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난이라는 생각에 금방 익숙해진다. 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하는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악이 오래 계속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ㅡ 토크빌의 편지에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서 재인용  

 

 

 

 

 

아래의 인용문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제5권 제2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인류가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부를 늘려왔음에도 부의 불평등과 지독한 빈곤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산업화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빈곤의 증가 ㅡ 헬조선의 근원 ㅡ 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설명해주기도 힘들 것입니다. 기본소득제의 정당성도 아래의 인용문 안에 녹아 있습니다.

 

 

불평등과 빈곤 증가의 근원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의 노동착취에 중점을 뒀다면, 헨리 조지는 토지사유화의 독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깝든 신자유주의가 19세기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함은 현재의 부정의를 해결할 수 있는 근원과 정당성, 수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주류경제학이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는 진리가 두 사람의 주장에 들어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산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액에 머무는 이유는, 생산력의 향상과 더불어 지대가 더 큰 비율로 상승함으로써 임금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문명 발달의 직접적인 결과는 욕구 충족을 위한 인간 노동의 힘을 모든 면에서 증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빈곤을 타파하고 궁핍과 궁핍에 대한 두려움을 추방한다. 진보의 내용과 진보하는 사회가 추구하는 상태의 직접적이고 자연적인 결과는,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물질적 상태를 ㅡ 그에 따라 지적, 도덕적 상태도 ㅡ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문명 발달이 가져오는 혜택을 거두지 못한다. 누군가 이를 가로채기 때문이다. 노동에 필요한 토지가 사유재산으로 전락하여,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모두 지대 ㅡ 노동이 자신의 힘을 적용하는 기회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가격 ㅡ 상승으로 흡수된다. 이리하여 계속되는 진보에 의해 생기는 모든 이익이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고 임금은 증가하지 않는다. 임금이 증가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회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이 노동의 생산의 증가에 동반하여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유 노동자의 생활도 자기 노동의 생산력이 증가하면 절대적으로 내지 상대적으로 더 악화될 수 있다. 지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투기 경향이 발생하는데, 투기는 지대를 더욱 상승시킴으로써 앞으로 이룩될 개선의 효과를 반감시켜 버린다. 또 투기 없는 통상적인 상황과는 달리, 임금을 노동자가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노예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린다.

 

 

이와 같이 노동은 생산력 향상의 모든 혜택을 박탈당하고 문명 발달의 부작용에 희생된다. 노동은 문명 발달에 자연스럽게 수반하는 이익도 얻지 못하고 자유 노동은 노예처럼 무기력하고 비천한 상태로 전락한다. 문명이 발달하며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개선이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노동은 불가피하게 분업되어 구성원의 독립성이 상실된다. 그러나 노동자 전체로서의 능률은 향상된다.

 

 

아주 평범한 물자를 공급할 경우에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개별 노동자는 그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대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미개 부족의 경우 노동생산물 총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각자 독립적 생활을 해나갈 능력이 있다...즉 모든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다. 자기 부족에서 떨어져도 살아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관계에서 자유로운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 미개인과 문명사회의 최저층 노동자와 비교해 보라. 사회의 부 가운데에는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물자도 많다. 그런데 노동자는 이 가운데 한 가지 물자 내지 그 물자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생산하면서 산다. 노동자는 자기가 일하는 데 필요한 도구조차 만들 수 없으며, 자신이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할 능력도 없는 도구로 일을 한다. 노동자는 미개인보다 더 장시간 더 힘들게 일을 하지만 미개인이 얻는 단순한 생활필수품 이상을 얻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미개인이 누리는 독립성을 잃고 산다. 자신의 힘으로 욕구를 직접 충족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동시에 일해 주지 않으면 간접적으로도 충족하지도 못 한다.

 

 

이 노동자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거대한 체인의 한 연결 부분에 불과하며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다. 사회 속의 지위가 낮을수록 사회에 더 의존적이 되고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극히 줄어든다. 자신의 요구 충족을 위해 노동을 행하는 힘조차 자신의 통제 밖에 놓인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또는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어떤 일반적인 원인에 의해서 이 힘이 박탈되기도 하고 회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초적 저주를 은혜처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 선인 양 그리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양 생각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법제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인간성의 본질적인 요소, 즉 신처럼 환경을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노동자는 노예나 기계나 상품이 되어 버리고 어떤 점에서는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만다.

 

 

......(이 때문에) 부의 한 가운데서 빈곤에 처한 계층은 미개인이 누리는 인간적 자유도 없이 빈곤하기만 하다. 생활의 협소함과 왜소함에서는 미개인보다 더 하면서 천부의 능력을 성장시킬 기회도 없다. 미개인보다 더 너른 세상에 산다고 하지만 이는 누리지 못할 축복에 불과하다. 

 

 

P.S. 위의 인용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하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십시오.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답해 드리겠습니다. 

  1. 뉴론♥ 2015.11.07 08:26 신고

    헬조선은 요즘 유행어디르고요 어디가나 댓글에 많긴한데
    왼지 씁슬하죠

  2. 훈잉 2015.11.07 10:39 신고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5.11.07 12:29 신고

    갈수록 예전보다 못해 지고 있습니다

  4. 구름바다 2015.11.11 19: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기고문이 뜸하여 궁금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겼었군요...

    너무 무리하게 연구에 몰두하지 마시고
    부디 건강 회복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에너지가 충만한 나날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5. 참교육 2015.11.12 09:28 신고

    인간이 만든 최악의 제도가 자본주의요 잔본주의 중에 가장 알랄하 게 신자유주의입니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6. 불루이글 2015.11.12 16:02 신고

    손만 내밀면 원하는 물건들이 쇼윈도 너머에 넘치도록 풍성 하지만 그기에 도달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간과 노동은 갈수록 길어지고 힘들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의식주에 다가가는 데 필요한 노력을 낮추어 주는 정치력 있는 정당을 선택 하는 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방법은 오직 투표 밖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7. 공유의 플랫폼 2015.11.17 10:10 신고

    맞아요..자유처럼 보이지만 자유가 없는 사회처럼 지대가 너무 높아져버려서 소비여력이 없게되었죠.

  8. 2015.11.20 06:07

    비밀댓글입니다

  9. 덕산 2015.11.24 17:39

    갈수록 이런 사회적 현상이 고착화 될 것 같네요...
    건강챙기시구요.



박근혜 정부의 정규직 과보호론은 한마디로 말해 자본과 재계(오너와 경영진 및 대주주)의 입장만 반영한 편향된 주장입니다. 석유를 대체할 만한 먹거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기업)이 이익을 높일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정규직의 인건비(정확히는 정규직의 권리고 최후에는 노동의 권리가 될 것이다)를 최소화하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기업)의 역사는 최대 이익을 거두기 위해 투자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역사였습니다. 특히 지난 4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자본(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밖의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고, 최후의 장벽으로 남은 것이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입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바늘공장’의 예를 들며 분업이 불러오는 생산의 확대가 자본(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것이 밝혀진 이래, 포드 자동차의 자동화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자본(기업)의 이익은 비례해서 늘었지만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들었습니다.



기술 발달에 따른 자동화는 노동의 질을 숙련노동에서 비숙련노동으로 만들었습니다. 노동의 질은 갈수록 떨어졌고, 이는 임금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남성노동자가 줄어들었고, 저임금 여성‧청소년노동자가 노동현장에 투입됐습니다.





고든 레어드가 《가격파괴의 저주》에서 자세히 다루었듯, 중국처럼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는 저소득 국가들의 등장은 자본(기업)에게 저임금노동자를 무한대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외국노동자의 수입도 동일한 효과를 발휘함에 따라 임금하락과 높은 실업률은 일상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의 폭주를 견제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지켰던 노조의 힘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네그리가 《혁명의 만회》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신자유주의 세력들에 의해 노조는 더 이상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을 만큼 무력화됐고, 대형사업장 노조들은 기득권의 일부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이 지닌 지적‧경험적 오류를 줄여주거나 대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이를 장착한 디지털컴퓨터가 일반화되면서 화이트칼라(전문직 포함)의 지식노동까지 위협받고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고착화됐습니다.





데이터의 저장용량을 무한대로 늘리고 있는 반도체의 발달로 빅데이터 구축이 가능해졌고, 이를 활용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발달로 수십 년의 경험으로 구축된 노하우까지 대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최고급 지식노동자까지 컴퓨터의 조작자나 보조자의 역할로 격하됐습니다.



이렇게 기업 활동의 대부분이 자동화됨에 따라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 현실화되기에 이르렀고, 비정규직이 느는 만큼 정규직의 임금도 줄어들었습니다. 컴퓨터 클라우딩 시스템과 사물인터넷의 현실화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노동의 종말’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입니다.



니콜라스 카가 《유리감옥》에서 “GE와 애플 같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일부 제조업을 다시 옮기고 있다는 소식조차 무작정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제조업이 되돌아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 없이도 대부분의 제조업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고용없는 성장’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말해줍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자본(기업)은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노트북과 스마트폰, 테블릿PC, 자가용비행기, 핵심인력 등만 있으면 노동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화의 과실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필요했던 시절의 자본(기업)은 전설의 영역으로 사라졌습니다.



무한경쟁에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의 폭주는 비정규‧파견‧임시직에 아웃소싱까지 활성화시키는데 정치권력을 포획하는데 성공했고, 이제 자본(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은 것은 정년과 그에 따른 임금상승이 보장되는 정규직의 자유로운 해고와 임금뿐입니다(2편에서는 반론, 3편에서는 대안을 다루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4.04 08:26 신고

    정책입안자나 결정권자가 한번이라도 을의 입장,비정규직 입장에서
    생각하고 정책을 세운다면 분명 달라질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2. 뉴론♥ 2015.04.04 08:36 신고

    전 비정규직도 좋아요 취직만 할수 있다면요

  3. 참교육 2015.04.04 12:42 신고

    자본주의는 영원한까?
    이 담론은 끝이 없습니다.
    결국 자본의 영원한 승자일 수밖에 없다는 채념이 약자를 더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4. 공유의 플랫폼 2015.04.05 00:01 신고

    무엇이 정답일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가라는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야 된다는 담론에는 동의해야 될것 같아요.

  5. Aa 2017.11.09 10:40

    일반적인 헬조센의 기업의 인력중 90%가 해고도 못하는 잉여인력인걸 모르나? 미국기업들은 정규직 해고시 해고사유도 대야하는 의무가 없는 반면, 헬조센에선 고용한 후면 게으르고 무능한게 입증이 되도 해고를 못하는게 현실. 쓸모없는 인력을 해고하지 못하는 헬조센 기업들은 그만큼 경쟁성이나 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회사 전체의 임금도 하향 평준화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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