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장악해둔 방송과 국정원을 물려받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 전에 탄핵당했을 박근혜는 창조경제처럼 모호한 국익과 대박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면서도 5,000만 국민 중 누구에게 국익이 돌아가고 8,000만 한민족 중 누구에게 대박이 돌아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수첩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문고리 3인방이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독해력이 떨어지는 박근혜가 큰 그림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 밑에서 일하는 고위환관 중에 누군가는 세부사항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이들은 받아쓰기에도 벅차서 그런지 3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꿀 먹은 벙어리다. 여왕의 레이저가 무서운 이들은 국익과 대박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일체의 언급이 없다.



결국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박근혜가 입에 달고 사는 국익과 대박이 정경관언 유착을 이룬 상위 1~10%에게 차등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듯싶다. 다시 말해 여왕의 눈 밖에 난 중하위 90%에게 돌아갈 이익과 대박이란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 ‘헬조선’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너무 들어서 귀에 진물이 날, 국익이라는 것이 일부의 이익임에도 마치 전체의 이익인 양호도하는 것에서, (통일과 창조경제 등이) 대박이라는 것도 일부에게만 해당하는데 모두에게 해당되는 양 왜곡하는 것에서 ‘헬조선’이 자라난다.





자신이 중하위 90%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여왕과 고위환관들이 습관처럼 말하는 국익과 대박이라는 것이 정확히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왜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각종 통계는 나빠지는지, 국익과 대박을 위해 누가 죽을 듯이 일하고, 누가 빈둥빈둥 놀면서 꿀꺽하는지, 자세한 내용을 물어야 한다.



해방 이후 압축성장을 거치면서 구조화됐고, IMF 외환위기 때 강제된 신자유주의에 의해 강화됐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고착화된 불평등 체제에 따라 독식하는 국익과 대박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중하위 90%에게도 나눠지는 국익과 대박인지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포획된 민주주의 하에서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그것을 이용해 얻은 국익과 대박이 소수의 상위집단으로 흘러들어간다. 특히 이익의 분배에서 민주적인 결과를 산출해내는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져, 상위 1%가 모든 이익을 독점한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자본주의(지금은 신자유주의)는 늘 상위 10%가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는 성숙되지 못한 민주주의를 이용해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한 뒤, 민주주의를 최소화해 과두적이고 금권정치적인 요소를 강화하고, 극도로 불평등한 위계적 분배를 자행해 왔다.



그 결과의 극단에 ‘헬조선’이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철저하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헬조선’이 ‘오포세대’라 하는 1030세대에게 더욱 가혹한 것도 국익과 대박의 대상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과 노동력을 가지고 국민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전형인데, 그렇다면 이익의 배분에서도 사회주의의 룰을 따라야 한다.



경제적 생산과 배분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주의의 목표다. 마르크스가 말한 결과의 평등(노동가치론에서 나온다)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인 삶을 보장한 상태에서, 경쟁적 시장과 그에 따른 가격 결정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사회주의가 생산과 배분을 민주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박근혜가 공약만 하고 지키지 않은 경제민주주의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정의롭고 공정한 국민경제다. 로버트 달이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주장한 것처럼,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의 영역에도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사회주의(특히 시장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헬조선’은 ‘권위주의적 정부와, 오너(와 최고경영자) 중심의 위계적 대기업, 경쟁적 시장, 무한대의 사유재산’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여왕과 고위환관들이 말하는 국익과 대박이 누구에게 적용되는 것인지 하나하나 따질 때만이 ‘헬조선’의 탈출이 가능하다.     



국가의 목표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부의 재분배는 필수적인 요소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주지 않을 때 세상은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전장이 된다. 그것이 바로 지옥이고 '헬조선'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18 08:00 신고

    헬과 조선은 동의어기 때문에 같이 쓰면
    "역전 앞"과 같다는 오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쓴 웃음밖에 지을수 없더군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건,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이건 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 있다. 그것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하는 물리학이다. 우주와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탐구하는 물리학은 정치·경제·사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근본적인 도움을 준다.



특히 현대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대물리학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양자역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현대물리학의 핵심인 양자역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양자역학을 이루는 원리는 불확정성의 원리와 베타원리가 대표적인데, 둘 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필요하다. 이 두 개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려면 상당한 지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민주주의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입자가 위치와 운동량이라는 서로 다른 성질로 측정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입자가 특정할 수 있는 위치로 측정될 때는 질량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같은 입자들은 언제나 동일한 질량을 가진다, 평등의 개념처럼.



헌데 입자는 질량적 성질인 위치와 동시에 운동량을 지니고 있다. 운동량은 에너지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즉, 입자가 운동량으로 측정될 때는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동으로 이해된다, 자유의 개념처럼.





입자는 이렇게 특정한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질량적인 성질과 특정한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운동량인 에너지적인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렇다 보니 특정한 위치로서 입자를 측정하려 하면 운동량에 문제가 생기고, 운동량으로 측정하려면 위치에 문제가 생긴다.



결국 만물을 이루는 입자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확정할 수 없는 불확정한 존재로만 측정이 가능하다. 이것이 불확정성의 원리다. 위치를 고정하려 하면 운동량에 문제가 생기고, 운동량을 고정하려 하면 위치에 문제가 생긴다. 둘 중에 하나라도 고정하면 입자는 존재할 수 없다.



입자가 지니는 이런 두 가지 성질 때문에 위치와 운동량은 지속적인 측정을 통해 확률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입자에 인위적인 변화(정치)를 주려면 측정의 횟수를 통해 편차를 최대한 줄인 다음에 질량적 성질을 지닌 위치에 에너지를 가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바로 그러하다. 질량적 성질인 평등과 에너지적 성질인 자유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있다. 평등에 치우지면 자유가 침해받고, 자유에 치중하면 평등이 침해받는다. 둘은 하나이면서도 서로 성질이 다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중에서 자유를 강조한 것이다. 자유의 확대는 평등의 축소를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이것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온갖 불평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민주주의는 축소되고 과두정치나 금권정치로 넘어간다.



불평등이 우주와 자연의 법칙이자 원리라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든 존재의 근본인 입자의 차원에서도 자유(운동량)와 평등(위치)은 분리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성질이다. 어느 하나가 강조되면 입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다윈과 월리스의 진화론을 봐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핵심 원리가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원리다. 생태계의 균형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류가 민주주의를 지배적 원리로 받아들였다면, 자유와 평등을 분리해서 보면 안 된다.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평등을 인정하면, 민주주의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불평등의 체제인 과두정치나 금권정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불평등에 맞서 싸워야 한다. 불평등은 자유마저 죽이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등급을 매겨 신용을 창출하는 빚의 경제학이 불평등을 확대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상극이란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1. 중용투자자 2014.10.08 07:57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법대로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본을 바탕으로 법위에 군림하려고 드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자유와 평등이 난도질 당하는 듯합니다.

    • 늙은도령 2014.10.08 17:41 신고

      지금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근혜는 국정은 운영할 능력이 없습니다.
      여기 저기서 개판인 것이 자주 목격됩니다.

  2. 참교육 2014.10.08 10:33 신고

    저는 많이 어렵습니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연과학을 공부해야한다는 얘기가 왜 나왔는지 알만합니다.

    • 늙은도령 2014.10.08 17:44 신고

      쉽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어려웠나 보네요.
      원래 헤겔, 마르크스, 다윈 같은 사람도 뉴턴역학에서 이론이 출발점을 삼았습니다.
      물론 프랑스대혁명도 영향을 주었지만....

      우리가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 그냥 정치 사회학적으로 생기는 줄 아는데 사실은 과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는 양자역학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4.10.08 10:54 신고

    저에게도 어려운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도령님의 해박한 지식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 늙은도령 2014.10.08 17:45 신고

      허허허...
      더 쉽게 쓰면 양자역학적으로 틀린 것이 돼 이 정도 수준에서 맞춘 것인데 어려웠나 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가 사상이나 이념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궤변들이 가능한 것이고요.

  4. 바람 언덕 2014.10.08 11:33 신고

    양자역학 이론에서 민주주의를 뽑아낼 수 있다니...
    정말 도령님...
    졌습니다, 졌어요...

    쵝오...

    • 늙은도령 2014.10.08 17:47 신고

      원래 헤겔, 마르크스, 다윈 등도 뉴턴역학에서 사상적 기본원리를 끌어왔습니다.
      예전에는 자연과학자가 정치철학과 사상가 역할도 했습니다.
      우리가 과학적 근거를 정확히 이해하면 궤변을 늘어놓는 수구세력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요즘 기본적인 내용들을 글로 올리고 있습니다.

  5. 태봉 2014.10.10 12:17

    이런 물리학 이론을 통해서 정치철학에 접근하는 원리를 보고 많이 배워요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10.10 18:14 신고

      사실 근대이성과 정치 및 사회학 등은 모두 다 뉴턴역학에 절대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을 통해 배우는 것도 상당합니다.

  6. 소피스트 지니 2014.10.19 10:18 신고

    좋은 글입니다.
    평소에 양자역학을 좋아라하는 저에게 참 즐거운 글이네요.
    자유와 평등을 불확정성의 원리로 설명하신 부분은 신선하네요.



앞의 글에서 ‘fuck your money(외부의 권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다루었는데,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까지 올라간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정치가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인 아고라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평등함을 보장했다.





이런 고대 아테네의 평등 개념은, 모든 인간이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기본권인 ‘생명, 자유, 재산’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사실만으로 평등하다는 현대의 평등 개념하고는 다르다. 도리어 아테네 시민들은 인간이 계급과 재산, 능력 등에서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공적 이익을 논의하는 공간인 폴리스에서 자신의 견해를 펼칠 수 있는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치열한 논쟁이 필수적인 정치가 작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끄럽고 지루하고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거쳐야만 공정하고 공평한 정치적 합의에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정치철학 때문에 강제성이 있는 법을 통해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평등을 제공하는 인위적인 제도인 폴리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는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법이고,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국민의 아우성이 통치자에게 가장 잘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 의회의 기원을 고대 폴리스에서 찾는 것도 이런 아테네 고유의 정치철학을 배경으로 한다. 법이 보장하는 인위적인 공적 영역인 폴리스에서는 참여자들의 완전한 평등 속에서 폭력이 배제된 치열한 토론을 만들어내는 말(토론을 통한 정책 결정)과 그것을 통해 결정된 합의를 실천(정책 집행)함으로써 폴리스 전체에 이익이 되는 공적인 합의(정치)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비록 폴리스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재산과 노예를 소유하고 있어 독립적인 삶이 가능한 경제력을 지닌 개인으로 한정됐고, 플라톤에 의해 아테네의 정치철학이 꽃도 피우지 못했지만,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폴리스에서 다루어야 하는 공적 사안들이 사적인 불평등과 권위 때문에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하면, 공적 이익이라는 공통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다시 말하면 정치가 이루어지는 고대 아테네의 폴리스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동일한 개념이었다. 정치 참여가 경제적 독립을 이룬 자유로운 시민들에게만 주어졌지만, 바로 그런 경제적 독립에서 나오는 자유가 폴리스에서의 정치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더구나 아고라로 대표되는 정치의 광장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 공통의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됐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이런 고대 아테네의 정치철학과 실천을 기반으로,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처럼 정치 참여가 제한된 사람들이 피와 목숨과 과세를 대가로 시민권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정립됐다. 자연법사상에서 발전한 근대의 평등 개념 등이 더해지면서 현재의 민주주의에 이르렀다.



헌데 공적 영역에서의 인위적인 평등을 보장한 것이 정치 참여자들의 경제적 독립(fuck your money)에 근거한 폴리스의 법과 제도였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성문법과 관습법)에 의해 정립된 정치제도와 사회제도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지고, 기득권 위주의 언론권력이 등장하면서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가 불투명하고 불평등하게 됐다.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사회경제적 평등이 일정 수준 이상 전제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퇴행하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각종 폭력혁명과 1, 2차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시민권 확대를 통해 폭력이 배제된 현대의 민주주의를 이룩했지만, 신자유주의 40년 만에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정치 참여의 핵심인 자유의 실질적 행사가 제한됨에 따라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보다 못한 수준으로 퇴행했다. 절대군주제에서처럼 여론은 집권세력이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민주적 선거들은 4~5년 동안 국가를 지배할 임기직 행정가를 뽑는 것으로 요식화됐다.



정치가 자유로운 토론과 그것을 통해 결정된 공적 합의를 실천하는 것에서 세습권력의 기반이 되는 경제력의 크기에 따라 좌지우지되면서, 자유와 평등이 하나로 응축된 1인1표가 1원1표로 둔갑해버렸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진 시장경제 하에서 경제력은 곧 권력의 원천이라 민주주의는 금권정치라는 과두정치로 변질됐다.



앞의 글에 이어 오늘의 글까지, 두 편으로 나눠 ‘fuck your money'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설명한 이유는 사회경제적 평등이 현대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하기 위함이었다. 고대 아테네의 폴리스에서 기원한 민주주의는 자유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불평등이 커지면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각종 불평등을 강화하는 정치를 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민주주의(특히 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질수록 민주주의의 축소되고 퇴행된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독재시대의 산업화세력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바탕이 돼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며,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킨 공로가 자신들에게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물론 이것은 부분적 진리로 보편적 진리를 대체하는 것이라 참이 될 수 없지만, 부분적 진리인 것만은 사실이다.



따라서 일베충과 알밥, 서북청년단들이 좌빨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비판해야 할 정치인과 정당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정치를 자행하는 정치인과 정당이지, 사회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정치인과 정당 및 시민들이 아니다. 일베충과 알밥, 서청들은 차라리 독재시대가 낫다는 자들과 동일하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들이다.



다음 글에서는 현대물리학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루고, 그 다음에는 민주주의를 축소시키는 대중매체의 테크놀로지(미디어정치의 근간)에 대해 다룰 예정인데, 그에 앞서 거칠게나마 ‘fuck your money'에 내포된 민주주의의 원리를 다룬 것은 이 땅의 진보가 지금보다 더 무너지면 민주주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아니 되찾고,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 이래 이 땅의 서민과 노동자를 대변해온 진보 세력의 대오각성과 분연한 부활을 기대하면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중용투자자 2014.10.07 11:22

    사회경제적 평등이 유토피아적 발상이 되어버린 난국입니다.

    • 늙은도령 2014.10.07 11:38 신고

      미국만이 혁명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빈곤의 절박성이나 역사의 필연성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고력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혁명은 그것 때문에 일어났지만,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이 가장 위대한 혁명인 것은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는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철학자들의 무지함 때문입니다.
      매우 어려운 문제라 쉽게 풀어쓴 글입니다.

  2. 바람 언덕 2014.10.07 12:12 신고

    도령님의 글을 정말 읽으면서 공부가 되는 글이네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글을 읽으면서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해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건강만 하세요...
    ^^

    • 늙은도령 2014.10.07 12:24 신고

      네,님도 건강하세요.
      좋은 글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좋은 성찰의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3. Konn 2014.10.07 21:08 신고

    지금처럼 빈부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상태에선 절대로 사회적 평등이란 없죠, 특히 경제적 상태에 따라 더 많은 권력이(심지어 초법적일 수도.) 모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 늙은도령 2014.10.07 21:54 신고

      네, 그래서 근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비폭력 혁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근혜와 최경환이 임기를 마칠 때쯤이면 이 나라가 얼마나 망가져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 전에 막아야 하는데 야당은 능력이 안 되고 방송은 장악된 상태로 국민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정치철학이 확실한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정당만 믿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경제부총리에게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해도 이 정도면 막가자는 것이다. 12일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표된 보건·의료 서비스 투자활성화 대책은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의 물꼬를 확실히 터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대국민 위협이다. 그밖의 대책과 법안들도 단기적 이익만 노린 근시안적인 것들이라 다음 정권이나 미래세대에게는 부담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 



게다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KBS 뉴스라인에 나온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공영방송을 이용해 정부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읊조렸다. 5분 정도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한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이란 신자유주의적 주장만 되풀이했고, 심지어는 그의 발언 내에서도 논리적 모순과 오류도 드러났다. 주류 경제학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도 이런 정부의 단기실적 올인 전략과, 지나칠 정도로 기업 위주로 풀어놓은 규제완화 때문이다.  



                                                                   한겨레신문에서 인용



최 부총리가 가장 강조했던 청년 일자리 창출과 의료민영화와 영리화가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한겨레에서 인용한 위의 쟁점들을 보면 청년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의료민영화라 함은 국립병원을 민간에 파는 것이라고 한 발언도 명백히 거짓말이다. 의료민영화는 국립병원을 민간에 팔지 않아도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다. 의료법인 병원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과 의과대학 산한 기술지주회사 설립, 의료정보 활용(민간보험회사에 환자 정보를 넘겨주겠다는 뜻)을 위한 법적 체계 마련으로 얼마든지 의료민영화는 진행될 수 있다. 



게다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이런 방식으로 각종 바이러스와 병원체가 국내에 상륙한다)하기 위해 외국인 의사 비율 등 관련 규정을 없애겠다는 것은 국내병원에게 돈이 되는 외국인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어서, 돈이 안 되는 국내환자들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기회는 줄어든다. 이는 외국인 환자들을 유치하고 있는 태국(한국의 모델인 것 같다)과 미국의 병원들을 찾아가보면 당장이라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중국의 한 기업이 피부미용이나 성형수술을 하고 동시에 값비싼 건강검진 상품을 팔겠다며, 정부의 승인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된 제주도 투자개방형 병원 유치 허용은 그 자체로 의료민영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시작이 반이라 했듯이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전국으로 퍼져가는 시간 문제다. 언제나 첫 번째 사례가 힘이 들지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시장의 논리이자 정치적 관행이다.  







의료정보 활용을 위한 법적 체계 마련은 민간보험회사들의 숙원사업으로 현재의 건강보험체계를 뿌리부터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체의 실패와 의료민영화의 천국으로 유명한 미국의 예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민의 평균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각종 만성질환도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의료정보 활용을 위한 법적 체계의 마련은 민간보험사의 배를 불려줄 뿐,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줄기세포 치료 및 유전자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 규제완화는 제2의 황우석 사태의 재현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연구를 위한 난자의 마련은 그 자체로 여성의 인권을 돈으로 사들이는 비윤리적 행태가 선행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다 붙여도 이는 명백한 인권유린의 전형이라는 것이 일치된 견행이다. 가장 건강한 젊은 여성마저 인위적인 난자 채취를 초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  



의료민영화와는 상관없이 현대의학의 문제점들을 파헤친 서적들을 보면, 인류의 안전에 가장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 임상시험의 규제완화를 들고 있다. 이는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다루는 모든 저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상황이며,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군이 기업의 연구소와 의료민영화가 진행된 의료법인 자회사 등을 통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무분별한 임상시험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부총리에 취임한 최경환은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다선 의원으로, 이번 보건·의료 분야 투자활성화 대책은 새누리당의 숙원사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이것이 국회를 통과하면, 주구장창 새누리당을 찍어온 노인들부터 피해를 보게 된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그 실제 가치가 갈수록 떨어질 기초연금으로는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며, 기초생활보상자라 해도 치료받을 병원이 있어야 그 다음이라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조선일보에서 인용



이밖에도 최경환 경제부청리가 내놓은 경제활성화 대책을 보면, 관광객 유치와 도박산업과 한강개발에 내수경제의 명운을 걸겠다는 뜻인데, 대체 이것이 얼마나 좋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2차세계대전 이후 잘 나가던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져든 것이 독일에 제조업을 빼긴 이후 관광산업에 목숨을 걸며 일어난 것인데, 그나마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의 미래마저 붕괴시킬 생각인지 그 저의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금융 대붕괴의 단초가 된 LTV와 DTI의 적용비율을 높인 것에 이어,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보이는 한강 개발이 포함된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은 대통령의 치적을 위해, 임기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내가 알 바 아니라는 정책결정권자들의 무책임이 어디에 이르러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현재의 불평등이 본격화된 기원인, IMF 환란을 초래한 강만수의 후계자가 비로소 확정됐다. 



조선일보도 탄복했듯이, 국민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주가상승과 부동산 활성화를 통해 7월재보선에서의 압승을 견인한 자도 최경환 경제부총리다.이제 그의 이름 앞에 금권정치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이 발표한 이번 경제활성화 대책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제2의 IMF 환란이 도래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한민국을 돈에 환장한 천민자본주의의 천국으로 몰고가고 있는 이번 경제활성화 대책은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1. 뉴론7 2014.08.13 06:05 신고

    의료민영화가 될지 어떻게 될지 반대가 많은데 어떻게될지 기대가 되긴해염 .

  2. 늙은도령 2014.08.13 08:56 신고

    국회에서 막아내야 하는데, 제주도는 막을 수 없습니다.

    매일같이 이렇게 떠들어야 원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3. 덕산 2014.08.13 09:19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토개발을 선두로 철도 및 의료민영화등 모두 누굴 위한 정책인가..
    의료 민영화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사항인데 여야 모두 한통속이니,
    결국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13 19:42 신고

      의료민영화는 하늘이 무너져도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만 밝히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상 어디까지 갈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4. 여강여호 2014.08.13 19:19 신고

    선거가 끝날 때마다 한번씩 꼭 국민들 뒤통수를 칩니다.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할지.....

  5. Elisa 2014.08.22 11:04

    정말,, 자신의 이익만 보고
    국민들 착취하는
    골때리는 사람들이네요 ㅠ

    • 늙은도령 2014.08.22 18:09 신고

      새누리당의 구성원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수우파도 바뀌어야 합니다.
      요즘은 잘 지내시는지요?
      힘든 청춘 중의 한 분이시니 늘 걱정이 앞서네요.
      좋은 시절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번의 극심한 혼란이 끝나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에 들려면 이번의 혼란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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