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구조나 배당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야구선수인 요기 베라가 피자를 4등분할지, 8등분할지 묻는 배달원에게 방금 경기를 끝내고 와서 배가 고프니 8등분을 해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ㅡ 머튼 밀러의 말, 저스틴 폭스의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에서 인용




미국의 이중성은 ‘자신들이 한 대로 따라하지 말고 자신들이 말하는 대로 하라’는 풍자에서 압축적으로 나타납니다.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이식시켜야 한다면서, 정작 뒤로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적 지도자를 암살하거나 군사쿠데타를 사주해 독재정부를 세우는데 전력합니다(존 퍼긴스의 《경제저격수의 고백》 1, 2권을 참조).





싱가포르 같은 도시 규모의 독재국가와 중동 및 아프리카의 왕정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정경유착이 심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정경유착은 악마의 유산인양 비판합니다. 청소년기까지의 성장기가 생략된 미국은 돈 버는 것만 생각하면 되는 천혜의 땅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로비의 천국이 된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유효한 정치‧경제‧사회적인 것들이 다른 국가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서 기원합니다.



이런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이 지배엘리트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OECD가입국 중에서 최악의 빈부격차와 노인빈곤, 자살률, 출산율, 지니계수, 사회갈등 등을 기록하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처럼 경영과 정치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을 경험했으면서도 안철수에게 또다시 희망을 두는 것도 이런 허상에서 출발합니다. 



경영과 정치는 얼핏보면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최대다수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재벌들의 행태를 보면 경영과 정치는 정말로 비슷해 보입니다. 과학과 기술공학, 조직논리의 발전을 이용하는 것도 경영과 정치의 유사성을 높입니다. 아날로그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도 싱크로율을 높입니다. 이런 것들로 해서 정치를 비즈니스화하는데 성공한 우파들이 정치영역을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과 정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자리합니다. 둘 다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경영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고, 수단의 법적타당성은 이차적 문제에 불과합니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오너와 대주주, 최고경영진들에게 이익이 집중되도록 만듭니다.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부풀려진 개념을 전면에 내세워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을 정당화하는 경영은 특정집단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집단의 피해를 당연시 여기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존 롤스의 《정의론》과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을 참조).



반면에 정치는 최대의 이익을 목표로 하지만 수단의 공정성을 절차적 투명성에서 찾으며, 이익도 절대다수에게 분산하되, 지지자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이익의 분배도 제일 가난한 국민에게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며, 최상위층에게는 (남은 것이 있다면) 최후에 주어집니다. 경영은 피자를 4등분하던 8등분하던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익을 거두면 되고, 이익의 대부분을 소수가 독식해도 그만이지만, 사회적 합의와 법의 지배에 따라야 하는 정치는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아니, 용납되지 않습니다).



경영과 정치의 차이를 어림짐작하는 사람들은 경영도 모든 구성원을 배불리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막대한 이득을 남기면 그것이 종업원과 협력업체까지 배불리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세금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도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 가난한 나라의 노동과 환경을 착취하는 애플 같은 악마의 기업도 그렇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만 해도 부분별로, 팀별로, 부서별로, 개인별로 점수가 매겨져 연봉이 달라집니다. 반도체 부문처럼 A를 네 개 받는 임직원과 가전 부문처럼 D를 네 개 받은 임직원의 연봉은 복리의 역작용처럼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집니다. 어떤 직원은 억대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지만, 어떤 직원은 보너스를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룹사로 넘어가면 더 벌어지고, 협력사로 넘어가면 더 벌어집니다. 팀이나 부문이 없어지면 정리해고를 면치 못합니다. A를 네 개 받은 임직원도 위로 가면 후하고 아래로 가면 박합니다(상후하박). 최고경영자를 거쳐 오너 가문까지 가면 천문학적인 차이가 발생합니다.(삼성맨들은 '삼성은 전자와 후자로 나뉜다'거나, '삼성은 전자와 잡사로 나뉜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빼면 모든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애플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삼성전자를 몇 배나 뛰어넘습니다. 천문학적인 이익을 나눔에 있어 임직원이 적을수록 가져가는 몫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것도 삼성전자보다 애플이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애플은 1차 협력업체만 압박하면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의 기업이라 하는 것이고요.



정치는 이것과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국가가 최대의 이익(공적 이익)을 거둬야 하는 이유도 국민 전체의 삶의 질과 행복을 올리기 위함이지, 소수에게 독점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수단과 절차의 정당성과 투명성,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도 경영과는 다릅니다. 현실이야 어떻든 명목상으로의 정치는 그러합니다. 특히 미국식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정치를 타락시키기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작고 권위적인 정부, 위계질서가 강한 대기업, 최소한의 민주주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 강한 정경유착, 상시적 혼란 등'이 필수인 신자유주의 통치자들이 제일 많이 얘기하는 것이 국익이고 민생이며 경제입니다. 국익을 최대화해서 민생의 질을 높이겠다고 입이 닳도록 말합니다. 국익이 누구에게 적용되고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원가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도, 이익배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국가 업무의 민영화도 무차별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지옥문 입구에 이른 세계경제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리자 국민의 세금을 놓고 장사를 벌이는 신자유주의 동맹은 부의 재분배를 담당하는 조세정의를 무력화시켰고,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시장논리가 모든 정치철학과 국가의 역할을 점령해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특히 공익과 후대를 위한 필수 규제)은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아예 고사시켜 버렸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영과 정치가 혼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경영과 정치가 다를 것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소수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것이, 그래서 특권층을 형성하는 것이 둘 사이에 별반 다를 것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40년을 이어오자 정치에 신물을 느낀 시민들의 투표율은 갈수록 떨어져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는 공익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인 정치를 사익을 추국하는 것이 목표인 경영으로 대치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치가 경영으로 대체되면서 부와 권력은 소수의 상층부에 쌓이고 폐해와 위험은 다수의 하층부에 쌓였습니다. 그 결과가 지구온난화와 슈퍼엘리뇨, 토지의 사막화, 난민의 급증, 테러의 일상화, 범죄율의 증가 등이며, 작금의 대한민국이기도 합니다. 분배와 공존, 상생과 평화, 인권과 박애를 중시하는 진보좌파의 가치와 신념, 도덕과 철학이 무력화되고 폐기되다시피 한 것도 정치가 경영으로 대체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명박의 임기 내내 경영이 정치를 대체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국정원의 댓글사건도, 국민 모두를 속였던 4대강공사도, 국민의 세금을 마음대로 퍼주었던 자외외교도, 끝을 모르게 이어지고 있는 방산비리도, 민주주의에 반하는 언론장악도, 법의 지배마저 무력화시킨 민간인사찰도, 창조컨설팅 등을 동원한 조직적인 노조 파괴도 정치를 경영으로 격하시킨 이명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한 동안 다루지 않았던 진보적 자유주의(신좌파)의 가치와 신념, 도덕과 철학에 대해 다시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의 더불어민주당의 기득권 보수화(비주류의 작품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를 강력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가 전체를 말아먹고 있는 박근혜의 폭정 못지않게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비판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안철수와 이명박은 근본적으로 정치와 경영을 동일시하는 경영자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정치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습니다. 안철수 지지자들의 근원에 자리한 것 중에 하나가 그의 기부이지만 경영자 출신으로 정치인에 뛰어든 자들의 기부가 노블레스 오불리지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세금을 회피하고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말고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6.01.12 08:08 신고

    이명박근혜는 김무성보다 안철수가 예쁠 것입니다.
    안철수는 사실 새누리입니다. 만약 그가 민주당이 아니라 새누리에 들어갔다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12 19:04 신고

      처음부터 새누리당에 갔어야 할 자였습니다.
      안철수는 대통령이 되려는 욕마을 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실정치를 너무 만만히 봐요.
      그는 실패만이 그 이상의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번에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팀이 내놓은 경제활성화 방안은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끌어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내수경제가 죽었다며 이를 살리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투입니다. 이것의 진실 여부는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국민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지구라는 행성이 5~6개 정도 있어야 유지가 가능한 과소비를 했고, 그것이 2008년의 금융위기로 이어진 것은 이미 상식의 수준입니다.



최경환 경제팀이 내놓은 경제활성화 대책은 7월 재보선 용이어서 표를 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것을 박근혜 정부의 성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말도 안 되는 대책들도 수두룩합니다. 이번에 발표된 것이 전부 시행되면 시중의 유동성이 늘어 지표상의 GDP는 늘어납니다. 서민과 상관이 없다 해도 돈이 풀리면 인플레가 생겨 경제성장율은 높아집니다. 겉은 화려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치적이 되고, 속은 썩어들어가 서민의 생활고로 이어집니다.





미국에서 9.11사태가 일어났을 때 부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 첫 번째 대국민담화는 "평상시처럼 소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을 치르려면 재정이 바닥난 연방정부의 곳간이 채워져야 하고, 이는 국민들의 과소비가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시 정부 내내 연방정부이 곳간을 민간으로 넘기는 일을 하다 끝났는데, 국민의 과소비를 유도해서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9.11사태가 일어났을 때의 첫 번째 대국민담화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2기 경제팀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부동산 시장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거품 형성을 각오한 채 LTV(집값이 높을수록 더 많이 대출받을 수 있다)와 DTI(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이 대출받을 수 있다)를 확대했습니다. 즉, 부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위층들에게는 이번 확대가 부동산 광풍을 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LTV와 DTI를 확대하라는 정부의 압박에 은행들이 대출에 나서면 무조건 부실이 늘어납니다. 집값은 더욱 떨어질 것이 분명한 게 세계 경제 상황이 말해주고 있으며, 기업들의 어려움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 2기팀이 내놓은 경제활성화 대책은 대규모 자살로 가는 길입니다. 경제 대붕괴라는 미국의 전철을 밟는 것이지요. 





이번 대책 중에서 세수 부족 때문에 대기업에 대한 여러 가지 비과세 감면을 단행하는 것은 환영하는 바입니다. 오직 이것만.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내놓은 경제 활성화 방안을 하나하나씩 따지고 들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방안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은 100조원이 넘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의 내용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배당으로 돌리기 위해 고배당 기업에 한해 대주주들이 받는 주식 배당소득을 최고 38%의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넣지 않고 분리과세(세율 14%)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주주들의 소득세가 현재보다 500억원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소액주주의 배당소득에 매기는 분리과세 세율은 5~10%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스 안의 내용을 보면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고배당을 통해 주주의 수중으로 넘겨줘, 상당한 수준의 보너스를 챙기게 된 주주들이 이를 소비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2기 경제팀의 생각은 한마디로 해서 난센스입니다. 사내유보금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될 기업의 대주주라면 상당한 재력가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지금도 충분히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보너스가 생긴다 해서 그것을 소비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대기업 대주주의 30~40%(삼성전자의 경우 60%)는 외국인입니다. 최경환 경제팀의 경기활성화 대책에 따르면 외국인 주주에게 대규모의 배당이 돌아감에도 세율은 낮춰주겠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게가다 그들은 한국에서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내수경제 활성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기업의 내부유보금의 성격에는 외국인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새로운 투자를 하기 위함도 있는데 최 경제팀의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입니다. 소득과 자산이 적을수록 보너스를 받았을 경우 소비에 쓰는 비율이 90~100%에 이르지만, 상위 3~5% 안에 드는 부자들은 소비하는 비율이 30% 수준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또한 이런 부자들은 소비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 나가 사용합니다. 명품 구입도 이들은 국내에서 하지 않습니다. 또 한 사람이 소비할 수 있는 여력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경제학의 상식 중에 상식이 소득 대비 소비 비율이 높은 사람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19~20세기 초반의 위대한 경제학자였던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 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등을 보면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활성화 대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들의 저서들이 먹힐 때의 부자들이란 과시적 소비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등의 일련의 저작들을 보면 21세기 부자들은 과시적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특히 2008년 금융 대붕괴 이후로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기업의 천문학적이 사내유보금(마땅한 먹거리가 없어 투자되지 않은 돈도 많다)에 직접 과세하지 않고 대주주들에게 고배당을 유도하는 것은 부자의 금고만 불려줄 뿐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팀이 정말로 내수경제를 살리려면 사내유보금에 직접 과세해 그것을 공적 부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형편없는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올리지 못하겠다면, 중하위층에 속하는 가계와 노동자에게 기본소득 같은 공적 부조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전환율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특히 중하층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이 진행되면 경제는 무조건 살아나고, 중하위층의 삶의 질도 높아지고,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에 세금은 더 걷힙니다.



또한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행정력도 줄어듭니다. 거기서 나온 금액으로도 기본소득에 필요한 자금이 상당 부분이 만들어집니다. 기본소득을 받아서 면세점 이하였던 사람들이 과세대상이 됩니다. 국가의 세수가 넓어지기 때문에 복지 재정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초반 1년의 자금(아, 4대강공사만 안 했으면)만 마련되면 무조건 경제활성화로 이어집니다. 만일 경제활성화가 목표라면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내놓은 경제활성화 방안 중에서 LTV와 DTI를 건드린 것과 사내유보금을 대주주에게 고배당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세율을 낮추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부자의 금고를 채워주고 금융권의 부실을 만들어 최종적으로 공적자금 투자를 통해 국가 재정이 악화되고, 이는 국민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미래세대는 사는 것이 지옥이 됩니다. 이 정도면 정말 막가자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선물 던져주고 정작 더 큰 위험만 떠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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