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와 함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금융(경제)위기를 다룬 책들의 단골손님이다. 대표적인 것이 찰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와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들어 모타니 고스케의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 등이 나오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어떤 요인들이 겹쳐 일어난 것인지 명료해졌는데, 4대강공사와 부동산활성화로 대표되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완벽한 판박이다. 





이런 책들을 종합하면 1,2차 오일쇼크 이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프라자합의(품질 대비 가격경쟁력이 높았던 일본과 서독의 제품 때문에 무역적자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일본과 서독에 정치적 압력을 가해 마르크화와 엔화를 강제로 절상시켜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린 불평등 합의)보다 일본의 경제운용 방식이 '잃어버린 20년'의 원흉임을 알 수 있다. 핵심은 정부 주도 하에 금리를 내리고 땅값을 올려 부동산 거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프라자합의로 가격경쟁력이 약해진 일본기업들은 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해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 일본 정부와 손잡고 국민의 지갑을 털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실적 부진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일본 정부는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인하하고, 인위적으로 땅값을 올려 기업대출을 늘렸다. 한국기업처럼 일본기업들도 부동산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땅값이 오르면 자산이 급증하기 때문에, 이를 담보로 초저금리의 대출을 받아 적자를 보존했다. 



이때부터 일본기업들은 (미국의 GM과 포드 등이 그랬던 것처럼)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주는 기술 발전(일본 제조업 특유의 장인정신이 몰락)을 등한시했으며,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다름아닌 부채경영에 매달렸다. 이에 따라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인 미증유의 부동산 거품(도쿄, 교토,오사카에 집중)이 형성됐고, 경영에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도입함에 따라 종신고용이 무너지며, 일본의 기적을 이끌었던 숙련된 정규직이 비숙련된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일본은 금융산업의 활황으로 제조업(특히 대기업)의 몰락을 숨길 수 있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금융업체가 발행한 부실채권과 증권들을 일본 정부(중앙은행)가 인수했기 때문에 제조업의 부실을 숨길 수 있었지만, 엄청난 저축과 세금으로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폰지금융(대출받은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원금은커녕 이자도 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서브프라임모기지처럼 고위험의 추가대출을 해주는 것)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또한 신자유주의 경영으로 대규모 해고에 따른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가계소득이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일본의 부흥을 이끌었던 단카이세대(한국의 베이비붐세대에 해당)도 주거와 육아, 교육 등에서 상당한 지출이 필요했던 자식들(제2의 단카이세대)이 성년이 됨에 따라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제2의 단카이세대는 악화된 근로환경 때문에 소득이 부족했고, 부모세대처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N포세대보다 10여 년 정도 앞서 제2의 단카이세대는 결혼과 출산, 주택 마련 등을 포기했고, 자식을 양육하느라 저축액이 적은 단카이세대들도 자식들을 더 이상 보살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제2의 단카이세드들은 재취업을 원하는 단카이세대와 경쟁하게 됐으며, 두 세대(부모와 자식)가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이며 저임금의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에 이르렀다(한국은 일본보다 고령화가 더욱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구수가 가장 많은 두 세대는 생존을 위해 필수품을 제외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내수기업과 자영업자의 매출감소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기업과 자영업자는 직원을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일본의 내수경제는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었고, 최후에 이르러서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령화와 저출산도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생산가능인구'와 주소비층(19~45세)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한국의 6070세대들처럼 고도성장의 혜택을 누린 단카이세대 부모들은 노후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 특유의 문화도 한몫했다)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유산을 상속해주지 않았다. 고령의 이들은 소비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약 1400조 정도의 자금이 이들의 수중에서 내수경제를 견인하는 소비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들이 죽음에 이를 때는 자식도 7080세대에 이르렀기 때문에 상속을 한다 해도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다.  



로버트 라이시가 《슈퍼자본주의》에서 말한 것처럼, 현대의 경제는 생산자가 곧 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비가 줄면 생산이 줄어 내수경제는 불황의 늪으로 직행한다. 로버트 라이시가 주창했던 시민의식도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프라자합의 이후 무역수지가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해서 재정적자가 늘어났으며, 초저금리와 소비 부족까지 더해지자 일본은 장기적인 디스플레이션(잃어버린 20년)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디스플레이션이 고착화되자 제조업만이 아니라 금융업체들도 한계에 봉착했고, 1997년 전후로 일본 정부가 해결해줄 수 있는 임계점을 돌파했다. 마침내 (주택구입자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 건설업체들의 단순무식한 판단 때문에) 과잉공급된 주택들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킨들버거의 책 제목처럼 '광기, 패닉, 붕괴'의 수순에 따라 금융산업을 시작으로 해서 제조업의 몰락과 가계의 붕괴까지 일본은 총체적인 경제후퇴에 접어들었다. 





일본의 경제후퇴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2008년의 미국 월가발 금융위기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잃어버린 10년'을 20년으로 늘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더해지자, 일본경제의 총체적인 붕괴는 회복불가능한 상태로 접어들었고, 부동산가격이 40% 가까이 폭락함으로써 국민 전체가 중산층이라는 일본의 경제신화도 산산조각났다(한국의 가계부채 급증이 최악의 위험인 이유).



이밖에도 경제후퇴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진행한 대규모 토목사업(이명박의 4대강공사)과 미국의 군사식민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미국산 무기의 대규모 수입, 일본 제조업체의 생산공장들이 밀집한 고베대지진과 태국의 대홍수, 후쿠시마 원전폭발 등도 '잃어버린 20년'에 일조했다. 이것이 최대한으로 압축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진실인데, 이 모든 것들이 이명박근혜 정부의 8년9개월이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불행한 1020세대와 그 이후의 미래세대를 헬조선에서 벗어나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부터 시작해 인공지능에까지 이른 필자의 지적 여정이, 최근에 들어 경제에 관한 한 일본학자들의 책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명박근혜의 8년9개월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는 상위 1%를 위해 하위 99%를 지옥으로 몰고간 일본의 전철을 완벽하게 따라가고 있다.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끝이 극우정부인 아베 내각(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무려 189조를 허공에 날린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단 3년만에 130조를 추가로 날린 것(한국판 아베의 양적완화)의 끝에는 극우세력의 장기집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지난 대선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권력의지가 강해진 문재인이 대세론을 이어가 대통령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음 정부는 이명박근혜 정부가 폭발 직전까지 몰고간 총체적인 붕괴를 막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풍부한 국정경험만이 아니라 안정적인 고정지지층을 형성한 문재인이 압도적인 완승으로 대통령에 오르는 것이 최상의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문재인이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 정청래, 김부겸 등 더민주의 모든 차차기 주자들까지 포함해 참여정부를 능가하는 정부를 구성(유시민과 정태인도 강제로 호출해야 한다)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고 반등의 계기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대한민국 역사상,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노무현의 참여정부만큼 민주적이고 뛰어난 인재들로 넘쳐나는 정부를 보지 못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노무현이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의 오마쥬를 보는 듯하다. 각국의 정부들이 내놓는 국가미래전략들을 살펴봐도 참여정부가 마련한 각종 미래전략을 떠올리게 된다. 담뱃값 인상과 정반대의 역할을 하는 종부세(부자증세), 행정도시 이전에 따른 지방균형발전, 심지어는 사스의 철통방어에서 보듯이 국가재난사태를 극복하는 것도 참여정부가 타의모범으로 부족함이 없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문재인이 대통령에 올라 제2의 참여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면 노무현이 시작했지만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과 조중동, 뉴라이트 등의 융단폭격으로 완결하지 못한 4대개혁입법과 '비전 2030'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무지하고 무능한 데다 나쁘기까지 한 이명박근혜의 정반대에 노무현이 자리하고 문재인이 자리한다. 필자가 아는 한 문재인 대세론만이 노무현이 못다 이룬 '사람사는 세상'을 실현할 수 있으며, 그때에 이르러서는 돈과 성공이 아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9.08 08:38 신고

    주변국에 대한 학습 효과가 전혀 없는 정권입니다
    나쁜것만 골라 답습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9.08 10:40 신고

      박근혜가 인격장애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것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탄핵만이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내년 중순 쯤이면 가장 좋겠는데...

  2. 맹그로브 2016.09.08 10:50

    노무현이 이렇게 실정했었다면 탄핵 + 사법처리 + @ 였을 겁니다. 참 아이러니 하죠.

    • 늙은도령 2016.09.08 11:27 신고

      한국이 특권층이 그만큼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1번을 찍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기 위해, 중국정부와 소로스로 대표되는 헤지펀드와의 초대형 환율전쟁에서 시작해보고자 한다. 1969년 퀀텀펀드를 설정한 조지 소로스는 유럽통화제도의 환율조정체제(유럽단일통화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에 적용된 고정환율 시스템이었지만, 유럽중앙은행이 설립되기 전이라 실질적으로는 독일 분데스방크의 통화정책에 따랐다) 가입 때문에 불황이 심해진 영국의 파운드화의 폭락에 배팅해 10억달러를 번 것으로 유명하다. 소로스가 통화위기가 일어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던 파운드화에 배팅한 과정은 폴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에 간결하게 나와있다. 






소로스는 여기에 배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위기를 스스로 촉발시키기로 마음먹었다…처음에 소로스는 별로 눈에 띄지 않게, 심지어는 은밀히 움직였다. 퀀텀펀드는 150억 파운드를 빌릴 수 있고, 또 이 돈을 마음대로 달러로 바꿀 수 있는 신용한도를 조용히 확보했다. 그런 다음, 달러에 대해서는 롱포지션을 파운드에 대해서는 쇼트포지션을 취하고 나서 시끄러운 공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공매도에 대해 최대한 드러내놓고 이야기했다. 각종 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운드화 절하가 임박했음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다른 투자자들의 파운드화 투매가 이어질 것이고, 그러면 영국 정부로서는 항복하고 평가절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파운드화에 대한 소로스의 공개적 공격은 8월에 시작되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영국은 파운드화 방어를 위해 외한시장에서 500억 달러를 쓰면서 고군분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9월 중순에 영국 정부는 이자율을 올려서 통화를 방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사흘 후 영국은 환율조정체제에서 탈퇴, 변동환율제로 선회했다(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로스는 대략 10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기꾼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영국에서 이렇게 돈을 번 소로스가 이번에는 중국의 위안화에 대해 똑같은 공격을 했던 모양이다. 보통 자본금의 4배를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으며, (앞선 투자자의 이자를 후발 투자자의 금액으로 지불해 자본금을 늘리고 그에 따라 추가로 4배의 대출금을 늘려가다 끝내는 폭발하고 마는) 폰지금융의 방식으로 추가대출을 받을 수 있는 헤지펀드란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데 이번에는 위안화를 상대로 공격을 한 것이다. 



소로스의 작전은 영국에서와 똑같이, 절하를 피할 수 없는 위안화에는 쇼트포지션을, 절상으로 돌아선 달러화에는 롱포지션을 취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보도했듯이 소로스는 공개적으로 위안화 절하를 떠들어댔고, 중국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환율방어(증시의 폭락속도를 늦추는 것)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소로스가 얼마를 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정부가 소로스의 투기를 맹비난하는 것까지는 영국의 예와 완전히 똑같다. 





허면 소로스의 악질적인 투기행태가 중국에 손해만 입혔을까?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바마 정부의 요구(추측임을 밝힌다)대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X벤더레이더가 핵심. 개발된지 27년 동안 오류를 잡지못한 사드는 아무것도 아니다)를 한반도에 도입하려는 박근혜의 환관정치는 총선 승리를 넘어 대선 승리를 이루는 그날까지 국민은 물론 수출기업들까지 사지로 내몰고야 말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이번 글이 크루그먼의 시각에 근거했기 때문에 이후의 추론도 《불황의 경제학》에서 찾는 것은 논리적 비약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리라. 크루그먼은 소로스의 공격이 영국정부(당시의 총리는 존 메이저였다)에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영국 전체로 보면 파운드화의 하락(정확히 15% 하락) 덕분에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파운드화의 하락이 몇 주 정도 빨라졌지만, 영국정부는 파운드화를 방어할 필요가 사라졌기에 이자율을 낮출 수 있었다. 그 결과 영국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고 몇 년 만에 이웃나라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낮은 실업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소로스는 10억 달러를 챙길 수 있었고, 영국은 두 번째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에서 벗어나 2007년까지 (영국경제 전체의 대차대조표 상으로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유일제국의 패권전략의 한 축을 담당하는) 허리우드가 제일 좋아하고, 한국의 막장드라마 시청자들이 지겨울 정도로 열광하는 빌머먹을 해피엔딩의 전형이다. "범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앵글로-색슨계의 정책 토론장에서는 소로스와 파운드화의 이야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섞이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은 아시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서 바뀌었다. 투기의 결과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필자가 급사하지 않는 한 오후 5~6시 사이에 올릴 것으로 보이는 2부에서는 중국정부와 소로스로 대표되는 헤지펀드와의 전쟁을 다룬 다음, IMF 외한위기의 재발을 걱정해야 할 우리의 상황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미친년 널뛰는 것으로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박근혜의 환관정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짧게 언급하는 것과 함께.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6.02.18 08:20 신고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면 어떤 꼴이 날지 무지한 박근혜가 알아듣게 좀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치앞을 바라볼 수 없는 위기상황을 만들게 다는 저 무지한 용감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무식하면 용감한 것인지....

  2. 공수래공수거 2016.02.18 08:46 신고

    2부도 기대하겠습니다^^

  3. Yun Kim 2016.02.18 15:47 신고

    해일 배스도 위안화 하락에 베팅하고, 요즘 흥미롭더라구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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