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광주형 일자리'가 잘 풀리기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의원 시절에 공생경제의 일환으로 제시한 것이 '광주형 일자리'여서 문프의 관심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전체 투자액의 일부(500억원)밖에 내놓지 않은 현대차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현대차 노조 모두가 반대해 협약식 체결이 무산되자 문프가 일종의 압력(?)성 발언을 한 것이다. 구좌파와 입진보들이 반대하는 '광주형 일자리'는 청년실업을 줄이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시도로 이해당사자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 타협과 공생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199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문제아'로 비하당했던 독일이 히틀러의 나치 이후 유럽의 최강자로 다시 부상하게 된 '사회적 대타협(통일 독일 이전의 서독 시절에 시작된 대타협으로 통일 이후 폭스바겐의 실험으로 성공했다)'의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진보좌파가 밀고 있는 노르딕 모델과는 달리, 경제규모와 인구 면에서 우리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모델이 현재의 독일이라면, '광주형 일자리'는 독일이 최초의 신자유주의 모델이었던 질서자유주의에서 사회성을 강조한 사회적 시장경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사회적 대타협'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  

 

 

 

 

독일의 사회적 대타협이 탄생시킨 현재의 독일을 설명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에 핵심만 간추려 보면 독일의 노동자들이 유럽의 다른 노동자에 비해 조금 낮은 급여를 받고 파업을 하지 않기로 양보한 것이다. 이런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을 정부가 낮은 물가 유지와 저렴한 부동산 공급, 고품질의 생필품 제공, 고급제품에 부과되는 높은 세율(일종의 사치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 무상교육과 아동수당 같은 사회복지 강화 등으로 만회해주었다. 메르켈이 지역의 슈퍼마켓에서 장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자유 못지않게 평등을 추구한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유럽국가 중 통일이 가장 늦었기 때문에 미국과 비슷한 연방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지역 갈등이 대단히 높을 정도로 4개의 민족(작센족, 프로이센족, 슈바벤족, 바이에른족)이 서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스마르크가 유인원과 인간 사이에 불과하다고 비하한 바이에른족은 아직도 오스트리아와 국가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 지역 갈등이 대단히 강하다. 독일 청년들이 대도시로 진출했다가도 결혼을 할 즈음에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민족적 전통 때문이다. 독일의 국가적 통일성이 낮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 민족적 차이에서 나온 당연한 현상이었다.

 

 

(프랑스는 프랑크족, 노르만족, 브르타뉴족, 가스코뉴족, 프로방스족으로 구성됐고 영국은 잉글랜드족, 스코틀랜드족, 웨일스족, 아일랜드족으로 구성됐다. 어떤 책에서 봤는지 찾아봐야 하지만, 유럽 각국의 국경을 민족적 역사를 무시한 채 제멋대로 그어버린 파시즘적 결정 때문에 민족간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입된 이주자까지 포함해 다민족으로 구성된 파리의 폭동이 마르세이유 등의 대도시로 번진 이면에는 이런 요인이 한몫하고 있다.)

 

 

구 동독의 일부를 제외하면, 모든 지역정부가 세계적 수준의 토종기업을 중심으로 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자체경제를 구축하고 있어서, 미국 건국자들이 연방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리와 헌법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만든 수정헌법처럼, 독일도 지역적 통일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국가로써의 통일성을 높일 필요가 상당했다(독일에는 세계적 메이커가 없다고 말한 이재명의 무식함이란!). 유럽의 다른 국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회적 대타합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의 역량을 최대한 빨리 키워 주변 국가로부터 주권을 지켜야 할 필요도 상당히 컸지만.   

 

 

사회적 대타협에 성공함으로써, 다른 유럽국가들이 국가와 민간의 부를 인위적으로 높여 상당한 여유 자금(대부분 정부가 보증한 은행의 대출 형태를 띠었다)을 만들 수 있었고, 이것을 통해 금융업계가 뻥튀기함으로써 허구의 경제성장에 목맸던 것과는 달리 전통의 제조업(실물경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독일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처럼 수출 주도의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제조업에서 탈피해 지식과 서비스 산업으로 돌아선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독일의 성장 속도는 느렸지만 제조업 경쟁력은 최고에 이르렀고 물가는 낮았으며 소비 성향이 약해 국민의 저축액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유로 사용과 재정건전성으로 대표되는 유로존의 잘못된 통합이 탄생하자 독일의 경쟁력과 자금력은 다른 국가들을 압도했다. 빚도 자산이라는 금융논리에 기반해 성장가도를 달렸던 다른 국가들은 이자율을 훨씬 상회하는 이익을 거둬야 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30~40년 정도의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리자 이자를 내기도 힘들어졌다. 지배엘리트에 속았던 국민들이 그 동안의 고도성장이 폰지금융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일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경제침체기로 접어들었지만 제조업의 압도적 우위에 바탕한 독일의 독주는 유로존의 목표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유럽의 독일'을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 '독일의 유럽'을 만들어버린 유로존의 '잘못된 만남'(독일이 유럽의 제국이라는 히틀러의 욕망을 재현하려고 한다며 메르켈 총리를 맹비난한 울리히 벡의 《경제위기의 정치학》을 참조)까지 더해져서 독일은 '유럽의 문제아'에서 유아독존의 위치로 비약할 수 있었다. 미국과 영국을 강타한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가 유럽의 경제위기로 전이된 이후에는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독일의 처분만 기다리는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영국의 브랙시트도 이런 독일의 독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국가적 필요성이 대영제국으로 돌아가자는 표퓰리즘적 목표에 잠재해 있었다.  

 

 

독일을 유럽의 맹주로 자리매김시킨 슈뢰더 내각의 '사회적 대타협'에서 우리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로 수정한 '광주형 일자리'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은 현대차가 한국기업이냐? 이런 얘기하면 광고를 주지 않아서 어떤 언론도 보도하지 못한다'며 <사사건건> 진행자 김원장 기자가 분노를 표출하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던졌던 질문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무지의 소산이다. 애국심에 개댄 그의 분노 표출은 일곱 가지 이유로 구좌파와 입진보 특유의 과장과 편향된 주장에 기초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현대차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과는 달리 한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익을 국내로 들여온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반쪽 주장이다. 이 이익에는 여러 곳에 쓰일 세금이 부과된다. 둘째, 스마트폰이나 반도체를 비롯해 수많은 화학제품 등은 각종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관세가 제로이거나 매우 낮기 때문에 국내에 공장을 세워도 높은 생산성으로 높은 임금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반면에 자동차는 25%에 이르는 관세 폭탄이 적용되기 때문에 현지에 공장을 건설할 수밖에 없다. 'just in time'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모델(미국의 포드주의는 'just in case'로 대표된다)을 따라한, 현대차 협력업체들이 현대차와 동반 진출에 나서 최고의 생산성에 도전한다.

 

 

셋째, 미국의 기업들처럼 저임금 노동자(적응을 잘하는 10대 여성이 제일 많다)를 이용할 수 있고, 각종 환경규제에서 자유롭고, 뇌물을 주면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외국(중국에 집중됐다)에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팔거나 수출하고, 일부는 국내로 역수입해 국내소비자의 욕구도 채워줄 수 있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이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국내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욕할 것은 아니다. 모든 국가와 무역전쟁을 펼칠 것 같이 떠벌였던 트럼프가 대한민국에게는 여러 번의 면제를 제공한 것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문프와의 친분과 함께 기업들의 이런 현지화 전략도 한몫했다.    

 

 

넷째, 무진장의 세일가스와 낮은 금리, 트럼프의 미친 법인세 인하 등으로 생산단가가 대폭 줄어든 것 때문에 해외에 진출한 미국기업들의 국내로의 유턴을 현대차와 비교하는 것도 잘못됐다. 많은 부분에서 제멋대로의 미래를 예측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었지만, 세일 가스에 관해서는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한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이 패권과 지정학》을 보면 김원장 기자의 주장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실상 50개 국가로 구성된 미국은 기업의 유턴을 촉진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정도로 자체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기업의 유턴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됐기 때문이라서 현대차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섯째, 세계에서 가장 강한 노조 중 하나인 현대차 노조의 격렬한 반대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30~40년이나 된 노후된 생산라인을 사용하기 때문에 로봇 등이 추가된 새로운 생산라인에 비해 생산성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들로서는 적은 임금으로 높은 생산성을 보일 '광주형 일자리'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다. 귀족노조라는 편향된 프레임ㅡ귀족노조의 핵심인 연봉 1억은, 3천~4천 정도의 기본급에 온갖 잔업수당을 합친 것이라 과정된 주장이다. 다른 노동자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연봉이라는 점에서 욕먹을 만도 하지만, 사측과의 투쟁에서 받아낸 것이라 다른 노조에 비해 투쟁을 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ㅡ에 갇혀 천문학적 차원의 욕을 먹고 있는 현대차 노조가 목숨을 걸고라서도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다섯째, 매력적인 조건이라도 광주라는 지역으로 취업할 청년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현실이다.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그들을 수도권 이외의 공장에 취업하라고 설득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다. 지방은 서울과 수도권의 내부식민지ㅡ이것을 처음으로 개념화한 사람은 '20 : 80 법칙'으로 유명한 파레토다ㅡ에 불과할 정도로 제반 시설이 열악하니, 온갖 스펙으로 중무장한 청년들을 유인할 메리트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투자하고 빚을 진 것이 얼마인데 4,000만원의 연봉을 받기 위해 광주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논리에 종속시키는 신자유주의 합리성(비인간화 또는 탈인간화로 향하는 합리성의 비합리성)에 포위되면, 개인은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서, 자신의 투자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역량을 높이고, 실패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는 인적 자본으로 대체된다. 자신이 투자할 가치가 있도록 빚을 내서라도 스펙을 쌓고 축적하는데 전력을 다한 청년들이 서울과 수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받아들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들은 알바를 뛰거나 휴학을 선택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할지언정 광주 같은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섯째, '광주형 일자리'로 년간 35만대를 만들면 포화된 국내 자동차시장은 폭발을 피할 수 없다. 자신의 살을 깎아먹는 자동차업계의 출혈경쟁이 펼쳐질 터, 모두가 패자가 되는 공멸을 피할 수 없다. 현대차가 합의안를 거부한 이유가 이 때문인데, 대략 5년 정도로 예상되는 35만대 생산에 미달할 경우 투자 이유가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로써는 현대차의 주장을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과잉공급을 피하려면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고 있는 기존 공장의 생산량을 늘리거나, 그들의 임금을 줄이거나 그것도 아면 해외공장에서의 역수입을 줄여야 한다. 현대차와 현대차노조 모두가 반대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7가지 이유로 <사사건건> 진행자 김원장 기자의 분노 표출ㅡ그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현대차를 압박하는 것이기 때문에 박수를 쳐줄만 하다ㅡ은 대중의 오해를 불러올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 '펙트 체크'가 선행됐어야 했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평향된 정보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인지 편향에 이른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것들만 받아들여서 신념의 경지에 이르는 확증 편향에 도달한다. 이런 상태의 김장원 기자라면 확증 편향된 인식으로 현대차의 거부를 바라보게 본다. 진보 진영의 최대 약점인 현장이해도가 떨어지는 김원장 기자의 분노 표출은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낼 수 있지만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해는 이렇게 자리잡는다, 각각의 개인에게.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임금협상을 유예한다는 조항 때문에 '광주형 일자리'를 거부한 현대차도 대단히 나쁜 놈들이지만, 이전처럼 강성노조의 무리한 주장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그들의 트라우마도 고려해야 한다. 현대차 노조(최악의 기득권 노조인 기아차 노조의 참여는 동의할 수 없다)의 부분 파업도 자신의 몫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한편으로는 당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질의 청년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이기적인 행태로 국민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프가 협상 실패를 지켜보고 있다는 압력성 발언을 한 것도 이 모든 사항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해서,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타협책은 현대차와 현대차 노조에 의해 거부된 '광주형 일자리 협약'에 동의하되, 언론과 시민단체는 두 곳의 생산성 비교를 통해 양자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연봉1억 원을 받는 노동자가 많다고 해서 귀족노조ㅡ강성노조는 맞지만ㅡ로 분류된다고 해도 그들의 투쟁을 사측이 받아들이고도 이익을 낼 수 있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30년 정도를 일해온 노동자의 연봉이 1억원이면 어떻고 2억원이면 어떻단 말인가? 자신의 연봉을 높이기 위해 협력업체를 쥐어짠 결과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지만.

 

 

정부는 그에 합당한 세금을 물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국민복지를 늘리면 되는 것 아닌가? 조중동과 경제지, 자한당, 극우논객들이 입에 개거품을 물며 반대할 것이 눈에 선하지만. '광주형 일자리'에서 출하될 값싼 자동차 때문에 현대차 노조가 피해를 입는다면, 최소 5년 동안 임금 삭감 없이 생산량을 조율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합의점을 찾으면 된다. '광주형 일자리'에서 값싼 자동차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것은 현대차 노사가 제 살을 깎아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도 생산량 35만대에 이를 때까지 임금협상을 유예ㅡ노조가 조직되고 활동하는 것에 대한 사측의 두려움이 반영된ㅡ하는 조항을 무조건 거부하는 땡깡을 거둬들여야 한다. 최소한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노동자의 임금상승에 동의해야 한다(김원장의 주장 중 일리가 있는 단 하나). 현대차가 사인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로봇처럼 생산성 높은 라인으로 구성된 미국과 중국, 인도, 유럽 등지의 생산공장을 국내에도 세우지 못한 이유가 노조의 반대 때문이라는 조중동문과 경제지들의 보도들이 (현대차의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독자와 국민을 속인)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들의 보도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노조의 항변도 거짓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진실이 무엇이던 알바나 휴학, 대학원 진학을 할지언정 중견기업이나 우수 중소기업에는 죽어도 취직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광주형 일자리'에 얼마나 응모할지는 모르겠지만, 진보적 자유주의자 꼰대의 입장에서 말하면 일단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에 따라 자신의 입맛을 모두 채워줄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기에, 아니 그런 일자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무조건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광주형 일자리'에 도전하는 것이 패자의 입장에서 도피의 대안으로 들고나온 것처럼 보이는 '소확행'보다는 몇 배 이상은 낫다고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디지털의 특성이 아니라 아날로그적 특성이 지배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현재의 쾌락에 집중해 죽을 때까지 오늘의 행복에만 집중하라는 일부의 헛소리는 삶을 하찮은 것으로 떨어뜨릴 뿐이다. 적은 월급과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대와 선호, 욕구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는 청년들도 상당히 많다. 이재명 퇴출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는 문파의 희생과 노력도 환희의 배당이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함이 아닌 것처럼, 그들도 투자 대비 이익이 떨어지고 자신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수 없는 일일지라도 자신의 선호와 기호, 욕구와 꿈의 실현을 위한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에서 당장의 만족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딴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우리는 다치고 지치고 병들고 죽어서 분해될 육체를 가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되 굴하지 않음으로써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보다 고귀해질 수 있었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에서 인간만이 그런 위대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종이기 때문이다. 청년이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취업을 늘릴 때 정부의 지원도 대폭적으로 늘어난다. 현대차 노동자의 높은 임금을 비판하는 조중동문과 종편, 보수 경제지들의 보도와 이를 반박하는 한경오로 대표되는 진보매체들의 보도에 휘둘려 나도 그런 연봉을 받는 노동자가 될 수 있다며,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외면한다면, 정부가 그들을 도와줄 이유가 사라진다. 

 

 

대기업이나 공무원만 선호하는 청년들이 '닭이 먼저냐 댤걀이 먼저냐?'라는 순환논리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기대치를 채워줄 일이란 하늘에서 별따기이며,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늘에서 별따기는 어린아이 장난 수준으로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폭주와 그것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신자유주의의 합리성 때문에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으며, 많은 청년들이 기대하고 있는 본편적 기본소득에는 치명적인 난제들이 내재돼 있어 알바나 하면서 앞세대를 욕한다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도 갈수로 줄어들 것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줄어들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카사바 2018.12.07 17:38

    오늘도 선생님의 글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예전에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무지랭이였다가 촛불 이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통령님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 가면서 비로소 눈을 뜨고, 아직은 멀었지만 선생님의 글을 통해 배움의 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도 갑자기 엄청 추워졌든데 감기들지 않도록 건강관리 잘하시고요🙏
    매사 항상 건승하시길 빌어 봅니다

    • 늙은도령 2018.12.07 18:14 신고

      님도 추위에 건강하셔야 하고요.
      지식은 나눌 때 커집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랄게요.

  2. 카사바 2018.12.07 18:40

    "지식은 나눌 때 커집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3. 문파 2018.12.08 04:42

    저도 김원장 말에 혹 했는데
    균형잡힌 시작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4. 기레기소탕 2018.12.08 09:35

    이시대 청년의 한사람으로서 광주형 일자리를 이렇게 풀어주시는거 정말 리얼 고맙습니다

    현재 일하고 잇는데 저는 지방가는거에 대해 전혀 거부감 없어서 솔직히 관심가네요

    • 늙은도령 2018.12.08 14:01 신고

      꼭 가십시오.
      정규직에 고용 보장되기 때문에 꼭 가십시오.
      청년들이 많이 가야 정부도 현대차를 더욱 압박해 노동자의 입지를 높여줄 것이에요.
      협력업체들도 생길 것이고, 그러면 광주의 지역경제가 매우 활기를 띠게 되니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됩니다.

  5. 기레기소탕 2018.12.08 17:54

    감사합니다 도령님 전 수도권에서 사무직박봉으로 일하고 잇기에 광주형 일자리의 연봉은 충분히 매력잇습니다

    지방가는거 거부감? 절대 노노구요

    다만 광주형일지리가 신설되면 아무래도 기존 지역민 호남 위주로 채용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당연히 그럴수 잇다고 보구요

    부디 광주형일자리가 신설되고 타지역 청년들에게도 문호가 더 개방됏으면 좋겟습니다

    • 늙은도령 2018.12.09 00:29 신고

      이번에 성공하면 독일처럼 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마침 시사기획 창에서 똑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네요.

 

 

 

기본소득제를 최소화하고 최소화한 청년배당제를 두고 집권세력과 기득권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체 청년배당제가 무엇이기에 집권세력은 물론 정론직필을 지향한다는 JTBC를 비롯해 종편과 지상파3사까지 나서 집단적으로 서울시를 비판하는 것일까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저임금·임시직을 전전해야 하는 청년에게 쥐꼬리 만한 지원 좀 해주자는데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이명박이 자원외교를 통해 40조 이상을 날리고(다른 것까지 합치면 200조에 이른다), 박근혜가 100% 실패할 수밖에 없는 KF-X사업에 혈세 18조5천억을 쏟아붙는 것을 결정한 것에는 일정 수준의 비판만 하면서, 경제사회적 약자인 청춘들에게 겨우 백억 정도의 금액을 배정한 것에 이렇게도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없었다면 이재명과 박원순을 향한 공격이 노무현 죽이기에 버금갈 만큼 퍼부어졌을 것입니다.  

 


 

 

 


이들이 청년배당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봐야 합니다. 헌데 이 책을 통독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전파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며, 19세기의 미국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을 지닌 그의 주장이 2015년의 한국에서 어떤 정당성을 갖는지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조지의 주장을 최대한 쉽고 압축적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기본소득제의 세원을 토지가치의 상승분에서 찾습니다. 토지사유화가 일반화된 작금의 현실에서 이는 매우 합리적인 제안으로, 모든 토지는 지구 진화의 결과물이라며 공동소유를 주장하는 어리석음과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지대법칙(토지가치 상승에 대한 이자)의 불로소득적 성격에 집중했습니다.

 

 

토지는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의 원천(재생산에 투자되지 않으면 부가 되며, 재생산을 위해 투자되면 자본이 된다. 둘 다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다)으로 스스로는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가치를 올리지 못합니다. 토지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몰려들고 부의 증식을 위해 자본이 투입돼야, 즉 생산활동이 이루어져야 토지가치(현재는 지대로 소유자에게 돌아간다)는 상승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토지라고 해도 그대로 방치해두면 자연상태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몰려들어 노동과 자본이 투입되면 생산물이 나오고, 이는 토지가치에 반영됩니다. 땅값이 오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한반도 전체에 한 사람만 있다면, 한반도 전체의 토지가격은 제로에 해당합니다. 거기서는 토지가 스스로 제공하는 것 이외의 어떤 부가가치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토지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토지가격도 생성될 수 없습니다. 도시의 땅값이 시골의 땅값보다 비싼 이유도 사람이 몰려들고 자본이 투입돼 토지의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즉, 토치가치의 상승은 토지소유자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그러나 그 토지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돼야 일어납니다. 물론 토지소유자가 노동을 동원해 생산물을 만들어내면 토지가치가 올라갈 수 있지만, 이럴 때도 토지를 사려는 사람이 없다면 토지가치의 상승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토지가치의 상승분은 토지소유자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야 할 불로소득이라는 것입니다. 

 


 

 

 


투기소득처럼, 모든 경제학에서 불로소득(상속과 증여도 마찬가지다)은 정당한 수입이 아닙니다. 불로소득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자본주의의 기본철학과도 배치되며, 전액을 세금으로 거둬들여도 경제정의에 반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본소득제의 정당성이 나옵니다. 토지가치의 상승분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으로 이루어지고, 이것 때문에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미래가치를 현재에 반영해 토지소유자가 독점하는 것이기 때문에, 토지가치를 상승시키는 노동과 자본에 상승분이 배정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토지는 이미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토지가치의 상승분으로 마련되는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의 돈을 제공할 수 있으며,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에 합당하기 때문에 경제정의에 반하지도 않습니다. 기본소득에 반대해 토지소유자가 재산(부)을 늘리고 싶다면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하며, 어떻게 획득했던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인과의 경쟁에서 유리합니다. 

 

 

반면에 미래에 토지가치가 올라갈 것만 고려해 토지를 놀리는 자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어느 누구도 부를 늘리기 위해 토지를 소유하는데 혈안이 될 수 없고, 토지 사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제가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직 극소수의 대토지 소유자만 피해를 입을 뿐이지만, 그들의 부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을 어긴 결과로 이미 충분할 정도로 넘쳐나기 때문에 약간의 불이익을 받아도 됩니다. 신과 자연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편애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제의 최소한의 최소한인 청년배당은 포퓰리즘도 아니고 선심성 정책도 아닙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주류경제학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함이며, 타인의 노동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불로소득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투임된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부의 증가분이 배분돼야 하며, 노동의 결과물인 자본의 투입에도 그 대가가 지불돼야 합니다.   

 

 




기본소득제의 탄생을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그 논리의 정당성과 합리성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충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 헨리 조지와 그의 후예들이 아예 주류경제학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본소득제는 21세기에도, 그 이후에도 주류경제학의 오류를 바로 잡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면에서 변함없이 좋은 정책이지만, 주류와 기득권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헨리 조지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던 것입니다.  

 

 

기본소득제와 보편적 차등복지, 생태복지 등이 더해지면 세상은 가장 민주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신자유주의와 좌우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기득권과 특권층이 없는 세상은 경제적 평등이 일정 수준(중위소득이 기준) 이상 이루어져, 개개인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11.07 12:27 신고

    자기들이 하지 못한것을 시도 하니 배가 어지간히 아픈 모양입니다

  2. 바람 언덕 2015.11.07 13:13 신고

    성남시에 이어 서울시도...
    극한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이 불씨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어떻게 키우고 퍼트려갈지는 여전히 숙제입니다만,
    적어도 이재명과 박원순이 그 불씨를 붙였네요...
    꺼지지 않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야 겠습니다...

  3. Chris (크리스) 2015.11.08 03:23 신고

    있는 놈들이 더해...어느 어르신이 한탄하듯이 하신 말씀이 문뜩 떠오릅니다.
    그 최소한도 그렇게나 싫은걸까요?

  4. 불루이글 2015.11.12 15:43 신고

    친재벌 정권의 패악도 밉지만 이들에 편성해 서민들 을 까대는 집단과 인간들이 더 원망스럽네요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5. 민주청년 2015.11.18 13:21 신고

    청년배당 굿! 이재명 시장 응원합니다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의 부제는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입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불러온 파국의 상황에서 미국의 과학자와 개척자는 웜홀(시공간을 뛰어넘는 여행이 가능한 다차원의 입구)의 양자 데이터(우주 생성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해 다차원적 시공간의 지구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현대물리학의 거장인 리처드 파인만의 역사총합이론과 다차원적 우주, 끈이론의 핵심인 초대칭성 등이 모인 영화).





영화에서는 과거의 아버지가 미래의 딸에게 또 다른 지구에서 만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때문에 젊은 아버지와 늙은 딸이 만날 수 있고, 또 다른 시공간에서 초대칭적으로 연결되는 지구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하고 있음도 말해줍니다. 그렇게 가족과 미국과 인류는 답을 찾아냅니다, 늘 문제를 해결해 왔었다는 듯이.



헌데 현재의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에서는 다른 차원의 지구로 갈 수 없기 때문(물리학적으로는 인류원리라고 한다)에 중국 발 경제위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낮은 임금과 환경규제 철폐, 환율과 세율조정 등을 통해 전 세계 국가로부터 공장을 유치합니다. 중국은 그렇게 미래에 치러야 할 환경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감수한 채 세계의 공장을 자처합니다(중국의 위기를 프리드먼의 제자인 등소평이 '일부가 먼저 부자가 되게 하라'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결과로 보는 학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월마트가 2007년 후반까지 미국에서 새 점포를 여는데 26시간 30분이 걸렸듯이, 중국도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개발도상국과 중후진국으로 분산되었던 제조업체들의 생산공장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전 세계 소비자들은 환경 및 사회적 비용을 중국에 떠넘긴 채 낮은 가격에 품질 좋은 온갖 제품들을 마음껏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미세먼지의 습격은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로써 월마트로 대표되는 할인경제가 펼쳐질 수 있었으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국민들은 자신의 한도에 넘는 신용을 창출해서라도, 즉 빚을 내서라도 할인경제의 파티에 승선했습니다. 자원이 무한하고 환경이 버텨주며 신용의 뻥튀기가 계속되고 성장이 지속되는 한 인류는 가격 파괴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최장기 경제대통령이었던 미 연준의 그린스펀이 장담했듯이. 



2008년에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 중 하나가 브레이크 없는 성장과 낮은 가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진행된 할인경제, 즉 지속가능할 수 없는 빚의 경제가 서브프라임모기지와 그보다 더 위험한 파생상품의 폭발에서 시작돼 전 지구적 신용시스템을 마비시킨 탐욕의 결과입니다. 기술발전에 따른 생산성의 증대에 따른 가격 파괴가 아니라 중국적 특수성을 이용한 할인경제는 지구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의 잔치에 불과함을 확인해주었을 뿐입니다.



바로 이것, 즉 중국이 저임금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7~8억 명에 이르는 중국 국민을 먹여살리던 농촌을 파괴하고, 환경 및 사회적 비용을 감수한 채 진행한 뻥튀기 할인경제는 유일제국 미국과 선진국들로 포진된 유럽 등 나머지 지역의 경제마저 파괴했습니다. 만일 중국이 지구적 차원의 할인경제를 지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그 파장은 중국 차원에서 끝날 수 없습니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보다 커진 것을 고려하면 무제한 양적완화와 환율전쟁으로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노동을 착추하고 환경을 파괴한 대가로 주어진 할인경제의 혜택이 《가격 파괴의 저주》로 돌변하게 됩니다. 할인경제는 할인 자체를 위험으로 몰고 갑니다. 과거에는 제조업과 마케팅, 기술 혁신을 통해 가치를 창출했지만, 현대의 할인경제는 가치 파괴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품의 경쟁력이 가격에 의해 결정됨에 따라 기업의 이윤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최종적으로 협력업체와 납품업체를 쥐어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극도로 위험한 (그래서 이익도 큰) 파생상품을 통해서라도 신용을 창출해 소비 여력을 늘려야 돌아가는 할인경제는 세계의 공장으로써 중국이 작동하지 못하면 파국을 피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내수 위주의 경제로 돌아서는 것도 높은 성장률이 담보돼야 가능하며, 무엇보다도 지구가 버텨줘야 가능합니다. 텐진폭발사고과 갈수록 길어지는 스모그의 공습에서 보듯이 '위험사회'로 접어드는 속도도 느려야 합니다.



현대 중국이 경제 성장에 관한 사회적 합의, 말하자면 연 8퍼센트 성장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배층은 스스로 선택한 경제 발전 모델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셈이며, 이는 중국의 13억 인구뿐 아니라, 값싼 제품에서부터 채권 금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중국에 의존하는 국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월마트와 중국은 성장에 중독되어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그러나 월마트이 성장이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중국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인 중국은 그만큼 한 번 삐끗하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빈곤과 기아가 중국의 3억 저소득층을 덮칠 것이다. 그리고 뒤따르는 혼란은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고성장은 이미 광범한 인플레이션과 오염, 불평등을 낳았다...중국은 경찰국가를 유지하면서 최악의 폭력과 작업장 사고, 산업 재해를 기록하고 있으며, 선전은 시시때때로 점점 더 풍요해지는 하이테크의 센터라기보다는 카를 마르크스 시절의 19세기 영국을 더 닮았다. 이 경제적 개척지는 때로 잔혹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불평등은 커지고 있다. 부패, 공장 폐쇄와 함께 소득 불평등은 중국 치안 불안의 뿌리이다...2007년에 처음으로 중국 경제 성장 기여도에서 국내 소비가 수출을 앞질렀다. 중국이 서구 나라들처럼 국내 총생산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퍼센트를 넘으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중국은 일단 실패하면, 크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책임 없는 성장은 궁극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기반으로 하는 ‘국경 없는 가격 파괴의 제조업’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세계 경제는 저성장과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중국을 대체할 국가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실물경제를 담보로 우주적 차원에서 진행된 폰지금융도 4대경제권의 무제한양적완화와 환율전쟁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군산복합체와 감시영상산업을 제외한 실물경제는 아사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증시가 대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위안화가치 대규모로 떨어져도 경착륙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중국정부가 개입해도 그 파장은 오래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려 14조달러를 넘는 무제한 양적완화 덕분에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주가로 회복되기 위해 5년이 걸린 것도 중국의 미래가 상당 기간 어렵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실물경제의 중심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중국경제의 경착륙입니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 한국의 경우 중국경제의 경착륙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수출 위주의 정책 때문에 내수경제도 취약한 편입니다. 5월부터는 중국과의 거래에서 기축통화로 편입된 위안화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산성은 글로벌 경쟁자인 독일과 유럽의 대기업, 히든 챔피온, 전통의 일본 대기업에 뒤집니다. 여기에 남북경색까지 겹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란 이름으로 발행된 청구서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이 말한 대로 녹색경제를 달성한 4대강의 녹조를 제거하고 수질을 개선하는데 드는 비용은 GDP에 포함돼 외형적인 경제성장률은 높이지만, 그 비용의 대부분은 허공에 날리는 비용이기 때문에 국민의 혈세와 미래세대의 빚으로 전가됩니다. 이런 비용은 도처에 널려 있고,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세계경제 위기설의 진원지는 중국이 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미국의 기준금리의 인상속도가 빨라지면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인 가계부채가 폭발을 면치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동산가격이 폭락하고, 부실기업과 임직원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복지비용 축소, 국영기업과 공공기업의 민영화, 빠르고 높은 속도의 금리인상이 진행될 것입니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 이상으로.  



개별 기업 차원에서 보면 위기에 대처하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지만, 전체로서의 중하위층은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며, 그 생존이라는 것도 인간적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생존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필자의 형제처럼 어떤 대공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에서 일하고, 탁월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그밖의 분들은 지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 꼬리치던 박근혜가 최근에 들어 미국과 일본 쪽으로 돌아선 것도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심상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한국경제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해주던 수출기업들은 죽을 노릇이지만. 이것 때문에 박근혜는 부자들의 상속세와 증여세를 줄여주고, 근로자들의 임금을 대폭 축소해 사측의 배만 불려주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려 대국민담화와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기자회견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8.24 03:57 신고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 남는 길은 통일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역사상 최악의 불신과 대립 일촉즉발의 경색국면이라는 위기상황으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남북의 경색국면은 정치적인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파국을 몰고 올 것입니다,
    해법은 정권교체뿐이지만 그런 가능성이 희박한 대한 민국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24 04:57 신고

      정말로 만만치 않습니다.
      정말로 세계 경제가 어마어마한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는데 그 후로부터 7년이 흘렀으니 주기상 위험에 처할 때가 됐습니다.
      참 이런 형편없는 체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시장과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새로운 체제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2. *저녁노을* 2015.08.24 05:11 신고

    무엇보다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는 맘뿐입니다.
    군에 아들을 보낸 엄마의 마음...ㅠ.ㅠ

    • 늙은도령 2015.08.24 05:13 신고

      그럼요, 잘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남북관계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우리 측에서 극우세력만 반대하지 않으면 북한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8.24 08:53 신고

    북한의 양온 전략에 점점 말려 드는듯한 느낌입니다
    오늘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주식시장을 비롯 한국 경제가
    요동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24 16:11 신고

      너무 길어지면 오히려 틀어질 수 있습니다.
      합의문에 들어갈 세부사항을 가지고 막바지 조율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큰일입니다.

  4. 『방쌤』 2015.08.24 10:58 신고

    부디 좋은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늘 그랬듯 '봐, 또 이렇지 뭐,,,' 이런 결과 말고 말이에요
    글을 천천히 읽다보니 우리 국민들의 생존권이 걸린문제,, 라는 이야기가 더 깊이 와닿네요
    과연 해결책이 있기는 한걸까요?

    • 늙은도령 2015.08.24 16:12 신고

      어차피 경제위기는 피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줄일 수가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지금은 정말로 정치가 잘해야 합니다.

  5. 2015.08.24 11:17

    비밀댓글입니다

  6. 耽讀 2015.08.24 13:15 신고

    경제를 정말 모릅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우리나라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방법은 중국 경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가 정착하고, 짧게는 남북경협 그리고 경제통일 길게는 완전한 통일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24 16:26 신고

      중국 경제가 쉽게 좋아지지 않습니다.
      압축성장을 한 국가는 반드시 한 번은 크게 털고 갈 수박에 없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경제를 털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우려됩니다.

  7. nammok1 2015.08.26 16:44

    외국인이 수천억씩 팔고 있는 데 그걸 주워담고 있는 개미들을 보니 참 암담하네요.....앞으로 닥쳐올 대 위기를 준비해야 되는데 하필 박근혜 정권이라니....우리 국민들은 참 운이 없습니다 이번엔....

    • 늙은도령 2015.08.26 17:01 신고

      네, 지금은 전 세계 개미가 재수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러합니다.
      상위 1%만 좋은 일이 벌어지겠지요.



현대 미국 사회의 많은 부분은 예측 가능한 경력 향상, 임금의 꾸준한 증가로 그 특징이 규정되는 안정된 고용 관계 위에 토대를 두고 세워졌다. 내 집을 갖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며, 공동체와의 유대 관계를 통해서 안정감을 찾는 등, 직장 밖에서의 삶의 질은 고용에 대한 위협과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향상되어왔던 것이다.


                                                             ㅡ 카펠리,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에서 재인용




지난 일요일에 방송된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지인이의 부모와 방청객으로 참여한 한 어머님의 얘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안타까움과 절망, 희망과 힐링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지인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얘기들을 (상당히 재미없지만) 사회적 자본이란 관점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지인이의 현재를 응원하는 마음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회적 자본이 탄탄할수록 잘 돌아가는 민주주의가 탐욕의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제어할 수 있었을 때 평생고용(이 글에서 말하는 평생고용이란 한 직장에서의 근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과 국민복지, 사회안전망이라는 공생의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였지만, 직원들은 물론 가족과 사회 전체의 이익도 고려하며 공생의 삶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민이 존엄하고 탈락자를 방치하지 않고, 시민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합의하고 조정해 실제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평생고용(과 평생교육)에 기반했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다양한 공동체 활동 참여와 자원봉사나 헌혈처럼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개인은 안정된 직장과 수입으로 인해 평생에 걸친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그런 안정감에서 나오는 사회적 신뢰는 다양한 협력과 평화로운 공존을 이룰 수 있었다.



노동(감정노동과 가사노동 같은 비물질노동 포함)의 가치와 연륜이 인정되는 이런 사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분배가 이루어져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정치적 자유가 더욱 공고해졌고, 법 앞의 평등이나 정의실현이라는 열린사회의 실현이 가능했다. 국가 차원의 복지가 미흡해도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지역 공동체와 사회가 작동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을 전복해버린 것이 모든 영역에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작동하도록 체제를 완전히 바꿔버린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완전히 압도하던 시절인 19세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니 평생고용을 기반으로 구축된 세계를 파괴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단 40년 만에 평생고용에 기반한 안정적인 세상은, 생산 증대와 이익 독점만 신경 썼을 뿐, 평생고용이나 누진적 조세제도처럼 부의 재분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무한경쟁의 19세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심해졌고, 사회적 자본은 적은 위험도 막아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경제가 곧 대기업의 이익’을 말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민주주의는 독점 자본과 권력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위에서 찍어 누를 수 있는 국가공권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벤야민의 말처럼 ‘야만적이지 않은 문명은 없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억압과 착취의 시대가 고착화됐다. 지인이 같은 장애인들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형편없는 감호시설로 보내졌다(미셀 푸코의 《광기의 시대》에 자세히 나와있다).  





시장자유주의 우파라는 공통점으로 이어진 이명박근혜 정부가 평생고용에 기반한 사회체제를 집중공략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고용의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 위험의 사회화가 일상화됐고, 용산참사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자살, 세월호 참사, 경주리조트 붕괴, 메르스 대란처럼 막을 수 있었던 비극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이 클수록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승자독식을 이룩한 개별기업 차원에서만 진실인 신자유주의 신화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제2, 제3의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메르스 대란 등은 더욱 빈번하게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배제되고 격리되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지인이와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절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소비만 하고 살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고, 오늘만 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지며, 효율성과 생산성도 하락하고, 상호신뢰와 이타심, 호혜성 등의 사회적 자본도 구축될 수 없다.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지적장애아(지인)의 부모가 세상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이 됐다고 말한 것도 사회적 자본을 파괴시킨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축적된 결과다.



우리 모두가 지인이의 부모가 될 수 있고, 지인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힐 수 있고, 지인이와 함께 걸어갈 수 있으려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를 거둬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이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영원한 타인이자 물리쳐야 할 적으로 인식시킬 때 인간은 일베처럼 짐승 이하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부의 재분배가 뒤따르지 않는 경제성장이란 말에 속지 말라. 1%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나눠주는 것을 민생이라고 포장하는 말에 속지 말라. 경쟁과 불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공짜점심이 없다는 말에 속지 말라. 타인의 것을 빼앗는 성공을 미화하기 위해 실패는 개인 책임이라는 말에 속지 말라. 극소수의 무임승차를 부각시키는 복지담론에 속지 말라. 상위 1%에 부와 권력과 기회가 독점되고, 그 폐해는 하위 99%에게 전가되는 세상은 그런 새빨간 거짓말들이 보편적 진리인양 호도되면서 이루어진 결과다.



하물며 생존선 근처의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런 세상이 지인이의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신뢰와 협력, 호혜성의 문화를 높이는 평생고용이 인류의 자산 중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다시 깨닫게 됐을 때, 인류는 비로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누진적 증세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임금피크제와 일자리 나누기를 얘기하기 전에, 비정규직의 확대 적용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경영효율성을 주장하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신뢰, 이타적 협력과 평등한 자유를 구축할 수 있는 소득 보장과 복지 제공이 가능하도록 만들 때 우리 모두는 지인이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탄생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때, 불평등하게 주어진 조건과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현재를 넘어 미래의 삶까지 결정하지 않을 때, 개인으로서나 조직의 일원으로서나 노동의 대가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지인이의 동료나 친구로서 삶이라 길을 동행할 수 있다.   




P.S. 로버트 퍼트남과 수많은 석학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태어났을 때부터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체험한 밀레니엄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됐을 때 사회적 자본이 다시 회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래로부터 더 많은 정의와 평등, 협력이 이루어질 때 생존선 이하의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존엄한 존재로서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7.21 08:27 신고

    불편한 시선을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얼굴에서 묻어 나올수 있는 따뜻한 배려가 진정으로
    필요할때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21 15:16 신고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끝물에 나오는 현상이라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백순주 2015.09.06 08:01 신고

    세종에 중증 장애학생들을 위한 '세종누리학교'가 조용히 첫 개교를 했습니다. 개발이 한참인 중심에서 벗어나 산 아래턱에 일찌감치 터를 잡았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장애아들이 예체능 과목만 통합운영 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요과목은 '개별학습실'에서 공부합니다.

    특수교육학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엔 두 부류의 엄마가 있다고 합니다. 장애아 엄마와 비 장애아 엄마.
    왜 이들이 무서워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우린 그 이면보다 보여지는 현상에 집중해서 얼굴을 찌푸립니다.
    무엇이 화나게 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존엄한 존재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날은 함께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6 09:12 신고

      네,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소비지상주의가 극에 이르면 외모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나 강해집니다.
      보기에 좋은 것만 쫓게 되고, 그것이 성형이나 지나치고 너무 어린나이부터의 화장 등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남성도 이제는 화장과 성형을 주저하지 않으니 외모에 대한 강박이 더욱 커졌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외국인들과 얘기하면 한국여성은 너무 날씬하다고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얘기인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소비지상주의는 외모를 가꾸는 것을 부추기고 젊음에 집착하게 해서 멋있게 늙은 것을 회피합니다.
      이것이 쌓이면 세대간 갈등의 원인도 되고, 노인을 경시하는 것, 늙지 않기 위해 더욱 소비하고 성형하고 화장하게 만듭니다.
      결국 노후자금을 만들 수도 없고, 상위 1%만 좋은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까지 소비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아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통합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의 무서움이 이것입니다.
      예쁘고 아름답고 보기 좋으면 좋은 상품으로 인정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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