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집회가 폭력으로 치달아 불법이라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야만공건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부당한 공권력의 집행에 맞서는 시민의 저항권이 최근에 정립된 개념이라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정치적 자유와는 달리 시민의 저항권은 인류 문명과 거의 동시에 정립된 개념입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자시민으로 한정됐다는 점에서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구별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자유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도 근대에 이르러서입니다. 노예라 해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은 보장됐지만, 현대적 의미의 자유는 근대국가와 거의 동시에 정립된 정치사회적이고 법률적인 개념입니다. 그 바탕에 저항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천부인권과 대부분의 국가가 헌법으로 보장하는 기본권은 거의 다 피통치자들의 혁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토크빌의 《프랑스혁명과 앙시엥레짐》과 《미국의 민주주의1, 2》,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을 비교분석한 아렌트의 《혁명론》 등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기본권은 수많은 피통치자의 목숨과 희생, 피와 땀, 세금을 내고 전쟁에 참가하는 대가로 회득한 것입니다.



국가에 절대주권을 (최초로) 부여한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도 자신의 생명이 위협당할 경우에는 국가를 부정하거나 전복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동양에서는 맹자가 ‘백성이 제일 귀하고, 그 다음이 나라고, 가장 가벼운 것이 왕’이라며 ‘왕이 잘못에 대해 간언을 듣지 않으면 바꾸라’고 함으로써 혁명권과 저항권을 인정했습니다.



자유주의자인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1, 2》에서 당시까지의 역사가 승자와 강자에 의해 저질러진 대량학살과 국제전쟁범죄의 역사였다며, 향후의 세상이 절대다수의 약자들이 주인이 되는 열린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는 또한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뽑는 것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실정할 때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을 놓고 미셀 푸코와 노엄 촘스키가 대담(《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을 하면서 푸코는 최소한의 폭력만, 촘스키는 그것이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면 상당 수준의 폭력도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정치철학자와 사회학자들 중 대다수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통치자에 대한 피통치자의 폭력적(비폭력이 우선하지만) 혁명과 저항을 인정하는 체제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헌데 새누리당과 보수언론, 종편, 지상파3사, YTN과 연합뉴스TV 등이 세월호 집회가 폭력적으로 변질돼 광우병 집회(정확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집회) 때와 비슷하다고 왜곡된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실상은 다릅니다. 경찰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차벽(명박산성보다 심했다)을 치는 불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사복경찰들(폭력행위를 유도했다는 보도도 있다)은 유족의 눈에 캡사이신을 뿌리고 문지르고, 물대포까지 쏘는 등 초법적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 '현존하고 명백한 위협'이 아니면 어떤 표현과 집회의 자유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헌법상의 권리와 민주주의의 핵심인 기본권에 해당하는 권리행사를 아무런 권한도 없으면서도,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가상해 세월호집회를 불법으로 규정까기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헌법과 실정법 위반이며 오로지 상대적 힘이 우위를 바탕으로 독재에 협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집회를 제압하는 과정에서도 압도적인 공권력이 저지르는 인권침해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집회에 동행한 인권변호사까지 강제연행했을 뿐만 아니라, 속전속결로 구속영장까지 신청(대부분 기각되고 두 명만 발부됐다)하는 등 유신독재시대의 행태를 재현했습니다. 경찰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무시했기 때문에 폭력적인 저항을 하는 것은 피통치자의 권리이자 정치적 자유입니다.



현재 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폭력경찰의 잔인한 무력진압을 서울발 뉴스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외신들도 세월호 1주기 집회와 성완종 리스트가 맞물리면 박근혜의 퇴진도 가능하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외신만 봐도 경찰의 폭력성과 위법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집회 참가자가 폭력으로 맞선 것은 시민의 저항권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세월호가 지겹다가나, 세월호집회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글들을 보면 이들의 인식이 얼마나 천박하고 빈민주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와 양심, 진실과 상식, 자유와 민주주의보다 기득권에 유리한 질서만을 말합니다. 진정한 무임승차자들이 이들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질서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때(공권력도 마찬가지다!)만 가능한 것이며, 집회의 자유는 타인의 불편함을 전제로 한다는 것까지 무시합니다.





우리가 시민의 권리과 기본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세월호 집회처럼 불의한 권력에 맞서 피와 땀, 목숨을 바친 투쟁을 통해 이룩한 것들입니다. 그들이 세월호 집회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의 자유와 권리는 세월호 집회 참석자들 같은 분들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쟁취한 것들인데, 세월호 집회를 욕하는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넘어 공권력의 야만적 폭력까지 옹호합니다.



수천 년에 걸친 피통치자들의 저항과 투쟁, 희생을 통해 힘겹게 쟁취한 정치적 자유와 천부인권,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각종 복지제도들을 공짜로 누리는 무임승차가 부끄러워서인지, 세월호가 지겹다거나 집회가 저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 즉 평등한 자유의 실현이 근본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불의한 정부에 대한 저들의 저항과 투쟁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시민의 혁명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이고, 당신들의 아이들이, 그 이후의 아이들이 누려야 할 민주주의와 기본권, 정치적 자유와 사회경제적 평등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부의 불평등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가 가능해진 것 때문에 발생했는데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니 분노가 치밀 정도입니다.





정부가 차벽을 설치하고 국제기준과 헌법 및 민주주의에 벗어나는 진압이 이루어질 경우 정당한 공권력이 아닌 폭력집단의 만행이 되기 때문에, 이에 맞싸우는 것은 민주주의와 헌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불법을 바로 잡는 데 정의의 폭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실제로 현대의 민주주의는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전제 하의 법집행이 폭력적 수단을 허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이는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평등하고 공정한 정의의 폭력입니다. 경찰과 용역, 사복경찰의 불법적이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 죽음을 각오한 저항만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피통치자들의 권리와 자유를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오늘에는 법정에 끌려간 사람이 내일에는 위대한 혁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이 현대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은 현 정부 하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자식사랑이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정부가 진상규명을 꺼려할수록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알리고 조속한 인양과 실질적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합니다. 독재에 맞서려면 제2의 4.19혁명이나 6.10항쟁 이상의 것들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집회 참석자보다 많은 경찰을 동원하고, 차벽을 설치해 인간의 생리현상까지 불허한 경찰의 폭력진압이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현 정부는 출범부터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정통성이 없었는데, 이제는 독재시대에나 가능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집회에서 발생한 폭력은 불법이 아니라 야만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에 근거한 것입니다. 



정당성을 상실한 정권은 유효기간이 지난 불량식품과 같습니다. 정부가 폭력으로 국민을 제압하려 한다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걸음 물러날 때마다 보낼 수 없는 아이들의 영혼은 그만큼 멀어지고, 자유와 천부인권 및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희생으로 이룩한 헌법상의 기본권은 축소됩니다, 아직도 맹골수도에 갇혀 있는 아이들의 슬픈 영혼처럼. 



지금은 제2의 4.19혁명이나 6.10항쟁 이상의 것들이 필요한 시기이지, 독재권력의 부패한 폭정에 자발적 복종을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닙니다.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세상은 돌아간다 했는데 작금의 대한민국이 그러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4.24 07:38 신고

    세월호 유가족만 아니라 장애인도 잡았습니다. 박그네정권이 어떤 정권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박그네는 스스로 종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시민만 저항할 수 있습니다. 독재정권을 끝낼 수 있습니다.

  2. 달빛천사7 2015.04.24 08:55 신고

    세월호는 시간이 지나도 생각보단 오래가는 사건이네여 이유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여

    • 늙은도령 2015.04.24 10:12 신고

      언제나 기억되는 사건이 있기 마련입니다.
      9.11테러도 있지만 프랑스혁명도 있지요.
      예수의 탄생도 있고 부처의 득도도 있었지요.
      어떤 것들은 절대 잊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4.24 10:42 신고

    저렇게 하다가는 거꾸로 물대포를 맞을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24 10:45 신고

      이명박근혜 7년 4월 동안 정말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는 이런 반민주적 행정은 사라져야 합니다.

  4. 바람 언덕 2015.04.24 11:05 신고

    이와 관련해서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젊은 세대들의 에너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데
    민주주의를 글로 배운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많이 아쉽습니다.
    90년 대 이후로 학생운동권이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회변동의 동력이 많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젊은 세대가 폭발해야 혁명이든 항쟁이든 일어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24 18:14 신고

      지금 젊은이들이 많이 배우고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동안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베로 활동하느니 저항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고, 특히 고등학생들은 부글부글 끓고 잇습니다.

  5. 세이렌. 2015.04.24 15:39 신고

    윗 사람들이 언제나 문제네요..

  6. 참교육 2015.04.24 16:00 신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고는 얽히고 설킨 현실을 바꾸가는 어려울 듯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4 18:23 신고

      지금은 혁명적인 것들이 필요합니다.
      정말 절호의 기회입니다.

  7. Konn 2015.04.25 04:05 신고

    프랑스 혁명이 아무런 폭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이후에 이루어진 무수한 혁명과 시위, 집회에서 나타나는 폭력성, 심지어 현재에서도 그 발전된 시민의식과 진보한 정치, 사회시스템을 가진 서구에서도 집회니 시위니 하면 흔하게 보이는 것이 쇠빠따와 마스크, 그리고 불타는 쓰레기통이나 자동차인데 한국에서만 유독 폭력성 가지고 문제삼고 있죠.

    동시에 국가에서 유일하게 공인된 폭력인 공권력이 반드시, 언제나 올바른 폭력인 것도 아니라는 점도 사실이고요. 이번 강화문에서 경찰이 벌인 '불법'행위는 이미 증거까지 남아있죠.

    • 늙은도령 2015.04.25 09:04 신고

      그럼요, 이번 세월호 집회는 폭력집회가 아닌 저항권을 행사한 정당한 방어였습니다.
      그것에 대한 근거를 찾아서 유족들에게 힘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8. Cong Cherry 2015.04.26 00:50 신고

    오늘 면허시험장에 가서 수업을 듣는데,
    강사의 첫 질문이 "당신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느냐?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느냐?" 였습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둘이 "선진국 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강사가 단호하게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고 했습니다.
    미디어에서 항상 좋은것만 보여주니까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거라고요.
    세월호....
    침몰하는 배에 선장이 살겠다고 수많은 생명을 나몰라라 하는 나라라고...

    사고는 일어났는데 국가에서는 항상 제자리걸음...
    헛헛한 마음 높은자리에 있는 그들이 먼저 나서서 위로하고 밝혀야지 어제 그 자리를 또 걷고 있으니,
    누군들 가만히 앉아만 있겠나요...



    • 늙은도령 2015.04.26 02:17 신고

      선진국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박에 없지요.
      유럽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정권이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도 폐쇄될 수 있습니다.
      몇 년에 걸친 조사와 토론을 거쳐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고 책임자 처벌을 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나라의 틀을 바꿉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단순한 예로 소방차의 앞을 막으면 무조건 처벌됩니다.
      벌금도 엄청나게 많고요.
      스쿨버스의 경우에도 절대 추월이 불가능하고 스쿨버스가 정지하면 양쪽 차선에 있는 차도 멈춰야 합니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면 과징적 벌금이 부과되고 이것을 내지 않으면 출국도 하지 못합니다.
      운이 좋아 이민갔다고 해도 벌금회수가 이루어지고, 이것을 거부하면 추방당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면에서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자유와 방임도 구별 못해요.
      국민이 집회를 하는데 차벽을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준법정신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데 이는 경찰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는 압축성장에만 매몰돼 보수언론들과 정치인들, 지배엘리트들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국민들은 무엇이 자기의 권리를 지키고 정치사회적 자유를 높이는지도 모릅니다.

      경험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막장드라마 같은 것이 지상파를 장악하는 것에서 가치가 왜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유학파들로 이루어진 통치엘리트는 미국에서 나쁜 것만 들여오고, 소비지상주의에 빠진 청춘들은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판단조차 못합니다.

      답답하지만, 대한민국은 뿌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정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질서를 바라는 것은 풀 수 없는 그리고 충족될 수 없는 목마름입니다. 이 욕망은 각자의 현실이 무질서한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서 무질서 상태를 고치도록 요구합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감시가 결코 활력을 다하거나 일감이 없어질까 두려월 필요가 없는 얼마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 데이비드 라이언 대담 《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인용 



9.11테러와 비교하기 힘든 참사지만 세월호의 침몰이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미국에서처럼 감시와 안전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며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상태까지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왔음에도 왜 세월호참사나 대형화재, 성폭력 등처럼 터무니없는 참극과 사건들이 쉴새없이 일어나는 위험사회가 됐는지,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은 사라졌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감시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은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기본권조차 포기한 채 새롭게 등장한 감시사회의 안전 담론에 자발적 복종을 보여주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 시민의 안전을 높이기보다는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는데 유용한 감시장비들의 확대 설치(범죄율이 떨어졌다는 유의미한 증거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를 반대하는 여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사회의 보수주의화). 



그들은 개인의 힘으로 체제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체념 또는 자기 변호)하기에 그것에 적응해서 남들보다 조금 낫게 살아남으려는 것입니다(개인의 보수주의화). 이런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감시권력과 안전 산업의 먹거리로 전락한 삶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자유의 확대를 위한 투쟁이었다는 사실이 전설의 영역으로 증발해버린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안전을 중시하는 안전담론의 강화는 사회의 보수화와 인식의 보수화를 동시에 강화합니다. 안전을 높이기 위해 질서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자유와 충돌하기 일쑤여서 가진 것을 지키고 늘려야 하는 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사회와 인식(개인)의 보수화를 추동합니다. 안전담론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 민주주의는 약화되기 마련입니다. 





OECD 가입국 중 부의 불평등과 사회복지지출이 가장 나쁜 대한민국이 사회갈등지수도 최상위에 위치하는 것도 안전이란 명목 하에 너무나 많은 자유와 권리가 억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분단 현실을 악용하는 수구언론들의 안보상업주의까지 더해지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 헌법상의 기본권(지난 수백 년 간 숱한 피와 희생으로 쟁취한 것들)을 제한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를 강화하는 이런 추세가 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도 돌이길 수 없는 지경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폭력집회로 몰고 가는 것을 넘어 무차별적인 체포를 자행하는 것도 안전담론의 득세를 반영합니다. 사회의 인식의 보수화가 무한대로 강회될 순 없지만 임계점을 돌파하기 전까지는 이런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일원인 언론(특히 방송)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반인륜적인 사건사고 뉴스를 집중보도함으로써 위험과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범죄율의 증가나 하락 같은 것은 보도하지 않고, 왜 이런 사건사고가 일어나는지도 보도하지 않고 오직 위험과 공포만 부추깁니다. 기존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런 상황에서 최대 이익을 거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온갖 오보를 쏟아내며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생중계한 언론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보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도, 자사의 매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 관련 보도도 선정성을 부각하는 방식을 유지한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9.11테러 이후의 미국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안전담론에 매몰돼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 등이 축소되고 침해받는 감시체제의 강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발생합니다. 최소 250명에 이르는 어린 학생들이 체제와 어른들의 잘못으로 죽었음에도 세월호가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일베 같은 극우주의자들이 설칠 수 있는 것도, 이들을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세월호 집회의 폭력성만 부각하는 언론들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테러와의 전쟁이나 안전담론에 매몰된 사회와 인식의 보수화와 그 결과인 자발적 복종 때문입니다.





21세기가 위험사회와 감시사회, 정신이상사회가 된 것은 상위 1%에 속하는 지배엘리트와 슈퍼리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한 세대 만에 상위 1%에 오른 자들은, 중산층이 그들처럼 치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장벽을 세웠고, 전문직종에 속한 자들도 상위 1%처럼 장벽을 구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졌고, 피케티 교수가 입증한 것처럼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세습자본주의의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이런 극단의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 참극입니다. 불평등사회에서는 이익이 상위 1%에 집중되지만, 위험은 하위 99%에 전가되는 ‘리스크 대이동’을 구조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월호 참사는, 세습자본주의 때문에 경제규모 12위인 대한민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후진국형 장사를 할 수 있는 빈곤시장(마이크로 크래디트, 즉 미소금융도 이에 속합니다)이 형성됐음을 뜻합니다. 폐선이 돼야 했을 유람선을 헐값에 들여와 위험천만한 항해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리스크 대이동'이 초래한 위험을 관리하려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디지털 감시체계가 필요하고, 프라이버시 침해와 자유의 축소를 숨기기 위한 안전담론이 분출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방송을 통해 매일같이 보도되는 오늘의 사건사고(최근에는 테러)가 이를 주도하고, 드라마와 영화, 리얼리티쇼가 이를 확대재생산합니다.



거칠게 살펴봤지만,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군‧산‧미디어‧연예복합체’의 논리는 허구로 가득합니다. 디지털 빅브라더의 등장은 위험사회의 폐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어떤 경험적 증거가 없습니다. 소비할 것이 널려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그저 편하게 살다 편하게 죽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함에도.



자발적 복종은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욱 가난해지고 위험해지고 자유마저 축소되는데도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포인트 적립과 조세제도, 원전의 확대와 무기의 현대화, 노동유연화와 민영화 및 낙수효과 등인데 다음 글(감시사회, 개인정보 제공과 포인트 적립금)에서는 감시사회의 자발적 복종이 시작되는 지점인 포인트 적립부터 다루어보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4.21 07:54 신고

    기득권은 끊임없이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게 나라와 민족, 사회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애국심, 애사심, 지역사랑 등등. 하지만 자신들을 철저히 자신들 뱃속을 채웁니다. 그들에게 진정항 애국심과 민족애는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이지요.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06 신고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을 자발적 복종으로 이끕니다.
      정치적 복종이 실제는 기술이나 경제적 이권에서 나옴입니다.
      이것을 보수정당이 너무나 잘 알아서 진보정당이 자주 지곤합니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박근혜 임기 마지막에 경제가 좋아지면 또 새누리당이 승리합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4.21 08:34 신고

    사회 갈등지수가 1을 넘어서지 않은것이 이상할정도입니다
    터키나 우리나...

  3. 참교육 2015.04.21 09:54 신고

    자본과 권력 앞에 자발적 복종...!
    무섭습니다. 말로는 민주주의이 주권이니 하면서 그 실은 자본의 노예, 권력의 아바타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11 신고

      요즘은 소비주의에 의해 자발적 복종이 일어납니다.
      그 역할을 기술이 합니다.
      최근 권력이 개판이어도 정권을 유지하는 이유가 정보통신기술과 자동화의 발달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4. 바람 언덕 2015.04.21 10:55 신고

    기득권이 쳐놓은 거대한 그물 속에서
    다수 대중들이 허우적 대고 있습니다.
    대중이 시민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이 나라에 희망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요즘만큼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토크빌의 전언이 뼈에 사무치는 적이 없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14 신고

      국민의 수준을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유럽에도 시작됐고, 미국은 상당 부분 진행됐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5. 구름바다 2015.04.21 11:32

    날카로운 지적, 정말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갖는 것이 중요한 요즘이군요.
    이미 공영 TV 에서 하는 뉴스와 거리를 두고 살기에
    괴로운 뉴스를 볼 일이 거의 없지만
    하루가 멀다 않고 쏟아지는 정치권의 비리에
    다시 한 번 우리 모두가 좋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더 고생하게 된다는 것을 한 사람이라도 더 깨달았으면 합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1 15:16 신고

      네, 노력하겠습니다.
      매일매일의 이슈만 따라가다 보면 현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집니다.
      조금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룰 생각입니다.

  6. 최홍대 2015.04.21 15:14 신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정치인과 정부의 문제도 있지만 국민이 바뀌지 않는다면 힘들듯 하네요.

    • 늙은도령 2015.04.21 15:19 신고

      국민이 조금만이라도 공부하면 좋을 텐데.....
      원체 삶에 치여살도록 체제가 구축돼 있어서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나 봅니다.

  7. *저녁노을* 2015.04.21 16:31 신고

    정치인이 바뀌질 않으니..
    국민이 깨어나야할 듯...합니다. 쩝~!~

    • 늙은도령 2015.04.21 19:15 신고

      국민을 위한 정치와 정부가 됐으면 좋겠어요.
      과학기술을 제대로 활용해 좋은 결과를 내려면...

  8. 트라이어 2015.04.21 18:47 신고

    앞으로 많이 개선될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9. 나비오 2015.04.22 17:25 신고

    복종으로는 선진국의 척도를 뽐낼 수가 없으니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들어 두마리 토끼를 다 얻으려는 정치적 수작이죠

    • 늙은도령 2015.04.22 17:30 신고

      세월호 유족들의 소원을 들어주기가 점점 어려워지네요.
      무서운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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