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에 마르크스는 인식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전제(대표적인 것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의 추상성, 모든 노동이 균질하다는 전제하에 사후적 평등의 근거가 되는 노동가치설, 계급투쟁의 기원이 된 다윈적 역사인식, 유토피아적 세계의 도래가 가능하다는 뉴턴식 우주관 등. 당시에는 뉴턴 이후의 과학은 없다고 할 정도로 뉴턴의 역학은 절대적 영향력을 지녔었다)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찰을 이루고도, 그가 예언했던 절대 다수가 누려야 할 ‘자유의 왕국’이 극소수의 ‘신자유주의 왕국’으로 변질되는데 일조했다.





아니 일조가 아니라 절대적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 어떤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여파는 근대유럽을 착취와 억압이 넘치는 무법지대로 만들었는데, 마르크스가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찾아냄에 따라 그의 성찰은 종교적 영역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 스미스가 작은 시장만 보고 자기조정 시장을 추상했기 때문에 온갖 문제들을 양산했듯이, 마르크스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던 영국의 자본주의에 경도돼 역사의 발전과정이 노동자의 유토피아로 이른다는 결정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자본주의의 경험이 일천했으며, 그 당시까지의 과학적 한계에 갇혀 있었지만 이는 문제가 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마르크스는 다윈적 역사인식과 뉴턴식 우주관에 경도되는 바람에 역사의 발전과정이 거듭되는 계급투쟁에 의한, 최종적으로는 무계급사회에 이른다고 봤다(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은 자본주의가 극에 이르면 자유의 왕국에 이른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적 성과들은 미래는 무엇으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맞물려 자본주의적 착취가 종말에 이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거꾸로 뒤집어버린 지배엘리트(특히 전통의 금융‧산업권력)에 의한 반동의 역사이자 권위주의적 통치로의 회귀가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박근혜의 ‘줄푸세’처럼, 신자유주의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극소수의 가진 자들이 더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 덜 가진 자들의 것들을 탈취하는 과정이다.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식 복지국가나 국가개입이 자연법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내세워 적자생존의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뒤집어 ‘자유의 왕국’과 정반대의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을 불러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해 위기를 조장하고 ‘쇼크요법(IMF 구제금융)’을 강제하는 것도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뒤집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1, 2차세계대전 이후 평등과 공존, 상생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발전국가 모델의 핵심이었던 평생고용 체제 때문에 상위 1%의 부와 권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대상으로 반동의 계급혁명을 감행해 부와 권력을 회수한 것이 신자유주의 40년이고,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마르크스가 하늘에서 가슴을 치며 통탄할 노릇이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신보수주의 세력(뉴라이트)들이 19세기에 유행했던 자유방임 시장경제(어떤 규제도 없었고, 노조도 없었으며, 국가의 개입은 원천차단됐던)를 전면에 내세운 채,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평생고용 체제를 파괴한 것도 이 때문이며, 이를 위해 경찰력과 감시권력을 극대화한 권위주의적 정부를 선호했고, 정경유착과 회전문 인사로 집권을 이어가야 했다(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인 사회주의에 비해, 신자유주의가 개인적이며 환경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극복하는 과정인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도 상위 1%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던 불평등은 자유를 제한하고 침식하는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늘어나고 정의와 도덕, 윤리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도 필연의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고 했지만, (바우만의 주장이 옳다면) 견고한 자본주의는 녹았지만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내부로부터 무너진 자본주의는 더욱 유연하면서도 무엇이라도 쓸어버릴 수 있는 상위 1%의 ‘액체의 형태’로 변형돼 세상의 모든 부분을 신자유주의화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석학들마다 다른 것도 이 때문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통치의 방법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막강해졌고,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줄이고 다른 세상을 만들려는 다양한 저항운동의 일치를 이룰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하위 90%에게 ‘유동하는 공포’를 양산하는 체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비어있는 9%는 체제의 간수로 별도의 군을 이루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9.09 09:19 신고

    변수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마치 마르크스나 애덤스미스가 잘못내린 결론처럼.... 저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결국 자멸의 길을 걸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39 신고

      앞으로 10년 안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기반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파국을 면치 못합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 물부족 등의 공격이 20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성장 자체를 하면 안 됩니다.
      소비를 줄이고 지금보다 매우 많이 불편해져야 합니다.

  2. 耽讀 2015.09.09 12:38 신고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지요.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46 신고

      그래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가치가 없고 쉽게 사라집니다.
      우리는 실천하고 반성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9.10 07:59 신고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1 01:04 신고

      네, 저도 제가 공부한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4. 천상명월 2015.09.10 16:36 신고

    언제나 현실과 타협하는 저는...정말 어려운 용어에 .. 작게만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청공(靑空) 2015.09.11 07:39 신고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주시는 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쓰신 글에 감탄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가 그 형태와 목적이 유동적일 수 있는 이유는... 특정한 이론체계라기보다는 그 실상이 자본권력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의 이유를 기술발달과 환경적 요인와 같은 구체적 근거에 의해 설명하기보다 자유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설명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가변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선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다수의 시민의 해방을 드셨는데요. 푸코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인간은 문제에 직면해서 그걸 보아야만 바뀌고, 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결국 인류문명은 그 끝을 보게 되겠죠. 아니면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되거나요..

    이러한 신자유주의와 인류의 문제를 위한 해독제(Antidote)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독일식의 질서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범주에 속하지만..)가 답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답은 독일만을 위한 답이지, 현재 봉착한 문제를 위해 고안된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답이 안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깊게 생각하기에는 제가 아는 바가 적고, 또 그에 대해서 밝지 못하네요. 얼른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늙은도령 2015.09.11 16:29 신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십니다.
      신자유주의는 권위적인 정부가 권위적인 재벌과 함께 시장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새워 부를 독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공의 자산을 민영화시키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지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사회주의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현대에 맞게 수정한 것이 나와있더라고요.
      그것을 민주주의와 엮으면 충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은 너무 상황이 심각해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집중해야 하고요.
      국민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제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기를 바랍니다.

  6. 백순주 2015.09.12 10:53 신고

    약속 지켜드리려고 열어는 보았으나 도령님과 대화를 나눌 능력은 멀었나 봅니다. 열심히 읽은 것이 아까워 댓글에 손은 댔습니다.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저는 벌써 주말은 글을 쉬려고 합니다. 매일 발행이 힘겨워졌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32 신고

      네, 그렇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게 매일 글을 올리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풀어놓으면 그 다음부터가 문제가 됩니다.
      길게 보셔야 합니다.



한전부지에 대한 현대차의 고가매입 논란에 대한 수많은 글들을 보고 있자면, 많은 아쉬움이 있어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라는 두 개의 초국적기업이 한판 대결을 펼친 한전부지의 고가매입 논란을 이해하려면 크게 세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한전부지가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넘은 가격에 현대차에 넘어갔는데, 한전부지 가치에 대한 일반의 평가와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축적해둔 초국적기업의 평가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글이 유투브를 18억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구입한 것처럼,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를 미래의 요람으로 보고 있었기에 일반의 평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그룹인 폭스바겐의 본사처럼 자동차 박물관(또는 자동차 테마파크, 관광객까지 포함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만 염두에 두고 한전부지를 매입한 것이 아닙니다. 현대차는 삼성전자그룹의 신사옥을 뛰어넘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가매입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현대차가 한전부지에 롯데가 잠실에 짓고 있는 초고층빌딩(부지의 넓이를 봤을 때 꼭 한 개의 빌딩만 짓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자 대비 원금을 회수할 방법이 널려 있다는 것이고, 현대차그룹에 속해 있는 대기업들을 살펴보면 무엇이 들어설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화점을 새로 짓는다 해도 교통의 요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동차 테마파크는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직접 판매의 장소이기도 하고 거대한 주차장이기도 합니다. 국내외 부품업체의 입주도 줄을 이을 것입니다. 대형 자동차쇼와 국제회의를 할 수 있는 컨벤션 센터도 들어설 수 있습니다. 롯데월드 같은 새로운 테마파크도 들어설 수 있고, 이런 식으로 각종 부대사업들이 가능합니다   



또한 초국적기업의 위상에 맞지 않았던 구사옥에서 벗어나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주는 영향이 지금보다 몇 배는 배가됩니다. 시간이 곧 돈인 그들을 원스톱으로 상대할 수 있으니, 각종 사업의 성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호텔의 역할도 할 테고, 실제로도 호텔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도 계속 쌓아만 두면 낮은 금리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어 일정 규모의 감액은 현대차에게 유리합니다. 또한 자동차산업은 부품 및 하청업체들이 어떤 제조업보다 많은데, 이를 통합관리할 수 있는 공간적 활용도 부가가치 극대화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현대차보다 앞선 순위의 자동차기업들은 폭스바겐 본사의 대박신화를 벤치마킹한 상태라 현대차는 오히려 늦은 편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씹어댈 수 있어서 그렇지 초국적기업의 힘이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기업 대 기업으로 부딪치면 두려운 것이고, 승자독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삼성전자가 제시한 입찰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삼성전자의 입찰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볼 때 현대차의 입찰가에 비해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무려 10조원에 이르는 거액이 투자되는데 양사의 정보전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을 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의 다음 번 인사에서 이번 입찰을 담당한 미래전략실의 담당 임원과 직원들이 승진하면 삼성전자가 제시한 입찰가가 현대차의 입찰가에 비해 천억 단위에서 차이를 보였을 것입니다. 반대일 경우에는 현대차가 삼성전자의 작전에 농락당한 것이 됨으로 이번 논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 번 현대차의 인사를 주목하면 됩니다.





인사에 관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기업문화 차이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기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글로 옮기지 못함을 이해해주십시오. 특히 동생과 친구가 양 그룹의 임원이라 보다 깊은 얘기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경험한 것과 오픈해도 될 정도의 것들은 이번 글에 다 담았습니다.



동생과 친구가 양 그룹에서 퇴사하면 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양사와 직접 거래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언론과 회고록 등에 나오는 내용들이 얼마나 걸러지고 축소되고 포장된 채 전파를 타는 것인지 상상하는 이상의 것들로 즐비합니다.



이는 전 세계가 동일한데, 직위가 높을수록,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경험의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정권이란 4~5년, 길게는 8년을 가지만 초국적기업들은 그 몇 배에서 몇 십 배나 오래갑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시장이 형성된 현재는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는 초국적기업들은 국가라는 경계가 무의미한 상황입니다.





세 번째는 현재의 경제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금융권과 삼성전자그룹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증세와 공무원연금 및 공기업개혁에 나선 것, 유럽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것, 미국의 부활이 여전히 불투명한 것, 중국의 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인도 등 신흥국들의 경제마저 나빠지고 있거나 정체상태에 빠져있는 것, 인류의 다음 먹거리가 나오지 않는 것 등을 고려하면, 인위적인 성장률 조정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구조조정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MF가 최근의 보고서에서 성장률 추이를 하향조정한 것이 시사하는 바는 현재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럴 경우 현찰이 풍부한 초국적기업을 중심으로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대형투자은행들이나 거대 헤지펀드와 연기금들이 초국적기업을 중심으로 보수적으로 자금 운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돈을 불러오는 이런 순환이 몇 번만 반복되면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조정은 제로섬 게임처럼 일정 기간 진행될 것입니다. 20년 전에 회자됐던 대형기업 중심의 업종별 구조조정이 이제야 실시되는 것으로,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런 추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해도 기본적으로 제조업을 놓지 않은 초국적기업들은 살아남게 돼있습니다. 한국의 경쟁력도 제조업에서 나오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제조업의 가치는 늘어납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천문학적인 실탄을 갖고 있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라면 일정 수준의 부침은 있을지언정 급작스런 몰락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승자의 저주는 이런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한다고 해도 특정 지역은 이런 추세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게다가 건설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한 현대건설이 할 것이니 투자비용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승자의 저주라는 것은 너무 나간 것입니다. 



다만 이번 글은 초국적기업과 계열사들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내부거래적 요소와 기본소득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정치경제적 판단은 배제한 글임을 밝힙니다. 그것까지 다루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거대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마르크스적 오류와 역설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덕산 2014.09.19 22:54

    잘알지 못했던 정보도 많이 알아갑니다. 다양한 시각으로 큰 흐름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점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23:47 신고

      아닙니다.
      그렇게 지식은 나누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가 너무나 커서 지식을 나누는 일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시간과 건강이 받쳐주면 더 심도 깊은 글을 올릴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2. 덕산 2014.09.19 23:20

    아무리 그래도 시장기의 3배이상의 값을 치르고 매입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시장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기술개발에 올인을 해야할말정 큰 돈을 땅에 투자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네요. 승자의 저주가 될지도 모르는것 아닌가요? 제가 보기엔 무리한 베팅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21:56 신고

      현대차에 있는 친국들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알아본 후에 쓴 글입니다.
      땅은 사라지지 않는 부동산입니다.
      게다가 경제가 위태로워지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제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폭스바겐 본사에 가 보면 현대차의 결정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다만 삼성전자의 농간에 현대차가 넘어간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승자의 저주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땅 위로 어떤 높이의 빌딩(2개)을 짓느냐에 따라 자산은 불어납니다.
      또한 현대차그룹사를 한 곳에 모아두면, 남아도는 계열사의 사옥을 부동산임대업 등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장사를 통해 수익을 거둘 방법은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게다가 경제가 나쁠수록 규모가 중요해집니다.
      초국적기업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대차는 본사가 떨어져 손해나는 것이 매년 수천억에 이른다는 애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면 최소 10년이 되기도 전에 본전을 뽑고도 남을 것입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한 번 살펴보시면 무엇이 입주하게 될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모두 다 현금이 굴러다는 것들입니다.

  3. 중용투자자 2014.09.20 08:05

    미래의 화폐가치 하락에 대비해 현금보다 차라리 땅을 매입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도 했을 듯합니다. ^^

    • 늙은도령 2014.09.20 19:56 신고

      그럼요.
      현대의 행태가 마음에 안 들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삼성전자의 완패입니다.
      지금 삼성전자 난리났을 것이에요.



저는 궁금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 참혹한 실패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수많은 인재ㅡ학력에서도, 경력에서도, 창의성에서도, 성실성에서도 잘해왔고 잘할 것으로 보였던ㅡ들이 창업했던 벤처기업들이 속절없이 망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창업하는 순간이 지옥행 열차를 예약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들 거의 전부에 확실한 인맥이 있고 권력의 핵심부까지 연결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도와주었음에도 제가 단 한 방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한시도 몸에서 떠나지 않는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그 수많은 실패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이 몸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니 그저 알고나 죽자, 그것뿐이었습니다. 



작은 바람이 있었다면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저승에 이르러서 삶의 대차대조표를 내놓을 때 궁색한 변명이라도 적어놓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막상 삶의 기억을 되돌려 보면 삶의 대차대조표에 기록할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저에게 삶의 마지막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끈질긴 생존에의 욕망을 훌훌 떨쳐버리기 위한 용기를 주기 위해 대차대조표 상의 기입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동생과 형의 도움을 받아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업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경제와 경영 관련 서적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 칼 마르크스, 룩셈부르크, 게오르그 짐멜, J.S.밀, 조지프 슘페터, 리스트, 케인즈, 폴라니, 슈마허, 오이켄, 뢰프케, 뤼스토우, 미제스,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민스키, 나이트, 갤브레이스, 킨들버그, 베블런, 맨큐와 섹스,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 장하준과 센, 피투시, 이근식과 이정우 등등을 거쳐 무게 없는 경제의 대명사로 등장한 『티핑포인트』와 『롱테일 경제학』, 『블랙스완』까지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습니다.                                               




 

헌데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뭔가 이상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에서 시작된 주류 경제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경제학이라는 것이 그 출발부터 모순과 오류로 가득했습니다. 아마 이쯤부터였을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 선택을 위한 최후의 변론을 준비하는 것을 잠시 동안 뒤로 밀어놓고, 본격적인 지적 탐구의 영역으로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이. 제가 다시 살게 된 단초가 된, 그 말도 안 되는 긴 여정의 첫 걸음이.  

 

 

제가 사업에 실패한 것처럼,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합리적 인간의 이익 추구가 자유 시장(이른바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자유방임적 시장과, 한 번인가 언급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돌아가는)을 매개로 완벽한 경제 체제를 만든다는 초등학교 수준의 선언은, 그의 주저 『도덕감정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순진한 아이디어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주류경제학은 그 출발부터 실패를 보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경제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부족했던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칼 폴라니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갤브레이스와 장하준 등이 비판했듯이 아담 스미스의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허구적이며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였습니다. 내가 무일푼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최단기 벤처신화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그 허무맹랑한 일장춘몽의 비극처럼. 어쩌면 나는 이들의 주장에 완전히 속은 아마추어 중 하나였을지도 몰랐습니다, 유신헌법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국가가 나서서 사기쳤던 시절의 나처럼.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삶을 영위하는 모든 개개인에게 기독교적 도덕이나 윤리적 책임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살라는 해방선언에 다름 아니었고,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이 제가 꿈꾸던 성공에 대한 환상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ㅡ일종의 신의 섭리나 우주의 법칙 같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ㅡ이었습니다. 경제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를 감안하면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의 위대함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이미 수백 년이 지난 21세기의 제가 보기에는 잘못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를 완벽한 패배자로 만든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의 자행했던 행태가 가능한 것도 어쩌면 이런 잘못된 신화가 수백 년 동안 쌓여, 소비자들의 눈을 가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착취하며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같은 것이 실제로는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었음에도, 상상을 불허하는 인맥으로 하여 저는 그런 갑과 유사 갑의 횡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자만심에 빠지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랙털 기하학



처음으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뇌에서, 신경에서, 세포에서 동시에 흘러나왔습니다. 비로소 저는 시야를 가린 짙은 안개 너머로 언뜻언뜻 세상의 속살에 다가갈 수 있는 작은 단서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작은 조각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으로 전체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전체는 조각과 동일하다는 만델브로트의 ‘프랙털 이론’처럼, 안개 너머로 스치듯이 본 작은 조각들이 전체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깨달음이었고, 작은 성찰에 불과했지만 다음으로 나가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저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잠시 동안 제가 속해 있었던 삶의 쪽을 살펴보기 위해, 제가 제 자신에게 주었던 뜬금없던 기회의 황당함에 비할 만큼 세상의 속살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세상의 표면만을 보며,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어떤 것ㅡ그것이 자본이던 권력이던 무력이던 권위이던 신이던ㅡ에 대해 알아야 했습니다. 



어째서 모순과 오류로 넘쳐나는 경제학과 경영학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으며, 초국적기업들과 거대 금융자본과 국제기구와 국제법 등이 하나처럼 움직이는지, 개별 국가의 통치엘리트들은 그들과 타협한 채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는지, 극단적 불평등이 난무하고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계산되며, 가난하고 힘없는 자가 수없이 죽어나가도 별다른 뉴스가 되지 못하는,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최후의 선택을 뒤로 미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시점이 제게 허락된 삶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저에게 제가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아니, 사업 실패에 대한 변론의 법정에 제 스스로 설 수 있는 용기의 일단을 비루하기 그지없는 저에게서 제가 허락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수많은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중에, 어머님 말고도 처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 ㅡ 3).   

 

 


  1. Croaton 2014.08.09 23:23 신고

    잘 읽었습니다.

  2. Croaton 2014.08.10 21:07 신고

    예.. 제가 뭘 급하게 했나 보군요.

  3. 늙은도령 2014.08.10 21:39 신고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마음이 되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블로거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먹고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메리트가 되려면 네티즌 모임의 일일 방문객이 수천 명에 이르러야 합니다.

    저도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볼 게요.

    저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미친듯이 달려들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홍보와 마케팅 방안을 고민해보겠습니다.

    활성화까지 최소 1년 정도는 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길게 보자고 한 것입니다.

  4. 덕산 2014.08.12 14:10

    우리나라에 정의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늙은도령님 항상 건강하십시요.

    • 늙은도령 2014.08.12 16:39 신고

      네, 정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소기업들과 대기업 간에 필요하고, 강자와 약자 사이에 필요합니다.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면 이런 일이 줄어듭니다.
      우리는 체제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민주주의가 경제영역에도 적용되면 공생이 가능해집니다.
      제 형제와 친구들이 삼성, 현대 등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서 임원으로 있지만 이들도 최근에 들어서는 기업의 이익이 너무 소수에게 집중됨을 걱정합니다.

  5. 2014.08.13 14:57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5 21:34 신고

      정말 만났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LG전자에 대한 미움이 모두 사라졌지만, 국가가 제 역할만 하면 재벌들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공존과 공생이 가능합니다.
      빚이 있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으면 파산을 신청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의외로 상황이 급박하면 대부분 통과됩니다.
      채권자에게 모두 다 전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빌린 부분만 전화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저축도 할 수 있고, 신용카드는 못 만들지만 회생프로그램을 밟으면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립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이니 한 번 고민해보십시오.

  6. 백순주 2015.08.15 23:50 신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셨다는 말... 비로소 숨이 쉬어집니다.
    첫번째 글에서는 슬픔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손을 댈 수가 없었는데... 다행입니다.
    제목이 '내가 다시 살게된 이유'인 것을 아둔한 저는 이제사 눈에 들어 옵니다.
    세번째 글은 조금 아껴두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16 01:12 신고

      지금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더욱 많은 의문들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지금의 저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확실하게 깨졌으면 합니다.
      뭐가 부족한지, 그래서 뭐를 더 알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나가면 확실한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엉켜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풀어가고 있는데, 건강이 바쳐주기만을 바랍니다.

      님도 좋은 글로 멋진 블로거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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