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을 제공하는 기본소득제는 좌파와 우파 모두가 동의하는 소비경제의 패러다임입니다. 유효소비가 가장 높은 생산가능연령대를 핵심으로 하는 인구구조의 고령화와 비대칭적 종말의 크기를 예상할 수 없는 지구온난화를 고려하면 경제성장 페러다임으로서의 기본소득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주류경제학의 오류는 인구구조(와 사회적 비용)를 철저히 외면해서 생긴 것인데 기본소득제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필자의 이런 주장은 기본소득제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단히 위험한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고, 입증할 수 있습니다. 영미식 주류경제학을 혐오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전국민 대상의 기본소득제보다 국가적 차원의 청년배당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의 행정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는 힘들지만, 유효소비의 증가에 따른 내수시장 활성화로 최악의 경제불황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소비확대는 또 다른 누군가(특히 내수기업과 자영업)에는 생산의 확대이며,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며, 신빈곤층의 양산을 막는 생활임금 이상의 소득증대입니다. 청년배당은 노후 준비에 실패한 중장년층에게는 산소 같은 구원입니다. 청춘에게는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불효의 탈출구이고, N포세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며, 세계화시대의 기업에게는 유연한 전략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신자유주의적 고령사회의 모든 폐해를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마치 진실인양 회자되는 '잃어버린 20년'은 주류경제학의 오류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을 똑같이 따라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거의 모든 불평등과 '불황형 흑자'에서 벗어나려면 국가 차원의 청년배당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엄청난 초기비용은 한시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습니다(이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많다).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가 나올 수 없고(일부에서 주장하는 '석유의 종말'이란 헛소리에 불과하다. 기술특이점을 돌파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거나, 지금보다 매우 불편하고 가난한 삶에 대한 인류 공통의 합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저임금·저물가·저성장이 고착화된 장기대불황은 국가 차원의 소비창출이 선행될 때만 탈출이 가능합니다. 생산가능연령대의 소비확대는 생산(과 서비스)의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청년배당의 전국적 실시는 헬조선의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시장과 박원순 시장의 청년배당은 성공해야 하고, 확대해야 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과 법제화가 이어져야 합니다. 필자가 4월13일의 투표에서 정당표를 정의당에 몰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신 정의당은 녹색당과 노동당, 민중연합당과의 선거연대를 통해 그들의 원내진출을 보장해야 합니다. 보수화된 거대양당의 이익독점과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이것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 다룰 총선과 대선의 차이까지 고려하면 정당표는 정의당에 몰아줘야 합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의 불법과 부정이 적나라하게 밝혀져도,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져도, 박근혜와 아베 간에 오간 위안부협상의 밀약들이 밝혀져도, 일본의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입한다고 해도, 35~49%의 유권자는 새누리당을 찍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고, 이를 막는 길은 정당표를 정의당에 몰아줘는 것뿐입니다. 




                                                                                                   

P.S. 제2차 세월호 청문회가 3월 28일, 29일에 진행됩니다. CBS노컷뉴스, 오마이TV, 팩트TV, 고발뉴스, 주권방송, 416TV에서 생중계를 합니다. 청와대와 정부, 방송과 국정원, 해경과 언딘이 감추고 파기했던 증거들이 많이 밝혀졌으니 꼭 확인하시고 표로 응징하기를 바랍니다. 백남기 농민이 장기들이 기능을 상실해 위독하다고 합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박근혜로부터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표로 응징하기를 바랍니다. 국사편차위원회가 역사교과서를 박씨 부녀의 가정사로 바꾸기 위해 국정화 찬성론자로 조직구성원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표로 응징해주십시오. 총선 이후 재단을 설립하면서 소녀상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표로 응징해주십시오.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표로 응징해주십시오. 이번 총선에서 제대로 투표하지 못하면 이보다 더한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 시절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3.26 08:27 신고

    이곳 대구.경북 지역이 새누리판이 된것..
    야당 책임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공약,정책.
    그리고 후보가 없습니다 ㅡ.ㅡ;;

  2. 마조갤옷 2016.03.26 12:34 신고

    정의당이 당성되기 위해서는 청년지지자층이 많아야할것깉은데 실상을보면 제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대부분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관심이 있다하여도 허무주의에빠져 무효표를 계획하고있는사람들을 많이봐왔습니다... 역시 아직우리나라 의식과 교육수준이 진화되어야 정치적 안전성을 확보할것같은데 정치적 안전이 확보되어야 교육과 시민의식이 자리를 잡을수있으니....

    • 늙은도령 2016.03.26 14:12 신고

      그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청년배당처럼 청춘들이 정치를 해야 할 이유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들이 포기하는 것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얻는 것을 늘릴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달라집니다.
      청춘에게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마련해주는 것이 저 같은 지식인의 의무이기도 하고요.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자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학을 정당화하는 기본적인 도덕적 주장 가은데 하나, 즉 개인의 이윤 추구가 동시에 공익을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의혹에 싸였고 사실상 거짓으로 밝혀졌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인용  




미셀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는 현대성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그들이 밝힌 현대성이란 특별한 정형이 없지만, 시장경제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소의 통치로 최대의 경쟁을 이루어내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을 말합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학파가 정립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국가가 시장경제(수출 포함)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부분을 시장 중심으로 재구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부는 국가 주도의 독점경제(히틀러의 우파 전체주의와 스탈린의 좌파 전체주의)를 막기 위해 시장참여자 사이의 완전경쟁을 극대화하도록 법과 제도,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면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정부가 할 일이란 시장경제가 가장 잘 돌아가도록 국가와 사회, 기업과 개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시장경쟁을 방해하는 것은 공권력을 동원해 제거하는 것입니다. 국가 전체를 시장경제에 가장 적합한 조직으로 만들면서도, 국민에게 기본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된 것입니다. 



관방학(내치학)과 국가이성 및 17~18세기의 정치경제학(고전파 경제학)이 적절한 조합을 이루면서 탄생한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 질서자유주의나 사회적 시장경제라 명명되는 것도 '최대의 경쟁을 위해, 최소의 개입을'이라는 구호가 국가의 부흥과 국민의 삶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거치면서 영미식 신자유주의로 바뀌닙니다. 이때부터 국민의 안전과 소득, 복지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가능한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따라 모든 것이 정열된 경제국가를 만드는 것으로 축소됩니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과 더 이상 사회의 도움은 없다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도와주던 보편적 복지는 사라지고, 소비자로 파편화된 국민은 시장경제에 종속된 채 끊임없는 경쟁과 퇴출을 반복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것이 일반화됐습니다. 





정부의 복지는 시장경제에서 탈락한 개인을 최단 시간 내에 시장경제에 재진입시키기 위한 재교육을 제공하고, 완전한 패자는 최소한의 삶만 보장해줍니다. 과학과 기술공학의 발달로 전 지구적 시장이 등장함에 따라 영토 내에서의 배타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은 더욱 축소됐습니다.



기술공학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를 촉진시켰고, 이에 따라 자본과 초국적기업은 노동과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전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국민 전체에게 기본적인 소득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 결과 부의 불평등이 계속해서 커졌고, 정부는 보편적 복지에 들어가던 비용을 시장경제의 극대화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정부는 또한 완전경쟁을 방해하는 것들을 규제 완화,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관세 철폐, 초저금리, 보조금 지급금지, 노조의 해체, 조세 개혁 등과 같은 방식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고, 보편적 복지는 선별적 복지를 축소됐습니다. 생존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역량을 높이는 것뿐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업무도 민간으로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통치술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부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양산했고, 완전경쟁이 불평등경쟁으로 바뀌었고, 저축이 소비(빚을 내서라도)로 대체됐고, 부와 빈곤이 대물림되는 세습자본주의가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부의 재정보다 훨씬 많은 부를 축적한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압도적인 힘은 시장경제에 반하는 민주주의의 요소들(조세정의에 의한 부의 재분배, 신분이동의 가능성 제고, 공정한 경쟁과 기회 제공 등)을 제한했고, 그 결과 과두정치에 가까운 최소의 민주주의가 보편화됐습니다.





마침내 새로운 형태의 차별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완전경쟁의 시장경제에 편입되는 것과 퇴출되는 것으로 1차 차별이 작동하고, 소득 능력에 따라 2차 차별이 작동하고, 소비 물량에 따라 3차 차별이 작동하고, 가족 전체의 소비 여력에 따라 4차 차별이 이루어집니다.



자유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시장경제 의존성이 높은 제한된 자유여서,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치적으로 확장된) 자유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시장경제에 참여해야 하는 제한된 자율성에 불과합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란 소비할 수 있는 자유, 즉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됐습니다.



이로써 생존선 이하의 삶의 자율성만 지닌ㅡ다시 말해 가난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잉여들이 양산됐고, 그들 중 일부는 시장경제에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거나, 시장경제에 위험한 군으로 분류되고 배제된 상태(도시의 게토, 난민수용소, 열악한 복지시설, 슬럼가 등)에서 총체적 감시를 받는 존재로 버려집니다.





선별적 복지란 이런 이유들로 해서 시장경제 탈락자에게 주어지는, 그래서 생존을 위한 소비 외에는 단 한 푼도 저축할 수 없는 최소한의 복지를 말합니다. 국가업무의 민영화와 함께, 국가의 역할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이 시장경제를 먹여 살리는 최후의 먹거리가 됐습니다.



석유(만능의 제품인 플라스틱)를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가 나올 때까지 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될 것이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복지와 공적 부조가 줄어들거나 최소화됨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도 보장돼지 않습니다.



홍준표가 강행한 의무급식 중단과 오세훈 등이 주장하는 선별적 복지는 이런 과정을 통해 강화됐고, 최소한의 복지라도 받기 위해 저소득층은 보수정당을 지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제도화된 가난이 양산됐고, 소득원을 찾을 수 없는 개인들이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노예로 전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의 무서움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가능한 시장경제 자본주의국가를 만들어놓으면 개개인이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인과 특권층을 비난해도 최소의 통치만으로 기득권의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엄청날 정도로 자유가 늘어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소비로 유혹되고 감시받는 자유(시장 의존적 자율성)일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에서 볼 수 있듯, 부분적인 교정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목숨을 지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소비자를 키우려는 것입니다. 생산은 자동화되고 외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얼마든지 아웃소싱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어, 돈이 없으면 생필품도 기본적인 서비스(특히 의료와 보건)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넘치도록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지독할 정도로 시장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기 이전에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 구축한 체제의 노예부터 되는 것입니다(왜 가난한 사람들은 보수정당을 찍을까-1)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ppp 2015.06.11 11:37

    좋은글입니다 항상 감탄하고 읽고있습니다 퍼갑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면서 세계 경제는 식민지 팽창과 대규모 개발 및 분업화된 생산을 통한 대량 생산의 역사였습니다. 계몽의 시대가 도래하여 영원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성장의 패러다임이 절대적 가치로 고착화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려면 두 가지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 하나는 팽창과 개발 및 생산을 위한 무제한적인 신용의 창출이었고, 나머지는 대량 생산된 제품을 신용 창출에 힘입어 소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계몽의 시대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자본주의의 역사는 돈을 풀어서 자연과 노동과 정신을 착취함과 동시에 이를 소비하도록 개인을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빚더미 위에 올라서 있는 지구



이를 위해 국가는 대규모 행정조직을 동원해 세금을 걷고, 이를 통해 신용 창출의 원천으로 자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불완전하고 불공정한 시장을 통해 새로운 기득권으로 떠오른 지배엘리트들을 위한 국가와 지역 및 세계 차원의 시장을 구축하고, 값싸고 질 좋은 노동자들을 시대적 요구에 봉사하는 교육제도를 통해 양산해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매스미디어의 등장은 무한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긍정적 경제관을 주입시킴과 동시에, 첨단학문과 과학 및 기술로 중무장한 환상적인 광고를 통해 소비의 극대화와 신용 창출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생산자이자 소비자였던 시민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자의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소비자로서의 역할은 커졌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짐에 따라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하는 인류가 등장했습니다. 소비의 중독이나 노예로 만드는 광고와 서비스 및 유행의 홍수는 삶의 모든 공간에서 개인의 삶과 욕망과 함께하며 끊임없이 유혹했습니다. 광고의 홍수에 노출된 개인이 이것에 맞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로서 끊임없이 더 많은 빚을 권하는 신용 창출과 그것에 힘입은 과도한 소비가 두 개의 축으로 작용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견고하게 구축됐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보다 많은 빚과 보다 많은 소비를 위한 특권화된 기득권의 도구와 선동에 불과합니다. 결국 이 두 가지 축이 끝없는 차별과 온갖 문제를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금까지 이끌고 왔고, 이제는 그 관성의 질주를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소비경제의 하이라이트



세계 각국의 정부와 국제기구들, 슈퍼리치와 거대 자본들이 하는 일이란 중단 없는 성장을 위한 신용 창출과 소비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한한 진보와 그 낙관적 결과에 대한 한계에 이른 것이 현재의 세계 경제 상황입니다. 더 이상은 기존의 경제 규모를 늘려갈 방법도, 여력도 바닥이 나 버린 것입니다. 가격파괴와 할인경제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현 체제를 유지하는 두 개의 축에서 심각한 부실이 노정된 것입니다. 거품의 크기가 너무 커 작은 바늘로 톡 찔러도 터져버릴 지경입니다. 특권화된 기득권들은 이것을 터뜨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고,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 상황을 뒤집어 보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 성장이 이루어져도 돌아오는 것이 없는 현실에서 아예 빚과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보는 것입니다. 지구보다 더 커진 거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1%를 더욱 궁지로 내모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항을 하겠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과 정단대의 행동과 실천으로서.



거품을 터뜨릴 수도, 그냥 가지고 갈 수도 없도록 아예 기존의 체제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빚과 소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자식들을 위한 교육비 지출마저도 학교 공부에 한정하는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낮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여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최소화하고, 먹고 자는데 드는 에너지 사용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초고령사회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게 만들면 된다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육아와 교육, 생계를 함께함으로써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현 체제의 독점적 승자들이 제발 빚을 내서 소비를 늘려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정말 독하게 자린고비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현 체제가 바뀌지 않은 한 해결이 불가능한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도록 말입니다. 



상위 10%가 전체 부와 기회의 90%를 독점하는 상황이지만, 그들로만은 현재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위 90%가 무리하게 빚을 내서 신분상승의 꿈을 버리지 않고, 남들에게 꿀리지 않도록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할 때만 상위 10%가 지금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의 규모를 줄이고, 돈의 대부분이 내부에서 도는 소규모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다한 돈이 필요없는 문화와 놀이를 찾아서 향유하고, 삶을 짓누르는 무한경쟁의 압박에서 한 발짝 벗어나 정신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진보와 과시와 경쟁의 악몽에서 벗어나 물질적이고 사회적으로는 가난해져도 정신적으로는 부유해지는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정부와 정치에 대한 감시ㅡ예산의 사용과 정책 및 법의 적용과 집행ㅡ를 극한까지 늘리는 것입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같은 얘기이지만 평균수명이 80년이라면 이렇게 2~3년 정도 살아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2~3년 더 살아가는 것이 더 힘겨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지나칠 정도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압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가진 자들이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돈이 돌지 않으면 지금 가진 것들을 절대 유지할 수 없습니다. 상위 1%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국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운영에 드는 고정비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돈이 안돌면 제일 먼저 죽어나가는 곳이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와 행정입니다. 기업은 아예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그들은 살기 위한 자구책을 미친 듯이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위 90%의 소박한 반란에 따른 모든 압박이 상위 10%에게 집중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거품의 압력은 더욱 커지고, 거품의 폭발을 막고 있는 외벽은 빠르게 약해집니다. 빚과 소비를 줄인 하위 90%에게 거품 폭발이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대안적 삶은 이미 제시돼 있다



고생은 하겠지요. 무척이나 힘들 것입니다. 빚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며 거품을 늘리지 않는 동안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분노가 차오르겠지요. 그것이 쌓이고 퍼져 가면 바로 혁명의 원동력이 됩니다. 폭력이 배제된 자유의지에 의한 저항이, 정신의 풍요로움을 찾아가는, 가난하지만 즐거운 여정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쓰나미가 됩니다.



동등한 시민으로 태어나 체제의 노예로 살아가는 일을 중단했을 뿐인데, 아니 최소화했을 뿐인데 세상은 근본부터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릅니다. 그것은 파국을 선택한, 갈 데까지 가보자는 특권화된 기득권들의 암묵적 합의를 공생과 공존의 방향으로 틀어놓을 것입니다.



상위 10%, 최종적으로는 상위 1%에 유리한 현 체제는 중하위 90%가 무리하게 빚을 내 소비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식시키려면 이 두 개의 축에 타격을 가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의 시기, 폭력적 혁명이 불가능하다면 현 체제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정반대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주체이며 삶의 주인입니다. 반성적 실천이 가능한 것이 인간입니다. 우주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으로 밝혀낸 유일한 고등생명체가 인간입니다. 물질적 가난이란 자본주의적 시각이 만들어낸 차별의 논리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목표라면, 이제부터라도 생각하며 최소한으로 소비하며 살면 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꾸면 됩니다. 현재의 체제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빚을 소비에 쏟아부어 이루어내는 양적 성장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하위 90%의 삶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팍팍해지는 것입니다. 작금의 경제 성장이란 하위 90%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전도된 나쁜 성장입니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4.12.05 07:54 신고

    내가 자본과 싸울 투사가 될 때 세상이 바뀌겠지요.
    나 하나가 아닌 수 많은 투사가 된 나로 만드는....

    • 늙은도령 2014.12.05 09:55 신고

      우리가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으면 됩니다.
      성장이란 악마의 논리를 거둬내면 세상이 보입니다.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다수의 나가 생깁니다.
      세상이 복잡하니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4.12.05 08:05 신고

    세상도 나도 바꾸기가 힘이 드는군요 ㅡ.ㅡ;

    • 늙은도령 2014.12.05 09:56 신고

      아주 조금만 바꾸면 됩니다.
      세상을 우리가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나라도 변하면 됩니다.
      그냥 그렇게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변하게 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실제 이런 변화에 동참한 사람들이 늘고 있답니다.

  3. 덕산 2014.12.05 08:34

    공동체 생활으로 공생과 공존을 해나간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 생각 바꾸기 넘 힘이 드네요.

    • 늙은도령 2014.12.05 09:58 신고

      일단 자신부터.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나부터 변화를 실천하면 됩니다.
      현 체제는 너무 거대해 스스로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거기에 휩쓸려 가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단 내 삶의 방식부터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것이 퍼져 힘이 됩니다.
      무조건 내 삶부터 바꾸는 것입니다.

  4. 뉴론7 2014.12.05 09:36 신고

    좋은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5. TISTORY 2014.12.05 17:55 신고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이 게시글의 이미지가 12월 6일, 7일 이틀간 티스토리 앱 카테고리 배경이미지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으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6. 발큰신데렐라 2014.12.10 13:44 신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4년 한해동안 정말 필요치 않은 소비를 습관적으로 또는 충동적으로 너무 많이 했더라구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정말 필요한 물건 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2014년 마무리 잘하시구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4.12.10 20:01 신고

      네, 건강에 조심하며 좋은 글로 인사드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모든 일들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최선은 다해볼 생각입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에게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쓰는 글들인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7. 기저 2015.03.03 23:02 신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투자하고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물질적인 부분이 참 어렵습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나를 보며 속상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나는 현재가 아닌 미래 지향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버텼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지금 이 순간을 통해 정신적인 풍요로움에 이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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