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의 경쟁적인 세계에서 다수의 패자들이 떨어진 이삭을 줍는 동안, 성공한 자들은 식탁 위에 차려진 이익들을 쓸어 담는다. 바로 유연성이 그러한 시장을 형성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가 없는 곳에서는 이익이 권력을 지닌 최고위층에게로 돌아가고, 규제가 없는 체제에서는 모든 것을 장악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익을 차지하게 된다. 유연성은 이렇게 승자만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 불평등 현상을 심화시킨다.






위의 인용문은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 나오는 내용으로, 박근혜가 노동5법의 국회 통과를 닥달하는 이유가 무엇을 위함인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박근혜의 노동시장 개혁(노동유연화)이 모든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한 일이란 사측(오너와 최고경영진, 대주주와 정치브로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착취를 유연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빨긴 색으로 강조를 준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란 근무연속에 따라 자동적으로 호봉과 복지후생비가 올라가는 정규직 임금체계(연공서열제)를 말합니다. 비정규‧임시직 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정규직 임금체계는 자본과 사측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고정비용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최소 3년은 이어질 경제위기를 핑계로 인건비 절감에 나선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사측은 핵심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를 아웃소싱하고, 자동화를 통해 비정규‧임시직을 늘렸으며, 노동유연화를 내세워 상시적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임금체계는 워낙 저항이 심해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가 크지 않은 선진복지국가의 대부분을 무너뜨렸지만,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완화 같은 법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합니다. 



작년 중반에 연말정산대란의 결과에서 보듯이 유리지갑들이 한 마음으로 뭉치면 어떤 정부도 권력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비정규‧임시직은 하루하루의 삶에 치여 정치적 연대를 구축할 수 없도록 길들이는데 성공했지만,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을 버틸 수 있는 정규직들은 그들의 마음대로 하기에는 기존의 장벽이 만만치 않습니다. 강남좌파라는 형용모순이 성립할 수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정규직들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노동시장 개혁, 즉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자본의 마지막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정규직의 임금체계를 파괴해서 하향평준화시킬 수 있다면, 정규직과의 차별을 근거로 한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개선 요구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본의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인데, 정규직의 상당수가 체제의 간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일시에 그들을 지옥으로 내몰기 위해서는 입법 과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정부임을 천명였던 이명박 정부는 정규직 노조를 파괴하는데 집중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날개가 꺾인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용노조의 역할에 충실했던 한국노총을 끌어들인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휴지조각에 불과한 사회적 합의의 흉내를 냈으니, 이제는 그 합의를 법제화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실상 레임덕에 빠진 박근혜가 사측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상시적 구조조정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정규직도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합니다. 이들은 경제위기가 상시화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상시적인 해고와 비정규직으로의 추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정부와 맞서려면 피고용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식들이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고학력자와 전통의 중산층들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는 것도 이런 생존의 필요성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돈이 곧 힘인 신자유주의 천국에서 모든 근로자들이 극소수에 불과한 사측과 정부의 밀약에 맞서려면 노동의 힘을 키워야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치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급노조의 힘은 아득한 시절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멀쩡한 노조는 단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의 확대가 공멸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은 각국의 정부들이 비정규‧임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집중하는데 비해,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박근헤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노동5법을 막아내지 못하면 모든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와 그녀의 환관들이 뭐라고 말하던 노동5법의 진실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입니다. 



진박마케팅에 올인한 최경환이 경제부총리에 있을 때 정규직 과보호론을 제기한 것을 기점으로 해서 노동5법의 국회 통과에 목을 맨 박근혜 정부의 근로자 죽이기는 총선 결과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자동적으로 폐기될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자본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두고 정규직에서 추락한 비정규직들과 기존의 비정규‧임시직,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보내야 청춘들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일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 중 하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끌어내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부정하지만 어떤 체제 하에서건 정치만이 국민을 밥먹여 줄 수 있습니다. 칼 폴라니가 말했듯이 오직 인간만이 지배적인 체제를 결정할 수 있으며, 사회적 합의의 법적·제도적 버전인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6.02.04 14:47

    이번 총선에서 심판하지 못하면 ...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끔찍합니다.

  2. 술맛을 알아? 2016.02.04 21:24

    야권의 세작들이 차려준 밥상 덕분에 히죽거리며 지들 공천권 싸움에만 몰두하는 기름진 얼굴들에 한바탕 썩소를 날려줄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오매불망 소원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2.05 08:19 신고

    제가 직장을 다닐때만 해도 비정규직이란 말이 없었습니다
    갈수록 근로자들을 옥죄는것이 독재치하 저리가라할 정도입니다
    정말 이번 선거 심판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6.02.05 17:42 신고

      네, 79, 80년에 대처와 레이건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 비정규직의 확대가 본격화됐습니다.
      이번 총선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4. 관악 2016.02.05 11:02

    개발시대에 혜택(?)을 받은 노인들의 인식,철학과 행동이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자기 자년 손자가 겪어야 하는 불행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어요

    • 늙은도령 2016.02.05 17:43 신고

      그러게 말입니다.
      이분들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뀌고 미래가 좋아지는데....

 

 

 

독일은 비정규직을 기간제 근로자(fixed-term contract)로 표현합니다. 사측과 직원은 개별계약을 하며, 기간은 최대 2년(창업의 경우 4년까지 가능하나 지원자가 거의 없음)으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기간은 양자의 합의 하에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연봉도 같은 직종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양자가 협상해서 정하며, 4대보험도 정규직(permanent contract)과 동일하게 제공됩니다(시간제와 한계 근로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 포함. 파견근로가 늘어나고 있지만 소수에 불과함).

 

 

 

 

2년의 계약 기간이 지난 이후에 기간제 직원을 재고용할 경우에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합니다. 동일 직원을 편법으로 고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계약 종료 전에 해고한 후 신규로 재계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간제 직원이라도 성과가 좋으면 계약 기간 중에도 정규직 계약을 할 수 있으며, 동일임금을 적용받기 때문에 연봉을 조정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간제 직원과 정규직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파견직도 동일하다)되며, 해당 직무의 지원자가 없으면 기간제 직원의 연봉이 정규직보다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박사 하위 소지자나 전문직일 경우 기간제 계약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규직과 기간제 직원이 동일회사에 일하는 한 차별을 하지 못합니다. 정규직에게만 주어지는 혜택들이 있어 기간제 직원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영원한 계약이라는 뜻의 정규직이 되면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고, 각종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정규직이 되기 위한 기간제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이 이루어져 생산성이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히든챔피언, 즉 알려지지 않은 중견·중소기업이 많은 독일의 최대 강점, 헤르먼 지몬의 《히든 챔피언, 글로벌 원정대》에서 자세히 나옴). 이 때문에 정규직과 기간제 계약 사이에서 크게 갈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조가 없어도 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에 고용안정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규직의 경우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사측이 평가할 기회를 줍니다. 직원이 약속했던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거나 회사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노동유연성이란 이것을 말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측에게 무한대의 권한을 주려는 해고요건 완화, 취업규직 변경 완화, 파견직종 확대, 임금피크제 등처럼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성(독재일 때 가장 효율적인 줄푸세의 핵심)과는 전혀 다릅니다. 

 

 

 

 

게다가 독일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와 함께 복지와 연금, 보험체제,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습니다. 실적 악화로 회사가 파산해도 직원들의 삶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공됩니다. 저부담 저복지(상류층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상류층 입장에서는 세금과 연금 등의 상한성이 무지하게 낮기 때문이다) 국가인 한국(복지학에서는 국가의 복지 수준을 3단계로 나누는데 한국은 최하위 등급인 C에 포함)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독일은 이 모두를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40~50년대(국민소득 1만~2만달러 사이, 독일의 경우 질서자유주의 또는 사회적시장경제라 한다. 20세기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인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의 원형이 독일에서 나왔으며, 미제스와 하이에크, 프리드먼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프라이부르크 학파가 주도했다고 밝혔다)에 완성했다. 3만달러도 아닌 1~2만달러다!!   

 

 

독일은 영토가 한국보다 크고 인구는 9천5백만 명 정도라, 선진국 함정에 빠져있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차선의 모델이다. 독일의 강점과 한국의 강점은 상당 부분 비슷해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따라할 수 있다. 박근혜와 그 일당, 수구세력의 거짓말에 속지 마시라. 우리의 경우, 중간 단계로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로 대표되는 '노르딕 모델'보다 비스마르크 모델 위에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를 더한 독일 모델이 현실적이다. 

 

 

물론 국민이 정치사회적 합의에 이를수만 있다면, 고부담 고복지가 최상의 모델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까지 포기할 이유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제 동생은 초국적기업의 유럽법인장으로 5년 동안, 독일과 유럽의 직원들을 뽑았습니다. 경제학자나 전문가라 하는 자들의 얘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생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따끈따끈합니다. 제가 공부한 것과 합쳐서 서로 일치하는 내용만 글에 담았습니다.      

 

    

 

 

                                                      
  1. 참교육 2015.12.20 11:08 신고

    정부가 자본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만 선다면 자본도 노동도 함께 공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본의 입장에서면서 공정한 권력 행사라며 노동자들을 기만하니까 그들이 반발하고 있는게지요. 답답한 나라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20 14:57 신고

      복지선진국,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이 그러합니다.
      문제는 그런 나라들도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받아 많이 약해졌습니다.

  2. 포스팅 구경하고 갑니다 ㅎㅎ

  3. 공수래공수거 2015.12.21 09:07 신고

    우선 지도자들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먼저 깨쳐야 되는데 그것이
    안됩니다

  4. 거북걸음 2015.12.21 10:24 신고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5. 사랑맘 2015.12.21 15:40

    좋은글 잘봤습니다.. 혹시 페이스북도 하시는지요?? 여기있는글을 sns도 올리면 파급효과가 더 있을것 같기도한데.. 벌써 하고계실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번 글에서는 첫 번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새정연이 몰락하는 과정을 복기해 보면 계층구조와 이념구조의 변화가 중첩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로는 일관되게 나타났다. 그 시발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1997년의 외환위기다.

 


수출 일변도의 압축성장의 폐해가 외환위기로 폭발하자,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돌이킬 수 없는 해부학적 외과수술이 단행됐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구조조정은 수없이 많은 해직자를 양산했고, 노동유연화의 본격화에 따라 노동의 몰락이 촉진됐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강화됐지만, 질적인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계층구조는 10 대 90로 악화되고 있고, 이념구조도 보수3 : 중도3 : 진보4에서 보수4 : 중도4 : 진보2로 재편되고 있다. 







현 제1야당의 갈지자 행보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여기에 이른다. 참여정부 후반부터 오늘의 새정연에 이르기까지 제1야당이 외연을 넓히겠다고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보면, 계층구조의 90%를 이루고 있는 중하위층 중에서 중도(이중이념)와 합리적 보수 성향을 띠는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끌어들여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7.30 재보권선거의 참패로 이어진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과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추진이 가장 대표적이다.



시민이 개인을 거쳐 소비자로 변한 상황에서 공통의 정체성이 없는 계층들은 사실상 세대로 대체된 상태다. 계급적 의식을 대표했던 노조도 노동유연성이 대세가 됨에 따라 전통의 영향력을 상실하며, 한국노총의 경우 아예 보수화됐다. 대형사업장 노조들은 귀족화됐고, 정작 노조가 필요한 사업장은 비정규직으로대체됐다. 



여기에 성별의 차이(차별)와 지역적 환경, 학력과 이주민, 직종과 노동의 분화까지 더해지면서 중하위층 90%는 수없이 분열되고 파편화됐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삶정치적 영역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이는 반정치적 정서의 확대와 투표율 하락에 따른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졌다. 정치를 얘기하는 것조차 시대에 뒤쳐진 자들의 특징이 됐다.  



소비자로 떨어진 시민은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어떠한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그에 따라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정치경제적 연대감을 형성할 수 없어 공통의 의식을 형성하지 못한다. 네트워크의 과잉은 네트워크의 무력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으로 세력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때그때의 사안에 따라 단기적이고 즉물적인 이합집산만 보여준다. 



네그리와 하트가 꿈꾸었던 이합집산이 자유로운 수평적인 떼처럼 '다중'으로서의 세계시민적 네트워크는 이루어지지도 않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 시민적 자유와 계급적 의식이나 공토의 이해를 구축하지 못하는 극도로 파편화된 소비자의 시대에는 유럽적 의미의 신좌파란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어색한 동거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형태의 네트워크적 유목민은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에 의해 여론 조작의 대상으로 최적화된다. 민주주의란 사회경제적 평등을 기반으로 정치적 자유와 각종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데, 정착하지 못하는 디지털 유목민은 신빈곤층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권리들을 제대로 행사하기 힘들다.



저임금 비정규직과 임시직의 젖줄인 잉여들이 포화상태를 넘어 삼포세대처럼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의 전 단계까지 추락을 거듭한다. 이들에게는 빈곤의 대가로 떠들어댈 수 있는 자유,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아예 진입을 거부하는 자유, 사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 기타등등의 자유들이 주어진다. 



1인가구와 빈곤가구의 증가는 평균수명의 확대와 중첩되며, 필연적으로 신빈곤층이 늘어난다. 청년 실업자의 증가와 교용 형태의 악화는 노인 빈곤과 낮은 수준의 복지, 저임금 여성노동자와 이주민 및 외국인노동자의 확대와 삼중사중으로 중첩되며, 세대간 갈등과 성적·인종적 차별과 저임금 노동의 고착화로 이어진다. 



중하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스트레스와 만성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 강화되며 계층간 이동이 최소화된다.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는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확대와 맞물려 최소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차별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강화된다. 모든 분야에서 구조적 부정의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에 비해 상위 10%는 부와 기회의 대물림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1%의 특권층과 9%의 상류층을 이루며 두터운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중하위층이 이익 집단과 특정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1이라면 상위층은 10에 이르고, 최상위 1%는 20~25에 이른다. 



그 결과 상위 10%와 중하위 90%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갈수록 벌어진다. 정치자금 제공과 각종 기부를 통해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고액의 광고비와 대규모 협찬 등으로 대중매체를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특권층으로 접어든다. 마침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1인1표가 1원1표로 대체되며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만큼 금권정치를 강화한다.



국가와 사회의 보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신빈곤층은 복지의 사각지대로 떨어지거나, 이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에 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이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의 결과물인 빅데이터가 구축됨에 따라 프라이버시가 축소된다. 감시받는 사람들이 기득권에 맞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중산층도 언제든지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류층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노후대책도 챙겨야 한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가족이 해체되고, 계층구조가 10 대 90으로 재편됐음에도 이념구조가 4 : 3 : 3으로 고착화되는 이유다.





여기서 진보의 가치가 정체성인 새정연의 중도와 보수화의 논리가 힘을 얻는다. 안철수 신당과의 통합과 이상돈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화의 시발점이 됐던 신민주당 플랜이나, 신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당의 강령을 정할 때 4.19와 5.18 정신과 10.4선언 계승 등이 빠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도 마찬가지다.



헌데 새정연의 주류는 진보고, 고정 지지층의 대부분도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이들에게는 새정연의 보수화가 달갑지 않았고, 당의 정체성마저 약화되고 혼란은 가중됐다. 계파의 난립이 강화된 것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정치적 리더십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이는 대여 투쟁이나 협상에서 연전연패로 이어졌다.



또한 고착화된 이념구조인 4 : 3 : 3도 진보세력을 대변하던 새정연의 쇄락으로 인해 4 : 4 : 2로 변화될 조짐마저 강화되고 있다. 새정연이 진보적 가치를 강화하고, 시대에 맞게 발전된 정치적 리더십을 제시할 수 있으면 계층구조의 변화 때문에 진보의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음에도 새정연은 정반대로 간 것이다.

외연 확장은 고사하고 정치적 영향력만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참사 초기에 국민이 보여준 분노의 분출은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대한 사회경제적 평등과 민주주의의 강화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참사 초기에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조중동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여야 모두에게 떠넘김으로써 정치적 프레임 설정해 전력을 다한 것이 이 때문이며, 그 결과는 정치적 접근의 원천봉쇄였다. 



새정연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요인이 다음 글에서 다룰 두 번째 요인에 휘둘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행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세월호 유족과 새정연은 이렇게 갈라졌고, 박영선 대표의 연이은 실족이 이어지며, 제1야당의 몰락이 역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좌측에 있는 진보정당들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새정연의 중도보수화는 진보 진영 전체를 무너뜨린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능함과 그에 대한 정치적 무책임이 겹쳐져 일어난 퇴행이었다.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놓고 새누리당과 일전을 불사한다면 고정지지층마저 잃게 되는 필패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고, 전략적으로도 이길 수 없었다. 



                                     


  1. 중용투자자 2014.09.19 08:22

    넘어야 할 산들은 많으나 이번기회에 바닥을 잘 다져서 위기극복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

    • 늙은도령 2014.09.19 14:59 신고

      네, 이번 연재를 시작한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것을 뒤로 미루고 이것에 집중해 글을 쓴 후 추가로 조사를 한 다음에 출판할 생각입니다.
      모든 순서를 바꿀 생각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09.19 13:04 신고

    언론이 제일 무섭습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14:58 신고

      종편부터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런 다음에 MBC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그러면 자연히 무너집니다.
      방송부터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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