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이유를 알아내기 전부터 나무 같은 사람이 좋았다. 무성했던 잎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그 묵직함이 좋았다. 바람이 매섭게 부딪쳐도 흔들릴 뿐 부러지지 않는 그 강인함이 좋았다. <장자>에 나오는 우화처럼 모든 나무는 존재해야 할 가치를 스스로 만들내는 것이 신비하고 따라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례가 많았던 관계로 꾸준함을 보여주는 것에 매료되곤 했었다. 

 

 

<공자>를 접하게 되면서부터는 나이를 먹는 것이 더 기다려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식과 성품이 더욱 풍부해지고 유연해지며 불혹을 거쳐 지천명에 이른다는 사실에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지천명이라니?!! 인간의 하늘을 뜻을 알 수 있을 정도에 이른다면 매일같이 죄의식을 강요하는 종교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환갑이라는 현실적이지 않은 나이에 이르면 자연의 섭리에 이른다는 것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니의 사형을 늦추기 위해 배속에서 70년을 버티다 나왔다는 노자의 얘기야 중국인 특유의 썰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공자의 경험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상당히 신빙성있게 다가왔다. 여문 곡식일수록 고개를 숙이고, 물은 깊을수록 고요하며, 빈 수례가 요란한 법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듯이 들었던 터라, 나이가 들수록 연륜이 쌓여가는 어른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었다. 말년이 멋있는 사람, 그게 하나의 꿈이자 목표처럼 자리잡았다.

 

 

아버님이 구입한 책들을 중에는 위인전과 영웅전 같은 책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공자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공자처럼 꾸준한 발전과 성숙미를 보여주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ㅡ9남매의 장남으로 월남한 가족을 챙기는 것을 너머 자식 3명도 키워야 하는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셨다ㅡ도 나이가 들수록 주량이 느셨고, 그에 따라 늘어난 주사를 받아내느라 난 초죽음 상태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 

 

 

공자와 아버지가 비교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고, 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살인적이라는 점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ㅡ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두 분다ㅡ아버지와 삼촌, 고모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삼키는게 김치찌개에서 꺼낸 돼지비계를 삼키는 것보다 힘겨웠다. 몇 년의 시차는 있었지만 두 분이 모두 1월 초에 돌아가신 덕분에 제사를 한번만 해도 된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어머님만 생각하면 제사와 차례는 전쟁이었고, 그것도 일년에 십여 차례를 치뤄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어느 시대의 청춘이나 힘든 시절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님의 30대 이후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지옥과 비슷했다. 자기 잘난 줄만 아는 아들들이 알아서 공부하고 크는 바람에 자식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됐지만 모두 다 서울대 진학에 실패해 아쉬움은 평생 가지고 가셨다. 

 

 

정말 희한한 것은 조부모 두 분과 아버님이 52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는 52이라는 숫자를 두려워했다. 52세를 넘기면 최고의 행운이자 장수라 여겼다. 할머니를 빼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점까지 더하면 52라는 숫자는 암과 동의어였다. 어머니의 건강이 늘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90세까지 장수하면서 52라는 악마의 숫자는 위력을 잃었다. 

 

 

내가 간암에 걸린 것도 40대 중반이었지만 그후로 10여 년을 생존하고 있으니 52라는 숫자의 위력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공자가 이른 경지에 나도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지만. 생각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든 것까지 생각하면 쓸데없는 걱정을 참으로 오랫동안 이어왔던 것이니 열불이 날 정도다. 나도 몇 년만 더 살면 국민연금이라는 것을 수령하게 될 터인데 가입을 할 기회조차 없었으니, 제기랄!!

 

 

그 얘기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부터 국민연금을 든다고 해도 세월이 흘러 받을 나이에 이르면 나의 불알처럼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있을 테니까. 그것과 함께 연결돼 있는 가운데 다리란 놈은 늘어지기만 할뿐 줄어들지는.. 흘낏 보니, 이런 제기랄,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다윈이 죽였지만 어찌어찌해서 부활하는데 성공한 용불용설은 진실이었다. 

 

 

쓰지 않은 것은 퇴화하고 쪼그라들고 작아진다, 분명히! 명백히... 적어도 나에 한해서는!!! 죽어 하늘에 가면 공자에게 묻고 싶었던 것도 이것으로 바뀌었다. 60세에 정말 이순에 이르렀는지? 그 댓가로 생식기가 아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지? 나처럼 당신도 쓴 적이 별로 없는지? 다윈의 진화론은 물론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알고나 있는지? 나이가 들수록 머리를 숙였던 것이 수염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사라진 무게 중심 때문에 어쩔 수 생리현상이었던 것은 아닌지?  

 

 

관속으로 들어가기 전, 당신이 하체는 사진과 같지 않았는지? 무성한 것은 뒤늦게 맛들여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의 소용돌이이되 숙여진 머리속에 가득할 뿐 분출할 수 없어서 온갖 생식세포들로 갈라져 제멋대로 떨어져나가려 하다가 북풍한설에 모조리 얼어붙은 쪽팔림 같은 것은 아닌지? 입지, 약관, 불혹, 지천명, 이순이란 표현들은 한 마리의 정자도 남겨주지 않은 성욕의 감퇴가 너무나 슬프고 아쉬워 알레고리나 메타포의 일종으로 미화한 것은 아닌지?

 

 

미학을 했다고 하는 놈들 중에서 천하의 잡놈에 등극해 유치찬란함을 거대한 대가리 주위에 아우라처럼 두르고 있는 진중권이라는 쓰레기에게 보여주기 위해 차마 털어내지 못한 최후의 정자인 것은 아닌지? 서민이 되지 못한 기생충 서민은 말할 것도 없고. 뭐, 홍세화라는 기레기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기면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 그 놈까지는.. to be contin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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