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장은 자신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상대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가혹한 자기방어기제의 폭력성이 강합니다. 탄핵소추안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며, 통과되더라도 헌재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에 박근혜 탄핵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분노한 시민의 움직임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재빠르게 변신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정통의 회장이었던 것도 마찬가지)도 능란합니다. 자신의 범죄경력을 불의한 자와의 투쟁에서 얻은 훈장 정도로 취급하는 것도 목적을 위한 수단에는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중에서 세 번째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입니다. 노동자와 환경에 대한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고, 각종 폐해를 막을 어떤 규제도 없었던 산업혁명 초기의 런던ㅡ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었다ㅡ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추상해낸 마르크스의 위대함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프롤레타리아(남성노동자)의 폭력혁명을 통해 결과의 평등(절대적 물질주의)에 이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목적론적 확증편향 때문에 수단과 과정에서의 폭력성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배제(플라톤, 니체, 히틀러, 스탈린의 유사점)하는 도덕과 정의에 반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위 99%의 부를 상위 1%에 이전하는 역계급혁명적 성격이 강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마르크스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너무나 당연한 현상),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개인의 선호와 지향을 무시하는 절대적 물질주의, 보편적 도덕과 공정한 정의에 반하는 폭력성,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정치의 역할을 배제한 변증법적 유물론(진보에 끝이 있다는 결정론적 역사주의), 진화론과 만유인력에 경도된 과학적 오류 등으로 인해 주류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역사를 계급투쟁의 장으로 접근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네그리와 하트(푸코의 성찰에서 비롯된)는 노동자의 폭을 전업주부 같은 재생산을 담당하는 분들(무임금노동으로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노동이라고 했다)을 포함해 비정규직과 파트타임 등까지 확대한 비물질노동자로, 정치의 역할을 배제한 것에서 대해서는 자유자재로 네트워크적 이합집산을 하는 다중이란 개념을 들고나왔고, 코헨 등은 수단의 폭력성을 완화해서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도덕과 정의와의 화해를 추구했지만, 68혁명의 등장과 함께 신좌파(유럽의 신좌파와 미국의 신좌파는 조금 다르다. 조기숙 교수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신좌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 이중개념자, 합리적 보수에 이르기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거나 이념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번 글에서는 신좌만로 통칭했다)와 구별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 안정을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물질주의보다는 탈물질주의적 가치(특히 정의와 도덕, 공정과 평화를 실현하는 규범과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열려있어 자아 실현과 자기 표현, 사회적 평등과 인권, 양성평등, 소수자권리, 재미와 축제로서의 집회, 환경과 생태(동물권 포함)라는 삶의 질을 위해 경제성장도 일정 부분 포기할 수 있는 신좌파와 구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좌파는 구좌파와 우파를 모두 다 비판했고, 삶 전반에서의 총체적 혁명을 중시했지만 진보적 성향은 분명히했습니다.

 




노동문제에서는 노조보다 급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신좌파는 극우와 마찬가지로 구좌파의 수단적 폭력성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삶과 사회적 관계 전반에서 공정한 정의와 헌법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자'로서의 신좌파는, 합법적 폭력(공권력)을 독점하고 언론마저 장악한 독재정부에 맞서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폭력성과 강력한 위계서열이 필요했던 민주화운동 세대와는 달리 비폭력적인 저항으로서의 시민불복종과 자발적 참여를 선호합니다. 민주주의 이해가 대단히 높고, 정보접근력과 처리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이런 창조적 진화가 가능했습니다. 



불의와 부정의에 분노하는 이들이 진보민주진영의 다수가 되면서 광장과 거리에서의 민주주의가 가능해졌고, 4개월 동안 연인원 16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지만 어떤 폭력도 일어나지 않은 촛불집회가 가능했습니다. 인류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같은무혈혁명이자 명예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이 성공을 거둔 적이 없었기에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신좌파의 다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이며, 정치학적으로 보면 노사모가 최초였다 할 수 있습니다. 



조기숙 교수에 따르면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에는 자신이 신좌파에 속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는데, 퇴임시 지지율이 30%대였던 노무현이 대통령선호도에서 박정희를 멀찌감치 제치고 50%에 근접하는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신좌파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민주적이었으며, 진보적이었으며, 동시에 자유주의적이었던 노무현의 인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의 폭력성에 반대하는 신좌파의 눈으로 보면 극우적인 일베나 극좌적인 손가혁이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수단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좌파로서는 목적의 절대성을 내세워 도덕과 정의를 거추장스럽고 위선적인 것으로 여기는 일베와 손가혁의 폭력적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손가혁에 둘러쌓인 이재명이 박사모에 둘러쌓인 박근혜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존중과 배려가 없는 이런 행태는 확장성에서 치명적이며,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수단으로서의 헌법정신을 훼손시킵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 정경유착을 선호하는 작고 강한 정부, 위계서열을 강조하는 재벌, 권위주의적 문화, 기득권에 유리한 자유시장 등으로 구성된 신자유주의를 폭력으로 지키거나 무너뜨리려는 일베와 손가혁의 방법은 민주주의와 헌법, 정의와 도덕에 반한다고 믿는 것이 신좌파의 공통점입니다. 갑질만이 아니라 을질에도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좌파의 목표는, 특히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목표는 이념의 분포상에서 좌우의 양극단을 최대한 줄이고, 민주주의와 헌법에 근거한 시민주권을 최대화하는데 있습니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기본이며, 그럴 때만이 실질적 민주주의도 실현된다고 믿습니다. 신좌파, 특히 진보적 자유주의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선진민주복지국가는 모두의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노무현의 꿈이었던 사람사는 세상이 바로 그러하며, 촛불집회의 시대정신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늙은 도령님께 2017.03.14 21:43

    늙은 도령님의 통찰력 있는 글들을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 쓰신 글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Marx의 저 인용문은 사실 조작된 것이라 팩트체크가 필요하실 거라고 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7.03.14 22:48 신고

      마르크스는 몇 단계의 전환이 있었는데 그런 내용 중 일부에서 중간을 생략해 오해하도록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졌습니다.
      마르크스의 폭력혁명은 너무 노동자에 집중하느라 사회경제적 약자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팩트 체크는 해볼게요.

  2. 둘리토비 2017.03.14 22:09 신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야권의 이해관계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신좌파 그리고 손가혁, 이 둘이 조화를 이룰 기회는 전혀 없겠습니까?

    "핀란드역으로"라는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요,
    프랑스혁명, 마르크스, 레닌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주의의 투쟁사를 읽으면서
    바로 지금의 신좌파와 손가혁의 대립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어느 한편으로 결론도 없이 코뮤니즘이랑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결말인데,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정말 좋은 것에 대한 연대와 조화, 이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지금 우물쭈물하다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더디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늙은도령 2017.03.14 22:53 신고

      제일 큰 문제는 손가혁의 폭력성이 이재명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재명은 선동가적이고 폭력적인 기질에 대해 정확한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재명 주변이 시끄러운 것은 그가 정의로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공격을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때는 철저하게 강자의 방법을 씁니다.
      손가혁은 그것을 감지한 집단입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통합니다.
      신좌파는 구좌파보다 급진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노조 또한 기득권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으로 틀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렌트와 바우만 등이 그것을 가장 잘 파고들었고, 네그리 등은 그것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코웬처럼 마르크스 혁명을 주도하다 그 한계를 깨달아 신좌파로 전환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헌데 손가혁은 구좌파도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불만에 가득한 자들입니다.
      일베와 비슷하다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3. 2017.03.15 00:06

    공감이전혀 되질 않네요

  4. 늙은머슴 2017.03.15 00:16

    인과관계가 부족한 자기주장만 늘어놓은 현학적인 글이네요. 논리적으로 주장하려면 근거가 확실해야 합니다. 근거가 막연한 추측에 의해 쓰여진 글은 조금만 읽어도 알수있습니다. 뉴라이트와 같은 맥락의 주장은 독자들의 외면을 불러옵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00:42 신고

      그건 당신의 생각이고요.
      맨 처음에 분명하게 근거를 밝혔는데요.
      당신처럼 진실과 팩트를 보지 않으려는 자들만 이재명과 손가혁의 문제를 외면하지요.

  5. 늙은머슴 2017.03.15 00:21

    일베와 손가혁이 같다는 주장은 막연한 추측이죠. 정확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일베회원으로 많은 활동을 한 다수의 회원들이 손가혁에 있고 그 명단 정도는 있어야 사람들이 사실로 인지할수 있을겁니다. 그런 근거가 없다면 말장난에 불과한겁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00:43 신고

      손가혁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글과 등급, 혁명방식, 문재인을 쫓아다니며 공격하는 것 등 증거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데요.

  6. 이런. 2017.03.15 00:41

    무엇을 근거로 이런 읽히지도 않는 장황한 글을 쓰는건가요?
    주장에는 선명성과 팩트가 기본입니다.
    본인주장만이 담긴 글은 공감도 힘들고 읽히지도 않습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00:44 신고

      손가혁들이 떼거리로 몰려와도 나한테는 안 통해요.
      일베나 손가혁은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것은 그들의 수단이 똑같은 데서 나오고 그것이 지지율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외눈박이로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흐려보일 뿐이지요.
      이재명 비판을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친 것에 감사해야 할 걸요.
      어차피 후보자토론을 통해 많은 것들이 밝혀지겠지만...

  7. 耽讀 2017.03.15 07:22 신고

    극과 극은 통할 수 있지요.
    민주주의 반댓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죠.
    갈수록 그들에게 드는 느낌입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15:51 신고

      네, 그러합니다.
      이재명의 지지자들이 심상정과 겹치는 부분도 저는 불만입니다.
      이재명 때문에 진보정당의 표가 날아가니까요.
      이재명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정의당 표마저 가져가면 더민주 판이 됩니다.
      저는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이지 더민주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8. 최권해 2017.03.15 09:23

    진영논리를 전제로 두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위계서열과 수단적 가치를 추종하는 행태와 대동소이하다고 봅니다.

    손가혁이 뭐라도 되는줄 아시는 모양인데, 서로 어떤 유대관계도 이해관계도 없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붙은 이름일뿐이죠. 집단주의에 무척 익숙하다못해 집착하고 있는 그 태도로 평화 공존을 논하는 것 부터가 대단히 재미있네요.

    누가 어떤 발언을 하든지 그것은 개인입니다. 세작이 숨어들어 분열과 이간질을 의도적으로 일삼았을 수도 있고, 구태정치에 염증을 느낀 일부 사람들은 상황을 살피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정치인들을 주로 보다가 달변가 스타일의 정치인을 만나면 열성 과격 지지자가 될 수도 있는 법이죠. 아주 다양한 개인들의 생각이 표출되는 현상일 뿐입니다.

    이걸 신좌파vs손가혁 이라는 프레임으로 만들어버리는, 자신들을 마치 '애국보수'로 자칭하고 진보 보수 떠들며 진영논리로 부도덕 행위를 덮는, 대단히 '일베스러운' 재미있는 행위도 뭐 개인의 생각의 표출이라 여기고 존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탄핵이 무리다 했던 이 시장의 발언은 국정농단 의혹이 스타트를 끊은 그 시점이었고, (10월 20일 경)증인들의 증언이 밖으로 드러나자마자 그 즉시 탄핵을 외쳤답니다.(10월 29일)

    그렇다면 같은 시점에 탄핵이 국정 운영과 민생경제에 타격이 될 것이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발언한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문제삼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탄핵은 일절 언급도 하지 못하다가 민의와 시류에 그저 편승하기만 바쁜 아무개들을 먼저 문제삼고 내부에서 냉철하게 비판하는 쪽이 순리에 맞을 것 같습니다.

    손가혁 아무리 몰려와도 끄떡없다고요?
    저는 손가혁은 아니지만, 그쪽같은 궤변론자가 아무리 몰려와도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웃고 말 테니까요.

    • 늙은도령 2017.03.15 16:00 신고

      먼저 이 글은 손가혁과 일베의 공통점을 설명하려는 것이고요.
      그들의 전부가 아니라 폭력성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진영을 나눈 것은 당연하지요.
      그것이 정치철학의 기본이고 정당의 기본이니까요.
      대통령이 되면 국민 전체를 상대해야 하지만 지금은 당내 경선입니다.
      구좌파와 신좌파의 차이를 설명한 것은 이재명이 스스로 구좌파로 자신을 한정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드린 것이고요.
      이재명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빙 돌려 말해준 것이고요.
      손가혁이 변하지 않는 한, 지금 같은 방식을 쓰는 한, 세작이 있다면 그들을 골라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이재명이 손가혁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는 한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비판도 최소화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재명을 비판하고자 하면 수십 편의 글을 써도 모자랄 만큼 축적된 상태이나 이재명을 한창 지지하던 시절의 제 판단의 잘못 때문에 참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우상호는 수없이 비판했고, 문재인이 잘못했을 때도 비판했고, 손혜원과 표창원도 마찬가지고요.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잘못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비판하지 않으면 국민이 피해를 입고, 특히 미래세대가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손가혁은 자정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 한 이재명을 특정 공간에 잡아두는 것일 뿐입니다.

  9. 지누맘 2017.03.15 09:48

    남인순이 문캠에 합류한게 치명적인건가요 말이많던데 훅갈수도 있다고요ㅠ

    • 늙은도령 2017.03.15 16:07 신고

      그 부분은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여성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차별에 놓인 인류의 역사를 관통할 때, 저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성의 차별과 희생을 당연시여겨온 유교의 영향이 너무 크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어느 나라보다 심해 급진적 페미니즘에도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차별이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여성분들 중에서 과격할 정도의 투쟁을 보이는 분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 아니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여성이 평등해지는 날까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늘어나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대기업과 정부 부처 등에 가보면 여성이 늘었다고 하나, 차장이나 부장에만 이르러도 여성은 엄청나게 적습니다.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임신, 출산, 육아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역차별이 수십 년은 이어져야 양성평등이 이루어집니다.
      이밖에도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설명할 것은 무척이나 많지만, 대선 기간 동안 몇 편의 글은 올릴 생각입니다.
      여성의 표가 대선을 가를 것이기 때문이고, 여성의 권리와 자유, 선택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입니다.

  10. 지나가는 이 2017.03.15 12:18

    항상 응원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

    • 늙은도령 2017.03.15 16:09 신고

      감사합니다.
      모든 독자분들이 소중한데, 가끔은 또라이들도 들어오는지라^^

      좋은 토론의 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1. 2017.03.16 04:31

    최근 민주당토론횟수에 대해 어깃장을 놓으며 뜬금없이(?)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고 있는 이재명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역시 뜬금없이(?) 박사모가 되어 동생의 적이 되어버린 그의 형이 떠오릅니다.
    원하는 것이 뜻대로 얻어지지 않으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하여 달려드는 것. 이것은 정치적 계산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은 이재명뿐만이 아닌 듯합니다. 여럿 있네요(박지...이라든지...안철...라든지...김종...이라든지...)
    도령님 말씀대로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다면 그가 어떤 괴물로 진화할지 두렵습니다. 그에게는 두려움과 분노가 보입니다.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 또한 참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그렇게 보입니다. 지지했었는데...참 안타깝습니다. 분노는 사람을 가장 망가뜨리는 것이니까요.
    윗 댓글 중 손가혁이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 하셨는데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것들 중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도덕이나 질서같은 것을 헤친다면요? 손가혁이 그대로 명맥을 잇는다면 20년쯤 후 그들이 제2의 박사모가 될 것같다는 걱정 또한 그저 궤변일까요?

    • 늙은도령 2017.03.16 15:22 신고

      님이 잘 보셨습니다.
      이재명은 조울증환자 같은 면이 강합니다.
      실제 정치인 중에 조울증환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 선배와 동료 중에 정치인을 상대로 상담과 치료를 하는 정신정신과 의사들이 몇 명 있는데 환자 관려 내용은 말해주지 않지만 정치인들 중에 조울증환자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많다는 얘기는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이재명의 행태를 보면 그런 면이 보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피해가 될 것 같으면 사회경제적 약자에게도 공격을 퍼붇습니다.
      두려움과 분노가 조울증적 현상으로 나타나면 이재명의 행태와 비슷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재명은 성품과 인격에서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손가혁은 세상을 그저 박살내고 싶을 뿐입니다.
      삼성을 미워한다고 해서 해체하는 식이라면 답이 없는데, 그냥 싫은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변할 줄 아는데, 드골도 얼마가지 못해 쫓겨났습니다.
      국민적 동의가 없다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기득권의 반발과 법적, 언론적 장치들이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이상은 폭력입니다.
      손가혁은 세상을 증오하는 식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극좌와 극우, 어디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손가혁 중에서 구좌파인 분들은 심상정을 지지하는 것이 맞는데, 왜 이재명을 지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상정은 이재명의 최대 피해자입니다.
      손가혁 중에서 제대로 된 생각이 있다면 이재명이 탈락했을 경우 심상정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럴지 잘 모르겠네요.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최소한의 정당성은 확보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은 통진당의 극렬당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12. 슬프네요. 2017.03.16 13:57

    진보적 자유주의, 새로운 질서는 몇번의 정권에 걸쳐 이루어져야 할 일이고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이분들 모두 이 과정을 이어나가야 할 사람들인데...
    소중한 자산이 하나 망가져버리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본인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폭주하는 그분이 어서 진정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망가짐과 분열마저도 일베를 비롯한 수구지향 세력이 지향하는 바인것만 같아
    속이 쓰리네요.

    • 늙은도령 2017.03.16 15:25 신고

      이재명은 너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돌아온다 해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성품과 인격적인 면에서 한참을 수양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려 한다면 답이 없지요.
      그것부터 확실하게 해놓으면 그러면 믿어보겠는데.....

    • 오잉??? 2017.03.17 12:16

      글이 길지만, 요지는 이재명손가혁과 일베의 폭력성은 같은 점이다라는걸 정치이론을 끌어다가 쓰셨네요. /동의하지만 더나아가야죠./ 저는 분명히 다른게 볼점을 한가지 예로써 지적하죠./ 대한임시정부당시 무장투쟁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 사회에 희생당한 분노로 뭉친 집단(저포함) 들을 분노에만 사로잡힌채 활동하게하는건 문제지만, 그들은 분명한 우리편입니다.. 적의 굴레씌우면 낙인찍힌데로 행동할 겁니다. / 우리편으로 활동할 조화될 방법을 제시해야되요.../ 그 예는 안중근의사죠. 무장투쟁의 대표이지만, 심지어 일본순사들을 비롯한 주변모두에게 존경받은 분입니다./ 손가혁은 안중근을 모델로 삼으면, 정말 훌륭한 세력이 될겁니다. / 지금은 늦었고, 그럴눈도 다 멀어버렸겠지만.../ 이재명은 참....동네 구청의 마케팅 팀장정도가 딱 좋겠네요..(자기방어성에따른 폭력성) 정말 그누구보다 정확한 분석이네요.

  13. 이원 2017.03.20 19:39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지각색입니다
    손가혁 멤버도 있겠지요만 그냥 따로인 개인들이 훨씬 많겠지요
    그 많은 개인들이 님의 범주에 들어가나요 ?
    일베가 극우이고 손가혁이 극좌다라는 말 참 쉽게 하십니다
    책 좀 읽었다고 님의 시각에 그냥 막 끼워넣습니까 ?
    이재명의 몇 개의 실수 또는 잘못이 이재명을 규정하는 겁니까 ?
    그런 식으로 싸잡아서 얘기한다면 도대체 문재인과 안희정을 우리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
    규정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정도는 아실 분이 너무 하군요
    공부 더 하시고 반성도 하시고 그러세요

    당신같은 지식인은 그래야만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20 23:17 신고

      이재명의 몇 개의 실수요?
      음주운전, 논문표절, 검사 사칭 같은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성숙도가 낮아서 그렇지 선진민주국가 같았으면 정치권에서 백 퍼센트 퇴출됐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이상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인정하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이재명을 지지했지만 그의 범죄와 언행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려는 구좌파적 행태로 대변됩니다.

      이재명의 지지자 중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래서 그들의 지지에 대해 존중하지만 손가혁으로 대표되는 이재명 지지자의 행태는 비열합니다.
      그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은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받아들일 수 없네요.

      서로 다르면 다른 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이고요.
      성숙도 각자의 몫이고...

  14. 네리천사 2017.03.21 04:57

    논문표절은 대학에서 아니라고 공식입장 냈고, 검사 사칭한 거는 전화를 잘못 받은거라고 말했죠. 음주운전은 맞고요. 잘못했다고 사과도 했죠.
    그리고 정치성숙도가 높은 나라였으면 애초에 초등학교 때 공장에 들어갈 불쌍한 사람을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말도 안되는 국정농단사태도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정치 성숙도가 높은 나라의 기준이 뭔가요? 일명 정치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유럽국가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따로 분리해서 봅니다. 집에서 깽판을 치는 사람이라도 정치인으로써의.자질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국가가 잘 운영 되는 거죠. 게다가 오바마도 마약사범이었죠. 범죄자라고 낙인찍고서 아 저사람은 과거에 저랬으니 앞으로도 안된다는 마인드야 말로 후진국적인 마인드 입니다.
    그리고 무슨 잣대로 이재명이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말합니까?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 시민과의 대화를 위해 시장실을 개방합니까?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만듭니까?문재인 대세론 하는데 왜 이렇게 문재인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많을까요? 그건 자꾸 동문서답하는 불통과 뚜렷하지 않은 정책 때문입니다. 일부 논란이 대한 지적을 했는데 자꾸 다른 소리를 하니 이재명 후보가 답답할만도 하지 않나요? 일부 극단적인 지지세력의 잘못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그가 보여주는 선명성과 정책 방향의 뚜렷함은 문재인 후보에게는 없는 겁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과연 저 사람에게 맡길 수 있을까? 란 불안함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거죠.

    우리나라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하나로 보는 정치문화가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재인이 노무현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리고 박근혜도 그래서 뽑힌거죠. 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낙인찍어버리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한 번 실패한다고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린다면, 삶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평생 남 눈치만 보다가 살아가는 겁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고 대의 민주주의도 불완전한 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틀 안에서 누가 가장 합리적인 수행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 관점에 맞춰서 우리는 지도자를 뽑아야 합니다.

    제가 볼 땐 이번 대선 결과가 우리나라의 국민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아주 중요한 대선일 겁니다. 누가 되든 제발 국정운영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뿐이죠.

    • 늙은도령 2018.05.14 23:56 신고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재명은 그 기준에서 한참은 떨어집니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통치자가 될 수 있는 체제이자 행동양식이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법치주의로 정합니다.
      이재명은 그것을 넘지 못하는 후보인데, 이 나라가 하도 개판이어서 받아준 것 뿐입니다.
      성남시를 거점으로 삼은 것은 경기동부연합의 근거지였으니까요.

  15. 제조산하 2018.08.14 17:13

    댓글에서 보여주시는 구절구절들이 참 와 닿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브루스 H. 립튼과 스티브 베어맨의 《자발적 진화》를 보면 진화론의 진정한 창시자는 다윈이 아니라 윌리스라는 내용이 나온다. ‘다윈이 오랫동안 품어왔지만 아직 부화하지 못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을 때, 윌리스는 완성된 이론을 이미 ‘써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평민이었던 윌리스가 <원래의 형태로부터 정처 없이 멀어져가려고 하는 품종의 성향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필사본을 다윈에게 보내지 않고 출판했었다면, 진화론을 발견한 영광은 다윈이 아니었을 것이며, 다윈 이후의 역사도 바뀌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윈이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당시에 다윈의 후원자인 ‘라일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 윌리스의 문서를 뜯어고치고 표절하여 귀족인 다윈이 선취권을 차지하게 하고 평민인 윌리스는 부차적인, 후배 기여자라는 미심쩍은 영광에 머물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발적 진화》의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사기극이라 할 수 있는 희대의 조작작업이 불러온 결과에 대해서다. 말년의 다윈이 훗날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왜곡될 자신의 진화론에서 멀어졌듯이, 다윈의 진화론이 영광을 독차지하면서 세상은 정글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윌리스는 평민의 관점에서 진화란 약자의 제거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윈은 동일한 데이터를 적자의 타고난 생존의지에 의해 진화가 일어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 차이는 뭘까? 윌리스의 세계에서는, 우리는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개선시킬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싸워야 한다. 달리 말해서, 윌리스가 우세했더라면 경쟁보다는 협동에 더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다.



이렇게 윌리스의 진화론이 소수의견으로 격하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권력과 동격이 된 진화라는 작업이 자연선택이라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적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인식됐다. 이런 냉혹한 세계관이 허버트 스펜서를 거치면서 적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되는 폭력으로 변질됐다.



적응하는 자만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방식에서, 적응이란 한 종이 후대에서도 그 숫자와 유지되거나 늘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건강을 유지함으로써 적응하거나 적응한 후손을 갖는 것이야말로 하나의 목적이 된다. 우리 인간이 그 목적을 자비심으로써 성취하느냐, 기관총으로 성취하느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협동은 사라졌고 경쟁만 남았다. 작은 단위의 경쟁은 더 큰 단위로 번져갔고,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교리까지 치달았다. 인간의 조건이란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자연상태로 돌아갔고, 말년의 다윈이 《인간의 유래》에서 인간 진화의 추진력으로 제시한 사랑과 이타심, 호혜적 협동 같은 것은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난 것이 돼버렸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뉴턴의 역학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발견한 멜서스의 '인구론'에 경도된 다윈의 진화론은 거의 모든 인류 문명에 영향을 미쳤고,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지배적 시각을 제공했다.



특히 거의 모든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동물의 왕국>은 다윈의 진화론의 핵심교리를 적자생존으로 왜곡시킨 허버트 스펜서의 시각이 가장 많이 적용됐다. 권력욕이 강한 지도자일수록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적자생존의 정글은 ‘신은 승자와 함께 한다’는 신념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사자처럼 먹이사슬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동물에 포커스가 맞춰진 <동물의 왕국>도 있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동물의 왕국>도 있고, 먹이사슬의 하층부에 있지만 무리들이 협동해서 최고의 강자들을 물리치는 <동물의 왕국>도 있다.



어떤 <동물의 왕국>에서도 정글이나 초원 전체를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절대 강자나 유일 승자는 나오지 않으며, 지독한 가뭄이나 감당하기 힘든 폭우처럼 외부의 충격ㅡ특히 인간의 탐욕ㅡ이 개입하지 않는 적정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동물의 왕국>을 관통하는 주제다.



따라서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며 다윈식의 적자생존과 절대복종에 집중하는 것만큼 비정상적이며 폭력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욕의 화신이 아닌 이상 <동물의 왕국>을 보며 ‘동물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편집증적인 환상에 빠져드는 것만큼 잘못되고 위험하며 천박한 인식도 없다, 푸른 기와집의 세입자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불루이글 2015.07.21 08:08 신고

    밀림의 왕 사자같은 맹수도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사냥이상의 살생을 하는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권력과 재물에 눈먼 독재자와 아귀같이 배부른줄 모르는 악덕 자본가들이 동물의 왕국에서 교훈을 얻기를 희망할 따름입니다.

    훌륭한 글 잘 보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7.21 08:31 신고

    저도 언젠가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교묘한 수를 쓰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배신하지 않는다는것은 주관적인 생각일뿐입니다
    무언가 착각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19 신고

      보는 사람이 그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지요.
      박근혜는 배신이 두려운 것입니다, 아버지의 최후 때문에.

  3. 『방쌤』 2015.07.21 10:01 신고

    하물며 동물의 세계에서도 배울 점이 있는데,,,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늙은도령 2015.07.21 15:21 신고

      네, 윌리스의 진화론이 보다 현실적입니다.
      그의 진화론이 대세가 됐다면 인류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인식이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지요.

  4. 耽讀 2015.07.21 12:53 신고

    같은 장면을 봐도 사람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동물의 왕국도 비슷합니다.
    박그네는 '배신'만을 봤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성애', '부성애', '공동체'를 봅니다.
    다윈 진화론만 생각했는데
    윌리스는 솔직히 생소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23 신고

      실제 생물학계에서는 다윈-윌리스 진화론이라고 합니다.
      다윈에게만 전적으로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전공을 하지 않는 대다수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요.



발터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인용한 어느 생물학자의 말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가 만물의 척도로 존재했던 시간을 24시간으로 환산하면 마지막의 2초에 불과하며, 문명화 기간은 그 마지막 1초의 5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류는 그 찰나 같은 시간 동안 진보의 이름으로 고삐 풀린 과학기술과 모든 분야의 전문 지식을 총동원해 지구상의 모든 자원과 노동을 착취해 지구를 공멸의 위기로 내몰았다.





생물다양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에 존재했던 종들의 90% 이상이 그 마지막 2초 동안에 멸종됐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을 속출시키고 있는 지구온난화도 그 임계점인 2℃ 상승에 근접해가고 있다(하랄트 벨처의 《기후전쟁》을 보라). 예측불가능해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전 지구적 재앙은 국가의 부와 지역적 특성에 따라 차별화되고 순차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도 인류가 대오각성 하는 것을 근거로 한 것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이산화탄소가 불러올 지구온난화의 사회적 비용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5배 이상 크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대륙과 국가, 사회, 계급,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상 최고의 빈부격차가 벌어진 이유를 설명한 후에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몇 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심각한 전망을 내놓기까지 했다. 자크 아탈리는 10년 전에 이런 현상을 예상이라도 했듯이 《인간적인 길》을 내놓았고, 많은 지도자들이 ‘제3의 길’도 가보았으나 상황은 그들이 생각하고 바랐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보수 경제학자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심화됐는지 방대한 자료와 지독히 간단한 공식으로 입증했다. 



토마스 만 이래로 끈질기게 인류를 유혹하고 현재의 문제에 한 발 물러서게 만드는, 우리 모두의 유토피아로 가는 길은 언제나 자본과 권력이 선취해 자신의 신무기로 만들기 때문에 파편화된 개인에게는 나쁜 결과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유토피아가 보여주는 달콤함이란 미래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야라는 현실도피의 한 형태로 나타나거나 억압과 착취에 순응하도록 만든다(특히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와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를 보라).





대체 인류 역사의 마지막 2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그 2초의 만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근의 250년 동안, 더 정확히 말하면 전체주의적 자본주의의 정수인 부정적 세계화(신자유주의)의 3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기에 인류의 문명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성장과 개발이 꾸준히 이루어진 인류 진보의 과정에서 대체 무슨 일들이 있어 인류는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까?



영원한 진보를 추동하는 과학과 기술-경제적 관점이 어떻게 테크노폴리화 되면서 세상을 파국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지 살펴볼 때 우리는 그 이유의 일단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직선적인 성장만 인정하는 지배와 착취의 사회철학이자 사회공학인 계몽의 변증법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소외가 급진적 자살관이나 자아의 완전한 고립과 타자에 대한 적대적 배척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개발은 왜 진행될수록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높아지는지, 개발의 결과가 지구적 차원의 퇴행으로 이어지는지, 이런 부정적 사례들이 가시적인 형태로 널려 있는데 왜 시민이라는 계몽된 인간들은 동물적 쾌락과 철저한 순응에 빠져드는지, 그런 악순환의 고리와 구조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분명 세상은 발전해왔다고 하는데 인간 생존의 조건인 삶의 궁핍함과 초라함은 자기 파괴적 단계에 이르렀으니, 그 모순된 현실(개발의 역설)에 대해 근본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인류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인류가 저지른 일은 인류가 아니면 풀어낼 수 있는 존재가 없고(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보라), 과거에 대한 반성적 고찰 없이 매번 처음일 수밖에 없는 현재를 미래에 투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성장과 개발은 파괴적 결과로 이어지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파멸에 이를 때까지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구를 이토록 망쳐놓은 인류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의 대반격 앞에서 빈곤과 결핍의 중하위층부터ㅡ물론 상류층도 피해를 면할 수 없지만, 최소화할 수는 있다ㅡ회복 불가능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근원적인 모순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파멸을 피하려면 과학과 기술-경제적 발전과 관료제 등에 의해서 진행되는 진보의 신화인 근대이성의 기원부터 시작해 최근의 30년 동안에 벌어진 일들을 해체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에서 살펴봐야 한다. 동시에 국가의 전체화하는 경향과 개인화하는 경향을 살펴봐야 하고, 푸코로 대표되는 사건 위주의 단절과 분절, 충돌과 상호연관 및 권력 작동으로서의 통치술의 변천과 같은 미시적 접근,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와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다룬 것처럼 거시적인 접근도 해야 한다. 


 

특히 독일에서 시작돼 영국과 미국에서 변형된 시장 중심의 자유민주주의를 살펴봐야 하고, 타락한 방송과 신문을 대체하고 있는 포탈의 역할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방패막이를 이용해 거대금융집단과 초국적기업들, 미국의 NSA와 CIA처럼 각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이 인류를 감시하고 지배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빅데이터 구축과 그것의 군사와 외교와 통상 및·경제적 활용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에 따른 프라이버스 침해 문제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이런 일들은 사회적 차원을 넘어 전 세계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최소한 고발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시사회의 등장은 현재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구글과 똑같은 꿈을 꿨던 필자가 장담할 수 있다). 개인의 행동이 예측되기 시작하면 감시사회는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의 내밀한 삶 깊숙이 파고들어 전제적 행태를 보일 수 있고, 최소한 경제적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악의 근원인 미국의 연방정부(연방준비제도를 포함한)를 장악하고 있는 전 지구적 통치엘리트와 UN 및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사법제도, 월가와 런던의 금융 세력들, 이들의 그림자로 전체를 조율하고 있는 극소수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들과 모든 것을 쇼로 만들어버리는 대중매체와 영상산업, 권력과 자본의 시녀와 나팔수 역할에 충실한 언론(특히 방송)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자아와 전체를 통일시켜ㅡ이것은 책략이라는 술수가 내재해 있는 이성의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고, 후대에 의해 위대한 칸트의 관념론이 비판받은 이유다ㅡ이성의 지배를 공고히 한 칸트의 관념론을 넘어, 주체와 객체에 대한 치열한 공방 속에서 더 이상 생각을 밀고나갈 수 없어서, 계몽에 의해 완성된 시민인 자아(주체와의 차이에서 나오는 특수성의 담지자)에 대해서 전체로서의 사회(또는 체제로서의 객체로 보편성과 영원성의 담지자)의 우위를 선언한 헤겔의 변증법적 낙관론, 오직 노동자의 구원에만 집중해 자본에게 세계를 석권하는 길을 열어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극단의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탄생한 이상, 자본주의와 운명을 달리 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영향력은 특히 학문적으로, 여전히 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치밀한 분석력과 통찰력은 현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는 필수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명과 자본주의 세계화와 계층화에 대한 정확한 비판은 탁월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로 확장되면서 부자와 빈자, 부국과 빈국의 차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인간소외, 물신숭배, 생산과 소비의 과잉, 공황의 문제 등도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싫든 좋든 마르크스를 탐구하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사회과학자라면 마르크스에 신세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듯, 마르크스에게는 독보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2005년, BBC방송은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를 뽑았다. 단연 1위는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주의가 비록 현실에서 다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했고 여러 대안을 세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일부 결론상의 오류가 있었지만 마르크스 사상이 갖는 중요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면서 "그의 사상은 역사, 사회를 바라볼 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인간의 인식을 높여주며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고 강조했다.(위키백과에서 인용)



세계사적 사건인 스탈린의 굴락과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일본에 떨어진 두 발의 원자탄과 홀로코스트의 발전된 재현인 베트남전쟁, 소비지상주의와 ‘테러와의 전쟁’을 증거를 조작(한국의 국정원처럼 미과 영국의 정보기관이 조작하고 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부시와 블레어가 요구했던)해서 제멋대로 선언한 9.11사태에 대한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폭력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이자 우월한 인종으로서의 백인의 천국을 꿈꾸는 신보수주의자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또한 미국의 악마성을 가장 잘 드러낸 2008년 신용붕괴와 대마불사를 확인한 천문학적인 보조금 지급, 무기력한 유럽을 상징하는 장기적인 경제위기, 독일의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제3제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뒤집혀진 유럽, 역사의 비극은 더 큰 단위로 되풀이될 뿐이라는 3.11 일본 제1원전 폭발, 군국주의적 재무장을 통해 1등 국가로 재도약하려는 아베의 광기어린 부활, 부정적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세력의 힘이 너무나 미약함을 입증한 시애틀 세계화포럼 반대시위와 2012년의 ‘성난 사람들’의 ‘점령하라 운동’의 초라한 결말 등에 내재돼 있는 인류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부정적 세계화에 적극적인 나라일수록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과 그들의 그물망이 지구 전체를 덮을 정도로 커졌고 촘촘해졌으며 가벼워졌고 그래서 그만큼 유연해졌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곳곳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해짐에 따라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기상이변과 사막화, 물 부족 사태와 바다 산성화, 전 방위적인 생태계파괴 등이 파시즘적 속도로 이루어낸 무차별적인 개발과 성장의 역설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성장하고 개발할수록 지구는 파괴되고 불평등이 늘어난다면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봉포스트 2015.01.19 20:48 신고

    아..유익하면서도 재밌네요.
    잘 읽다 갑니다!

  2. 참교육 2015.01.19 21:20

    자멸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자연파괴에 대한 보복이 곧 밀어 닥칠 것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19 22:15 신고

      자업자득이지만, 상위 1%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극단화되지 않는 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는 1%에서 대부분의 생존자가 나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음에도......

  3. base 2015.01.20 01:55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도령께서 영화평을 하신 어느 시점에 제가 '설국열차'를 언급했더니 마르크스로 답변하시더군요. 그런데 요즘 점점 더 그 영화가 생각난는지 모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래야 훌륭한 글로 애국하시고 저 같은 사람이 살 만한 가치와 의미와 희망을 가지거든요. 오늘 한 잔 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20 02:50 신고

      설국열차의 엔진은 자본주의를 말합니다.
      신성한 엔진이란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말하고요.
      맨 뒷 칸에서 앞 칸으로 가는 과정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 상태에서 계층의 피라미드를 거슬러 올라가는 혁명을 말합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포함돼 있는데 그 핵심에는 마르크스가 있습니다.
      아울러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내재돼 있습니다.

      님의 댓글을 보니 설국열차에 대한 감사평을 길게 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한 번 시도해볼 가치가 있어 보이네요.

  4. 공수래공수거 2015.01.20 08:47 신고

    제 수준을 뛰어 넘는 글이십니다

    인간은 자연을 이길수 없고 이기려 하는 방법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 라고 저 나름대로 이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1.20 13:42 신고

      네, 공존이 중요합니다.
      공생과 함께요.
      과학기술의 발달이 미진할 때는 크게 일을 벌이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 글은 출판을 목적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조금 어렵습니다.



특히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국가의 권력기관들이 선거에 개입한 증거들이 넘쳐나는 데도 이에 대해 단 한 마디 사과도 없는 대통령이 거의 모든 공약을 파기하고 뒤집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통령은 정체불명의 민생경제만 외치면 콘크리트 지지율을 구성하는 자들이 격정적으로 화답한다.



온갖 불평등을 고착화시킨 성장 위주의 민생만 외치면서도 내놓은 정책마저 어그러지기 일쑤인 현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에게 지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겨준 전임 대통령이 여전히 활개 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금까지 나온 전 정부의 선거 개입이나 각종 비리, 4대강사업과 불법으로 얼룩진 자원외교 등 당장이라도 그를 법정에 세워야 하는데 대체 현 대통령은 어떤 말 못할 사정이라고 있는지 검찰총장과 담당 검사들을 찍어내 발라내는 반민주적 행태들만 보여주며 세월아 네월아를 흥얼거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국가 안보와 좌파 및 종복몰이라는 만병통치약과 전가의 보도가 있다. 미국이 핵무기 보유(또는 가능성)를 공공연히 인정하기 시작한 북한의 움직임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미국으로부터 어떤 언질을 받았는지, 뜬금없이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신종 무기를 들고 나온 현 정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전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통일마저 경제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국내 경제와 세계 경제의 어려움을 대변해주고 있지만,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대한민국도 이에 속한다)들이 이미 폐기한 성장지상주의의 새로운 버전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기 그지없다.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사전 준비가 선행돼야 하고, 낮은 단계의 통일이라고 해도 국내의 일자리 상당수가 북한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1030세대의 취업률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부터 확고한 보증을 받은 기업들이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북한에 공장을 세울 것이며, 무분별한 자원 개발은 한반도의 대기와 토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이 부와 위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통일은 대박이다’도 같은 과정을 되풀이할 것은 지난 70년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필자가 보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의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일 것이며, 통일비용(수백~수천조)을 감당하지 못해 국가의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과의 신뢰 구축 없이 통일을 경제적 이해득실만으로 접근한다면, 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이는 독일의 통일을 연구한 수많은 저작들과 연구논문들이 통계수치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낙수효과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듯이, 부의 재분배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제성장은 반드시 부와 위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이를 바로 잡으려면 전 세계적 노력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진보 개념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로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원한 진보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헤겔은 인류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유의 왕국’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유럽의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라는 타협책을 들고 나옴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란 전복적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가상의 유토피아와 시민 중심의 사회라는 지속되기 어려운 동거에 들어갔다. 폴라니의 마르크스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계급 간의 투쟁이 역사의 실체라면 계급이 사라진 역사란 존재할 수 없음에도, 유럽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혼합을 선택함으로써 ‘사탄의 맷돌’로서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처방전을 바탕으로 타협해버리는 우를 범했다.





이렇게 전복적 혁명을 막아낸 그들은 내부로부터 무한 경쟁을 지속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와 타협함으로써, 강력한 외부의 압력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 자라고 있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에 의해 견고했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견고한 것들이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녹아내리며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고 있다.



이에 반해 20세기 내내 마르크스를 수없이 부관참시해 그의 사상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은 미국의 지배엘리트들은 국가와 정치 자체를 기업과 비즈니스로 만들어 돈이 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데 성공함으로써 온갖 불평등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사회경제적 평등에 대해서는 대놓고 경멸을 표하는 이들은 성공과 대박에 대한 환상을 강화하며 건국의 순간부터 체제의 바탕에 숨겨놓은 전체주의적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했던 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돈이 되는 그의 영화는 최대한 우려먹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개인의 신앙과 공기에도 신용 등급을 매기는 데까지 거침없이 나갔고, 대중매체를 동원한 문화산업을 통해 시민의 의식마저 동질화하고, 개인의 기호마저 자본주의화 하는데 성공했다.



세상을 양분했던 서구의 두 가지 산업주의 모델 중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린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하이에크-대처’라는 정치경제적 조합과 ‘제3의 길’이라는 토니 블레어 내각의 일탈을 거쳐 2008년의 신용붕괴를 거치면서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고, 유럽의 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독일 중심의 유럽으로 재편되고 있다. 곳곳에서 칼 슈미트와 히틀러의 조합이 부활하고 있으며, 예외상태에서 더욱더 힘을 발휘하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신자유주의라는 타락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복지국가의 마지막 뿌리마저 뽑아내고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에 대해 유일한 예외국가임을 스스로 천명한 미국에서는 프리드먼-레이건 조합, 진보의 중심에 보수의 씨앗을 파종한 클린턴, 미국 백인 상류층이 지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국가업무의 민영화를 울부짖으며 세계를 상시적 전쟁상태로 몰고 간 부시, 월가와 실리콘벨리가 인정한 ‘검은 피부의 하얀 가면’의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돈으로 흥청망청 살아온 유일 제국의 맨얼굴과 치부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단 40년 만에 조상이 쌓아온 어마어마한 부를 모두 탕진한 유일 제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제국인 중국과 정치경제적 식민지인 일본과 한국 등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무제한적인 양적완화와 무차별적인 무기 수출, 점점 줄어드는 유학생 유치, 근육질 판타지와 지구방위대로서의 십자군전쟁으로 일관하는 헐리우드의 영상산업, 갈수록 하한선이 내려가는 투자이민, 저임금 노동자로 부려먹던 불법체류자의 추방, 가뜩이나 부족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의 축소,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의 대규모 삭감 등으로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다 부도난 통장을 메우고 있지만, 현재의 허상과 과거의 영광 사이에 갇혀 있는 유일 제국은 제살을 깎아먹고 있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구온난화에 치명적이며, 물의 대규모 오염을 피할 수 없는 세일가스에 대한 본격적인 채굴과 사용은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처방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익보다 큰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처방, 즉 고율의 법인세와 상속세, 슈퍼리치와 각종 분야의 스타들에 대한 누진과세, 토지세와 환경세 신설, 금융권의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 같은 일련의 조치에 성공하면 제국의 부활은 가능하다.



꿈같은 이런 스토리는 모든 불평등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존 로크의 사상ㅡ자연법을 이용해 소유권 개념을 정립했지만, 신을 끌어들여 침해불가능한 권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타인을 착취해 무제한적인 부의 축적을 가능하도록 만든 사상ㅡ을 칼뱅의 예정조화설과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떠받드는 연방국가 미국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미국 혁명의 결실이었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독립선언서'와 ‘연방주의자의 연설’에서나 가능했던 가상의 것이었을 뿐, 현실에서는 건국 초기에만 제한적인 사람(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들만 누릴 수 있었던 인류 최고의 호사였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적 이득보다 손실이 커졌기 때문에 노예해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끝끝내 부정하려는 건국 이래의 새빨간 거짓말들을 되풀이하면서.



스미스와 리카도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식에 불과한 것들을 무슨 대단한 경제이론을 제시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만큼 미국은 ‘불경한 삼위일체’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준 숙주이자, 2008년 신용 대붕괴 이전까지는 가장 큰 시장이었고, 그 역할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해 전 세계를 부정적 세계화의 올가미 속에 가둬버린 주인공이었다. 

  1. 태봉 2014.09.05 14:47

    재미있습니다^^잘 배우고 갑니다~~~

  2. 산바위 2015.01.16 19:57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1.16 22:08 신고

      건강 때문에 연재를 중단했는데, 체력이 회복되는 대로 연재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상당 부분 써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체력만 돌아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분명 우리는 예전만큼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도 예전보다 수백 배 이상 커졌습니다. 1인당 GDP도 30,000만 달러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현 대통령은 '줄푸세'를 통해 임기 내 40,000만 달러에 이르는 기반을 다지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달콤한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집니다. 경상수지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나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모순된 경향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다룬 몇 권의 책을 중심으로 모순의 기원을 파고들어갈까 합니다. 《블랙스완》, 《프랙털 이론과 금융시장》, 《롱테일 경제학》을 중심으로 노력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모순을 밝혀보겠습니다. 이 책들의 저자들은 너무나 당연해 의심해본 적이 없는 보편적인 진리가 부분적 진리일 수도 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예로서 2008년 금융위기와 중후장대한 무거운 경제를 대체해가고 있는 가벼운 경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줍니다. 단 하나의 증거만으로 이전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세 권의 책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2030세대들은 이전의 세대들보다 더욱 공부하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 세 권의 책은 그 기원과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며,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기도 합니다. 



 

 

먼저 세 명의 저자는 불평등의 기원과 그의 심화를 밝히기 위해 마테효과(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될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 마저 잃어버리라, 사악한 경제학자들이 성경에서 찾아낸 부익부빈익빈의 근거)와 파레토 법칙(모든 공동체에서 전체를 먹여살리는 것은 뛰어난 20%의 엘리트다, 차별의 근거와 엘리트주의로 악용)과 파레토 최적(사회와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최적의 이익이 주어진 상태. 따라서 추가적인 자신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손해를 피할 수 없는 상태. 문제는 이런 완벽한 균형상태가 여러 가지여서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가 된다. 이것 때문에 합리적 시장이나 시장의 균형가설에서 출발한 모든 시장이론이 실패한 것이며, 반면에 모든 이에게 최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경제학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우스 종형곡선의 왜곡과 오류(쓸모없는 부분이라고 무시된 종형곡선의 양쪽 하단에서 직선처럼 길게 늘어진 부분-롱테일-이 실제로는 하위 99%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가우스 곡선은 간과했다는 것으로, 프랙털이론과 롱테일경제학의 학문적 근거를 제공)부터 파고듭니다. 저자들은 따르면 이 세 가지가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고 상호 강화되면서 19세기 초반에 있었던 초장기 경제불황과 1929년에 시작된 선진국 중심의 경제대공황보다 더욱 심각한 경제대침제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 2008년 미국 월가와 런던 금융시장 발 금융 대붕괴(정확히는 신용의 대붕괴)에 의해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미국식 무정부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가 한계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슈퍼리치들도 상당한 돈을 날려버렸지만, 거의 전 재산을 날린 중하위층의 타격은 회복불능의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음에도 유대인들이 수십 년째 이사장을 맡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우리의 한국은행과는 달리 민간은행이다)는 부자들의 금고를 다시 채워주고, 무한대의 돈놀이를 할 수 있는 미국 중심의 신용 체계가 무너지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방준비제도는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슈퍼리치와 상위 10%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날린 손실을 만회했지만, 나머지 90%는 빈곤의 악순환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이 바람에 선진국의 주식시장은 금융 대붕괴 이전을 넘어 사상 최고에 이르렀고, 천문학적인 재산을 날린 슈퍼리치들은 금융 대붕괴 전보다 더욱 부유해졌습니다. 자본주의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공황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하위층의 지갑을 털어 만회하곤 했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은행과 금융시장을 오가며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밀어붙인 것입니다.

 

 

무제한 양적완화 때문에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시중에 풀렸지만, 이것이 실물경제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은행과 금융업체를 살리고 주식시장을 띠우는데 사용됐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실물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지만, 슈퍼리치와 상위층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낙수효과는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오죽하면 세상이 1%의 부자와 99%의 가난한 사람으로 나뉘었다는 말들이 전세계를 회자하겠습니까? 미 연방준비제도의 무제한적 양적완화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이라도 찾아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공존과 상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노동자들은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놓고도 다투어야 할 상황까지 내몰리게 됐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은 만큼 매년마다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새내기들과 피터지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입니다.  

 

 

허면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수없이 많은 일자리도 없애버린 2008년의 금융 대붕괴는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됐던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성경에 나오는 문구를 차용한 마테효과와 파레토의 법칙부터 살펴봐야 합. 우선 가우스 이론에 근거한 통계가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밝힌 《블랙스완의 도움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월가의 현인, 탈레브는 《블랙스완》에서 “확률과 수학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실 세계의 근소한 수리적 변화는 정규분포곡선으로 대표되는 완만한 무작위성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가증식하고 거친 무작위성으로 추정된다. 수식화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이 아니라 만델브로적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이란 뉴턴역학이나 다윈의 진화론, 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처럼 선형적으로 돌아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이것에 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룰 예정인데, 원체 방대한 내용이라 최소 4~5편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만델브로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의 기반을 이루는 두 개의 원리에 대해 짧게 다뤄보겠습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비약을 통해 새로운 조합을 이루어내는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원리는 불확정성 원리와 베타원리입니다. 

먼저 불확정성의 원리란 물질과 반물질이루는 기본입자들이 질량을 지닌 입자의 성질을 띠면서도 동시에 운동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형태인 파동의 성질도 띠어서 어느 하나를 파고들면 나머지가 무너지기에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불확정한 상태로 머문다는 원리입니다(입자물리학적으로 보면 게이즈장 이론).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빛이 입자이면서도 파동이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광양자론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됐습니다.

 

 

두 번째인 베타원리는 서로 같은 성질을 지닌 입자나 에너지가 서로를 밀어낸다는 원리입니다. 우주를 이루는 모든 기본입자들이 다차원적으로 압축돼 있던 특이점에서 거대한 폭발(빅뱅)이 일어나면서 우주가 창조된 것도 이 원리가 바탕이 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원리가 우주를 만들어낸 기본법칙인데, 이런 양자역학의 원리들을 통해 우주가 뉴턴역학에 의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뉴턴역학의 붕괴는 다윈의 진화론을 차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물론, 헤겔의 변증법에 기초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도 무너뜨렸습니다. 우파의 신화로 자리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좌파의 신화로 자리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류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적 비약(진화를 추동하는 돌연변이가 이에 속한다)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의 물리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는 초끈이론(양자역학과 뉴턴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합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일이론의 핵심인데, 이것에 관해서는 과학란에서 별도로 다룰 생각이다)이 양자역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들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금융위기를 예언해 유명세를 탄 블랙스완의 저자 탈레브는 이 두 가지 이론에 근거해 가우스 정규분포곡선(뉴턴역학의 핵심인 작용과 반작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에 따라 통계를 작성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 2008년 발 금융시장 대붕괴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선형방식을 따르는 기존의 통계수치는 현실의 변수들을 모두 다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인 편향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책의 제목인 '블랙스완'은 인간이 발견한 백조들이 모두 다 하얀 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검은 백조는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수천 년 동안 이런 믿음이 강화되다가 어는 동물학자가 검은 백조를 발견함에 따라 수천 년 된 믿음이 단 한 번에 무너져내린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사항에 넣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성찰처럼 인간은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인류 문명에 최악의 선물을 남긴 플라톤의 주름지대에 관한 내용은 별도의 글로 다루겠습니다).   



실제로 인간은ㅡ집단도 마찬가지이지만ㅡ자신의 성향과 기호, 경험과 환경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필요한 쪽의 의견만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로 구별되는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경우에는 이런 확인 편향의 오류가 심각하다 못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친구 간에도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이런 확인 편향의 오류 때문에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위가 홀쭉하고 밑이 넓은 종 모양의 곡선)에 경도된 주류 경제학자들은 2008년의 금융시장 대붕괴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의 양극화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완전시장을 방해하는 국가의 개입이나 과잉된 규제, 초국적기업의 담합과 내부거래, 경제정책의 일관성 부족,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정치인 등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도록 내버려 두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합니다. 애당초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면서요.


   

주류 경제학과 현장과의 차이를 확인 편향 오류 등으로 설명한 탈레브는 부의 양극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마태효과를 얘기했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는 마태복음 13장 12절에 나오는 내용인데,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될 것이며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질 것이라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한 일종의 종교적 우화에 불과합니다. 



낮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예수가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 하늘에 가면 더욱 대접을 받는다는 뜻에서 한 말을 주류 경제학자들이 부의 양극화가 시장경제의 발전 도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경제현상이라고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를 사살하는 중에 수없이 많은 민간인이 피살된 것을 전쟁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부수적 피해라고 말한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이번에는 부의 양극화를 최초로 밝혀낸 파레토의 법칙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였던 파레토는 빈부격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몇 세기에 걸쳐 국가들의 부와 소득에 대한 다량의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만델브로브트는 프랙털 이론과 금융시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 축에는 소득 수준을, 그리고 다른 축에는 그 소득 기준을 가진 사람 수를 표시해 놓고 그래프용지 위에 데이터 차트를 그리자 거의 모든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동일한 그림이 그려졌다. 사회는 빈자 대비 부자의 비율이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완만히 기울어지는 <사회적 피라미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닥은 매우 두껍고, 부자 엘리트들이 속해 있는 위는 매우 얇은 <사회적 화살>에 더 가까웠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철저히 분석한 파레토는 소득 분포가 가우스의 정규분포곡선(종형곡선)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로써 세상의 부의 대부분을 소수의 부자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화 된 것입니다. 그가 발견한 법칙에 따르면 억만장자가 억대의 돈을 버는 확률이 가난한 사람이 만원을 버는 확률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20 : 80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득불평등이 더욱 커지면 1 : 99 사회도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 2008년 금융위기가 가져다 준 교훈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파레토에 의해 마태효과가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물론 최근의 기준으로 보면 파레토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를 보여줬습니다. 파레토가 개인적으로 구할 수 있는 국가의 자료가 일부 유럽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고, 통계와 분석법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티핑포인트》와 함께 80대 20법칙을 넘어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롱테일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 보겠습니다(가우스 이론에서 벗어나 프랙털 이론을 따른 이유는 삼성전자의 어닝쇼크, 미래의 먹거리가 문제야를 참조하십시오). 이 책의 저자 크리스 엔더슨은 미국의 속담을 인용하며 “만일 단 몇 명만 부자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을 갑부가 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가우스 곡선의 꼬리 부분이 무한히 길어지면 종형을 이루는 머리와 몸통 부분을 넘어설 수 있다.



이는 단 몇 명이 갑부가 된다한들 한 국가의 부나 전 세계의 부를 모두 독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갑두들의 재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욱 많은 부가 가우스 종의 곡선에서 ⅹ측 부분과 평행하게 이어지는 긴 꼬리(롱테일) 부분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류들의 시장경제의 규모보다 그것에서 잘려나간 꼬리 시장의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이것을 양성화할 수 있으면 가벼운 경제의 도래가 가능하며, 부의 양극화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소수에게 소득이 집중되는 부의 양극화는 《롱테일 경제학》의 주장도 무효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부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중산층의 수는 계속해서 줄고 있고 하위층과 극빈층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게다가 인간 수명의 연장은 종의 차원과 개인의 차원에서는 축복일지 모르지만, 정치경제적인 면에서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고령화 추세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출산율이 세계에서 최저로 떨어지며, 부의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계층의 이동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2030세대가 오죽하면 삼포세대라는 말로 회자되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중산층이 무너져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하층민은 극빈층으로 떨어진 2008년 이후에는 부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빨라지고 있습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다보스 포럼에서 전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초국적 기업의 총수와 거대 금융 자본가, 세계적 언론기업과 각국의 정치지도자, 국제기구 책임자와 급진적 지식인들의 모여서 공공연히 자유시장 자본주의 실패를 얘기하는 것(이것도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쇼비지니스에 불과하다)도 이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인류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는지도 모릅니다.  



최근에는 허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이 최고의 영화로 뽑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히로인인 비비안리가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부의 양극화가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는 오늘에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도 믿기 어려울 판입니다. 기존의 시장경제로는 부자들의 재산을 늘릴 수 없어서 폭력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늘고 있고, 빈곤의 거버넌스(마이크로 파이낸스라고 알려진 미소금융을 말함)를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좌파게티 2014.10.17 11:41

    아고라에 이어 블로그에서도
    명료한 글과 좋은 책들...
    소개 잘 받고 갑니다. ..
    시간나는대로 탐독해야 겠네요...

  2. 무대포 2018.12.02 13:36

    좋은글 감사드려요.
    너무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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