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쉽게 사라져버리는 이상 때문에 몹시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그 이상을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우리가 이상을 실현했을 때, 새로운 세계가 탄생했다. 늙은이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서 우리의 승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전의 세계와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젊은이들이 승리를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승리를 계속 유지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위의 인용문은 아랍 독립을 위해 영국에서 파견한 이중첩자였던, 그러나 아랍 독립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T.E. 로렌스가 자신의 얘기를 글로 옮긴 《지혜의 일곱기둥》에 나온다. 일제 36년간의 강제합병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단 10년만 집권할 수 있었던 민주세력들이 노회한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위의 인용문에 압축되어 있다. 



마르크스에서 시작해 네그리와 지젝까지 이어지는 구좌파와 신좌파 계열의 세력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는 이유도 위의 인용문에 압축되어 있다. 비정규직과 임시직들(최근에는 전업주부와 감정노동자까지 포함해 비물질노동자라 한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도 정권을 잡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이란 절대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영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도 위의 인용문이 들려주는 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방대한 자료를 검토한 후에 알렉시스 토크빌이 쓴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을 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던 프랑스대혁명이 자신이 일소한 구체제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으로 끝난 것도, 혁명 이후의 계획이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프랑스혁명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쌓이고 축적된 구체제의 폐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민중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했다. 



하지만 혁명을 통해 구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었던 민중들은 그 이후의 국가 운영에 대한 노하우와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구체제보다 더욱 독재적인 공포정치로 이어지며 짧은 해방만을 맛본 채 구체제의 지배세력들에게 권력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혁명을 통해 얻었던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구체제의 지배세력들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며 화려하게 귀환했다.   



토크빌이 "혁명이 무너뜨린 정부보다 훨씬 더 강하고 독재적인 정부가 다시 한 번 전체 행정력을 중앙집권화하고, 전능한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우리가 소중하게 얻은 자유를 억압하고 사이비 자유로 바꿔치기를 하고 있다"고 절망적으로 말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모든 국민이 똘똘 뭉쳐 영국과 싸웠던 미국의 독립혁명을 빼면 모든 혁명이 실패로 끝난 이유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승만의 부패하고 무책임하며 권위주의적이었던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을 얼마가지 않아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고,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항쟁을 박정희보다 더욱 잔인하게 무력진압한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들어섰고, 6.10항쟁 뒤에는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들고 나와 군사정부를 이어갈 수 있었고, 3당합당으로 지역감정이 고착화됐다. 이런 50여 년에 걸친 적폐들이 쌓여 IMF환란이 일어나자 비로소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에 걸친 민주정부 기간 동안 구체제를 지탱했던 모든 것들이 살아남았고, 참여정부의 4대개혁입법과 과거사청산이 조중동과 한나라당, 급진적인 신보수주의자들의 연합공격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다. 이익집단처럼 통치한 이명박 정부에 대항해 촛불집회가 전국을 뒤덮었지만, 그 결과란 민간인불법사찰과 종편의 출범, 시민단체 탄압 및 노조 파괴 등으로 이어졌다. 



준비된 것이 아니라, 과대포장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대한 국민적 분노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똑같은 역사의 되풀이였다. 7월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것도 동일선상에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 민주세력은 어느 때부터 야성은 물론 10년 집권의 노하우마저 잊어버렸다. 그리고 새누리당보다 더욱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인적쇄신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집권 이후의 청사진 내놓지 못했으며, 김한길을 대표로 뽑은 이후로는 야성마저 사라졌다. 이런 과정의 화룡점정은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이었고, 이것이 6.4지방선거와 7.30재보궐선거에서의 참패로 이어졌다. 10년 집권의 노하우를 패대기쳐버렸으니 재집권의 청사진이란 내놓을 수도 없었고, 집권세력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초래한 반사이익에 편승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전략도 전술도 구사할 수 없었다. 



가장 개혁적이고 가장 민주적이며 가장 진보적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뒷바침해 줄 정치세력이 없어, 뛰어난 실적을 거두고도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 개조에 실패했다는 것은 상식의 영역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민주당이 당내 기반이 약한 김한길과 안철수를 공동대표로 내세운 새정치민주연합을 출범시켰으니, 형편없는 공천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공동대표가 당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6.4지방선거와 7.30재보궐선거를 치렀으니 참패란 당연한 결과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도 민주정부 10년을 창출했던 당시의 야성부터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권 10년의 노하우를 이어받아 새로운 집권 청사진을 펼칠 수 있는 인적쇄신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온갖 불법이 난무했음에도 48%가 넘은 지지를 보내준 유권자들에게 보다 투명하고 명료한 미래의 모습과 민주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답은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4대개혁입법과 정책들을 지금에 맞게 되살리는 것이다. 그 안에는 민주정부 10년의 결실들이 녹아들어 있다. 문재인 의원과 참여정부 출신들을 전면에 배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누가 당을 이끌더라도 일관되게 제시할 수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내놓은 정책과 미래비전들에는 민주정부 10년의 노하우와 국정경험이 녹아 있다.



분명히 하자. 모두가 행복해하는 자유의 왕국도, 완전한 평등이 실현된 유토피아란 없다. 또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극소수의 짐승 같은 자들을 빼면, 다양한 정치적 이념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체제란 민주주의밖에 없음도 분명히 하자.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던 시기란 건국시의 미국밖에 없음도 분명히 하자. 당시에는 사회경제적으로 거의 동등한 수준에 있었던 백인 남성들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민주주의 원형을 제공한 아테네의 아고라도 그래했다. 그들이 공적 가치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아고라가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란 모든 국민이 일정 수준의 사회경제적 평등(이를테면 중위소득)이 보장됐을 때만 가장 잘 돌아간다. 그렇게 민주주의가 모든 참여자들의 삶의 질이 보장됐을 때만이 정치적 자유가 가장 많이 보장되고, 공존과 상생이 가능보장되고, 공존과 상생이 가능하며, 관용과 박애가 이기적인 유전자를 이타적인 협력으로 탈바꿈시킨다. 



그것이 악하며, 분명한 오류가 있지 않는 한, 자신의 본질과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이명박 정부 때 모조리 폐지해버린 민주정부의 조직들과 참여정부의 정책들을 되살려내고, 포장만 바꿔 모방하는 것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한 번쯤은 고민하고 성찰해 보라. 답은 거기에 있으니.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