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주류경제학자와 경제사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현실과 현장상황과 너무 유리된 그들의 지적 놀음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는데, 상당 부분 필자의 불만을 해소해준 책을 읽게 됐다. 모타니 고스케의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이 바로 그 책이다. 초이노믹스가 아베노믹스의 복사판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지금까지 읽은 일본의 책들은 주류경제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한국의 주류경제학들의 진단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미-일-한으로 이어지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담합된 분석은 거시경제학적 접근을 기반으로 한 미시경제학적 분석(그 반대로 해도 마찬가지)이라는 고정되고 고루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연구와 저서는 하위 99%의 지갑을 털어서 상위 1%의 금고를 채우는 반동적인 계급혁명을 비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도 아니면 모'식의 해결책 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그 이유는 주류경제학이 좌우를 막론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결성해, 그들에게 후원을 해주는 거대양당의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정치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정치경제적 지배엘리트들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지만 그들의 전쟁터에는 국민의 삶이 반영될 틈도 없었다. 그들의 전쟁에 동원된 경제학의 논리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적 놀음이고, 거대한 스케치에 불과해서 세계경제는 끝을 모르는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처지로 굳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조상(특히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부터 시작된 자기기만적 지적사기에서 이탈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현실경제의 핵심이자 거의 전부인 '생산연령의 파도'를 무시한 채 , "아무리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더라도 노동생산성만 올릴 수 있으면 GDP는 떨어지지 않는다"가 "(사회적 비용과 위험의 전가를 반영하지 않아서 기업과 정권에게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GDP가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구석구석으로 파급되어 모두가 행복해진다(낙수효과)"라는 착각에 빠져 정치인은 물론 국민마저 기만했다.   



그 결과 주류경제학들은 노동과 기업의 생산성이 아무리 높아져도 30년째 이어져온 저출산의 영향 때문에 소비가 가장 왕성한 나이대의 숫자가 줄어들거나, 그에 따라 생산활동인구(15~65세)도 줄어들고,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비생산활동인구마저 늘어날 경우 어떤 경제체제도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외면해 왔다. 그들은 어떤 화려한 포장 속에 경제적 분석과 처방을 내놓아도 현재의 경제체제를 해체해서 재조립하기 전에는 해결책이 없음을 커밍아웃할 수 없었다.





모타니 고스케의 분석이 옳다면(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본다), 자본주의 전성시대의 본질은 유효소비인구와 생산활동인구의 증가에 따른 자연적인 확장의 결과였지, 과학기술(그나마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과 경제학·경영학·사회학·인문학 등이 총망라된 나머지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갤브레이스의 말처럼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이 돈 벌어 먹기에 딱 좋아!'라는 것이 새삼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고스케의 분석은 현장의 고민을 가장 쉽게 풀어냈다. 



그럼 현재의 장기대불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지구온난화까지 더하면 인류는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 2차세계대전에 준하는 3차세계대전이 벌어져도 대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가? 그래도 잘 나가는 업종은 있는 것이 아닌가? 장기대불황의 파고에 잘 버티는 국가들도 있지 않은가? 등등 온갖 질문이 나올 듯하다. 필자도 똑같은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까지 어떤 답도 도출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런 질문들을 버무려 추론해보니,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은 복지확대를 기반으로 경제체제를 재편하고, 그에 따른 인력의 충원과 생활임금 이상의 소득을 연동시켜 내수경제를 살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가능인구로 편입된 청춘이 힘겨운 노동에 숙달될 수 있는 기간을 보장해주고,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인센티브 형식의 청년배당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소수의 무임승차는 무시해도 된다).



필자 역시 초위험사회이자 초감시사회로 접어든 현실과, 지구온난화와 초장기불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슈퍼리치와 재벌에 대한 고율의 누진증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대표되는 조세정의(피케티가 제시한 것이 정답)를 통해 청년배당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래서 유효소비(소매판매의 증가)가 늘어나 내수경제라도 살려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경제적 여유와 희망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청춘들이, 출산가능인구의 증가로 이어질 신생아 출산(출산율이 출산수)을 늘릴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장기대불황에서 탈피할 수 있다. 



운이 좋게도 한국경제의 펀더맨탈은 제조업 중심이어서 이것이 가능하다. 제조업에서는 완벽한 '고용없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타 부문으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언제나 제조업(생산품목별로 차이는 나지만)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배제했던 것에서 답을 찾아서ㅡ그런 답은 이미 나와있기에ㅡ정치사회적 합의만 도출해낼 수 있다면 이 지랄맞은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필자가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선거연합에 힘을 보태고,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선거연합에 맹공을 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의당과 노동당은 청춘을 대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내교섭단체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지구온난화를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녹색당의 원내진출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은 재벌의 해체나 분산, 독식을 끊은 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다. 어떤 기업도 국민과 맞싸울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최종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재명과 박원순 시장의 청년배당이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료해졌다. 두 시장의 실험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야권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문재인의 지원 하에 기본소득제(죽은 프리드먼과 살아있는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도 동의하는)의 실시까지 갈 수 있다면 장기대불황에서 탈출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버니 샌더스와 가장 닮은 이재명), 시장경제가 만나는 삼각지점의 교집합에 대한민국 미래세대의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당신은최고 2016.02.09 22:25 신고

    잘보고갑니다.새해복많이받으세요

  2. 새노래 2016.02.10 03:52

    명절 휴일에도 쉬지 않고 글을 올리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혹시나 하고 들어와 봤드니 또 님의 글이 올라와 반갑게 읽어 봅니다,
    새해는 정말 대한민국을 덮고 있는 저주의 세력, 어둠의 세력, 을 걷어 내는데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 합니다, 그 시발점이 이번 총선이 되겠지요.... 정말 궁금 합니다, 저는 주위에 국민의당은 어차피 개누리당 2중대고 원내교섭단체가 안되면 개누리 들어간다, 그러니 야당 지지자들은은 햇갈리지 말고 개누리하고 국민의당은 아예 제외하고 찍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야권연대가 안되면 정말 힘들것 같습니다, 이번에 개누리당을 없애지는 못할지언정 100석이하고 내려 앉혀야 된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모든 악의 생산지가 개누리당 아닙니까,
    저들의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의 방자함을 더이상 본다는 것은 제명에 다 살지 못할것만 같네요.... 그건 그렇고 야당에서는 부정선거, 특히 개표부정과 무효표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대책을 있는지 철저하게 감시를 하에 선거가 치뤄지기만 한다면 야권이 가능성이 더 높게 봅니다, 악의 생산지에서 이렇게 악을 저지러는데 소경과 귀머거리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걸 모른다면 사람이 아니죠.... 정말 한심한 인간들 보면 앞이 캄캄 하지만 어짜피 세상은 산자들의 세상이니 산자들이 힘을 합쳐 뭉치고 난세를 헤쳐 나가는 수 밖에 없겠죠.... 정말 가슴이 메이고 답답 합니다, 우리 선생님도 역시 저보다 얼마나 더 답답한 마음이 터질것 같다는 심정일것을 글을 읽어면서 느낌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냥 이렇게 가만 두지는 않을겁니다, 올해는 폭풍전야와 같은 이나라에 뭔가 터질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 글이 두서없이 길어 져 버렸네요.... 선생님도 새해는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6.02.10 04:08 신고

      네, 혁명의 조짐이 보입니다.
      청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미친 짓거리가 극에 달했습니다.
      재벌들도 요즘은 고민이 많습니다.
      당장의 이익 때문에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는 재벌을 위한다 하면서 기업과 국민을 싸움 붙이고, 그래서 보수층의 집결을 노리고 있습니다.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그 동안의 나쁜 짓들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에 대한 공부가 적은 분들은 그런 단순한 상징조작에도 넘어갑니다.
      의외로 인간은 많이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다고 해도 깊이 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에 새누리당의 전략이 파고드는 지점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방송들이 파고들고요.
      이들의 조합보다 반대의 조합이 다수가 돼야 합니다.
      이놈의 지랄 같은 민주주의는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해서 적정선에 타협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그렇다보니 기득권이 승리를 구가합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2.10 08:51 신고

    위에 언급하신 세분의 조합이 정말 환상적입니다
    바람직한 조합입니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끊임없는 진보가 내리는 저주는 끊임없는 퇴행이다.

 

                                                           ㅡ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용

 

 

 

윌킨슨의 《평등이 답이다》,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 등처럼, 최근에 들어 지난 19~20세기에 누적된 자료를 가지고 세계경제가 성장해 왔는지를 파헤치는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중농주의와 중상주의가 교차하는 시기에 등장한 고전파경제학의 자기조정 시장(애덤 스미스)과 자유무역(데이비드 리카도)이 전 지구적 자유시장경제로 발전하는 동안, 수치상의 경제성장이 정말로 실현된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의 결과들이다.





헌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인 전 지구적 엘리트들이 개발과 성장의 증거라고 내세운 두 가지 핵심 지표에서 실체적 진실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왜곡됐음이 밝혀졌다. 심하게 말하면 최상위 1%에 속하는 전 지구적 엘리트들이 99%의 인류를 상대로 거대한 지적사기와 자유시장이라는 명목 하에 대항할 수 없는 폭력을 자행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 지구적 엘리트들의 협조자 역할을 하면서 개별 국가의 정권을 잡은 정치·경제 엘리트들과 통상 관련 관료들과 수구언론이라는 탐욕의 삼각동맹이 인류를 끝없이 세뇌한 결과다. 상위 1%를 위한 전 지구적 시장의 구축이라는 세계화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면서, 모든 권력의 기반이 되는 부의 독점과 온갖 불평등,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경제성장의 자연스런 결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결과다.  

                                                                  

 

먼저 경영기법과 과학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던 1인당 노동생산성이 1968~1970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졌음이 밝혀졌다(아주 짧은 기간 동안의 상승은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 거품으로 터졌다). 정보통신과 영상·감시산업, 자동차 산업처럼 일부 업종의 생산성만 상승했을 뿐, 비정규직과 임시직, 파견직 등의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남에 따라 산업과 서비스 전반의 생산성은 1929년의 경제대공황 시기에 근접할 만큼 떨어졌다.

 

 

또한 우리가 귀에 진물이 나도록 들었던 세계 각국의 실질적 GDP도 오일쇼크를 선진국(특히 유일제국인 미국)이 군사력과 뇌물로 제압한 1973~1975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우리가 지금까지 수없이 속아왔던 것처럼, 세계 각국의 명목상의 GDP와 1인당 GDP는 꾸준히 늘어났지만, 2007년말까지 인플레이션에 따른 자연적인 상승분을 포함하면 수치상으로만 사실일 뿐이며, 진실은 그 너머에 있었다.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생산 과정에서 생긴 각종 환경오염을 줄이고 기상 이변과 생태계 파괴를 늦추는 비용, 원전 폭발 같은 각종 사고 처리 비용, 교도소와 교정 및 범죄 예방 등에 들어가는 비용, 테러와의 전쟁과 테러 대비훈련비용, 마약과 폭력에 드는 비용, 각종 만성질환(정신·신경질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과 전염병 처리 비용, 온갖 생활 쓰레기 처리비용, 회수하지 못한 공적자금 등처럼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비용이 GDP 산출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최근에 세계의 공장 역할에 충실했던 중국경제가 경착륙으로 들어섰고, 미국이 더 이상 돈을 풀 수 없어 기준금리 인상과 강달러 전략으로 돌아서 신흥국에 투자된 자금을 쓸어담고, 유가가 20달러 대로 떨어지는 등 세계경제가 2008년 금융대붕괴 이상의 위기로 빠져드는 신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하위 99%의 부를 상위 1%에게 이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우파의 반동적 계급혁명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장의 결실은 극소수의 이익 독점으로 귀결된 것과는 달리, 성장의 부작용과 위험들은 모든 이들에게 전가됨으로써 국가와 1인당 GDP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불평등은 심화됐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호참사에 따른 각종 구조비용, 유족과 시민들이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 유족과 생존자와 국민이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 치유비용도 GDP 산출에 포함된다.                      

                                                            

 

결국 온갖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낸 허상의 수치놀음에 하위 99%의 삶은 갈수록 나빠졌고 위험을 등에 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로 대규모 개발과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각종 불평등이 심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런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질수록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 인권은 제한되거나 축소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명박이 대통령에 오른 2008년부터 박근혜의 3년차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끝없이 퇴행을 거듭했고, 하위 99%의 평등한 정치사회적 자유와 각종 기본권 등이 위협받고 있다. 이들은 성장을 빌미로 국가의 예산을 집행하고 국채를 발행하며, 야만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자와 시민에게 폭력을 자행하고 정치검찰을 동원해 고소·고발을 남발하면서 특정 집단의 이익에 봉사했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여론을 조작하고,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가기관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고 개표를 조작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승계·강화한 박근혜 정부의 밑도끝도 없는 ‘줄푸세’는 대한민국과 하위 99%의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지난 8년간 지속돼온 신자유주의 우파정부의 정책 기조와 법집행은 1~5%의 이익을 위해 95~99%의 희생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고, 그 결과가 세월호참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자 탄압과 농민(백남기씨)의 의식불명,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으로 이어졌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이명박근혜 정부에 이렇게 속아왔다. 이들은 매일같이 경제와 민생, 질서와 안전을 떠들어댔지만, 그것은 국민을 속이고 길들이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독재에 준하는 정치 폭력의 행사였다. 그 때문에 너무나 많은 아이들과 청춘, 노인들이 삶을 이어갈 수 없었고, 노인빈곤율과 청년실업은 끝을 모르게 늘어났고, 전 연령대에서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로 치솟았으며, 수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 이룩한 민주주의는 고사 지경에 이르렀다.

 

 

세월호참사는 이런 적폐들이 쌓이고 강화돼 일어난 거대한 참극이다. 지난 8년의 결과가 세월호참사와 국정화, 위안부협상이라면, 우리가 더 이상 속아야 할 이유도,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야만공권력과 법집행에 짓눌린 권리와 뺏긴 것들을 하나씩 되찾아오는 것,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바칠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추모이자 의무며, 책임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위안부할머니를 비롯한 일제 36년의 피해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진혼곡이다.



이명박근혜의 아바타로서 새누리당과 적극 협조하고 있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용서할 수 없음은 그들의 행태가 친일수구세력에서 신자유주의 우파로 변신한 현 집권세력의 집권연장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진이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지도 않은 채 다른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내놓으라고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안철수가 이를 수용했다는 뜻이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그렇게도 속았는데 이제는 안철수와 국민의당까지 나서서 국민을 속이려 한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국민을 속였던 것이 짧다고 생각했는지, 박근혜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아서 두려웠는지, 내각제를 축으로 하는 연립정부를 통해 장기집권에 편승하겠다는 것인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테러방지법과 경제활성화법안 및 노동5법 통과에 협조하겠다고 하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정의와 역사의 적일 뿐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1.19 08:24 신고

    거기다 더해 새눌당은 국회 선진화법 개정을 위해 갖은 꼼수를
    동원하는군요
    정의화 국회의장만 난감하겟습니다

    • 늙은도령 2016.01.19 12:48 신고

      그 분이 변수입니다.
      마냥 새누리당이 패하도록 방관만 하지 않을 것이므로...

  2. base 2016.01.19 16:44

    최근에 외국의 어느 기관에서 조사 발표한 내용을 기사거리로 올린 것을 보니 이미 1%가 99%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러다간 어떻게든 세상이 변화겠죠? 안철수와 그의 무리들은 민주와 역사의식이 없는 자들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19 17:59 신고

      네, 어제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1%의 재산이 하위99%의 총 재산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들에 따르면 1% 내에서도 0.1%로 부가 집중되고 있답니다.
      이들은 지구와 인류를 파괴하고 죽이며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정치와 언론이 그들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이를 뒤집을 가능성도 매우 희박합니다.
      프랑스혁명이 모든 국가에서 필요한 시기입니다.

  3. 판금잘하는공장장 2016.01.20 08:09 신고

    따랑하는 울님.
    오늘아침 활짝 웃으며
    시작하셨나요 
    전 매운 추위탓에
    눈물 찔끔, 콧물 훌쩍
    흘리면서 시작했습니다.  
    오늘 참 많이 춥죠 
    아마 대한이 코앞에 있어
    그런가 봅니다.
    추운날씨지만 마음은
    따뜻한 날들 보내시라고,
    행복을 가득담아 보내드립니다.♧
    추워도 건강하시구요 행복하소서.


물론 포퍼가 말한 것처럼 "국가의 과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개인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허용될 수 있는 자유의 정도를 정확하게 결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발전을 퇴행시키고 있는 국가와 거대 자본의 폭력과 사적독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국가의 이익이란 미명 하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야만공권력의 부활을 용납한다면 영원히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하는 자유방임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국가에 의한 공적독점이 사적독점보다 위험하다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 시장경제를 통치의 영역까지 확대재생산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갔는지를 조금만 돌아봐도 이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1940년대 중후반에 푸라이부르크 학파가 정립한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가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통해 밀턴 프리드먼으로 이어지면서 무정부적 자유주의로 치달았던 것도 규제 없는 자유방임이 무한경쟁을 유도해서 공적독점을 사적독점으로 대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란 제도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래서 사방이 벽으로 막힌 제한된 개념이다. 무제한적인 자유, 즉 책임에 대한 면책을 당연시 여기는 자유방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정글을 재현하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삶과 사회의 조건으로 정착시킨다. 이런 자유방임을 내세워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 불량배의 항변에 어떤 재판관이 "당신 주먹을 마음대로 놀릴 자유는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의 코가 어디 있는가에 따라 제한된다"고 말한 것이 자유의 한계를 말해준다. 




칼 슈미트가 국법이 정지하는 곳인 예외상태를 제외하면, 국가의 공권력 사용도 기본적으로 이것에서 출발하며 여기서 멀리 나갈 수 없다. 경찰이 쌀개방에 항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던 농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농민이 죽자,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했던 말도 여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플라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권위주의적 통치자에게서는 절대 들을 수 없었고, 지금도 듣지 못하고 있는 그런 진심어린 사과 말이다. 


저의 이 사과에 대해서는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사기와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의 불만과 우려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식을 전경으로 보내 놓고 있는 부모님들 중에 그런 분이 많을 것입니다. 또 공권력도 사람이 행사하는 일이라 자칫 감정이나 혼란에 빠지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인데,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원인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한 것임에도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이 땅의 보수세력들이 매일같이 빨갱이라 욕하며 부관참시도 수없이 당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최대한도로 실천한 지도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공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그 필요성을 인식했으며, 따라서 공권력을 사용할 때 어떤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줬다. 플라톤보다 반세기 정도 앞서 살았던 페리클래스의 연설(다음 글로 올리겠다)을 인용하며, 칼 포퍼가 "민주주의란 '국민이 지배해야 한다'는 무의미한 원리에 의해서는 철저히 규명될 수 없고, 이성과 인도주의적 신념에 기초한다"고 말한 것도 노 대통령의 사과문과 일맥상통한다.



칼 포퍼가 우파 전체주의의 기원을 플라톤에서 찾은 것은, 국가를 절대적인 주권을 소유한 유일한 자로 정의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나치의 공법학자이자 모든 전체주의적 독재자의 교본인 《정치신학》의 저자 칼 슈미트, 인류 문명의 종착점이 완벽한 폐허라며 허무주의를 주장해 나치의 등장에 일조한 《존재와 무》의 하이데거 등이 플라톤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의 기원이 플라톤에 있다는 비판은 한나 아렌트만이 아니라 위대한 석학인 벤야민과 아도르노와 바우만 등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가 경제 발전의 유일한 법칙으로 계급투쟁론을 들고 나온 것도 플라톤의 《국가(론)》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둘로 갈라진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의 나라이고, 또 하나는 부자의 나라이다. 그리고 이 두 나라는 서로 전쟁을 벌인다"라고 말했다. 계급투쟁론의 기원도 플라톤에서 시작된다. 그의 이분법적 삼단논법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권위적이며, 종종 일방적인 결론을 유도해낸다. 



이데아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일체의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 플라톤의 '억제된 국가'는 전체주의의 원형으로 이어지고, 개인에 대해 사회나 체제, 국가의 우위를 명백히 한다. 언제나 정에서 출발해 반이 나타나고, 정이 반을 반영해 합으로 가는, 그리고 그 합이 다시 정이 되면서 언제나 현존하는 체제가 선한 것이 되는 헤겔의 변증법도 플라톤의 사상에 기원하고 있다. 이렇게 보수(정확히는 기득권)의 철학을 가장 완벽하게 정립한 헤겔은 물론, 마르크스도, 크라우스도, 레닌도, 히틀러도 플라톤에 사상적 기원을 두고 있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과 정치철학은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에서 볼 수 있고, 특히 묵자의 사상에 이르면 동양의 플라톤이 떠오를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가》와 《국가》, 《법률》 이전의 플라톤의 저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보면 일부일처제를 중심으로 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공자의 사상과 '맹모삼천지교'로 유멸한 맹자의 사상이 수없이 나온다는 사실이다(특히 미셀 푸코의 《성의 역사》 시리즈인 《앎의 의지》, 《쾌락의 활용》, 《자기배려》를 참조할 것). 


인류의 철학과 역사를 지금부터 기원까지 거꾸로 찾아가다 보면 서양과 동양의 사상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푸코에서 많이 배웠다는 네그리는 《제국》에서 지배세력에 대해 언제나 대항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전체주의란 존재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전체주의는 일정 시점에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닌 영원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실존하는 국가(제왕적 권력을 허용하는)의 형태 중 하나이다. 


좌우가 지향하는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단 하나의 지점인 자유의 왕국으로 귀결되는 것도 플라톤이 정립한 최선의 국가, 즉 억제된 국가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의 주장을 극대화하거나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좌우의 유토피아는 동전의 양면처렴 연결돼 있다. 벤야민이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과 푸코가 국가란 본질적으로 개인화하는 경향과 전체화하는 경향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철학자가 지닌 이성의 힘을 과신했던 플라톤에서 출발해 칸트와 헤겔을 거치는 과정에서 완성된 근대이성이 현대성을 이루었고, 그것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의 굴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밝힌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도 좌우의 전체주의가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완벽한 평등과 완벽한 자유방임은 단 하나의 가치만 인정하기 때문에 전체주의체제에서만 실현이 가능하다. 


마르크스의 자유의 왕국과 하이에크의 무정부적 자유주의는 과정과 수단만 다를 뿐 결과에서 있어서는 동일하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보다 깊은 성찰을 원하는 분들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죠지프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보라)로 다루겠지만,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국가에 의한 공적독점이 신자유주의의 번성으로 사적독점으로 대체되는 현실에서 우파 전체주의를 비판한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울림은 현재진형행이라 할 수 있다.    


조금은 길지만,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마지막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시간이 되는 대로 좌파 전체주의(이른바 역사주의)를 비판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요약한 뒤, 철학자이기 전에 과학자였던 칼 포퍼의 한계에 대해서도 다루어 볼 것이다. 플라톤에 대한 비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에는 몇 가지 오류와 편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플라톤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것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플라톤의 사회학적 진단이 우수했을지라도, 그 자신의 발전은 그가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도 그가 추천했던 치료법이 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소위 닫힌사회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천국에서의 꿈은 지상에서의 실현될 수 없다일단 우리의 이성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우리의 비판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상, 개인적인 책임의 요구와 더불어 지식의 증진을 위해 조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이상, 우리는 부족적 마술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국가로 되돌아갈 수 없다. 지식의 열매를 먹은 자는 천국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부족주의의 영웅적 시대로 돌아가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종교재판에, 비밀경찰에, 낭만화된 깡패행위에로 가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성과 진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가장 야만적이고 포악한 파괴로 끝내고 말 것이 확실하다. 

자연의 조화된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길 전체를 다 가야만 한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꿈꾼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일, 인간다움과 이성과 책임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위축되어 버린다면, 용기를 잃어버리고 긴장에 찌들어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은 단수한 결정을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강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여 안전과 자유를 위해 계획하면서ㅡ이 계획은 우리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야만 한다ㅡ미지의 세계,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1. 참교육 2014.07.31 19:04

    우리는 어쩌더 박근혜 같는 대통령을 만나 유시시대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대 유신대통령... 불행한 국민입니다.

  2. 진흙속의연꽃 2014.08.01 08:08

    벤야민의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이런 논리가 물론 정치에도적용되겠지요. 세월호참사와 관련하여 꿈쩍도 않는 보수세력과 약자에의 편에 서서 바꾸어 보려는 진보세력이 극과 극이긴 하지만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득권’입니다. 권력을 쟁취한다는 것은 결국 기득권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의 정부5년과 참여정부 5넌 합쳐서 10년간 기득권을 누려본 사람들은 보수기득권과 다름 없는 ‘진보기득권세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3자의 입장에서 멀리서 내려다 보듯이 보면 다만 정권이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듯이 그 얼굴에 그 얼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야당이 참패하였는데 통쾌하다”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았습니다.일부 진보세력 중에는 같은 편에 총질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정권만 잡으면 된다라는 것입니다. 허동준의 난동이나 일부 진보기자 또는 블로거 들, 그리고 일부 진보네티즌들의 글을 보면 진보의 가치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보수층에 노불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진짜 보수가 보이지 않듯이 진보세력 역시 마찬가지라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새로운 기득권 세력의 탄생 그 의미 이상이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현재의 보수기득권세력 보다는 약간 좋아지겠지요. 앞으로 총선과 대선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보수층의 산업화 세력, 그리고 짱돌 던지던 진보세력의 시대가 아닌 제3의 세력을 고대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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