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사건에서 경험했듯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헌정주의를 말하며 헌법에 근거한 법치주의)라는 두 개의 축으로 돌아가는데 헌법상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대표하고, 법의 지배는 공화국을 대표합니다. 두 개의 축이 충돌나면 상위법인 헌법에 따르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법률적·정치적 해석이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박근혜의 누드화도 같은 경우로 보면 됩니다.  





J.S. 밀의 《자유론》에 따르면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자유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비폭력 시민불복종의 원조로 할 수 있는 소로는 이것도 인정할 수 없어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므로 내 방식대로 살겠다'며 '국가와 자신 중 누가 더 강한지 끝까지 가보자'고 했지만, 로빈슨 크루스처럼 혼자 살 경우가 아니라면 자유에도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선' 같은 제한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주먹이 미치는 범위 안에 타인의 코가 없는 한에서 자유롭다'는 유명한 발언도 이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적으로 주어질 수만은 없습니다.    



어떤 책이나 연구이던 '표현의 자유'를 다룰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홈스 대법관의 판결입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연방의회는 국교를 설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못한다. 또한 언론과 출판의 자유,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를 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구제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어떤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는 시민의 제1의 권리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헌데 세상일이 헌법에 적시할 수 없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조항이 문제가 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유명한 홈스 대법관이 내린 '센크 판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센크는 1차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하는 징집법 폐지청원 전단을 2명에게 돌렸다는 혐의로 방첩법(1917년 제정)에 따라 징집방해죄로 기소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주심을 맡은 홈스 대법관은 센크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그 이유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을 들었습니다. 정부에게 위협의 입증 책임이 있지만, 이 판결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기준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한정됐습니다.



이후 홈즈 대법관의 '센크 판결'이 너무 포괄적이라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 반론이 지속적으로 제시됐고, KKK단 지도자 브란덴버그가 기자를 초청해 TV로 방영된 자신들만의 의식에서 '연방정부, 의회, 대법원 등이 자신들을 탄압하면 보복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을 오하이오 주가 과격단체 운동이라고 기소한 것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당시의 의식에서 신체를 위협하는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에 브란덴버그에게 '표현의 자유'를 어기지 않았다고 판결하며 '즉각적인 불법행동을 선동하려는 의도'를 유무죄의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수백 년 동안의 논쟁과 판결 등이 말해주는 것은 '박근혜 누드화'가 민주주의와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말해줍니다. 남녀평등에 따른 여성혐오와도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여성혐오로 연결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반하며 위헌적 발상이라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 조르조네와 미네의 명화를 페러디한 '박근혜 누드화'는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내기에는 불편하고 지혜롭지 못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 것 같습니다. 



조르조네와 미네의 명화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양(조르조네)하고 권리를 부각(미네)시킨 것과는 달리 이 패러디 그림은 박근혜의 얼굴을 합성함으로써 반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작가가 박근혜의 나신(권력의 비뚤어진 욕망을 조롱한다는 의미에서)까지 그렸다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그렇지 않닸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고, 실제 그렇다고 말한 분들도 많습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봤을 때도 '박근혜 누드화'는 열린 소통의 방법으로도 적절하지 못합니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시민들의 반 이상이 미성년이고 여성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미필적 고의(예술적 패러디를 내세운)에 따른 포괄적 성희롱(단 다수의 여성이 불편해할 경우에만)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과 폭정을 비판하는데 금기라는 것이 없고, 민주주의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서도 벗어나지 않지만, 여야가 공존하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전시하기에는 부적절했습니다.





게다가 헌재에서 박근혜 탄핵심리가 진행 중이고, 특검의 수가가 박근혜와 청와대를 향하고 있으며, 여야가 조기대선에 접어든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박근혜 누드화'는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필자의 주장에 반대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홍성담 화백처럼 완벽한 창작물도 아니라는 점에서 '박근혜 누드화'는 더욱더 장려돼야 할 예술적 패러디의 수준을 최악의 범죄인 박근혜의 블랙리스트에 몇 걸음 다가간 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문제의 그림을 폭력적으로 처리한 전직 공군장교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박근혜 누드화'를 그린 화가가 정치사회적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위의 두 판결을 적용한다고 해도 정치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성적 패러디물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박근혜의 패악이 상상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누드화'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불편한 감정은 숨길 수 없네요. 



현명해졌으면 합니다. 박근혜 패러디도 좋지만 정권교체의 열망도 생각했으면 합니다. 살을 에는 듯한 혹한에서 촛불을 밝히는 시민혁명의 위대함은 어느 나라의 시민들도 해내지 못했던 수준 높은 비폭력적 시민불복종에 담겨있는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에 확고한 신념이자 참여며 실천입니다. 헌재의 심리를 방해는 박근혜 일당의 저열함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맞설 때 촛불혁명의 위대함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습니다.




P.S. 한가지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표창원이 국회 전시를 위해 명의를 빌려주면서 문제의 그림에 대해 검열자로서 행세했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박근혜 누드화'의 국회 전시가 부적절하고 불편했다고 하는 것도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며, 이번 글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어떤 의미의 검열로도 해석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국회 전시를 위해 명의를 빌려준 표창원 의원이 이번 전시회를 이유로 정치적 처벌을 받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새누리다가박근혜다

#박근혜는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우병우를구속하라

#삼성이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7.01.24 23:00 신고

    성숙하지 못한 방식입니다.
    약점을 잡지 못해 안달이 난 세력들의 입방앗감은 피해야합니다.

  2. 둘리토비 2017.01.24 23:39 신고

    미셸 오바마의 이 표현이 생각납니다.
    "저들은 저열하게 나오지만 우리는 품위있게 갑니다"

    이 짧은 문장을 읽고 생각하게 됩니다.

    • 늙은도령 2017.01.25 01:39 신고

      저도 미셀의 말을 인용할까 고민했었습니다.
      인권과 양성평등에 대해 조금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3. 재민 2017.01.25 08:50

    다 맞는 말씀 같습니다만...
    저도 이그림 보곤 더럽게 느껴져서 (전 그네가 TV에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거 안본 눈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예술로 보기에도 개인적인 생각으론 좀 그렇구요.

    하지만 이 그림은 표현의 자유란 영역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이런 표현도 있구나 정도로 넘어 갈수없는지.. 그냥 술자리에서 친구들하고 나쁜년, 나쁜놈이라고 한 거정도인데 그걸 패러디 했다고 이렇게까지 난리..
    더구나 저들이 공격한다고 서둘러 우리끼리 (?) 입단속 시키는것 같아 마음이 안좋네요.
    이런 그림을 이정도로 문제를 삼고 문재인씨까지 나서서 선을 긋고 할 정도였는지..

    의도는 알겠지만 때와 장소가 안좋았다..
    이렇게 이 조건 저 조건에 따라 대응이 변한다면 저들과 다를게 뭔가 싶은 생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7.01.25 17:51 신고

      표현의 자유에는 위의 기준을 제외하면 제한이 없습니다.
      다만 표현의 자유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또한 시기와 장소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하지만 그것을 비판할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

  4. mangrove 2017.01.25 09:32

    저급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연 이 시점에서 누가 저급한 것인지요?

    성적인 개방성을 강조 또는 강요하는 작금의 한국사회를 관망한다면 그렇게 과한 표현은 아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미국이었다면 문제가 되었을까요? 아직도 대통령이라는 의식이 암암리에 작용한 비판은 아닐까요?


    • 늙은도령 2017.01.25 17:53 신고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후천성 지진아라는 표현도 만들어 쓰는데요.
      표현의 자유는 제한없이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을 비판할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수준의 차이도 있는 것이고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때 설득력이 있는 것이고,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무제한적인 자유란 없습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7.01.25 09:40 신고

    탄핵 심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전시건은 좀 오버스럽습니다
    괜한 꼬투리 잡힐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7.01.25 17:55 신고

      여성들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를 불편해 한다면 적절한 표현의 자유는 아니지요.
      저는 세월호와 함께 그렸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불편한 것은 분명하고요.

  6. merryjanet 2017.01.25 11:30

    근데...박근혜 누드화란 말은 부당하지 않나요?
    패러디지요. 엄연히 "더러운 잠"이란 제목도 있으니까요.
    사실, 저 누드 패러디는 작년엔가 언제쯤 신문에서도 걍 웃고 넘기는 패러디물로 네티즌들의 조롱거리로
    가볍게 넘겼던 일이 기억나는데...
    아마도 길고긴 탄핵 정국으로 그리고 친박단체의 기세가 좀 확장되는 면모가 보이는 거 같으니
    패러디고 뭐고 세련되지 못한 극우파인지 친박파인지들이 몇몇 종편들이랑 합세해서 일을 크게 벌리는 거 같은데요.
    지지율 부동의 1위를 달리는 문재인 대표랑 민주당에서 더욱 조심 또 조심하자는 뜻에서 그런 거겠지만,
    윤리위에까지 회부한 거는 저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겠다고 블랙리스트 만들어 반대세력 통제한 것과 무엇이 크게 다른건지요?
    전시한 장소가 '국회'라는 점을 감안했어야 한다는 점도 이미 적법한 절차를 밟아 그 공간을 이용하기로 협의가 되었다면
    그 또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일 것이구요. 더구나 초등생한테도 무시당하는 국회의원들이 누구한테 국회를 성역인 듯
    오염시켰다며 작가의 작품을 훼손하고 짓밟고 하는지...오히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마구마구 훼손한 그 사람들을
    법적 대응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구영 작가의 말대로 공적인 역할을 해야 될 사람, 국가의 수반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어떤 적절한 대답도 없어서
    풍자의 대상으로 등장이 된 건데, 인격살인이니 테러니 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고 그야말로 마녀사냥이라
    생각합니다.
    표창원 의원의 징계는 절대로 반대합니다!!!

    • 늙은도령 2017.01.25 17:58 신고

      표창원을 징계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지요.
      어차피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을 것이고요.
      다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없이 존중한다고 해도 다수가 불편해하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까지 고려했어야 했습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난폭한 행동이 표창원에게는 좋게 작용할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니까요.

  7. 2017.01.25 13:1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7.01.25 18:07 신고

      표현의 자유는 제한없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표창원이 모든 그림을 국회에 전시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림을 사전에 봤다고 해도 전시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 면에서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한 것이니까요.

      다만 그림이 여성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장소와 시기가 적절했을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장소를 제공해준 표창원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더민주는 정당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당원과 지지자, 국민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데, 어차피 해프닝으로 지나갈 일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 가지고 불이익이 가해지면 더민주에 역풍이 불고요.
      문재인 전 대표가 이를 고려해 먼저 말한 것이고요.
      그래야 표창원에 대한 징계없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해프닝으로 지나갈 일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8. 나세상보고싶다 2017.01.27 22:03

    대부분의 견해에서는 동의가 되는데요, 한가지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
    저 작품을 과연 여성분들이 느끼기에 혐오감, 혹은 불편감을 느끼는'것까지' 고려했어야 맞는걸까요...?

    여기서부터는 어쩌면, 가치관과 중요성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될텐데요,

    저는 도령님이, 제목부터 "누드화"라고 적시한 것부터 너무 이해가 안갑니다.. 저 그림은 교과에서도 이미 실려있는,
    미술사학에서는 '상식'의 범주에 있는 것인데, 얼굴을 바꾸었다고 '누드화'로 변합니까?
    저 당시때에는(마네 작품에 한해서) 오히려 여성의 권리 편에서서 그려졌다는 평을 듣는 그림인걸요.

    그것을 알든 모르든,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고 선동하는 주요언론과 정치인들의 프레임에서 만들어진 결정적인 정치적
    단어가 바로 "누드화" 아닙니까. 심지어 언론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했죠
    (아니러니 한건, 실제로 모자이크의 필요성이 정말 있다면, 그건 얼굴을 했어야 했는데, 몸부분을 했다는 점이죠ㅎ교과서에 떡하니 있는그림을)

    제 견해로는, 풍자화로써 괜찮은 작품이고, 이번 국회전시회장에서 걸렸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기적인 문제' 혹은 '현 정치적 상황'을 고렸했을때는 민감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만,
    어차피 도령님도 아시다시피 해프닝으로 끝날일이 될거같아 다행이고요, 아마도 표의원도 그 점을 알기에
    사전에 작품들을 검열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전시결정을 내린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들르는데, 댓글을 달아보기는 처음이네요ㅎ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유신독재를 경험한 내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을 때 박정희가 떠올라 두려워하셨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일체의 비판도 못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중앙정보부와 권력기관의 감시가 되살아났다고 느끼시는 듯, 아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두려움을 표출하셨다. 

 

 

 

 

어머님에게는 박근혜를 보는 것 자체가 독재와 연결된다. 동아일보가 유신독재의 군화에 짓밟혔을 때 고모부가 해고된 것과 민주화운동으로 2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조카가 멕시코로 이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머님이 느끼는 두려움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공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권력의 그물망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샐틈없이 촘촘하다고 세뇌당했기 때문에 어머님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연으로 물러나면서, 병든 아들의 분노와 격정적인 표출을 걱정했다. 아들이 기자 생활을 하며 민주정부의 지도자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할 때 두려움이 없었던 어머님이었지만,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오르자 무의식에 자리했던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일제시대에도 일본 학생들과 싸웠던 어머님이셨고, 큰 오빠는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통역사로 들어갔다 한국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협상에 분노해 통역사를 때려치울 만큼 명문가문의 후손이었고, 남편은 한국전쟁의 공훈으로 무공훈장을 받았고 22년 간 군생활을 했음에도,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자 두려움을 표출했다. 

 

 

이 땅의 수많은 노인들은, 자유와 평등에 관한 한 박정희 시대를 일제시대에 비견될 만큼 암흑기로 인식한다. 일제시대에 만연했던 가혹한 수탈은 줄어들었고, 동족상잔의 전쟁과 완장 찬 좌우의 폭도들, 미군의 무차별폭격 등으로 수없이 많은 피난민과 주민이 살육되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았지만 어느 시대나 주어졌던 정도의 자유만 누릴 수 있었던 것이 18년6개월의 유신독재였다.

 

 

수많은 청춘들이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는 박근혜 치하의 3년이란 아주 조금씩, 경제 파탄(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를 것이다)이 분명해진 지금에는 노골적일 만큼 폭력적으로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것이어서 수많은 노인들이 침묵의 벽 속에 갇혀버렸다.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님이 박근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치가 다시 공포와 연결되어 버렸다.

 

 

아버님이 남긴 쥐꼬리만한 군인연금과 집의 크기를 줄여가면서 세 아들을 교육시키고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공을 이루도록 만들었던 어머님이 박근혜의 방문에 항의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을 지켜보았다. 수많은 교수들이 국정화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집필 거부를 선언하는 뉴스마저 회피하던 어머님이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이화여대생들이, 어머님에게는 가장 좋은 여자대학이고 명문가로 시집가는 것으로 각인돼 있는 이대생들이 서슬 퍼런 박근혜의 방문에 저항하는 것을 보며,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른 근원적인 공포를 이겨내셨다. 아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촛불소녀와 6.10항쟁의 학생들이 떠올랐지만, 어머님은 4.19혁명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유럽의 선진국가 국민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노인들은 이런 사실을 체험할 수 없었다. 2~3세대만 지나면 온갖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압축성장의 수혜자(동시에 피해자)들이어서 독재가 산업화와 일치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생들의 저항을 TV로 지켜본 어머님처럼, 박근혜가 주도하는 역사 전쟁은 독재의 망령에 시달렸던 노인 세대와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것을 체험한 세대 간에 하나의 연결고리가 형성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박근혜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전쟁은 이념 전쟁을 넘어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박근혜는 이전의 대통령에게서는 찾기 힘든 무능과 무책임, 아집과 독선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키고 있다. 필자의 어머님처럼 가부장적 사고가 강한 분들일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박근혜는 정치와 경제, 역사와 교육을 퇴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수없는 투쟁과 저항, 토론과 합의를 거쳐 이룩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남녀평등의 위업마저 퇴행시키고 있다. 

 

 

이대생들이 보여준 분노의 표출과 정의의 실천이 또래의 청춘들과 나와 같은 장년층에 던져준 희망의 메시지처럼,  필자의 어머님 세대에게도 묵직한 시대적 정신을 전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의 저항이 하나의 불씨를 넘어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는 횃불로 타오르리라 믿는다. 이대생 덕분에 87세의 노모가 다시 정치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약하기 그지없는 늙은도령의 건강도 다시 돌아왔다. 거리로 나갈 만큼은 안 되지만 이대생들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큼은 된다. 임금, 이자, 지대(생산의 3요소인 노동, 자본, 토지와 한쌍이다)에 관한 고전파경제학의 오류를 미국적 방식으로 풀어낸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해묵은 잘못에 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 무렵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에는 대단치 않아 보이더라도,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화여자 대학생들의 저항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대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굴하지 않는 청춘들과 함께.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11.01 19:04 신고

    저도 대견하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마취를 시키면 얼마든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은 착각임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1.01 19:51 신고

      그럼요, 대한민국을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왔는데요.
      역사의 주인은 정부도 지도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이 주인이고, 역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급해진 박근혜가 이성을 상실했습니다.
      반격의 시점이 더 빨리 올 것 같습니다.

  2. 2015.11.02 02:4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11.02 05:42 신고

      BBC에서도 프라임 타임에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한국이 국정화를 강행하면 10년 안에 망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세계적인 창피함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3. 耽讀 2015.11.02 08:03 신고

    박그네는 확신범입니다. 국정화도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위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국정화는 종교진리에 가깝습니다. 타협과 협상 토론과 논쟁 자체가 없는 이유입니다. 역사교과서를 종교진리로 생각하니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끝은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11.02 08:37 신고

    무엇보다 건강을 다시 회복하셨다니 다행이십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라는 무리한 자충수가 결국
    남은 정권을 힘들게 할것입니다

  5. 바람 언덕 2015.11.02 14:08 신고

    저 젊은이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6. 글을 읽고 2015.11.02 19:58

    글이 포스팅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깊은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7. 불루이글 2015.11.03 04:24 신고

    해묵은 잘못에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때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 시작할땐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다.
    정말 희망적인 문구를 접하게 됩니다.
    도무지 꿈틀 거릴것 같지 않든 지성들이 눈을 뜨고 있다는 희망이 느껴 집니다.
    민주주의의 달콤함에만 취해 허약한 지성들이 조금씩 경석을 차리는 것 같네요
    정말 다행히 라고 여겨 집니다.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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