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비정규직을 기간제 근로자(fixed-term contract)로 표현합니다. 사측과 직원은 개별계약을 하며, 기간은 최대 2년(창업의 경우 4년까지 가능하나 지원자가 거의 없음)으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기간은 양자의 합의 하에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연봉도 같은 직종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양자가 협상해서 정하며, 4대보험도 정규직(permanent contract)과 동일하게 제공됩니다(시간제와 한계 근로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 포함. 파견근로가 늘어나고 있지만 소수에 불과함).

 

 

 

 

2년의 계약 기간이 지난 이후에 기간제 직원을 재고용할 경우에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합니다. 동일 직원을 편법으로 고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계약 종료 전에 해고한 후 신규로 재계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간제 직원이라도 성과가 좋으면 계약 기간 중에도 정규직 계약을 할 수 있으며, 동일임금을 적용받기 때문에 연봉을 조정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간제 직원과 정규직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파견직도 동일하다)되며, 해당 직무의 지원자가 없으면 기간제 직원의 연봉이 정규직보다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박사 하위 소지자나 전문직일 경우 기간제 계약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규직과 기간제 직원이 동일회사에 일하는 한 차별을 하지 못합니다. 정규직에게만 주어지는 혜택들이 있어 기간제 직원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영원한 계약이라는 뜻의 정규직이 되면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고, 각종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정규직이 되기 위한 기간제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이 이루어져 생산성이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히든챔피언, 즉 알려지지 않은 중견·중소기업이 많은 독일의 최대 강점, 헤르먼 지몬의 《히든 챔피언, 글로벌 원정대》에서 자세히 나옴). 이 때문에 정규직과 기간제 계약 사이에서 크게 갈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조가 없어도 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에 고용안정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규직의 경우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사측이 평가할 기회를 줍니다. 직원이 약속했던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거나 회사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노동유연성이란 이것을 말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측에게 무한대의 권한을 주려는 해고요건 완화, 취업규직 변경 완화, 파견직종 확대, 임금피크제 등처럼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성(독재일 때 가장 효율적인 줄푸세의 핵심)과는 전혀 다릅니다. 

 

 

 

 

게다가 독일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와 함께 복지와 연금, 보험체제,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습니다. 실적 악화로 회사가 파산해도 직원들의 삶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공됩니다. 저부담 저복지(상류층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상류층 입장에서는 세금과 연금 등의 상한성이 무지하게 낮기 때문이다) 국가인 한국(복지학에서는 국가의 복지 수준을 3단계로 나누는데 한국은 최하위 등급인 C에 포함)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독일은 이 모두를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40~50년대(국민소득 1만~2만달러 사이, 독일의 경우 질서자유주의 또는 사회적시장경제라 한다. 20세기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인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의 원형이 독일에서 나왔으며, 미제스와 하이에크, 프리드먼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프라이부르크 학파가 주도했다고 밝혔다)에 완성했다. 3만달러도 아닌 1~2만달러다!!   

 

 

독일은 영토가 한국보다 크고 인구는 9천5백만 명 정도라, 선진국 함정에 빠져있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차선의 모델이다. 독일의 강점과 한국의 강점은 상당 부분 비슷해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따라할 수 있다. 박근혜와 그 일당, 수구세력의 거짓말에 속지 마시라. 우리의 경우, 중간 단계로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로 대표되는 '노르딕 모델'보다 비스마르크 모델 위에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를 더한 독일 모델이 현실적이다. 

 

 

물론 국민이 정치사회적 합의에 이를수만 있다면, 고부담 고복지가 최상의 모델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까지 포기할 이유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제 동생은 초국적기업의 유럽법인장으로 5년 동안, 독일과 유럽의 직원들을 뽑았습니다. 경제학자나 전문가라 하는 자들의 얘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생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따끈따끈합니다. 제가 공부한 것과 합쳐서 서로 일치하는 내용만 글에 담았습니다.      

 

    

 

 

                                                      
  1. 참교육 2015.12.20 11:08 신고

    정부가 자본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만 선다면 자본도 노동도 함께 공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본의 입장에서면서 공정한 권력 행사라며 노동자들을 기만하니까 그들이 반발하고 있는게지요. 답답한 나라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20 14:57 신고

      복지선진국,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이 그러합니다.
      문제는 그런 나라들도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받아 많이 약해졌습니다.

  2. 포스팅 구경하고 갑니다 ㅎㅎ

  3. 공수래공수거 2015.12.21 09:07 신고

    우선 지도자들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먼저 깨쳐야 되는데 그것이
    안됩니다

  4. 거북걸음 2015.12.21 10:24 신고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5. 사랑맘 2015.12.21 15:40

    좋은글 잘봤습니다.. 혹시 페이스북도 하시는지요?? 여기있는글을 sns도 올리면 파급효과가 더 있을것 같기도한데.. 벌써 하고계실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른바 삼포세대의 실상을 나타내는 가슴 아픈 통계가 나왔습니다. 어제(2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월간 보건복지포럼 7월호에 '최근 미혼 인구의 특성과 동향:이성교제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실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삼포세대가 연애를 할 수 있는 조건(스펙)이 명료하게 드러나는데, 이제는 연애조차도 돈이 없거나 정규직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나온 위의 표를 보면 학력이 높을수록, 경제활동을 하고 있되 소득(연봉)이 높은 정규직일수록 연애를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 모두 '25∼29세, 대졸, 연봉은 2500만∼3500만원, 정규직'일 때 연애를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연애할 확률이 가장 낮은 청춘들은 남녀 모두 연봉이 1,500만원 이하로 나왔습니다.

 

 

소득이 2,500만~3,500만원일 때 3,500만원 이상을 받는 청춘보다 연애를 할 수 있는 확률이 제일 높지만, 이는 연봉이 3,500만원 이상인 청춘은 연애보다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또는 그보다 더 높은 연봉을 향해 연애를 늦춰도 전혀 문제가 없는 소득군에 포함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근무시간이 길어 연애할 시간도 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근무시간하면 대한민국을 따라올 나라가 거의 없으니까요.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의 33.8%, 여성의 35.6%만 연애를 하고 있으며, 통상 결혼적령기라고 하는 25∼29세(남성 45.5% 여성 43.1%), 30∼34세(남성 38.7%, 여성 38.0%)'의 연령대가 가장 많이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그 비율이라는 것이 40%대입니다. 즉, 결혼적령기에 속한 청춘들은 10명 중 4명 정도만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60%의 청춘이 연애조차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청춘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늙은도령인 저로서는 놀라움을 넘어 자괴감마저 듭니다. 대한민국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듯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가 이것이라면 지난 세월의 삶이 너무나 허무해지기 때문입니다. 가계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하층민에 속했던 필자의 3형제들은 명문대에 들어가 최고의 기업에 취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현재의 청춘들은 그것마저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니 지난 20~25년 동안 대한민국이 퇴행을 거듭한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니,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압축성장이니 하며 자신의 업적을 떠벌렸던 산업화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부족한 것이지 확실해졌습니다. 경부고속도로니 거대한 공업단지니, 하늘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빌딩과 자동차, 스마트폰과 넘쳐나는 아파트 등을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 시대만이 아니라 후세대도 써야 할 유한한 자원을 미리 꺼내 쓴 것입니다. 그것도 천문학적인 빚을 내서 건설하고 만들었으니 그 후유증과 이자는 미래세대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 네 권의 책을 읽어보면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2차세계대전 이후 성장을 거듭하던 세계 경제가 1973~1975년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다는 최근의 연구결과가 진실에 근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세계의 총부채가 120조달러에 이르고, 우리의 총부채도 4,000조에 근접했으니 늘어난 것은 빚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매년 수천조 원에 이르는 돈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로 대표되는 거대 금융자본과 극소수 특권층의 수중으로 들어가니, 제조업과 서비스업종에서 아무리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도 제대로 된 연봉을 지급할 수 있는 여럭이 부족합니다.

 

 

결국 이런 참담한 결과에서 벗어나려면 경제활성화가 아닌 부의 재분배와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경제가 성장할수록 낙수효과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승자독식이라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청춘들이 돈과 학벌에 의해 연애를 선택적으로 할 수 있거나, 아예 하지 못하니 젊은 나이에서부터 돈의 노예로 만드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주체적 삶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촘스키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자유란 악마"와 다름업다고 말합니다. 요즘 청춘에겐 넘칠 만큼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연애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청춘들은 악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삶이라는 것이 지옥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희망이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청춘이 절망하면 우리 시대의 희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속았으면 충분합니다. 필자가 그 동안 읽었던 책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경제활성화를 통해 내수경제를 끌어올린다 한들 잠깐 동안 반짝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만약 경제활성화가 또 다른 빚을 내서 진행되는 것이라면 이번 정권이 끝날 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청춘들은 이 나라의 미래이며,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나라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언제까지 청춘들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등쳐먹을 생각입니까? 수없이 되풀이해서 말했듯이, 문제의 근원은 기득권의 탐욕에 있습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중위소득에 몰려있는 사회경제적 평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부의 불평등만 강화될 뿐이며, 민주주의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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