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2월 13일, 공산주의의 가면을 쓴 채 전체주의를 자행하던 폴란드 군사정부는 '독재의 극단주의'를 신날하게 풍자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1시간에 60분>의 송출을 차단했다. 이 프로그램을 즐겨들었던 폴란드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폴란드 군사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1시간에 60분>으로 대표되는 언론과 노조, 시민단체 등을 체제 전복을 노리는 불손한 세력이라며 불법으로 몰았다. <1시간에 60분>의 열혈 시청자였던 안나 셈브로스카도 더 이상 방송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밖에는 탱크들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폴란드의 군사정부는 이미 계엄령을 선포했다. 솔리다리티(폴란드자유노조, 바웬사가 이곳 출신이다)는 불법단체가 됐다. 언론의 자유와 말하는 자유는 다시 과거의 억압 상태로 돌아갔다. 폴란드의 자유화 실험은 그렇게 끝났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안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체코 국경 가까이에 스비드니크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로부터 개를 데리고 산보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들려왔다. 매일 저녁 7시 30분에는 국영TV가 뉴스를 방송했다. 그런데 이 마을 주민들은 거의 모두 이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와, 동네 한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운동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일 벌어지는 침묵의 행동이 됐다. 자유를 위한 연대의 표현이기도 했다. 우리는 텔레비전 뉴스의 시청을 거부한다.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 시각의 진실을 거부한다.

 

 

그다니스크에는 검은TV 스크린 이야기가 있었다. 그 도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텔레비전을 창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크린이 밖을 향하게 놨다. 그들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정부를 향해서도 신호를 보냈다. 우리도 시청을 거부한다. 우리 역시 당신들 시각의 진실을 거부한다."(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인용).

 

 

군 인권센터의 추가 폭로로 '기무사가 만들었고, 황교안 대통령직무대행이 보고 받거나 패스 당한 것으로 보이며, 민주적이며 평화적으로 진행된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후, 윤석렬이 중심에 있었던 검찰이 덮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계엄령문건'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안나의 회상이 우리에게도 되풀이될 수 있었다, 40대 이상의 세대들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 때 치가 떨리도록 경험했던 바로 그 계엄령 치하의 대한민국처럼.

 

 

촛불혁명을 체제 전복을 노리는 종북세력으로 몰아 '박정희 군사독재 시즌2'를 출범시키려고 기획됐던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은 필자로 하여금 <KBS 9시뉴스>에 다이얼을 맞추면 "띠띠띠 땡! 박정희 대통령 각하···, 띠띠띠 땡! 전두환 대통령 각하··"로 시작됐던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시민 이사장은 <알릴레오>를 통해 자신의 경험에 따른 '계엄령 치하'를 회상했는데, 그가 말한 것들은 약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40대 이상의 국민들이면 모두 다 경험했던 것들이다.

 

 

어제 저녁 7시부터 오늘 새벽 5시까지 죽음과 사투를 벌였던,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사투를 벌여야 하는 어머님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까지 내가 경험했던 '9시간의 지옥'이 이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2019년의 청춘들은 어느 정도 실감이 갈까? 세계적인 우경화 추세와 보호무역으로의 회귀, 국가주의의 강화 등에 의해 경제대공황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보수적 정책을 연달아 내놓을 수밖에 없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숙제가 던져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견인하고 있는 윤석렬의 검찰과 기레기 저널리즘의 연합공격을 받고 있는 문통이, 구좌파와 급진좌파로부터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까지 받음으로써 힘들게 국정을 운영해야 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군 인권센터가 추가로 확보한 '계엄령 문건'이 윤석렬 검찰의 폭주에 납짝 엎드려 조국만 물고늘어지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것도 불길하게만 다가온다. 

  1. 참교육 2019.11.02 03:13 신고

    생각도 하기 싫은... 소름끼침니다.
    나라의 주인을 학살하려 했던 놈들을 수사도 하지 않는 나라...
    이게 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선례를 만든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그런자들이 민주주의를 말하고 주권을 말하는 세상에는 또 제 2 제 3의 학살기회자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눈부럽뜨고 감시해야합니다.

    • 늙은도령 2019.11.02 04:21 신고

      조현천을 반드시 소환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지시로 수사가 진행된 사건을 검찰이 완전히 망쳐놓았습니다.
      대통령이라고 법률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조현천 소환도 쉽지 않고, 돌아와서도 부정 만 한다면 실제 처벌이 만만치 않습니다.
      참 여려운 문제입니다.

  2. laughhaha 2019.11.02 10:59

    내부의 암덩이들 부터 해결해가는게 빠를듯요.
    이해찬 사퇴 윤석열 체포 수사!
    분열세력 내부총질 이라고 말하는 자 들도 똑같은 범인.

    • 늙은도령 2019.11.02 13:11 신고

      문파 중 일부가 문재인 정신과 가치마저 해치고 있습니다.
      윤석렬의 검찰은 아예 정부와 각을 졌다고 공공연히 덤비고 있습니다.
      이해찬은 민주당을 말아먹을 태세고...
      이재명까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 다음이 없습니다.

  3. 선한이웃moonsaem 2019.11.02 14:55 신고

    기무사 계엄령이 실제라고 밝혀져도 저들은 눈감고 도리 질 할 거예요.
    물론, 그 속에 뒤엉켜있는 눈 멀고 귀 멀은 군중들도 똑 같겠죠.
    아직 대의적인 자유 민주주의를 누릴 수준이 아닌거죠.

    땅이 넓다면 한쪽 귀퉁이 뚝 떼서 그들에게 던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을 해볼 때 있어요.
    황교안 대통령, 나경원 국무총리 되서.... 가관 일거예요.

    • 늙은도령 2019.11.03 00:28 신고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결론에 이른 것이 일본의 자민당에 보내는 것이었죠.
      그러면 자민당은 아베보다 더한 자들에 의해 폭망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실상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고 검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동시에 난해한 음모론이 놀랄 정도로 확산되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검열의 종말은 탈진실(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 정치를 불러왔다.

 

                                                             그문트 바우만·이반 크라스테브 외 《거대한 후퇴》의  <다수결주의의 미래>에서 인용

 

 

 

선동정치의 제왕이었던 괴벨스가 히틀러를 거리의 선동가에서 게르만 민족을 구원할 신으로 승격시키는 과정에 새로운 매체로 등장한 라디오가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의 뉴미디어로 등장한 팟캐스트를 이용해 영악한 망나니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스피커로 성장한 김어준의 성공도 괴벨스의 성공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개인적 능력으로만 본다면 김어준이 괴벨스와 비교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이명박근혜 9년의 초딩적이고 경영전문가적인 국정운영 덕분에 손석희(JTBC 뉴스룸의 시청률 하락에서 보듯이 지금은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와 유시민(알릴레오로 영향력이 더욱 늘었지만 윤석렬 검찰의 깡패적 보복을 넘어야 한다)에 맞먹을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나꼼수의 성공'으로 시작해 '김어준과 그의 아류들'로 무한증식한 팟캐스트의 대성공은 유튜브 방송의 폭발로 이어지면서 기존 언론들의 영향력을 능가할 지경에 이르렀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법적·제도적 규제를 적용받는 언론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 대세이기 때문에, 게이트키핑이 없이 마구 쏟아져나오는 막말과 망언, 가짜뉴스의 홍수는 수많은 부작용과 폐해를 양산하는 것을 넘어, 기존 언론의 기레기화까지 추동하고 있다. 

 

 

유튜브에 집중되는 광고의 일부라도 돠찾아오려면 공익에 봉사하는 저널리즘이나 언론의 사명, 기자의 취재윤리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했다. 기존 언론의 하향평준화는 이렇게 시작됐고, 광고 수주를 위한 선전성과 폭력성이 난무하는 '기레기 저널리즘'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사회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기레기 저널리즘' 때문에 막말과 망언이 빛의 속도로 날라다니고, 상대적·절대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발언들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국 대전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담겨있었고, 그래서 일방적인 도륙이 가능했다.   

 

 

 

숙고와 반성적 고찰이라는 가치체체를 거친 진실은커녕 그 이전 단계의 사실마저 무시되기 일쑤다. 가짜뉴스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는 현재의 언론환경은 가히 '탈진실 정치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디지털 시대를 견인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양자역학의 영향이 가장 크다)이 인간 사고의 종합적인 성찰보다는 빛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빠른 인식과 이분법적 판단, 표피적인 대응의 강화가 '탈진실 정치'를 만연시키는 '기레기 저널리즘'으로 귀착된 것이다.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닌 극소수의 이익과 기술 그 자체의 진보를 위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디지털기술의 발전이 망언과 막말, 혐오와 차별, 분열과 선동, 가짜뉴스로 먹고살 수 있는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단기적인 혼란 현상으로 그칠지, 아니면 또 다른 진화에 이르기 위한 지독할 정도의 자연선택 과정인지는 알 수 없다. 최종 승자가 인류가 아닐 가능성이 거의 100%에 이르지만, 정치와 함께 언론환경이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경우, '기레기 저널리즘'의 기원은 천하의 잡놈 이명박이 낳은 종편 허가에서 시작됐다. 광고시장의 한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이명박의 정치적 결정 때문에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종편들은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으로 급전직하했다. 조중동의 영향력은 신문시장에 국한될 뿐이며, 그것마저도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 결과가 아사 직전의 종편들이었다. 조중동의 충성독자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기레기 저널리즘'이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진보진영으로써는 수구 일변도의 종편들에 맞설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진보진영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던 JTBC의 변신은 아직 멀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적 갈증을 꿰차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김어준이 <나꼼수>라는 팟캐스트로 '이명박 헌정방송'을 들고나왔다. 탄핵 직전의 박근혜에 비견될 만큼 만인의 적으로 자리매김한 이명박을 물고 뜯고 씹는 방송이었으니 폭발적인 호응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꼼수>는 분노의 원인인 절망과 좌절, 공포와 불만, 증오를 자극해 청취자의 이성이 아닌 감정을 건드리고 부추겼다. 이명박을 향한 청취자들의 반감과 분노가 '조롱과 격노의 움직임'으로 표출되도록 선동의 수사학과 막말, 걸쭉한 욕과 난삽한 음모론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현실정치에 대한 지식과 논리, 경험과 성찰은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했다. 청취자가 듣고 싶어하던 이명박 저격과 조롱의 레파토리는 넘칠 만큼 많아서 아무것이나 떠들어대도 열과은 지속될 수 있었다.

 

 

이명박 치하의 대한민국 자체가 난장판이고, 삶과 현실에서는 이것과 저것이 충돌하기 일쑤인데 논리적 충돌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하는 각종 의혹 제기와 초딩 수준의 음모론들이 모두 다 거짓이고 틀린 것으로 판명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명박근혜와 삼성, 롯데, 조중동과 여당, 수구꼴통만 씹어대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데 걸쭉한 욕으로 맛을 낸 거짓과 선동의 수사학이라면 더욱 흥행몰이에 적합할 터였다.

 

 

한 번 듣기만 해도 전염되기 쉬운 '바이러스성 콘텐츠'로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 그 다음은 수많은 추종자들의 화답(금전적인 것 포함)이 쓰나미처럼 되돌아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런 욕설과 음모론의 순환고리는 기성 언론에 부과되는 어떤 규제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에 이명박근혜의 청와대까지 무사통과될 수 있었고, 만사형통을 재현할 수 있었다. 전염의 속도는 광속에 가까웠다, 진공에서는 저항이 없기 때문에.

 

 

<나꼼수>에 열광할 정알못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감정의 배설이고, 호기심 충족이고, 분노 표출에 대한 대리만족이고, 기성정치에 대한 비아냥과 통쾌한 비틀기였다. 자체 검열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에게 <나꼼수>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극소수의 지배엘리트와 재벌 위주의 세계화와 일자리를 빼앗는 자동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 대한 수많은 낙오자와 피해자들의 유쾌한 뒤집기였다. 

 

 

 

갈수록 늘어나는 불평등과 양극화, 불공정과 부정의, 불의에 대한 한판의 되치기였다. 유쾌·상쾌·동쾌한 <나꼼수>가 정알못과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대중에게는 흥행요소를 모두 갖춘 막장 드라마였다. 돈이 되는 청취자와 추종자들이 넘쳐났다. 유력 정치인이 출연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다. 자신을 알리고 싶은 기성정치인과 예비정치인, 정부정책과 예산에 관심이 매우 높은 전문가들도 줄을 이었다. 질 높은 광고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정권이 바뀌었고, 분화를 거듭하던 <나꼼수> 멤버와 그의 아류들은 3대 방송사에게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종편의 영향력은 오랫동안 바닥을 다졌고, 진보진영의 스피커에 맞설 능력도 화력도 상실했다. 이땅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꼼수>와 그의 아류들과 경쟁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카톡과 메신저라는 서브매체를 통해 보수우파의 입맛에 맞는 가짜뉴스들이 공유되고 있었기에 보수우파의 <나꼼수>도 가능할 터였다. 

 

 

구글의 유튜브 방송이 이를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김어준보다 더욱 심한 망언과 막말, 혐오와 차별 발언, 가짜뉴스를 쏟아내도 아무헌 제제도 받지 않았다. 얼마가지 않아 광고도 붙었다. 작지만 광고료가 들어왔다. 발언의 강도가 더욱 막장으로 치달았다. 시청자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광고비가 솔솔한 정도를 넘어 이 짓만으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전세계의 광고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구글의 자금력이 유튜브 방송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고, 광고 수주가 줄어든 기존 언론들도 유튜브 세상으로 밀려들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야 한다면, 기성 언론도 유튜브에 진출했으니 유튜브의 법을 따라야 했다. 기성 언론의 콘텐츠의 질이 낮아자기 시작했고 말초적 자극을 중시하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보도를 대폭적으로 늘렸다. 가짜뉴스는 이제 핵심 메뉴로 자리잡았다. 

 

 

모든 언론의 하향평준화가 뒤를 이었다. 언론 보도에서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광고가 줄지 않는 한 펙트 체크에 연연할 필요도 없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기레기 저널리즘'이 대세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탈진실의 정치 보도'가 뒤를 잇는 것은 기정사실, 민주주의의 수준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더럽게 재미없는 진실의 가치는 그것이 알려질 때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진실은 보도될지언정 관심받지 못했다.

 

 

 

영악한 김어준이 리얼미터를 이용해 여론조사의 전성시대까지 만들어냈다. 없던 여론을 만들어내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으며, 심층적인 여론이 아닌 표피적인 여론을 조사하는 것에 그치고, 정책과 예산 집행을 위한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거의 승패를 바꾸기 위해 여론조사가 실시된다며 여론조사의 문제점이 비등한 시점에서 김어준은 조사결과를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충성고객층을 늘리는데 성공했다. 

 

 

니라의 규모 때문에, 각 주가 하나의 국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많기로 유명한 미국보다 여론조사를 더 많이 활용하는 김어준의 리얼미터 끼고돌기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김어준을 따라잡아야 하는 후발주자들이나 기성 언론들이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빈도가 더욱 많아졌고,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줘 신뢰성이 의심되는 각종 여론조사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맞춰 악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났다.

 

 

여론조사 전성시대가 이렇게 열렸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여론조사의 활용빈도가 늘어남에 따라 여론조사의 신뢰성 뿐만 아니라 존재 이유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강해지고 있다. 대통령이 맡고있는 업무 총량의 1%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근자에 벌어진 몇 개의 정책이나 사건에 영향받기 마련인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고 물으면 정확한 답이 나오겠는가? 이런 조사들이 며칠마다, 매주 실시되고 발표돼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니 '기레기 저널리즘'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땅에 만연된 가짜뉴스의 '탈진실 정치 보도는' 종편의 등장과 그들에 맞선 <나꼼수>에서 시작됐고. 이제는 그들의 '탈진실 보도'를 바로잡을 방법도 없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이 더욱 고차원적인 삶을 산다고 했는데, 현재까지의 결과는 정반대에 해당한다. 진실보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그 출발에는 <나꼼수>가 있었다. 언론이 바로 살아나려면 <.나꼼수> 멤버들의 '탈진실 정치'와 유튜브 방송과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의 눈높이와 사용 언어가 절대 기성 언론의 눈높이와 사용 언어가 될 수 없다. 그들과의 차별점을 찾겠다며 실시한 실험적 프로그램에서 국민적 반발을 초래하는 실족이 연발하는 것도 이 때먼이다. 그들과의 광고 수주 전쟁을 목적으로 한 바닥으로의 경쟁은 기성 언론을 죽이는 일이며, 지배집단과 언론엘리트들이 의제 설정을 독점하고 촘스키가 증명한 '선전모델ㅡ조국 대전처럼 정부와 출입처를 정보원으로 하는 일방적이거나 확증편향된 보도ㅡ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많은 학자들과 시민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주류 저널리즘의 한계도 극복할 수 없다. 

 

 

종편에 맞서다 종편을 능가해버린 <나꼼수>가 유튜브 전성시대로 이어짐에 따라 언론의 방향 상실과 질적 하락, 끝없이 이어지는 실수들이 반복되고 축적되고 있다. 이런 자멸의 행렬에서 서초동집회를 기점으로 공공저널리즘(특정 이슈에 관해서는 시민의 뜻을 수용해 정치적 중립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의 전환이 엿보이는 MBC에 비해, 여의도집회와 광화문집회만 보도하고 있는 KBS와 그밖의 언론들에게서 어떤 희망의 단초도 발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레기 저널리즘'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않았다면 조국 대전의 향방은 지금과는 180도 다를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과 국정원영에 대한 평가도 달랐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통이 격무에 시달림에도 법무부를 통해 검찰개혁을 직접 챙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됐다. 조국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문통은 경제와 민생을 더 많이 챙길 수 있었다. <나꼼수>가 견인해온 '기레기 저널리즘'은 문통의 손발을 묶은 것을 넘어 아베의 미친 짓거리마저 문통의 책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시청료로 돌아가는 공영방송 KBS를 통해.

  1. laughhaha 2019.10.29 12:01

    저급하고 비열한 사기장사꾼 밖에 안된다 생각합니다
    촛불을 우습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
    키득키득 거리며 조롱하듯 내뱉는 말들은 공감능력이 일도 없는 자 란걸 알수 있습니다. 그걸 바로 볼 줄 아는 깨어있는 국민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9.10.29 17:35 신고

      갈수록 김어준의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과 언론을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그의 실체를.

  2. 선한이웃moonsaem 2019.10.29 18:53 신고

    나경원 얼굴을 찬찬히 보시면 진실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안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9.10.29 19:06 신고

      그럼요, 그녀는 공주로 살아온 지적사기꾼에 해당합니다.
      어제한 말이 오늘과 다르고, 내일도 다를 그런 여자입니다.

  3. zzz 2019.11.12 23:34

    당신 글에는 김어준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묻어나는군요.
    딴지 초창기부터 20여년 동안 봐왔지만 몇가지 자잘한 실수를 제외하곤 변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갈수록 실체가 드러난다니 도데체 언제쯤 일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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