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주제 3가지를 다룬 JTBC 밤샘토론을 보면 여야의 협치가 왜 불가능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극단적 주장만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상대와 상식과 이성, 논리, 사실 등에 따른 토론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협치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증거도 없는 추미애 청탁 의혹과 포털에 대한 윤영찬의 잘못된 인식, 문재인 정부의 보동산정책 등을 다룰 때 성일종과 김재섭이 보여준 인식의 수준이 협치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시궁창이나 돌아다니며 최악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국당의 수준에 맞춰 협치를 한다면 이땅의 정치는 최악의 결과만 양산할 것입니다. 한국정치의 하향평준화는 시궁창에서 온갖 난리를 치는 국당 때문이기에 그들과의 협력을 포기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협치가 불가능할 때 다수결 원칙으로 처리하는 체제이므로 국당이 시궁창에서 벗어났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만 없습니다. 

 

당장 시급한 것들, 예를 들면 코로나19 펜데믹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추경인데, 국당이 시궁창에 머물며 대국민 사과하라, 특음검사 임명하라, 청년 위한 제한 풀어라, 통신비 주지마라 등등만 외친다면 민주당 단독으로 시급한 것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협치만 외치다 국민과 국가의 피해만 커진다면 협치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를 넘는 것이 협치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다수결원칙을 밀어붙여도 문제될 것 없습니다. 

 

 

www.youtube.com/watch?v=c8gRcUocFjE

 

  1. 참교육 2020.09.12 12:22

    국민의힘은 힘이 아니라 적입니다. 차기 집권외에는 눈에 보이는게 없습니다.

  2. 참교육 2020.09.12 12:24 신고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목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모든 분야에 가해졌으며, 그렇게해서 투자 대비 효율성만 강조하는 경제학이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달콤한 상업 가설'이 무한대로 증폭해 최종 단계에 이른 것이지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를 집어넣으면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을 내보내는 사탄의 맷돌'이 경제학 제국주의를 건설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상위 1%의 지배엘리트들이 소수의 경제학자들을 동원해 다른 학문, 특히 정치학과 함께 움직였던 경제학을 무한경쟁을 조장해 승자독식이 가능한 세상으로 만드는 도구로 타락시키는데 성공한 결과가 경제학 제국주의입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는 학계의 소수에 불과했던 수리경제학ㅡ높은 수준의 수학이 아니라 정치인과 언론인, 대중을 속이기에 충분한 정도의 수학으로 오염된 경제학ㅡ을 떠받들던 신고전파 종합주의자들이 자신들을 후원해준 지배엘리트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제학이 무소불위의 지위로 격상한 것이 지난 신자유주의 50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모든 학문을 효율성(경제성)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무릎 꿇게 만든 경제학 제국주의는 상위 1%의 지배엘리트(특히 60년대에 이미 억만장자에 들어서 정치인과 고위관료마저 포섭할 수 있었던 부자들)의 돈잔치 덕분에 학계의 소수에 불과했던 신고전파 종합(고전파+신고전파+왜곡·수정된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이 모든 학문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갈등과 분열, 차별을 조장하는 탐욕과 이기주의의 득세가 이렇게해서 일반화된 것이지요. 

 

민주주의와 헌법, 국민의 위에서 제멋대로 날뛰었고 그들의 뜻대로 안되면 다시 제멋대로 날뛰겠다고 공공연히 협박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경제학 제국주의가 만든 이 시대의 괴물들입니다. 이들의 탐욕과 이기주의에 쐐기를 박지 않으면 지난 50년의 무한퇴행을 바로잡을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언론의 기레기로의 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경제학 제국주의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https://youtu.be/qMZ56KkY_WQ

 

  1. 선한이웃moonsaem 2020.09.08 11:38 신고

    경제학 제국주의드리 인류애를 말살시키는군요. ㅠㅠ

    • 늙은도령 2020.09.09 00:31 신고

      많은 분들이 잘 모르세요.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타락시키는 줄을. 그리고 그것이 지난 50년 동안 극대화됐다는 것도.
      경제학 제국주의는 신자유주의 50년의 결과이지요. 탐욕이 좋다고 하는 이데올로기죠.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으로 대표되는 다윈의 진화론적 주장에 따르면, 생존에 성공한 모든 개체는 능력의 한계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승자독식이 이루어질 때까지 무한경쟁을 하는 대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선택하는 도덕성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압도적이거나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힘을 보유하지 않는 한 공멸로 이어지기 마련인 승자독식보다는 적절한 수준의 협력을 통해 종이나 개체군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에서 균형을 잡는 도덕성을 키워왔다는 것이지요.   

 

종이나 개체 단위에서 유래한 도덕성에 대한 이런 접근은 세계적인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 진리의 차원으로 승격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유지의 자원을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모든 개인이 무한경쟁에 뛰어들면 공유지의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 후생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시장에 참여한 어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해를 초래할 때만 가능한 상태에 이르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파레토 최적' '파레토 균형'이라는 후생경제학의 제1원리가 여기에서 나왔는데, 모두의 이익이 완벽한 균형에 이르러 모두의 이익을 늘리지 않는 한 사람의 이익도 늘릴 수 없는 완벽한 균형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파레토 최적'에서 영감을 받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시장에 참여한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이기적인 노력과 선택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거해 최적의 시장가격을 형성하면ㅡ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 시장가격이 모든 참여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점ㅡ이익의 극대화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진화론적 해석을 인위적으로 극대화한 것입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이런 주장들은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정보와 선택, 계약이 이루어지고, 비행기와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과 같은 고도화된 물류시스템에 의해 시공간의 한계를 무력화한 현대에서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 극복될 수 있는 근대적 시장규모에서는 '도덕성이 다른 면에서는 이기적인 개체들이 협력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끔 해주는 심리적 적응물이'라는 진화론적 주장이 통용될 수 있었습니다.

 

나와 우리만 구별하면 되는 사회관계와 시장규모가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별로 확장되고, 부족 단위의 공동체는커녕 지역과 국가를 넘어 전 지국적 차원으로 추가 확장되면 '공유지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옵니다. 자본의 축적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세계화는 인류로 하여금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시장경제에 무방비로 던져버렸고, '벨 에포크 시대의 도래'라는 사상 최악의 불평등을 초래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이런 국가와 인류 차원의 불평등은 1차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 경제대공황, 2차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대학살을 연이어 일으켰습니다. 미국의 뉴딜정책과 유럽의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상생과 공존, 평등의 세계적인 합의가 2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체결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무려 30년 동안 이어진 평등한 세상을 위한 공통의 협력은 지구적 차원의 상생과 공존이 불가능한 꿈만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자본주의 황금시대로 회자되는 '영광의 30년'은 1979년 영국에서 대처가, 1980년 미국에서 레이건이 최고지도자에 당선됨에 따라 무려 50년에 걸쳐 완벽하게 해체됩니다. 이 기간을 신자유주의 50년 또는 신소유주의 50년이라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태어나 자란 세대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경쟁이란 좋은 것이며, 성공도 실패도 개인의 책임이며 운이라는 요소는 개입할 수 없다며 소수의 승자독식 승자를 무한대로 칭송하고 절대다수의 패자들을 국가의 세금이나 축내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추락시켜버렸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탐욕이 모든 수준의 경쟁에서 최고의 덕목이 됐으며,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무한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새로운 도덕이 모든 개인의 내면에 절대적 기준인양 자리잡도록 만들었습니다.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부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초고율의 누진세를 부과해 하위 99%에게 나눠주는 재분배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최악의 대죄로 사형선고를 내려버렸습니다.

 

조슈아 그린이 《옳고 그름》에서 "똑같은 도덕적 사고가 한 집단 안에서는 협력의 기초가 되지만 집단 사이에서는 협력을 방해한다"는 현대적 비극이라 칭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정된 자원과 유한한 기회라는 한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이익 추구적 행태는 자원 고갈과 생태계 파괴, 환경 오염이라는 외부효과를 피할 수 없음에도, 이익은 극소수가 독점한 채 피해는 절대다수에게 전가하는 탐욕의 폭주를 도덕성에 따른 공정한 정의인양 포장해버렸습니다.

 

극소수에게 무한대의 부와 권력, 기회를 몰아준 신자유주의 50년이란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을 뽑아내는 '사탄의 맷돌'을 무한정으로 돌리기 위한 상위 1%의 거짓과 궤변의 향연이었습니다. 상위 1%의 탐욕을 위해 하위 99%가 피터지도록 싸워야 하는 세상이 이렇게해서 일반화됐습니다. 분열과 갈등은 모든 차원에서 발생했으며, 하위 99%에 속하는 우리(또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또다른 하위 99%에 속하는 그들을 죽여야 하는 제로섬게임이 생존의 기준이 됐습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의 이면에는 극소수의 탐욕을 위해 절대다수가 피해를 감수해야 논리가 도덕의 이름으로 자리하는 세상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에 대해 코로나19 펜데믹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젊은의사들의 분노가 유별나게 큰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선배들에 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이 가뜩이나 줄어든 자신의 밥그릇을 더욱 축내는 것일 뿐이며, 특수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선배 의사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해법을 고민하거나 여론의 향배를 지켜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성을 완전히 집어삼킨 극단의 분노와 복수심에 가득찬 이들은 장렬히 전사할지언정 문재인 정부와의 타협이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선택이자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치욕입니다.

 

 

의료계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낙수효과의 작동불능 때문에 자신에게 떨어질 몫이 없으므로, 당장의 밥그릇 또는 가까운 미래의 밥그릇을 챙기는 극한 투쟁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판단에 이성과 사고는 작동불능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젊은의사들은 최대집이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해온 지난 3년의 비협조가 정당했기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극한투쟁도 정당한 것입니다.

 

노력한 것 이상을 번 선배와 비교할 때 투자와 노력에 대비 터무니없이 작은 몫만 챙길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최대집과 의협의 투쟁은 지극히 정당하고 자신의 몫을 지켜주기 위한 희생적인 영웅일지도 모릅니다. 자신(또는 우리)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몫을 미래세대에게 나눠주려는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은 정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독재나 전체주의에 다를 것이 없으며, 그들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몫을 강제로 빼앗아 미래세대에게 나눠주려는 것이어서 사회주의적이고 심지어는 공산주의적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의료를 벗어나면 배운 것이 없는 그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쟁을 제한하고, 자신보다 못한 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모든 행위가 사회주의고 공산주의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을 무력화시키지 못하면 자신과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의사의 선택이 극단적인 단체행동이나 사직서를 제출하는 감정적 대응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상위 1%가 밀어붙인 무한경쟁의 승자독식 논리를 내면화한 젊은의사에게는 '죽이 아니면 까무라치기' 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는 도덕적 원리에 따라 문재인 정부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것 이외의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앞의 영상에서 이번 투쟁에서는 회색으로 칠해진 중간지대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들은 4대의료정책을 좌초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얼마든지 담보로 내걸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문재인 정부와 현재의 국민, 미래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완벽하게 거부하고 있는 젊은의사의 도덕율은 단체행동은 'all or nothing'의 내면화가 얼마나 극한투쟁으로 국가와 국민을 천길나락으로 몰아낼 수 있는지 웅변해줍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대집이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의 의료계의 이기적인 행태는 어떤 정부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도 진작에 넘었습니다. 상위 1%, 더욱 자세하게 파고들면 상위 0.01~0.1%로 모든 부가 쏠리는 현실에서 3년차를 넘긴 단임정부에 질 수 없다는 결기와 광기가 의협 집행부를 넘어 젊은의사들에게까지 단체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내부에서도 불평등이 극대화되는 상위 1%는 영원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남은 것이란 레임덕밖에 없는 4년차 정부가 더욱 만만한 상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구축하겠다는 의협 집행부보다 더욱 강경한 젊은의사의 단체행동과 집단적 사직서 제출은 갈등과 분열로 얼루직 이 시대가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최후의 과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지난 50년의 세상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왔다고 앞으로의 세상도 같은 방향으로만 흘러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저들의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지켜보면서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찾아해맸던 보편적 도덕원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새로운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도덕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세상이란 끝없이 늘어나는 분열과 갈등을 매일의 양식처럼 먹고살아야 하는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GeLtR7r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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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hGK2zqIALU&t=120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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