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들은 자신이 이룬 것들로 인해 자신의 후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지독한 모순에 갇혀 미래세대 못지않은 피해자로 뒤집혀지고 있다. 그들은 압축성장의 표상에 갇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변한 것도 모자라, 현실을 끝까지 부정하면서 과거만 움켜쥔 채 자신의 자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영화 '국제시장'이 그분들에 대한 현실도피적 헌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ㅡ'국제시장'에 대한 자세한 사회학적 비평은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이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정수이기 때문에 '국제시장'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의 삼위일체’가 극소수의 승자에게만 미래로 가는 지독하게 좁은 풍요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절대다수의 패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궁핍과 위험으로 가득한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는 미래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 그들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모순은 죽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부의 불평등이 기회와 교육의 불평등으로 고착되고, 성장의 각종 부작용들이 개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위험사회의 비대칭적 피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패자부활전을 인정하지 않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견고한 고체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우만의 성찰처럼 고체의 밀도를 지닌 채 액체처럼 유동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이 펼쳐놓은 물샐틈없는 그물망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산업발전의 단계에 따라 중후장대하며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 동거를 피할 수 없는 무거운 경제에서, 핵심인력만 정규직으로 둔 채 나머지 부문의 인력들은 노동유연화에 따라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으로 대체한 채 가벼운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주의에 익숙하나, 유례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자유의 종류 때문에 민주주의가 빠른 속도로 퇴행 중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지 못하는 1030세대는, 계몽된 시민이었으나 지배자와 타협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의 착취의 대상이었던 노동자와 구별되는 압축성장의 주역들과, 시민정신의 계승자였으나 마르크스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너무나 적었던 민주화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노동 개념과 자연 지배라는 성장의 낙관론이 사회와 문화의 퇴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영원한 진보라는 계몽의 피해자라는 데는 동일하지만, 살아온 시대적 경험이 틀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여력도 없다. 



인류문화학적으로 1030세대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압축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지금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경제적 발전이 최종 단계에 이르면 자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와 평등의 주체로서의 타자가 서로 공존하고 갈등하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헌데 삶의 고단함에 짓눌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때문에, 그들은 극소수의 승자에 대해 절대다수의 약자와 패자의 위치로 내몰리고 있는 기술-경제적 발전의 피해자임은 분명하다. 평화와 공존의 종교인 이슬람 사회의 속담처럼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기 마련이다.’ 민주화세대는 물론 그보다 앞선 세대인 압축성장의 주역들에 대한 이해를 1030세대에게 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세 세대가 살아온 시대의 조건과 지배의 방식, 산업화와 민주화의 단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특히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의 부족과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삶의 방식과 각자가 처한 환경 등에서 채울 수 없는 거리를 짧은 글로써 풀어낼 수는 없다. 



보릿고개라는 생존의 고민을 걱정했던 세대이자 국가와 사회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받칠 수 있었던 세대들을 기술-경제적 발전 때문에 이기적일 정도로 개인주의화된 1030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업화의 주역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장과 발전을 목격했기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상태다. 그들은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지적 사기이자 농촌 해체 과정인 '새마을운동'의 희생양이어서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군사부일체와 국민교육현장, 국기에 대한 경레가 이상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박정희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의 딸인 박근혜에 대한 사랑을 1030세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1030세대에게 권위주의적 독재에 저항해 감옥을 들락거리며, 미군이 아부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했던 고문보다 더욱 심한 고문에 시달렸고, 때로는 사형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민주화세대의 치열한 투쟁을 이해시키기 힘든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국가의 전방위적 압박에 운동의 동력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해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교조적일 만큼 밀어붙였으며, 운동의 길이 너무나 힘겨웠기에 민주주의나 정의와 평화에 대한 개념에서 거의 권위주의적인 엄격함(민주화 주역에 대한 1030세대의 피로감이 여기서 나왔고 그 극단에 일간베스트가 있다)을 유지해야만 했다. 지난 60년 동안의 경제성장은 무수히 많은 부작용들을 후세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으며, 그 결과 1030세대들을 압축성장의 신화에 짓눌려 존엄한 삶과 진정한 자유도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들 모두가 계몽적 진보(국민을 착취의 대상으로 만드는 유신(維新)도 이에 속한다)를 앞세운 기술-경제적 발전의 지배세력의 희생양이었지만, 절대 다수의 패자들 사이에서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 남아 있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세 세대 간의 화해란 갈수록 벌어지며 서로를 향해 폭력적 적의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들이 난무하며 교차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기술-경제적 진보의 방향이 바뀌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어야 하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유발하는 세대 간의 전쟁(별도로 다룰 것이다)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가족의 복원과 세대 간 화해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익 추구를 위한 위장된 행태여서 세대 간 갈등과 가족의 해체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압축성장의 혜택을 최소한만 받았던 세대들과 그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1030세대가 부의 불평등과 위험의 불평등이 교차하는 하는 최악의 지점에 위치한 사회적 계급(파편화된 개인이라 연대의 능력도 없고 운동으로 승화할 동력도 없는 넓게 산재해 있는 계급)부터 비대칭적 종말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현재의 세상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1%와 다음 번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만 그들의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라고 비대칭적 종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기술-경제적 발전의 수혜자로서 초국적기업의 위치에 오른 삼성전자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네트워크의 효과’를 누리면서, 이제는 1등을 유지하기 위한 ‘마하경영’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이런 삼성전자그룹의 끊임없는 변신은 정보통신 기술이 어느 산업에나 적용되는 지적 능력의 특징 때문에 전통의 제조업에서 무거운 부분을 떼어내는 작업에 들어서는 단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속도가 핵심인 가벼운 경제에 승선하려면 전통의 제조업도 제 살을 깎는 살벌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대규모 실업의 양산과 공장의 폐쇄나 해외이전을 의미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초국적기업에 오른 대기업집단은 기술-경제적 발전의 궤도에 적응해야지 그에 저항하면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최근에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는 환율전쟁에 갇혀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땅의 기만적인 기득권들은 참여정부 시절이 삼성공화국이었다고 하면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거짓을 확대재생산했지만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망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을 만큼 부의 독점이 임계점을 넘은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실에 가깝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금의 새누리당 출신들이 일으킨 IMF 외환위기 때문에 삼성전자그룹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2008년의 월가 발 경제위기는 MB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현대기아차그룹이 약진할 수 있었다(물론 기술-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았지만). 국민의 지갑은 털렸지만, 이 두 초국적기업의 매출과 자산규모는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전 세계 차원의 청사진을 그려가며 현재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국적기업들의 탄생과 독과범적 시장 지배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계몽적 진보의 필연이었다. 이런 변화는 부정적 세계화에 뛰어든 모든 나라에서 공히 보여주는 공통의 현상이며,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배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모두에게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손만 뻗치면 움켜질 수 있는 무한한 상품들이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만끽하고 상품들을 구매하려면 저임금 노동이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즐기고 지불은 뒤로 미루거나, 아예 뒤는 생각하지 않는 카드의 사용도 한계가 있으며, 대학을 졸업했을 때부터 이미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가지고 출발하는 20대들은 노동예비군을 뜻하는 잉여가 아니라 폐기처분되기 직전의 잉여라는 뜻에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의 위협에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졌다.





부정적 세계화의 핵심인 이런 기술-경제적 관점(계몽의 변증법)이 보편적 진리로 자리 잡게 되면서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재적 지배자들은 절대적 권력을 형성하면서 세계적 특권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그런 압도적 힘을 동원해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기로 합의한 국가들의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와 언론을 기술-경제적 원리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재편하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이들은 힘겹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체제를 내부로부터 야금야금 침식해 들어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인식의 전환(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이루어내는데 성공했다. 정치와 문화의 대부분이 그 하부구조인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만들어내는 빈약한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발견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견고한 체제의 적대적 동반자였던 노동은 물론 정치와 문화의 힘도 약화시키고 변화시켰던 과정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세계화를 다룬 책들과 연구논문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공통되는 내용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이 그 앞에 ‘부정적’이라는 단어를 숨긴 기술-경제적 승자들의 일방통행이고 폭력적인 약탈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신용붕괴로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부정적 세계화는 세계경제의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그린스펀과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가 참회의 고백을 하게 만들었고, 막강한 시카고학파의 퇴장을 불러왔지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거기까지 만이었다. 그밖에 달라진 것이란 1%의 부가 더욱 늘었다는 사실과 지구온난화의 죄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경제를 털어낼 기회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에 몰린 거대한 부도 최종적으로는 1: 9로 재편되고 있다(미국은 미국혁명과 남북전쟁 전후에도 1대 9 사회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직면한 현재, ‘탐욕의 삼위일체’는 가벼운 경제에 맞는 체제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기 위해 거대한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의 몰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한 현상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사회의 변화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반영할 수 없는 개인들이 인터넷과 SNS로 몰려다니며 정치의 과잉을 초래함으로써 세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적 시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비정치의 중간에 위치’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체제를 기술-경제적 관점에 맞게 재편하면서,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들은 그들은 일체의 권위를 해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따르며 좀처럼 뚫고 들어가기 힘든 현실공간마저 하나씩 점령해나갔던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펼치고 있다. 거의 모든 공적 공간마저도 그들의 로고와 브랜드로 도배해 버렸다(특히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보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장자유주의 우파정부의 허상이 밝혀지면서 온갖 정책적 실족들이 속출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술-경제적 관점에 의해 새롭게 재편된 국가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도 계몽적 진보의 암묵적 지지자였음을 밝힌(마르크스가 고전경제학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진실이지만 그 반대로 여전히 진실이다) 울리히 벡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필적하는 《위험사회》에서 “심지어 외적으로는 국민국가의 사법권은 국제적으로 상호결합한 시장과 자본의 집중이라는 역사적 발전뿐만 아니라, 오염물질과 유독물질의 지구적 교환 및 그에 따른 보편적 건강위협과 자연파괴에 의해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국가행위의 결과가 지니는 불투명성 때문에 정치적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유권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네타기 유권자’로 변해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한 채 비판하는 사람들로 인터넷과 현실공간을 떠돌아다녔다.



문제는 이런 투표 불참자가 늘어나면서 최소한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면서 그 민주적 대표성이 흔들리게 됐다는 점이다. 즉 각 정당과 후보들은 조직과 돈을 동원해 ‘투표에 참여하는 열성적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필사적인 전투를 벌어야 했고, 그 부작용은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침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매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의제 선정과 패널 선정에 따라 여론 조작과 왜곡의 가능성이 심각한 문제도 떠올랐다(앤서니 기든스가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언급한 정치학에서의 ‘의제 설정 이론’을 참조하라. 그 단계는 유권자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중적 의제’, 의회와 주변 기관들의 논쟁 단계인 ‘정부 의제’, 입법화 단계인 ‘경정 의제’의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보도하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민적 정서’의 대부분을 대중매체가 선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중매체는 고가의 광고와 협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며, 정치 과잉과 투표 불참이라는 이중적 분화가 정형화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을 동원한 선거 개입이 가능한 세상이 됐고, 민주주의의 후퇴는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으며 과거의 망령인 권위주의 독재와 파시즘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정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근대이성의 총아인 과학에서 출발해 지배적 교리로 자리매김한 기술-경제적 진보가 왜 민주주의의 퇴행과 맞물려 돌아가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성장이 정체돼 새로운 빈곤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사회는 물론 가정 내부에서조차 혼란과 불화, 적대가 늘어나고, 사회의 분열이 회복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과학과 기술-경제적 진보의 본질인 잠재된 폭력성이 현실공간은 물론 사이버 세상이라는 하위정치의 영역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일베 현상’이 대표적인데, 이런 추세에 대한 울리히 벡의 설명에 따르면



한편에서 하위정치 행동의 영역은 민주적 규칙의 적용에서 면제된다. 다른 한편에서 심지어 내적으로도 정치는 체계적으로 고무된 외적 요구들에 따라 군주적 특성을 여전히 보인다. ‘정치적 지도력’은 행정부와 이해집단에 맞서 강력하고 독재적인 실행력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시민과 관련하여 그것은 평등한 것들 중의 평등한 것이 되어야만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처리해 주며 진지하게 고민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질문을 없애고 자문을 줄이기 위한 모든 행동에 가해지는 제약을 단지 반영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또한 민주적 정치체계의 구조에 내재해 있는 긴장과 모순을 표현한다. 즉 의회의 토론과 공동영역을 한편으로 하고, 의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평가받는 행정기관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관계. 특히 선거운동체계는 준민주의의적인 ‘임기직 군주’의 실제적 허구를 항상적으로 조장하고 재생하는 의사결정 당국들이 서로에 대해 이바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전의 정책들이 거둔 성공을 공언하건 비난하건 상관없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7.05 10:22 신고

    인간의 욕망이 만든 세상 막장까지 왔다는 느낌입니다.
    살기위해서 먹는 게 아닌 먹고 입고 즐기기 위해서 사는 동물적인 욕구가 결국의 파멸을 불러올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5 15:24 신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공멸로 몰고 갑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공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의 폭주를 정치로 막아야 하는데 이놈의 정치인들이 정반대로만 달려가니....
      정치 실패가 패인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민주주의의 나쁜 점만 부각되는 시대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2. 耽讀 2015.07.05 16:52 신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은 자신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진실을 왜곡합니다. 서민들이 수구기득권정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이유도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죠. 그리스를 보도하는 국내언론들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복지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부패때문입니다.
    갈수록 전세계는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만든 왜곡된 질서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낼 수 있느냐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힘도 세고, 자신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잘 합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분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8 신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와 민주주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와 민주주의가 최고에 이를 때 서민들이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워낙 책을 읽지 않으니 TV에서 해부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지금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특권엘리트들의 독점물입니다.
      국민은 자포자기 상태이고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7.06 08:55 신고

    오늘 쓰신글이 다른때보다 약간 길어 한번 읽고 이해하기란
    제 수준에서 어렵습니다
    두세번 정독해야 할듯 싶어 댓글 이정도로 마무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9 신고

      좀 어렵지요?
      원래 퇴고를 해야 할 초본이라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4. 바람 언덕 2015.07.06 10:05 신고

    지난 주말 아고2 오프모임 잘 가졌습니다.
    도령님 이야기 많이 했어요.뵙지 못해 정말 아쉽네요.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앞날도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 늙은도령 2015.07.06 15:02 신고

      제가 후기를 읽어보겠습니다.
      약의 내성 때문에 조금 힘든 상황이라....
      좋은 시간됐다니 다행입니다.^^

  5. 『방쌤』 2015.07.06 11:54 신고

    모두들 제대로 투표를 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지도자를 뽑아야지요,,,
    계속 이렇게 살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 늙은도령 2015.07.06 15:05 신고

      확실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그들이 국회나 청와대로 들어가면 또 로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지라...
      정말 어렵네요.
      민주주의가 너무 무너진 상태라 이것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민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6. base 2015.07.06 18:07

    세 세대간은 갈등은 그 어느 시대보다 심화된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지난 60여년동안 이 세대들이 경험한 삶이 너무도 다르니 그러지 않겠나 싶네요. 그리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더욱 더 잠식해가는 현실에서 격게되는 수 많은 현실적 모순에 우리가 갇혀있는게 아닌가요. 그래도 이번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과는 굉장한 의미를 시사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5.07.06 18:22 신고

      네,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차피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역사에 맡겨질 일이니 그것 때문에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제대로 된 참여와 선거,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네요.
      요즘은 뭐든지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힘겨운 세상이라....



결국 사회가 ‘1 대 99(실질적으로는 0.1 대 99.9) 사회’로 재편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광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0.1%만 비대칭적 종말을 지켜보며, 끝내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에서도 홀로 독야청청할 것이다. 울리히 벡의 말처럼 ‘부는 상층부에 쌓이지만, 위험은 하층부에 쌓인다.’ 따라서 부와 기회와 위험의 불평등이 정확히 중첩되는 부분의 사람들부터 종말을 맞을 것이다. 





상황을 바꿀 시간은 이미 지났다. 정말로 0.1%의 특권그룹에게 유리한 ‘상황이 나빠질수록 좋다’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추상화한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생산방식과 전문화된 과학기술)에 의해 상부구조(정치, 문화, 교육, 종교 등)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전문화된 하부구조 자체가 정치화(특히 과학기술과 의료 분야에서)함으로써 ‘인간 해방’을 부르짖었던 일체의 유토피아 이론들이 폐기됐다(존 그레이의 《추악한 동맹》을 보면 다양한 종류의 종말론적 유토피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어쩌면 인류는 21세기가 반도 지나기 전에 개별적 자연사가 아닌 대규모 죽음과 비대칭적 종말을 목격할 수도 있다. 상황을 바꾸기에는 시간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태도와 인식 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발전, 즉 성장과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이 길게는 지난 250년의 산업화 기간 동안, 짧게는 지난 30~40년의 신자유주의 기간 동안 인류의 미래는 산산조각났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핵발전 확산의 위협은 서로 맞물려 있고, 미국 재무부의 채권을 연계로 새로운 형태의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전자는 제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인류를 위험에 빠뜨렸다면, 후자는 전자의 길을 따라가며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나라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온실가스의 반 이상을 배출하고 있음에도,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온실가스를 변함없이 내뿜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래의 에너지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 들어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석유보다 몇 배는 많은 세일가스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런 오바마 정부의 선택은 무제한 양적완화가 담고 있었던 실질적인 의미와 동일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제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1975년에 소비에트의 붕괴를 예견했던 에마뉘엘 토드는 미국이란 나라의 경제적 본질과 미래에 대해 정확히 예측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존 그레이의 《추악한 동맹에서》 재인용).



미국은 자체적인 경제활동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미국이 현재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2003년 4월 현재 그 규모는 하루 14억 달러씩 늘고 있다. 미국이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무역 제재 조치를 우려해야 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 될 것이다.



유일 제국 미국의 자멸에서 보듯, 영국의 대처와 블레어는 물론 레이건과 프리드먼, 프랜시스 후큐야마와 어빙 크리스톨, 다니엘 벨과 모이니핸 같은 미국의 신보수주의자(존 그레이에 따르면, 이들은 경제 분야에서는 사회주의를, 정치 분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하나의 세계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게 깨졌다.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봤던 콩트, 자유의 기원을 원시상태에서 찾았고 그래서 소유권의 개념을 신의 선물로 오판한 로크를 비롯해서, 소련연방의 계획경제가 실패한 이유를 국가개입주의 때문이라고 잘못 이해해 자유방임경제(신자유주의)를 주창한 하이에크(독일의 프라이브르크 학파 포함),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완성한 프리드먼의 어리석은 환상까지, 영원한 진보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난 지금, 우리는 그런 터무니없는 믿음의 근간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근간으로 남아 있는 근대과학ㅡ직선적 성장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계몽이라는 작업을 통해 모든 유토피아와 종말론적 종교를 대체한 근대이성의 산물을 말한다. 근대과학은 과학자가 아니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성찰이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과학적 발견으로는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ㅡ의 역사와 허상에 대해 개략적으로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뒤엉켜 들어간 구체적인 역사적 행태나 사회 제도뿐만 아니라 이 계몽 개념 자체가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는 있는 저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벤야민과 푸코, 폴라니와 아도르노의 성찰에 비견될 만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과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 등을 중심으로 과학의 역사와 허상에 대해 다루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음 장에서 정상과학에 대한 패러다임 이론의 시조로 알려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칼 포퍼의 《탐구의 논리》와 《과학적 발견의 논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제임스 베니거의 《통제혁명》, 스티븐 와인버그와 리처드 파인만, 스티븐 호킹, 레너드 서스킨드, 데이비드 윌슨, 장하석 등의 저작들을 참고로 해서, 개별 과학자가 아닌 총체적인 면에서의 근대과학이라는 자본주의적 종교의 겉옷을 벗겨보고자 한다.



개인에 대한 사회(역사)의 우위를 선언한 헤겔과 마르크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탁월한 사유의 끝에서 허무하게 타협해버린 헤겔의 전철을 항상 상기하며, 서사가 끝난 뒤에도 인간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는 ‘결과의 낙관’으로 전철된 과학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살펴보자. 과학의 문제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의 사용을 독점하는 ‘탐욕의 삼위일체’와 과학철학의 부재가 불러온 비극적 결과이기 때문에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과학이 제 자리를 잡을 때 현재의 문제 중 상당수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고등생명체로서의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필연의 과정이며, 반성적 성찰을 통해 새롭게 탄생해야 하는 과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고, 거의 대부분 눈에 보일 정도(보통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찾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로 심각해졌다. 필요한 것은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며 체념하거나 순응하는 진실에 대한 우리의 용기 부족에 대한 성찰이다.



1998년에 많은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과학 발전의 완전하지 못한 결과물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발생하게 된 지구온난화(육용으로 사육되는 가축들이 배출하는 매탄가스의 양은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버금갈 정도로 많다. 이런 면에서 볼 때 AI와 구제역, 광우병, 에볼라 등은 지구를 파괴시키는 유가공업체들의 거대한 피라미드, 맥도날드와 KFC 등처럼 육식과 비만을 부추기는 거대 패스트푸드업체들, 이에 길들여져 끝없이 가축들을 살육하는 인간들에 대한 반격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채식주의자이며 불교신자는 아니다.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줄이고, 비만과 유전자 변이의 위험을 줄이고, 각종 성인질환을 피해가려면 육식을 줄이고 채식과 과일 등의 고른 식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삼시세끼'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구온난화의 요인은 의외로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으며,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대비해야 하는데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가 이를 어렵게 한다는 뜻이다. 



1998년에 많은 산업국가들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해 일반 대중의 의식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필자는 그 결론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과학비판에 들어가려고 한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이 이 책의 무모한 목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이 책의 우울한 목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낙관파에 속하는 엔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인용했다.



기존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할 때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지구온난화의 억제를 위해서 국가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어떤 행동에 나설 것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그러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3.16 06:19 신고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인간의 종말, 지구의 종말.... 욕망의 끝이 어딘지 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4 신고

      네, 점점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상당한 피해가 일어날 텐데 가난한 사람들이 주 타겟이 될 것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제가 연재를 하는 이유도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2. 耽讀 2015.03.16 07:57 신고

    자본은 먹을거리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식물생산량은 전세계 인구가 먹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수억명이 굶주립니다. 비극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6 신고

      네, 모두 먹여살 릴 수 있습니다.
      초국적식품업체들이 식량생산을 독식하고 있어 굶어죽는 사람이 매년 수백만 명이나 나오는 것이지요.
      전 세계 인구의 10~20억 명이 절대빈곤층인데 이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자본의 탐욕은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삽니다.

  3. 좋은글 너무 잘읽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6 신고

      네, 감사합니다.
      저도 님의 블로그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4. 나비오 2015.03.16 16:36 신고

    앤서니 기든스 대학교 때
    한참 책 사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유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지
    안 될지 조만간 결판이 날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7 신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많은 사람이 수십 년 내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5. 여행쟁이 김군 2015.03.16 19:27 신고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좋은 글인듯 해요~
    잘 읽고 갑니당~~

    • 늙은도령 2015.03.16 19:38 신고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될 때 천천히 읽으면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6. 알아야산다구 2015.03.16 20:46 신고

    우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7. 강동훈 2015.03.28 02:50

    1.로스차일드가문의 세력은 과연 사그러들었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세력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다만 방식이 바뀌었을뿐이지요 
    독식하던 체재에서 파트너쉽을 구축해 더 복잡해진 현대사회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군림하기위해 방식을 바꾼것뿐입니다 
    대표적으로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연준의 주주구성만봐도 알수있죠 초기 연준의 주주구성은 이렇습니다 
    총 20만주중 록펠러+쿤롭의 뉴욕내셔널시티은행 3만 
    폴와버그의 뉴욕내셔널상업은행 2만1천주 
    jp모건의 퍼스트내셔널은행 1만5천주 
    로스차일드의 하노버은행1만2천주 
    체이스은행과 케미컬은행이 각각6천주 
    후에 뉴욕내셔널시티와 퍼스트내셔널이 합병해 씨티은행이됩니다 
    그리고 케미컬과 하노버가 합병해 케미컬뱅크가 세워지구요 
    후에 케미컬은 체이스맨하탄과 합병하고 체이스맨하탄은 모건과 합병해 현재의 jp모건체이스가됩니다 
    세력이 하나로 뭉치고 있는거지요  
    이중 록펠러는 로스차일드의 지원(석유운반)으로 미국의 석유시장을 독점하게되서 성장한케이스구요 
    모건은 모태부터가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입니다 
    쿤롭가와 폴와버그또한 로스차일드의 대리인들이구요 이는 과거 로스차일드의 역사를 추적하다보면 알수있는 자명한사실입니다 
    또한 후에 폴와버그는 쿤롭가의 사위가 되죠  
    이후 1983년 이들의 지분은53%로 늘어나게되고 연준은 말그대로 이들의 기관이 됩니다  
    이 은행가들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죠? 바로 한명도 빠짐없이 로스차일드와 관계된 사람들이란점입니다  
    현재 그들은 이외에도 미국내 모건체이스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있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제휴관계에 있고 조지소로스의 퀸텀펀드의 주요이사직 멤버입니다 
    소로스의 위치는 투자고문입니다 
    2.로스차일드의 자산규모는 어느정도인가 
    항상 이것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는데요 
    이것때문에 음모론으로 몰고가는분들이 많더라구요 
    일단 화페전쟁에서 저자가 예측한 5경은 & #39;1940년대 로스차일드가문의 재산은 5000불로 추산되었다 
    이금액은 그당시 세계 gdp의 반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 금액에 수익률6%를 가정한다면 현재 50조달러에 이른다& #39;이겁니다 
    부록에 보니까 최대8%면 900조달러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이런추측은 제가봐도 무리가 있는것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로스차일드의 자금력을 엿볼수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현재 전세계gdp의반이면 지금은10경원에 이르는 돈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하나 느낀점은 오히려 해외네티즌들은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보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몰고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 다른나라들보다 정보가 많이 부족한게 그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아시아여도 일본과 중국의시각은 저희나라와 많이 다릅니다 
    화폐전쟁이전에 이미 로스차일드가를 다룬 많은 서적들이 있었구요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들에 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니 막상 그런 정보들을 접했을때 저런 천문학적인 재산이 있는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거죠 
    사실 전 이미 화폐발행권을 가지고있는 이상 재산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들의 권력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저 금액이 결코 많다고 생각되지는않네요  
    3.로스차일드는 다른 세력에 밀려난지 오래이다? 
    현재 실세는 로스차일드가 아닌 록펠러이다라고 예측하는분들이 많이 계시던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록펠러가 최고강대국인 미국을 바탕으로 급성장한건 맞지만 과연 로스차일드가문처럼 전세계에 뿌리를두고 연합하는건 아닙니다 
    록펠러는 일단 미국에 국한되어있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에비해 로스차일드가문은 전세계에 퍼져 각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일단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만 봐도 알수있죠 
    이스라엘은 로스차일드가 세운나라라고해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로스차일드의 많은지원을 받아 건국한나라입니다 
    미국은 왜 이스라엘에게 절절 매는걸까요 로스차일드의 힘때문이죠  
    또한 이미 세계 가장 큰 규모의 석유업체인 로열더치쉘을 소유하고있는 그들이지만 최근 이스라엘에서 세계최대규모수준의 지하자원들이 발견되면서 로스차일드의 자원확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정말 열받지만 이정도면 하늘이 허락한 독재자들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스차일드는 금가격을 정하고 다이아몬드시장의 최대업체인 드비어스의 대주주이며 홍콩채권을 발행하는 홍콩최초의 외국계은행 hsbc은행을 설립한 사순일가와 사둔입니다 
    중국까지 진출해 사실상 장악하고있는거죠 
    이외에도 와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여담으로 모건이 사망한후 그가 남긴재산은 턱없이 적었는데 이유는 그는 자신의 모든 기업지분중19%밖에 소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로스차일드의 소유였다고하네요 
    또한 록펠러가의 사람인 넬슨록펠러 부통령은 록펠러가의 재산은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이 관리하기때문에 자신들은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록펠러가 워낙 세력이 커져서 로스차일드를 넘어섰다고 말하는데 글쎄요 
    과연 로스차일드 가문이 왕좌를 그리 순순히 넘겨 주었을까요?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로스차일드가 록펠러가문의 금융지분을 37%를 인수했다는겁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규모가 훨씬적은 로스차일드가 어떻게 록펠러의 전체금융지분의 37%나 인수할수 있었을까요? 
    록펠러가 세력을 완전히 굳히기위함이라면 반대로 로스차일드의 지분을 꿀꺽하는게 맞는얘기 아닐까요? 
    이런정황들을 가정했을때 제가 내린 결론은 아직도 로스차일드왕국의 세상이다라는것이였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성보경대표의 칼럼입니다 한번 참고해보시면 이해가 빠를듯하네요 http://m.mt.co.kr/renew/view.html?no=2006052614421022752 
    이것도 한번 참고 해보시면 재미있을듯 합니다 
    content://com.sec.android.app.sbrowser/readinglist/0325105350.mhtml 

    • 늙은도령 2015.03.28 03:38 신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록펠러 가문보다 부자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금융가문임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유럽이 유일하게 전쟁을 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럽의 재무장관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은 월가와 미 재무부, FRB를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한 세계 최고인 것은 분명합니다.
      저도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본 이후로 로스차일드 관련 책들을 사서 봤습니다.
      너무 과장된 <화폐전쟁>도 읽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는 비상장회사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하지만 경 단위는 분명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세계지배는 록펠러 가문의 세계지배처럼 음모론의 영역이었습니다.
      헌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만 살아난 상태이라 그 음모론이 상당 부분 현실에 근접하게 됐다고 봅니다.
      로스차일드가 금융세계를 지배하는 한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규모가 커진 지금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금융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스차일드 음모론은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현대세계는 다양한 것들이 교차하고 있어 18세기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재탄생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물론 로스차일드 가문의 도서관에 있는 기록들이 오픈된다면 음모론의 진위여부가 가려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표되는 금융지배세력이 악의 축이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핵심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가문의 장자와 극히 일부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파생상품의 크기를 알 수 없듯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은 측정이 불가능하지만,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합니다.

      금융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과장된 결론에 이르기도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에는 백 퍼센트 동의하지만 제 지식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8. 강동훈 2015.03.28 02:54

    안녕하세요 늙은도령님
    요즘 부쩍 경제쪽에 관심많은 한 청년입니다
    평소 작성하시는 글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밑의글은 제가 화폐전쟁을 읽고나서 금융세력들을 나름대로 정리해본것입니다 한번 봐주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강동훈 2015.03.28 03:03

      일반적인 경제지식을 들이대며 보이는것만 믿으려하는분들이 너무많아 놀랐습니다
      많은분들과 토론해보고자 여기저기 글을 올려봤지만 별 소득이 없더군요
      그러던차에 늙은도령님의 글을 읽게되어 많은공감이되서 이렇게 댓글까지 달게됬습니다
      전 후에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여러 미스터리한 문제들을 연구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싶습니다 저글은 제가 처음으로 작성한글인데 한수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음모론의 정점이자 꼭대기에있는 로스차일드가문을 나름대로 추적해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9. 강동훈 2015.03.28 09:57

    제가 생각하던 그대로 입니다!!정말 십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듯 해요ㅎㅎ저도 과장과 음모론의 중간정도 라고 생각합니다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주 방문해서 자문 구하고 싶습니다
    좋은하루 되시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3.28 17:54 신고

      네, 제가 답할 수 있는 것들은 답변을 드릴 게요.
      님도 좋은 공부 많이 하기를 바랄 게요.

  10. 강동훈 2015.04.02 12:21

    안녕하세요 늙은도령님
    간만에 인사올립니다
    날도 화창해지는데 하시는일마다 술술 기분좋게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분이 늙은도령님 밖에 생각나지않아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늙은도령님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제가 최근 인드라라는 블로거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요 영향력있는 블로거인지는 모르겠는데 예전 미네르바처럼 인터넷논객활동 하는분 같더군요
    제가 아무래도 경제지식이 얕다보니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 글인지 구별해내기가 힘든것같아요
    이분글보면 주요자본이 금에서 석유쪽으로 넘어가면서 권력이 로스차일드에서 록펠러에서 완전히 넘어갔다고 하던데 늙은도령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또한 모건가와 록펠러가가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이었다가 배신을하고 분리되어나왔다하던데 사실로 보시는지요?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요? 제 짧은생각으로는 한때 세상의 절반을 쥐고있던 그들이 순순히 세력을 내어주진 않았을것같은데요 현재 금융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있는 자들은 어떤자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이 너무 많고 두서없어서 죄송합니다ㅠ
    궁금증을 참을수가 없어서요ㅎㅎ

    • 늙은도령 2015.04.03 00:19 신고

      두 가문에 대한 팽팽한 대립은 전문가들마다 다릅니다.
      록펠러 가문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현재의 초국적기업의 상당수가 록펠러 가문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독점금지법 때문에 6개의 에너지기업을 나뉜 록펠러 가문이 다국적기업의 기원이었고, 그 6개의 기업이 여전히 세계를 주름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국적기업에 중점을 두는 최근에 들어서는 로스차일드 가문보다 록펠러 가문이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세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월가와 런던금융가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힘을 제래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착시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는 금융이 지배하는 체제입니다.
      규모 면에서는 록펠러 가문이 크지만 실속 면에서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당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금융, 특히 신용창출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외형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숨겨진 재산의 크기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세계의 부와 영향력을 연구한 책들이 록펠러 가문을 중시하는 것은 그들은 상장된 회사고, 산업의 근간인 에너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모로 치면 애플은 삼성전자와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회사지만 이익 면으로 보면 세계 최고인 것과 같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을 쥐고 있는 이상 세상 지배에 뛰어들 이유가 없지만, 초국적기업으로 이루어진 록펠러 가문은 세계 지배라는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눈으로 보고 체감할 수 있는 영향력은 록펠러 가문이 훨씬 막강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뒤에는 돈의 흐름이 있습니다.
      물론 록펠러 가문끼리 신용을 창출하는 내부거래적 요소들이 금융을 건너띄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실속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챙겨도 영향력 면에서는 록펠러가 앞서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11. 강동훈 2015.04.03 01:09

    다시한번 해안에 감탄하고 갑니다!! 책 출간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나중에 선생님이 시간한번 내주시면 찾아뵈서 많은 조언을 구하고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03 02:15 신고

      책을 출간하려다 건강 문제로 포기한 상태입니다.
      너무 전문적인 영역까지 다루면 많은 분이 읽지 않을 것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명성을 높이는 것보다 당장 어려운 분들을 대신해서 글로 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일 4시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산본으로 이사왔기 때문에 미리 전화를 주시면 됩니다.
      블로그 후원에 제 전화번호가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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