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의식의 전환, 인구구조의 변동, 환경과 생태의 변화 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어떤 주장과 학설도 일부의 정당성만 가질 수박에 없는 것은 인류의 한계입니다. 정치에서 분리된 경제학이 통계학적 분석을 빼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학문으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며, 이 네 가지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경제사와 사회학이 경제학보다 현실을 더 많이 말해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지체현상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인과 언론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인터넷과 SNS, 팟캐스트의 등장과 보편화가 불러온 거대한 변화는 산업구조만이 아니라 정치와 언론에도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노무현이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가 마뜩치 않은 기득권들에게는 최악이었지만, SNS와 팟캐스트라는 자신의 발언수단을 갖게 된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대통령으로 재평가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국민을 복종과 동원, 선동과 조작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이명박근혜가 이슈와 의제를 좌지우지했던 언론 장악에 목숨을 걸었던 구시대의 대통령이었다면, 가장 민주적이고 탈권위적인 노무현을 경험했으며, 구시대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언로를 갖게 된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문재인이 최고의 대통령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도 대통령에 올려놓았으니 그를 지키고 밀어주는 일이 신명날 수밖에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기술 발전에 따른 이런 적응과 활용의 차이가 정치인과 언론, 부패 기득권의 우위를 뿌리로부터 흔들기 시작했고, 언론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으며, 시민들은 정치인과 언론과 기득권의 공생관계에 구애받지 않은 채 자신이 확인하고 소화한 정보와 지식들을 바탕으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견해를 표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조중동과 정치인, 기득권들이 주도했던 주제와 이슈 생산도 더 이상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정보접근력과 정보소화력이 어느 세대보다 뛰어나고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강해진 최근의 시민들은 몇 번의 검색으로 어느 정치인과 정당이 국민을 위해 일해왔는지, 어느 주장이 정당성과 설득력이 있는지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것에 근거해 구시대의 권력관계와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론의 보도와 사설, 오피니언들의 칼럼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정치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전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촛불혁명도 이런 변화 때문에 가능했고, 의견 표출의 낮은 단계라고 폄훼되기도 하지만 18원 후원금과 문자행동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는 것도 기술 발전이 불러온 환경의 변화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책에서만 배웠고 꿈속에서만 희망했던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인민의 통치, 시민주권 행동주의)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고, 그 결과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절대다수의 시민들이 자유한국당과 언론, 부패한 기득권이 양산해내고 거대자본의 하수인 역할에 충실한 사이비 지식인들이 뒤를 받쳐온 반노·반문정서에 코방귀도 뀌지 않은 채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표하는 것도 그가 걸어온 행적이 민주주의와 시민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깨어난 시민들은,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정치인과 언론, 사이비 지식인들의 궤변에 더 이상 속지 않으며 문재인의 진정성에 강한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민주주의를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상조에 이어 자한당과 언론, 부패한 기득권이 반대하는 강경화의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과 언론, 기득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과 깨어난 시민들의 여론이 민주주의의 최종의결권이라는 헌법(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에 의거한 것이라서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체제가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가장 많이 따르는 체제이자 행동규범이기 때문에 문재인의 정당성은 국민과 시민의 정치적 참여의 정도에서 나옵니다.



이명박근혜가 임명한 후보자들에게 똑같은 하자들이 발견됐다면 시민들의 여론은 정반대로 나왔을 것입니다. 문재인과 이명박근혜와의 차이가 김상조와 강경화의 임명강행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던 처음이자 끝입니다. 다른 후보자들에도 똑같은 경우가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것이지만, 최소한 김상조와 강경화,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은 국민의 뜻과 시민의 판단이 투영된 시대의 결정이기 때문에 높은 찬성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깨어난 시민들은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퇴행한 민주주의와 강자 위주의 역사를 바로잡아가는 중입니다. 국민의 뜻과 시민의 참여가 살아서 숨쉬는 나라, 그것이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꿈이며 실천의 대상입니다. 권력이 내려오면 국민과 시민의 올라가듯이, 우리는 문재인 정부와 함께 6.10항쟁을 통해 이루지 못한 부분까지 재민주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해서 다음의 말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노통이 못한 것까지 포함해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토마토 2017.06.16 05:54

    야당은 더이상 봐줄존재가 아니죠 ㅋㅋ
    문재인대통령 임기동안 아주 개박살이나서 사라졌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6.16 14:05 신고

      네, 저도 보수는 재구성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념보다는 상식과 원칙, 정의와 박애, 공존과 평화가 주가 되는 세상을 말해야 하지만....

  2. 공수래공수거 2017.06.16 08:48 신고

    이전의 윤진숙과는 정말 대비가 됩니다
    강경화는 임명이 맞을것 같고 안경환은 자진사퇴 하는것이 좋겟네요

    • 늙은도령 2017.06.16 14:07 신고

      저도 안경환이 걱정이네요.
      안경환의 책은 남성의 본성과 특성을 다룬 것이라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법무부장관으로써 법을 어긴 혼인신고를 했다는 경력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물론 그것으로 완전히 삶이 바뀌었다면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현대 미국 사회의 많은 부분은 예측 가능한 경력 향상, 임금의 꾸준한 증가로 그 특징이 규정되는 안정된 고용 관계 위에 토대를 두고 세워졌다. 내 집을 갖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며, 공동체와의 유대 관계를 통해서 안정감을 찾는 등, 직장 밖에서의 삶의 질은 고용에 대한 위협과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향상되어왔던 것이다.


                                                             ㅡ 카펠리,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에서 재인용




지난 일요일에 방송된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지인이의 부모와 방청객으로 참여한 한 어머님의 얘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안타까움과 절망, 희망과 힐링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지인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얘기들을 (상당히 재미없지만) 사회적 자본이란 관점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지인이의 현재를 응원하는 마음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회적 자본이 탄탄할수록 잘 돌아가는 민주주의가 탐욕의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제어할 수 있었을 때 평생고용(이 글에서 말하는 평생고용이란 한 직장에서의 근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과 국민복지, 사회안전망이라는 공생의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였지만, 직원들은 물론 가족과 사회 전체의 이익도 고려하며 공생의 삶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민이 존엄하고 탈락자를 방치하지 않고, 시민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합의하고 조정해 실제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평생고용(과 평생교육)에 기반했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다양한 공동체 활동 참여와 자원봉사나 헌혈처럼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개인은 안정된 직장과 수입으로 인해 평생에 걸친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그런 안정감에서 나오는 사회적 신뢰는 다양한 협력과 평화로운 공존을 이룰 수 있었다.



노동(감정노동과 가사노동 같은 비물질노동 포함)의 가치와 연륜이 인정되는 이런 사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분배가 이루어져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정치적 자유가 더욱 공고해졌고, 법 앞의 평등이나 정의실현이라는 열린사회의 실현이 가능했다. 국가 차원의 복지가 미흡해도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지역 공동체와 사회가 작동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을 전복해버린 것이 모든 영역에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작동하도록 체제를 완전히 바꿔버린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완전히 압도하던 시절인 19세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니 평생고용을 기반으로 구축된 세계를 파괴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단 40년 만에 평생고용에 기반한 안정적인 세상은, 생산 증대와 이익 독점만 신경 썼을 뿐, 평생고용이나 누진적 조세제도처럼 부의 재분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무한경쟁의 19세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심해졌고, 사회적 자본은 적은 위험도 막아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경제가 곧 대기업의 이익’을 말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민주주의는 독점 자본과 권력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위에서 찍어 누를 수 있는 국가공권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벤야민의 말처럼 ‘야만적이지 않은 문명은 없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억압과 착취의 시대가 고착화됐다. 지인이 같은 장애인들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형편없는 감호시설로 보내졌다(미셀 푸코의 《광기의 시대》에 자세히 나와있다).  





시장자유주의 우파라는 공통점으로 이어진 이명박근혜 정부가 평생고용에 기반한 사회체제를 집중공략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고용의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 위험의 사회화가 일상화됐고, 용산참사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자살, 세월호 참사, 경주리조트 붕괴, 메르스 대란처럼 막을 수 있었던 비극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이 클수록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승자독식을 이룩한 개별기업 차원에서만 진실인 신자유주의 신화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제2, 제3의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메르스 대란 등은 더욱 빈번하게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배제되고 격리되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지인이와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절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소비만 하고 살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고, 오늘만 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지며, 효율성과 생산성도 하락하고, 상호신뢰와 이타심, 호혜성 등의 사회적 자본도 구축될 수 없다.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아(지인)의 부모가 세상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이 됐다고 말한 것도 사회적 자본을 파괴시킨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축적된 결과다.



우리 모두가 지인이의 부모가 될 수 있고, 지인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힐 수 있고, 지인이와 함께 걸어갈 수 있으려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를 거둬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이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영원한 타인이자 물리쳐야 할 적으로 인식시킬 때 인간은 일베처럼 짐승 이하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부의 재분배가 뒤따르지 않는 경제성장이란 말에 속지 말라. 1%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나눠주는 것을 민생이라고 포장하는 말에 속지 말라. 경쟁과 불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공짜점심이 없다는 말에 속지 말라. 타인의 것을 빼앗는 성공을 미화하기 위해 실패는 개인 책임이라는 말에 속지 말라. 극소수의 무임승차를 부각시키는 복지담론에 속지 말라. 상위 1%에 부와 권력과 기회가 독점되고, 그 폐해는 하위 99%에게 전가되는 세상은 그런 새빨간 거짓말들이 보편적 진리인양 호도되면서 이루어진 결과다.



하물며 생존선 근처의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런 세상이 지인이의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신뢰와 협력, 호혜성의 문화를 높이는 평생고용이 인류의 자산 중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다시 깨닫게 됐을 때, 인류는 비로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누진적 증세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임금피크제와 일자리 나누기를 얘기하기 전에, 비정규직의 확대 적용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경영효율성을 주장하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신뢰, 이타적 협력과 평등한 자유를 구축할 수 있는 소득 보장과 복지 제공이 가능하도록 만들 때 우리 모두는 지인이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탄생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때, 불평등하게 주어진 조건과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현재를 넘어 미래의 삶까지 결정하지 않을 때, 개인으로서나 조직의 일원으로서나 노동의 대가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지인이의 동료나 친구로서 삶이라 길을 동행할 수 있다.   




P.S. 로버트 퍼트남과 수많은 석학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태어났을 때부터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체험한 밀레니엄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됐을 때 사회적 자본이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래로부터 더 많은 정의와 평등, 협력이 이루어질 때 생존선 이하의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존엄한 존재로서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7.21 08:27 신고

    불편한 시선을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얼굴에서 묻어 나올수 있는 따뜻한 배려가 진정으로
    필요할때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16 신고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끝물에 나오는 현상이라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백순주 2015.09.06 08:01 신고

    세종에 중증 장애학생들을 위한 '세종누리학교'가 조용히 첫 개교를 했습니다. 개발이 한참인 중심에서 벗어나 산 아래턱에 일찌감치 터를 잡았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장애아들이 예체능 과목만 통합운영 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요과목은 '개별학습실'에서 공부합니다.

    특수교육학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엔 두 부류의 엄마가 있다고 합니다. 장애아 엄마와 비 장애아 엄마.
    왜 이들이 무서워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우린 그 이면보다 보여지는 현상에 집중해서 얼굴을 찌푸립니다.
    무엇이 화나게 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존엄한 존재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날은 함께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6 09:12 신고

      네,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소비지상주의가 극에 이르면 외모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나 강해집니다.
      보기에 좋은 것만 쫓게 되고, 그것이 성형이나 지나치고 너무 어린나이부터의 화장 등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남성도 이제는 화장과 성형을 주저하지 않으니 외모에 대한 강박이 더욱 커졌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외국인들과 얘기하면 한국여성은 너무 날씬하다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얘기인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소비지상주의는 외모를 가꾸는 것을 부추기고 젊음에 집착하게 해서 멋있게 늙은 것을 회피합니다.
      이것이 쌓이면 세대간 갈등의 원인도 되고, 노인을 경시하는 것, 늙지 않기 위해 더욱 소비하고 성형하고 화장하게 만듭니다.
      결국 노후자금을 만들 수도 없고, 상위 1%만 좋은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까지 소비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아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통합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의 무서움이 이것입니다.
      예쁘고 아름답고 보기 좋으면 좋은 상품으로 인정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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