 일찍 주무시지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야 미래를 볼수 있지 얗겠읍니까 ㅎ~

    • 늙은도령 2016.01.17 02:54 신고

      안철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있으니 이 상태로 가도 된다는 것이지요.
      안철수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표를 얻을 텐데, 그런 다음에 새누리당과 연정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새누리당은 표정관리 중입니다.

  2. 2016.01.17 09:2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17 16:26 신고

      저도 인터넷으로 구입합니다.
      판매수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일년에 몇 백 권만 팔리는 책들도 있어서...
      절판된 것도 많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중고책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구입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1.18 09:04 신고

    해상교통사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한 이 나라는 더 이상
    발전할수 없는 나라입니다

  4. 편부가정 2016.01.28 17:22 신고

    늙도님. 반갑습니다. 자주 늙도님 티스토리 와서 보고 가곤 합니다.
    혹시 페이스북은 안 하시는지요? 페이스북에서도 소식 좀 듣고 싶습니다. ^^
    아래는 혹시나 해서 올린 제 URL입니다.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8200866904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만 더민주가 집권하는 목표가 성립 안된다면
    저는 그냥 두 아이 데리고 핀란드 시민권 어떻게든 얻어보려 합니다. 그래도 헬조선에 비하면
    탄압도 없고 청년 등지지도 않는 나라임은 확실하니까요...

  5. 늙은도령 2016.01.28 18:13 신고

    개표조작만 없으면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얼마 못 갑니다.
    핀란드가 최상의 국가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쪽도 청년실업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총선보다는 대선이 더 중요합니다.
    문재인이 노무현 못지않은 거인으로 올라섰기에 조금만 더 지켜보시죠.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유신독재를 경험한 내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을 때 박정희가 떠올라 두려워하셨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일체의 비판도 못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중앙정보부와 권력기관의 감시가 되살아났다고 느끼시는 듯, 아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두려움을 표출하셨다. 

 

 

 

 

어머님에게는 박근혜를 보는 것 자체가 독재와 연결된다. 동아일보가 유신독재의 군화에 짓밟혔을 때 고모부가 해고된 것과 민주화운동으로 2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조카가 멕시코로 이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머님이 느끼는 두려움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공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권력의 그물망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샐틈없이 촘촘하다고 세뇌당했기 때문에 어머님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연으로 물러나면서, 병든 아들의 분노와 격정적인 표출을 걱정했다. 아들이 기자 생활을 하며 민주정부의 지도자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할 때 두려움이 없었던 어머님이었지만,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오르자 무의식에 자리했던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일제시대에도 일본 학생들과 싸웠던 어머님이셨고, 큰 오빠는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통역사로 들어갔다 한국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협상에 분노해 통역사를 때려치울 만큼 명문가문의 후손이었고, 남편은 한국전쟁의 공훈으로 무공훈장을 받았고 22년 간 군생활을 했음에도,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자 두려움을 표출했다. 

 

 

이 땅의 수많은 노인들은, 자유와 평등에 관한 한 박정희 시대를 일제시대에 비견될 만큼 암흑기로 인식한다. 일제시대에 만연했던 가혹한 수탈은 줄어들었고, 동족상잔의 전쟁과 완장 찬 좌우의 폭도들, 미군의 무차별폭격 등으로 수없이 많은 피난민과 주민이 살육되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았지만 어느 시대나 주어졌던 정도의 자유만 누릴 수 있었던 것이 18년6개월의 유신독재였다.

 

 

수많은 청춘들이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는 박근혜 치하의 3년이란 아주 조금씩, 경제 파탄(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를 것이다)이 분명해진 지금에는 노골적일 만큼 폭력적으로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것이어서 수많은 노인들이 침묵의 벽 속에 갇혀버렸다.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님이 박근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치가 다시 공포와 연결되어 버렸다.

 

 

아버님이 남긴 쥐꼬리만한 군인연금과 집의 크기를 줄여가면서 세 아들을 교육시키고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공을 이루도록 만들었던 어머님이 박근혜의 방문에 항의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을 지켜보았다. 수많은 교수들이 국정화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집필 거부를 선언하는 뉴스마저 회피하던 어머님이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이화여대생들이, 어머님에게는 가장 좋은 여자대학이고 명문가로 시집가는 것으로 각인돼 있는 이대생들이 서슬 퍼런 박근혜의 방문에 저항하는 것을 보며,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른 근원적인 공포를 이겨내셨다. 아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촛불소녀와 6.10항쟁의 학생들이 떠올랐지만, 어머님은 4.19혁명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유럽의 선진국가 국민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노인들은 이런 사실을 체험할 수 없었다. 2~3세대만 지나면 온갖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압축성장의 수혜자(동시에 피해자)들이어서 독재가 산업화와 일치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생들의 저항을 TV로 지켜본 어머님처럼, 박근혜가 주도하는 역사 전쟁은 독재의 망령에 시달렸던 노인 세대와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것을 체험한 세대 간에 하나의 연결고리가 형성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박근혜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전쟁은 이념 전쟁을 넘어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박근혜는 이전의 대통령에게서는 찾기 힘든 무능과 무책임, 아집과 독선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키고 있다. 필자의 어머님처럼 가부장적 사고가 강한 분들일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박근혜는 정치와 경제, 역사와 교육을 퇴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수없는 투쟁과 저항, 토론과 합의를 거쳐 이룩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남녀평등의 위업마저 퇴행시키고 있다. 

 

 

이대생들이 보여준 분노의 표출과 정의의 실천이 또래의 청춘들과 나와 같은 장년층에 던져준 희망의 메시지처럼,  필자의 어머님 세대에게도 묵직한 시대적 정신을 전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의 저항이 하나의 불씨를 넘어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는 횃불로 타오르리라 믿는다. 이대생 덕분에 87세의 노모가 다시 정치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약하기 그지없는 늙은도령의 건강도 다시 돌아왔다. 거리로 나갈 만큼은 안 되지만 이대생들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큼은 된다. 임금, 이자, 지대(생산의 3요소인 노동, 자본, 토지와 한쌍이다)에 관한 고전파경제학의 오류를 미국적 방식으로 풀어낸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해묵은 잘못에 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 무렵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에는 대단치 않아 보이더라도,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화여자 대학생들의 저항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대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굴하지 않는 청춘들과 함께.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11.01 19:04 신고

    저도 대견하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마취를 시키면 얼마든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은 착각임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1.01 19:51 신고

      그럼요, 대한민국을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왔는데요.
      역사의 주인은 정부도 지도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이 주인이고, 역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급해진 박근혜가 이성을 상실했습니다.
      반격의 시점이 더 빨리 올 것 같습니다.

  2. 2015.11.02 02:4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11.02 05:42 신고

      BBC에서도 프라임 타임에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한국이 국정화를 강행하면 10년 안에 망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세계적인 창피함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3. 耽讀 2015.11.02 08:03 신고

    박그네는 확신범입니다. 국정화도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위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국정화는 종교진리에 가깝습니다. 타협과 협상 토론과 논쟁 자체가 없는 이유입니다. 역사교과서를 종교진리로 생각하니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끝은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11.02 08:37 신고

    무엇보다 건강을 다시 회복하셨다니 다행이십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라는 무리한 자충수가 결국
    남은 정권을 힘들게 할것입니다

  5. 바람 언덕 2015.11.02 14:08 신고

    저 젊은이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6. 글을 읽고 2015.11.02 19:58

    글이 포스팅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깊은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7. 불루이글 2015.11.03 04:24 신고

    해묵은 잘못에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때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 시작할땐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다.
    정말 희망적인 문구를 접하게 됩니다.
    도무지 꿈틀 거릴것 같지 않든 지성들이 눈을 뜨고 있다는 희망이 느껴 집니다.
    민주주의의 달콤함에만 취해 허약한 지성들이 조금씩 경석을 차리는 것 같네요
    정말 다행히 라고 여겨 집니다.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지난 주 토요일(29일)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2호선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29세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비정규직이었던 그는 2인 1조가 돼 진행해야 되는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는 작업을 혼자 했고, 그것도 열차가 다니는 시간대에 진행됐습니다.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려면 선로에 들어가야 하는데, 바로 그 스크린도어가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열차가 다가와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메트로 측은 스크린도어 정비를 맡은 외주업체가 안전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며 사고의 책임을 용역업체에게 돌렸습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매뉴얼이 존재해도 그렇게 일하면 도저히 수지를 마칠 수 없는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습니다. 이놈의 ‘슈퍼갑’은 일만 터지면 ‘스몰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스크린도어 점검업무를 맡은 용역업체라고 열차가 다니지 않은 시간에 매뉴얼대로 일하지 않고 싶었을까요? 서울메트로가 스크린도어 점검업무를 외주화시키면서 용역업체가 매뉴얼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합당한 비용을 지불했을까요? 선로에서 할 수밖에 없는 업무의 특성을 살펴 열차 운행을 조정하거나,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심야에 할 수 없었을까요?





필자가 분노하는 것은 그가 느꼈을 공포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생존자들이 느꼈을 출구 없는 공포와 같았을 것인데, 그의 죽음에 얽혀있는 제도적 문제에 관한 사회적 토론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성공의 다른 말인 로스쿨 논란은 언론을 연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이 만든 최고의 히트상품인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 도입된 로스쿨제도는 사법시험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법시험은 도박의 성격이 너무 강해 성공보다는 실패의 총량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사법시험은 합격하지 못하면 얼마의 노력을 했건 돌아오는 것은 전무합니다. 우리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얘기만 들었을 뿐, 그보다 수천수만 배나 많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고졸이나 지방대 출신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이 형편없는 것은 스치듯 지나칩니다.





사법시험의 신화는 철저하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 폐해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소수점 몇 자리까지 내려가야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지만, 그 작은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집니다. 사법시험이 통일은 대박처럼 한건을 부추기는 도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로스쿨은 이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했습니다.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가족의 차원에서도 사법시험은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입학전형을 두었습니다. 제도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비율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헌데 로스쿨을 도입한지 7년 만에 이런 취지들이 무색해졌습니다. 부와 권력, 기회가 대물림되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로스쿨제도는 그대로인데 (아니 일부는 발전했는데) 그것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이 파고들어 상위 1%의 잔치로 변질된 것입니다.



사법고시 합격자 중에서도 실업자가 나올 만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강화됐고, 그것이 (조)부모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례가 늘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입했던,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한방에 인생역전이 일어나던 시절이 가버렸습니다. 로스쿨 논란의 근저에는 이런 사정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로스쿨 논란에 관련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매뉴얼조차 지킬 수 없어 선로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정규직 문제에 비하면 0.0001%의 국민들에게만 관계되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29세 비정규직의 죽음에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물림되는 돈과 권력, 기회의 독점, 성공지상주의를 빼면 로스쿨 논란은 국민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그것,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상위 1%의 문제이기에 로스쿨 문제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습니다. 하위 99%에 해당하는 29세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처럼 묻혀버렸습니다.



미디어시대는 언론에서 무엇을 다루냐에 따라 국민의 관심이 결정됩니다. 자본주의의 정수인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기업과 개인의 이익이 모든 것에 앞섭니다. 가능하면 상위 1%에 속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마다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과 로스쿨 논란의 사이에 갇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9.01 08:56 신고

    신분의 대물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계층 사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양반,중인,평민,노예.....

    • 늙은도령 2015.09.01 17:45 신고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잘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못사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사회이동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2. 『방쌤』 2015.09.01 10:30 신고

    읽는 동안에도 몇번이나 맘이 아파오네요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하는 바로 우리들의 일인데 말이죠,,
    대한민국이라는 계층사회에 살고있는 현실이 살짝 서글퍼집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47 신고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최악으로 가고 있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버렸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언론은 상류지향적 내용만 내보네고....

  3. 참교육 2015.09.01 11:48 신고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잔인하 얼굴입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사악한 제도 자본이 인간을 살해했습니다.
    가슴먹먹해지는 얘깁니다. 언제까지 이런 세상을 구경하고 살아야 하는지...
    남의 얘기가 아닌데... 사람들은 모두가 구경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51 신고

      종편이 생긴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됐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들어야 힘을 가질 수 있는데 저들의 얘기만 듣습니다.
      정말로 민중을 위한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서민의 얘기로 모든 것이 다루어지는 그런 방송......

  4. 耽讀 2015.09.01 12:20 신고

    1%는 99%를 지배합니다. 99%는 1%에 저항하지 못하고, 않습니다. 1%가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99%를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월세방에 사는 어르신들이 종부세에 분노하는 세상이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54 신고

      네, 그렇게 세뇌하는 것이지요.
      어르신들은 투표율이 높은데 그분들을 계속해서 세뇌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를 넓혀가고 기본적인 표를 안고 갑니다.
      언론이 이를 도와주고요.

  5. 바람 언덕 2015.09.01 15:32 신고

    귤이 강남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했습니다.
    이 놈의 나라는 늘 이런 식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모두 뜯어 고쳐야 합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다 바꾸어야 합니다. 피를 본다하더라도....

    • 늙은도령 2015.09.01 18:00 신고

      정말 혁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답이 없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힘드네요.
      일단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다루는 방송이 필요한데 그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6. 백순주 2015.09.01 16:45 신고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진정 물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세상, 암흑에 갖히지 말아야 하는 세상, 미지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순 없을까요?

    • 늙은도령 2015.09.01 18:07 신고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서민의 입장에서 역사가 얘기되고, 서민의 입장에서 정치와 경제 등이 얘기되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세상은 승자들이 만들었습니다.
      서민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지요.
      민주주의는 서민이 주인인 세상인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탈출구는 교육과 철학, 방송인데 이 모든 것도 승자가 운영하니....

  7. 소피스트 지니 2015.09.01 21:16 신고

    좋은 말씀입니다. 이 나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절대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 많은 이들이 가장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21:49 신고

      방송에서 다루어져야 힘을 받는데 방송사 자체가 현 구조의 기득권이라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전국을 커버할 수 있는 국민방송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원래는 KBS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정권의 눈치만 보니....

      모든 국민이 책을 읽거나 인터넷의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기는 힘듭니다.
      그런 규모의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하는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처음에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L전자에 대한 원망이 강했으나, 갈수록 그것에 대비하지 못한 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 더욱 컸습니다. 직원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과 끝까지 저를 밀어주었던 친구들의 도움에 아무런 화답도 못한 것들이 저를 끝없는 회한의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렇게 나약해진 정신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사업 실패에 대한 자책은 일상의 모든 것들에 스며선 견고하게 자리 잡아 끈질기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가족과의 눈 맞춤도 힘이 들었습니다. 형과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살 곳은 마련했지만, 유별나게 성공한 사람이 많은 제 주변의 상황이 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자격지심이 집요할 정도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업 실패에 따른 온갖 병으로 제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는데도, 저는 병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의 말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정신이 병들면 어떤 위로의 말도 차갑거나 비릿하게 들리는 모양입니다.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삐딱한 경사가 생기고, 자책은 내적인 분노와 의심으로 영혼을 병들게 했습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삶의 거의 모든 것에 긍정적이었던 제가 하루하루 폐쇄적이고 음울하며 적개심 강한 병든 괴물로 변해갔습니다. 제 안의 수많은 제가 수시로 생각의 주인이 돼 온갖 광기의 검들을 휘둘렀고, 육신의 고통과 감정의 너울에 따라 냉기를 퍼붇다가 용암처럼 튀어올라 저를 갉아먹었고, 극단으로 몰아쳤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 너는 살 가치도 없어.. 이 정도의 호사가 너에게 가당키나 하단 말이냐..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라.. 행동으로 너의 죄값을 치러라.. 가만히 있어도 떠올라 무섭게 저를 몰아치는 생각, 생각들.. 저는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힘겹고 괴로웠습니다. 차라리 생각이 멈추기나 하면 육체의 고통하고만 싸우면 될 것 같았습니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자책의 생각들 속으로는 회한이 참회로, 울분이 분노로, 저항이 광기로, 자괴가 자학으로 넘나들며 제가 제에게 묻고 제가 대답하고 회피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제게 허락된 몇 평의 공간마저 저를 숨막힐 정도로 조여왔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죽어가는 날들이 쌓여가기를 몇 달을 넘어 몇 년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정신의 고통이 커갈수록 영혼은 어둠의 핵심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그것을 인지할 때마다ㅡ언제나 인지했지만ㅡ한 가닥 가느다란 존재의 끈마저 놓고 싶었습니다. 그때쯤부터,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진 날카롭고 끈질긴 육체의 고통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정신적 갈등과 영혼의 도피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육체적 고통의 크기가 커가는 만큼 정신적 방황은 줄어들었지만, 제가 거처할 공간이 갈수록 좁아드는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육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압박이 커짐에 따라 수시로 발생하는 공황증세가 극도로 활성화된 죽음의 공포를 세포 하나하나, 신경 하나하나마다 독약처럼 스며들게 만들었습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건강이 나빠질수록, 체력이 고갈될수록 제가 제어하지도 방어하지도 못할 상황에 대한 공포가, 저를 짓누르는 죽음에 대한 극한의 공포ㅡ매일같이 자살을 생각했음에도ㅡ로 이어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공황증세가 저를 극도로 무력화시켰고, 매일같이 갱신되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것은 건강이 나빠질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악화될 뿐, 회복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주는 극도의 고통과 공포에 저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무장해제된 제가, 살아서 머물 수 있는 참회와 안식의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증거만 쌓여갔습니다. 



1시간을 버티면 그 다음의 1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시간도 극한의 고통을 동반하면 얼마든지 쌓일 수 있는 존재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적 고통이란 언어의 장난이자 건강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육체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면 정신이란 한낱 장신구에 불과했습니다.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이 괴로웠습니다. 당연히 생각의 지평은 좁아졌고, 의지의 영역이란 갈수록 줄어드는 공간의 압박과 시간의 축적에 최후의 수단이란 탈출구를 강요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남아 있는 선택이란 단 하나뿐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저를 설득했고, 이 질긴 육체적 고통에서, 모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삶이 주는 고통의 굴레가 커질수록, 가상의 죽음이 전해주는 그 악마적 쾌락만 무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육체적 고통에 잠들기조차도 힘이 들었습니다. 최후의 선택까지 버티려면 항우울제와 향정신성 약물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단 1분도 잠들 수 없었습니다. 다량의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가 저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안식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약물에 의존해 잠이들었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다량의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를 먹고 난 다음 긴긴 잠에서 깨어나면, 아직 고통에 대한 육체적 메커니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1분여 정도의 시간 동안만ㅡ신경이 온갖 병들이 만들어내는 통증을 뇌에 전달하기 전까지 1분여의 시간만 저는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달콤함이란 내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의 시간이자, 어떻게든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일종의 마약중독자처럼 항우울제와 신경성 수면제의 노예로 전락해갔습니다.

 

 

저는 악마에게 기도했습니다. 부디 가족도 저를 포기해주기를.. 기억의 단편에서라도 저를 지워가기를..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자 거의 매시간마다 울려대던 핸드폰도 잠잠했졌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저의 안부를 묻는 전화도 점차 줄어들어갔고, 마침내 저는 핸드폰을 해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세상을 연결해주던 유일한 매체인 인터넷과 신문도 끊었습니다. 저는 세상과 연결된 모든 것들을 하나씩 잘라나갔습니다.



부디 저를 기억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저의 존재를 잊어주기를.. 저라는 인간이 이땅에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였다는 것처럼 잊혀지기를.. 저는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나씩 지옥으로의 떠남을 준비했습니다. 억지로라도 세상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저에게 세상이 언제 자비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인간의 멍에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존재했던 자리마저 허용되지 않는 냉정한 현실과 갈수록 늘어나는 약물 뿐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것이란 이런 죽음보다 못한 삶의 비루함 뿐이었습니다. 저는 꿈꿨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극적인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만 더욱더 강해졌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이 실패와 좌절에 대한 것들뿐인데.. 가장 극적인 죽음이라니!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습니다. 초라하게 떠나자,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할 수 있다면 제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몇 조각의 흔적마저 지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죽음 중 가장 초라한 죽음, 컴퓨터 자판의 딜리트 키만 누르면 이땅에 존재했다는 모든 흔적들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져버리는 그런 삭제되는 죽음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죽음을 떠올리고 떠올려 봤는데.. 끝내 한 사람의 얼굴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님, 제 삶에서 손을 뻗으면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 있었던 어머님의 얼굴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한 발짝도 앞으로도 나갈 수 없었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갇힌 채, 살아 있으나 주검만도 못한 육체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죽지 못했기에 단 한 순간도 휴식할 수 없었던 생각의 고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완전히 갇힌 채 벌레 같은 몇 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싸움을 나 홀로 하고 있을 때, 어떤 매개물도 근거도 없이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체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가? 난 정말 열심히 살았지 않았는가? 가능하면 죄짓지 않으려 했고,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멍에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도 투정부리지도 않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고통의 질곡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가? 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봤고, 게다가 같은 장애인이지만 나처럼 살지 못하는 이들과 상대적인 약자들을 위해 사업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저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 최초의 순간이 생각나지 않지만,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제 삶이 꼬였고 도저히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혀버렸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경쟁에서도 뒤쳐지지 않았던 제가 왜 이런 막다른 골목까지 밀려왔을까? 제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이 철저한 실패로 이어지는데 세상은 또 어떻게 작용했을까? 단지 장애인이라는 것만으로, 평균적 인간보다 체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저 같은 인간에게는 상당히 닫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처참한 실패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저에게 가장 초라한 죽음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에서, 그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자리한 지랄 같은 세상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저 알고 싶었습니다, 가장 초라한 죽음을 택하기 전에. 끝끝내 어머니의 얼굴을 지울 수 없다고 해도, 저는 알고나 죽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초가 된 것은(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ㅡ2)

  1. 진흙속의연꽃 2014.08.09 08:15

    참으로 눈물 나는 이야기 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요. 단맛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단맛을 느끼기 전에는 알 수 없듯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보지만 당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로서도 충분히 다가 옵니다.

    글의 말미에 극적인 반전이 보입니다. 그것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치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목숨을 건 단식을 하는지에 대한 심정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왜 이 사회가 잘 못 되었는지 모두 알려 주십시요.

    • 늙은도령 2014.08.09 19:44 신고

      네,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최대한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죠.
      권력에서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2. 덕산 2014.08.12 13:25

    정말 눈물이 나옵니다.
    왜 늙은 도령님의 글에 진심과 애환이 스며들어 있는지 이 글을 통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12 16:44 신고

      글을 쓰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정말로 글을 통해 자신을 담아내려면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도 용감해야 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자세입니다.

  3. 태봉 2014.08.16 21:55

    님의 글을 보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 직접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집니다 그런다고 제가 얼마나 님의 고통을 알수나 있을까요? 그나저나 현재 님이 그 기간을 이겨내시고 제가 이렇게 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8 17:22 신고

      네, 그렇게 다시 살아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고, 님과도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4. hwang sy 2016.01.26 03:44

    살아야 하는 건 그 자체가 이유가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니까요 ^^

    • 늙은도령 2016.01.26 04:58 신고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라,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라.... 그러다 보면 살아내는 것이지요.

  5. 남순희 2016.01.27 08:02

    현재님이 장애인 이셨다니 ~
    그리고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글을 읽으니 정말 마음 아프네요.
    어떻게든 극복 하셔야죠.

  6. 2018.06.11 04:3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8.06.11 19:47 신고

      저도 그런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님이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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