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수없이 많은 석학들이 다루었던 것이지만, 과학과 기술공학의 발전과 정보통신기술의 영향을 가장 잘 파악해낸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와 니콜라스의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유리감옥》, 바우만의 《액체근대》, 라이언의 《감시사회의 유혹》 등을 중심으로 다루어보는 것이 더욱 오늘날의 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가벼운 경제’의 시대에서는 세상의 변화를 모두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이르러서야 날아오른다’는 헤겔의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문화에 대한 기술-경제적 발전의 영향력은 위대한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에서 보여준 것처럼, 신화(지배권력의 정통성을 창출함과 동시에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와 착취에 초월적 정당성으로 미화되기 일쑤다)와 계몽의 변증법(인류가 파멸에 이를 때까지 계속돼야 멈출 영원한 진보가 핵심이다)이 뒤엉켜 있는 고대의 신화적인 서사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는데, 그런 서사의 끝에 이른 현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서사는 의미만 다룰 뿐,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문화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완벽한 성찰을 보여준 미셀 푸코가 《감옥의 역사》에서 보여준 구조주의적 인식들을 차용해 벤야민의 역사인식 개념을 활용하려고 한다. 



비록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역사개념이 ‘비변증법적’이라고 비판했지만, 보편적 도구인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정보사회에서 《미디어의 이해》의 저자, 마셀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한 것이 진리라면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적용한 방식이 현 시대를 이해하는 데는 보다 적절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진보의 모든 성과와 폐해들이 모두 녹아내려 높은 온도의 액체처럼 유동하는 상태가 현대성을 대표하는 상황에서는 ‘지금시간’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끌어내 거기에 포함된 모든 내용(역사라는 시공간이 압축되어 있는 씨앗)을 다루어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면 속도가 공간을 극한까지 압축하면서 지배 권력의 원천이 유지되는 세상에서, 그 파시즘적 속도에 맞춰 시대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란 단 한 명도 없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뒤집힌 세상이 다시 한 번 뒤집히고 있으며, 그 다음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유동적인 상황에서 오직 비대칭적 종말만이 확실하게 예약되어 있을 뿐이다.



역사주의가 보편사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다른 종류의 역사보다 바로 이러한 보편사와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뚜렷이 구별될 것이다. 보편적 세계사는 아무런 이론적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보편사의 방법론은 더해지는 방식이다. 그것은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 데 급급하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의 구성의 원칙에 근거를 둔다. 사유에는 생각들의 흐름만이 아니라 생각들의 정지도 포함된다. 사유는, 그것이 긴장으로 가득 찬 상황 속에서 갑자기 정지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상황에 충격을 가하게 되고, 또 이를 통해 그 상황은 하나의 단자로 결정된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적 대상에 다가가되, 그가 그 대상을 단자로 맞닥뜨리는 곳에서만 다가간다. 이러한 단자의 구조 속에서 그는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시, 달리 말해 억압받은 과거를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의 기회의 신호를 인식한다. 그는 균질하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 과정을 폭파하며 그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시대를 끄집어내기 위해 그 기회를 포착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한 시대에서 한 특정한 삶을, 필생의 업적에서 한 특정한 작품을 캐낸다. 이러한 방법론에서 얻어지는 수확은,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악된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메시아적 시간 모델로서 전 인류의 역사를 엄청난 축소판으로 요약하고 있는 지금시간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이루는 앞의 모습과 엄밀하게 일치한다.



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관료주의적 정신과 기술공학적 사고는 주어진 현실을 가장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데만 목표가 있기 때문에 지금시간의 이미지에서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역사의 시간들을 하나씩 살펴봄으로써 현재를 이해하는 원천(그것은 미래의 결과로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의 결과란 지금시간에서는 단순한 예측일 뿐이어서 미래의 영역에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언제나 미래의 풍요를 위해 지금시간으로서의 자신을 착취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지배세력의 도구가 된다)으로 작용하는 벤야민의 접근방식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관료, 즉 공무원들과 기술공학적 사고에 익숙한 전문가는 오직 미래의 결과만 보고 현재를 파악한다. 그들은 오직 과거의 결과로서의 현재를 기반으로 해서 모든 사유를 출발시키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 따라서 계몽적 변증법이 명하는 데로 무한한 진보를 위해 현재의 문제를 푸는 데만 열중한다. 이런 가치중립적이고, 효율성과 경제적 편익만 따지는 사고방식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인류를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파국으로 내몰곤 한다(물론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극히 드물고 그것 역시 자본의 수중에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이들은 진보의 흐름이 영원하다고 보기 때문에 폭주하는 기차를 멈춰 세운 후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목적지로 가는 다음 역까지만 중요하고, 거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비용-편익 분석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데만 집중한다. 계몽적 변증법이 고착화시킨 결과의 낙관론이 이들의 인식과 행태를 결정하며, 그 밖의 것들은 시대에 뒤진 것이라고 폄하한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이들이 내세우는 최후의 변명이자 전매특허이고, 따라서 기술공학적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명적 부작용은 진보의 길에서 나오는 부수적 피해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런 기술공학적 사고가 지배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은 ‘탐욕의 삼위일체’가 손을 잡는 과정에서 교묘하게 이루어졌다. J. M. 케인즈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신자유주의의 선조들에 책임을 묻는 근거로 사용한 “사회가 부유하면 할수록 실제생산과 잠재생산과의 사이의 간격은 클 것”이며, “따라서 경제체계의 결점은 더욱 명백하고 또 포악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는 기술-경제적 발전의 부작용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대부 중 한 명으로 회자됐던 밀턴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자유주의는 대내적으로 경제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의 역할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자유방임을 지지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세계 각국을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했다”며,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자유롭지 못한 정치제도의 조합도 분명 가능하다”고 말한 것에서 유추하는 것도 정치경제적 시각에 한정되기 때문에, 초위험사회가 도래한 현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술-경제적 발전을 국민국가와 자본과 함께 주도해 온 기술공학적 사고가 시장 만능의 산업사회의 지배적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결정적 순간은 칼 폴라니가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에서 가장 잘 포착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제로 인간은 그러한 이론이 요구하는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시장의 원리가 인간이 물질적 재화에 의존하고 있음을 부각시키기는 했지만, 인간이 단지 ‘경제적’ 동기 때문에 노동하는 것은 아니다...인간은 여전히 놀랄 만큼 ‘복합적인’ 동기들에 근거해 행동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복합적인’ 동기는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의무를 포함할 수 있고 또 노동 자체를 은근히 즐기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동기들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가정된 동기들이며, 심리학이 아니라 영업적 사회의 이데올로기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여러 관점들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기초하고 있다. 일단 사회가 그 성원들의 일정한 행동 양식을 예측하게 되고 지배적인 사회 제도들을 통해 그 행동 양식을 대충 강제해내기에 이르면,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들은 그 행동 양식의 이념형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명예와 자부심, 공민으로서의 책무와 윤리적 의무, 심지어 자기 존중과 도덕마저도 생산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고, 의미심장하게도 ‘이상적’이라는 함축적인 단어로 요약되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어지게 되었으니, 하나는 굶주림과 이익에 가까운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명예와 권력에 가까운 것이다. 전자는 ‘물질적’인 것이며 후자는 ‘이상적’인 것이다. 전자는 ‘경제적’인 것이며 후자는 ‘이상적’인 것이다. 전자는 ‘합리적’인 것이며 후자는 ‘비합리적’인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이 두 쌍의 말 묶음을 확실히 정리했으며, 인간 성격의 경제적 측면에 합리성이라는 신비로운 후광을 씌우기에 이르렀다. 모두 오로지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도록 되었고, 혹시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기를 거부한다면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불루이글 2015.07.21 09:05 신고

    오!
    정말 도령님의 지식의 부요함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솔찍히 말씀 드리자면 부끄럽게도 저는 너무 심오해서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도령님이 쓰신 글이니 좋은 글이 틀림이 없다고 확신 합니다.

    저는 같이 공감 할 자질이 없지만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줄로 믿으며 대신 공감 버튼 눌러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51 신고

      이 글은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인데 퇴고를 못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것들 때문에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합니다.
      써 놓은 양이 너무 방대해 고민입니다.

  2. 백순주 2015.09.04 10:17 신고

    공감을 눌러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열어보고 한 줄 읽고는 후회했습니다.
    대학 1학년 전공수업시간이 떠오릅니다. 적성도 관심도 없는 커트라인에 맞춰 지원한 대학수업이란 게 온통 외계어 뿐이었으니까요. 교수님은 알고 수업을 하고 계신지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위편삼절이라고 했던가요? 100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통한다고 했나요?

    죄송합니다. 말이 많네요.

  3. 아오타케 2016.05.17 23:12

    외국인 학자 이름 나열이 뭐가 그리 중요하며, 그들의 학설이 세상을 대표합니까?
    식당 건물이 멋있고, 인테리어가 멋있다고 음식맛이 좋습니까?
    물 엎질렀다고 탓하지만 말고, 물이 엎질러지지 않게 하려면 어쩌면 좋은지 그 방법을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알려 줍시다.
    그것이 현대 지식인들의 지향점이어야 하는데, 엎질렀다고 주먹질만 해대고 있으니...
    어느 보약이든... 부작용은 있는 법입니다. 당신이 서 있으면 발밑에 밟힌 초목 벌레가 있을 테고, 서 있는 그늘밑에는
    활동 중지된 미생물이 주먹질 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 사는 것 쉽습니다. 어린아이들 같이 천진난만.. 어린아이들 같이 상식대로만 살면 되는 겁니다.

  4. 시골잔차 2016.07.11 20:34

    저의 무식함이 처절히 탄로 났습니다.

    무슨 말인지 넘 어렵네요 ㅎㅎ

    담에 또 정독해야겠습니다.

    딱딱한 음식이 이에 이롭듯이 , 어려운 글이 뇌를 단련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뇌를 각성시켜주셔서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ㅎㅎ

    • 늙은도령 2016.07.11 23:13 신고

      이 글은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에게 한방 먹이려고 쓴 연재글입니다.
      원래는 출판을 목표로 했던 것이고, 퇴고를 거치지 않은 압축본입니다.
      지식인들의 지적사기를 고발하고자 하는 목적이라 어렵게 썼지만, 인공지능을 공부한 뒤 이 작업이 별로 유용하지 못함을 알게 됐습니다.
      시간이 되면 쉽게 풀어낼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쓸 때를 대비해 굵지한 것만 다루었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주어질지 걱정이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첫 번째 별명이 '테돌이(텔레비젼을 끼고 산다 해서)'였던 필자가 ‘K팝 스타’를 보게 된 것은 두 명의 조카 때문이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런 조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돌그룹을 섭렵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K팝 스타’까지 보게 됐다.





조카들의 시선으로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K팝 스타’가 시즌4에 이를 동안 필자의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K팝 스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갈수록 늘어났다. 싱어송 라이터를 비롯해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이 늘어났지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비약적 발전을 할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학에 매달렸다. 박정희의 공으로 돌려지기 일쑤인 압축성장은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노력한 수많은 노동자들과 나와 누군가의 부모님들과 함께.



지금까지 수천만 명이 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비약적 발전ㅡ단 부의 재분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ㅡ을 할 수 있었듯이,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K팝 스타’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하니 질적 상승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확률적으로 뛰어난 영재들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들이 성공하기 위해 투자한 것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바람에 공학이나 기초과학 같은 분야에 도전하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대중문화에 집중되기 마련이라, 미디어적인 것에 열광하는 이런 현상은 상당 부분 필연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K팝 스타’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출연자들의 기술적 발전(대중적 상품성)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앞선 시즌에서 탈락한 도전자들도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K팝 스타’는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대중적 상품성에 집중하다 보니 신선함과 창의성이 줄어들었다.



단 하나의 예외란 악동뮤지션이었지만, 그들의 천재성은 그 나이 또래의 미디어적 감수성과 사춘기 특유의 상상력을 풀어내는데 성공한 트위터(재잘거림)적 가사가 더해져 가능했다. 악동뮤지션의 등장은 신선했지만,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을지는 미지수로 보였다.





헌데 말이다, 정말로 대단한 물건이 나왔다. 주인공은 당연히 이진아를 말한다. 천재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아티스트의 발견이랄까. 음악에 대한 지식은 턱없이 부족한 필자지만, 위대한 <미학이론>의 저자들(칸트,벤야민, 아도르노, 브르디외 등)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천재의 요소들을 이진아는 가지고 있다.



인류 최고의 석학들이 말하는 천재의 조건은 타고난 재능의 독특함과 무궁무지한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그런 유일무이한 영감의 산물을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표현으로 담아내는데 있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이라 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것은 천재의 산물이 아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에디슨의 말도 이것을 담고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함과 창의성에 있어서 이진아는 천재의 전형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진아는 천재적 영감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보편성, 즉 대중성)이 놀라울 정도다. 그녀의 노래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그렇다고 그녀의 천재성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독창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정말로 특이한 아티스트가 이진아다. 그녀는 대단히 뛰어나지만, 뛰어나게 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 아니면서도, 목소리 때문이다. 음악적 재능(작곡, 작사, 연주)을 가수로서는 치명적인 목소리에 담아냈다는 것이 그녀의 천재성을 말해준다.



‘K팝 스타’가 추구하는 대중적 상품성만 놓고 볼 때, 이진아의 시장성은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늘렸다는 점에서 이진아는 ‘K팝 스타’가 낳은 최고의 천재ㅡ최소한 시즌4까지는ㅡ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진아는 절대 기획할 수 없는 상품이다. 



그래서 이진아의 천재성에 집중한 박진영, 천재성 속의 노력을 강조한 유희열, 둘을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것을 얘기한 양현석, 이들 3인의 도움이 더해지면 조금 색깔이 다르더라도, 원석 같은 보석ㅡ이미 상당 부분 완성된ㅡ이진아는 돈 맥그린 같은 대형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냠냠냠’과 ‘빈센트’를 번갈아 들어보라, 필자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테니.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2.17 08:21

    아이들 때문에 젊어지십니다.
    저는 이 친구들 세계는 잘 모른답니다. 손주들이 더 커면 저도 배워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1 신고

      조카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제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조카가 내년에 들어오는데 그때 맞춰서 얘기거리 많이 만들어둬야 합니다.ㅋㅋㅋ
      헌데 이진아는 조금 다릅니다.
      가수로서는 불가능할 목소리로 특이한 영역을 열었어요.
      이한구의 이중성이 천재성을 지녀 비교하라고 썼습니다.

  2. 耽讀 2015.02.17 09:02 신고

    텔레비전을 거의 안 봅니다. 일주일 한 시간 정도. 이진아 씨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문화도 진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2 신고

      네, 다양함이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살찌우느데 우리는 그런 것을 실제로는 싫어해요.
      대부분 주류의 문화에 젖어들지요.
      그래서 통치가 쉬워지고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2.17 10:07 신고

    저도 가끔 보는 방송입니다
    이진아는 일단 상품으로 나오게 되면 호불호가 갈릴겁니다

    매니아들이 생길수 있겠지만
    상업화되서 일류 스타화 되기는 힘들듯 합니다

    저도 괜찮게 보는 뮤지션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3 신고

      다양성이라는 것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다양성을 싫어하죠.
      폐쇄적인 민족구조가 민주주의를 힘겹게 만듭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요즘 젊은이들은 민주주의에 익숙해요.
      그들이 주역이 될 10년쯤 후에는 많이 좋아지겠죠.

  4. Hansik's Drink 2015.02.17 10:29 신고

    정말 너무너무 대단한것 같아요~^^

  5. 꼬장닷컴 2015.02.17 10:35 신고

    아.........
    도령님께서도 k팝스타를 시청하시나 봅니다.
    저도 일요일 집에 있을 땐 k팝스타와 런닝맨을 보는데
    특히 k팝스타는 시간이 안 맞아 못 봤을 때 다시보기로 꼭 챙겨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꼴찌들이 뭉친 스파클링걸스를 응원하지만 이번
    이진아의 '냠냠냠'을 듣고 이진아에 확 빠져 버렸습니다.
    솔찍히 그 전에는 그다지 매력을 못 느꼈었거든요.
    이는 취향의 문제겠지만 좀 독특하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지난주에 이진아에게 완전 매료되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15:46 신고

      그런 목소리로 그런 노래를 만들어 전문가들까지 녹다운시킨 것은 대다한 일입니다.
      천재란 자신의 창작물이 대중이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창작물에는 천재성이 엿보이는...
      이진아는 이런 미학이론을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나오는 천재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6. 꼴찌PD 2015.02.17 20:30 신고

    이진아씨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오랜 시간 유지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늙은도령 2015.02.17 21:47 신고

      다양성이 살아있는 대중문화가 되려면 이진아 같은 친구들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토양이 조성돼야 합니다.
      그래야 한류도 이어질 수 있고 문화적으로도 성숙한 나라가 됩니다.

  7. base 2015.02.17 22:19

    올 한해 건강하시고 잠시라도(안타깝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 늙은도령 2015.02.17 23:06 신고

      네,님도 그러하십시오.
      건장한 설 연휴 보내시고, 충전된 새해 되십시오.

  8. 덕산 2015.02.17 23:54

    이전에는 정말 호불호가 갈리는 음악이였는데..
    냠냠냠은 남들몰래 혼자 흥얼흥얼 거릴만큼 대중성도 있는것 같던군요^^
    늙은 도령님덕분에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행복한 설날 되세요.

    • 늙은도령 2015.02.17 15:47 신고

      네, 님도 행복한 나날되세요.
      경기가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항상 돈의 흐름 주목하셔야 합니다.
      잘 안 돌아갈 때는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좋아지면 그 때 다시 채용하더라도 돈의 흐름을 관리 못하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9. 바람 언덕 2015.02.18 10:57 신고

    경쟁프로그램을 지독하게 혐오하는 저이지만,
    오직 K팝스타 만은 빼놓지 않고 즐겨보고 있습니다.
    지난주도 역시 놓치지 않고 보았는데, 이진아의 음악은 정말 독특하더군요.
    유희열의 지적처럼 어떠면 컴플렉스일지도 모르는 목소리를 자신만의 장점으로 극대화시킨
    그녀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귀로 듣는 음악의 위대함을 그녀를 통해 본다고 할까요?
    .
    .
    .
    그런데, 저는 박윤하를 응원합니다. 커험...
    ^^;

    • 늙은도령 2015.02.18 16:41 신고

      크크크....
      즐겁게 보낼 때는 즐겁게 보내야 투쟁할 에너지가 생겨서.
      이제는 새누리당을 집중 공략해야지요.
      박근혜는 이미 끝났으니 새누리당이 정권을 이어받는 것을 막아야죠.



최근 두 편의 영화가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모든 기록이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한국의 블랙버스터 < 명량 >을 필두로, 손익분기점을 일찌감치 넘은 < 군도: 민란의 시대 >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일 상영 스크린 수가 1,000개를 넘어선다는 점에서도 압도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개봉했던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의 흥행과 비교해도 이 두 편의 한국 영화의 선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최고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 명량 >은 개봉일 당시의 스크린 수가 1,159개였지만 지난 일요일부터는 무려 1,586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대 상영 횟수가 무려 7,960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올해에 개봉된 한국영화로는 최대의 스크린 점유인데, 멀티플랙스들이 <명량>의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를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입니다. 





< 군도: 민란의 시대 > (이하 '군도')도 비슷합니다. 개봉 첫날의 스크린 수가 1,250개였지만, 26일에는 1,394개까지 늘어났고, 상영 회수는 <명량>에 버금가는 7,119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위대한 영웅인, 그래서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상업적인 영상과 뛰어난 시나리오로 멋지게 풀어낸 < 명량 >에 밀리기 전까지는, <군도>의 1주일간 독점했던 스크린 수는 1,000개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헌데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8월 현재 국내 스크린 수는 모두 2584개입니다. 결국 <명량>과 <군도>가 전체 스크린의 6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명량>과 <군도>가 잘 만들어진 영화여서 이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두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이 최고의 흥행신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판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가 '어떤 인사가 유명한 이유는 그가 유명한 인사였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떠오릅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이 두 영화의 스크린과 상영 횟수의 독과점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말해줍니다. 실제로 한국 영화의 점유율을 계속해서 올려주고 있는 두 영화와 전체 유료관객수가 10~20만을 넘은 두 편의 영화를 빼면 나머지 영화들의 스크린 확보수와 상영 횟수는 7%에 대에 불과합니다. 3일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상영 영화가 62편이니까 58개의 영화는 철저한 찬밥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니 다른 영화들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30~50만 명에 이르는 관객수도 기록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습니다. 같은 블록버스터인 <해무>와 <해적>마저도 희생양이 될 듯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곧바로 케이블채널과 영화전문채널로 넘어가거나 동시 상영을 하는 것으로 겨우겨우 투자금을 환수하는 실정이지만, 이런 스크린 수과 상영 횟수의 독과점은 한국영화계를 구조적으로 질식시키는 요인을 작용하고, 아무리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다 해도 상업적인 요소가 부족한 영화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이런 기형적인 독과점 현상은 CJ, 롯데, CGV, 메가박스 등처럼 대기업들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 유통까지 장악하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이런 독과점 현상 때문에 제작비 10억 미만의 영화들(총 183편 중 133편으로 73%에 이른다)의 매출액은 2.1%, 전체 관개 수는 2.2%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막상 그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 영역 독과점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미국조차 수천억이 투자된 블록버스터라 해도 전체 스크린의 20% 정도를 차지할 뿐입니다. 




오로지 수익성만 따지는 이런 약육강식의 왜곡된 구조는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다양한 기호와 욕구마저 획일화시킵니다. 현대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화산업이 탐욕스런 수익의 논리만 추종하면, 문화의 다양성은 고사하고, 영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문학의 세계마저 천민자본주의에 종속되게 됩니다.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 유통까지 수직계열화를 하면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수익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띠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무서움은 이렇게 정신과 문화의 영역마저 돈의 논리에 지배받도록 만듭니다. 연일 한국영화계의 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12척의 배로 수백척에 이르는 일본의 함대를 무찌른데 있음에도, <명량>이란 영화로 되살아난 2014년의 이순신 장군은 대기업의 독과점 덕분에 일본의 해군이 아닌 한국의 다양한 영화들을 지키려는 12척의 배를 수장시키고 있습니다. 



경제의 생산방식과 사회적 교환방식에 집중하느라 마르크스가 등한시했던 것 중에 하나인, 문화의 다양성이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그래서 영상산업의 독과점을 염려했던 벤야민, 아도르노, 부르디외 등의 《미학이론》들도 12척의 배에 실린 소규모 한국영화들과 함께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투자자이자 배급자이며, 유통자인 거대 기업에 찍히면 제작자와 감독은 물론, 평론가와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까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세삼 부각시키면서.    



  1. 달빛천사7 2014.08.06 05:53 신고

    명랑이 드디어 대박이군염 잘보고 감니다. ㅎㅎ.

  2. 새 날 2014.08.06 11:13 신고

    스크린 점유율 때문에 히트친 부분도 분명 맞지만, 명량의 히트는 현실의 갑갑함을 달래려는 서민들의 간절함이 묻어있는 듯해요

    • 늙은도령 2014.08.06 15:00 신고

      그것이 상업적인 요소를 잘 녹여넨 것입니다.
      이순신과 아들 간의..
      12척으로 일본 배 200여 척을 무너뜨리는 것 등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영화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영화를 제작, 배급, 유통까지 대기업이 주무르니 다른 좋은 영화들의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문화는 한두 편이 대박을 치는 것보다 여러 개가 소박을 칠 때 문화적 다양성도 커지고, 서로 함께 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3. 참교육 2014.08.06 19:26

    명랑... 저도 내일 아침 부러기기로 했습니다.
    많이 기대됩니다.

  4. 양성호 2014.08.06 21:25

    임진왜란 초등학교 단체관람때부터 봐왔는데 뭔갑자기 이순신열풍이야 휴가피크때 태풍오고 날씨더워 에어컨바람에 데이트족들 몰려 한마디로 소가 뒤로가다 쥐잡은꼴이네 이순신을 알고싶으면 솔직히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나온 테레비드라마를 보던지 칼의노래를 읽는게 낫다고 본다

    • 늙은도령 2014.08.06 22:18 신고

      이순신에 대한 연구조차 잘 안 된 곳이 한국입니다.
      외국에서 더욱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 공부하고 제대로 알려면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5. 2014.08.06 22:2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06 23:01 신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 동안 별로 신경쓰지 않고 글만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용방법은 살펴보지 않았는데, 독자를 위해서라면 제가 바꾸어야죠, 즉각즉각.
      ㅋㅋㅋ
      감사합니다.

  6. 쿠쿠쿠(윤약사) 2014.08.06 22:37

    아이들 만화영화마저 배급사에 따른 스크린 할당의 차이가 확연하더라고요.
    <드래곤 길들이기2> 이외에는 애들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없을 지경이에요.ㅠㅠ
    좀 더 선택의 여지가 많았으면 좋겠는데, 이미 <명량>,<군도>가 성인 스크린 점령...

    이 부분이 많이 아쉽더라고요.

    • 늙은도령 2014.08.06 23:03 신고

      다양성을 죽이면 그 피해는 아이에게도 미칩니다.
      문화가 대기업의 먹거리로 전락하면 언제나 국가주의, 애국심, 지독한 상업성, 선정주의 등등으로 얼룩지게 됩니다.
      그래야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며, 소규모자본으로 진행되는 영화계의 아웃사이더와 비주류들도 자신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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