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정치 알아야 바꾼다'와 '경제알바' '검찰알바' 등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손혜원 의원의 발언들이 위험수위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던 손혜원 의원은 '자신의 기득권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는 누구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서울대 교수들과 문재인을 노무현처럼 죽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기레기들의 구역질나는 합작에 힘을 실어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현명하기 때문에 박기영을 사퇴시킬 것'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손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문재인 대통령을 현명(신중하고 지혜로운)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정치알바'에서의 발언을 SNS에도 올렸습니다. 손 의원의 발언이 옳다면 '박기영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뜻이 됩니다. 박기영을 사퇴시켜야 현명해지는 것이라면, 문통이 그녀를 임명했고, 직접 국민에게 양해를 구했으며,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임명 취지까지 추가로 브리핑시켰기 때문에 문통이 (무려 세 번이나) 현명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손혜원 의원은 틈만 나면 자신이 정치에 입문한 이유에 대해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는 말을 합니다. 마케팅과 홍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둔 전문가라는 특성 때문에 '대통령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국회의원의 된 이후에도 똑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엘리트주의자의 오만함(손혜원은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오만한지 알지 못한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불적절한 말입니다. 홍보전문가로써 이명박 같은 사기꾼과 박근혜 같은 무지한 자를 권좌에 올릴 때는 '만든다'는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문재인에게는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성공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 가운데 하나인 손혜원의 이런 발언들은 박기영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문통이 했을 고민의 양과 질을, 청와대 참모들과의 수없은 토론을, 당시의 상황을 정밀하게 되짚어보는 과정을 거친 후에 나왔다는 사실을 완전히 뭉개버릴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박기영을 임명하면 온갖 똥칠을 당할 것이라는 (자칭) 문재인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문통과 참모들이 현명하지 못해서 이런 결정을 했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 손 의원의 발언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재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국에서 최고로 머리가 좋다는 사람들이 모인 사법연수원을 차석(실제로는 수석)으로 수료한 사람이며, 천하의 노무현은 물론 유시민과 안희정, 김경수 등이 한결같이 따르고 신뢰하며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문재인을 죽이기 위해 정권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생까지도 뒤지겠다는 현미경·저인망식 사찰과 먼지털기에도 끝내는 문제점 하나 찾아내지 못할 만큼 정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신중하고 지헤롭지 못하면 절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런 문통이, 그런 문통을 보좌하는 뛰어난 참모들이 황우석 사태에 연루돼 있다는 원죄 때문에 충분히 예상되는 반발을 무릎쓰고 지방대 교수인 박기영을 참여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부활시켜 초대 본부장에 임명할 때는 '현명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한학수 PD가 박기영을 김기춘과 비교한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문통의 고민과 의지는 박수현 대변인의 브리핑에 자세히 나와있었고, 박기영에게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주면서까지 임명을 강행했을 때는 그것에 합당한, 아니 그 이상의 목표와 준비가 돼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계(어떤 과학계인지 정확하게 밝힌 언론은 단 하나도 없었다)를 대표해 박기영 임명철회를 요구한 서울대 교수들에게는 모든 언론이 기회를 주었으면서도, 황우석의 배아세포를 다루는 기술은 살려야 한다(그의 범죄는 용서할 수 없다 해도)는 기술사협회의 찬성 표명은 어떤 언론도 다루어주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찾는 과학과 이를 현실상에서 구현하는 기술(공학)의 차이를 무시한다 해도, 이명박근혜 때는 기계적 균형도 지키지 않았으면서도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는 기계적 균형을 울부짖는 언론들의 일방적 주장에 힘을 실어준 손혜원의 발언은 문통을 현명하지 못한 대통령이나, 여론의 공격을 받아야 현명해지는 대통령으로 추락시켰습니다.



문통은 이로써 인사청문회가 필요없는 인사권 행사마저 여론의 눈치를 살펴봐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박기영 임명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지지자들은 문통의 인사권마저 제한함으로써 '그들이 허락하는 선에서만의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를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통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고, 불온한 자들에게서 지킨다는 명목으로 문통이 원하는 인물의 임명마저 무효화시키는 쾌거(월권 또는 국민의 권리)를 이루었습니다. 



탁현민 행정관에 대한 집요한 공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이번 공격은 '노무현 죽이기'와 완전하게 겹치지만 문통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서 사태의 본질이 가려져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다시 말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문통의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는 노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는 선례가 생겼습니다. 박기영을 몰아내는데 성공한 과학계가 그녀의 반론에 '자제하라'고 찍어누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이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집단적 권위와 언론의 일방적인 도움을 동원해 찍어누르는 것이 아니라 박기영의 반론(서울대 교수가 주범)에 사실 관계를 밝히는 재반론을 펼쳐야 합니다.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진실 여부에 대한 것이지 일방적 여론몰이로 승부를 갈랐으니 닥치고 있으라는 권위주의적 행태가 아닙니다. 그럴 때만이 20조에 이르는 R&D 예산이 학벌과 소재, 명성 같은 왜곡된 권력에 의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골고루 지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대표를 할 때에도, 대선캠프를 구성할 때도,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에도 문재인은 자신의 최측근들을 청와대로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문통이 첫 번째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렇게도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통은 자신의 사람들을 청와대로 데려갈 수 있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비토와 조작, 왜곡, 선동, 저항, 지지율 하락 속에서도 훌륭한 성적(거의 다 알려지지 않았지만)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박기영이 부활된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수장으로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와 상관 없습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통과 청와대가 박기영을 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이 국민에게 받아들여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신중하지 못해서 그랬다는 식의 발언과 그들이 지혜롭다면 (특정되지 않은) 과학계의 반발과 여론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문통과 청와대를 자기 멋대로 재단하는 것입니다. 문통과 청와대는 면피를 할 수 있을지언정 박기영이라는 인간의 인권은 또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인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지율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노통보다도 자신의 사람들을 쓰지 못하고 있는 문통이기에 박기영의 4일이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문통이 일을 줄이려면,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국정 경험이 풍부하다 해도, 그래서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해도 탁현민 행정관처럼 문통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줄 사람들이 없으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봉하마을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7.08.14 07:21 신고

    또 ‘간첩 조작사건’ 담당검사를 요직에 발탁했더군요. 이건 아닌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8361&sc_code&page&total

  2. 2017.08.14 07:21

    공감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08.14 08:21 신고

    뭔가 꼬투리를 잡을려고 눈을 벌겋게 달려 들고 있기 땜에
    우선은 오얏나무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7.08.14 08:27 신고

      이번 건은 이상합니다.
      박기영은 주범도 아니었고, 황우석과도 별로 얽히지 않았다가 본부장이 되면서 정책적 지원을 한 것 뿐입니다.
      저는 박기영이 되면 황우석 사태의 주범들이 지원을 받지 못할 것 같아 들고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4. *저녁노을* 2017.08.14 10:10 신고

    대통령 혼자 이끌ㅇㅓ가는게 아니니 곁에 전문가들이 필ㅇㅛ하지요
    너무 이끌려간다는 느낌이 있어 안타까워요ㅜ.ㅜ

    • 늙은도령 2017.08.14 16:40 신고

      문통이 하자가 있어도 어떤 사람을 쓰고자 했을 때는 그만큼 생각이 있기 때문이지요.
      오유 등의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런 것을 고려조차 안합니다.
      그들은 너무 교조적이고 점령군 행세를 합니다.
      깨시민이라는 것은 군림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5. 2017.08.14 15:23

    궁금한 게 있어 질문드립니다.

    며칠전에 쓰신 글 중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메인서버를 구축하고
    서버자체를 교체하지 않으면 기록을 지울 수 없도록 했다는
    기록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7.08.14 16:42 신고

      기사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국정원 메인서버를 바꾼 이유가 국정원의 모든 기록을 지우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일탈을 막게 함이었습니다.
      이명박근혜의 국정원장이 메인서버를 교체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여론의 반발로 그렇게 하지 못했지요.
      또한 거기에는 국정원의 모든 정보들이 모여 있어서 바꾸지 못했고요.
      이지원시스템도 비슷합니다.
      노통은 그렇게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6. 뭐지? 2017.08.15 10:05

    별것도 아닌걸로 음해하는구나.
    세상 그리 할일없나? 별것도 아닌것가지고 난리네. 난 또 뭐라고 쯪쯪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전달한다는 점이 아니라 모든 전달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ㅡ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에서 인용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된 지금에도, 거의 모든 정치학자들과 언론‧방송학자들은 텔레비전이 정치에 미친 영향이 측정불가능할 만큼 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면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과 SNS 상에서 다루어지는 컨텐츠의 원천이 거의 다 TV에서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다루었기에 이번 글에서 그에 대한 근거를 대는 것은 필요없으리라 봅니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일반화된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정치행위의 상당 부분이 돌아갑니다. 《죽도록 즐기기》의 저자, 닐 포스트만의 주장처럼 텔레비전은 자본과 권력의 광고와 협찬, 지원 등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정수입니다. 권력과 자본을 위해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텔레비전이 한 몸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형편없이 떨어뜨린다고 해서 ‘바보상자’로 불리는 텔레비전이 처음 도입됐을 때, 정치인과 언론학자들은 전혀 다른 예상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텔레비전이 만들어낼 세상에 대해 온통 장밋빛 전망만 내놓았고, 정치의 수준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방송생태계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칭찬들이 난무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대통령의 아들) : 텔레비전이 정치를 집안으로 가져옴으로써 ‘국가정책을 이끄는 사람들과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나라 전체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유권자에게 더 지적이고 일치단결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스스로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린 던랩(최초의 뉴욕타임스 텔레비전 기자) : 카메라가 ‘정치의 빛과 그림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술책을 부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 말과 얼굴 표정의 진정성이 중요해졌고, 정치 지도자들 또한 우리는 투명하고 지적인 정치가 열리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정치 후보들이 ’과거 정치인들이 역사를 바꾸고 만들어낸 호텔밀실이 아니라 국민의 앞에서 지명될 것이다.


토마스 듀이(1944년 194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 텔레비전은 엑스레이다. 정부의 사업을 모르고 있다면 그 날카로운 광선과 극명한 사실성을 오래 버틸 수 없다. 정치 운동에서 건설적인 진보를 이뤄낼 것이다.


제조업체 : 최초의 텔레비전 출시를 알리는 신문광고 중에는, 텔레비전이 보통 사람들에게 정치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품의 이점으로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리처드 생크먼의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에서 인용).





이런 잘못된 예측 때문에 정치와 텔레비전의 불륜은 모든 가정을 파탄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텔레비전 시청자가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모든 정치인들은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국민을 이분법의 노예로 만들려던 박정희가 흑백TV를 포기하고 컬러TV를 허용한 것도 시대적 변화를 더 이상 거역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통치수단으로써의 텔레비전의 위력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이재명이 연상된다).  



시청자인 국민은 그렇게 정당(계급과 계층적 이익을 대변하는, 즉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과 정치인과의 직접적인 대면으로부터 멀어져갔고, 현장에 있는 느낌 때문에 방과 거실에 고립된 유권자로 파편화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루스벨트, 케네디, 레이건, 부시, 오바마,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1930년대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은 텔레비전과의 불륜을 포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정당의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도, 심지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알려야 하는 무소속 후보도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시청자를 향해 뜨거운 구애를 해야 했습니다. 정치는 그렇게 시민들을 능동적 참여의 현장이 아닌, 자신의 방과 거실로 물러난 채 카메라 앵글 속의 정치인의 언행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텔레비전이 들어섬에 따라 정치는 오락화되고 개인화됐으며, 이미지 마사지에 속아 철저한 검증에서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이고 즉각적인 이미지 전달을 통해 생각하는 능력을 갉아먹는 ‘바보상자’라는 텔레비전의 본질에는 추호의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텔레비전은 맹자와 플라톤이 그렇게도 걱정했던 ‘무지하고 우둔하고 멍청한’ 국민들을 양산했습니다(TV를 많이 보지 않는 1020세대는 다르다). 아주 간단한 정치조작과 상징조작, 정보와 이미지 왜곡에 쉽게 넘어가는 그런 국민 말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텔레비전의 지각방식이 인쇄를 통한 지각방식에 철저하게 적대적이고, 텔레비전을 통한 의사소통은 모순과 하찮음을 조장하고, '진지한 텔레비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텔레비전은 오직 한 가지 소리(오락의 소리)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즉, 텔레비전은 시청자가 생각하지 않도록 만듬으로써 (의심하는 기능을 마비시키며) 방송의 지배력을 높입니다. 대한민국을 말아먹고 있는 종편의 성공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청자란 있을 수 없고,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정도로 열악한 빈곤도 존재하지 않으며,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변질되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우리 모두는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는 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면, 정치의 하향평준화는 극단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는 보는 것이 곧 믿는 것과 동일시됐으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국민들은 스크린의 포로가 됐습니다.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정치인의 표정과 동작, 말과 호흡까지 지켜봤기 때문에 그가 본 정치인이 그 정치인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도 텔레비전의 성공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시청률조사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진 여론조사의 활용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대중이 대단히 무지하고 비합리적이며 우리 정치가 신화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다는 증거가 축적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정치 시스템은 과거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직접적인 지배권을 주는 방향으로 재편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조작되기 일쑤인 여론조사가 정치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위로 격상된 것입니다. 



“일단 여론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아무도 그것이 파악해야 하는 것인지 당위를 묻지 않았”고, “여론조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대중을 넘어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두려워하고 바라는지를” 알기 위해 매주 다양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고,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의 안방과 거실을 점령해버렸습니다. 



과학적이라는 전제가 붙어있기에, 일단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정치인들은 그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정치적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정 사안과 이슈에 대해 명확한 의견이 없는 국민들은 여론조사기관에서 작성된 질문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임에도,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도 없이 여론조사결과는 전파를 타고 시청자에게 전달됩니다.



조작되기 일쑤인 여론조사를 권위의 원천이자 시청자를 조정하는 핵심 수단으로 장착한 텔레비전은 정치의 수준을 갈수록 하향평준화시켰습니다. 광고와 협찬의 지원 하에 모든 것을 오락화하는 텔레비전은 출발의 시점부터 시청자들을 더 멍청하게 만들도록 설계됐지, 똑똑하거나 현명하게 만들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방송종사자들은 시청자에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 최악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국민들이 권한을 책임 있게 행사할 가능성이 적어진 바로 그 시점에 (권력과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 일쑤인 여론조사와 텔레비전이 일반화됨에 따라)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권한이 국민들'에게 넘어가면서 정치의 하향평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텔레비전의 보급을 막을 수 없는 일이고, 여론조사를 하지 않도록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토크빌의 성찰처럼 “국민이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는 것처럼, 미디어 또한 수준에 맞는 미디어만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만약 대중이 정치인들이 유포하는 신화를 기꺼이 수용하는 미디어를 원한다면, 우리는 바로 그런 미디어를 가질 수 있”으며,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친일수구세력의 영구집권을 위한 종편들과 보도채널(연합뉴스TV), 지상파3사의 활약은 무소불위의 경지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최상의 체제로 굳어진 현실에서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사실(진실)이 전달되면 최상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국민신화에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와 사실(진실)을 전달하는 쓰레기 방송들의 일탈과 막장질을 막으려면 텔레비전 시청을 최소화하고, 가짜뉴스를 필터링하는 습관을 키우고, 정치 참여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이런 비관적 전망은 마냥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것에 더해 인터넷과 SNS가 텔레비전의 콘텐츠를 확대재상산하는데 머물고, 정치적 영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집단적 결정을 이루는 하위정치의 공간이자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후퇴는 피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집단적 성찰에 들었고 촛불혁명으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인터넷과 SNS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정치적 양극단에 위치한 사람들의 감정적 배설과 언어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작동불능의 상태에 이를 것입니다. 반대의 결과를 이룩할 경우에는 민주주의는 보다 넓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며, 수많은 정치철학자들과 석학들이 모델링한 진정한 민주주의로서의 참여·직접민주주의가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


안철수와 이재명처럼 결격사유와 하자가 많은 인간들이 지도자급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미디어의 위력을 말해줍니다. 안철수는 TV 예능프로그램이 만든 허상이었지만 '안철수 현상'이란 새정치의 주인공으로 포장되고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은 촛불집회와 각종 광고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뻥튀기하고,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 세탁에 성공할 정도로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미디어를 활용하는데 도를 튼 정치선동가(히틀러와 스탈린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장은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도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촛불혁명으로 타올 수 있었습니다. 깨어난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이 1%의 희망으로 99%의 절망을 대체하는데 성공한 것이지요. 이재명도 안철수처럼 미디어(텔레비전)가 만든 허상의 정치인임을 깨닫게 된다면 작금의 지지율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문프가 주도하고 있는 평화협정 체결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5.28 08:38 신고

    TV 의 순기능이 많은데 역기능적인 부분이 순기능을
    압도해 버립니다
    그것을 보는 국민들이 걸러 볼줄을 알아야 하는데 곧이 곧대로 보고
    믿으니 종편을 비롯 모든 방송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호도하기 급급합니다

    수구 언론에 반하는 방송들이 나와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4:42 신고

      네, 텔레비전이 정치를 망치는 것은 미국, 한국, 일본 등입니다.
      유럽은 덜한 편인데 유독 한국은 미국만 쫓아갑니다.

  2. 耽讀 2015.05.28 08:43 신고

    진보는 종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나이든 사람과 보수만 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식당이나, 병원을 가면 하루 종일 종편에 틀어줍니다.
    진보는 종편이 만들어질 때, 허가 반대 외칠 것이 아니라 진보언론과 진보세력이 온힘을 다 해 채널 하나라도 개설해야 했습니다. 조중동 중 하나라도 탈락시켜고, 그 중 채널 하나를 확보했다면 언론지형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4:44 신고

      보수 반동이 너무 진행돼 진보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다시 살리고 재정립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로 계속갈 것입니다.
      작은 소규모 공동체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최상인데,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에 치이다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은 절망적입니다.

  3. 뉴론♥ 2015.05.28 09:31 신고

    요즘은 1인 미디어가 많긴 하지여 블로그 미디어가 제일 낳긴하네요 .

  4. HowlS 2015.05.29 03:18 신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5. 최홍대 2015.05.29 11:51 신고

    이명박 대통령이 저렇게 가볍과 의미없게 보일줄이야..국민수준이 그랬던것 같아요.

    • 늙은도령 2015.05.29 14:37 신고

      그렇지요, 우리는 경영과 정치를 혼동하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6. evitamins 2015.05.30 06:08 신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글 읽으러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7. CheekyNaru 2015.05.30 18:42 신고

    잘보고 갑니당~!!

  8. 아줌 2015.05.30 19:38

    정몽준 아들이 어느정도는 옳은 말을 한듯...요. 국민수준에 딱 맞는 통령... 미디어를 갖고있죠....

  9. 그렇지? 2015.05.31 03:34

    동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31 03:47 신고

      네, 걱정입니다.
      보수 반동은 미국에서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했습니다.

  10. Abricot 2015.05.31 11:39 신고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11. 썸띵 2015.06.17 14:42

    오타나셨어요. 마지막에서 세번째 문단에 가길을 가질로 바꾸셔야 해요. 정독했는데 사실이고 지금도 하향평준화되는 중이라 씁슬하네요. 오락물을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도 한목 한 것 같아요.(낮은 임금에 비해 값비싼 외부활동), 저조차도 이제는 이런 장문 읽기를 꺼려한다는게 정말 무섭고 부끄럽네요. 초등생부터 이런 내용의 교육을 받으면 정말 좋겠어요.독서도 많이 하고요..

    • 늙은도령 2015.06.17 00:57 신고

      네,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타는 저의 한계이니 이렇게 정독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독서는 이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됐습니다.
      인류는 퇴화하는 쪽으로 발전의 방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12. specialist 2015.07.20 22:42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한번쯤 왜 이럴까 하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그에 대한 현상을 분석하시고 글을 주시네요...
    답답한 사람들 훈계하고 상대하시느라 피곤하실텐데 대단하십니다. 이말밖에는...ㅎㅎ

    • 늙은도령 2015.07.20 23:00 신고

      아닙니다, 저도 꾸쥰하 공부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으니 노력하는 것이지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