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부터는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대표되는 제도권 언론의 영향력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SNS와 아고라와 오늘의유머 같은 각종 커뮤너티와 그룹들의 네트워크가 넘어설 수 있을지 시험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4년 6개월 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4년정도는 아고라에도 올렸습니다. 6개월 전부터는 오늘의유머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두 달 전부터는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제가 아고라에 올린 글 중 19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것이 최고였습니다. 글이 퍼날라지는 것을 감안하면 100만 명 정도가 읽었을 것이라 추산됩니다. 하위 99%가 상위 1%의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필자의 모든 글이 이 정도에 이를 수 있고, 저 말고도 10명 정도의 논객들이 비슷한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다면 쓰레기들의 현실왜곡과 이익 독점에 맞설 수 있는 민주주의의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정도에 이르면 미네르바처럼, 저와 논객들도 국정원과 정치검찰의 수중으로 넘어가겠죠. 그들은 초법적 코걸이와 귀걸이를 가지고 있어서, 어디에 걸던 저와 논객들을 법정으로 끌고가 재기불능의 만신창이로 만들겠지요. 아고라가 정권의 집중포화에 굴복해 조회수 1만도 넘기기 힘든 상황을 감안하면 오유에서 몇 만의 조회수를 올린다 해도 그저그런 찻잔 속의 태풍도 되지 못합니다.  



제가 페이스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은 제 고정관념을 깨뜨린 하나의 글 때문입니다. 제 건강 상의 문제와 티스토리의 폐쇄성 때문에 일일방문객이 천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떨어진 상황에서 한 편의 글이 6,000명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 것입니다. 블로그의 유입경로를 살펴보니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방문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글이 페이스북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란 고정관념 때문에 그곳에서의 활동은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연동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제 글에는 광고가 실려있어서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반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2천만원이 넘은 도서구입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광고를 실었는데, 이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분들이란 4년 동안 저를 지켜본 애독자와 6~10명 사이를 오갔던 후원자를 빼면 페이스북에선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상위 1%의 광고와 협찬에 따라 재갈거리는 쓰레기들의 무비판적 보도와 노골적인 왜곡에 맞서는 글을 쓰면서 광고비용으로 도서를 구입하는 제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실정 때문에 조기 레임덕에 빠진 박근혜를 지켜주기 위해 엽기적이고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사건·사고만 다루는 쓰레기들의 보도에 맞서, 하위 99%를 지옥으로 내모는 것들의 실체를 밝히는 필자의 글들이 보다 많은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다면, 저보다 뛰어난 논객들도 주 활동무대를 페이스북으로 옮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상위 1%의 천국을 무너뜨리려면 SNS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제가 두 달 동안 페이스북에 전념한 결과, 페친의 네트워크만으로 쓰레기 언론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그룹에 가입했습니다. 그럴수록 제 글의 중복 노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발(이유도 모른 채 일부 기능의 정지를 당했다)도 심해지리라 생각하지만, 한 분에게라도 더 노출될 수 있다면 상위 1%의 압도적인 힘에 맞설 수 있는 꿈의 네트워크가 구축될 수 있으리라 믿게 됐습니다.      



사이버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커뮤너티와 그룹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숫자는 하위 99%의 열망과 희망, 절망과 체념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푸코가 말했듯이,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상위 1%와 다양한 저항점을 형성하면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저항의 지평선을 넓히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양한 기호와 지향에 따라 파편화되거나 정예화된 이들을 보다 촘촘하게 연결할 수 있다면 혁명적 변화도 가능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도권 언론에서는 종적을 감춘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저항, 위안부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청춘들의 희생적인 소녀상 지키기, 이재명과 박원순 시장의 활약상과 정치철학 및 복지실험, 노동개악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백남기 농민의 근황, 말도 안 되는 법 해석에 의해 법외노조로 전락한 전교조의 투쟁, 한국 정치사의 혁명을 이뤄낸 10만 명을 넘은 온라인입당 러시, 표창원에서 시작된 바람몰이가 김병기를 거쳐 조응천에 이르러 화룡점정을 찍은 대박행진 중인 문재인의 인재영입, 정의당과 노동당과 녹색당 등의 진보정당의 활약상 등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어떤 형태로든 연대의 필요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하위 99%의 진실과 정의는 이곳에 있었고, 넘칠 만큼 많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그것들이 각개전투나 게릴라전에 머물러 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의도적으로 뿌려지는 음란성 글들과 영상들이 커뮤너티와 그룹를 채우는 것들이 싫고, 특화된 내용만 다루려는 의도는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페이스북을 떠도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들이 각자도생의 파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돌파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회원이 늘어나면 커뮤너티 브레이커가 등장하기 마련이듯이, 촘촘한 연결이 늘어나 네트워크의 촘촘함이 강화되면 그것에 따른 반작용도 커지는 것은 불변의 진실입니다. 수많은 커뮤너티가 이런 과정을 겪으며 분열되고 폐쇄적으로 변한 것은 이해의 조정보다 갈등의 조성이 더 빠르고 쉽기 때문입니다. 상위 1%라는 체제의 지베엘리트들이 원했던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일'들이 일본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방법이 없는 필자로서는 단 하나의 선택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2달 동안 페이스북에 집중하면서 조회수를 늘릴 수 있었던 노하우를 모든 논객들에게 오픈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의 콘텐츠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늘어나 상위 1%에 맞서는 하위 99%의 힘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만 고집하는 논객들의 보다 열린자세가 필요하다고 믿게 됐고요.    



머리를 스치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있기는 하지만 '종잇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했습니다. 다양한 논객들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글을 쏟아낼 수 있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수십 수백 배에 이를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필자가 글을 쓰는 목적이 평생 동안 읽은 책들(약 3,000권)과 상당히 특별했던 현실경험들을 통해 배우고 깨우친 것들을 나눠드리는 것이기에, 이에 동참하는 뛰어난 논객들이 늘어난다면 반칙과 특권이 사라진 상식과 원칙이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도래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닐 포스트만이 말했듯이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의 발전은 상위 1%에 힘과 돈을 몰아주는 적으로 많이 쓰였지만, 우리의 선한 의지와 정의 실현의 열망에 따라 친구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문화지체를 피할 수 없지만, 최종적 결정은 우리가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만이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NJ원시 2016.02.04 19:26 신고

    도령님이 보시기에, 페이스북과 블로그의 각각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 늙은도령 2016.02.04 19:43 신고

      블로그는 소수라도 고정독자를 확복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긴 글도 가능하고, 논리적 접근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티스토리는 이용자수에서 페이스북에 너무나 뒤떨어집니다.
      다음에서 특별히 다뤄주지 않으면 일일방문객이 천 명을 넘기는 것도 하늘에서 별따기입니다.
      꾸준한 노력이 있어도 수백 명에 머물기 일쑤입니다.

      페이스북은 그것에 비해서 나와 공통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그룹에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파급력은 매우 높습니다.
      저의 일일방문객이 하루에 42000명에 이른 적도 있습니다.

      무조건 페이스북 활동을 늘리십시오.
      글의 질도 중요하지만 목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전하는 것이라면 페이스북은 하나의 오아시스입니다.
      님과 생각이 비슷한 그룹들을 검색해 가입하고 글을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2. NJ원시 2016.02.04 19:51 신고

    도령님...아 답변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페이스북도 일일방문객 숫자를 알 수가 있나보죠? 4만 2천명이면 어마어마한데요?

    여튼 정보 공유 감사합니다. 도령님의 블로그를 제 링크에 첨가해두겠습니다.

    보시기에, 블로거들 중에서, 추천하시고 싶은 사이트가 있으면, 몇 개 추천해주세요. 저도 링크해 두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2.04 20:54 신고

      추천할 블로그는 제 링크의 상위에 위치한 분들입니다.
      총선까지는 미친듯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블로그거들을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총선이 끝나면 블로그 방문자를 늘릴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3. NJ원시 2016.02.04 21:01 신고

    옙 감사 합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6.02.05 08:28 신고

    그래서 방문자가 폭발적으로 늘으셨군요
    도령님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합니다

  5. 조남주 2016.02.07 17:06

    공감을 넘어 감동입니다~^^

  6. 식스파이 2016.02.18 00:24 신고

    좋은 글 늘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7. 시골잔차 2016.07.11 20:48

    훌륭한 글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8. BC 2016.11.01 11:37

    페이스북 링크는 혹시 없을까요?
    검색해봐도 나오지가 않아서..

  9. 참교육 2016.11.08 08:24 신고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같은 분의 뜻이 전해서 세상이 자유와 평등을 실현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0. 2018.01.18 22:49

    선생님 훈입니다 새해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몇번이나 통화시도 해봤으나 해외여서 잘 터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늦게나마 이렇게 인사올립니다 몸 건강히 2018년도 소망하시는일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요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통찰력(직관력)과 그 통찰을 접목시키는 능력이 성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아직 멀었지만 특별한 제주가 없는 제가 갈고 닦을수있는 유일한 장점이 저 두가지라고 생각이 되는데 기술적인 한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ㅎㅎ
    선생님과 구체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직 수행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저번에 말씀하신 선생님 본인의 장점이라고 말씀하신 직관력과 그것을 항목에 접목시키는 유연한 사고, 이 두가지에 매우 큰 공감을 했었는데요...
    올해안으로 선생님과 조그마한 사업이라도 본격적으로 논의 할수있게 노력하겠습니다

  11. 타리 2018.02.03 23:11 신고

    페이스북을 통해 방문자를 늘리는 방법이 요지인데,
    저는 그보다 글에 써주신 늙은도령님의 취지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영향력 있는 논객이 10명 20명 되고 수만 수십만에게 진실을 알려간다면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걸요.
    저는 취미만 올리고 저품질 먹었는지 네이버유입도 없어서 일방문 천명뿐인 블로그인데
    그래도 가끔 적폐놈들에게 화가 치밀면 정성들여 글을 쓰곤 합니다.
    (문재인 세월호 고의지연, 중국방문 홀대 등등 사건때)
    그때 똑같은 생각을 하는거 같아요.
    내가 쓴 글을 10명 100명이라도 본다면, 나같은 사람이 점점 늘어나서 모두가 행동을 한다면
    그러면 썩은 쓰레기들을 처단하는 날이 좀 더 빨라질거라고요.



필자는 세상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능력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관련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소아마비에다 간암은 잡았지만 간경화는 여전하고, 수면장애와 만성적인 디스크 등 수십 가지 병들로 아슬아슬하고 간당간당하게 살지만, 빌어먹을 인복은 있어서 감히 도전하지 못할 분야도 어떻게든 돌파해낼 수 있는 행운은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기본적인 베이스에서 필자는 미국과 유럽에서 발간된 책들을 7: 3 정도의 비율로 구입해 미련할 정도로 정독한다. 미국에서 발간된 책들은,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 필리핀 등에 이어 지옥으로 들어선 이유와 과정을 파악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다. 유럽(일본과 중국 포함)에서 발간된 책들은 대한민국이 헬조선에서 탈출하기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찾는데 현실적 도움을 준다.



필자가 관심을 두는 분야 중에는 교육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필자보다 뛰어난 블로거와 논객들이 너무 많아서 글로 옮기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최소한 글로 옮기지 않으면 중간은 갈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도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번 글만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미국 유학파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살피는 중에 글로 옮겨야 할 내용을 찾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족이나 설명도 달지 않은 채 찰스 모리스의 《미국은 왜 신용불량 국가가 됐을까?》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독자들의 이해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일부분은 생략했다. 필자가 인용한 부분들은 교육보다는 금융에 가까운 내용이기 때문에, 필자가 사용하는 흙수저 하나는 교육이란 밥상에 올려도 그리 욕먹을 짓은 아닐 것 같다. 한국이 왜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모든 산업화된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은 하류층에게 가장 가혹한 나라인 것 같다.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겉으로는 저소득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도들도 결국 상류층의 돈을 벌어주는데 기여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부모가 가난한 것이 재능 있는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데에 별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미국이라는 나라만이 샐리매(sallie Mae. 미국 최대의 학자금대출업체)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설리매, 즉 지금의 SLM주식회사는 원래 페니매와 유사한 조직으로서 학자금대출의 유통시장을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SLM은 직접대출시장에 진출했고 일정 기간의 전환기를 거쳐 2004년에 민영화되었는데, 바로 그해에 회사는 '37%'의 기록적인 세후 이익을 실현했다.....학자금대출기관은 고리대금업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어떤 학생이 융자금의 원리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그에 대한 수수료와 가산이자와 추심 수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학자금대출금융기관의 대출서비스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고, 상환 만기도 도래할 때 채무자에게 고지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부도 사례들이 수없이 많으며 널리 알려져 있다. 자금대출과 신용카드대출과 대출 회수업무는 독립된 한 부서가 담당하고 있는데...2005년에만 해도 채무관리 수수료만으로 8억 달러를 수취했다. SLM은 공식적인 캠퍼스 마케팅으로도 유명하고, 대학의 융자담당관과도 긴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국에서 학자금대출기관들이 그 엄청난 수입을 나누어 갖는 현장의 저편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중한 채무부담을 안은 채 졸업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정부도 SLM과 거의 동일한 대상에 동일한 성격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방정부 직접대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그러나 과거에 그랬듯이, 직접지원프로그램은 전체 연방정부 예산에서 23%로 그 규모가 제한되어 있고, 나머지 77%의 예산은 민간대출기관을 대상으로 한다. 모든 학자금대출이 직접대출프로그램을 통해 운영될 수만 있다면 수백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에게 학자금 전액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 같다. 아무리 원래의 학생지원 입법의 의도가 좋다 해도 실제로 운영하다 보면 학생을 돕는 일은 부차적인 목표가 되고, 금융 부분에 돈을 쓸어담거나 돈이 있는 엘리트를 우선시할 것에 틀림없다.           






우리의 학자금대출과 관련된 시스템은 미국의 것을 수입해서 조금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미국과 더불어 대학등록금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은 부에 따른 차별을 공고히하기 위해, 미국에서 차별을 공고히하는데 성공한 시스템이면 무조건 들여온다. 그 중심에 지배엘리트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유학파가 자리하고 있음은 불변의 사실이고, 탐욕의 금융업체들이 자리하고 있음도 불변의 사실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중하층의 지갑을 털어가는 시장경제에 편입시키는 미국은, 대학의 서열에 따라 신입사원의 연봉이 차이나는 것을 당연시여기는 나라인데,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미국 유학파는 이것마저 직수입해 불평등의 출발점을 한두 살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학벌없는 사회는 돈지랄의 사회로 바뀌었고, 광복 이후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자식세대의 헬조선이 현실화됐다.  



학자금대출을 받은 많은 학생들이 취업을 제대로 못해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고, 비정규직과 알바를 전전하며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기를 부채와 이자를 갚는데 허덕이고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놈의 지랄맞은 정부와 여당이 학생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의지가 추호도 없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청춘들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다. 





해결책은 늘 뻔하고 고리타분하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주도해 유럽을 뒤흔들고 미국까지 상륙했던 68혁명을 재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체제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위 1%에 속하지 않는다는 계급의식만 공유할 수 있다면 모든 불평등의 근원으로 등장한 교육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국가들이 대학등록금을 폐지할 수 있었던 것도 68혁명 때문이었다.



공공연히 말하고 떠들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드는 법안을 올해 안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에 표를 던지겠다고. 그럴수만 있다면, 그런 다짐이 구체적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면 현 정부 내에 모든 청춘과 부모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금수저용 대학등록금을 흙수저용으로 바꿀 수 있다. 이미 유럽에서 성공사례가 있고 미국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다. 



정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유권자는 그런 정치를 바꿀 수 있다. 그게 대한민국 헌법에 나온 민주주의고 거의 모든 국가의 헌법에 포함돼 있다.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다하라고, 국민이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라고.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하고 증폭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아우성이 가장 클 때, 그래서 다른 소리들이 그것을 압도할 수 없을 때 비로서 화답하는 유일한 체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1.13 08:45 신고

    대학 장학금 제도가 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이 되풀이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1.13 17:10 신고

      등록금을 내리면 됩니다.
      그래야 지나칠 정도로 높은 대학진학률이 줄어들고 고졸들의 임금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아고라를 이용하는 논객이자 독자로서 아고라의 변화는 필자에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미네르바 등이 활동하던 시절의 아고라는 여론을 주도할 만큼 영향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루 방문객의 숫자는 알 수 없지만 PC를 사용하는 충성고객 수는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가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은 ‘오늘의 아고라’의 변화 때문입니다. 아고라에 대한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의 압박을 거쳐 카카오톡 검열 사건을 정점으로 ‘오늘의 아고라’가 연성화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기업으로서 민주주의의 투사를 자처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이용자의 기호에 맞춰야 하니 이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아고라’가 연성화되면서 인기 있는 논객의 글들은 10만을 넘기는 경우가 많아졌고, 5만을 넘는 경우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출의 거의 대부분이 광고인 아고라로서는 좋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조회수에 비해 추천수가 너무나 적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조회수 대비 추천수가 10분의 1 정도를 보여주었는데, 최근에는 50~100분의 1 정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많은 분들이 글을 읽고도 공감하는 정도가 많이 떨어졌음을 의미하는데, ‘오늘의 아고라’의 연성화가 불러온 변화가 아고라의 영향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일어났는지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조회수 대비 추천 비율이 높은 글들을 모아 분석해야 어느 정도 답이 나오겠지만, 아마도 아고라 이용자들의 접속이 모바일기기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진 것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테스크탑 PC를 통해 아고라에 접근했던 이용자의 급감은 모바일 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대체됨을 넘어섰지만, 그만큼 추천수가 떨어지는 것에서 보듯 논객의 글이 메시지화하는 경향도 예상됩니다. 글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SNS의 이용이 늘어나는 것처럼, 일종의 메시지화되는 글들을 말해줍니다.



미디어 세대들에게 언어가 갖는 의미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모바일기기로의 접근이 늘어날수록 추천수가 급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모바일기기를 통해 접하게 되는 ‘오늘의 아고라’도 이런 변화에 따라갈 수박에 없을 것이고 저처럼 글을 길게 쓰는 사람의 추천수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날로그 세대의 막내이자 디지털 세대의 첫째로 이제야 사이버 세상의 가능성에 눈을 떴는데, 저 또한 이런 변화의 추세에 맞춰 변해야 하는지, 추천수 급감이 자연스러운 변화라 해도 사이버 유목민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늙은도령으로서의 필자는 조금씩 퇴출을 대비해 이별 연습을 준비해야 할 듯합니다. 



정권이 바뀐다 한들 아고라의 변화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스포츠와 영화광이었던 테돌이(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시절의 저로 돌아가 '토토가' 같은 멋진 기회과 '미생' 같은 드라마나 즐기면서 8년 동안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소설이나 시집을 뒤적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틈이 나면 메시지화한 형태의 글을 배워가면서ㅡ죽기 전에 될지는 모르겠지만ㅡ그렇게 가볍고 짧게 오늘의 이슈를 다루고 동시에 지나치게 과부화된 삶의 무게를 한 움큼씩 비워가면서. 유목과 방목의 사이, 느림과 빠름의 어중간한 지점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1.08 08:47 신고

    조회수,추천수 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용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08 17:34 신고

      많은 논객들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에 초연하면 제일 좋은데, 은근히 신경쓰도록 만듭니다.

  2. 어린나그네 2015.01.09 03:35

    누가 더 빠른지 경쟁하는 달리기와 같은 사회분위기가 정보통신에도 영향을 미친지는 오래인것같습니다. 궁극적인 목표지도 모른채 그저 앞서나가려는 사람들을 멀찍이 지켜보면서, 천천히 갈까 아니면 되돌아갈까 고민하고 있는 저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도 돌아가기도 허용하지 않는 심판과 관중들에게...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군요. "이 게임을 왜 하는지, 그리고 이 게임을 하는 나는 누구인지부터 알고나서 뛰든지 말든지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09 14:58 신고

      네, 게임을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작은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기본적인 삶을 국가로부터 보장받게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탈출구나 해방구가 인터넷밖에 없으니 이곳에서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관음증과 함께 과시욕이 있는데 이를 가장 잘 반영해내는 것이 인터넷이고요.

      어떤 글을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글의 가치를 생각할 때 이런 무한경경과 무한소비는 줄어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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