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은 사실상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고 검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동시에 난해한 음모론이 놀랄 정도로 확산되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검열의 종말은 탈진실(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 정치를 불러왔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이반 크라스테브 외 《거대한 후퇴》의  <다수결주의의 미래>에서 인용

 

 

 

 

선동정치의 제왕이었던 괴벨스가 히틀러를 거리의 선동가에서 게르만 민족을 구원할 신으로 승격시키는 과정에 새로운 매체로 등장한 라디오가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의 뉴미디어로 등장한 팟캐스트를 이용해 영악한 망나니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스피커로 성장한 김어준의 성공도 괴벨스의 성공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개인적 능력으로만 본다면 김어준이 괴벨스와 비교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이명박근혜 9년의 초딩적이고 경영전문가적인 국정운영 덕분에 손석희(JTBC 뉴스룸의 시청률 하락에서 보듯이 지금은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와 유시민(알릴레오로 영향력이 더욱 늘었지만 윤석렬 검찰의 깡패적 보복을 넘어야 한다)에 맞먹을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나꼼수의 성공'으로 시작해 '김어준과 그의 아류들'로 무한증식한 팟캐스트의 대성공은 유튜브 방송의 폭발로 이어지면서 기존 언론들의 영향력을 능가할 지경에 이르렀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법적·제도적 규제를 적용받는 언론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 대세이기 때문에, 게이트키핑이 없이 마구 쏟아져나오는 막말과 망언, 가짜뉴스의 홍수는 수많은 부작용과 폐해를 양산하는 것을 넘어, 기존 언론의 기레기화까지 추동하고 있다. 



유튜브에 집중되는 광고의 일부라도 돠찾아오려면 공익에 봉사하는 저널리즘이나 언론의 사명, 기자의 취재윤리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했다. 기존 언론의 하향평준화는 이렇게 시작됐고, 광고 수주를 위한 선전성과 폭력성이 난무하는 '기레기 저널리즘'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사회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기레기 저널리즘' 때문에 막말과 망언이 빛의 속도로 날라다니고, 상대적·절대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발언들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숙고와 반성적 고찰이라는 가치체체를 거친 진실은커녕 그 이전 단계의 사실마저 무시되기 일쑤다. 가짜뉴스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는 현재의 언론환경은 가히 '탈진실 정치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디지털 시대를 견인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양자역학의 영향이 가장 크다)이 인간 사고의 종합적인 성찰보다는 빛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빠른 인식과 이분법적 판단, 표피적인 대응의 강화가 '탈진실 정치'를 만연시키는 '기레기 저널리즘'으로 귀착된 것이다.   



최초의 팟캐스트 <나꼼수>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들의 성공에 따른 팟캐스트의 홍수와 유튜브 1인방송의 폭발적 증가는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부작용, 구좌파와 신좌파의 갈등, 급진적 페미니즘이 촉발시킨 성대결 등을 국민국가와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하며, 향후의 세상은 형식적인 냉전체제는 유지되겠지만, 후발 국가들이 서유럽과 미국에서 꽃을 피운 자유민주주의를 모방하는 단조롭고 지루한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논란을 불러온 그 유명한 책,《역사의 종말》이 이렇게 나왔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나 이데올로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기술 발전에 따른 세계화를 통해 모든 국가가 비슷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정치학자인 켄 조윗은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자유민주주의가 독주하는 "승리의 시대가 아니라 위기와 충격의 시작,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한 씨가 뿌려진 시대로 묘사"함으로써 후쿠야마와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실험의 패배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임에는 틀림없지만, 미래를 헤겔식으로 예측하는 경향이 있는 후쿠야마와는 달리 조윗은 "공산화 이후의 시기를 극적인 사건이 거의 없는 모방의 시대가 아니라, 정치적 돌연변이들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각종 정권들로 가득한 고통스럽고 위험한 시대로 내다봤다."

 

 

조윗은 기술 발전에 따른 '사람과 자본, 상품과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대표되는 세계화에 동참했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칸트의 'common sense'에서 출발한 '세계시민정신(계몽주의가 장려한 보편 시민권)에서 후퇴해 '민족·종교·부족 정체성으로 돌아가 이방인과 이주자, 난민, 소수자 등과의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르준 아파두이도 세계화와 기술 발전은 '자신과 기대·선호·성향·지향 등은 물론 민족·종교·계급·성·언어·세대·직업 등에 따라 개인의 관심과 세계관이 다른 집단들로 나뉘어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체성 정치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파두이는 '시장과 인터넷,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개인의 선택권을 증가시켜주었지만 그것의 반대급부로 사회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접촉을 좋아하고 이방인을 멀리하는 것과 같은 타고난 선호를 만족시키려는 개인 성향을 강화'시킨 결과라고 말했다. 공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빛의 속도라는 시간으로 극복한 '개인간의 연결은 늘어났지만 사회의 통합은 약화됐으며, 세계화를 통한 연결의 폭증은 동시에 단절의 폭증'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연결과 단절의 부정변증법은 '분노의 폭발과 격노의 움직임'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덮칠 것이었다.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의 세계화(정확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작용에 면죄부를 발행해준 '이방인 포용과 소수자 우대, 다문화주의와 인권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가 '시민-자치와 다수-통치'로 대표되는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분열의 시대가 도래하기에 이르렀다. 개인과 집단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이익을 취하고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는 갈등의 폭발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질되면서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진 세상이 지옥의 재현 같은 종말론적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층위와 세대에서 극단적 대립이 일상화되면서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철학적이고 윤리도덕적인 기준과 규범이 사라지고 자유민주주의의 최소치인 정치적 토론마저 불가능해졌다. 기성정당과 제도권 언론, 교육기관과 시민사회도 폭증하는 분열과 갈등을 막을 수 없었다. 국가와 사회에 어마어마한 공간이 새로 생겼고, 무엇이든 그 공간(의 일부)을 채울 수 있다면 주도적인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진실과 거짓을 걸러낼 필터링 기능과 정당한 검열이 사라졌으니 '분노의 폭발과 격노의 움직임'에 불을 지필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나꼼수>가 그 공간을 선점했다. 분노의 원인인 절망과 좌절, 공포와 불만을 자극해 그들의 이성이 아닌 감정을 건드리고 부추겨 '격노의 움직임'으로 표출되도록 선동의 수사학과 막말, 걸쭉한 욕과 난삽한 음모론들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현실정치에 대한 지식과 논리, 경험과 성찰은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했다. 얄팍한 지식과 부족한 성찰에서 발생하는 논리의 충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험과 성찰의 부족도 뱀의 혓바닥으로 녹여내면 그만이었다. 

 

 

세상 자체가 난장판이고, 삶과 현실에서는 이것과 저것이 충돌하기 일쑤인데 논리적 충돌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하는 각종 의혹 제기와 초딩 수준의 음모론들이 모두 다 거짓이고 틀린 것으로 판명난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명박근혜와 삼성, 조중동과 수구꼴통만 물고 뜯고 씹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데 걸쭉한 욕으로 맛을 낸 거짓과 선동의 수사학이면 정알못들을 요리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성 콘텐츠'로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 무사통과요 만사형통이었다. 진공에서는 저항이 없다.

 

 

<나꼼수>가 가지고 놀 정알못은 넘칠 정도로 많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호기심 충족이고 분노 표출에 대한 대리만족이었고 기성정치에 대한 비아냥과 통쾌한 비틀기였다. 규제를 받지 않으니 자체 검열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꼼수>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지배엘리트와 재벌 위주의 세계화와 일자리를 빼앗는 자동화에 대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유쾌한 뒤집기였다. 갈수록 늘어나는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상쾌한 되치기였다. 유쾌·상쾌·동쾌해진 대중의 열광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돈이 되는 청취자와 추종자들이 넘쳐났다(2부로 이어집니다).  

  1. 좋은글 2018.12.19 00:18

    어중이떠중이들의 실체를 밝혀주시니 시원합니다


민주당 5차토론회에서 나온 얘기 중 한가지만 바로잡고자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특히 그러한데, 재벌(재벌과 재벌체제는 같은 말이다. 그래서 재벌 해체와 재벌체제 해체는 같은 말이다!)이 한국에만 있는 악의 근원이라는 것은 재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경제 관련 서적들에서 일본과 한국의 재벌을 특별하게 다루는 것은 재벌의 작동방식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강단 학자들의 주장이며, 모든 선진국에도 재벌은 존재하고 그것도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있었습니다, 규모가 커졌고 형태는 조금 달라졌지만.





학문적으로 구별하고자 하면 전 세계에 존재하는 재벌을 무한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재벌의 문제점이 본격화된 것은 전문경영인의 강점을 부각한 경영학의 조류에 힘입은 60~70년대에 들어서인데, 그렇다고 해서 재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란 일종의 환상입니다. 잭 웰치처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경영인도 오너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요. 

 


서구의 선진국들이 시기하고 두려워하는 일본과 한국의 재벌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IMF 외환위기가 일어났을 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재벌을 해체하려 한 것입니다. 한국의 오너들이 작은 지분으로 재벌을 지배하는 것도 현장에서 보면 전문경영인이 할 수 없는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꼭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정실자본주의(정경유착) 비판도 끝이 없지만 미국과 영국,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총리)과 재벌 오너들이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성장률까지 의논합니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국들의 정실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서적도 넘칠 만큼 많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2008년의 금융위기였으며, 잭 웰치 같은 전문경영인의 살아있는 신화들이 고해성사를 해야 했습니다. 폭스바겐 사태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전문경영인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희대의 사기사건입니다. 천하의 소니가 2류기업으로 전락한 것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며, 도요타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오너의 힘이었습니다.  



피터 드럭커의 주장은 대단히 이상적이지만, 그것이 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너의 황제경영이 문제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혔듯이, 최대 98%에 이르는 초고율의 누진세율이 지난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내려가면서 전문경영인의 연봉과 스톡옵션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으며, 이것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단기실적에만 연연하느라 극도의 부실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2008년의 경제대붕괴로 이어졌고요. 





이완배 기자처럼 이재용으로 대표되는 재벌 오너만 족치면 재벌개혁이 가능할 것으로 말하지만, 이는 현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이재용이 구속된 뒤 삼성전자의 주가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떠들지만, 그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반도체가 초호황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숙원이었던 인텔마저 제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주가의 폭등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재벌을 개혁하려면 이상과 현실의 갭을 정확히 이해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동의하는 것은 김상조보다는 장하준인데(재벌개혁 의지는 김상조가 장하준보다 강하다), 그의 주장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일 많이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세계화의 심화 때문에 재벌개혁이 더욱더 힘들어졌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법인세를 올리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무현 때의 법인세로 돌아가는 것과 말도 안 되는 실효세율부터 바로잡겠다는 문재인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최저임금 만원으로 올려주세요!!!).  



재벌개혁에 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재벌을 악으로 돌리는 이재명의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삼성전자만 해도 주주의 65% 이상이 외국인인데, 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당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일찌감치 꿈깨십시오. 이재용은 반드시 처벌해야 하지만, 그래야 삼성전자그룹으로부터 최대한의 것들을 받아낼 수 있지만, 이명박의 자원외교와 방산비리 등으로 날아간 혈세와 박근혜-재벌 간의 거래에서 드러난 돈을 비교해보면 더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국의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서 그렇지, 당장 제 형제들과 친구들이 재직하고 있는 기업들만 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미국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이런 피해를 입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돌릴 방법이 없다면 다음 정부가 이런 피해를 지랫대로 미중과 딜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무조건 철수만 외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이처럼 잘못된 정치적 결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정확하게 짚었듯이, 신자유주의에 날개를 달아준 과학기술(특히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본사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과 트럼프의 보호주의까지 고려하면 재벌개혁의 어려움이 더욱 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제기랄!!!). 재벌개혁을 이분법적 시각이나 낭만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개혁은커녕 국민경제가 붕괴합니다.  



재벌개혁에 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가지는 나라를 말아먹는 보수정당의 후보에 표를 줄 때마다 재벌개혁의 가능성은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재벌개혁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면서, 입법부와 사법부의 방해를 뚫을 수 있도록 재벌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합니다. 피케티의 주장처럼 소득과 자본에 대한 고율의 누진세(최소 스웨덴 수준)를 도입하는 것이 최상의 재벌개혁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는 안희정이 재벌개혁의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대연정이란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ㅡ정확히는 그것을 빼면 중도보수층의 표마저 날아갈 것이기에 정치학의 어디에도 없는 얘기들을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안희정에 대한 검증을 대연정에만 집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5차 후보토론까지 오면서 안희정에게서 재벌개혁에 대한 어떤 것도 듣지 못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3.19 22:59 신고

    딜레마의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재벌의 지금까지의 그 탐욕적인 모습에 대한 분노,
    한편으로는 한국경제에서의 재벌의 포지셔닝에 대한 고민들,
    지금 그것들이 충돌하고 이슈화되어 있겠죠.

    악의 근원(origin)이라는 표현보다는
    "생태구조학적 악"이라는 개념으로 차근차근, 그러나 확실한 재별개혁에 대한 단계별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전경련은 분명 현 사태에 대한 매우 엄중하고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경련 배제나 헤체등의 액션은 꼭 필요하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19 23:11 신고

      사실 전경련은 삼성과 현대차 같은 그룹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혹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없애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데 재벌개혁의 핵심은 아닙니다.
      재벌개혁은 필수입니다.
      다만 어떻게 진행할지 정확한 청사진이 필요합니다.
      재벌개혁을 위한 방안들은 엄청나게 많이 나와있지만, 그것은 학문적 접근일뿐 현실과는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솔직히 조세로 개혁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재벌과 관련된 기업들과 근로자들이 하도 많아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정말 힘든 문제인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다음에 하는 것이 조세정의와 함께 유일한 방법입니다.

  2. ninja7 2017.03.19 23:37

    법인세만 주구장창 이야기 하는데...
    전국민적으로 세금은 소득세가 기반이어야죠...이것저것 뺴주는 소득세가 아니고...

    • 늙은도령 2017.03.20 00:26 신고

      모든 소득과 자본에 과세해야 합니다.
      그것도 고소득과 고자본에는 누진과세를.
      사실 세원은 찾아서 물리고자 하면 넘쳐납니다.
      사회적 합의만 이루어지면 법인세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많이 벌고 많이 물려받는 사람에게 많이 때리면 됩니다.

  3. 耽讀 2017.03.20 07:06 신고

    민주국가에서 모든 것은 '절대악'이 아니지요.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만 절대악이 존재할 뿐이지요.
    재벌개혁 필요합니다. 재벌이 절대악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5년내에 재벌개혁은 불가능합니다.
    오랜 시간 해야 합니다. 지난한 싸움이지요.

    • 늙은도령 2017.03.20 15:36 신고

      네, 지난한 싸움입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요.
      정확한 지점을 파고들어야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은 채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7.03.20 14:33 신고

    악의 근원은 아닐지언정 해체해야 합니다
    재벌이란 단어가 이땅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20 15:37 신고

      재벌이란 단어란 외국에도 있습니다.
      재벌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집니다.
      정치를 바꿔야 재벌의 행태가 바뀝니다.
      검찰과 입법부, 사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하고요.
      해체는 답이 아닙니다.

  5. 과유불급 2017.03.20 15:57

    낙수효과를 위한 상위 1%의 수퍼리치를 위한 경제성장과 소비촉진은 이론속에서만 가능한 경제모델이었습니다. 현재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표본인
    미국,영국은 이것을 현실에서 입증하는데 실패했고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커졌습니다.
    오히려 재벌과 부자들은 그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소득으로 수퍼리치가 되었을 뿐입니다.
    특히 경제위기때 발생한 부실재벌기업과 좀비공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단지 그들만을 위한 화폐로 쓰여졌습니다. 이런 정부정책이 부자들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쓰여지고 있으니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격차를 만들고 그것은 우리의 사회적 격차를 더욱 커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격차를 조정하기 위한 어떠한 방법이 옳은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늙은도령님이 제시한 올바른 조세개혁은
    분명 좋은 대안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회적 문제가 아닌 기술적 문제(AI시대로 넘어가는 기술혁신시대)로 넘어가게 되기전에 말이죠.

    • 늙은도령 2017.03.21 23:54 신고

      낙수효과는 금융 부분에서만 작동했습니다.
      나머지 분야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동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과학기술에 의해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인간의 해방과 풍요, 자유와 행복을 위해 발전시켜온 과학기술이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고, 급기야는 종말에 이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런 모양입니다.
      핵무기도 모자라 이제는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은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었고, 각박해졌고, 소외됐고, 분류됐고, 배제됐고, 심지어는 버려지고 있습니다.
      진화라는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를 멸종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20년 후의 세상은 상상하기도 끔찍합니다.
      지금 인류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습니다.

  6. 줄거리 2017.03.24 23:14

    재벌체재 해체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부 지배하기를 무너뜨리는것이 좋지 않은 건가요?


대선 후보들은 국민 통합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정부의 수장으로써 일정 기간 동안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 전체의 복리를 향상시켜야 하는 책무를 지기 때문에 국민 통합이란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와 세상은 진화한다는 대전제 하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정의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핵심 교리로 자리잡고, 국민의 안전과 풍요, 자유를 제공한다는 국민국가의 이상이 더해지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세계화를 통해 인류의 풍요를 실현한다는 전 지구적 단일시장 개념이 일반화됨에 따라 국민 통합과 인류 풍요라는 말이 통치의 절대명제처럼 통용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지적사기이자 희망고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마르크스가 밝혔듯이 자본주의란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이데올로기(4차 산업혁명의 신자유주의가 최후의 단계로 기술전체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이며, 칼 폴라니가 증명했듯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자유시장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시스템이고, 국민국가는 국민 통합을 내세워 지배엘리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법적 폭력을 인정하는 사회체제이며,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화는 슈퍼클래스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풍요를 내세운 상징조작입니다.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켜온 것으로 평가되는 '자본주의, 자유시장, 국민국가, 과학기술'은 물질적 측면에서는 상당한 실적을 거두었다고 해도 소수의 천국과 다수의 지옥으로 세상을 이분화했습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는 과학적 공산주의를, 푸리에와 생시몽과 오원 등은 생산수단의 공유를 요구하는 사회주의(공동체주의)라는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극단까지 밀고나간 특이점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지구에서 더 이상의 자본 축적이 불가능하다면 우주라는 무한대의 시공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인류가 극소수의 천국과 절대다수의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만이 이런 불평등의 심화와 위험의 보편화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도 통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선호의 차이와 견해의 다름, 이익의 갈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행위규범이자 사회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세 축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룸으로써 천부인권과 헌법적 정의(박애로 대표되는 평화, 공정, 공존, 상생, 공평, 관용, 공동체의 이상, 사회적 권리, 남녀평등, 환경, 생태, 소수자 권리 등)를 구현하는 체제로 이해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합의에 이른 체제가 정답이 없어 끊임없는 참여와 타협, 존중이 요구되는 민주주의라면ㅡ특히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라면 더욱 더ㅡ전체주의적 냄새로 넘실되는 국민 통합을 얘기하기보다는 현존하는 갈등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부터 확실하게 내재화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인정하는 개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것이 전체주의와 일인(일당)독재를 지향하는 사회현실적 조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극우에서 극좌까지 넓게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모의 탄핵반대집회(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에 이어 트럼프의 극우적 광기에 의해 남북긴장상태가 고조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 심지어는 이스라엘국기까지 들고나온 것이다)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헌재의 판결에 승복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요구와 주장이 세력화(극우정당화)를 통해 민주주의와 헌법(법의 지배)이란 행위규범과 사회형태의 영역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인정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에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을 가해야 하지만, 이들과의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 민주주의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김진태와 조원진, 윤상현, 김문수, 김평우, 변희재 등이 박사모의 탄핵반대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폭력적 선동을 일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었듯이, 이들의 목표는 박근혜의 탄핵을 반대하는 박사모와 샤이 박근혜 및 박정희 숭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조직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짐승보다 못하며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만, 국민의 20~30%에 이르는 이들을 정치세력화할 수 있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원내 제2당도 가능합니다. 박사모가 '새누리당'의 사용권을 확보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ㅡ다시 말해 박근혜의 탄핵이 인용될 경우 민주화 이후에 사라졌던 극우정당이 부활하게 됩니다. 이들의 강령이 유신헌법과 유사하지 않는 한 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들이 민주주의와 헌법에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정당화에 성공한다면 이를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이 짧은 글에 더 이상의 설명을 담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겠지만, 아무튼 박사모의 폭력적 행태가 극우정당화를 목표로 한 것이라면 국민 통합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와 우리가 지배적 체제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저는 개인적 차이와 선호를 위축시키고, 인간이란 존재에도 맞지 않으며, 국가주의적 애국심(대표적인 것이 누구한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국익타령과 무기경쟁만 촉발시키는 안보상업주의, 퇴행적인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 등)만 강요하는 국민 통합이란 환상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상류층과 초국적기업, 거대자본 등은 국가라는 한계를 넘어선 상태임에도 국민 통합이란 허상을 강조(안희정의 대연정)하다 보면 충돌하는 이해의 갈등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갈등이 극대화되면 폭력으로만 관리가 가능하며, 이럴 경우 민주주의와 헌법은 작동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이 이명박근혜 부역세력에 대한 적폐청산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협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안희정은 모든 정당과의 대연정이 선이라는 전제하에 모든 것을 전개하기에 존 롤스의 공리주의적 오류(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덕적 판단, 즉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말자는 것, 안희정이 선의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에 빠져있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시장 우파를 연상시키는 근본주의적이면서도 체제 순응적인 발언만 쏟아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충돌하는 갈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가 정의(보통 시대정신으로 나타나며, 보수적 정의와 진보적 정의가 다르며, 정의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은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다)를 실현하는 과정(다음 기회에는 뒤집을 수 있는 다수결로 정해진다)인 것도 차이와 다름을 무한대로 인정하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전제인 책임의 강제(보통 헌법에 담겨있으며 법앞의 평등을 대전제로 하는 법의 지배로 구현된다)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차이와 다름, 갈등을 인정하는 행위규범이자 사회형태인 것도 평등한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옵니다. 정치철학적 정의론에서는 확고하게 정립된 이런 특성 때문에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명제도 상당 부분 진실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넘어 탈물질적인 것까지 포함해, 어제까지 소수가 누리던 것을 오늘은 다수가 누리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말했던 노무현의 성찰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는 박사모와 샤이 박근혜, 박정희 숭배자들이 민주주의와 헌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극우정당화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처럼 그들의 세력화를 최소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강령이나 당헌이 유신체제로의 회귀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라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숨어있는 위험은 관리하기도 막기도 힘들지만 드러난 위험은 관리와 예방이 가능하기에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박정희-박근혜당이 나오는 것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적폐청산이 선행되지 않는 국민 통합이란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탈했을 때 그것이 좋은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도와 부와 권력을 차지한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자유에 따른 책임을 강제할 수 있다는 행위규범이자 사회형태로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 극우의 숫자를 최소화할 수 있으면, 정의와 시대정신의 실현이 가능해집니다. 2017년의 정의와 시대정신은 촛불집회로 표출된 압도적인 정권교체와 철저한 적폐청산입니다, 박사모의 정치세력화를 막지 못하는 섵부른 국민 통합이 아니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3.05 00:04 신고

    보수가 아닌 극우입니다. 박사모의 정체성은 말입니다.
    반드시 몰아내야 할 이 시대 악의 축이지요~

    샤이 보수, 샤이 박근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있다고 손치더라도 저들은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망조와 그 피폐함이 드러날 대로 드러났는데,
    겉으로는 과격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이 가득한 저들이 더욱 늘어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05 00:20 신고

      님이 60대 이상으로 박정희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샤이 박근혜와 박정희 숭배자가 여전히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주변에는 소위 성공했다는 60~70대가 대단히 많은데 그들은 모두 박정희 숭배자이며 샤이 박근혜입니다.
      그들은 가짜뉴스를 믿고 싶은 사람들이며, 박정희당이 만들어지면 그들에게 투표할 사람들입니다.
      극우정당에 가까운 박정희당의 탄생은 가능하며,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졌고 불평등과 세대간 차이가 심해지는 만큼 현실정도 높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숨어있는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경계하고 관리하기 쉽다는 것고 고려해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3.06 09:15 신고

    지역 갈등을 넘어 이젠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세대 갈등은 한 집안,가족을 분열시킬수도 있는 위험한 갈등입니다

    빨리 탄핵이 인용되고 제 자리를 잡아야 됩니다
    불법을 찾아 근절사켜야만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3.06 15:31 신고

      세대갈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압축성장 때문에 새대갈등이 다른 나라보다 큽니다.
      하지만 부모가 50대인 경우부터는 그런 현상이 대폭 줄었기 때문에 10년 정도 지나면 지금보다는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치카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세계화 이전에는 특정 지역의 풍토병이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확장되기 일쑤이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메르스대란도 세계화가 아니었으면 내수경제(영세자영업자만이 아니라 내수에 기반을 둔 대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헌데 책임진 자는 없었다)에 치명타를 입히지도 않을 일이었다. 이런 전염병은 한두 개가 아니다. 세계화의 이익을 독점하는 자들은 한정돼 있는데 그 피해는 절대다수의 서민들이 뒤집어쓰고 있다. 





세계화와 외국과의 무역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산업과 투기자본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실물경제와의 고리도 상당 부분 끊어졌다. 세계화의 결과가 국가 간 불평등을 넘어 인류를 상위 1%(이 안에서도 0.1%에 부가 몰리고 있다)와 하위 99%라는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눠버렸다. 세계화를 위한 무차별적인 규제완화가 불러온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비대챙적 종말, 즉 '위험대처의 불평등'마저 극대화시키고 있다. 



자연의 파괴를 넘어, 물질과 서비스의 무한소비라는 우주적 차원의 탐욕과 부채를 부추겨온 세계화는 진보가 아닌 총체적인 퇴보며, 창조가 아닌 종말론적 파괴의 차원에 이르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자연과 모든 생명체를 넘어 우리의 후손들이 삶의 터전인 지구마저 물리학적 파괴를 견디지 못할 만큼 몰아간 것도 탐욕과 착취의 세계화가 만든 최악의 결과였다. 



DDT로 대표되는 화약제품의 생태계 파괴를 다룬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필두로, 삶의 모든 곳에서 위험에 직면한 현실을 고발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을 넘어, 성장이 곧 파괴임을 보여준 이반 일리치의 《성장을 멈춰라》를 비롯해 수많은 경제학자, 물리학자, 생태학자, 인류학자, 기후학자 등이 '탈성장'을 외칠 지경에 이르렀으니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세계화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생명공동체로서의 지구는 종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제임스 리버록의 《가이아의 복수》를 참조)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이자 절대적 과제여서 타협의 여지도 없다. 



바로 이런 지구 차원의 생존과 공존부터, 세계화의 먹이감에 불과한 가장 취약한 계층과 말 못하는 자연을 가장 잘 대변할 녹색당의 원내 진출은 오로지 성장만 부르짖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자기파멸적 폭주를 견제할 수 있는 최소의 안전장치다. 국민을 욕망의 포로이자 소비에 중독된 짐승으로 만들어버린 이들의 탐욕 때문에 하위 99%의 삶은 위험을 등에 지고 사는 헬조선의 하루하루로 만들어버렸다. 





국민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모든 수치가 최악에 이른 대한민국은 하위 99%를 철저하게 희생시켜 상위 1%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전장터로 만들었다. 250명의 학생을 비롯해 30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세월호참사도 상위 1%의 탐욕이 만든 구조적인 참극이었다. 그 이유 때문에 북한의 로켓 잔해는 신속하게 건져올렸으면서도 미수습자 9명이 남아있는 세월호는 지금까지 차갑고 어두운 수중에 갇혀있다.  



하위 99%의 삶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이들의 탐욕 때문에 어디를 가나 썩은 고름과 피비린내 나는 악취가 미세먼지의 공습처럼 하위 99%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메르스대란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언론통제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현재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이것과 정면으로 맞싸울 수 있는 녹색당의 원내 진출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절대과제라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후세대가 앞선 세대들의 탐욕에 희생되는, 이런 지랄맞은 역주행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후손의 권리가 현재의 욕망에 우선한다'는 인류 진화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각성할 수 없다면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혁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녹색당의 원내 진출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거대한 전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특권화된 기득권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곳에 헬조선 탈출의 기회가 자리하고 있다. 사측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동개악을 저지하려는 노동당과 함께, 현재의 욕망을 위해 미래세대의 이익을 약탈하는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막으려면 녹색당의 원내 진출에 우리의 한 표가 절실히 요구된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변절과 배신을 일삼는 자들이 아닌 우리의 삶과 미래에 투자하려는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원하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반골 2016.02.21 01:03

    올 총선에서는 정의당.노동당.녹색당이 원내 진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더!

    • 늙은도령 2016.02.21 01:36 신고

      정의당은 그 기반이 탄탄한 편입니다.
      저는 녹색당의 원내 진출을 혁명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은 닥치고 성장공화국입니다.
      이것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면 공멸을 면치 못합니다.
      한국이 올해부터 2018년까지 계속 하향세를 보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구구조가 그렇게 돼있습니다.
      녹색당이 원내 진출하면 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가능성이 열립니다.

  2. catlover8 2016.02.21 01:05

    저는 한국에도 제대로된 녹색당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외국에 있어도 그래도 근래에는 정치 뉴스를 꽤 챙겨봤는데도 그만큼 녹색당이 홍보가 잘 안된건지, 기반이 너무 약한건지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네요.

    영국 녹색당은 정책이 꽤 괜찮습니다. 근데 영국도 녹색당이 기반이 굉장히 약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죠. 최근 샌더스의 형이 녹색당 대변인에 임명이 되었고, 옥스퍼드에 출사표를 던졌는데 거의 가능성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 녹색당은 환경보호와 더불어 최근 NHS를 지키고, 지원을 늘리는 공약으로 승부를 보려하는데, 사실 이것은 노동당이나 자유민주당과 차별화가 전혀 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보수당 대부분 의원들도 아직은 의료민영화에 반대를 하기 때문에 영국 국민의 관심을 끌기가 힘듭니다.

    제가 영국 국민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여기도 좌우가 엄청 싸우거든요. 근데 그러다가도 의료민영화 얘기만 나오면, 전국민이 똘똘 뭉쳐서 반대를 합니다. 빈부에 따라 의료진료 앞에서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고.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나중에 언제 기회가 되면 영국의 의료진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죠. 한국인들이 오해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멋진 제도이고, 제가 많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인간도 돈이 없어서 의료진료를 못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오로지 그 신념 하나로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제도인데, 제가 16년동안 살면서 직접 경험한 것을 말씀 드릴 수 있으니까요.

    샌더스가 말하죠.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환경보호 공약을 내걸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환경이 파괴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정말 이건 미쳤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 단지 같은 보수라는 이유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공화당 후보 대선 토론회를 한번이라도 좀 보고 지지를 하던지 했으면 좋겠어요. 지구온난화는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총 사진을 자랑스럽게 트위터에 올려놓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곳이 공화당 후보 대선 토론회입니다. 정말 미친 곳 맞죠.

    저는 사실 정의당을 응원하는 사람인데요.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의원 존경하고, 특히 천호선씨가 의회에 진출하면 좋겠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이 분이 겉으로는 유연해보이고, 품위있지만, 또 그러면서 굉장히 강단있는 분 같은데, 진출을 못하고 있으니..

    그리고 조성주씨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의당이 운동권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좀 더 청년들과 교감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유승민 대표 사태때 그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유대표를 따뜻하게 위로했던 것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자신은 진보들로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고, 투쟁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하기 쉽지만, 상식과 책임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함께 가자고, 저는 그 편지가 참 좋았습니다.

    아무튼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좀 잘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게 낙관적이진 않네요..

    • 늙은도령 2016.02.21 01:54 신고

      게이지 장의 원리에 따라 전자가 광자를 방출하면(강한 상호 작용의 결과라고 하기도 하고, 힉스시스템의 역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광자가 방출되는 것에는 임계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종의 티핑포인트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가장 작은 단위의 고 에너지 운동이 일어나면서 우주와 만물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전 세계가 티핑포인트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한국도 급진과격진보가 방법을 달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통진당 해산(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에서 배웠을 것입니다.
      정의당과 노동당은 그렇게 변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앞장서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허황된 꿈을 현실정치로 풀어내는 법을 배웠으리라 봅니다.
      희망의 단초가 보이는 것이지요.

      진화론의 상당 부분이 잘못 해석되고 있지만, 저는 개인 차원에서는 이루어지 않은 것이 전체 차원에서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특히 티핑포인트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이르면 상상하지 못한 에너지가 폭발함을 믿고요.
      그것은 모든 학문의 기반인 현대물리학이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물리학과 화학이 나뉘는 지점에서 세상이 창조되듯이 정치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진정한 혁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이 임계점 근처에 이르렀다는 증거는 너무 많습니다.
      개표조작만 없다면,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한 허상을 걷어낼 수 있다면, 임계점은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녹색당은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원내 진출을 성공시키면 임계점을 더욱 당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착한 성장, 탈성장에서의 풍요, 공존과 상생의 세상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마지막 파편화에 이르렀기 때문에 연대에 대한 갈망이 매우 커진 것도 임계점이 지금임을 말해줍니다.
      자본주의가 끝에 이르면 바우만의 성찰처럼 '액체근대'가 될 수도 있지만 '유동하는 공포'에 대한 반작용이 이루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임계점은 유동하는 공포가 정점에 이를 때이니, 거대한 전환을 위한 에너지가 부정의 방법을 통해서라도 축적됐음을 말해줍니다.

      일단 녹색당의 원내진출을 이룰 수 있다면 보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 동생과 형이 플라스틱 산업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그 폐해와 희망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녹색당이 원내에 진출하면 이런 것들에 눈이 뜰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나올 것이고, 그래야 세상은 희생을 최소화하며 변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초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조금씩만 초인을 향하면 됩니다.
      니체에 천착했던 푸코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형편없는 저라도 떠들어대야지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위해!!
      공존과 상생을 위한 미래를 위해!!!

  3. 참교육 2016.02.21 06:40 신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당. 국민의 삶의 질과 환경을 살리는 녹색당.. 그리고 여성과 교육...등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지금 더민주당이 김종인을 받아들여 본식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녹색당의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각성하지 못하고 짝사랑만 하고 있으니...

    • 늙은도령 2016.02.21 17:19 신고

      어차피 절은층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거대정당보다 진보정당에 표를 주어야 합니다.
      노동자는 노동당에 표를 주어야 하는데 요즘은 노동자들도 공동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조금씩 연대가 늘어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4. BOW 2016.02.21 10:47

    김종인 관련글쓴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않올린 것 같습니다.
    거기다 전두환 똘마니에 이어서 이번에는 김현종을 영입했더군요?
    문재인은 무슨심보인지(저런 위험인물들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181842171&code=940702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8107

    PS:하긴 노무현떄의 한미FTA와 이명박때의 한미 FTA는 사실상 다를 게 없지요.

    • 늙은도령 2016.02.21 17:30 신고

      다음주 초에 올릴 생각입니다.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생겨서요.
      쓰레기 언론들의 보도가 너무나 왜곡돼 있어서 어느 선에서 판단을 시작할지 판단해야 합니다.

      한미FTA는 우리도 미국에서도 노동자들은 반대했습니다.
      국가 전체로 보면 한미FTA는 우리에게 이익이었습니다.
      노무현의 선택을 반대했었지만 그간의 결과를 볼 때 우리가 미국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노무현이 만든 종부세처럼 그 이익을 분배해야 하는데 이명박근혜가 정반대로 갔습니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농어민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받지 못했습니다.
      이명박의 부자감세가 치명적이었고, 나성린이 앞장선 종부세 폐지로 최소한의 분배도 불가능해졌습니다.
      노통이 김현종에게 국익에 반하지 않도록 강하게 나가라 해서 미국이 외국과 맺은 FTA 중 가장 이익을 챙기지 못한 사례가 한미FTA입니다.
      조세정의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조건 하에 한미FTA에 찬성합니다.
      미국의 제조업이 붕괴된 상황에서 우리가 손해볼 이유는 몇 십 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현종은 김종훈처럼 외교통상 분야의 비주류였지요.
      노무현이었기에 그가 통상교섭본부장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의 이익이 많이 반영된 한미FTA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김현종의 영입은 김종훈 등의 거짓말들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삼성사장으로 갔다가 금방 나온 것은 그곳의 텃세 때문이어서 삼성과의 관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인사는 문재인이 한 것이 아니라 김상곤이 한 것입니다.
      김종인은 반대할 이유가 없고요.
      헌데 김현종은 노무현의 사람이어서 환영해야 할 사람이지 비판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미FTA에서 거둔 이익을 피해를 입은 쪽으로 이전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김현종이니 더불어민주당에서 그 역할을 하면 됩니다.
      전 김현종의 영입에 찬성합니다.

  5. BOW 2016.02.21 10:49

    그건 그렇고 이번 지카 바이러스가 한반도에 유입된다면 않그래도 저출산인 나라에...으 상상하기 싫어집니다.

    • 늙은도령 2016.02.21 17:34 신고

      저는 치카바이러스의 몬센토 살충체 부분도 검증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과관계는 모르겠지만 상관관계는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해서 검증을 끝내야 합니다.
      몬센토는 어마어마한 초국적기업입니다.
      그들은 미국 정부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 농업 분야의 초국적기업인데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유전자 조작과 살충제 살포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몬센토는 그렇게 해서 기존의 품종을 모조리 박살내고 자신들의 것을 팔아먹기로 유명한 악마의 기업입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의사회가 주장한 것을 공개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지금의 공포 조장은 너무나도 이상하고 과학적 연관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몬센토의 음모가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6. 耽讀 2016.02.21 15:11 신고

    더민주가 보수당,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이 진보당으로 번갈아 집권하는 그날이 하루속히 와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영원히 사라지고.

  7. BOW 2016.02.21 21:39

    http://www.vop.co.kr/A00000994891.html
    님생각은?

  8. 공수래공수거 2016.02.22 09:02 신고

    현재의 상황으로는 녹색당 같은 소수 정당이 국회 진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대안으로 제1야당에 합류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활동해야만
    된다고 셍각합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최초의 금융위기라고 말하는 '튤립공황'에서부터, 1873년에 시작된 최장기공황, 선진국 경제를 절단낸 1929년의 대공황, 1973~75년의 1차 오일쇼크, 1981~82년의 2차 오일쇼크, 1990년대 초반의 일본 등의 불황, 1997~98년의 아시아와 러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초반의 벤처거품 붕괴를 거쳐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모든 경제위기의 현상들이 총 망라된 유일무이한 초장기 경제불황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주기적으로 경제위기(금융위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가 발생했다고 해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공황에 준하는 경제위기가 닥쳐도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이 예금자 보호, 구제금융, 양적완화, 환율조정, 금리조정, 대규모 경기부양책, 신용스와프, 부채 탕감 등으로 자본주의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경제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신용을 창출하는 금융시스템부터 살려내고, 이자율 인하에 따른 대출 증가와 이에 따른 실물경제의 회복이 뒤를 있고, 임금 인상 등을 통해 개인소득이 늘어나는 순환구조를 되살려냄으로써 금융이 선도하는 (부정적) 세계화는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재산을 허공에 날린 상위 20%의 부는 회복되고 상위1~5%의 부는 급증합니다. 대신 중하위 80~90%의 부는 경제위기가 누적될수록 줄어들었고, 하위 30%는 생존이 버거울 정도의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장기대불황은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에 대한 인류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백화점식 대불황이어서 미국을 비롯한 4대경제권이 (부정적 세계화의 지옥에 갇힌 상태에서) 각자도생을 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동원가능한 모든 조치들을 실시해 경제의 몰락을 막는 한편, 속출하는 부작용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임기응변의 연속으로 살얼음 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조치도 먹히지 않는 현재의 장기대불황은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하위 99%의 부를 상위 1%에 이전하느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소비의 절대량이 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위 30%를 빈곤층으로 내몰고, 중산층 30~40%를 하층민으로 만들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위 1%를 제외한 하위 99% 전체가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거나 사라졌기 때문에 백약이 무효한 상태입니다.



'빚도 자산'이라는 금융의 마법도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외계인이나 상위 1%에게 지구를 통째로 팔지 않는 한 장기대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구온난화를 늦추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시키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입니다. 공멸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란 외계인의 자비 아니면, 정치의 힘으로 상위 1%의 부를 강제적으로라도 재분배하는 것입니다, 샌더스의 공약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나가는 돈을 줄이고 들어오는 돈은 어떻게 해서든 머물게 해야 합니다. 수출도 중요하지만 내수에 더욱 치중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계산한 다음에 국익에 반한다면 전통의 동맹과도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 채 행동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제역학관계의 중심에 서면 안 됩니다. 그럴 경우 경제의 탄력성이 죽게 되고, 초강대국의 희생양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끌어들이는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외국의 무기를 수십조 단위로 수입하는 정치적 도박은 국민을 지옥으로 내모는 학살행위에 다름아닙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국으로부터 돈을 끌어들여도 모자랄 판에, 수십조에 이르는 세금을 효과도 없는 미사일방어체제의 도입과 유지에 쓰고, 매년 수억 달러의 이익을 남기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정치적 광기는 친일수구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해 국가의 존립조차 위태롭게 만드는 최악의 결정입니다.  



대중국봉쇄라는 미국과 일본의 절대과제에 빌붙어 정권 안위와 집권 연장만 획책하는 박근혜와 환관들, 새누리당과 조중동을 이번 총선에서 심판하지 않으면 한반도에 일본군대(자위대)가 진입하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합니다. 한미일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일본 발 보도가 쓰레기 방송들을 통해 전국을 도배하는 것도, 개성공단 폐쇄를 통해 북풍을 극단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이익에 편승해 총선에서의 승리를 도모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친일수구세력이야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반국가적 행태에 단 한 푼도, 단 하루의 시간도 내줄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라면, 그 시작은 4월13일의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닥치고 정치'가 아니라 '닥치고 투표'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며, 저들보다 한 표라도 더 얻는 것(개표조작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이 절대과제라 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2.12 08:39 신고

    헉..제목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정부는 그것도 승인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02.12 12:19 신고

      박근혜가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도저히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2. 耽讀 2016.02.12 08:43 신고

    인종차별 같은 말이라 싫어하는 단어이지만 '저들 DNA'속에는 민주주의, 인권, 환경, 평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3. EMC 2016.02.12 13:54

    선생님
    캐나다에서 인사드립니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상황이 최악으로 진행되고 있네요.
    이러다가 예전에 우크라이나에 대해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한반도 일부분이라도
    자기네 통치 구역으로 만들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는 것 같군요.
    저는 요즘 Canada International Council (CIC) 이라고 캐나다인들에게 해외 정세에 대한 관심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를 위해 틈틈히 오피니언 글을 쓰며 봉사하고 있는데 주요 도시마다 지부가 있는 상당히 큰 단체입니다.
    선생님이 블로그에 올리신 글들을 토대로 영문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상황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자 하는데
    허락해주셨음 합니다.

    제가 예전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요점들을 간략한 글을 선생님께 이메일로 보냈는데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부족한 솜씨로 쓴 글이지만 한국 밖에 세계가 얼마나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국에 계신 분들께 경종을 울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것같은데 만일 받으지 못하셨다면 다시 한번 보내드리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2.12 13:59 신고

      메일에서 못봤는데요.
      다시 한 번 보내주시지요.
      어쩌면 스팸메일처리 됐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알리는 것은 제가 고마운 일이지요.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의 재현이 될지 저도 걱정이 많습니다.
      박근혜가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최대한 한국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캐나다의 변화도 알려주시고요.
      부다 좋은 성과를 거둬 좋은 오피니언 리더가 되기를 바랄게요.

  4. 2016.02.12 16:0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2.12 18:00 신고

      네, 건강에 주의하면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의 최저임금은 6030원이다. 인상률이 정해졌을 때, 노사 양측에서 그런 데로 적정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쓰레기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인상률이 너무 높아서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을 한단다. 그렇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저임금의 적정선은 없는 것일까? 있다고 해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래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모든 근로자의 연봉도 올라가는 것일까?

 

 



우리는 최저임금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기업(특히 중소기업) 측에서는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직원 전체의 월급이 올라가 인건비 부담이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고 울상이다. 노동자 측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을 최저임금이 보장하지 못한다고 울상이다. 정작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및 저임금, 임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배제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최저임금에 적정선은 없는 것일까? 최저임금의 적정선을 판정하는 기준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인가? 따라서 이번 인상률이 적정한 것일까,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 것일까?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제대로 적용될까? 인건비에 부담을 느낀 중소기업은 외국인노동자를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은 나라이다. 헌데 우리가 매일같이 떠들어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부정적 세계화의 주범인 신자유주의가 79년과 80년에 걸쳐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와 레이건이 당선되면서 급속도로 퍼진 경제 사조인가?

 

 

단언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실체, 변화와 파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무한경쟁을 일상화하는 신자유주의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태어나 보니까 전통이나 관습, 일상의 환경처럼 신자유주의는 이미 주어져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적응하면 그만일 뿐 알고자 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위 88%로 대표되는 우리는 매일같이 당하고 휘둘리며, 저들이 촘촘하게 쳐놓은 여러 개의 그물망(통치 메커니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최저임금도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 중에 하나이며, 각자도생이라는 자발적 노예를 대량으로 만드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최저임금이 생각보다 많이 올라도 그것 또한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의 하나일 뿐이다. 



이 3권의 책만 읽어도 신자유주의의 학문적 이해가 정립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자유주의 경제학(자유방임을 모토로 하는 중농주의 경제학으로 고전파 경제학이라고 한다)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된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에 그 원형이 있다. ‘가능한 한 최대의 경쟁을 그러나 최소한의 계획’을 모토로 하는 질서자유주의는 적극적 자유주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 권위적인 정부가 방해되는 것들을 가지 쳐주는 선별적 개입의 자유주의라고도 한다.

 

 

최근의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무정부적 자본주의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학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에서 분리된 자유주의 경제학이 정치의 내부에 자리하면서 탄생한 통치술의 총합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쟁(가격이 핵심)으로서의 자유시장 메커니즘을 국가의 모든 부분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교육과 결혼, 가족 같은 지극히 사적인 것들마저 시장경제의 종속변수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시장경제화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절대 시장경제라는 존재의 기초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시장경제의 주체인 기업이 시장경제를 통해 영원히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은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교환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장 메커니즘을 가격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경쟁을 극대화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국가의 권력과 법률, 선별적 규제를 동원해 시장경제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에 개입해서 시장경제가 가장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자유방임이 아닌 적극적 자유주의나 개입적 자유주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세상을 시장경제화해서 상위 1%에게 하위 99%의 부를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권위적인 통치권력이다.   

 

 

신자유주의는 미래의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시장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을 재교육해서 경쟁을 확장하고, 법률과 규율 및 규범을 통해 모든 인간을 시장경제에 종속된 존재로 만든다. 시장경제에서 탈락한 자들은 경쟁의 법칙에 따라 굶어죽을 수도 있다. 경쟁력이란 자신의 책임하에 갖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일 뿐이며 공짜 점심은 없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주축인 기업(그중에서도 오너와 최겨영영진, 대주주들로 구성된 사측)을 위해 정부의 개입을 최대화하고 최적화하는 궁극의 권력이다. 가격과 경쟁이라는 두 개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 중심의 시장경제를 최대한 활성화하고, 경쟁 메커니즘을 교란하는 독점기업의 출현을 제한하고 해체(IMF 때 한국의 재벌을 해체하려고 했던 이유)하며, 필요하다면 최저임금을 올려서라도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이 모든 돈들이 상위 1%에게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개인을 천부인권을 지닌 시민이 아니라, 기업적 입장에서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쟁력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본다.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 경쟁력을 지닌 채 시장경제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든다. 개인은 채용되기 위해 인적자본(능력자본)으로서의 경쟁력 제고에 전념해야 하며, 이것 때문에 선행교육과 스펙의 중무장이란 무한경쟁의 포로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가 부모나 가족, 사회나 정부가 개인에 투자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장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업도 시장경제의 주체이지만,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에서 도태하지 않도록 더 높은 경쟁력을 창출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거나 고용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기업과 개인에게 끊임없는 혁신이 주문되며,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만큼 그에 따라 예비 노동자와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도 계속해서 올라간다. 

 

 

가격 대비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기업은 도태되고, 그 자리에는 다른 기업이 들어서며, 한 기업 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서는 구조조정의 칼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시적 구조조정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당화된다. 신자유주의가 위험을 등지고 사는 삶, 위험과 함께 하는 삶을 장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에 투자해야 하고 창업도 마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린 노동자와 노동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관리도 국민의 세금을 독점하는 정부가 맡아야 한다. 그들이 시장경제에 해가 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무한경쟁의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포획될 수 있도록 각종 부조와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시장경제에 해가 된다면 부조와 복지비용의 관리를 통해 도태시켜도 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활성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생필품을 구입하던, 대박이나 창업 및 안정적인 정규직을 꿈꾸며 공부를 하던, 다시 시장경제에 뛰어들기 위해 병을 고치던,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본소득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그들에게 최상의 결과를 창출한다. 좌파의 논리라도 시장경제에 도움이 되면 얼마든지 수용한다(좌파 신자유주의의 기원). 

 

 

                                                     

 

세계화를 추진하는 이유도 시장경제의 활성화 때문이다. 가격과 경쟁의 메커니즘에서 도태되는 분야에는 적정한 수준의 보조금도 묵인한다. 그것이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의 틀을 해치지 않는다면 품목별, 국가별 예외조항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공황이 도래하던, 경기침체가 길어지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라는 기본 틀만 유지하면 된다.

 

 

이렇게 지구를 상위 1%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목표다.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는 부정적 세계화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다. 인구 조절을 위해 공중위생의 확대도 필요하고, 각종 자선사업도 장려된다.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이익의 일시적인 감소도 감내할 수 있다. 판돈을 키우는 일은 너무나 쉬워서 그것 때문에 고민할 이유란 없다(영원히 지속되는 경제위기란 없다).

 

 

임금의 평균값으로 계산하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하던 최저임금 또한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노동자들을 시장경제 하에 두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다윈의 진화론과 뉴턴의 역학, 정부의 개입과 언론의 동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시장경제는 자기조정 능력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영원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일정 시대를 풍미한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공동체나 조직, 사회나 국가에 의해 자유라는 것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진화해온 시장경제의 총화이자 통치의 기술이다. 그래서 좌파 신자유주의도 가능하며, 우파 신자유주의도 가능하다. 인류의 삶 속에서 시장경제가 절대적 요소라면 우리는 신자유주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신용시스템이 2008년 금융위기의 수준을 넘어 완전히 무너지면 모를까?

 

 

하지만 최종대부자로서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벗어나려면 기차에서 뛰어내리던지, 기차에 탑승하고 있던지, 아니면 기차를 멈추던지 세 개의 선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파헤친 푸코가 말년에 그리스철학의 핵심주제인 자기배려라는 가장 근원적인 성찰로 돌아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뛰어내리려 했던 것이다.  

 

 

내가 시장경제의 부속품이라면, 그런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자기배려에 최대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소중하다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연결만 유지해야 한다. 시장경제에 속하지 않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이란 시장경제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최하의 마지노선으로 주어지는 생존임금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신자유주의는 지구라는 차원에서 자원의 한계와 자연의 반격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한 무한한 성장이란 끝없는 퇴행이었으며, 시장경제마저 위협하는 최악의 메커니즘이었다. 생산과 소비의 확대라는 면에서 전체 인구로서의 인류를 관리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정보통신기술과 자동화 등의 확장으로 소비를 위축시키는 고용없는 성장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구온난화까지 급진성을 띠려고 한다. 이런 총체적 위험 때문에 최저임금으로 대표되는 생존임금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수준에서 한참 부족하게 됐다. 신자유주의는 실패했지만 시장경제는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생존선 근처에서 각자도생을 위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최저임금 속에 숨어 있는 첫 번째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최저임금에 숨어 있는 두 번째 진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생명마루한의원 2016.01.23 18:38 신고

    잘읽고갑니다..^^

  2. 수호자 2016.01.24 15:58

    에듀윌 이곳저곳에 과잉광고 정말 지긋지긋하다... 대한민국을 온통 시험공화국으로 만들려하나... 광고를 하든 안하든 하고 싶은 사람은 찾아서 하고 하기싫은 찾아줘도 사람은 안한다... 제발 좀 적당히 해라...

    • 늙은도령 2016.01.24 16:51 신고

      에고... 학생들이 불쌍해요.
      한국은 학생들과 청춘들에게 지옥이 됐습니다.
      광고는 제가 책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쓰는 지라...
      지금까지 책 구입비만 2000만원을 돌파해서 더 이상 제 재정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양해바랍니다.

  3. 돌고래 2016.01.25 20:44

    광고 있어도 좋아요..이렇게 좋은 글만 볼 수 있다연요^^

    • 늙은도령 2016.01.25 21:24 신고

      감사합니다.
      오늘 새로 구입한 책 12권이 도착했습니다.
      광고 덕분에 원하는 책들을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4. 새노래 2016.02.05 00:19

    괜한 트집잡는놈들 하는 말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런놈은 정의도 없고, 소신도 없는 놈입니다, 오로지 주인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만 바라보고 사는 놈이라 신경 접어도 됩니다, 그 많은 책을 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많은 책을 읽고 소화 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가 되는지 썩은 놈들은 모릅니다, 선생님은 신경 접어시고 좋은 글에만 집중 하십시요, 항상 읽어 보고 저의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건필 하시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포맷이 필요한 대한민국에 꼭 필요 하신분이십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을 당하고 반역자를 처단 할때 지식인과 언론인들을 먼저 했다지요.. 그들은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느냐고 불평 불만이 많을때.... " 지식인과 언론인은 국가에서 가장 투자가 많이 되는 인재들이다, 그렇게 국가 혜택을 많이 본자들이 국가 위기 상태때 "침묵" 한 그것이 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다, 그리스도 국영언론이 해체되고 전 직원이 해고되는 사태가 있었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침묵은 나의 목을 죄어 올 뿐입니다, 이럴때 가만히 있다고 침묵이 금이 되는건 아니죠....

    • 늙은도령 2016.02.05 02:36 신고

      그럼요, 지식인들은 모름지기 비판을 멈추면 안 됩니다.
      비판을 멈춘 지식은 죽은 자나 다를 것 없습니다.
      건강에 신경쓸 게요.

 

 

 

호남과 광주의 위대함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지난 70년을 희생해왔으면서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만델라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했고,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바람을 태풍으로 키웠음에도 호남인들은 '예산폭탄'과 희생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5.18광주민주화항쟁 동안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범죄와 약탈, 난동 등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시민정신의 승리였다.

 

  

 

 

그런 호남이, 민주정부 10년의 버팀목이었던 호남이, 그 중심에서 진보 진영에 승리의 DNA를 심어주었던 광주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정치인들에 의해 야권 분열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마치 호남과 광주를 판돈으로 추악하고 파렴치한 한 판의 정치도박이 벌어지는 듯하다. 이놈도 저놈도 호남과 광주의 맹주를 자처하고, 호남과 광주의 민심을 거론하며 문재인 대표의 사퇴와 만신창이가 된 친노(야권을 분열시키는 조중동의 프레임)의 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낡은 진보 청산'과 '우측으로의 이동'으로 대표되는 외연확대, 정체불명의 끊임없는 혁신과 광주정신의 부활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낡은 진보'란 이분법적 사고를 가졌고, 그래서 싸가지 없는 진영논리에 갇혔으며, 패거리를 이뤄 패권주의(친노에게만 적용되는)를 지향하는 운동권 출신이며,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과 신보수주의자(뉴라이트)들을 정치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끌어준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은 무엇인가》에서 많이 보던 것들이다. 이들의 상대적 절충주의는 평등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식물상태로 만들었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양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독재가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안철수와 김한길, 박지원 등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중도로의 외연확장, 합리적 보수와의 연대라는 점에서 호남과 광주를 판돈으로 한국판 '제3의 길'을 갈 모양이다. 전 세계가 부정적 세계화로 귀결된 '제3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는 자들은 정반대로 가겠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상위 5%에 하위 95%의 부를 이전시키는 신자유주의의 천국이 됐으니 그 흐름에 편승하겠다는 뜻이다. 

 

 

 

 

세상 누구도 호남과 광주의 선택을 비판할 자격과 권한이 없으므로 이들이 호남과 광주의 선택을 받는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우측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금까지 호남과 광주가 지켜온 가치와 정신과 정반대에 위치하지만, 이들이 호남과 광주에서 기득권을 형성한 터줏대감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문재인이 호남과 광주에 아무리 호소한들 이들의 기득권을 넘어설 수 없다. 

 

 

결국 호남과 광주의 선택이 야권의 미래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호남과 광주가 원하는 변화와 혁신이 '제3의 길'이라면 한국의 우경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프랑스혁명에서 구체화된 '자유, 평등, 박애'라는 민주적 정의와 가치가 최소화되고,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을 울부짖는 자유방임 시장경제가 세습자본주의와 권위주의적 독재로 고착화되는 것이다.

 

 

칸트가 말했듯이 외부의 적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지만, 친구나 동료의 이름으로 내부에 숨어있는 적은 막을 방법이 없다. 호남과 광주의 선택이 가장 지혜로울 때 대한민국은 갈수록 우측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 5.18광주민주화항쟁이 이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6.10항쟁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구름바다 2015.12.24 01:47

    부디 지금까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을 다 해 왔던
    호남인들의 명석한 판단으로 가장 좋은 선택을 해 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비록 민주화의 힘이 오로지 호남에서만 일어 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날 다른 곳에서 보여지는 지역주의에 기댄 민주화의 쇠퇴가 없는
    호남의 살아있는 민주의 혼을 다시 한 번 믿고 기대해 봅니다.

    올바른 선택으로 진정한 야성을 일깨우는 선택의 본보기를 보여 주기 바랍니다 !

  2. 참교육 2015.12.24 04:46 신고

    광주정신을 오염시키는 추악한 인간들의 반란입니다.
    광주를 살려야 하는데 개인의 이익을 위해 광주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좁은 안목으로 보면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그러나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3. 협궤 2015.12.24 05:08

    호남이 그들 호구인줄 아나보죠? 선거때만 이용하고 선거끝나면
    나몰라라하는 작금, 전라도만 가난하게 살고 있네요.

    • 늙은도령 2015.12.24 19:29 신고

      전라도는 농업지대가 많은 것도 있지만, 현대사 70년 중 60년을 새누리당이 집권했습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전라도에 가장 많은 정부 지원이 있었지만 60년을 10년만에 만회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바로 그런 것이니....

  4. 공수래공수거 2015.12.24 08:28 신고

    며칠전 광주 518기념관에 다녀 왔습니다
    그때의 자취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탄압했던 무리들의 뿌리가 지금 여권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걸 느꼈습니다

  5. 耽讀 2015.12.24 08:47 신고

    1980년 전두환에 저항한 광주, 2002년 노무현을 선택한 광주. 그리고 2015년 12월 광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시민'들은 같은 정신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릅니다. 2015년 광주 정치인들은 5.18을 팔고 있습니다. 새누리 수구와 별 다르지 않으면서. 언론들도 날뛰고 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35년 전 그 정신을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0여일이 대한민국이 희망이 있는 나라인지 가름할 것입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할 진짜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24 19:31 신고

      네, 이번에 승리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야권이 호남 없이 생각할 수 없듯이 호남인들의 지혜로운 판단을 기다릴 밖에요.

  6. 바람 언덕 2015.12.24 12:40 신고

    그래도 호남유권자들은 언제나 위대한 선택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분들의 선택을 믿어 봐야지요.

  7. 민초® 2015.12.25 02:39

    위대한 생각만으로 빵을 얻을 수 없다..
    얻으려은 치열한 욕심과 투쟁,
    누가 이기겠는가,
    세상 엔 정의 를 봐 줄 신은 그 아무대도 없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오늘!..

    • 늙은도령 2015.12.25 02:55 신고

      민주주의는 떠들고 행동하는 만큼 답해줍니다.
      먼저 주는 적이 없지요.
      그래서 대단히 어려운 게 민주주의입니다.



문재인 체제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이제 대한민국 모든 언론의 공통된 주제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문재인이 잘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 정도면 언론이 카르텔을 형성해 문재인 죽이기에 들어간 것이 확실하다. JTBC 5시정치부회의도 이제는 대놓고 문재인 죽이기에 합류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일차적으로 문재인에게 책임이 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야당의 역할이 정부와 여당이 제대로 통치하는데 협조하고 적절히 조정하는 것으로 자리매김시킨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표의 야당은 정권탈환이 목표가 아니라 제1야당 유지가 목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명박근혜 정부 7년7개월에 질릴 대로 질린 수많은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간절히 희망하지만, 문재인의 야당이 그런 것 같지 않으니 비판의 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장악된 지상파방송, 집권세력의 나팔수인 종편과 보도채널은 물론 나머지 제도권언론들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문재인은 공통의 적이니. 



‘셀프디스’에서 밝힌 것처럼, 지금까지의 문재인은 정치적 카리스마가 없는 리더인 것만은 확실하다. 어떨 때는 안철수보다 카리스마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행보는 정권 탈환의 교두보인 총선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대선행보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는 의심을 받기에 안성맞춤이다.





5시정치부회의가 박영선의 행보와 손학규의 정계복귀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이런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이 대표에서 사퇴하거나 손학규 중심의 신당이 출범하면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문재인을 흔드는 것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가능하면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문재인의 성품을 비판하는 것과 운동권 세력 중심에서 벗어나 좌우를 아우르는 중도 신당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비례해 문재인을 지지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줄어들고, 특정 공간에서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의 입장에서 보면 악순환의 고리가 완벽하게 구축된 것이다. 모든 제도권언론들의 융단폭격과 비토, 정권 교체를 갈망하는 야권 지지자들의 날선 비판,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자들의 노골적인 반란, 변함없는 지지자들의 고립된 응원, 심지어는 노무현과 비교되는 것까지 문재인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추세가 쌓이고 쌓여 견고해지면 문재인에게 반격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데 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 했는데 바로 그런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계파로서의 친노에 대한 끝없는 비판이 친노의 무력화에 성공했듯이, 이제는 문재인만 남은 형국이다.



이제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진보좌파의 전통적 가치를 영원히 추방하려고 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가 확정된 지난 30년 동안,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의 척도를 나타내는 각종 불평등과 차별이 늘어났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되돌아보지도 않는다.



세계화 정도가 심화되고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어지는 것이 지난 30년의 변화였으니 그럴 수도 있다. 문재인이 퇴진하고 친노가 사라지고 나면 (친이, 친박은 살아있어도) 이 모든 역주행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라도 만들어낸다면 필자도 문재인과 친노 비판에 합류하고 싶다.



박원순과 이재명, 안철수가 전국구로 떠올라 문재인과 경쟁하는 것이 야권으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손학규와 안희정도 가세하지 못할 이유도 없으리라. 그 밖의 숨어있는 인재들이 튀어나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으면 더욱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과 친노를 무력화시키거나 퇴출시킨 다음에 그런 것들이 진행된다면 야권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야권의 분열은 총선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문재인과 혁신위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하자는 것도 기득권 양당체제를 종식시키고 다당제로 가기 위함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란 운동장이 극도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고, 제도권언론들이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그들은 기득권이고, 그래서 현재의 상황이 변하지 않을수록 좋다. 약간의 변화는 허용하겠지만 그 이상을 반길 이유란 없다.



한국 정치판을 바꾸려면 다당제는 필수다. 하지만 그것으로 가기 위한 타임스케줄이 총선 전에 신당을 차리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총선 다음에 다당제로 가는 것이 나을지, 충분한 토론과 고민이 있어야 할 듯싶다. 전자가 낫다면 야권이 분열이 빠를수록 좋고, 후자가 낫다면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9.01 08:52 신고

    일단 차기 대통령 선거 이전에 내년 총선에서
    이기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 대권을 노려도 늦지 않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1 17:43 신고

      문재인의 방법이 지지자의 방법과는 맞지 않는데 갈등이 자리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다루겠지만, 문재인은 가장 힘든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2. 아이스킹 2015.09.01 13:27

    문대표는 정치인 보다 어쩌면 행정가로서 역할이 맞는 걸까요. 문재인을 좋아 하는 시민의 힘을 왜 사용하지 못할까요

    • 늙은도령 2015.09.01 17:44 신고

      그것은 다른 글로 다뤄보겠습니다.
      문재인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이제는 정리했으니까요.



결국 그들은 자신이 이룬 것들로 인해 자신의 후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지독한 모순에 갇혀 미래세대 못지않은 피해자로 뒤집혀지고 있다. 그들은 압축성장의 표상에 갇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변한 것도 모자라, 현실을 끝까지 부정하면서 과거만 움켜쥔 채 자신의 자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영화 '국제시장'이 그분들에 대한 현실도피적 헌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ㅡ'국제시장'에 대한 자세한 사회학적 비평은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이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정수이기 때문에 '국제시장'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의 삼위일체’가 극소수의 승자에게만 미래로 가는 지독하게 좁은 풍요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절대다수의 패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궁핍과 위험으로 가득한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는 미래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 그들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모순은 죽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부의 불평등이 기회와 교육의 불평등으로 고착되고, 성장의 각종 부작용들이 개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위험사회의 비대칭적 피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패자부활전을 인정하지 않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견고한 고체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우만의 성찰처럼 고체의 밀도를 지닌 채 액체처럼 유동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이 펼쳐놓은 물샐틈없는 그물망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산업발전의 단계에 따라 중후장대하며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 동거를 피할 수 없는 무거운 경제에서, 핵심인력만 정규직으로 둔 채 나머지 부문의 인력들은 노동유연화에 따라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으로 대체한 채 가벼운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주의에 익숙하나, 유례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자유의 종류 때문에 민주주의가 빠른 속도로 퇴행 중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지 못하는 1030세대는, 계몽된 시민이었으나 지배자와 타협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의 착취의 대상이었던 노동자와 구별되는 압축성장의 주역들과, 시민정신의 계승자였으나 마르크스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너무나 적었던 민주화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노동 개념과 자연 지배라는 성장의 낙관론이 사회와 문화의 퇴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영원한 진보라는 계몽의 피해자라는 데는 동일하지만, 살아온 시대적 경험이 틀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여력도 없다. 



인류문화학적으로 1030세대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압축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지금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경제적 발전이 최종 단계에 이르면 자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와 평등의 주체로서의 타자가 서로 공존하고 갈등하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헌데 삶의 고단함에 짓눌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때문에, 그들은 극소수의 승자에 대해 절대다수의 약자와 패자의 위치로 내몰리고 있는 기술-경제적 발전의 피해자임은 분명하다. 평화와 공존의 종교인 이슬람 사회의 속담처럼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기 마련이다.’ 민주화세대는 물론 그보다 앞선 세대인 압축성장의 주역들에 대한 이해를 1030세대에게 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세 세대가 살아온 시대의 조건과 지배의 방식, 산업화와 민주화의 단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특히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의 부족과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삶의 방식과 각자가 처한 환경 등에서 채울 수 없는 거리를 짧은 글로써 풀어낼 수는 없다. 



보릿고개라는 생존의 고민을 걱정했던 세대이자 국가와 사회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받칠 수 있었던 세대들을 기술-경제적 발전 때문에 이기적일 정도로 개인주의화된 1030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업화의 주역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장과 발전을 목격했기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상태다. 그들은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지적 사기이자 농촌 해체 과정인 '새마을운동'의 희생양이어서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군사부일체와 국민교육현장, 국기에 대한 경레가 이상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박정희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의 딸인 박근혜에 대한 사랑을 1030세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1030세대에게 권위주의적 독재에 저항해 감옥을 들락거리며, 미군이 아부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했던 고문보다 더욱 심한 고문에 시달렸고, 때로는 사형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민주화세대의 치열한 투쟁을 이해시키기 힘든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국가의 전방위적 압박에 운동의 동력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해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교조적일 만큼 밀어붙였으며, 운동의 길이 너무나 힘겨웠기에 민주주의나 정의와 평화에 대한 개념에서 거의 권위주의적인 엄격함(민주화 주역에 대한 1030세대의 피로감이 여기서 나왔고 그 극단에 일간베스트가 있다)을 유지해야만 했다. 지난 60년 동안의 경제성장은 무수히 많은 부작용들을 후세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으며, 그 결과 1030세대들을 압축성장의 신화에 짓눌려 존엄한 삶과 진정한 자유도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들 모두가 계몽적 진보(국민을 착취의 대상으로 만드는 유신(維新)도 이에 속한다)를 앞세운 기술-경제적 발전의 지배세력의 희생양이었지만, 절대 다수의 패자들 사이에서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 남아 있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세 세대 간의 화해란 갈수록 벌어지며 서로를 향해 폭력적 적의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들이 난무하며 교차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기술-경제적 진보의 방향이 바뀌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어야 하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유발하는 세대 간의 전쟁(별도로 다룰 것이다)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가족의 복원과 세대 간 화해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익 추구를 위한 위장된 행태여서 세대 간 갈등과 가족의 해체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압축성장의 혜택을 최소한만 받았던 세대들과 그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1030세대가 부의 불평등과 위험의 불평등이 교차하는 하는 최악의 지점에 위치한 사회적 계급(파편화된 개인이라 연대의 능력도 없고 운동으로 승화할 동력도 없는 넓게 산재해 있는 계급)부터 비대칭적 종말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현재의 세상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1%와 다음 번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만 그들의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라고 비대칭적 종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기술-경제적 발전의 수혜자로서 초국적기업의 위치에 오른 삼성전자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네트워크의 효과’를 누리면서, 이제는 1등을 유지하기 위한 ‘마하경영’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이런 삼성전자그룹의 끊임없는 변신은 정보통신 기술이 어느 산업에나 적용되는 지적 능력의 특징 때문에 전통의 제조업에서 무거운 부분을 떼어내는 작업에 들어서는 단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속도가 핵심인 가벼운 경제에 승선하려면 전통의 제조업도 제 살을 깎는 살벌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대규모 실업의 양산과 공장의 폐쇄나 해외이전을 의미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초국적기업에 오른 대기업집단은 기술-경제적 발전의 궤도에 적응해야지 그에 저항하면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최근에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는 환율전쟁에 갇혀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땅의 기만적인 기득권들은 참여정부 시절이 삼성공화국이었다고 하면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거짓을 확대재생산했지만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망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을 만큼 부의 독점이 임계점을 넘은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실에 가깝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금의 새누리당 출신들이 일으킨 IMF 외환위기 때문에 삼성전자그룹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2008년의 월가 발 경제위기는 MB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현대기아차그룹이 약진할 수 있었다(물론 기술-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았지만). 국민의 지갑은 털렸지만, 이 두 초국적기업의 매출과 자산규모는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전 세계 차원의 청사진을 그려가며 현재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국적기업들의 탄생과 독과범적 시장 지배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계몽적 진보의 필연이었다. 이런 변화는 부정적 세계화에 뛰어든 모든 나라에서 공히 보여주는 공통의 현상이며,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배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모두에게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손만 뻗치면 움켜질 수 있는 무한한 상품들이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만끽하고 상품들을 구매하려면 저임금 노동이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즐기고 지불은 뒤로 미루거나, 아예 뒤는 생각하지 않는 카드의 사용도 한계가 있으며, 대학을 졸업했을 때부터 이미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가지고 출발하는 20대들은 노동예비군을 뜻하는 잉여가 아니라 폐기처분되기 직전의 잉여라는 뜻에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의 위협에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졌다.





부정적 세계화의 핵심인 이런 기술-경제적 관점(계몽의 변증법)이 보편적 진리로 자리 잡게 되면서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재적 지배자들은 절대적 권력을 형성하면서 세계적 특권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그런 압도적 힘을 동원해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기로 합의한 국가들의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와 언론을 기술-경제적 원리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재편하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이들은 힘겹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체제를 내부로부터 야금야금 침식해 들어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인식의 전환(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이루어내는데 성공했다. 정치와 문화의 대부분이 그 하부구조인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만들어내는 빈약한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발견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견고한 체제의 적대적 동반자였던 노동은 물론 정치와 문화의 힘도 약화시키고 변화시켰던 과정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세계화를 다룬 책들과 연구논문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공통되는 내용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이 그 앞에 ‘부정적’이라는 단어를 숨긴 기술-경제적 승자들의 일방통행이고 폭력적인 약탈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신용붕괴로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부정적 세계화는 세계경제의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그린스펀과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가 참회의 고백을 하게 만들었고, 막강한 시카고학파의 퇴장을 불러왔지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거기까지 만이었다. 그밖에 달라진 것이란 1%의 부가 더욱 늘었다는 사실과 지구온난화의 죄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경제를 털어낼 기회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에 몰린 거대한 부도 최종적으로는 1: 9로 재편되고 있다(미국은 미국혁명과 남북전쟁 전후에도 1대 9 사회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직면한 현재, ‘탐욕의 삼위일체’는 가벼운 경제에 맞는 체제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기 위해 거대한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의 몰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한 현상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사회의 변화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반영할 수 없는 개인들이 인터넷과 SNS로 몰려다니며 정치의 과잉을 초래함으로써 세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적 시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비정치의 중간에 위치’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체제를 기술-경제적 관점에 맞게 재편하면서,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들은 그들은 일체의 권위를 해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따르며 좀처럼 뚫고 들어가기 힘든 현실공간마저 하나씩 점령해나갔던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펼치고 있다. 거의 모든 공적 공간마저도 그들의 로고와 브랜드로 도배해 버렸다(특히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보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장자유주의 우파정부의 허상이 밝혀지면서 온갖 정책적 실족들이 속출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술-경제적 관점에 의해 새롭게 재편된 국가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도 계몽적 진보의 암묵적 지지자였음을 밝힌(마르크스가 고전경제학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진실이지만 그 반대로 여전히 진실이다) 울리히 벡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필적하는 《위험사회》에서 “심지어 외적으로는 국민국가의 사법권은 국제적으로 상호결합한 시장과 자본의 집중이라는 역사적 발전뿐만 아니라, 오염물질과 유독물질의 지구적 교환 및 그에 따른 보편적 건강위협과 자연파괴에 의해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국가행위의 결과가 지니는 불투명성 때문에 정치적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유권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네타기 유권자’로 변해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한 채 비판하는 사람들로 인터넷과 현실공간을 떠돌아다녔다.



문제는 이런 투표 불참자가 늘어나면서 최소한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면서 그 민주적 대표성이 흔들리게 됐다는 점이다. 즉 각 정당과 후보들은 조직과 돈을 동원해 ‘투표에 참여하는 열성적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필사적인 전투를 벌어야 했고, 그 부작용은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침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매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의제 선정과 패널 선정에 따라 여론 조작과 왜곡의 가능성이 심각한 문제도 떠올랐다(앤서니 기든스가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언급한 정치학에서의 ‘의제 설정 이론’을 참조하라. 그 단계는 유권자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중적 의제’, 의회와 주변 기관들의 논쟁 단계인 ‘정부 의제’, 입법화 단계인 ‘경정 의제’의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보도하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민적 정서’의 대부분을 대중매체가 선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중매체는 고가의 광고와 협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며, 정치 과잉과 투표 불참이라는 이중적 분화가 정형화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을 동원한 선거 개입이 가능한 세상이 됐고, 민주주의의 후퇴는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으며 과거의 망령인 권위주의 독재와 파시즘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정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근대이성의 총아인 과학에서 출발해 지배적 교리로 자리매김한 기술-경제적 진보가 왜 민주주의의 퇴행과 맞물려 돌아가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성장이 정체돼 새로운 빈곤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사회는 물론 가정 내부에서조차 혼란과 불화, 적대가 늘어나고, 사회의 분열이 회복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과학과 기술-경제적 진보의 본질인 잠재된 폭력성이 현실공간은 물론 사이버 세상이라는 하위정치의 영역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일베 현상’이 대표적인데, 이런 추세에 대한 울리히 벡의 설명에 따르면



한편에서 하위정치 행동의 영역은 민주적 규칙의 적용에서 면제된다. 다른 한편에서 심지어 내적으로도 정치는 체계적으로 고무된 외적 요구들에 따라 군주적 특성을 여전히 보인다. ‘정치적 지도력’은 행정부와 이해집단에 맞서 강력하고 독재적인 실행력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시민과 관련하여 그것은 평등한 것들 중의 평등한 것이 되어야만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처리해 주며 진지하게 고민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질문을 없애고 자문을 줄이기 위한 모든 행동에 가해지는 제약을 단지 반영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또한 민주적 정치체계의 구조에 내재해 있는 긴장과 모순을 표현한다. 즉 의회의 토론과 공동영역을 한편으로 하고, 의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평가받는 행정기관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관계. 특히 선거운동체계는 준민주의의적인 ‘임기직 군주’의 실제적 허구를 항상적으로 조장하고 재생하는 의사결정 당국들이 서로에 대해 이바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전의 정책들이 거둔 성공을 공언하건 비난하건 상관없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7.05 10:22 신고

    인간의 욕망이 만든 세상 막장까지 왔다는 느낌입니다.
    살기위해서 먹는 게 아닌 먹고 입고 즐기기 위해서 사는 동물적인 욕구가 결국의 파멸을 불러올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5 15:24 신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공멸로 몰고 갑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공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의 폭주를 정치로 막아야 하는데 이놈의 정치인들이 정반대로만 달려가니....
      정치 실패가 패인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민주주의의 나쁜 점만 부각되는 시대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2. 耽讀 2015.07.05 16:52 신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은 자신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진실을 왜곡합니다. 서민들이 수구기득권정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이유도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죠. 그리스를 보도하는 국내언론들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복지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부패때문입니다.
    갈수록 전세계는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만든 왜곡된 질서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낼 수 있느냐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힘도 세고, 자신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잘 합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분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8 신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와 민주주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와 민주주의가 최고에 이를 때 서민들이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워낙 책을 읽지 않으니 TV에서 해부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지금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특권엘리트들의 독점물입니다.
      국민은 자포자기 상태이고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7.06 08:55 신고

    오늘 쓰신글이 다른때보다 약간 길어 한번 읽고 이해하기란
    제 수준에서 어렵습니다
    두세번 정독해야 할듯 싶어 댓글 이정도로 마무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9 신고

      좀 어렵지요?
      원래 퇴고를 해야 할 초본이라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4. 바람 언덕 2015.07.06 10:05 신고

    지난 주말 아고2 오프모임 잘 가졌습니다.
    도령님 이야기 많이 했어요.뵙지 못해 정말 아쉽네요.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앞날도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 늙은도령 2015.07.06 15:02 신고

      제가 후기를 읽어보겠습니다.
      약의 내성 때문에 조금 힘든 상황이라....
      좋은 시간됐다니 다행입니다.^^

  5. 『방쌤』 2015.07.06 11:54 신고

    모두들 제대로 투표를 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지도자를 뽑아야지요,,,
    계속 이렇게 살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 늙은도령 2015.07.06 15:05 신고

      확실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그들이 국회나 청와대로 들어가면 또 로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지라...
      정말 어렵네요.
      민주주의가 너무 무너진 상태라 이것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민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6. base 2015.07.06 18:07

    세 세대간은 갈등은 그 어느 시대보다 심화된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지난 60여년동안 이 세대들이 경험한 삶이 너무도 다르니 그러지 않겠나 싶네요. 그리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더욱 더 잠식해가는 현실에서 격게되는 수 많은 현실적 모순에 우리가 갇혀있는게 아닌가요. 그래도 이번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과는 굉장한 의미를 시사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5.07.06 18:22 신고

      네,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차피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역사에 맡겨질 일이니 그것 때문에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제대로 된 참여와 선거,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네요.
      요즘은 뭐든지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힘겨운 세상이라....



언제부터인가 진보정당들이 중도를 표방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들은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처럼 ‘제3의 길(온화한 보수주의)’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며 우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도가 존재하는 양 사기를 쳤던 블레어와 클린턴이 한 일이란 진보좌파를 내부로부터 파괴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힘겹게 막아왔던 진보좌파의 마지막 역할마저 시궁창에 처박았다. 대처와 레이건이 보수우파의 영원한 목표인 정부의 민영화(작은 정부)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었다면, 블레어와 클린턴은 민영화된 기업들을 감시하는 업무마저 시장에 넘겨버렸다.



수없이 많은 통계와 연구들이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있고, 신빈곤층이 양산되고, 시장논리에 따라 잉여들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는 사실상의 과두정치로 접어들었고, 정치와 자본의 유착은 어디까지가 정부에 속하고, 어디서부터 민간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됐다.



2008년에 발생한 월가의 붕괴는 정치와 자본의 유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무력해진 진보좌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보수화된 세상에서 진보정당들은 우측으로 움직였고, 좌파정당들은 존립조차 불가능했다. 진보좌파들은 다투어 ‘중도’를 내걸었고, 창씨개명에 열중했다.





이렇게 정부와 정치의 영역에서 진보좌파의 핵심가치(시장의 탐욕을 억제해 보다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것)들이 사라지자 세상은 ‘1대 99사회’로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중하위 99%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밖에 없다, 노예로의 삶과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



사람들은 거대담론(이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만, 잠시만 멈춰 서서 세상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보수우파의 논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수우파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돌아가는 자유 시장이 신의 섭리라는 것으로 집약됐다.



이 때문에 보수우파들은 자유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부는 신의 섭리를 가장 충실히 따른 결과이므로 정당하다 한다(미국의 주류인 WASP의 청교도정신). 부가 독점되고 빈곤이 늘어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이므로 불평등이 늘어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마태복음에 나오는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될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더 가난해지리라'의 근본주의적 해석).





자유 시장이 신의 섭리이기에 이의 작동에 간섭하고 규제하는 것은 신의 섭리를 거역하는 행위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극단적 복음주의자가 자유 시장의 수호자며, 정부 업무의 민영화와  세금 감면, 노조 파괴 등을 옹호하고, 시장을 억압(개입)하는 진보좌파에 빨간색을 칠하는 보수우파와의 교집합이 형성된다.



뉴딜정책과 케인즈 경제학이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내내 보수 반동을 주도했던 뉴라이트(신보수주의자)들이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자유 시장을 축으로 한 기독교와 보수우파의 교집합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다른 교집합도 있는데 이는 별도의 글로 다룰 것이다).



최고 97%(영국)와 91%(미국)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했던 부자들이 이들의 교집합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음은 세삼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처럼 미국과 영국에서 성공한 보수 반동의 모델을 도입한 한국의 보수우파가 정권을 탈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투표율과 상관없이 한 표라도 많은 정당이나 후보가 정치적 승리를 독점한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조직을 동원할 능력(선거는 돈이다)에서 앞선 보수우파가 계속해서 승리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형교회와 새누리당의 교집합에 맞설 진보좌파의 표 집결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자꾸 우축으로 움직이려는 것이고, 이는 기독교와 보수우파의 교집합의 승리를 공고히 해줄 뿐이다. 비록 마르크스의 성찰이 상당 부분 유효하지 못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수밖에 없었을 때보다 작금의 현실이 더욱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지금처럼 진보좌파의 가치가 중요해진 적이 없었다. 민주주의가 대체 불가능한 체제로 굳어진 이래, 지금처럼 진보좌파의 역할이 중요해진 적이 없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부정적 세계화가 신의 자리를 대체한 지금처럼 진보좌파의 부활이 절실했던 적도 없었다.



정체불명의 ‘중도’를 얘기할수록, 철저히 실패한 ‘제3의 길’을 얘기할수록 노예로의 삶과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빼면, 하위 99%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방임의 수준에 이른 넘쳐나는 자유란 불평등과 불공정의 대가로 주어진 값싼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P.S. 블레어 내각과 클린턴 정부에 대한 보수학자들의 연구는 완승을 위한 중간단계 정도로 보고, 진보학자들의 연구는 진보의 가치가 시장으로 넘어가는 참담한 결론으로 가득하다. 블레어는 대처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었고, 클린턴은 부시에게 레이건의 유산을 확대해서 넘겨주었다는 것이 최근의 결론이다.



한국에서는 토인비의 <제3의 길>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지만, 실제적으로 <제3의 길>을 채택한 진보정부들은 모두 다 친재벌적 자유 시장을 도전불가능한 지위로 끌어올린 보수우파에게 승리의 팡라페를 울리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 <제3의 길>은 진보의 가치를 공동묘지로 보내는 결과로 귀결됐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엘리스 2015.06.14 17:39

    지금 탐욕의 정체를 말씀해주시고 계시는 거죠?
    탐욕의 고리들을 찾아서 근본 출발점을 깨우쳐 주시는 거죠?
    값싼 부스러기들로 눈 먼 저와 같은 대중들을 깨우고 계시는 거죠?

    누군가 자본주의의 폐해가 올해와 내년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도령님 글을 통해 깨우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14 18:14 신고

      자본주의와 보수우파의 자유 시장이 합쳐져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됐습니다.
      여기에 신의 섭리를 끌어들인 것은 기독교 우파이며, 이것이 하나의 교집합을 이루어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탄생했습니다.
      악마와 탐욕의 탄생이었지요.
      그 이후의 인류는 무한대로 타락했고 이기적인 됐습니다.
      도덕과 윤리, 정의와 상식, 도덕과 철학 등이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진실한 자유가 무엇인지도,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도, 평등의 중요성도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2. base 2015.06.14 18:46

    새로운 형태의 정교합작(일치)의 세상인가봐요. 그런데 그 누구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니 아마 신당을 차려놓고 신께 두손 모아 기도하며 계시를 받아 또 다른 정교일치를 보요주는듯 하네요.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게도 말이죠!!

    • 늙은도령 2015.06.14 19:24 신고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두 명의 대통령이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습니다.
      정치철학도 없는 탐욕의 결정체들이 나라를 통치했으니 메르스 대란까지 일어난 것이지요.

  3. 耽讀 2015.06.14 20:02 신고

    1%대 99%인데 왜 99%는 중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왜 99%는 1%는 뒤집어 엎지 못할까요?
    예수 가르침은 신자유주의와 부의 독점이 아닌데. 근본주의자들은 왜 부의 독점을 지지할까요?
    통탄할 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14 20:30 신고

      99% 중에도 보수가 있고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진실을 알려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늘 그곳에서 생깁니다.
      보수우파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4. 가난한여행자 2015.06.15 02:40 신고

    잘읽고 느끼고 갑니다
    20살때 젊은시절 '''루소의 불평등 기원론''' 을알고 한사회에 불평등에 대한 생각 했는데

    2015년 대한민국에서 상식이전에 금전적이득을 위한 집단이 나라를 움직이는 한주역이라는데 신기하네요

    고도의 개인 문명 (인터넷) 발달한 나라에서 중세 암흑시대 일이 벌어지네요

    유령여왕 박근혜 ,그를 조정하는는 실질적 귀족권력들, 그이득 보려고 모여든 기사, 종종 문필가들
    그리고 그이론 취한 대중들

    박대통령 당선되고 친구들 모임때 '''' 우리나라는 중세 암흑시대 재현될거야'''
    그리고 그영향은 한시대가 고생해야 극복 될수있어'''


    내 예언이 들렸으면했는데,,,,

    대한민국은 현재 아마겟돈이네요 .....정신적 공황이네요

    슬프네요....

    • 늙은도령 2015.06.15 02:45 신고

      보수정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시장자유주의 우파와 기독교 근본주의자, 좌파에서 전향한 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이명박근혜 정부입니다.
      친일파의 후예라는 것보다 이것에 초점을 맞춰야 그나마 사람사는 세상의 일부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5. h2 2016.07.30 11:35

    기독교 근본주의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아십니까? 글을 읽어보면 근본주의가 아닌자들을 근본주의로 덧씌워 말하는 의도가 뭔지 궁금합니다 정확히 기독교 근본주의와 더불어 미국 근본주의 역사도 검색을 한 후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늙은도령 2016.07.30 14:31 신고

      <아메리칸 그레이스>는 100대 석학에 포함되는 로버트 퍼트남이 쓴 책으로 1000페이지가 넘습니다.
      미국의 기독교를 다룬 것이지요.
      기독교 근본주의는 지독히 많이 경험했고, 책으로도 많이 읽었으며, 무지하게 자세히 알고 있으니 새로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기독교 근본주의들이 쓴 책을 몇십 권이나 읽어 그들의 정치적 성향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종교 관련해서, 특히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는 박사학위 받을 만큼 공부했습니다.
      님이나 제대로 공부하시지요.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


                                                                                        ㅡ 노엄 촘스키의 발언





정부의 방역실패와 대형병원들의 형편없는 대처 때문에 의료체계에 구멍이 뚫리고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확진환자들과 결과를 기다리거나 강제‧자가격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국민은 패닉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집권세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새누리당의 당대표 김무성과 원내대표 유승민이 메르스 대란을 이용해 의료영리화의 군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이 2차 숙주 역할을 하고 있는 시점에 나온 이들의 파렴치한 발상은 유승민이 “원격 진료 의료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국가재난으로 승격된 메르스 파동의 혼란을 틈타 유승민이 물꼬를 트자 새누리당 당대표인 김무성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메르스 사태를 언급하며 “이럴 때 원격 의료 시스템이 시작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발언함으로써 의료영리화로 가는 파이프 라인을 설치해버렸습니다.



현대의료체계를 비판하는 수많은 책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첨단의료장비의 사용으로 인해 모든 치료의 시작이자 가장 효율적인 의사와 환자의 문진이 무력화됐다는 것입니다. 병원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면서 문진시간은 3분 이하로 떨어졌고, 고가의 장비사용과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가약을 처방하는데만 혈안이 돼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이런 연구들은 의료영리화의 핵심으로 떠오른 원격진료가 의료기록이 축적된, 그래서 충분히 상태를 예측하기 쉬운 만성질환자의 혈압과 혈당 등을 파악하고 기본적인 수준의 문진만 가능할 뿐이라며, 원격진료를 수천 년에 걸친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메르스 같은 전염병은 원격진료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전염병을 원격진료로 대처하면 정확한 검진도 할 수 없고, 주요 검사도 진행할 수 없으며, 전염병 확산의 진원지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필연적 동반자인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밝혔습니다. 독재 도지사 홍준표처럼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을 폐쇄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공공병원을 늘려서 언제 반입될지 모르는 전염병에 대처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전염병이 확산되면 확진환자와 격리자를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병실과 격리시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병원이 영리화되면 이런 병실과 시설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전염병이 매달 매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엄청난 유지비용을 지불할 민간병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메르스 확진환자와 밀착접촉을 하거나 확진환자 발생 병원에 다녀간 4천 명(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자자격리되는 후진국형 처방밖에 할 수 없는 것도 이들을 수용하고 격리할 대한민국의 공공의료시스템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나가 대통령의 패션쇼에 지불할 비용은 넘쳐나지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투입될 비용은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니, 이명박 정부가 허공에 날려버린 혈세와 후대가 책임져야 할 부채(이명박의 비용)가 거의 200조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부자에게 불리한 종부세는 유명무실화되고 담뱃값 인상처럼 가난할수록 손해보는 역누진적 증세나 유리지갑 털어가기가 만연하는 것입니다.    

   




4대강공사나 자원외교, 방산비리, 경기활성화 대책, 대통령의 해외방문, 조중동과 종편, 지상파3사, 보도채널, 관변단체 등에 제공되는 정부광고와 협찬 등에 들어간 국민의 혈세로 구축했으면 됐을, 국가 차원의 공공의료시스템이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홍준표가 밀어붙인 진주의료원 폐업은 공공의료시스템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집권세력의 한 축인 새누리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원격진료 운운하며, 메르스 확산의 숙주가 된 대형병원의 손해만 보충해줄 의료영리화의 군불을 뗀다는 것은 보수정당의 목표인 의료민영화를 확대하기 위한 예정된 수순입니다. 이로써 비어있던 메르스 5적(대통령, 청와대, 복지부, 병원협회)의 마지막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12월 21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자리에서 해방된 이후 60년이 흘렀음에도 국방주권을 의미하는 전시작전통제권도 확보하지 못한 채 주한미군 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예비역과 현역 장성들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6.11 07:48 신고

    참으로 양심도 없는 없는 종자들입니다.
    이 판국에 의료민영화라니.... 법정이 아니라면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에도 못하게....
    눈에 보이는거 라고는 교과서 국정화, 교육감 임명제 그리고 의료며 교육이며 철도며 다 민영화하고 싶겠지요.
    인간 말종들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11 16:23 신고

      네, 보수정부는 민영화를 위해 움직입니다.
      정부 내 기업 영역 확대를 위해 정부의 역할을 민영화하는 것이 보수정부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2. 耽讀 2015.06.11 08:23 신고

    집이 진주입니다.
    의료원이 집에서 10분거리도 안 됩니다.
    볼 때마다 마음이 찢어집니다.
    영리병원은 대한민국 마지막 꿈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11 16:25 신고

      진주의료원 폐원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무시하는 보수 꼴통들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홍준표는 천벌을 받을 놈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6.11 08:39 신고

    철면피들이고 파렴치한들입니다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들입니다

  4. 뉴론♥ 2015.06.11 09:31 신고

    요즘 메르스가 확산이 되었네여
    저도 메르스 관련 글을 오늘 올렸는데 메르시 실시간 관련 정보 어플을
    올렸네요

  5. 『방쌤』 2015.06.11 12:19 신고

    아.. 정말 어떻게 저럴수 있을까요
    사실 별 기대도 없었지만..
    사고만은 치지 않기를 바랬거든요

    정말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 늙은도령 2015.06.11 16:28 신고

      원래가 그런 목적을 가진 자들이 보수우파입니다.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정부 업무의 민영화입니다.

  6. 프리뷰 2015.06.11 12:59 신고

    나라가 빨리좀 안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계속해서 악재에 시달리고 있네요;;

  7. 공유의 플랫폼 2015.06.11 14:48 신고

    메르스니..의료 민영화이니..참 머리는 잘 쓰는것 같아요.

  8. 에쏘 2015.06.12 20:05

    진주의료원 폐업 보고서 홍준표는 이제 안 되겠구나 했는데 도지사라니..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도 급식 문제가 생각보다 쉬이 사그라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필코 주민소환으로 끌어내렸으면 좋겠어요. 병원에서 일하는데.. 요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병원체랑 싸워서 될 일이 아니라 몹쓸 사람들하고부터 먼저 싸워야되는 게 아닌가..... 하고..

    • 늙은도령 2015.06.12 22:24 신고

      원래 병원이란 치료만이 아니라 병의 원인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을 죄인처럼 몰아붙이다 관리가 불가능해지니까 이제야 병원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역겹기만 합니다.
      님의 성찰처럼 병의 근원을 잡아야 합니다.
      사회를 부패와 반칙, 비리가 넘치는 곳으로 만드는 자들과의 싸움에 잠시라도 소홀하면 그 피해는 절대다수의 서민에게 돌아갑니다.
      매우 중요한 것을 지적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9. 울티 2015.06.12 22:55

    부끄러움은 인간들이나 느끼는 것이지요.. 인과응보,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날겁니다 ^^

    • 늙은도령 2015.06.13 00:27 신고

      이런 대란 중에도 저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
      보수정당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습니다.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자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학을 정당화하는 기본적인 도덕적 주장 가은데 하나, 즉 개인의 이윤 추구가 동시에 공익을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의혹에 싸였고 사실상 거짓으로 밝혀졌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인용  




미셀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는 현대성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그들이 밝힌 현대성이란 특별한 정형이 없지만, 시장경제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소의 통치로 최대의 경쟁을 이루어내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을 말합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학파가 정립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국가가 시장경제(수출 포함)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부분을 시장 중심으로 재구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부는 국가 주도의 독점경제(히틀러의 우파 전체주의와 스탈린의 좌파 전체주의)를 막기 위해 시장참여자 사이의 완전경쟁을 극대화하도록 법과 제도,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면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정부가 할 일이란 시장경제가 가장 잘 돌아가도록 국가와 사회, 기업과 개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시장경쟁을 방해하는 것은 공권력을 동원해 제거하는 것입니다. 국가 전체를 시장경제에 가장 적합한 조직으로 만들면서도, 국민에게 기본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된 것입니다. 



관방학(내치학)과 국가이성 및 17~18세기의 정치경제학(고전파 경제학)이 적절한 조합을 이루면서 탄생한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 질서자유주의나 사회적 시장경제라 명명되는 것도 '최대의 경쟁을 위해, 최소의 개입을'이라는 구호가 국가의 부흥과 국민의 삶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거치면서 영미식 신자유주의로 바뀌닙니다. 이때부터 국민의 안전과 소득, 복지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가능한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따라 모든 것이 정열된 경제국가를 만드는 것으로 축소됩니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과 더 이상 사회의 도움은 없다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도와주던 보편적 복지는 사라지고, 소비자로 파편화된 국민은 시장경제에 종속된 채 끊임없는 경쟁과 퇴출을 반복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것이 일반화됐습니다. 





정부의 복지는 시장경제에서 탈락한 개인을 최단 시간 내에 시장경제에 재진입시키기 위한 재교육을 제공하고, 완전한 패자는 최소한의 삶만 보장해줍니다. 과학과 기술공학의 발달로 전 지구적 시장이 등장함에 따라 영토 내에서의 배타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은 더욱 축소됐습니다.



기술공학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를 촉진시켰고, 이에 따라 자본과 초국적기업은 노동과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전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국민 전체에게 기본적인 소득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 결과 부의 불평등이 계속해서 커졌고, 정부는 보편적 복지에 들어가던 비용을 시장경제의 극대화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정부는 또한 완전경쟁을 방해하는 것들을 규제 완화,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관세 철폐, 초저금리, 보조금 지급금지, 노조의 해체, 조세 개혁 등과 같은 방식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고, 보편적 복지는 선별적 복지를 축소됐습니다. 생존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역량을 높이는 것뿐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업무도 민간으로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통치술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부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양산했고, 완전경쟁이 불평등경쟁으로 바뀌었고, 저축이 소비(빚을 내서라도)로 대체됐고, 부와 빈곤이 대물림되는 세습자본주의가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부의 재정보다 훨씬 많은 부를 축적한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압도적인 힘은 시장경제에 반하는 민주주의의 요소들(조세정의에 의한 부의 재분배, 신분이동의 가능성 제고, 공정한 경쟁과 기회 제공 등)을 제한했고, 그 결과 과두정치에 가까운 최소의 민주주의가 보편화됐습니다.





마침내 새로운 형태의 차별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완전경쟁의 시장경제에 편입되는 것과 퇴출되는 것으로 1차 차별이 작동하고, 소득 능력에 따라 2차 차별이 작동하고, 소비 물량에 따라 3차 차별이 작동하고, 가족 전체의 소비 여력에 따라 4차 차별이 이루어집니다.



자유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시장경제 의존성이 높은 제한된 자유여서,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치적으로 확장된) 자유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시장경제에 참여해야 하는 제한된 자율성에 불과합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란 소비할 수 있는 자유, 즉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됐습니다.



이로써 생존선 이하의 삶의 자율성만 지닌ㅡ다시 말해 가난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잉여들이 양산됐고, 그들 중 일부는 시장경제에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거나, 시장경제에 위험한 군으로 분류되고 배제된 상태(도시의 게토, 난민수용소, 열악한 복지시설, 슬럼가 등)에서 총체적 감시를 받는 존재로 버려집니다.





선별적 복지란 이런 이유들로 해서 시장경제 탈락자에게 주어지는, 그래서 생존을 위한 소비 외에는 단 한 푼도 저축할 수 없는 최소한의 복지를 말합니다. 국가업무의 민영화와 함께, 국가의 역할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이 시장경제를 먹여 살리는 최후의 먹거리가 됐습니다.



석유(만능의 제품인 플라스틱)를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가 나올 때까지 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될 것이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복지와 공적 부조가 줄어들거나 최소화됨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도 보장돼지 않습니다.



홍준표가 강행한 의무급식 중단과 오세훈 등이 주장하는 선별적 복지는 이런 과정을 통해 강화됐고, 최소한의 복지라도 받기 위해 저소득층은 보수정당을 지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제도화된 가난이 양산됐고, 소득원을 찾을 수 없는 개인들이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노예로 전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의 무서움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가능한 시장경제 자본주의국가를 만들어놓으면 개개인이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인과 특권층을 비난해도 최소의 통치만으로 기득권의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엄청날 정도로 자유가 늘어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소비로 유혹되고 감시받는 자유(시장 의존적 자율성)일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에서 볼 수 있듯, 부분적인 교정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목숨을 지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소비자를 키우려는 것입니다. 생산은 자동화되고 외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얼마든지 아웃소싱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어, 돈이 없으면 생필품도 기본적인 서비스(특히 의료와 보건)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넘치도록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지독할 정도로 시장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기 이전에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 구축한 체제의 노예부터 되는 것입니다(왜 가난한 사람들은 보수정당을 찍을까-1)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ppp 2015.06.11 11:37

    좋은글입니다 항상 감탄하고 읽고있습니다 퍼갑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상위 10%에 부가 집중돼서 소비의 주체인 중하위층 90%의 소비 여력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기술공학과 소프트웨어의 발달, 자동화와 후발국의 저임금노동으로 인해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졌지만, 중하위 90%의 소득이 그것보다 더 떨어져서 경제위기가 도래했습니다.





상위 10%가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중하위 90%의 소비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소비를 늘리는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중하위 90%의 소득이 늘어나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직원의 임금을 인상하는 것도 중하위 90%의 소비 여력을 늘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대침체에 빠져 있는 현실에서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똑같은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화 때문에 무한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이 계속되면 국가의 재정과 기업의 가격경쟁력(기술경쟁력의 차이는 거의 없다)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지구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에 어떤 국가와 기업이라고 해도 나 홀로 이루어지는 소득 증대 성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루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의 재분배를 단행하면 최소 몇 세기는 경제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온갖 통계수치들이 나타내는 것처럼 상위 10%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중하위 90%의 부는 그에 비례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장의 대가를 독식했지만,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 부의 불평등이 초래한 폭력시장의 확대와 새로운 형태의 인종차별(특히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도의 인종차별) 같은 사회적 비용(누진적 과세도 사회적 비용을 받아내는 것이다)은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 차원의 법인세 인상과 고율의 누진적 부자증세 없이 현재의 경제대침체와 지구에서 일어난 6번째 종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경제구조가 잘못됐던, 정치구조가 잘못됐던, 사회구조가 잘못됐던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들의 부를 이전하는 것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석유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없다면(언젠가는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30~40년 이내에는 그럴 것이 없다) 인류 전체가 지닌 부를 나눠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중하위 90%에게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라는 것은 흡혈귀의 살인행위와 다름없습니다.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왜곡된 언어로 프레임이 설정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해고된 실업자가 새로운 일자리(이전 직장의 임금과 비슷한)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됐을 때만 유효합니다. 그 외의 경우에는 자본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살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가 형편없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일수록 노동시장 개혁은 소득 증대에 맞춰져야 하고, 그와 동시에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부의 재분배를 단행해야 합니다. 중하위 90%의 목을 조이는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의 폭주와는 정반대로 가는 것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지금까지 경제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방법은 다 시도해봤지만 그 결과가 작금의 경제대침체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더 길로 가야 하고, 그 길로 가서 성공한 사례를 찾아야 합니다. 2008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복지선진국들은 분명한 성공사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성공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방법입니다. 경제의 선순환으로 접어들기 위해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논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노동시장 개혁 같은 모든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후생을 하향평준화하는 노동유연화는 미국과 영국, 일본과 독일 등에서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정책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사상 최고의 내부유보금을 싸놓은 기업들에게 또 얼마나 많은 내부유보금을 쌓아주려고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수많은 국가에서 실패로 드러난 정책을 밀어붙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을 개혁하기 전에 중하위 90%의 소득 증대와 복지 및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한 로드맵부터 내놓아야 합니다. 부를 독식하는 동안 나누려 하지 않고 위험만 떠넘겨 온 자본과 기업을 위해 지난 70년을 희생했으면 충분합니다. 이제는 중하위 90%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을 중동으로 내몰 생각만 하지 말고, 의무급식을 중단할 기회만 엿보지 말고, 복지사각지대를 늘릴 정책만 강행하지 말고,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할 압력만 가하지 말고, 중하위 90%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로드맵(보편적 차등복지도 있다)부터 제시하십시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4.08 06:49 신고

    노동시장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지요.이사람들은 지원을 해고하기 쉽도록 하는 말도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하지요. 언어의 유희로 서민들의 눈을 감기고 GNP니 GDP어쩌고 하면서 허위 중산층의식을 심이주고.... 결국은 부자들을 위한 재벌들을 위한 기득권 유지를 위한 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서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08 18:31 신고

      저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닥질 때문에 조금씩 서민들이 깨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은 언론 때문에 그 파괴력이 최소화된 상태인데, 이를 키워나갈 수 있는 글을 쓸 필요가 잇습니다.

  2. 耽讀 2015.04.08 07:19 신고

    박그네 입에서 '재벌개혁'이라는 말을 들어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왜 저들은 노동시장 개혁은 하면서 재벌개혁은 안 하죠?

    • 늙은도령 2015.04.08 18:32 신고

      임기 동안은 안 할 것입니다.
      박에게는 70년대 지식과 신자유주의만 있습니다.

  3. 뉴론♥ 2015.04.08 07:48 신고

    노동시장이 좋아 질거라는 생각은 해번적이 없네요 어디 일한 자리나 있었으면 하지요

    • 늙은도령 2015.04.08 18:33 신고

      국민이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선진국은 그렇게 좋아졌습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04.08 08:56 신고

    상위 1%,10% 소득점유율 이야기 하면
    또 새xx 당은 미국을 보라 하겠네요 ㅡ.ㅡ;

    • 늙은도령 2015.04.08 18:33 신고

      우리는 미국의 나쁜 점만 배워옵니다.
      좋은 점은 절대 가져오지 않습니다.

  5.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2015.04.08 10:26

    자신들의 정권입지와 기득권층을
    더욱 강화하시기 위한 노동개혁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군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드림

    • 늙은도령 2015.04.08 18:34 신고

      노동유연화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를 무력화시키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6. 바람 언덕 2015.04.08 10:41 신고

    언발에 오줌누기...
    딱 그 짝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08 18:35 신고

      노동유연화는 스웨덴도 노동조건을 나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 노동유연화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고 있습니다.

  7. 노동시장의 개선을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

    • 늙은도령 2015.04.08 18:35 신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인류문명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를 보면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불확실성이 극에 다른 시대인지를 알 수 있다. 바우만이 말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는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갤브레이스는 주로 주류 경제학의 입장에서 시대의 혼란을 얘기했다면, 바우만은 종합적 차원에서 시대의 혼란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홀로코스트와 현대성》에서 18~19세기의 근대이성이 창출한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인 현대성의 문제를 성찰한 바우만은 《액체근대》와  《유동하는 공포》를 통해 인류의 현대성이 어떤 상태에 이르렀는지 뛰어난 성찰을 보여줬다. 특히 바우만의 상징으로 자리한 《액체근대》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와 함께 현대를 종합적인 차원에서 파헤친 탁월한 성찰들로 가득하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런 수준의 성찰에는 절대 이르지 못한다.  



바우만이 현대의 특징으로 액체를 선택했는데 이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격언, "모든 견고한 것들이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견고한 체제를 구축하며 무섭게 질주하지만, 노동생산성이 발달할수록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 때문에 견고한 체제가 내부로부터 녹아 무너지며, 최후에는 기체처럼 자본주의의 체제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바우만은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 중에서 모순과 오류가 있는 부분들은 제거한 채 자본주의라는 견고한 체제가 녹아내려 물처럼 유동하는 상태로 바뀐다고 주장했다. 부정적 세계화가 구축한 전 지구적 시장이란 첨단산업으로부터 1차산업과 소작농 및 물물교환까지 거의 모든 경제 형태가 하나의 액체 덩어리처럼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견고한 체제가 아닌 유동하는 특징이 있는 불확실한 체제의 형태로서. 



오늘날의 상황은 선택하고 행동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혐의를 (옳게 혹은 그릇되게) 받고 있는 족쇄와 사슬이 근본적으로 녹아버린 데서 발생했다. 질서의 경색은 인간 주체의 자유가 만든 인공물이자 침전물이다. 이 경색은 '브레이크를 푼' 전반적 결과이며 규제 철폐, 자유화, '유연화', 증가된 유동성, 재정·부동산·노동시장을 풀고 조세 의무를 덜어준 결과이다. 



결국 바우만의 성찰도 미국식 신자유주의(무정부적 자유주의) 40년이 장구한 세월 동안 구축돼 왔던 긴밀히 얽혀 있고 상호 이해관계로 단단히 묶여 있던 관계들이 모두 다 무너져버린 데서 출발한다. 공간적 거리를 속도로 극복해버린 전기·전자·정보통신 기술, 제품의 소형화에 성공한 무게 없는 제조업, 거대한 선박을 대체하기 시작한 비행기와 고속열차, 자동차 등의 등장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체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중후장대한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 시대에는 자본과 노동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했지만, 자본은 노동이 필요했고, 노동은 자본이 필요했다. 이들은 하나의 틀 안에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거대한 공장을 중심으로 '역사와 자본, 경영과 노동이 전부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좋던 싫던 무한한 진보와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처럼 결속되어 있어야 했다. 


                                                             사물인터넷의 세계



하지만 혁신과 향상, 진보를 뜻하는 것이 '더 작고, 더 가볍고, 더 쉽게 이동 가능한 것들'을 뜻하게 됨에 따라 자본은 더 이상 노동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가 도래함으로써 20세기까지의 근대성이 현대성으로 변환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자본은 여행가방에 서류케이스, 휴대폰, 노트북, USB, 현지 법인만 있으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어디로든 가볍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잠시 머물 수 있고, 필요가 생기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그것은 강제적이고 강박적이고 지속적이고 멈출 수 없는, 영원히 미완에 그치는 '근대화'이다. 창조적 파괴(혹은 이 경우에는 파괴적 창조이기도 한)를 향한, 저항하거나 근절하거나 가라앉힐 수 없는 갈증이다. '새롭고 향상된'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개간'하는 근대성, '해체' '제거' '단계적 폐지' '합병' 혹은 '대규모 감원'의 근대성, 이 모든 것은 미래에도 똑같은 일, 즉 생산성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여력을 확대하기 위한 힘이다.



이런 현대성의 목표는 근대성의 목표와 다르지는 않다. 단지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 그 방법론과 존재론이 달라진 것이다. 방법론은 가벼운 경제의 본성인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다. 존재론은 견고한 체제에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다 끊임없이 유동하면서도, 어떤 견고한 것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액체의 특성을 지닌 체제로 변함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우리의 존재 방식과 근대적 형식의 변환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의 분업화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든 포디즘과 세계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포스트포디즘의 세계적인 생산체제 분업화가 만들어낸 중후장대한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가 막을 내리고, 반도체와 스마트폰, 인터넷과 SNS처럼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파편화된 대중이라는 고전적 의미를 넘어 소비하는 시민으로서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적 개인으로 변질됐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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